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더러 누가 정신분석' 받으라 권하는데, '정신분석'이란 말만 들어도 불편감이 일어나요.
저는 무거운 말들과 표정이 너무 싫어요. '무의식'을 보라고 요구하는 정신분석은 너무 무겁고 어두워요 ~ "
" 즐길 게 도처에 있는 지금 세상에 '무의식'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이미 이상한 상태에 빠진 거 아닌가요? "
위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이따끔씩 접하게 된다. 이런 경우,
" 감추고 싶은 것들이 깊구나. 정신분석과 만날 '인연'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구나.
십년 이십년 후 즈음 깊이 후회하며 허둥지둥 정신분석가를 찾겠구나.." 하는 생각과 장면이 머리에 쓱 스쳐간다.
'정신분석'이나 심리상담을 자발적으로 받으려는 분은 자기 문제를 어느정도 ‘스스로 자각'하고서 내면 결함을
보충-해소하고자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이런 분은 대부분 자신의 반복되는 불편 증상을 외부대상의 탓으로만 돌리는 원시적 ‘투사’작용을 반성하여 상당부분 극복해낸 인격이다.
"예전엔 세상을 원망하고 지냈는데, 언젠가부터 저에게 문제가 깊다는 게 뼈져리게 느껴져요. 더이상 숨기거나 회피하
지 않고 정말 제 문제의 근원을 뿌리까지 해결하고 싶어요 ~"
자기 문제를 외부로 투사해 '남 탓'으로 여기지 않는 자는, 적어도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다.
타인에게 피해주는 걸 민감히 조심하게 되고, 피해주었다는 것에 대해 심한 죄책감에 시달려 자신을 책망한다.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심을 지닌 이런 사람은 비록 여러 불편 증상들에 만성적으로 시달릴지라도 결코 ‘정신 환자’가 아니다.
‘정신의 병’을 지녔다고 명명될 수 있는 '필요조건'은, 자신의 내부문제를 ‘부인’한 채 자기내면의 파괴 환상, 불안, 공격성, 수치감, 시기심 등등 온갖 부정적 요소들을 외부 대상을 향해 가학적으로 반복해서 투사-투사동일시해 피해주는 경우이다. 자신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자동 '부정'하는 이들은, 자각되지 않는 그 문제들로 인해 주위 사람들의 인생을 교묘하게 직간접적으로 파괴한다. 아울러 도덕언어, ‘주지화’, 권위와 권력에 기생-이용하여 목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자기 문제들을 자동 ‘부인’하여 지각 못하는 병리적 방어구조를 지닌다.
내 자신이 절실한 마음으로 정신분석 받던 체험과, 고유 사연을 지닌 내담자들에 대한 정신분석상담 경험을 반추해보면 정신분석을 스스로 선택해 요청하고 일정 기간 정신분석 관계에 몰입했던 내담자들 중에서 진정한 의미의 '정신 환자'란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불편한 증상들에 시달리고 생활이 불안정해지고 무기력한 모습과 파국적 고통을 종종 맞더라도, 오히려
그럴수록...그것은 '두려워 억압했던 무의식의 무엇'과 진실하게 대면해가게 촉구하는 거대한 과업성취를 위한 전주곡이다. 이런 현상들은 자기자신에게 주어진 희망의 미래를 성취하기 위해, 지금의 불안정성을 참아내며 대결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인생 파노라마의 인상깊은 한 장면이다.
‘무의식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경험과 지식을 통해 체득한 정신분석가는, ‘증상’에 시달려온 분들을 대면할 때마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힘’들이 어둠속의 어느 순간부터 정신에 침투해 강력한 흔적을 남겼음을 느낀다. 아울러 그/녀 심연 속의 '그것'에 접속해 긴장스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떤 고유 인격 요소들과 세심한 관계를 맺어갈 때, 자기 삶을 새롭게 개척해가는 내담자를 '정신 환자'로 지각하는 의학적 진단이나 세속적 ‘평가의 눈'이 좀처럼 작동되지 않는다.
그 어느 내담자의 무의식도, 그와의 내면 대화 관계 양태도 결코 의학적 진단 분류 책에 나오는 개념같이 판명하거나 '뻔
하지 않다'. 그 관계가 어찌 전개될 지 명료히 예측하기 어렵다.
불행감을 오랜세월 짊어지고 살아온 그/녀가 ‘행복한 인간’이 되는 것을 어떤 심연의 힘들이 결코 원치 않는지도 모른다.
그는 부모, 가족, 타자의 병리를 우연히 대신 떠맡게된 억울한 희생양일 수도 있다.
"흐흐. 내 눈에 띌 때부터 너는 나와 이 집단의 몹쓸 병들을 모조리 대신 가져가야하는 그런 무엇이었어 ~. 그게 너야 ~"
증상이 주는 고통과 불편감이 그/녀를 한편으론 현실에 부적응하게 만들지만, 다른 편으론 새로운 생존능력을 필사적으로 개발시켜 인류 미래에 크게 기여하는 기인-영웅의 능력을 형성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정신분석가는 혹자가 만성 증상을 지닐지라도, 반복되는 심리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지라도, 증상을 지닌 삶 자체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며 음미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정신분석'을 스스로 선택해 진지하게 수행하는 내담자에게 '정신 환자'라는 정신의학적 명칭은 아무래도 적절치 않다.
위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이따끔씩 접하게 된다. 이런 경우,
" 감추고 싶은 것들이 깊구나. 정신분석과 만날 '인연'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구나.
십년 이십년 후 즈음 깊이 후회하며 허둥지둥 정신분석가를 찾겠구나.." 하는 생각과 장면이 머리에 쓱 스쳐간다.
그 어느 내담자의 무의식도, 그와의 내면 대화 관계 양태도 결코 의학적 진단 분류 책에 나오는 개념같이 판명하거나 '뻔
하지 않다'. 그 관계가 어찌 전개될 지 명료히 예측하기 어렵다.
"흐흐. 내 눈에 띌 때부터 너는 나와 이 집단의 몹쓸 병들을 모조리 대신 가져가야하는 그런 무엇이었어 ~. 그게 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