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정신분석'과 연관된 (꿈, 예술작품,  신화, 증상론, 병인론, 치료기법)  논문 및 특강 자료를  세상과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각 자료  독서 후 유익함이 있을 때  감상문 올리면  저자와 심층 대화가 열릴 수 있습니다.

탯줄자르기의 정신분석적 의미

해안.
2022-03-02

 이창재 (프로이드정신분석교육원)

 

목차

1. 머리말 : 탯줄. 탯줄 자르기의 상징성

2. <탯줄코드>의 의의와 한계 : 인체-태생학

3. <탯줄코드> 보충 : 임신-탯줄-탯줄 자르기에 대한 ‘원시적 사고’

4. 탯줄 자르기의 정신분석학적 의미 : 정신성장학

1) 영웅의 이중 탄생 : ‘위대한 인간’의 출현 조건

2) 출생 외상 : 랑크

3) 분기점 : 비온

4) 분리 : 자궁, 젖가슴, 엄마, 상상계 유혹과의 대결

4-1) ‘편집-분열 자리’ 원초 환상에서 벗어나기 : 클라인

4-2) 분리 개별화 : 말러

5) 거세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통과 - 프로이드

6) 통과의례 : 성인화

7) 개성화 과정 : 융

5. 마무리말 : 개인, 민족, 인류의 고양을 위한 ‘정신적 탯줄 자르기’를 위하여

 

[국문초록]

인류의 풍속과 신화에는 생명활동의 기원과 연관된 상징의례와 신화소들이 존재한다. 그것의 의미를 규명하려면 임신-탯줄-탯줄자르기로 구성된 인체태생학 지식과 더불어 정신분석학 지식의 보충이 필요하다.

특히 탯줄자르기 풍속에는 인류의 생존과 ‘정신의 성장’을 위해 주목해야할 메시지들이 담겨있다. 그 메시지는 첫째, 눈에 보이지 않는 자궁 속 태아의 삶과 출산 과정에서 겪는 신생아의 충격 경험이, 이후의 삶에서 정신성의 발달과 퇴행(병리) 양태를 좌우하는 중요 요인임을 주목시킨다. 탯줄자르기는

둘째, 탯줄에 의존하는 자궁 속 태아의 심신 상태로부터 자궁 밖 환경에로 전환되는 ‘분기점’에서 이루어지는 주목해야할 심리 작용을 의미한다.

셋째, 엄마 젖가슴에 집착하는 구강기 ‘편집-분열 자리’의 환상 심리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의미한다.

넷째, 아이의 신체운동력과 자아기능이 성장해감에 따라 엄마에 대한 전적인 의존으로부터 점차 분리 독립해가는 과정의 험난함을 의미한다.

다섯째, 아이를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아이가 외부세계로 나아가는 걸 원지 않는 엄마의 욕망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치열한 투쟁 활동을 의미한다.

여섯째, 태아에게 탯줄이 지닌 생리심리적 가치에 해당하는, 아동의 남근에 대한 ‘거세’를 의미한다. 이 거세공포로 인해 아동은 이성의 부모에 대한 성애적 집착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규범요구를 수용하여 정신성의 비약적 전환과 발달을 이루게 된다.

일곱째, 소년의 정신성에서 사회의 험한 요구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성인의 정신성에로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 체험을 의미한다.

여덟째, 개인 정신에 내재된 ‘인류무의식’의 지혜와 에너지에 접속해 현실의 난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개성화 과정’에서, 자신과 민족 내면의 그림자와 콤플렉스들에 대한 대결을 의미한다.

정신의 성장 원리에 주목하는 정신분석학이 발견해낸 탯줄자르기의 이런 상징 의미들을 의학이 제공하는 인체태생학 정보와 병행하여 숙지하면, 고대 신화와 풍속의례에 담긴 우주와 인류의 기원과 지혜로운 생명보존술에 관한 상징 표현들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해독할 수 있다.

 

[주제어] 인체태생학, 탯줄자르기, 정신분석학적 의미, 정신성장학, 출생외상, 분기점, 분리, 거세, 통과의례, 개성화 과정.

 

 1. 머리말 : 탯줄. 탯줄 자르기의 상징성

 

옛날부터 갓 태어난 생명체에 달린 탯줄은 ‘생명’과 밀접한 무엇으로 감지되었다. 산모의 몸에서 나온 핏덩이 태반에 연결된 신생아의 탯줄은, 새로운 삶을 위해 즉시 잘려야 했다. 그런데 이 탯줄과 탯줄자르기는 고대부터 인류에게 어떻게 이해되었으며, ‘인간’ 존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탯줄코드>의 저자이자 의사인 김영균은 ‘인체의 태생 과정’에 관한 의학의 미시적 관찰 지식을, 우주와 자연생명계와 인류의 출현 기원을 거시적 상징 언어로 표현한 창조신화와 풍속의례들과 연결시킨다. 그는 인체태생학을 제대로 알면, 자연계와 우주적 생명체가 생장하는 원리를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생명의 원리’에 대한 고대 인류의 깨달음이 반영된 창조신화와 풍속의례의 핵심 의미를 규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이 타당한지 판단하기 위해 그의 연구 내용을 더 검토해보자.

김’이 안내하는 현대의학에 의하면 인간은 성관계에서 방출된 수억 개 정자들 중 왕성한 활동력을 지닌 오직 한 개의 정자만이 자궁 속 난자에 도달하여 수정된 후 일련의 세포분화 과정을 거쳐 자궁벽에 태반과 탯줄을 형성한다. 그 후 탯줄을 통해 모체의 양분과 호르몬을 흡수하면서 거머리 형태의 배아가 인간형태의 태아로 성장한다. 그리고 태아를 둘러싼 양막이 터지면 엄마 몸 밖으로 출산되어 탯줄이 잘리게 된다.

김’은 현대의 인체태상학 관점을 소개한 후에, 고대부터 인류는 임신과 출산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1) ‘모태(자궁) 속 태아의 성장 과정’에 대해 이미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2) 그것에 근거하여 인간관과 우주관을 형성했고, 그 내용(탯줄코드)을 신화와 주요 풍속에 상징으로 표현했고 3) 따라서 현대의 우리가 ‘탯줄코드’를 제대로 해독하면, 고대의 신화와 풍속의례에 반영된 ‘인간(생명)의 본질과 우주의 본질’이 해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임신에서 출산까지의 인간상태(‘탯줄코드’)와 연관된 김’의 세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인체태생학에 근거해 인류 풍속의례의 의미를 해석할 경우, 다양한 차원을 내포한 인류를 하나의 특정 관점과 요소에만 초점화하여 규정하는 ‘환원주의 오류’에 빠진다. 그런데 다행스레 그는 자신이 규명하지 못한 탯줄코드의 ‘다른 의미’에 대해 후대 학자의 탐구 몫으로 남겨둔다. 이에 화답하여 필자는 의학과 인체태생학 관점이 보지 못한 탯줄코드의 ‘다른 의미’와 ‘다른 해석 관점’을 소개할 것이다. 김’이 의학 관점에서 ‘인체의 형성과 발달과정’을 주목했다면, 필자는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탯줄코드와 연관된 정신의 형성과 발달과정을 드러낼 것이다. ‘인간’은 신체의 형성 및 발달 과제와 병행하여 정신의 형성과 발달 문제에 늘 걸려있기 때문이다. 김영균과 필자의 관점을 병행하면, 탯줄코드의 인류학ㆍ신화학ㆍ인간학적 의미가 더 풍성히 드러날 것이다. 먼저 김’이 연구한 탯줄코드의 의의와 한계를 살펴보자


2. <탯줄코드>의 의의와 한계 : 인체-태생학


“임신 출산의 생리학적 태생학적 요소가 신화를 포함한 인류 문화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살피는 건 멋진 주제이다. 필자의 연구는 그 일부인 ‘탯줄에만 국한’된다. 후속 작업은 후학의 몫이다.”

 

위 구절에는 의학(신경생리학, 해부학..)의 관점으로 ‘인간’과 인간의 생성물을 이해하려는 전제가 깔려있다. 태생학적 요소는 ‘인간’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여러 중요 요소들 중 하나이다. 인간은 크게 보아,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능요소(nature)와 후천적 양육 경험 과정에서 형성되는 요소(nurture)로 구성된다고 설명되어 왔다. 서로 다른 남자ㆍ여자의 유전자가 결합하는 임신에서부터 9개월 반의 태내 성장과정을 거쳐 ‘아기’로 태어나기까지의 ‘태아기’ 과정은 상당부분, 수억년의 생명체 진화사와 200만년의 인류진화사 흔적을 내포한 인류의 본능에너지와 유전자 코드에 의해 진행된다. 그리고 출생 후에는 양육자와의 양육 관계와 사회문화적 타자 관계에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의해 정신의 발달 양태에 수많은 차이가 발생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태아기’의 태아가 생리적 특성 외에 심리적 특성의 싹을 지닌다는 연구 이론들이 부각되고 있다. 즉 태아기는 선천적 본능 대 후천적 양육의 이분법적 구분을 벗어나서 엄마와 태아 사이에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평생 영향을 미치는 생리-심리적 ‘원-감각경험’들이 이루어지는 제3의 시기로 분류된다.

그런데 김’의 저서에는 ’정신성의 형성ㆍ발달‘과 연관된 학문적 연구와 이해의 흔적이 미미하다. 그로인해 의학의 관점과 틀에 근거한 인체태생학으로부터 정신-신체(생리-심리)적 존재인 ’인간‘에 관한 인류학 자료들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그의 주장은 인간에 관한 ’부분적 사실‘에 근거해 인간 및 우주의 본질을 설명하는 환원주의 오류를 내포한다.

김’의 주장에 담긴 학문적 가치는 인류의 현재 상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현재를 발생시킨 과거의 상태들과 특히 최초 상태(기원)를 상세히 이해해야 한다는 ’발생학‘(genealogy, 기원 탐색학)에 대한 관심과 자료 수집에 있다. 인류가 창조해낸 풍속과 문화에 대한 그의 발생학적 탐구관점과 이해는 먼저 언어의 어원 탐색으로 나타난다.

 

“구약성서 창세기 1장 1절은 ‘레쉬트’로 시작하는데, 이는 ‘처음, 시작, 태초, 출발점, 최초의 것, 처음 익은 열매’의 뜻이다. 이 단어는 ‘머리, 머리털, 꼭대기, 시작, 최상의’ 의미를 지닌 ‘로쉬’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시작’은 ‘머리’라는 뜻과 공존한다.

태초, 즉 시간적인 ‘시작’은 모태자궁으로부터 태어나는 ‘인간의 출생’을 상징한다. 카인이 최초 어머니인 이브의 자궁을 벗어날 때, 제일 처음 ‘머리’가 바깥세상으로 드러남으로써, 인간 역사가 ‘시작’된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이를 (‘레쉬트’에 이어) ‘‘바라’라는 히브리어 단어로 표현하는데, 이는 ‘창조하다’‘자르다, 쪼개다, 나누다’ ‘분리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수메르어로는 ‘타르, 쿠드, 쿠우, 쿠’로 쓰는데, ‘쿠’로 읽을 때에는 ‘자르다’, ‘타르’로 읽을 땐 ‘분리하다, 나누다, 결정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이 ‘타르’에 ‘존재’를 뜻하는 ‘남’을 붙인 ‘남타르’는 ‘운명, 운명을 결정하다’라는 뜻이다. 즉 존재를 분리, 분배한다는 개념의 ‘운명 결정’이 생성된다.“(33-35)

 

김’은 창세신화 속 단어의 뜻들을 조합하고 해석하여, 인생의 시초인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인간의 운명은 이미 (그 핵심이) 결정된다”는 명제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추론과 해석에 어떤 과학적, 논리적 오류가 없는지 여부는, 2장,3장, 4장의 논의 과정에서 점증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창세의 <태초 - 처음 - (시간의) 시작 - (첫 수확) 처음 읽은 열매 – 머리(머리털) - 머리 꼭대기 – 자르다- 나누다(분리)- 운명(운명 결정)>을 아기의 출산 장면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의 음부에서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 ~ 아기가 태어남 ~ 빛을 봄 ~ 탯줄을 자름 ~ 아기가 개체로서 엄마와 분리됨 ~ 첫 수확을 거두는 순간 한 생명의 운명이 시작된다.”

“창조는 ‘자르고 나누는 일’이다. 즉 인간이 태어나 자궁에서 엄마와 연결되어 있던 생명줄을 자르고 나누는 일이다. 탯줄이 절단되어야 비로소 한 개체로서 탄생한다. 탯줄의 절단은 한 인간이 정체성을 갖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33-35)

 

(1) 세계의 기원을 파악하기 위한 토대로, 고대부터 인류는 아기가 모태 자궁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주목해 이해하려 시도했다. 가령 고대 이집트의 창세신화는, 인간의 출생 전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36)

소우주(개별 생명체)와 대우주는 동일 선상에 있으며, 개체의 발생 과정은 곧 우주창조의 재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개체가 임신ㆍ출산되는 태생학을 탐구하면, 세상과 인간의 생성기원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조신화의 본질 의미를 알 수 있다. 가령, 홍수신화에서 물은 양수이고, 홍수는 양수의 파열을, 물과 싸워 승리하는 영웅은 아기의 탄생을 상징한다. (37)

(2) 가령 (수메르의 여신) 이슈타르가 소리 지르자 땅이 쪼개지는데‘ 이는 분만 직전 양막이 파열되는 상황을 상징한다. 또한 수메르의 영웅 길가메시와 숲의 왕 후와와의 싸움에서, 길가메시에 의해 베어진 거대 침엽수는 출생 후 잘라져야 하는 탯줄이다.(38)

 

(1)(2) 구절에서 우주의 현상과 신화의 내용을, 인체태생학과 연결시켜 양자의 같음을 주장하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영역ㆍ현상ㆍ대상 사이에서 어떤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것에 의식을 집중(초점화)하면, 그 ‘심리적 효과’로 전혀 다른 두 현상(대상)이 마치 본질적 같음을 지닌 현상(대상)인 양 지각되는 ‘은유적 동일시’에 해당한다. 그런데 은유적동일시는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내는 시인의 사고방식이지 과학의 논리가 아니다. 논리학의 눈으로 보면, 이는 부분의 유사성을 전체의 동일성으로 부당하게 확장하는 부당한 일반화 오류와, 발생학적 사실과 관점에 근거해 존재일반의 특성을 해석하려는 환원주의 오류를 지닌 추론이다. 김’의 주장이 타당성을 지니려면, “인체태생학을 이해하면, 고대 창조신화의 의미를 규명할 수 있다”는 문장은 “인체태생학을 탐구하면, 고대 신화의 상징 의미들 중 어떤 부분 요소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수정되어야 한다. 신화의 상징의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신화를 생성한 그 민족이 겪은 다양한 차원의 충격과 위기들, 해결되지 못한 만성적 문제, 당대 생활환경, 문화, 심리상태 등을 다중으로 이해해야 한다. 아울러 이를 위해 인류학, 민속학, 신화학, 정치경제학 그리고 정신분석학 등에 대한 다중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김’은 오직 의학 관점 하나로, 신화와 풍속의 본질적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는 무리한 주장을 한다.

가령, 수메르 신화에서 길가메시가 이슈타르 신전이 있는 숲의 ‘거대 침엽수’를 베어낸 것을 김’은 ‘탯줄 자르기 표상’으로 해석한다. 필자의 눈에 그것은 당대 백성들에게 정신적-권력적 권위와 에너지의 표상이던 ‘이슈타르 여신(모계사회제도)’의 상징물을 베어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것은 모계제에서 부계제로 인류의 권력 양태가 변화됨과, ‘어머니의 욕망’에 종속된 삶을 살던 당대인의 집단무의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상징한다. 김’은 ‘탯줄’이라는 용어를 의학-인류학-심리학의 다중 차원을 함께 아우르는 전능한 기표로 분별없이 사용하고 있다.

나무자르기를 굳이 탯줄자르기와 연관시키려면, 거대한 참나무가 아니라, 프레이저가 주목한 참나무에 기생하는 약용(藥用) 식물인 ‘겨우살이’(‘황금가지’)를 자르는 것과 연결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황금빛 겨우살이는 사제왕의 생명에너지를 보관하는 은밀한 대상이며, 그것이 손상되지 않는 한 사제왕의 생명은 영속한다고 믿어졌다. 겨우살이는 사제왕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생명줄이라는 점에서, 탯줄의 기능과 유사성을 지닌다. 그래서 그것이 외부 인물에 의해 잘려지면, 신전과 집단을 수호하던 사제왕의 목숨이 위태해진다고 원시인류가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경우 ‘겨우살이’가 잘림은 사제왕의 죽음 의미보다, 기존 사제왕보다 더 강력한 생명력을 지녀 집단의 침체된 생명력을 갱생시킬 ‘새 영웅의 출현’을 의미한다. 김‘의 인류학 지식이 더 풍부했다면, 그는 고대 신화들에서 인체태생학적 탯줄코드와 다른 발생학적 원천과 차원에서 작동하는 힘들, 욕망들, 의미들을 다중으로 규명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3) “영웅이 투쟁하여 용, 뱀, 괴물의 목을 자르는데, 이는 분만 시 탯줄의 절단을 상징한다.”(101)

위 구절에서 영웅이 괴물과 힘겹게 싸워 거둔 승리의 상징의미가, 분만의 고통과 탯줄자르기로 온전히 설명되는가? 신화는 그 민족의 정신성을 응집시키고 삶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한다. 신화의 이런 다중 기능과 의미를 ‘탯줄자르기’라는 인체태생학적 개념 하나로 다 드러낼 수 있는가? 괴물의 ‘목 자르기’와 신생아의 ‘탯줄 자르기’는 그 맥락과 차원과 의미가 서로 다르다. 이를 이해하려면, 필자가 이 논문에서 소개할 탯줄자르기의 정신적 의미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4) “인간이 개체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탯줄을 자르는 순간, 어머니로부터 분리됨으로써 이루어진다.”(31)

 

위 구절은 ‘개인의 정체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 것인지에 대한 전적인 무지를 담고 있다. 개인 정신의 발달과정을 연구한 발달심리학과 현대정신분석학에 의하면, 개인의 정체성은 일차적으로 생후 6개월부터 3년 사이의 자아 기능의 발달 과정과, 이차적으로는 4세부터 6세 사이의 오이디푸스기 과정과, 3차적으론 청소년기에 상징계의 의미규범들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거치면서 형성된다. 이처럼 인간의 ‘정체성’은 각기 다른 발생학적 원천을 지닌 자아기능들의 통합에 의해 서서히 때로는 불연속적이고 비약적으로 형성된다.

 

(1)~(4)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탯줄코드>에 대한 보충 관점이 필요함을 볼 수 있다.

의학자 김영균이 발달심리학과 정신분석에 관한 지식이 있었다면, 생물학적 탯줄에 덧붙여 정신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동시에 새로운 정신발달에 방해되기도 하는 ‘정신적 탯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을 것이다.

신화 속 영웅과 고대의 성현들은 새로 변화된 환경에 부적합해진 기성사회가 제공해온 ‘양가성을 지닌 탯줄’을 스스로의 힘과 조력자의 도움으로 잘라낸 후, 새로운 인생을 선구적으로 살아낸 모델이다. 탯줄의 정신적 상징의미가 무엇이며, 그것을 잘라서 새로운 세계에로 나아가기 위한 근본 조건이 무엇인지 알려면, 무엇보다 탯줄자르기의 ‘정신 발달적 의미’를 음미하여 소화해내야 한다.

 

 

3. <탯줄코드> 보충 : 임신-탯줄-탯줄자르기에 대한 ‘원시적 사고’

 

원시인류가 지녔던 사고의 특성은 인류학 관점과 정신분석학학 관점으로 숙지해야 명료화된다. 그런데 김’은 고대 인류가 창조한 신화의 의미를 현대의 의학과 인체태상학 관점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다. <탯줄코드>에 기록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필자는 고대 인류가 뚜렷한 의식으로 배아와 태아를 관찰했을 것으로 생각한다.”(62)

기원전 8세기 이전 시기의 서양인들은 만물정령론(animism, 애니미즘)과 주술적 사고를 지녔었다. 따라서 ‘임신’이 남녀의 성관계와 난자 정자의 결합에 기인한다고 인지하지 못했다. 임신은 외부의 어떤 ‘정령’이 여성의 몸에 들어가서 생긴다고 믿었다. 가령 꿈에 특이 대상이 나타나면, 몸에 들어온 외부정령을 상징하는 태몽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아직 이성적 사고관이 출현하기 이전 시기인 ‘신화시대’에, 신체해부 연구와 배아와 태아의 성장과정을 관찰하여, 이를 신화에 반영했을 거라는 김’의 주장은 인류학적 사실로 수용되기 어렵다.

그리고 원시인류가 집단의 생존을 좌우하는 왕의 탯줄을 소중히 보관한 이유는 인체태생학과 무관하다. 그것은 그 탯줄이 적의 주술사나 악령의 손에 넘어갈 경우, 왕을 비롯해 집단 전체가 적의 나쁜 주술과 악령의 나쁜 기운에 조종당하고 전염될 거라는 원시인류의 주술적 사고에 기인한다.

원시인류는 주술적 사고를 지녔는데, 그것은 접촉(인접, 전염) 원리와 유사(모방) 원리로 구성된다. 접촉 원리는 시공간적으로 인접한 대상은, 그것에 깃든 정령의 기운이 서로에게 전염된다(영향을 미친다)는 원리이다. 그래서 적과 아군, 병자와 건강한 자, 죽은 자와 산 자, 이승과 저승은 서로 전염되지 않게 엄격히 ‘단절(자르기)’ 되어야 한다. 탯줄자르기 역시 원시인류에게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인 ‘태내 상태’와 ‘출생 후 상태’를 단절시켜, 이 세상에 빨리 적응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뱃속에선 생명에너지를 공급하던 탯줄이, 출생 후에는 전혀 다른 생존환경인 세상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를 흡수하려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퇴행ㆍ병리성ㆍ죽음의 표상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유사원리는 서로 다른 두 대상은 ‘유사성을 매개로’ 서로 동일시(모방)될 수 있다는 원리이다. 가령 인간이 몸에 늑대의 가죽을 쓰고 늑대의 소리나 몸짓 흉내를 내면, 늑대의 정령에 접속하여 어두운 밤이나 전투상황에서 늑대처럼 용맹스러워질 수 있다.

원시인류는 또한 자연만물에 깃든 정령들은 몸을 떠나 어떤 유사성을 지녔거나 인접(접촉)한 주변 대상의 몸에 옮겨 다닐 수 있다고 믿었다. 가령 탯줄과 뱀은 모양의 유사성을 지니므로, 주술적 사고의 유사원리에 의해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대상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이 유사원리가 바로 탯줄과 탯줄자르기가 고대 인류의 신화와 풍속에서 다양한 양태로 반영되게 된 주요 요인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고대 인류의 주술적 사고원리에 기인된 신화적ㆍ풍속적 반영 현상일 뿐, 그것이 곧 ‘탯줄ㆍ 인체태생학ㆍ탯줄자르기’에 인류의 본질을 해명하는 핵심코드가 담겨있다는 명제의 진리근거가 될 수는 없다.

 

 

4. 탯줄자르기의 정신분석적 의미 : 정신성장학

 

태아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왔지만 출생 후의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불안을 이겨내며 잘라내야만 하는 ‘탯줄’의 정신적 의미는 무엇이며, ‘정신적 탯줄’이란 어떤 것인가? 탯줄자르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정신의 조건은 무엇이며, 방해 요소는 무엇인가?

 

1) 영웅의 이중 탄생 : ‘위대한 인간’의 출현 조건

 

한국신화에서 고구려의 건국영웅 주몽은 아버지가 모호하며(해모수, 금와, 햇빛), 여화의 몸에서 알로 탄생한다. 그 알은 여러 험한 환경들을 버텨낸 후에 알에서 아기주몽이 태어난다. 그리고 바리데기와 석탈해는 서양의 오이디푸스, 페르세우스, 모세 등처럼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아 강과 바다에 버려져 죽을 고비를 넘긴 후, 구조되어 양부모에 의해 키워진다. 즉 부모가 둘 인 셈이다.

그런데 신화 속 주몽이 탯줄자르기가 없는 ‘알’ 탄생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새’는 큰 알로 태어나, 어미가 오랜 기간 정성껏 품에 품은 후, 알 속 새끼가 능동적으로 알을 깨고 세상에로 태어난다. 이런 ‘이중 출생’ 방식에는 어떤 상징의미가 담긴 것일까? 원시인류는 성스러운 하늘을 날며 접촉하는 신령스런 생명체인 새의 출생방식이, 집단의 생명력을 수호하고 고양시킬 귀한 존재인 ‘영웅’의 탄생방식에 더 적합하다 본 것이다. ‘새’와 ‘영웅’은 성스러운 존재라는 유사성을 지니므로, 유사(모방) 원리에 의해 영웅은 탯줄 없는 알 탄생을 했다고 믿은 것이다.

영웅의 출생방식이 이토록 특이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집단의 생명을 위기에서 구원하고 고양시키는 자가 되려면, 그의 출생은 신체의학 차원을 넘어, 정신적 탄생 과정이 필요하다는 어떤 자각의 징표이다. 영웅은 눈에 보이는 몸의 탯줄이 아닌 ‘보이지 않는 정신의 탯줄’에 의해 형성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 못하는 거대 과업을 수행하는 ‘영웅’은, 신체의학 차원을 넘어 특유의 정신적 발달과정에 의해 형성된다.

영웅은 출생 순간부터 부모와 세상에게서 버려지는 엄청난 초기 상처를 지닌다. 그는 정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고향(부모 품)을 떠나는 모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큰 시련을 겪는 위기 순간에 뜻밖의 조력자를 만나 관계하면서 비범한 정신성을 형성한다. 그는 내면에 잠재된 인류의 집단무의식에 접속해 그 에너지를 당대 현실에서 발현시켜 집단의 난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정신성의 모델이다. 즉, 집단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인류의 풍속과 신화의 본질코드를 해명하려면, 인체태생학을 넘어 정신태생학의 영역에 입문해야 한다.

인간의 탯줄자르기는 자궁 속의 수정란이 일련의 생물학적 진화과정을 거쳐 영장류인 인간태아로 발달하기까지의 인체태생학으로부터, 상징적 의미 관계들로 엮어진 인간세계에로 나아가는 모험적 의미를 지닌다. 태아가 인간세계에 적응하는 성인이 되려면, 자궁 속 상태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정신적 기능들‘을 발달시켜야 한다. 이것은 타자의존적인 아기상태에서 집단에 거대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영웅적 정신성에로 성장해가기 위한 ‘심리적 탄생’의 복잡한 과정을 함축한다. 자궁 속 인체태생 과정과 유년기와 그 이후의 정신-신체적 발달 과정은 실존 영역, 관계대상, 욕동 유형, 자아기능, 삶의 질감이 매우 다르다. 태내 상태와 탯줄이 잘려진 이후 상태는 무의식과 의식 관계처럼 서로 다르고 불연속성을 지니는 동시에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프로이드는 이를 이드(본능) 대 (초자아를 포함한) 자아의 관계로 묘사한다. 이드와 자아는 어느 한쪽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상호 대립적 상생관계(상호 대립적 협력관계), 상호 영향관계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탯줄과 탯줄자르기가 어떤 정신적 의미를 지니는지, 그것에 주목했던 주요 정신분석가들의 눈으로 살펴보자.

 

2) 출생 외상 : 랑크 (Otto Rank)

 

자궁 속 양막 안에서 지내다가 양수가 터지고 좁은 질 입구를 통과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자궁 밖 세상에로 나온 후 곧바로 탯줄을 잘리는 과정에서 신생아는 큰 외상을 겪게 된다. 그로인해 아이는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간다는 환상을 지닌다. 이 출생 외상과 자궁회귀 환상은 홋 날에 겪거나 생성되는 그 어떤 상처나 환상보다 인간정신에 훨씬 중요한 기능을 한다.

미성숙한 자아(방어)기능을 지닌 시기에 엄마 뱃속에서 갑자기 ‘분리’되는 사건, 자궁에서 세상에로 출생하는 행위는 인간 정신의 향배를 좌우하는 가장 큰 사건이다. 탯줄이 잘린 아기는 평생에 걸쳐 엄마(모태)와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출생 이후 아이는 계속 불안을 가지는데, “출생 행위가 불안의 첫 번째 경험이며, 불안이라는 정서의 원천이자 모델이다.” 훗날의 모든 불안은 단지 정신이 이 원-외상(Ur-trauma)을 다루는 방식에 불과하다. 모든 불안의 원형인 출생 불안은 엄마와 아기 관계에 기인하므로, 정신의 형성과 발달에 있어 결정적 중요성은 아버지의 역할 보다 어머니 역할에 있다. 개인 정신성의 특성과 미래에 정신질환이 생길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시기는 출생 시기이다.

 

랑크는 ‘출생 과정’이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강도의 외상 경험을 했는가가, 그 개체의 평생에 영향을 미치는 불안의 강도와 유형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출생 외상설은 탯줄과 연결되어 끊임없이 발달해가는 태아의 자궁 속 상태와 탯줄자르기에 인간본질의 핵심 코드가 담겨있다는 김’의 입장과 유사하다. 양자는 모두 출생과 연관된 생존 환경의 급변 상태가 그 이후 인간 행태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블랙박스’ 내지 ‘근본 토대’라고 단순화한다.

 

프로이드의 랑크 비판

정신성의 형성과 불안을 설명하는 랑크의 도식은 너무 단순하다. 그의 주장은 정신성의 형성 과정 및 불안의 다양한 원인들에서 한 측면에만 편집적으로 특권을 부여한다. 아이의 불안반응은 온갖 위험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본능에 의한 것이다. 아이는 출생 경험에만 원인을 한정할 수 없는 여러 유형의 불안을 겪는다. 그리고 정신이 성장하는 각 단계마다 그 단계 특유의 불안이 일어난다. 가령, 출생 외상 뒤에는 (멸절불안과 박해불안) 분리불안(대상 상실불안)이 따르고, 그 뒤에는 대상의 사랑상실 불안, 거세불안, 초자아 불안(죄책감) 등이 나타난다.

위에 언급된 불안들 사이의 관계는, 한 유형의 불안이 다른 모든 유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각 유형은 무의식에 평생 저장되어 언제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모든 불안은 압도적인 자극(과잉자극, 외상, 과잉감정..)을 감당할 수 없다는 무력감, 불편감을 공유하며, 이는 주체 앞에 위험이 있다는 경고 신호이고, 불안의 원인, 위험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탯줄자르기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인 트라우마(trauma)로 체험될 경우 ‘원래상태로의 극단적 회귀욕구인 죽음욕동’이 활성화되고, 불안에 대처하려는 심리 차원과 현실 차원에서 필사적인 ‘방어’가 작동된다. 그런데 랑크의 출생외상설과 인체태생학과 연관된 탯줄자르기 이론으로는, 인간 정신성의 다양한(여러 단계의) 형성 과정에 대한 설명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3) 분기점 : 비온 (W.Bion)

 

출생 이전의 배아(embryo)에게도 초보적 형태의 정신역량을 지닌 원초적 감각의 흔적들(rudiments)이 발생하고 존재한다. 이런 원초지각들은 출생한 이후의 정신활동들에 모종의 영향을 미친다.

태아에서 아기로 ‘출생하는 과정’은 출생 이전의 존재와 출생 이후의 존재 사이의 경계이자 정신성의 중요 ‘분기점’이다. 이 ‘분기점’에서는 결합하는 동시에 해체하는 중요 사건이 일어난다. 분기점은 두 상반되는 것들 사이에 ‘경계를 구성’함으로써, 경계가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성을 토대로, ‘협력적 대립구조’의 모체가 된다. 즉, 이 분기점에 서로 다른 두 세계(내면세계/외부세계) 사이를 차단시키는 동시에 연결시키는 ‘접촉-장벽’(contact-barrier)이 생성된다.

이런 분기점 작용은 성장한 인격 내부의 모든 구획들(정신기관들) 사이에서도 계속 작동된다. 가령 분기점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는 요소들의 통로를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선택적 삼투성’을 지닌, 분리하는 동시에 연결들을 허용하는 ‘접촉-장벽’을 구성한다. 분기점은 인격의 두 영역(원시적 마음/분리된 마음)을 나누는 지대이자 거기서 인격의 두 측면이 만나는 곳이며, 그 만남에서 ‘정신성의 변화를 일으키는’ 정서적 소용돌이가 발생한다. 정신이 변화(성장)하려면, 그리고 정신성의 성장(또는 파국) 기제를 성찰하려면, 분기점에서의 이 강렬한 심리적 작용들에 주목해야 한다.

배아-태아의 자궁 속 경험흔적과 출생과정인 분기점에서의 경험흔적은, ‘사후(事後) 작용’으로 인해, 출생 이후 인간의 정신발달 과정에 무의식적 영향을 미친다.

 

4) 분리 : 자궁, 젖가슴, 엄마, 상상계로 퇴행 유혹과의 대결

 

파란만장한 인간드라마의 원형은 정신이 ‘처음’ 형성 발달해가는 격동적 과도기인 유년기 경험에서 비롯한다. 특히 자아가 미숙하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타자에게 말로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시기에 겪은 강한자극들은, 감당할 수 없어 방어기제에 의해 무의식으로 추방되고, 그로인해 평생 보이지 않는 영향을 받게 된다.

탯줄자르기는 엄마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최초 사건이다. 그것은 또한 아이 때 일어나는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보호자(양육자)로부터 ‘분리’되는 이후 경험들을 압축해서 상징한다. 즉, 생리심리적 분리 체험의 최초흔적, 원형이 되는 것이다. 무릇 ‘최초 흔적’은 이후에 그것과 유사한 경험이 발생할 때, 그것을 끌어들이는 ‘특권적 원형 체험’ 기능을 한다. 유아기의 ‘분리’가 인간에게 정신-신체적으로 민감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엄마 몸에 융합해 있다가 분리되는 출생 후 최초 분리는 구강기의 ‘젖가슴’ 분리이다. 이를 정신분석 용어로 표현하면, 최초 부분대상과의 분리이다. 젖가슴은 아기가 태어난 후 최초로 관계하는 부분적 신체기관인데, 그것이 아기에겐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편집(부분) 지각’ㆍ환상화 된다.

젖가슴과 젖을 먹일 때의 엄마 품은 탯줄자르기로 인한 자궁으로부터의 분리를 보상하는 대상이다. 이 젖가슴과의 분리 과정이 얼마나 덜 파국적으로 이루어지는가가, 개인의 정신발달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4-1) ‘편집-분열 자리’ 원초 환상에서 벗어나기 : 클라인 (M.Klein)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유아의 심리를 탐구한 여성 정신분석가 클라인은,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는 근원적인 두 마음자리를 ‘핀집분열 자리’와 ‘우울 자리’로 명명한다. 그녀는 문제를 지닌 어린애들과의 놀이치료와 정신분석적 소통의 결과, 신생아는 태어날 때부터 안전하지 않은 세상일반으로부터 철수하고 싶어 하는 죽음욕동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신생아의 첫 심리과제는 죽음욕동(자궁 회귀 욕구)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부정적인 외부자극과 죽음욕동을 정신의 특정 영역에로 분열시키고, 세상(엄마)을 감당할 수 있는 양태로 편집(환상화)하고 (부분)지각하는 것이다. 이런 원시적 심리상태를 클라인은 ‘편집분열 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라 칭한다. 인간 정신의 근본 질은 이 주관환상적인 편집분열자리로부터, ‘대상(엄마)’에 대한 배려와 전체지각을 지닌 ‘우울자리’ 정신 상태로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정해진다. 그 정신 발달의 성공 여부는, 아기가 엄마 젖가슴과의 긍정적인 관계체험을 얼마나 했느냐에 달려있다. 좋은 젖가슴 체험이 과도하게 박탈(좌절)되면, 아이는 편집분열 자리에 고착되어, 세상을 ‘전적으로 좋은 대상’(all good object) 대 ‘전적으로 나쁜대상’으로 이분법적으로 분열시켜 (부분적, 편집적으로) 지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쁜 대상’으로부터 박해당하는 불안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되어, 이 박해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힘있어 보이는 외부대상을 ‘전적으로 좋은 대상’으로 환상화하여, 그 대상에게 무반성적으로 매달려 의존하고 복종하는 유아적 인격을 지니게 된다. 이에 비해 좋은 젖가슴 체험을 하면 젖가슴으로부터 분리되는 (젖떼기) 과정이 덜 충격적으로 지각되어, 외부대상(엄마, 세상일반)이 좋음과 나쁨을 두루 지닌 ‘통합된 대상’으로 전체지각 된다. 아울러 자신에게 좋음을 베푼 그 대상이 자신의 공격성으로 인해 상처 입었을 거라는 환상에 고착되어 자신을 책망하고 우울해하며 상대를 회복시켜주려 애쓰는 우울자리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인간 정신의 근본 질은, 혹자가 편집분열자리에 고착된 존재인가 우울자리에로 넘어간 존재인가로 분류된다. 엄마를 상징하는 젖가슴과의 정신적 융합과 분리 체험이 개인 정신성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엄마 젖가슴과의 분리를 파국적으로 체험한 인간은. 구강기 유아(‘편집분열자리’)의 정신성에 고착되어, 인간일반을 대할 때나 세상을 대할 때, 원시적 환상들과 유아의 원초 방어기제(분열, 투사와 내사, 투사적동일시와 내사적동일시, 전능환상, 원시적 이상화와 평가절하 등)에 갇히게 된다. 이로 인해 현실에 대한 온전한 인식활동과 관계 활동에 기초한 정신성의 새로운 발달이 멈추게 된다.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괴물들과 구원자 신들은 편집분열자리에서 유아가 지각하는 원초 환상(‘전적으로 나쁜 엄마상’-‘전적으로 좋은 엄마상’)의 내용을 반영한다. 그리고 괴물들과 대결하는 신화 속 영웅의 대결’은, 탯줄자르기의 상징의미인, 정신의 새로운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편집분열자리의 박해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험난한 심리적 투쟁을 상징한다.

 

탯줄 속의 동맥과 정맥에서 이루어지는 혈액의 신진대사(양분 흡수-배설물 배출) 기능과 연관해 우리는 클라인이 정신분석역사에서 처음 소개한 유아의 원초 방어기제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태의 태반이 엄마 몸이라면, 그 태반에 착 달라붙어 엄마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엄마와 연결(융합)시키는 탯줄은, 유아가 엄마를 향해 작동시키는 ‘내사(introjection), 내사적동일시(introjective-identification)’ 방어에 해당한다. 유아는 또한 정신의 한 부분을 미세분말로 분절시킨 후 ‘투사적동일시(projective-identification)’로 양육자의 신체와 정신에 내쏘고 침투시켜, 자신의 힘든(불안) 상태를 엄마에게 전하고, 엄마의 심신 상태를 알아내어 엄마에게 반응한다.

클라인을 계승한 동시에 발전시킨 비온은, 유아의 투사적동일시에 엄마가 반응하지 않아, 유아가 엄마와 소통하려는 투사적동일시 활동을 포기하게 되면, 유아는 양육자(대상일반)과의 정서적 인지적 소통활동이 마비된 정신성(‘죽은 아이’) 상태가 되며, 이것이 훗날 모든 정신질환(특히 정신분열증)의 발병 요인으로 작동된다. 유아와 엄마 사이의 ‘정신적 탯줄 경험’을 제공하는 투사적동일시ㆍ내사적동일시 활동이 멈추면, 유아의 정신성은 심각한 발달정지 상태에 처한다.

투사적동일시는 엄마와 유아 사이의 친밀한 융합관계(2자관계)를 형성하는 유아기 아이에게 필요한 자아의 원초적 방어활동이다. 그러나 정신이 성장하여 엄마에 대한 전적인 의존관계로부터 다수의 외부대상들과 상징계적 (3자관계) 소통을 하려면 원시적 방어활동들은 ‘언어적 대화’활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즉, 엄마 몸에 달라붙어 기생하는 심리적 탯줄 활동(투사적동일시-내사적동일시)을, ‘언어적 대화’ 활동으로 대체하는 ‘탯줄자르기’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4-2) 분리 개별화 : 말러 (M.Mahler)

 

탯줄자르기의 두 번째 정신적 의미는, 젖가슴 분리를 넘어서 엄마라는 대상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개별화 과정(separation individuation process)에서 발생한다. 유아가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심리적 개체로 자립해가는 과정을 연구한 대표적 발달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는 마가렛 말러이다.

말러에 의하면 아이는 ‘절대적 자폐기~>공생기~>분리 개별화기(엄마로부터 최초 분리 시도기~> 재접근기~> 2차 분리시도기~>개별화기)’를 거치면서 심리적 성장을 이룩한다. 이 각각의 과정에서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체험을 하게 되면, 분리개별화 운동이 도중에 중단되어, 그 결과로 대인관계 일반에 적응하기 힘든 정신구조가 형성된다. 자폐기와 공생기에 고착되면 정신증이 형성되고, 재접근기에 고착되면 엄마(중요 대상)로부터의 ‘분리 문제’로 평생 갈등하는 경계선인격이 형성된다. 경계선 인격은 엄마와 너무 가까워지면 엄마에게 삼켜져 개성을 상실할 것 같은 함입불안에 시달리고, 엄마로부터 멀어지면 버림받아 고립될지 모른다는 유기불안에 시달린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너무 멀어져도 심란하고 너무 가까워지려 해도 불안해지는 ‘대인관계 거리조절’ 문제로 고뇌하게 된다. 생후 3년에 걸쳐 일어나는 이 ‘분리 과정’이 큰 충격없이 진행되면 ‘대상항상성’(object constancy)이 형성되어, 자신이 관계하는 대상이 가까이 있든 멀리 떨어져 있든, 심리적 탯줄작용이 없이도 ‘대상에 대해 안정된 내적표상’을 마음속에 지닌 인격이 된다.

 

클라인과 말러는 엄마와 아기 사이의 융합과 분리 관계에 초점을 둔, 인간 정신의 발달과정을 드러낸다. <탯줄코드>의 저자가 탯줄 자르기의 이런 정신발달사적 의미를 인식했다면, 신화와 통과의례의 의미를 더 풍성히 해석했을 것이다.

그런데 클라인과 말러가 주목한 유아기는 아직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다가 ‘분리’되는 상황에 대해 당황하거나 갈등하는 시기이며, 언어적 사고능력을 온전히 습득하기 이전시기이다. 이 기간을 정신분석에서는 전(前)-오이디푸스기로 칭한다. 오이디푸스 이전시기와 이후 시기는, 언어적 사유 이전 시기와 언어적 사유 이후 시기의 정신성의 차이를 표상한다. 신화 속 영웅들이 괴물과 싸우는 형상의 심리적 의미 역시, 전(前)오이디푸스적 맥락인가 오이디푸스적 맥락인가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탯줄자르기의 세 번째 심리적 위상은 오이디푸스기의 ‘거세’로 상징화된다.

 

5) 거세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통과 – 프로이드 (Freud)


프로이드는 남녀간의 성차이를 지각하는 순간부터, 아이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지각하는 관점과 느낌이 전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격동적인 정신성 변환 시기를 오이디푸스기라 명명한다. 이 시기의 아이는 이성의 부모에게 열정적 사랑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에 집착하려는 아이에게 ‘도덕적 금지 요구’를 하는 ‘아버지의 존재’성이 유독 부각된다. 이때 아버지가 힘과 권위를 지닌 존재로서 엄마와 이성의 부모에 대한 본능욕구에 집착하려드는 아이의 정신성에 ‘경계를 세워’, 아이가 사회규범을 내면화하게 만들지 못하면, 그 아이는 사회적 상징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만성적 문제를 지닌 인격이 된다.

오이디푸스기를 거치면서 아이는 자연히 오이디푸스 욕구에 빠지게 되는데, 동성의 부모를 제거하고, 이성의 부모와 남녀적 애정관계를 독점하려드는 그 욕구는, 거세공포에 의해 포기된다. 이 거세공포로 인해 남녀 아이는 본능적 행위를 금지하는 아버지의 요구와 권위를 수용하여, 엄마의 전능한 욕망세계(상상계)로부터 벗어나 ‘금기’를 지닌 아버지의 언어적 의미세계(상징계)로 진입하게 된다.

엄마에게 애착하며 엄마의 욕망에 융합해 살던 아이를 ‘아버지의 요구’에 적응하는 정신성에로 전환시키려면, 남근을 ‘거세하는 두려운 대상’으로 환상화되는 아버지의 존재와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여러 요인에 의해 ‘거세하는 대상’이 부재한다면, 엄마의 심신에 융합해 사는 유아적 정신에 대한 ‘탯줄자르기’는 실패하게 되며, 그것의 심리적 결과는 치명적이다.

‘거세’는 일차적으로 남녀 성차이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에게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는 생리적 남근 거세 의미부터, 엄마의 욕망을 채워주는 힘을 지닌 ‘상징적 남근’의 거세의미를 함께 내포한다.

남아의 경우, 아버지에 의한 거세공포가 어머니에 대한 심리적 집착(탯줄관계)과 오이디푸스 욕구를 체념하게 만들고, ‘아버지의 요구’인 사회적 규범의 수용에 적응하게 된다.

이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듯 보이지만, 그 과정에 각 가정마다 많은 변수들이 생겨, 아버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엄마로부터의 정신적 분리에 실패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 경우 아이는 외견적인 탯줄자르기에 의해 이 세상에 독립적 개체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엄마에게 심리적으로 융합되어 생리심리적 탯줄관계를 필요로 하는 삶을 영위할 뿐이다. 그는 타자들과의 소통과 경쟁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가는 ‘의미생성적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한다.

신화 속에서 영웅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낯선 세계에로 모험하는 과정에서 기인을 만나 괴상하고 힘든 과제를 부여받고 고생하는 이야기는, 오이디푸스기에 ‘아버지의 요구’가 아이에게 그토록 낯설고 힘들게 지각되었음을 상징한다. ‘거세공포’의 맥락에서 보면, 신화의 주인공이 ‘괴물’들, 괴한들과 벌이는 싸움은 오이디푸스기에 느꼈던 자신을 ‘거세하려드는 공포스런 아버지’ 표상에 대한 심리적 대결과 극복활동을 상징한다. 또한 신화 속 괴물은, 자식을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대상(소유물)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가 아버지의 세계에로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고 방해하는 ‘자기애적 엄마, 유혹하는 엄마, 멍하게 만드는 엄마’(메두사)와의 지극히 힘든 심리적 대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이가 ‘거세’불안을 느꼈음은 이미 인간이 본능만족을 추구하는 동물적 존재에서, 본능을 승화시켜 ‘의미’를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ㆍ의사소통과 의미창조 존재에로 전환되는 일련의 격동적 콤플렉스 과정에 위치함을 상징한다.

 

6) 통과의례 : 성인화

 

프로이드는 인간 정신의 비약적 발달과 구조화가 크게 두 시기에 일어난다고 본다. 하나는 유년기이고, 또 하나는 (청년기를 포함하는 넒은 의미의) 사춘기이다. 인류학자들과 신화학자들은 영웅 신화의 핵심의미가 바로 이 사춘기에 이루어지는 정신성의 변형과정을 일으키는 통과의례와 연관되어 있음을 주목한다.

‘통과의례’란 아직 미성숙한 정신성이 그가 속한 집단에 요구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정신성으로 변환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공적인 상징의례’를 뜻한다. 기존의 정신성이 발달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한다. 보통사람이 성직자, 의술가, 학자, 탁월한 지도자 등이 되려면, 반드시 보통사람으로는 쉽게 통과하기 힘든, 고도의 시험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탯줄자르기’의 고차원적 의미는 탯줄을 제공한 모체와 모체가 속한 그 집단의 번영을 위해, 태어난 개체가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자신도 타인에게 새로운 생명과 탯줄을 제공할 수 있는 부모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집단이 인정하는 당당한 성인ㆍ 부모가 되기 위한 정신적 성숙과정은 사춘기에 겪는 통과의례를 그 개체가 얼마나 무던히 견디어내고 수행하느냐에 달려있다.

프로이드는 성숙한 인간의 심리발달 과제를 아버지의 규범요구를 내면화한 소년이 자아 활동에 의해 유년기의 성욕동과 성환상을 성인의 성욕동에로 ‘통합’해내어 긍정적인 남녀관계를 이루는 것과, 사회적 직업 활동에서 의미 있는 만족을 얻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성생활의 만족과 사회적 직업활동의 만족스런 수행을, 탯줄자르기 이후 인간의 본능욕동(생존욕동과 성욕동)을 적절히 승화시킨 정신성의 발달 징표로 해석한 것이다.

탯줄자르기의 완성태를 지향하는 이런 ‘성인화’ 과정의 정신적 상징 의미는 매우 다중적이다. 고대 인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탯줄에 의존하는 태아~탯줄이 갓 잘진 아기~아이~소년~청년~성인에 이르는 과정은 일련의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함께 지니며, 각 단계의 목표가 다르다. 이를 거시적으로 나타낸 정신분석가가 칼 융이다.

 

7) 개성화 과정 : 융(C.G.Jung)

 

융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인 ‘잠재태~현실태’ 개념을 근본진리로 수용한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실현해야할 목적을 본질로 지닌다. 융은 이 본질을 실현해가는 지향 활동을 개성화 과정, 자기실현 과정으로 명명한다. 개성화 과정은 ‘개인차원의 경험적 자아(ego)를 지닌 인간이, 정신 내부에 태초부터 내재된 인류차원의 ‘자기’(Self, 집단무의식, 인류원형)에 접속하여 그것에 내재된 에너지를 현재의 자아가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씩 소화(자기실현, 개성화)하는 과정이다.

융은 인간의 정신발달을 위해 특히 중요한 것은 부정적 어머니상의 굴레로부터의 탈출로 본다. 이것에 실패하면 정신증에 함입됨을 수많은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신화에 나타나는 ‘괴물, 용, 삼키는 뱀’과 영웅 사이의 필사적 싸움의 상징 의미는 아이의 정신을 좌지우지해 개성화 과정을 방해하는 ‘부정적 엄마상’(부정적 아니마)과의 대결이다.

이것이 성공한 다음에는 부정적 아버지상ㆍ기성사회의 부정적 특정과 대결하는 과업성취 과정이 펼쳐진다. 이 과정을 완수하면 비로소 모든 긍정성과 부정성의 대극을 통합한 인격이 실현된다. 이것은 곧 탯줄자르기(출생)의 의미와 목적이 완성되고, 인간의 원형이 현실에서 실현한 인류의 모델 상태이다.

 

5. 마무리말 : 개인, 민족, 인류의 고양을 위한 ‘정신적 탯줄 자르기’를 위하여

 

지금까지 의학과 인체태생학 관점을 보충하는 차원에서, 탯줄과 탯줄자르기의 정신분석적 의미들을 살펴보았다. ‘탯줄자르기’는 자본주의에 만연되어가는 현대 한국인의 정신성에 신선한 두드림을 가하는 상징이다. 오늘날 한국에는 자식에게 과잉 집착하는 엄마의 심리적 탯줄과 사회의 부정적 요소(결함)에 기인한 경직된 이데올로기의 탯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이 매우 많다. 이들은 자신모르게 엄마의 욕망세계(주관적 상상계)에 갇혀있기 때문에, 사회적 타자들과 상호주체적인 의사소통을 하는데 크고 작은 장애를 짊어진다. 보이지 않는 부정적 탯줄에 감염되어 원인모르게 병적 무드에 빠져, 삶이 끝나는 시점을 향해 목표 없이 떠돌게 된다. 정신분석에선 이들을 정신의 최초 형성ㆍ발달 시기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박탈, 좌절, 상처)를 겪어, 탯줄자르기에 실패한 존재로 해석한다. 인간이 유아기의 ‘엄마-유아’ 관계와 아동기의 아버지 관계, 그리고 사춘기의 사회적 관계에서 심각한 상처를 지닌 경우, 태내 상태로 회귀하려는 극단적 퇴행 욕구 내지 엄마의 몸과 욕망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힘들어하는 ‘탯줄 의존적 정신구조’가 형성된다. 이것이 생명의 가치감을 마비시키고, 행복추구 활동과 정신 발달 욕구의 성취를 방해하는 정신질환의 근원으로 기능한다.

현대는 유아기 상상계로의 퇴행을 자극하는 이미지 광고들이 과잉 생성되어 삶을 에워싸는 시대이다. 즉 탯줄자르기의 고통과 위험을 견뎌내는 모험적인 체험보다, 태내에로 돌아가 편히 휴식하는 환상을 부추기는 시대이다. 세상에 대해 주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탯줄자르기를 권유하는 환경이 아니라, ‘대중문화’에 잘 적응하는 인간상을 조장하는 시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탯줄자르기의 정신적 의미에 대한 음미는 한국인의 현존재 상태를 주체적으로 반추하여 고양시키는 데 중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 문헌>

 

김영균, 김태은 『탯줄코드』, 민속원, 2010.

김영균, 「탯줄코드론」 『탯줄과 생명』 비교민속학회. 2014. 춘계 학술대회집.

나카자와 신이치, 『곰에서 왕으로』, 동아시아,2002.

마가렛 S. 말러, 『유아의 심리적 탄생』(1975) 한국심리치료연구소,1997.

이창재. 「‘의미의 기원에 대한 계보학적 고찰」 『철학』 한국철학회, 47집. 1996 여름.

이창재, 「프로이트의 신경증 원인론 : 외상, 환상, 사후작용」『라깡과 현대정신분석』Vol.6. No.2 Winter 2004.

제임스 프레이저, 『황금가지』, 한겨레출판사, 2003,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1949),민음사, 1999.

줄리언 제인스, 『의식의 기원』(1976) 한길사, 2005.

프로이트, 「쾌락원칙을 넘어서」(1920) 『쾌락원칙을 넘어서』,열린책들,1997

프로이트,「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기 기억」(1910) 『프로이트 예술미학 분석』, 글벗사, 1995.

프로이트,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1905), 열린책들, 1996.

프로이트, 『정신분석강의』(하) 열린책들, 2003.

피터 게이 『프로이트II』(1988) 교양인, 2011.

필리스 타이슨, 『정신분석적 발달이론의 통합』, 산지니, 2013.

C.G.융, 『영웅과 어머니 원형』솔, 2006.

C.G. 융,「무의식에의 접근」 『인간과 상징』 열린책들, 2000.

James S. Grotstein, 『흑암의 빛줄기』,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13,

F. Nietzsche,“on truth and lying in an extra-moral sense”(1873) in Fridrich Nietzsche on Rhetoric and Language, trans.by S.L.Gilman, Oxford Univ.,Press,1989,

M. Klein, "The Psychogenesis of Manic-Depressive States", The slected Melani Klein, edited by Juliet.Mitchell, New York, The Free Press, 1986.

M. Klein. “Note on Some Schizoid Mechanisms”(1946), The slected Melani Klein, edited by Juliet. Mitchell. New York, The Free Press, 1986

S. Kofman, “Baubo:Theological Perversion and Fetishism”, in Nietzsche’s New Seas, .Univ.,of Chicago Press,1988.

  

[Abstract]

 

Psychoanalytic meanings of cutting umbilical cord

 

Lee, Chang-Jae

 

In old human customs and mythology, there exist some symbolic rituals and mythemes related to the origin of life. In order to clarify the meaning of those symbols, we need to pay attention not only to somatic-ecological knowledge which consists of pregnancy, umbilical cord, and cutting umbilical cord, but also to some psycho-analytic knowledge. In customs of cutting umbilical cord, there are some noteworthy messages for survival and psychological growth of human race. The followings are the summary of the messages: 

In the first place, the invisible life of fetus and the shocking experience which it goes throw during its birth are the very important factors which work on the metal growth and regression mode in the life after birth.

Second, cutting umbilical cord reflects the unique ‘mental process’ which appears when the fetus’ environments and mind change, from inside to the outside of its mother’s womb.

 Third, cutting umbilical cord means the fetus is freed from  fantasy in ‘paranoid-schizoid position’, with which it is obsessed with mother’s breast.

 Fourth, cutting umbilical cord means the process of the independence; children become more and more independent on their mothers as their physical ability and ego grow.

 Fifth, cutting umbilical cord also means the intense struggles against mother’s desire which does not want her child to go out to the broad world in order to own her child forever.

 Sixth, cutting umbilical cord for fetus is like the ‘castration’ for a child, because the psychological value of umbilical cord for fetus is just like the one of penis for child. Since this castration fear, children give up the sexual obsession towards their parents and accept the norms of their fathers. This allow them swift psychological growth.

 Seventh, cutting umbilical cord also mean the ‘passafe-ritual’ experience one should go through in order to grow as an adult; Being an adult means one become able to actively deal with many tough demands from the society.

 Eighth, cutting umbilical cord means the confronting one’s complex and shadow which casted one’s and one’s people’s inside. One should go through this process during ‘Individuation Pross’ in order to exploit the wisdom and energy of ‘Group-Unconsciousness’ for solving the conundrum of reality.

 Psycho-analysis pays attention to the principles of mental growth and found those symbolic meanings of cutting umbilical cord. If one observe these symbolic meanings with somatic-ecological information from medical science, one can reach th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meaning of customs and mythology related to the origin of life and the cosmological circulation.

  

[key Words] somatic-ecology, cutting umbilical cord, Psychoanalytic meaning, science of mental growth, trauma og birth, Caesura, reparation, castration, Passage-ritual, Individuation P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