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 원장의 프로이드 칼럼

                               2004 ~ 2023년 사이 글 

이창재 원장의

정신분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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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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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지혜 능력은 그가 어떤 (부모와) 선생을 만났는가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된다.”


성품이 따스한 인문학자 M이 말한다.

“학부논문을 떠올리면 다정히 대해주시던 G 선생님이 생각나요. 그 분에게 배울 때는 내 안에서 학문 열정이 대단 했었어요.

그런데 Y 선생에게 지도받은 박사논문과 연관해서는 이상하게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 당시 골치아파하던 논문 주제에 대해선  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혼돈 상태에요.”


위 말을 듣는 순간, 심연에서 스르르 깊은 공명과 직관이 솟아오른다. 

“어떤 영혼의 선생을 만났는가가, 학자로서의 성공 실패에 이토록 중요 하구나~”


M은 말과 행동이 일관되어,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운이 좋은 인물이다. 

그런데 M의 지도교수 Y를 떠올리면, 겉은 고상한데 뒷 여운이 늘 먹먹하다. 

Y와 연관된 나의 기억 저장소에도 그에게 도움 받았다는 흔적이 없다. 그에게 들었던 수업 주제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멍한 상태다.

“차라리 그 주제를 독학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종종 솟는다.


Y와 연관된 중요 사실은, 그의 수업을 듣거나  깊은 대화를 나누려 하면, 

고상하고 현란한 말들이 들린 얼마 후 영혼이 '멍'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묘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삶에 영향 미치는 세상요소들을 두루 객관적으로 이해 못한 채 부분지각하며 왜곡하는 ‘편집적-분열적 사고’의 원인을 

규명한 Klein이 심연에서 솟아나 전한다.  

“그것은 극복되지 못한 시기심 때문이야 ~”  (시기심이란 사랑받지 못한 분노로 인해 '좋음을 파괴'하는 마음이다.)


영유아기에 엄마의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해 무의식에 시기심이 가득 찬 아이는 성장 후에, 타인이 좋음을 지녀 잘 사는 꼴을 못견뎌한다.  그래서 내부에서 역동하는 부정적 기운(어릴 때 상처입어 손상된 자아요소, 소화하지 못한 충격, 콤플렉스)을 관계하는 대상에게 그의 무의식이 쓱 배설한다. 그 결과 자신의 정신은 잠시 청량감을 유지하게 되고, 타인의 정신은 좋은 아이디어들과 사고기능이 파괴되고 마비된 바보 상태가 된다. 


고상한 학술 언어를 표출하는 Y와 접촉하는 순간, 학자의 에너지를 흡수하려고 열린 마음으로 접촉한 신세대 예비학자들의 정신은 (Y가 모호하게 소화해 마음 밖으로 배설해낸) ‘영혼 없는 단어’들로 채워져 (Y처럼) 멍한 상태로 변질된다. 

복잡한 인생 문제를 곱씹어 소화해내 신묘하게 풀어내는 ‘인문학자의 심오한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고, 강의자의 둔감한 정신기능에 동화되어, 텍스트를 '전체적으로 종합'해내지 못한다. 결국은 텍스트에 대한 부분지각만을 전하는 언어들과, 외국 책에 기록된 언어를 메마르게 번역한 사전적 의미로만 대면하게 된다.

 “나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힘들게 소화한 양분을 결코 타인을 위해 타인에게 베풀어줄 수 없어 ~ 너희들은 내 배설물을 감사히 받아먹어야 해 ~ ” 

 

무의식의 시기심으로 인해 타인에게 자신의 좋음을 주고픈 욕망이 발현되지 못하고, 타인의 좋음과 자기 내부의 좋음이 파괴되고, 파괴욕동에 의해 자아기능의 상당부분이 손상ㆍ마비되면 어찌되는가?

‘수많은 이질적 요소들이 압축된 인생의 문제’를 인문학의 눈으로 종합해서 풀어낼 수 없다.  


 우월한 지혜에너지를 타인에게 전수해야 하는 인문학 선생의 직분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무능감과 콤플렉스들이 내면에 가득차면 어찌되는가? 그가 소화해내지 못한 정신내용물이 수업 시공간에서 밖으로 배설되는 순간, 그것에 접촉된 타자의 정신도 그와 유사 상태로 전염ㆍ변질된다. 

이런 대상을 (삶을 안내하는 중요 동일시 모델인) 교수/학생 관계로 만나는 순간, 그의 그 상태가 마치 학자의 모델인양 내면화된다. 그로인해 미래에 훌륭한 학자 되기를 꿈꾸던 예비학자(수강생)들의 정신은 (원인도 모른 채) 성장이 멈추거나 퇴보하게 된다. 

“이제 관념으로만 살게 하는 철학에 흥미를 잃었어요. 머리도 멍 하구요. 그냥 자유롭게 원 없이 놀아보고 싶어요”


‘진정한 인문학자’는 학생들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가?

그는 뭔가에 막혀서 낑낑대는 사람들의 무거운 문제들에 자신의 왕성한 정신에너지를 투여하여, 막힌 것을 풀어내게 도와준다.  내면을 마비시키는 타인의 복잡한 감정과 사고 덩어리를, 대신 자신의 영혼에 담아내어 적절히 소화시켜 상대방이 감당할 수 있는 곱씹은 자료로 되돌려준다. 그런 ‘선생–학생 관계’‧ (영혼의 진액을 쏟아) 막힘을 뚫어내게 도움 주는 지적 소통 모델을 불과 몇 번만 경험해도, 학습자의 자아기능‧경험영역․앎에의 욕구는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자신이 무심결에 동일시해 내면화한 선생과 어느덧 동등한 정신능력을 소유하여 활용하는 비범한 존재로 변형된다. 


[세상과의 접촉을 매개하는 부모의 세상 보는 눈이 좁고 경직되거나, 부모가 자식의 자발적 자기표현에 대해 '자기중심적-편집적-부정적 반응 태도'를 취할 경우, 자식의 정신성은 부모의 좁은 경험영역에 갇히거나, 주어진 현실에서 감당해내지 못한 무엇에 막혀 더이상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 상태로 평생을 그렁그렁 살아가게 될 그 사람들에게,  경험영역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 도약시키는 영감을 주고,  보통사람이 풀지 못해온 오래된 인생 문제들을 당당히 대면하여 비범하게 풀어내는 정신 능력을 고양시키는 점에서, 진정한 인문학 선생의 기능은 정신분석가의 기능과 유사하다. ]


 M은 타인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아픔과 불안을 담아주고 덜어주어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인격자다.  좋음을 조건 없이 베풀어주던 부모, 형제, 배우자 체험에서 나온 긍정 에너지를 자신이 관계하는 주위 대상들에게 꾸밈없이 나누어주는 모델이다. 그와 가까이 관계하던 시절엔  염려하던 현실문제가 스르르 해결되고 영혼에 안정감이 그득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긍정적 베품의 소유자 M 자신은 박사과정에서 Y 교수를 만난 후로, 사고력과 학문 열정이 둔화되어 학문 꽃을 피우던 정신기능과 활동이 모호해졌다. 

'무의식'을 주목하지 않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은 (인문학자조차) 자기 정신이 그리된 원인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상해요. 과거에 정말 우수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박사과정 들어와 (Y를 지도교수 삼아) 논문 쓸 때부터 머리가 멍해졌어요.... 학문에 대한 자부심도 관심도 사라 졌어요”


소중한 학문열정과 명민했던 자아기능이 어떤 이유로 어느 때부터 침체되어 버렸고, 그것을 벗어나려면 어떤 ‘통과의례 길’을 가야 하는 것인지 모른 채, 명민하던 학자 M의 영혼이 그냥 그렇게 저물어 간다. 


정신분석가는 삶을 방해하는 중요한 '무의식의 진실'을 포착할지라도, 현실 관계를 맺고 있는 그 대상에게 그것을 알려주

지 않는다.  '무의식의 메시지' 전달은 일상의 소중한 인간관계를 종종 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무척 소중한 인연의 만남에서조차

누군가를 구원해줄 '무의식의 진실'은 종종 어둠에 묻혀있다.

.......

.......

“ 명민한 당신을 멍청하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그대 선생이야 ”

“ 뭐가 어쩟다구 ? 알 수 없는 소리 하는 참 이상한 사람이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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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