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 원장의 프로이드 칼럼

                               2004 ~ 2023년 사이 글 

이창재 원장의

정신분석 칼럼


  2004~202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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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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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분명 내 안에서 나온 거란 말이죠. 거 참 !”

“ 어디로부터 왔겠어요. 직접 만드신 작품 아닌가요 ? ”


세상 사람들을 의심하고 불신하여, 한 번도 타인의 말을 온전한 수용하지 않고 살아온 자기애성격일지라도, 자신이 꾼 꿈이 자기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을 적극 부인하진 못한다.  꿈은 자신의 결함에 대한 부인(denial) 방어가 만성적으로 작동되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지각하며 살아온 자기애인격에게, 자신의 내면 진실과 만나게 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주지화(rationalization) 방어가  늘 작동되는 신경증자는 현실과 관념으로만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 
신경증자가 지적 방어를 뚫고 억압된 내면 진실(본환상)과 생생히 대면하는 순간은, 주로 꿈에서 이루어진다. 

프로이드는 수많은 정신치료 방법 중에, '꿈해석, 전이분석, 저항분석'을 수행하는 치료만이 ‘정신분석 치료’임을 강조했다. 억압이 심한 인텔리 신경증자들의 무의식 탐색에서 꿈해석이 기여하는 역할과 가치는 각별했다.


그런데 현대의 정신분석학계에선 정신분석 작업에서 꿈해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감소되는 추세이다. 그 원인은 여럿인데, 무엇보다도 정신분석 치료를 의뢰하는 내담자들의 정신유형이 신경증에서 성격장애로 상당비율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아강도(Ego-strength)가 약하고 미숙하며, 유아기의 엄마관계 박탈이 깊은 성격장애자의 정신은, 무의식의 상처들이 의식에 떠올려져 직면되는 것을 못 견딘다.  상처로 얼룩진 무의식 대면으로 정신이 깨지거나 불안정해질 위험도 있다. 그로인해 그들은 꿈을 통해 꿈의 무의식적 의미와 손상된 내면상태가 생생히 직면 해석되는 걸 불안해한다. 

아울러 성격장애자들의 경우, 내면의 저항을 완화시켜가며  “꿈을 매개로 무의식의 심연을 탐색해가는 고된 작업이 분석가의 노동에너지 양에 비해 치료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부각된다.  이는 인간의 본질과 삶의 목적이 모호해진 현대의 포스트모던 환경에서, 정신분석가조차 타자(내담자)의 내면(무의식) 세계에 자신의 온 정신에너지를 집중하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가 부담스럽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 가치관이 만연되어 모든 인간 활동이 경제 가치를 생산하는 서비스  활동으로 환산되어 가는 오늘날, 현실과 교류하는 정신치료자들도 문화의 영향에서 예외 되긴 어렵다. 고도의 정신에너지를 집중하여 고통을 호소하는 내담자의 정신에 공명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꿈내용의 배후에 의식화되지 못한 무의식의 메시지 · 고통의 뿌리 탐색에 오래 집중하는 것은 정신에 부담될 수 있다. 

임상에서 꿈해석은 꿈요소들에 대한 내담자의 연상 자료를 매개로, 의식 배후에 은폐된 무의식의 내용물(病因)을 발견해내는 세심하고 종합적인 정신작업 과정을 담고 있다. 꿈의 내용과 형식 양태를 들여다보면, 외견상 정신증자처럼 보이던 멍한 사람이, 실상은 욕망이 출렁이고 사고가 왕성히 작동되는 정상 존재임을 확인하여 ‘진단’에 반영할 수 있다.  ( 혹자가 꿈을 꾸고 그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는 정신분석 상담으로 삶의 만성적 문제와 대결하여 극복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지닌 존재이다.)  그리고 내담자가 의식의 언어로 표현한 생각들 배후에, ‘의식에 지각된 사실’과 매우 다른 또다른 진실이 있음을 금새 확인할 수 있다. 


꿈은 몽자의 기억회로망과 연결된 과거와 현재의 자료들을 다중으로 ‘압축’하고 있다. 따라서 반복되거나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꿈 하나를 깊이 음미하면,  몽자 정신의 여러 층들에 잠재되어 있던 주요 심리요소(갈등, 상처, 콤플렉스..)들을 다중으로 대면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꿈은 또한 심각한 심리적 사건ㆍ상처들과 금지된 욕망들을, 내부심판자(초자아)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사소하고 가벼운 요소들로 ‘전치’시켜 표현한다.  따라서 사소한 꿈장면 하나만 세심히 들여다보아도, 뜻밖의 무의식 내용과 내면 상태를 발견할 수 있다.  

꿈의 내용뿐만 아니라, 꿈의 구조(꿈의 형식, 기승전결 양태, 길이, 무의식 노출/변장 정도)를 보면, 몽자가 어떤 유형의 문제로 시달리고 있는지가 보인다. 아울러 몽자의 정신 발달/고착 단계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정신분석 치료과정에서 인상적인 꿈해석 체험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필자가 정신분석을 처음 경험하던 시절의 일화이다.

“내가 죽어서 어딘가에 누워 있었고, 그 죽은 나를 보고 당황하고 슬퍼하는 내 모습을 또다른 내가 바라보는 꿈을 꾸었어요”  라고 내 꿈을 전하자 당시의 내 분석가는 꿈연상을 유도하지 않고, ‘죽었다고? 브라보!“ 소리치며 박수를 쳐댔다.  분석가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내게 그는 ”죽음은 이제야 비로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에요....” 라며, 모처럼 뜻밖의 격려 섞인 무드를 전해 주었다. 

현재 관점에서 회고하면, 당시 융이안 분석가의 꿈해석은 머리를 내리치는 신선한 자극을 종종 주던 다른 분석 회기에 비해 감흥이 적었다. 그 후 꿈해석 활동을 이십년간 해온 지금의 입장에서 보니, 그때  즉각적 꿈해석 대신에, 꿈연상을 세세히 했더라면 무의식의 응어리가 더 풀릴 수 있던 좋은 기회였는데, 분석가는 꿈을 ‘상징’으로 해석하여 꿈연상에 관심을 덜 준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꿈해석을 기점으로, 필자의 삶은 분석가의 말대로 엄청 바뀌게 되었다. 책과 관념에 묻혀 현실과 동떨어져 지내던 철학자의 생활이, 생생하고 섬뜩하고 다채로운 '무의식의 현실'과 매일 대면하는 정신분석상담가의 생활로 전환된 것이다.


융이안의 상징적 꿈해석은 (꿈해몽과 유사하게) 꿈이 몽자의 미래에 대한 예견 기능도 한다고 본다. 당시 분석가의 꿈해석이 내게 깊은 공명과 감흥을 일으키진 않았지만, 얼마 후 나는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미국에서의 정신분석 연구 Post-doctor 프로그램에 선발되었고,  늘 관념세계에 몰입하던 ‘철학적 생활과 직업’을 완전히 내려놓고 정신분석이라는 임상치료 영역에로 직업을 전환하였다. 그렇다면 융학파 분석가가 '내 마음의 미래 변화를 예견하던' 그 당시 꿈해석이 적합했던 것인가? 이것에 대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프로이드학파 꿈해석의 진정한 묘미는 분석가가 던지는 직관적 물음이 몽자의 연상 작용을 촉진시켜 연상내용들에서 의식에 지각되지 않던 '뜻밖의 무의식적 진실'을 외부로 드러나 몽자가 생생히 직면하게 도와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한 후에, 국내 정신분석관련 학술모임에서 몇몇 꿈분석가들을 만났는데 2000년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이 융이안 분석가들이었다.  프로이디언 꿈해석을 접하는 경험 기회는, 저명한 분석가와의 장기간 카우치 분석에서조차 매우 드물었다. 분석가는 내가 긴의자(카우치)에 누워 스스로 행한 꿈분석이 잘 된 것인지 틀린 것인지 여부만 반응할 뿐, 꿈과 연관해 더 심층 연상과 심층 인식을 기대하는 내 욕구에 대해선 대부분 침묵했다. 

그 후  꿈해석 연구를 심화하기 위해 국내의 유명 꿈해석 전문가들을 수소문해 일 년간 꿈해석 관련 인터뷰 작업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 정통 프로이디언 꿈해석 전문가가 불과 몇 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국제정신분석학계 동향에 밝고 학식 깊은 어느 정신분석가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의 임상장면에서 “꿈을 자주 가져오고 꿈연상을 잘 하는 신경증 유형의 내담자 수가 많이 줄었고, 성격장애 내담자들의 경우 꿈과 꿈연상이 단순 빈곤하고, 무의식에 대한 앎의 욕구와 의지력이 적다는 것이 일차 이유였다. 그리고 그런 성격장애 환자의 꿈해석에 집중해서 얻는  치료 효능이, 전이해석ㆍ저항해석 등 다른 분석치료 활동에서 얻는 결과보다 효율성이 적기 때문”이라는 답을  직접 들었다.  

이 말은 국제정신분석학계  분석가들이 주로 접하는 정신분석내담자들의 정신 유형이, 신경증 증상들로 인해 고심하는 사람에서 넓은 의미의 (성격장애를 포함한) 정신증적 문제(사고와 감정의 둔화)를 지닌 인격유형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성이 개방되고, 이상적인 삶의 모델(구원자, 위인, 성인..)이 모호하고 다양해진 포스트모던 문화의 시대에선, 무의식에서 작동되는 금지된 욕망ㆍ환상과 그것으로 인한 거세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기 자신과 인생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진지한 ‘앎의 욕구’를 지닌 신경증자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꿈해석 방법을 가르치고, 연이어 예술작품을 정신분석 관점으로 해석하는 시범을 보였다. 그러자 평범한 학생들이 돌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예술가의 내면을 공감하며 해석해내는 수준 높은 분석가로 변신하는 모습을 다년간 목격했다. 무엇이 정신분석을 전혀 모르던 학생들을 짧은 시간에 그토록 변하게 한 것인지 당시에도 신기하고 궁금했다.  그 신기한 현상의 핵심 원인은 자기 ‘꿈을 통한 자신의 무의식 대면’에 있었다. 

꿈해석 강의내용에는 자신의 꿈에서 뜻밖의 무의식을 발견하는 새로운 체험 방법 안내와 더불어,  꿈을 생성하는 무의식의 원리들(작용들)이 곧 예술작품이 창조되는 원리와 동일하다는 비밀코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젊은 학생들이, 그것을 머리로 차근히 소화했기보다, 선생의 말과 생각과 열정을 흡입 내면화하여, 곧바로 선생처럼 꿈해석과 예술작품 분석을 해낸 것이다. 


세상모르는 젊은이가, 국내 정상급 소수 정신분석가들만 지닌 꿈해석 원리를 숙지해, 예술작품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을 해내는 장면은, 일종의 영화 장면과 같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비급을 습득했는지 모른 채, 신기한 게임을 하듯 의미 있는 공부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으려 애쓰며, 자신 꿈의 무의식적 의미를 열심히 해석해냈던 것이다. 

'꿈해석 클래스'는 정신분석가가 지니는 정신의 심연 탐구를 작동시킬 ‘보물 무기’를 보통사람의 손에 쥐어주는 일종의 비현실 시공간이다. 중요한 점은, 꿈 분석가는 그 무기의 가치를 온전히 인식하여 현실에서 충분히 활용한다는 점이고, 일반인은 자신이 지닌 무기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잘 모른 채  그 활용법에 둔감하다는 점이다. 


꿈해석은 꿈, 신화, 작품, 증상의 숨은 의미를 드러내고, 개인과 인류 무의식의 내용과 작동원리를 깨달아 주체가 대처하는데  ‘메두사와 대결하는 페르세우스의 비밀무기’ 기능을 한다. 이런 굉장한 사실을  감지해 그 무기를 혼신을 기울여 전달받으려드는  나의 신세대 후계자는,  언제가 되어야 눈 앞에 나타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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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