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부터 인격의 발달이 멎은 것 같아요.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아이 때와 지금이 변한 게 없어요.
늘 같은 삶이 반복 되요. 왜 그런 건가요?”
K는 사회생활을 나름 열심히 해온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전문직 지식인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정신의 성숙감이 왜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여러 요소에 기인할 수 있다. 그 여러 요인 중 하나는 과거 어느 시점부터 그의 세상 지각들이 특정 경험 영역(前
반성적 경험 구조, 틀, 관점)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사람 다수는 각자 자신의 특정 경험 영역 안에 갇혀 있다. 그/녀
는 사회 • 소속 집단 • 타인(중요 대상)이 요구하는 ‘유사한 그것’들에 정신과 몸을 집중하며 살아가야 한다.
특정 사회 환경과 직업이 요구하는 특정 경험 영역에 정신과 몸이 갇히게 되면, 나중에 생활환경이 바뀌어도 기존 경험구
조의 한계를 벗어나는 새로운 체험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 인간은 어찌 되는가?
그의 지각과 감각기관은 그 영역 안의 자극들에만 반응하고 작동될 뿐이다. 그 영역 밖의 자극들에 대해선 무감각하고 반
응 못하는 무능력자가 되어, 정신의 균형있는 성장이 어렵게 된다.
그가 전문지식을 지닌 박사, 의사, 법률가, 세상 정보를 두루 접하는 언론계 방송인일 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외적으로 이
러저런 많은 경험자료들을 접했을지라도, 그의 정신은 실상 자신에게 익숙한 특정 자극들에만 반응할 뿐이다.
다문화 사회이자 정보화 문화에 접어든 오늘날, 개개인은 다차원의 자극들과 다양한 질감의 에너지와 다중 의미들에 에
워싸여 지낸다. 여러 곳에서 '나'를 향해 발산되는 원초적 또는 상징적 신호들. 그 다중 존재들의 실체를 적절히 이해하
고 수용하여 일련의 고뇌과정을 거쳐 주체적으로 소화해내지 못하면, 그 개인은 어찌되는가?
기존에 형성된 정신상태(특정 관점-욕동-방어구조)가 자동 반복되고, 정신의 새로운 확장(발달)이 일어나지 않아, 늘 유
사한 경험지각만 반복하게 된다.
“나 기업가야. 대학 교수야, 법률가야, 의사야, 방송인이야, 정치가야, 연예인이야, 운동선수야.....”
새로운 지각, 신선한 기분, 뜻밖의 감동을 좀처럼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태로 언제까지 얼마나 더 계속 살아야 하나 ~"
"반복되는 일상이 안전하지만, 지루하고, 답답하고, 그냥 멍해요 ~"
대다수 사람들은 특정 직업에서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삶의 대부분 에너지를 사용한다.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변화를 일으킬 새로운 대상과 에너지의 유입을 원치 않는 자동 방어구조에 갇혀, 겉으로는
열린 마음을 지녔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새로움을 수용할 정신적 공간을 갖지 못한 인간들이 꽤 많다.
열린 마음을 가르친다고 알려진 대학이나 종교계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집단구성원들이 바라고 필요로 하는 바를 정확히 감지해 만족시켜야 하는 지도자 위치에 있는 분일수록, 자신에게 기대
된 사회와 집단의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데 정신에너지를 계속 쏟아야 하는 부담을 지닌다. 그로인해 집단의 요구를 벗
어나는 새로운 관점과 경험영역을 수용하여 정신의 확장을 꾀하기가 현실에선 좀처럼 쉽지 않다.
"뭐하며 살았어요?"
"기업주가 내게 바라는 바를 채워주려 일하고 돈 벌면서 삼 십 여년 살았어요"
"무슨 낙으로 사셨나요?"
"낙이요? 돈 모으고, 돈 쓰고 힘 자랑도하고 술 마시고 섹스 하고..."
"그동안 새로운 체험 같은 건 해보신 적 없었나요?"
"새로움이요? 글쎄요..."
오늘날의 한국인은 청년이건 중장년이건 ‘새로운 경험’을 해낼 수 있는 정신능력과 환경 조건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사이버 관계들에 익숙해져가는 오늘날엔, 자신과 다른 행동을 (시도)하는 타자를 발견하는 순간, 사이버 공간에 다양한
반응들이 생겨난다.
나와 '다름'을 새로움의 가치로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무의식에 해소 못한 분노와 시기심이 가득
찬 사람과 안전 불안에 시달려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다르다. 그들은 상식을 벗어나는 말 • 생각 •
행동을 하는 타자에 대해 마치 큰 결함을 지닌 대상인 양 ‘도덕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비난 평가해, 희생양을 만드는
데서 낙을 찾곤 한다.
21세기 한국의 현실과 인터넷에 등장하는 대다수 대상들은 반성적 사유 ․ 통합적 사유가 아닌 이분법적(편집적) 사고로
무장된 극좌-극우로 분열되어 있다. '진실을 왜곡없이 보도하는 사명'을 지녔다고 알려진 언론조차 대립되는 생각들을
통합하는 능력을 상실한 극좌-극우로 분열된 상태다.
이런 환경에서 지내는 오늘날의 한국인은 자신의 이상적인 정신모델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과시적인 보여주기 경쟁 문화'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상품가치로 단순화시키는 자본주의 문화의 위력에서 벗어나는 경
험을, 시도하거나 체험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한 후 지난 30년간 아내와 자식과 직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자식도, 배우자도 직장도 내가 원하는 데로 되지 않더군요. 가족 보살피고 돈 버는 낙으로 살았는데 나이 들어
직장에서 퇴출당하고, 건강도 좋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당황스러워요...”
개개인은 어린 시절에 이미 형성되어진 특정 경험구조를 가지고 이후 삶을 지각-판단하며 살아간다. 그 경험구조는 정
신을 안정화하는 보호막인 동시에, '실재'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지 못하게 제한ㆍ차단하는 작용도 한다.
기존에 형성된 경험구조-경험관점-경험 내용이 바뀌어야 비로소 '변화된 환경'에서 '경험 영역'이 새롭게 확장되어 신선
한 자극과 쾌감과 삶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과거환경에 온힘을 다해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 환경이 요구
하는 특정 양태로 구조화된 경험의 틀을, 개인의 의지로 바꾸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다.
개인 혼자만의 생각이나 노력으론 이미 형성된 정신의 관점과 틀이 결코 수정 변화되지 않는다.
그것을 변형시키려면 존재를 왜곡 없이 지각하는 비범한 지혜와 정신구조를 지닌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특정 양태
로 반복시키는 의식이 알기 힘든 자기무의식과의 대면 작업이 일련의 격동적 과정 속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경험구조와 틀을 확장하는 체험과 그것을 돕는 인물과의 관계는, 인생에서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개개인의 경험구조와 경험영역은 주로 출생 후 유아와 양육자 사이의 관계에 의해 최초 형성된다. 유아가 안 밖의 새로
운 자극들에 흥분을 느껴 온몸으로 자신의 느낌을 표출할 때, 양육자가 그것에 온전히 반응하지 않고 냉담 반응하면,
그 경험자극들과 정신지각은 무가치하고 허용되지 않는 무엇으로 각인되어 경험영역에서 제외된다.
양육자가 유아의 특정 몸짓에만 반응하면, 그 유아의 경험 영역과 경험지각은 그것에만 한정되어 진다.
아이의 경험영역과 前반성적(무의식적) 경험구조는 이런 식으로 양육자(주요 대상)와의 상호 관계 반응 양태에 의해 특
정 양태로 형성되고 한계지어 진다.
대다수 인간은 어린 시절의 부모 관계와 학교와 사회가 요구해온 특정 방식의 삶에 적응하려 애쓰다가 경험영역과 경험
틀이 특정 양태로 제한된다.
그로인해 인생이 늘 좁은 궤도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주부는 주부의 삶을, 의사는 의사의 삶을, 상인은 상인의 삶을, 학자는 학자의 삶을, 종교가는 종교가의 삶을, 군인은 군
인의 삶을, 사업가는 사업가의, 소비자는 소비자의 삶을......각자 살아갈 뿐이다.
“사회에서 남보다 앞서 출세해 보니 남들이 부러워하건만, 정작 내 자신은 사는 기쁨이 손톱만큼도 느껴지질 않아요.
이 상태가 계속되면 무슨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불안해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뭔가를 찾아야할 것 같아요.
어찌해야 기쁨이 오롯이 느껴지는 삶을 살 수 있는 건가요 ~ ”
겉으론 미소 짓는 세련된 중년 얼굴인데 그 배후에서
그 누구와도 기쁨과 아픔을 공감해보지 못해 꽉 막힌
아이의 우울과 신음이 가득 뿜어져 나온다
언제부터 저 상태를 반복해온 것일까? 1년? .. 10년 ...50년
저 뭉친 감정을 풀어내려면 경험구조를 변형시키는 시간이 꽤 필요한데
상담할 시간조차 낼 수 없이 바쁜 고급 직장을 과연 그만두어야 하는가..
각자의 경험영역, 경험구조, 경험 관점(틀)로 자신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려 애
쓰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 누가 더 지혜롭고 가치롭다고 객관판단하기 어려운 각자 인생 길
그러다 직장에서 은퇴해 자유가 주어지면 어찌 되는가?
드디어 사회적 요구들로부터 해방되어
주체적이고 신선한 제3의 경험영역
드넓고 깊은 '지혜의 눈'이 저절로 열리는가?
“아주 오래 전부터 인격의 발달이 멎은 것 같아요.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아이 때와 지금이 변한 게 없어요.
늘 같은 삶이 반복 되요. 왜 그런 건가요?”
K는 사회생활을 나름 열심히 해온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전문직 지식인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정신의 성숙감이 왜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여러 요소에 기인할 수 있다. 그 여러 요인 중 하나는 과거 어느 시점부터 그의 세상 지각들이 특정 경험 영역(前
반성적 경험 구조, 틀, 관점)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사람 다수는 각자 자신의 특정 경험 영역 안에 갇혀 있다. 그/녀
는 사회 • 소속 집단 • 타인(중요 대상)이 요구하는 ‘유사한 그것’들에 정신과 몸을 집중하며 살아가야 한다.
특정 사회 환경과 직업이 요구하는 특정 경험 영역에 정신과 몸이 갇히게 되면, 나중에 생활환경이 바뀌어도 기존 경험구
조의 한계를 벗어나는 새로운 체험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 인간은 어찌 되는가?
그의 지각과 감각기관은 그 영역 안의 자극들에만 반응하고 작동될 뿐이다. 그 영역 밖의 자극들에 대해선 무감각하고 반
응 못하는 무능력자가 되어, 정신의 균형있는 성장이 어렵게 된다.
그가 전문지식을 지닌 박사, 의사, 법률가, 세상 정보를 두루 접하는 언론계 방송인일 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외적으로 이
러저런 많은 경험자료들을 접했을지라도, 그의 정신은 실상 자신에게 익숙한 특정 자극들에만 반응할 뿐이다.
다문화 사회이자 정보화 문화에 접어든 오늘날, 개개인은 다차원의 자극들과 다양한 질감의 에너지와 다중 의미들에 에
워싸여 지낸다. 여러 곳에서 '나'를 향해 발산되는 원초적 또는 상징적 신호들. 그 다중 존재들의 실체를 적절히 이해하
고 수용하여 일련의 고뇌과정을 거쳐 주체적으로 소화해내지 못하면, 그 개인은 어찌되는가?
기존에 형성된 정신상태(특정 관점-욕동-방어구조)가 자동 반복되고, 정신의 새로운 확장(발달)이 일어나지 않아, 늘 유
사한 경험지각만 반복하게 된다.
“나 기업가야. 대학 교수야, 법률가야, 의사야, 방송인이야, 정치가야, 연예인이야, 운동선수야.....”
새로운 지각, 신선한 기분, 뜻밖의 감동을 좀처럼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태로 언제까지 얼마나 더 계속 살아야 하나 ~"
"반복되는 일상이 안전하지만, 지루하고, 답답하고, 그냥 멍해요 ~"
대다수 사람들은 특정 직업에서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삶의 대부분 에너지를 사용한다.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변화를 일으킬 새로운 대상과 에너지의 유입을 원치 않는 자동 방어구조에 갇혀, 겉으로는
열린 마음을 지녔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새로움을 수용할 정신적 공간을 갖지 못한 인간들이 꽤 많다.
열린 마음을 가르친다고 알려진 대학이나 종교계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집단구성원들이 바라고 필요로 하는 바를 정확히 감지해 만족시켜야 하는 지도자 위치에 있는 분일수록, 자신에게 기대
된 사회와 집단의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데 정신에너지를 계속 쏟아야 하는 부담을 지닌다. 그로인해 집단의 요구를 벗
어나는 새로운 관점과 경험영역을 수용하여 정신의 확장을 꾀하기가 현실에선 좀처럼 쉽지 않다.
"뭐하며 살았어요?"
"기업주가 내게 바라는 바를 채워주려 일하고 돈 벌면서 삼 십 여년 살았어요"
"무슨 낙으로 사셨나요?"
"낙이요? 돈 모으고, 돈 쓰고 힘 자랑도하고 술 마시고 섹스 하고..."
"그동안 새로운 체험 같은 건 해보신 적 없었나요?"
"새로움이요? 글쎄요..."
오늘날의 한국인은 청년이건 중장년이건 ‘새로운 경험’을 해낼 수 있는 정신능력과 환경 조건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사이버 관계들에 익숙해져가는 오늘날엔, 자신과 다른 행동을 (시도)하는 타자를 발견하는 순간, 사이버 공간에 다양한
반응들이 생겨난다.
나와 '다름'을 새로움의 가치로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무의식에 해소 못한 분노와 시기심이 가득
찬 사람과 안전 불안에 시달려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다르다. 그들은 상식을 벗어나는 말 • 생각 •
행동을 하는 타자에 대해 마치 큰 결함을 지닌 대상인 양 ‘도덕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비난 평가해, 희생양을 만드는
데서 낙을 찾곤 한다.
21세기 한국의 현실과 인터넷에 등장하는 대다수 대상들은 반성적 사유 ․ 통합적 사유가 아닌 이분법적(편집적) 사고로
무장된 극좌-극우로 분열되어 있다. '진실을 왜곡없이 보도하는 사명'을 지녔다고 알려진 언론조차 대립되는 생각들을
통합하는 능력을 상실한 극좌-극우로 분열된 상태다.
이런 환경에서 지내는 오늘날의 한국인은 자신의 이상적인 정신모델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과시적인 보여주기 경쟁 문화'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상품가치로 단순화시키는 자본주의 문화의 위력에서 벗어나는 경
험을, 시도하거나 체험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한 후 지난 30년간 아내와 자식과 직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자식도, 배우자도 직장도 내가 원하는 데로 되지 않더군요. 가족 보살피고 돈 버는 낙으로 살았는데 나이 들어
직장에서 퇴출당하고, 건강도 좋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당황스러워요...”
개개인은 어린 시절에 이미 형성되어진 특정 경험구조를 가지고 이후 삶을 지각-판단하며 살아간다. 그 경험구조는 정
신을 안정화하는 보호막인 동시에, '실재'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지 못하게 제한ㆍ차단하는 작용도 한다.
기존에 형성된 경험구조-경험관점-경험 내용이 바뀌어야 비로소 '변화된 환경'에서 '경험 영역'이 새롭게 확장되어 신선
한 자극과 쾌감과 삶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과거환경에 온힘을 다해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 환경이 요구
하는 특정 양태로 구조화된 경험의 틀을, 개인의 의지로 바꾸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다.
개인 혼자만의 생각이나 노력으론 이미 형성된 정신의 관점과 틀이 결코 수정 변화되지 않는다.
그것을 변형시키려면 존재를 왜곡 없이 지각하는 비범한 지혜와 정신구조를 지닌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특정 양태
로 반복시키는 의식이 알기 힘든 자기무의식과의 대면 작업이 일련의 격동적 과정 속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경험구조와 틀을 확장하는 체험과 그것을 돕는 인물과의 관계는, 인생에서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개개인의 경험구조와 경험영역은 주로 출생 후 유아와 양육자 사이의 관계에 의해 최초 형성된다. 유아가 안 밖의 새로
운 자극들에 흥분을 느껴 온몸으로 자신의 느낌을 표출할 때, 양육자가 그것에 온전히 반응하지 않고 냉담 반응하면,
그 경험자극들과 정신지각은 무가치하고 허용되지 않는 무엇으로 각인되어 경험영역에서 제외된다.
양육자가 유아의 특정 몸짓에만 반응하면, 그 유아의 경험 영역과 경험지각은 그것에만 한정되어 진다.
아이의 경험영역과 前반성적(무의식적) 경험구조는 이런 식으로 양육자(주요 대상)와의 상호 관계 반응 양태에 의해 특
정 양태로 형성되고 한계지어 진다.
대다수 인간은 어린 시절의 부모 관계와 학교와 사회가 요구해온 특정 방식의 삶에 적응하려 애쓰다가 경험영역과 경험
틀이 특정 양태로 제한된다.
그로인해 인생이 늘 좁은 궤도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주부는 주부의 삶을, 의사는 의사의 삶을, 상인은 상인의 삶을, 학자는 학자의 삶을, 종교가는 종교가의 삶을, 군인은 군
인의 삶을, 사업가는 사업가의, 소비자는 소비자의 삶을......각자 살아갈 뿐이다.
“사회에서 남보다 앞서 출세해 보니 남들이 부러워하건만, 정작 내 자신은 사는 기쁨이 손톱만큼도 느껴지질 않아요.
이 상태가 계속되면 무슨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불안해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뭔가를 찾아야할 것 같아요.
어찌해야 기쁨이 오롯이 느껴지는 삶을 살 수 있는 건가요 ~ ”
겉으론 미소 짓는 세련된 중년 얼굴인데 그 배후에서
그 누구와도 기쁨과 아픔을 공감해보지 못해 꽉 막힌
아이의 우울과 신음이 가득 뿜어져 나온다
언제부터 저 상태를 반복해온 것일까? 1년? .. 10년 ...50년
저 뭉친 감정을 풀어내려면 경험구조를 변형시키는 시간이 꽤 필요한데
상담할 시간조차 낼 수 없이 바쁜 고급 직장을 과연 그만두어야 하는가..
각자의 경험영역, 경험구조, 경험 관점(틀)로 자신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려 애
쓰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 누가 더 지혜롭고 가치롭다고 객관판단하기 어려운 각자 인생 길
그러다 직장에서 은퇴해 자유가 주어지면 어찌 되는가?
드디어 사회적 요구들로부터 해방되어
주체적이고 신선한 제3의 경험영역
드넓고 깊은 '지혜의 눈'이 저절로 열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