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 원장의 프로이드 칼럼

                               2004 ~ 2022년 사이 글 

이창재 원장의

정신분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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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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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투쟁으로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환경에서 욕구 충족의 만성적 좌절(암울한 현실감)-죽음 공포와 연관된 삶의 간절

한 필요와 소망이, 현실과 전혀 다른 '영원불멸하고 완한 진리 세계와의 합일' 관념을 생성해내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전세계를 정복해 힘 있고 풍요로운 국민인 된 19세기말 유럽인은  과거 인생관-진리 관념에서 벗어나) 세상

과 인생을 하나의 고정된 (진리) 관점이 아닌 다양한 관점들로 이해-해석-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에 대한 기존 전통 해석들이 현재 내 삶과 정신을 고양하는데 부적합하고 불만스러우면 보다 적합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해내 삶에 활력을 일으키는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주체적으로 창조해낼 수 있어야 한다. 

현존하는 여러 의미와 가치들 중 '지금 나' 상태에 힘을 주는 의미를 스스로 생성하고 선택해 실천해가는 그 삶의 스타일 

자체가, 미래 인간(다중 관점으로 삶을 다채롭게 해석하며 유희하는 '초인')에게 기대해볼 만한 위대함이다.  "(니체)

......................


형이상학적 ‘진리’ 관념이 서양인의 정신을 만성적으로 지배하게 된 그 기원과 변천 과정에 대해 계보 탐색을 시도한   

니체의 철학이 부각되면서 유럽 사회에 등장해 유럽인 삶에 2천년간 지대한 영향을 미처 온 '진리' 관념은 새롭게 재해석

된다.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삶의 궁극 목적으로서의 영원한 진리' 관념은, 인류가 불안하고 절망스런 환경에 처했던 

'사회환경 맥락'에서 생성되어, 그것에 범 사회적으로 가치가 집중되고 널리 교육되어 정신에 각인된, 일종의 특정 시대

적 ‘상징 미'이다. 

('의미'와 '실재 자체'는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사용해온 '의미'란 실재의 특정 부분을 부각시켜 독특한 심리

적 환상 효과를 생성해내는 일종의 언어적 '은유'(A = B)와 같은 것이다.  은유는 논리적 진리 차원에선 명백한 오류이다. 

 "(품이 드넓으신) 어머니는 바다이다" "(지엄하신) 아버지는 (드높은) 하늘이다." 

"(생명의 근원이신) 신은 (만물에 생명에너지를 끝없이 선사하시는 영원불멸하는) 태양이시다"

따라서 '실재(The Real, X)'의 상태가 바뀌면,  심리적 힘을 주어 가치롭게 지각되던 기존 의미들은 홀연 부적합해지고 

보다 유용하고 효율적인 생존을 꾀하기 위해 새로운 의미들이 출현한다. 

"신은 죽었다", "아버지는 독재자다. 허풍쟁이다. 껍데기다.", 

"(영원한) 진리는 (몽상가의) 꿈이다. 여자다..." , "재벌은 구세주다. 똥이다..." 

 

모든 사회는 구성원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그 사회 속 생존 유지에 기여하는 유익한 '진리' 관념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지난 2천년 서양인을 인도해온 '형이상학적 진리 관념'이 '실재 자체'와 일치하는 것이라는 경험과학적 증거는 좀처럼 발

견되지 않는다.  (차라리 평균수명을 몇 배 연장시켜준 과학적 진리 관점과, 안정된 삶을 가져다준 경제중심적 관념이 생

명을 안전히 보호해주는 든든한 기능을 한다.)  


니체가 보기에 소크라테스 이후로 서양인들이 정신에 간직해온 '영원하고 완전하고 도덕적 선을 지닌 진리' 관념은 '남성

의 욕망을 일으키는 여성의 화장술(환상술)' 과도 같은 무엇이다.  그것은 계속된 전쟁과 폐허 속에 처한 고대 인류의 '죽

음불안을 해소해야 하는 긴박한 필요' 때문에 이천 년 간 각 사회 권위자-교육자에 의해 널리 전파되어, 서양인의 정신속

에 자리 잡아 전통으로 전승된 일종의 환상이다.  그것은 그 시대인의 죽음공포 해소와 정신 안정에 기여하는 '유익한 환

상' 기능을 지녔었기에, 사회적 가치체계의 중심 리에 대다수 사회에서 오랜 세월 존속되고 칭송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시대 환경이 너무도 많이 변했다.  사회 제도의 개선과 의학의 발달에 의해 죽음공포가 상당히 해소된 19세

기 말부터 21세기 현재까지, 과거 시대의 진리 관념은 현대인에게 더이상 만능 치료약 효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영원한 진리'가 실재함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삶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는 현실 부적응자로 전락하고, 정신에

도 여러 부작용이 수반된다.  그래서 인류의 정신 건강을 위해,  현대인의 정신에 활력을 줄 새로운 '인생 관점, 가치, 의미

들'이 생성되어야 한다.


대체 누가 뜻밖의 파노라마가 끝없이 펼쳐지는 이 인생사와 수많은 의미 세계의 주인․주체이고, 누가 수동적 수신자인

가?  국가가 인정하는 권위자들이 국영 매체로 전하는 말씀을 흡수해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최상인가? 

널리 울려 퍼지는 '진리의 말씀'에 부합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수많은 인간들은 과연 존재의 실상을 온전히 자

각하고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해온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부디 저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저 혼자는 그걸 도무지 생각할 수 없어요 ~"

 

굶주림 공포와 끊임없는 전쟁으로 목숨이 짧고 위태롭던 험난한 환경의 인류에게, '소크라테스의 진리'는 보다 고귀한 

저 세상에서의 안식과 구원, 희망적 목표를 제공해, 불안한 삶을 버텨내게 도와준 인류 최고의 치료약이었다. 그러나 아

이러니하게도, 살고 싶은 열정적 욕망을 일으키고 현실과 환상을 다채롭게 향유하는 '여자'(그리스의 본능 감정을 자유

롭게 표출하고 다움을 추구해온 여신상들)와 달리, 유럽인을 이천년간 매혹시킨 '소크라테스의 진리'는 인류의 

본능적 삶의 활력과 치감을 송두리 채 무가치하게 만들어 인류를 심각한 병증에 빠뜨리는 '치명적 유혹'(인류사 최대

의 속임)일 수도 있다. 

 

니체가 살던 19세기 유럽인들은 삶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속박하는 '소크라테스-플라톤-기독교'의 '형이상학적(초자연

적-도덕적) 진리' 관점과, 전세계를 정복해서 얻은 물질적 풍요에 기반해 미적 환상을 능동적으로 향유하는 '예술적 진

리' 관점 사이에서 어떤  삶을 선택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소크라테스에 의해 발현된 '영원한 초자연적 진리'와, 시와 음악과 미의 여신들을 찬양하며 살던 고대 그리스인과 현대 

예술가들에 의해 추구된 '작품을 매개로 현재 순간에서 초현실 세계로 도취'시키는 '미적 진리'의 길 중, 어느 것을 택하

여 현실을 살아갈 것인가? 

 

'거룩한 진리'와 '자유를 추구하는 삶' 사이에서 내면 갈등이 심화되던 과도기 시대에 살던 니체는, 전통 형이상학적 세계

관의 부작용에서 벗어나려면,  의미를 생성해내는 '삶에의 의지' 에너지를 인류에게 '고양'시키는 새로운 진리관이 19세

기 유럽인에게 절실히 필요함을 직관한다.

'하늘에 계신 영원하고 완벽한 절대자에 도달하게 하는 최상의 길'로서의 형이상학적 진리관은 현대인의 욕망충족과 정

건강에 더이상 최상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감각지각적 '사실들에 대한 건조하고 냉정한 인식'으로서의 

학적 사실 관점으로는, 비록 세계를 정복하는 물질적-군사적 힘을 생성해낼 수 있지만, 유럽인의 정신에 품격있고 '풍

성한 활력'을 제공하긴 어렵다고 해석한다. 

 

19세기 유럽인을 신(진리) 중심적 금욕 문화의 본능욕구에 대한 '과잉 억압'에 기인된 일종의 신경증 증상인 무기력

우울, 허무주의 늪에서 구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찬란한 여러 유형의 신들과 더불어 (목숨 건 전쟁에서 승리한 '정

복자'로서 노예들에게 당당히 군림하던 '주인'처럼) 삶을 생생히 향유하며 살았던 고대 그리스인의 활력을 어찌해야 현대

인의 정신에 '연결'시켜줄 수 있는가? 


니체는 하나의 관점 만을 '진리'로 주장해 대는 모든 '~주의(ism)'에는 특정 목적을 사회구성원들에게 강조하고 정신에 

인시켜 통제해야 했던 권력 집단과 그 시대 사회의 긴박한 생존 필요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열악

한 환경에서 벗어난 현대인의 경우  하나의 특정 관점만 진리로 규정해 부각시키는 선입견-독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재’를 러 관점(Perspective)에서 다각도로 음미하는 유연한 눈을 지닐수록 정신 발달과 삶의 향유에 바람직하기 때

문이다. 


가령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조화로운 형식미'를 제공해 정신에 안정감을 주는 아폴론의 지혜와, 형식 없는 도취 상태를 

만끽하는 디오니소스적 광기, 죽음불안이 극심한 환경에선 영원한 진리로부터 위로 받는 소크라테스적 지혜술, 본

능을 자유로이 표현하고 향유하는 그리스 신들의 스타일, '인간의 실상' 을 적나라하게 직시하는 ‘실레노스’의 눈 등등 삶

을 여러 관점에서 상황에 맞게 다채롭게 향유하는 지혜와 힘을 보충할수록 주체적 ‘삶에의 의지’가 고양된다. 

 

삶의 활력과 고양을 위해 미적 환상들을 능동적으로 유희하며 살던 고대 그리스인의 현명한 생존술은, 소크라테스-플라

톤에 기인된 형이상학적 진리관점'과 기독교 금욕주의 문화에 의해 이천 년간 천박하고 사악한 무엇으로 평가절하 되고 

억압되어 왔다. 그런데 니체의 눈은, '그것'이 다행이도 (사회적 억압에 남자보다 덜 영향 받는 본능적 존재인) '여자'에게 

아직 꽤 보존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여자'는 인간 존재의 '곤혹스런 진실'(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 한계를 지니면서도 욕망이 비대해 영생을 꿈꾸기에 불균형

에 처할 수밖에 없는 비극성)을 이미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불안정에서 벗어나고자 '환상'의 

을 적극 활용해, 인간의 태생적 결함을 보충하는 슬기를 지닌 존재의 상징이다.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여자'의 인생 향유술에 너무 무관심하고 무능했기에, 환상들과 사실(fact)들이 교묘히 혼합된 '현

실 세계'에서 온전한 기쁨을 향유할 수 없었다고 비판한다.  

 "소크라테스는 '머리'만 비대한 외골수 ('생각함' 에서 향락을 느끼는 강박신경증 성향이 짙은) 인간이다~!" 

"소크라테스의 유언은 현실 환경이 너무 열악해 본능욕구의 만성적 좌절과 죽음공포에 시달리는 고대인에겐 지극한 위

로를 준다. 그러나 육대륙을 정복한 19세기말 유럽인 일반에겐 더이상 활력을 주지 못한 채 본능욕망에 대한 죄책감과, 

거룩해야만 하는 의무의 감옥에 갇혀 지내게 만드는 반시대적 병리적 관념일 뿐이다~. "  


"진리는 여자다"라는 니체의 상징 경구는 이후 서양 문화에서 그것의 의미가 이해되어 전달되는 그 순간 정신에 각인되

어 있던 전통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뒤흔들고 균열시킨다. 그 결과 무려 이천년 동안 서양사회에서 억압되어온 수많은 

목소리-관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고유 진리성을 주장하며 표출되고 공존하는 21세기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세계관을 

개화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소크라테스와 니체는 각각 당대 사회(이데올로기, 현상계)에 나름 버티며 살다가, 우연히 '실재'(The Real, X, 무의식)

의 심연과 접촉하는 뜻밖의 강렬한 체험을 한 자들이다. 안전하고 아름답게 화장(각색, 환상화)된 현상계(상식세계) 배후

의 '실재 자체'를 환상(방어)없이 접촉하는 그 순간, 인간의 정신은 강렬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로인해 정신 균형이 요동

치고 기존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균열된다. 기존 방어막이 파열된 틈새로 낯선 기운과 기분이 정신에 퍼지는 그 불안한 상

황에서, 대다수 인간은 주관적 망상이나 '제도권의 보호막'으로 황급히 되돌아가 자신을 추스린다.(경직된 방어기제에 갇

힌 존재가 된다.)


이에 비해 소수의 주체적이고 선구적인 인간은, 소크라테스나 니체처럼 자신의 강렬한 체험 내용을 곱씹고 소화하여 주

체적인 언어로 외부세계에 표현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기 자신과 집단의 정신과 삶을 새로운 스타일로 고양시키는 그 

시대의 선구적 정신 모델이 된다. 

 이 선구자들과 더불어 다시 음미해 보자.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소크라테스 : "당신 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단한 힘(신적 이성)이 있으니 그것으로, '진리'가 무엇인지 자부

심 있게 묻고 생각하고 또 묻고 생각해 보세요 ~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 깊은 깨달음이 얻어질 겁니다. "  


  니체 : " '진리'란 상처로 위축된 영혼을 회복시키는데 '잠정적으로 필요한 환상'입니다. 주체가 그것을 잘 사용하면 '대

단한 정신 치료약'이 되지만, 과도하게 잘못 사용하면 '해독이 힘든,  삶을 송두리채 집어삼키는 독'이 됩니다. 

진리는 또한 환상의 보호막 없이 '실재(The Real. 'X')'를 적나라하게 직면할 때 엄습하는 충격적이고 처절한 깨달음입니

다.  '아아. 이것이 삶의 실상이었구나..!' 이 깨달음은 '영혼에 무게감'을 주는 귀한 무엇이지만, 과도하면 감당 못해 미칠 

수도 있으니, 각자의 정신력에 맞게 대면하세요.

그리고

  '진리'는 인류의 생존에 기여하기에 모든 사회에서 존중되어온 중심 의미들 중 하나인데, 때론 그것을 생성해내는 힘의 

주체가 당신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예수처럼 기성 집단의 진리 관념과 다른 진리를 주장하다 위기에 처해도 당당히 신념을 고수할 용기가 있다

면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고 전파하는 길을 가보세요..."  (힘이 없으면 기존 집단에서 경멸 무시당하고 상처입어 폐인이 

되 죽을 것이고, 힘이 있으면 역사에 남는 위대한 초인이 될 것입니다.)


 "(환상의 보호막 없이) 실재(X)의 심연을 너무 깊이 들여다 보다간 당신이 홀연 '그것'에 동화되어 그나마 유지되어 오

던  응집된 정신성이 붕괴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그러나 당신이 그 위험을 감당해낼 수 있는 정신력을 지닌 분이라면, 

신성과 생존을 좌우하는 외부세계의 요구들(그 시대 법, 규범)에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는 주체적 진리 의미를 창조할 

도 있습니다 !"

 

  프로이드 : '의식/무의식'이 분열된 정신을 지닌 인간은 현재 자신의 자아가 감당할 수 있고 불안을 없애주는 것 만을 '진

리'라고 믿고 싶어 하는, 방어기제에 보호받는 동시에 갇혀 사는 존재이다.  이 사실을 냉철히 반추하며 자신의 무의식을 

용기 있게 대면하고 의식화하는 그 만큼만, '실재'를 다채롭게 지각-해석한 후 인생의 의미를 스스로 생성해내는 주체적 

진리 관점에 도달할 수 있다~.

 

라깡 : '진리'란 태어나기 전부터 개인을 에워싸며 정신에 영향을 미치던 거부할 수 없는 상징계의 의미작용에 의해 생성

된 기표다....개개인이 속한 각 시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상징계 구조 배열이 변화하면...개인정신의 외부와 내부에서 작

동되던 기존 '진리'의 의미와 무드와 패러다임도  부지불식간에  변화한다. ‘덩달아’ 나의 욕망과 사고관-세계관도 (무심

결에 쓱) 변화 된다 !

 

" 나는 한민족의 구세주 단군님의 자랑스런 자손이시다.(고조선시대)

~> 나는 부처님의 말씀에서 안식을 얻은 작은 부처다.(고려)

~> 나는 삼라만상의 이치와 인륜을 깨달은 공자님을 숭상하는 선비이시다.(조선)

~> 나는 대일본제국 천황의 영광스런 신민이다.(식민시대)

~> 나는 예수님의 은총과 말씀 안에 사는 기독교인이다.(해방이후)

~> 나는 뭐든지 다 가질 수 있고 창조할 수 있는 재벌이다.(군정 이후)

~ 나는 사회 이념들에 지배당하지 않는 주체성을 지닌 자유인이다.(탈이념시대)

~ 나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무한 정보로 온 인류와 실시간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인이다.(정보화시대)

~..........................."

 

볼 수도 싸울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심연의 무의식 힘들에 태생적으로 얽혀있는 '인간'에게 과연 

 

'진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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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