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 원장의 프로이드 칼럼

                               2004 ~ 2022년 사이 글 

이창재 원장의

정신분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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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화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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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음식을 가득 실은 식당차에서 누가 배식 하는데, 내 앞에서 음식이 동이나 배식이 끝났어요...아, 억울했어요~"   


꿈 속 '식당차, 중단된 배식'은 몽자 삶에 어떤 의미인가?


'상징'은 의식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짙은 흔적들과 집단 생존에 중요하고 특별한 무엇을 담고 있는 기호다. 

 

의식에 기억되는 꿈 장면의 무의식적 상징 의미를  몽자의 연상을 이끌어내 해석해내는 사람과, 그냥 외면하며 지내는 자

의 인생 차이는 무엇인가? 


 자아가 여태까지 이해하지 못해온 내 삶을 암암리에 좌우해온 '그것'의 무의식적 의미를 꿈이미지 상징에 주목해 

발견하여, ‘자신, 인간, 세상’을 특정 양태로만  해석하던 기존 관점을 다중 차원으로 해석하는 인격에겐, ‘실재’가 풍성한 

다차원로 지각-해석된다.


반면에 ‘상징화 기능’이 마비되거나 왜곡되어 있는 사람의 정신은 과거의 어느 상태에 평생 고착된다. 정신의 새로운 발

달이 없이 기존 관점과 생활을 죽을 때까지 반복할 뿐이다.  생물학적 나이를 아무리 먹을 지라도,   그의 정신성은 어이

게도 옛 상태 그대로인 ‘늙은 아이’일 뿐이다.


70세 M : “맛있는 거 내놔 ~. 왜 니들만 잘 지내고 나만 홀대하는 거야 ~

                 너희들 거 내가 다 먹어 버릴거야 ~ 죽을 때까지 다 ~ ”

                 (세상에 없는 엄마 ! 나 너무 힘들어. 엄마처럼 무조건 잘해주는 대상이 왜 이 세상에 더이상 없는 거야 ~)

 

치열한 적자생존 위기감을 지녀왔던 인류 집단의 경우 ‘상징화 기능’의 성숙/미숙함이 사회 구성원이 되어 중요 역할

을 수행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어느정도 인식하고 있었을까? 원시 집단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아이의 정신성을 

상징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성인의 정신성으로 변환시키는 일은 그 집단의 생존과 미래 발전 성패가 걸린 핵심 과제

다. 


본능 욕구의 '즉각적 직접적 만족'(쾌락원칙)을 추구하는 원초 정신을 공동체의 상징적 요구들(‘현실원칙’)에 적응하

는 상징적 의미소통 정신구조로 '전환'시키지 못한 개인은, 집단에서 냉혹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사회에 쓸모없거나 부

적응 상태에 처해 범죄자나 정신장애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일한 예외로 일부 예술가(고호, 세잔....)는 그시대 상징계와의 소통에 적응못해 무시당하는 삶을 살았지만, 주관적으

만 보이던 그의 독특한 '이미지 상징화'가 죽은 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인류 문화에 기여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은 '정신의 상징적 변환' 작용을 방해하거나 촉진하는 핵심 요인들이 무엇인지 세세히 탐구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해냈다.   상징화 능력이 형성되고 발달하는데 핵심 토대는 아이의 불안과 고통을 담아주고 부드럽게 소화해 아이에

게 되돌려주는 엄마의 따스한 돌봄 • 정서 소통과, 아버지의 자상하면서 엄격한 금지 말씀 유/무에 있다.

 

자신의 무의식에서 생성된 상징적 파생물들(증상, 꿈, 작품, 실수..)에 대한 반성능력과 해석능력을 결여한 인간의 존재 

특성은 어떠한가? 그는 '육체는 늙었는데 정신은 옛 상태에 고착된' 기형적 생물체다. 그런 대상을 실상모르고 '윗분'으

로 모시고 살면 그 신세대의 정신성은 어찌 되는가?  

“아버님. 교수님. 회장님. 장관님... 귀한 말씀 전해주세요 ~ 당신의 모든 걸 열심히 흡입할게요.”

 

중요한 사회적 자리를 차지하는 대상은 그와 접촉 관계하는 신세대의 영혼에 ‘무의식적으로 내사(introjection)된다. 

그로인해 (자신 모르게 겉만 화려한) 대상의 병리성에 전염되어 상징화 능력, 반성적 사유능력, 주체성이 마비되는 부작

용을 피하기 어렵다.

 

중요 위치에 자리한 대상(부모, 제주, 선생, 권위자..)의 속에 숨은 병리성에 무분별하게 접촉하는 자, 성격장애가 심한 

leader와 병리적으로 구조화된 집단에 속해 생활하는 개개인은, 그 대상의 병리성과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병리구조의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집단원 G :  “제가 이상한 건가요? 그냥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진실을 꼭 애써 알아야 하는 건가요. 모르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요? ”

 

상징계 속에 살지만 상징화 기능이 미성숙하거나 좁게 편집적으로 작동되는 사람은, 주관적 심리세계에 갇혀, 외부대상

과 진지하게 소통하는 ‘상징적 대화’를 할 수 없다. 그는 외부 대상과 ‘부분적으로만 관계하고, 편집적으로만 소통’할 뿐

다.

“내 이론과 말씀이 진리인데, 왜 내 말에 호응해주지 않는 거야. 이 나쁜 세상 놈들아 ~”

 

상징화 기능이 부분적으로만 작동하는 인격은, 타인에게 진정어린 편지 글을 쓸 수 없고, 타인이 편지를 보내면 그것에 

온전히 응답할 수 없다. 그는 일방적으로 늘 같은 자기 말만 반복해서 배설해낼 뿐이다.

“내 말이 다 맞는데 ~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 ~ ”

 

상징화 능력이 결여되거나 미약하거나 편집적으로 왜곡되 있는 사람은 대상을 향해 좀처럼 ‘공감적 자기표현’을 할 수 없

다.  가령, 누군가와 교류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지라도, 그에게 어떻게 어떤 말을 걸어야 좋은 것인지 통합된 지각을 

지닐 수 없어, 관계 맺음을 계속 보류한다. 그는 단지 원초 언어나 추상적 말을 뱉을 수 있을 뿐이다.

 

A : “너 내 편 맞어? 너 나 좋아하는 거 맞어? 당신 내가 믿는 C 종교 신자 맞어 ? ”

B : “인생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은 거 한 마디 해보게.”

C : “아. 불편하고 답답하고 어려워요. 소통되는 느낌이 하나도 않 느껴져요 ~ .....(침묵)”

 

상징화 기능이 왜곡되거나 결여된 이들의 정신은 어린 시절 가족 관계에서 내사한 양육자-피양육자 관계 코드만 익숙할 

뿐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상호 주체적 상호작용'(intersubjective interaction) 관계를 온전히 펼치지 못

한다. 그냥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주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척만 할 뿐이다. 누군가가 그의 기분을 애써 맞추어줄 때만 

잠시 기분 좋아할 뿐, ‘진정한 상호 소통’은 평생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 중 ‘잘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자기애인격을 지닌 소수는 특정 영역에서 때로 운이 좋아 ‘중요 자리’를 차지하

기도 한다. 그런데 겉으로 품위 있어 보이는 그에겐 실상 ‘온전한 나’가 없다. ‘나, 주체성’은 자신이 타자(엄마, 아버지, 제

3자..)와 '다른' 존재임을 체감하고, 본능적 관계(쾌락원칙)를 상징적 관계(현실원칙)로 대체하는 자아의 상징화 기능이 

성숙된 이후에야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출세한 순간에 ‘상징화 기능이 왜곡된 정신구조의 결함’이 드러나 홀연 추락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난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단 말이야 ~ . 난 유능하고 훌륭한 분이란 말이야 ~ ”

“나는 나를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심성이 착한 분이야.

제발 내 진심을 알아줘 ~”

 

상징화 기능이 왜곡된 정신구조를 지닌 인격(성격장애자)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부담스러워 '부인'하고 외면해온 

무의식의 X’가 점점 비대해져, (자신의 취약점에 대한) ‘자기반성’을 가장 못 견뎌하며... ‘무의식’이라는 말 자체를 혐오한

다.


"무의식 운운하는 것들은 다 정신이 이상한 재수 없는 놈들이야 ~"

"나는 정신분석-꿈해석 체험 없이도 이미 '인간 내면'을 다 꿰뚫어 깨달은 위대한 분이란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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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