이창재 원장의 프로이드 칼럼

                               2004 ~ 2023년 사이 글 

이창재 원장의

정신분석 칼럼


  2004~202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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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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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드와 융은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둘 사이엔 거리감이 깊어져 갔다.  
융은 프로이드 선생이 자신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지 않음을 한탄했다.
융은 프로이드가 아동기에 부모관계에서 겪는 쾌락 욕망의 '충족/좌절' 경험’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과도하게 강조했고, 개인정신을 배후에서 좌지우지 하는 거대한 힘인 ‘집단무의식’을 외면했다고 비판한다.

프로이드는 융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당신은 무의식의 핵심에 유아성욕과 오디푸스 콤플렉스가 역동하고 있다는 나의 주장이 이 시대 권력집단인 교회의 가치관과 대립되는 걸 감당하기 어려워하지! 그래 사회로부터 거세당할까봐 두려워 학자의 '진실추구성'을 회피한 채, 정신분석의 초점을 엉뚱하게 집단무의식에로 돌리려 하는군...쯔쯔. 나의 유일한 후계자라고 기대했던 탁월한 과학자인 당신이!”

융은 프로이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선생님. 제가 주로 치료한 ‘정신분열증자’의 핵심 콤플렉스는 결코 유아성욕이나 오디푸스 콤플렉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보다 더 이전 단계의 원시적 불안공포와 ‘타자의 혼령’에 압도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정신을 좌우하는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주목했으며, 그것은 유년기에 부모에게서 직접적으로 받은 상처나 환상으로 설명되지 않는 더 원시의 어떤 힘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태어나기 이전부터 물려받은 어떤 힘에 의해 지배받는 듯 했습니다.....단순히 <부모의 나쁜 양육과 성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구나>라고 설명하기엔 적합지 않은 어떤 것이 그들 정신에 들어가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부모의 무의식’에조차 영향을 미쳤을 거대한 ‘그것’을 저는 ‘집단무의식’이라 칭했습니다.  
집단무의식은 개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개인정신의 배후에서 늘 작동하고 있는 무엇임을 주장한 것뿐입니다.  제 이론이 당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수많이 ‘경험 관찰’한 것을 학자의 순수성으로 표현한 것임을 온전히 인정해주시기 바랍니다.”

프로이드와 융은 끝내 서로 깊은 상처를 입고 결별한다. 그 후 융은 모든 대외활동을 단절한 채 수년간 자기 집에 칩거했고, 내담자들의 꿈을 고대 신화 자료와 연계시켜 해석함으로써 원시적 집단무의식이 현대의 개인정신에 어떤 양태로 발현되고 어떻게 영향미치는지 입증하는 노력을 평생에 걸쳐 시도하였다.
그리고 프로이드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토템과 타부> <모세와 일신교>라는 걸작을 통해, 개인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민족의 무의식’이 있음을 자기방식으로 인정하였다.

프로이드와 융이 갈라선지(1913) 94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신분석은 전세계 인류와 학자들에게 폭발적 관심과 유행을 일으켰다. 그 열정은 이제야 좀 잠잠해진 추세다. 그렇다면 오늘날 프로이드와 융의 대립은 어떤 양태로 정리되었는가? 누구의 생각이 더 타당했는가?
그 결론은 여전히 애매하다.
 
국제정신분석학계는 그동안 융을 배제한 채 프로이드 입장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현대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추세는 프로이드가 주목했던 오이디푸스기 경험보다 더 이전 시기의 힘들이 개인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끊임없이 추적하는데 쏠려 있다. 가령, 아동기(4-7세) 보다 유아기(0-3세)의 ‘환경’과 ‘대상’들이 아이의 정신 형성과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한다.
 나아가 임신기간 중 ‘환경’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 임신할 당시의 부모 관계와 그들 각각의 아이를 향한 욕망의 질, 
부모 각각이 그들의 가족과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언어, 문화, 민족의 역사, 최초 인류의 유전자(DNA) 분석

클라인의 죽음본능, ‘무의식적 환상’, 시기심, 분열, 투사동일시 , 라깡의 ‘대타자의 언어’, '구조의 힘', ‘대타자의 무의식’, 발달심리학, 가족치료학의 ‘가계도 분석’ 등등은, 부모 이전에 존재했던 ‘타자들’의 정신이 현재 ‘나’의 형성과 발달에 개입되어, 인생 과정에서 교묘하게 반복되는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증언한다.

그 거대한 ‘타자 에너지’들은 1차적으로는 인류 정신의 배경 무드로서, 조상과 ‘부모의 무의식’을 구성-점유한다. 그리고는 그 부모 ‘내면에 존재’하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정신 속에 침투한다. ‘아기’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정신과 아버지의 정신을 내사(내면화)해야만 하는 존재다. 그래야 비로소 ‘인간’이 된다. ‘인간의 아이’는 ‘구조적으로’ 부모자신도 모르는 ‘부모의 무의식’에 전염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개인의 운명이다. 이 운명의 굴레는 그 깊은 심연을 치열하게 ‘성찰’하지 않는 한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현대인이란 그를 태어나게 한 부모의 뿌리인 수천~수백만년전 조상과 인류의 정신성을 유전 받아 교묘하게 ‘반복’하는 존재다. 화려한 과학물질 문명이 마치 현대인이 과거와 매우 다른 삶을 사는 것인 양 눈가림 할 뿐이다. 그러나 그 근본정신성인 ‘집단무의식’은 ‘나’라는 존재의 심연에 그대로 깔려있다. 그것은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독특한 창조적 삶이 아니라, 타자의 삶을 반복하도록 교묘히 조종한다.

‘주체성’을 강조하는 철학자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집단무의식의 뿌리와 각고의 자기성찰 대결을 하지 않는 한, 대대수 인간은 집단무의식의 흐름에 지배받기 마련이다. 
철학자 박동환은 '그것'을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힘인 ‘절대타자’(X, Xx)라 칭했다! 
그 정체를 알려고 아무리 애써도 사고의 한계를 끝없이 벗어나며, 이미 인간의 사고와 지각을 암암리에 조종하는 미지의 절대적 힘! 이것은 융 생각의 또다른 한국적 울림이다.

타자의 힘! 타자의 거대한 힘! 타자의 기운! 그것이 내 안에 있다.
내 힘의 원천인 동시에 내 고통의 근원인 그것!   나는 나의 주인인가? 진정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원인모른 기운에 덮혀 자기의 본래성이 온전히 발현되지 못해온 느낌을 받는 사람들은 자기의 영혼 속에 침투한 ‘타자의 혼’과 대면할 각오를 해야 한다.때로는 가장 친숙한 대상인 부모형제자매를 통해 들어온 ‘그것’, 때로는 우연히 만나는 좋거나 나쁜 인연의 타자를 통해 침투된 ‘그것’. ‘그것’이 내 속에 있음을 직면하여 성찰하는 과정은 곧 ‘거대한 타자’,‘집단무의식’과 대면-대결하여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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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