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 원장의 프로이드 칼럼

                               2004 ~ 2022년 사이 글 

이창재 원장의

정신분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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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사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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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사고’ 대 ‘상징화 사고’ ( concrete thinking  vs  symbolic thinking )

 

21세기 한국인 다수는 진보/보수, 좌파/우파, 부자/빈곤자,...로 갈라져 매우 경직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서로 화합해야 할 남자와 여자,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랑과 헌신을 강조하는 종교인들조차 자신과 다른 의견을 지닌 타

인에 대해 서로 대립하고 불통하는 사고와 행동을 드러내고 있다.  

냉정한 현실계에선 자기 이익을 위해 불의를 수시로 저지르고 이를 교묘히 은폐 변장하며,  현혹하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세뇌시켜 권력과 재물과 명성을 획득하는 자기애 인격들이 마치 성공의 모델인 양 매스컴에 자태를 드러낸다.

이에 비해 늘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이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진지한 영혼들이, 권력 탐욕자들의

암수와 거대 위세에 눌려 처와 불이익을 당하며 시름시름 살아 간다. 


사람은 각자의 실존 위치-사회적 역할(부모/자식, 선생/학생, 고용주/노동자..), 나이, 성별에 따라 세상을 지각하고 대

처하는 서로 다른 욕망과 가치관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다름을 낯선 이질감으로 느껴 불안해 하고 증오하며 배

척-불통-대립하는 인간이 많아지면,  소통이 막혀 인간들 사이에 풍성하고 심오한 인격적 대화가 점점 사라지게 된다.

세상을 적/아군으로 이분법적으로 분열시키고  불편한 자극을 받을 때마다 내부 긴장을 즉시 외부로 투사하는 인간은,

늘 악한 적들에게 공격당하는 박해환상과 박해불안에 시달리며 남 탓-나쁜 환경 탓을 하는 편집증자의 망상적 세계에

갇히게 된다.   육칠십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이런 경직된 사고와 사회적 불통 현상은 어떤 원인

으로 발생하는 것인가?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 사이의 서로 다른 입장과 주장을 적대적 대립으로 지각해 관계를 단절하거나 싸움을 반복하는 

인간은 그 내면에 ‘어떤 종류의 사고 구조'를 지니고 있는가? 

이들과 반대로 나와 타인의 ‘다름’을 자연스런 현상 내지 다양성으로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타인의 입장과 삶을 다중 관점

에서 입체적으로 생각하며,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상호 조화되게 중재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내면에 ‘어떤 종류의 사

고 기능’을 지니고 있는가?  

'겉으론 하나의 육체를 지니고 살다가 늙고 병들어 사라지는 유사한 생명체들인데, 정신성과 내면 세계는 전혀 다른 두 

유형의 간들.  그들이 세상을 지각하고 이해하는 사고 구조는 서로 어떤 본질적 다름을 지니는가?  

 

Klein 학파에서는 성인 ‘인격의 핵’이 출생 후 첫 일년-삼년 영유아기에 형성됨을 유난히 강조한다.  세상을 지각하고 사

람과 관계 하는 사고 관점, 사고 틀, 감정 양태의 핵이 바로 유아 때 형성되어 평생 지속된다는 뜻이다. 

나이가 청년, 중년, 노년이 되어도, 유아 때 형성된 사고 구조에 갇혀 지내는 ‘성인유아’들이 사회 현실에 꽤 많다는 뜻이

도 하다. 심지어 일반인의 삶에 중요 역할을 하며 제법  성숙한 영혼을 지녔을 것으로 상상되는 교육자, 종교가, 정치

가, 법률가, 기업가, 의사, 상담사,... 조차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도 담겨있다. 

“성인 인격의 중심에 자리한 고유 특성의 ‘아기 핵(baby core)’이  그의 삶을 죽을  때까지 평생 좌우한다 ! " 

 

'선진국'에 진입한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현재 삶에도 암암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눈에 보이진 

않는 그 ‘아기 핵’은 주로 어떤 특성을 지니는가?  

클라인 학파는 이 물음에 대해 ‘concrete thinking’을 주목하라고 안내한다.  ‘콘크리트 사고’란 대체 어떤 것인가? 

 

자립적 생존 능력이 전혀 없는 영유아 시기에 엄마의 돌봄이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 처한 영유아는 심한 자기불안으로 정

신신체적 불안정 상태에 처하게 된다.  유아는 고통과 불안을 참아내는 자아 능력이 아직 형성되지 못한 상태이기에 낯설

고 강한 자극을 받으면 곧바로 긴장과 불안을 느끼게 되고, 불편한 그 감정을 양육자 어머니가 알아채려 대신 처리해주

지 않는 경우, 더이상 견딜 수 없어 즉시 외부로 (대소변 배설하듯) 방출해 처리한다.  다행스럽게도 내면의 불편 요소들

을 외부로 배출하게 해주는 원초 방어기제인 투사, 투사동일시가 영유아의 정신에서 활발하게 작동된다. 


그런데 내부의 불편한 무엇을 자신이 소화 못한 채, 외부로 즉시 배출해 처리하는 정신기제가 계속 작동되면, 그 

유아의 정신성은 어찌되는가? 내부의 불안, 긴장, 증오감이 인격의 한 부분으로 분열되어 외부로 계속 투사-투사동일시

되면, 부정적인 그것들로 덧칠해진(내부의 나쁜 오물들로 오염된) 외부세계는 유아에게 어떤 모습과 질감으로 지각되

고 느껴지는가?   오염된 세계. 가까이 접촉하거나 대화하면 위험해지는 나쁜 대상들 ! 


Klein은 투사동일시를 통해 정신 내부(인격)의 일부가 외부 대상에게 배출되어 그대로 옮겨가면, 정신 내적 실재와 외부

현실 사이의 경계 구분이 모호해져 구별되지 않는 ‘상징적 동등시’(symbolic equation : 나의 생각과 실재가 동등하고, 

상징과 상징되는 대상이 동일하게 지각되는) 상태에 처하게 됨을 주목한다.  그런 정신 상태에서는 자신이 '생각'을 통

해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전능감-전능환상-과대망상("난 뭐든지 할 수 있다~, 

이 세계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창조할 수 있다. 내가 곧 신이시다!”) 자기도취 상태에 고착되어 갇히게 된다.  

이 상태가 곧 자신과 다른 특성을 지닌 외부세계의 타인들과 서로 조율하는 대화를 하지 못한 채  유아적 정신세계로 퇴

행해 유아적 콘크리트 사고, 주관적 환상-환각에 갇혀 사는 성인 정신증자가 경험하고 지각하고 고착되어 있는 ‘내면 아

기’ 세계이다. 

 

정신증자나 '안정된 융합 관계'를 갈구하는 경계선인격은 (타인들과 구별되는 주체성 있는 고유한) ‘나’가 없다. 

그 원인은 그가 ‘엄마-유아’가 하나로 융합되 지내는 영유아적 정신성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계속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무엇이 형성되어 자각되려면, 우선적으로 ‘엄마’와 ‘나’가 ‘다른 존재’라는 것이 자각되고 마음에 수용되야 한다. 

그런데 ‘분리불안’이 심한 연약한 자아를 지닌 유아에겐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도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성인유아’ 인격에겐 그 ‘다름’을 인정하여 고유한 "‘너 자신’을 알아가라"는 진실된 인격자의 말이 마치 자신을 비난하고 

공격해 대는 불안한 괴성으로 지각되어 즉시 부정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 마녀의 소리.... 다 없애 버릴거야 ~. 

나는 늘 돌봄 주는 '그 분'의 품 안에서 죽을 때까지 안식을 누리며 머물거야 ~ ” 

 

'성인유아' 인격은 자신을 돌봐주신 그 분(=어머니)이 자신과 분리된 존재임을 인식 못한 채, 자그만 유아의 눈에 보인 어

머니의 거대한 몸-짓 등 ‘감각으로 지각된 그것’을 실재 자체로 간주하는 ‘콘크리트 사고’(1차 사고, 영유아적 사고, 감

각적 사고’)를 하게 된다. 

이 콘크리트 사고는 위태로운 환경에서 힘있는 존재의 돌봄과 보호에 생존을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원시인류 내지 영유아에겐 극심한 불안에 대처하고 생존에 유용한 생존 방식을 반영한다.  콘크리트 사고는 복잡한 생각

을 하지 못하는 원초적 사고 양태이기 때문에, 매우 단순하게 감각으로 보고 느낀 것이 전부인 1차원적 사고이다.  이것

에는 인류가 문명화 과정에서 축적해온 추상적 사유, 상징적 사고, 대상과 세상에 대한 입체적 다중적 이해가 결여되 있

고 정신적 깊이가 전혀 없다.   어떤 세상 경험을 하든 다양한 사람을 만나든 단지 '기분이 좋다/나쁘다, 보기가 좋다/나쁘

다, 내 편이다/적이다,...이런 감각적 지각 표현과 상태가 그의 생각과 느낌인 인생 체험의 전부일 뿐이다.  그가 중년이

든 년이든 그것이 더도 덜도 아닌 그 인격의 전부이다.  더 이상을 기대하면 피곤한 상황이 벌어질 뿐이다. 

"이거면 됐지, 뭘 더 바래~"


  콘크리트 사고를 지녔던 원시 인류는 가령 거대한 불상, 거대한 교회 건물을 보면 '눈에 보이는' 그것의 크기(=힘)에 압

도되어 경외심을 갖게 되고, 그곳의 지도자가 하는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마음을 지녔었다.  그러다 더 거대한 신상을 대

면하게 되면, 그 시각적 크기의 거대함이 곧 힘의 거대함으로 간주되어 그 신을 진정한 구세주로 모시게 된다. 

그런데 '거대한 신상', '거대한 종교 건물'이 오늘날에도 계속 출현하는 것은, 21세기 한국인 상당수가 여전히 '콘크리트 

사고'를 지니고 있음을 반영한다. 


 "사악한 적들보다 더 거대한 힘-능력을 지니신 구원자, 수호신, 그 거대 집단의 지도자님께 보호 받으며 부디 평생 불안 없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 


상징과 그 상징이 지칭하는 '상징 대상' 사이 차이를 인식 못하는 콘크리트 사고자는 종교 경전에 나온 '언어'를 '문자 그

대로의 사전적 의미'로만 이해하고, 그것을 '사실'로 지각하고 수용한다.   경전에 나온 상징들의 다중 의미를 주체적으로 

다각도로 음미하지 못한 채,  순한 양처럼 오직 힘 있는 그 집단 '지도자'가 지도하는 '그 말씀 그대로' 내면에 집어넣어,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며 살아간다.  


 사이비 목회자 A : "너희는 오직 내 말만 믿으면 돼.  그러면 반드시 천국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 

                                 내 말을 거역하는 자는, 그 죄로 인해 영원히 고통 받는 지옥에 추락하게 될 것이야.  "

양심적 종교가 Z : "저는 더 이상 오늘날 제가 소속된 종교 단체가 가장 신뢰해도 좋은 구원처라고 차마 당당히 말할 수                                        없습니다!  각자 스스로 생각해 판단하는 힘을 키우세요. "

 

장사꾼 V :  "내가 광고한 대로 계약만 하면(이 약을 먹으면) 즉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부귀영화를 평생 누리실 수 있게 

                    되십니다." (=포장한 을 그대로 사실로 믿는 순진한 콘크리트 사고 지닌 분들이요.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나의 말씀을 의심 없이 정신에 그대로 집어 넣으세요. 그러면 그 순간부터 너희는 나의 착한 먹이가 될 것이다.)


콘크리트 사고에 고착된 인간은 '유아처럼' 힘 있는 '구원자'와의 만남을 늘 갈망하며, 그 분의 말로 내면의 불안을

덜어내 그날 그날을 산다.  그 분을 가까이서 '눈으로 보고', '음성 말씀'을 듣으며, 눈과 귀의 감각으로 접하는 것으로, 

그 분의 거대한 에너지가 영광스럽게 자신의 몸과 정신에 스며들어 그 분과 하나된 느낌을 받으며 평안을 회복한다. (내사동일시)   

그래서 정신의 불안이 곧바로 신체증상으로 반영되는 유아처럼, (상징적 사고 능력이 전혀 없는) 감각 지각의 좋음/나

쁨에 민감히 영향 받는 콘크리트 사고자들의 정신성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인물은, 그들의 눈에 힘 있게 보이는 이미지 

모습,  소리에 꽤 신경 써야 한다. ("아, 에너지 충만한 그 분의 음성, 아, 품격 높은 그 분의 모습... ")


이런 유아적 사고가 보다 성숙한 사고로 변화되려면 최초 양육자인 엄마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령 유아의 정신과 

신체가  긴장과 불안 상태에 처해 있을 때, 엄마는 ‘관계’ 속에서 유아 상태를 있는 그대로 포착하여 유아의 불안과 걱정

을 음에 담아주고 대신 소화시켜 상징적 의미를 담은 몸짓과 말로 전해준다.

"아, 네가 지금 걱정이 있구나, 그거 네가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엄마가 곧 낳게 해줄게 .. (토닥토닥..)"

 

이렇게 유아의 불안과 걱정을 엄마가 대신 소화해 해소해주게 되면, 유아는 엄마의 그런 모습을 내면에 내사-내사동일

시하게 된다.  그 때 유아에게 비로소 불안과 긴장을 즉각 처리하는 원시 방어작용(투사-투사동일시)과 콘크리트 사고가 

완화된다. 그리고 유아 정신은 대상과 세상을 ‘아군/적’(좋은 엄마/나쁜 엄마)으로 분열 대립시켜 지각하는 편집분열자리

에서, 대상(=엄마)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함께 지각하는 ‘우울자리’로 이동하게 된다. 


이 우울자리에 진입하면서 '전적으로 좋은 엄마'/'전적으로 나쁜 마녀'로 분열되어 별개의 대상으로 지각되던 양육자가 

잘해주다 못해주기도 하는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닌 '같은 엄마'임을 자각하게 되고, 통일성을 지닌 ‘나’에 대한 지각이 생

기고, 엄마와 ‘분리되는 불안 상태’를 한동안 견뎌내며 엄마가 자신과 ‘분리된 존재’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내가 원할 때 종종 내 곁에 있어주지 않는 엄마를 ‘상징’으로 대체해 그 상징을 통해 불안을 해소하거나, 엄마

의 삶을 다면적으로 이해하는 ‘상징적 사고’가 형성되게 된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에 처해 극심한 불안 상태가 되면, 또다시 원시 방어기제가 작동되어, 내면세계와 외부세계가 온전히 

별되지 않는 환상적 사고, 콘크리트 사고가 재활성화되게 된다. 즉, 현실과 대상에 대한 영유아의 부분지각을 마치 그

것이 ‘전체적 대상지각’ 내지 실재 자체라고 착각하는, 상징(생각, 언어)이 곧 실재라고 경계없이 ‘상징적동등시’하는 콘

크리트 사고가 재활성화 되곤 한다.  


클라인학파는 인간이 자립적 생존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는 위태로운 열악한 환경에 처할 때, 내면에서 ‘편집분열 자

리’ 아의 환상-원초방어-콘크리트 사고체계가 자동 작동된다고 본다. 자신의 불안과 긴장을 견디고 참아내며 합리적 

사고와 상징적 현실 이해를 해내기 보다, 불안과 긴장을 즉시 완화시키는 ‘무의식적 환상’(과대망상, 박해망상..)에 도취

된 콘크리트 사고 구조로 퇴행하게 된다. 


성인인격의 근저에 자리 잡은 ‘유아의 핵’에 담긴 무의식적 환상-원시 방어기제-콘크리트 사고는 망각된 그 시절에 형

성되어 습성화 되면 보이지 않는 무의식과 대결하는 '정신분석 체험'을 하지 않는 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콘크리트 사고'로 경직된 주장과 대립을 반복하는 인간들이 종교가-교육자-정치가-언론가 직함을 내세워 좌파우파 양극

단의 한쪽 입장만을 진짜라고 주장해 대는 가짜 뉴스-가짜 진리를 계속 만들어 유포하는 21세기 한국 현실 속에서 '심연 

진실'을 탐구하는 진지한 영혼들은 어떤 힘을 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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