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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분석 : 한국 신화

관리자
2020-08-29


1장. 창세신화 : 한국인의 始原


구석기 인류가 외부에서 한반도로 처음 들어와 작은 부락을 이루어 정착했던 시절, 한민족의 조상인 그분들은 인간과 세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창세신화는 그 민족이 이 땅에 정착하여 집단생활을 처음 시작한 영유아기의 이야기다. 우리 민족의 조상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된 것인가? 이 물음에는 지금의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담겨있다.

한국민족의 시원에 대한 태초의 사고는 다음과 같다.


하늘과 땅이 생길 적에

미륵님이 탄생한즉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미륵님이 하늘 땅 사이를 갈라놓아)

하늘은 가마솥뚜껑처럼 도드라지고

땅의 네 귀에 구리 기둥을 세우고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4세기 삼국시대부터 미륵은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를 구원하는 이상화 대상으로 존재해왔다. 천지가 생성되던 태초부터 미륵이 있었음은, 한국민족이 출현하기 전부터 인류를 보살피는 전능한 보호자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하늘과 땅이 붙어있는 상태는, 세상에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기 이전 상태, 아기가 첫 눈을 뜨기 이전 상태이다. 자궁에서 갓 태어나 불안에 떠는 아기(원시인류)로 하여금, 자궁으로의 회귀(죽음)욕구를 이겨내고 이 세상을 향해 눈을 뜨고 욕망을 갖게 만드는 존재는 누구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안전한 생존환경을 마련해주는 아버지와, 안전한 품을 제공하는 어머니이다. 이것이 한국인의 선조들에겐 인류의 구세주인 미륵으로 형상화된다. 미륵은 땅의 네 귀에 구리기둥을 세워, 자연생명체와 인간이 거주할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 천지를 분리하고 그 사이를 든든한 기둥을 세운 것은, 하늘과 땅이 달라붙으면 자연생명체들의 종말이 올 거라는 원시인의 생각을 반영한다. 닦으면 빛을 발하는 구리는 태양빛과 유사성을 지니므로, 미륵은 태양신의 특성을 내포한다.]


그 때는 해도 둘이요, 달도 둘이요,

달하나 떼어서 북두칠성 남두칠성 마련하고,

해하나 떼어 큰 별을 마련하고,

작은 별은 백성의 직성별을 마련하고,

큰 별은 임금과 대신별로 마련하고


[ 인류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해와 달이 둘임은, 신성한 기운들이 풍성함과 동시에, 아직 하나로 통합된 질서를 지닌 집단이 현실계에 구성되지 않은 혼돈 상태를 의미한다. 창세신화의 중요 신화소 중 하나는 해와 달의 수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해’와 ‘달’이 ‘왕’과 ‘여왕’을 상징하며, 왕과 여왕이 둘이면, 세상에 혼돈이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여분의 해로 인류를 통치할 큰 별을 만들고, 달로 인간에게 유익함을 주는 여러 별들을 창조한다. 인류의 수호신인 미륵이 태초의 상태에 개입하여 세상의 구조를 바꿈에 따라, 세상은 태초 보다 살기 좋은 상태로 변한다.

여분의 해에서 큰 별이 생성되고 큰 별의 기운에서 임금이 생성되는 것은, 만물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본 원시인류에겐 자연스런 생각이다. 힘 있는 정령일수록 이 대상에서 저 대상으로 자유로이 이동하며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의 수를 조절한다는 것은 태양열의 더위와 가뭄을 방지하려는 것이고, 달의 수를 조절한다는 것은 습기(陰)와 연관된 추위와 홍수를 막는다는 의미다. 주술로 자연의 기후를 조절하고자 했던 고대인의 무속의례에선, 태양과 달을 활로 쏘는 (주술)행위가 실연되었다.

별은 어두운 밤에 하늘에서 불변하는 빛을 발산하는 신성한 대상이다. 임금과 백성 모두가 해와 달과 ‘별’에서 유래했음은, 고대 한국인이 인간영혼의 불멸을 믿었거나 소망했다는 징표다.]


옛날 옛시절에 미륵님이

한짝 손에 은쟁반 들고

한짝 손에 금쟁반 들고

하늘에 축사하니

하늘에서 벌레가 떨어져

금쟁반에 다섯이오

은쟁반에 다섯이라

그 벌레 자라나서

금벌레는 사나이 되고

은벌레는 계집으로 마련하고

은벌레 금벌레 자라와서

부부로 마련하여

세상사람 낳았어라


[ 이 신화소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세상의 수호자 미륵이 하늘의 신에게 요청하자 하늘이 반응하여 (하늘과 미륵의 상호작용에 의해) 인간이 태어난다.

‘하늘에서 벌레가 쟁반에 떨어졌다’에서, 쟁반은 '가치 있는 무엇을 담는 용기'라는 점에서 ‘어머니의 몸’을 상징한다. ‘하늘에서’ 떨어졌음은 태생이 신성하다는 뜻이다. 자신의 유래에 대해 호기심 많은 아이가 부모에게 "나는 어디에서 태어났어요?" 물으면, “황새가 물어왔어.”라는 응답이 옛날부터 여러 민족에 있는 것과 유사하다. 새는 하늘을 나는 존재이고, 하늘은 성스러운 곳이기에, 그 답에는 ‘귀한 곳’에서 왔다는 뜻이 담겨있다.

꿈에 '벌레'는 '아이, 근심, 임신‘을 상징한다. 식량이 부족해 끼니 걱정이 심각했던 시대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부모의 생명력을 헌신하고, 부족한 식량을 나누어주어야 하기에, 먹을 것을 달라며 떼쓰는 의존적인 아기가 식량을 축내는 근심덩이 '벌레'로 지각되었을 수 있다. 또는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성충으로 신비롭게 변신하듯, '인간'도 자연계의 일원으로 벌레(수정란)에서 성장해 신비롭게 변신하는 존재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의 보통 벌레와 다른 ’금벌레‘ ’은벌레‘다. 무엇으로 변신하게 될지 궁금한 그 빛나는 벌레가 금은쟁반(어머니 몸)에 떨어진(임신된)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기원을 금쟁반과 은쟁반에 떨어진 벌레로 연결시킨 것은, 금빛 태양과 은빛 달을 연상시킨다. 해는 햇살이 뻗치는 남근의 남성적 특성과, ‘달’은 ‘月經’을 하는 여성과 관련이 깊다.

“두 대상이 가까이 접촉하면 기운이 서로 옮겨 간다”고 믿은 주술적 사고로 인해, 출산할 때 누가 곁에서 "아기를 받아냈는가"가 아기의 미래에 중요 의미를 지닌다. ‘미륵이 두 쟁반에 벌레를 받음’은, 미륵님의 신성한 기운이 인간에게 전해져, 인간이 특별한 힘을 지니게 될 거라는 믿음과 소망이 담겨있다.

"금벌레가 남자가 되고 은벌레는 여자가 되어, 부부로 결합해 세상인류가 생겨났다."는 말은, 생존을 위한 식량 획득과 외부 적과의 싸움으로 매일의 삶이 위태롭던 시대, 수명이 짧고 의식이 미개하며 불안이 그득했던 시대의 인류에겐, 자신이 ‘인간’임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감을 주는 상징이다. “나는 미륵님이 귀한 금쟁반과 은쟁반으로 받아주신 하늘에서 온 금벌레, 은벌레에서 태어난 귀한 존재다!”]


“미륵님이 새앙쥐를 잡아다가 세 차례 무릎 뼈를 때려

물의 근본 불의 근본을 아느냐?

쥐 말이 “알려주면 제게 무슨 공(功)을 주겠습니까?”

미륵님 말이 “천하의 뒤주를 차지하라.” 한즉

쥐 말이 “금정산 들어가서 한쪽은 차돌이요 한쪽은 무쇠인 돌로 툭툭 치면 불이 날 것이요.

소하산 들어가 샘물이 솔솔 나오는 것을 보면 물의 근본을 알 것이요.”


[신령한 미륵이 ‘생쥐'에게 물의 근본, 불의 근본을 물어본다는 건 의식의 논리론 부조리하다. 그러나 '신화적 사고'에서 매우 중요 기능을 하는 대상이, 서로 다른 영역을 오고가며 매개하는 대상임을 주목하면 의문이 풀린다. '쥐'는 고대 인류가 목숨 같이 여기는 식량이 있는 곳을 귀신같이 알아내어 드나들며 훔쳐내는 비상한 능력을 지닌다. 더구나 쥐는 인간이 잠든 깜깜한 밤에 신기한 능력을 발휘하여, 인간 모르게 그 일을 해낸다. 그렇다면 지상과 지하, 밤과 낮,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오고가며 활동하는 힘을 지닌 쥐는, '신통력'의 상징이다. 자연의 비밀을 알고 있고 활용할 수 있는 신통력을 지닌 존재는 곧 ‘신’이다. 굶주린 원시인류에게 ‘쥐’는 생존의 비법을 터득한 ‘지혜 신’의 모델인 것이다.

'물'은 생명체들의 생존과 곡물의 생장에 필요한 생명수와 농업용수, ‘불’은 어둠과 혼돈을 밝히는 힘, 지혜, 자연 통제력과 연관된다. 물의 근원을 알고 불을 사용하는 방법을 익힘은 인류가 안정된 삶을 이루는데 핵심 기능을 한다. 경륜이 쌓인 어미쥐에게 물어봐야 타당한데 갓 태어난 생쥐에게 물어본 것은 일견 부조리하다. 그런데 “아이는 어른의 어버이다"라는 말에서처럼, ‘근원’에 관한 비밀은 생쥐가 어미쥐보다 더 잘 직관할 수 있다. 또는 ('꿈작업'에서처럼) '신화적 사고'에서 '쥐'라는 유사성을 매개로 어미쥐가 생쥐로 '전치'된 것일 수도 있다.

돌과 쇠가 많은 금강산에서, 돌들을 부딪치고 쇠를 맞부딪혀 불씨를 일으키는 방법은, 민족이 문명을 일으키는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쥐를 통해 메마르지 않는 ‘물의 근원을 알게 됨’은, 안정된 농경사회를 이룰 수 있는 근본 지혜를 얻어, 정신의 발전을 이루는 초석이 된다.

창세신화 가운데 ‘물과 불의 근원’에 관한 신화소는 유독 한국 신화에 명시적이다. 그리스 의 신화에 ‘불의 기원’에 관한 (프로메테우스) 신화소가 등장하지만, 물과 불의 근본에 대한 주제가 동시에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


2장. 환인, 환웅, 웅녀, 단군 : 한국민족의 최초 이상화 대상들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 국가 고조선의 창시자이자 한민족의 정체성을 형성시킨 최초 동일시 대상은 단군(檀君)이다. 씨족공동체로 생활하다가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한국인의 집단정신이 최초 형성된 것은 부족국가인 고조선 시대부터이다. 그래 현존하는 한국인의 민족적 무의식의 근원을 탐색하려면 단군에서 시작된 우리 민족의 정신성을 음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민족의 정신성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원시상태에서 문명화 상태로 전환되던 옛 시대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을까? 그 당시 집단의 생존에 중요 역할을 했던 대상은 어떤 특성을 지녔는가? 고대 한국민족이 이상화 대상을 내면화하여 정신의 응집과 자아를 발달을 도모하던 당시에 이상화 대상 역할을 하던 ‘그 분’은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신화를 통해 음미해보자.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있어 항상 천하(天下)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이 분이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과 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 예순 가지 일을 맡아서,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동굴에 살았는데, 항상 신웅(神雄)에게 사람이 되고 싶다고 빌었다. 한번은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심지[炷]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기(忌)한 지 삼칠일(三七日)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기(忌)하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자기와 혼인할 이가 없어 항상 단수(壇樹) 아래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니, 웅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이름을 단군(檀君) 왕검(王儉)이라 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원로 정신과의사 김광일은 한국의 신화가 매우 질서 있게 보이는 것은, 유교를 숭상하는 선비계층에 의해 구전신화가 문자로 최초 기록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검열과 변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변형된 결과물로부터 본래의 무의식을 역추적 해가는 정신분석가인 그는 위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환웅이 ‘서자’라면 (‘장자’중심 사회였기에) 권력에서 소외된 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하늘에 정착하지 못한 채 지상으로 내려온 것은, 오이디푸스 욕구로 인해 형제들(삼천 무리)과 단결해 아버지를 폭력으로 처치하고, 아버지의 힘(세 보물)을 약탈해 다른 세상에로 옮겨온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곰’ 여인과 결혼했다는 표현에서, 곰은 동북아시아의 토템동물이기에, 또한 원모(原母)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토템동물과 신은 ‘심리적으로 동격’이므로, 신과 동격인 원모와 신의 아들이 결혼한 것이 되므로, 근친상간 욕구가 숨겨져 있다.…”


위 해석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을 한국신화 분석에 ‘그대로 적용한’ 예이다. 가장 오래된 문헌 신화인 수메르의 <길가메시>에는 하늘의 신이 지상계에 내려온 이유가 금지된 대상과 성관계한 죄를 범해서라고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기존에 있던 세계에서 정착하기 힘든 어떤 중대 결함이 있었기에, 부족의 큰 이동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계의 아버지를 무력화시키고 아버지의 보물(힘의 도구)을 탈취해 지상으로 귀향해서 경쟁자들를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신화소는 일본의 오쿠니누시 신화에 명료화된다. 그런데 형제(삼천무리)들과 단합해 ‘아버지’(전임 왕)를 살해했다면, 굳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이유가 모호하다. 왜냐하면 왕성한 생명력의 신세대 영웅이 노쇠한 왕과 대결해 살해한 후 새로운 왕이 되는 것은, 농경시대 초기까지는 전 세계의 보편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김광일은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이론’을 신화해석에 경직되게 적용한 면이 있다. 개인의 내밀한 억압된 무의식을 탐색하는 꿈의 해석으로는 타당해도, 민족과 인류무의식의 내용과 연관된 신화 해석으로는 일방적이다.

우리는 융, 대상관계론, 자기심리학의 관점과 개념으로, 위 신화를 각각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가령 융의 집단무의식 관점에서 보면, '곰'은 강력한 힘을 지니면서, 겨울잠을 깊이 자다가 봄에 깨어나 활기차게 활동한다는 점에서 죽음을 넘어선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 점에서 고대의 한국민족은 곰을 수호신(토템)으로 삼아, 곰처럼 강건하고 영생(부활)하는 능력을 지니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나아가 곰이 음식 금기를 끝까지 지켜내는 인내력을 지녔다고 인격화함으로써, 열악한 생존환경을 버텨내는 능력을 필요로 했던 고대의 한국민족이 기꺼이 동일시하고픈 이상화 대상으로 표상된다.


곰은 한국인의 토템 대상이며 쑥과 마늘은 주술효력을 내는 식물이다. 한국의 최초 국가 고조선의 왕인 단군은 지상에서 강력한 힘의 모델인 곰 어머니(곰신)와 하늘나라 왕의 아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거룩한 존재다. 무릇 왕과 제사장은 서로 다른 영역(집단)들을 중개(매개)하여 종합된 새로운 힘을 생성해내는 비범한 존재여야 한다. 그런 존재가 바로 곤경에 처한 집단에 새로운 힘을 제공하는 구원자 영웅인 것이다.

지상의 힘과 하늘의 에너지를 한 몸에 흡수한 단군이 우리민족의 시조라면, 그를 동일시한 한민족 안에는 곰 신과 하늘신의 힘이 내재되어 현실의 어떤 힘듬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대상관계론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성숙한 정신에너지는 일차적으로 ‘엄마-유아’ 사이의 모성적인 애정 관계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의 분리 개별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는가에 영향 받는다. 서자 환웅이 하늘세계에서 지상계로 내려온 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을 통해 부모로부터 분리 독립의 길을 실천한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닌 제3의 여성 웅녀와 결혼해 자식을 얻었음은, 이성과 성관계를 할 수 있는 남성적 성정체성과 아버지성을 정립해낸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환웅과 지상의 웅녀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난 것은, 새로운 문명을 이루기 위해 서로 다른 두 영역의 에너지를 흡수, 관계, 매개, 소통시키는 과업을 지닌 영웅의 출현을 의미한다.


대상관계 분석가 위니컷에 의하면, 유아가 타고난 공격성을 표출할 때 어머니가 얼마나 인내하며 든든하게 버텨주고 품어주는가가 '참자기'(true self)의 형성과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곰의 힘과 인내력과 넓은 가슴(마음)을 지닌 웅녀는 위니컷이 강조한 ‘참자기’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좋은 엄마상'에 상당부분 부합된다. 단지 웅녀에게 아기의 변화무쌍한 정서와 욕구를 세심하게 공감해주며 반응해주는 (여우같은) 능력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자기심리학의 창시자 코헛에 의하면, 생후 3년간 아이가 어머니에게 태어난 자체로 얼마나 진심으로 '존중 받았느냐'에 의해,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그득한 ‘거대자기(grandiose self)’가 형성되느냐 좌절되느냐가 결정된다.

곰이 '인간'이 되기를 절실히 원했다는 말에는 이미, '인간 존재'에 대한 대단한 가치부여가 표현되어 있다.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한 채 불안에 허덕이며 살다 죽던 원시시대 한반도 인류에게, 웅녀 이야기는 ‘인간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생생한 상징이다. 힘과 부활의 생명력을 지닌다고 믿어진 곰은 고대 한국인에겐 닮고 싶은 이상적 대상이자 토템신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곰이 되기를 원했다’ 것이 고대인의 마음일 것이다. 곰이 민족의 어머니 토템이라면, 그 토템신을 동일시해 융합한 민족은 야수와 적에 대한 불안에서 상당부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한국 신화에 대한 프로이트적 해석의 선구자인 김광일은 정신과 환자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구체적인 임상자료를, 신화 속 상징을 해석하는 근거자료로 제시하는 장점을 지닌다. 가령 사람과 동물, 나와 타자 사이의 경계 구분이 모호한 정신증자의 망상적 사고에서, 원시인류가 지녔던 ‘동물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동물이 되는’ 신화적 사고와 유사한 점을 찾아낸다. 그런데 그의 신화해석은 프로이트 관점만 일의적으로 반영할 뿐, 집단무의식 분석에 필요한 융의 관점과,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분석 연구 동향들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신화에 대한 민속학적 지식은 정신분석적 해석을 하는데 유익한 보조역할을 한다. 민속학은 신화가 창조된 고대사회에서 신화 속 상징들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단군신화를 이해하는데 참조하면 유익한 (여성학 관점에서 본) 민속학적 해석을 주목해보자.

단군신화에는 서양의 마르둑 신화처럼 남성신(남성원리)이 전쟁무기를 들고 여신을 살해하는 파괴적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남성원리를 상징하는 환웅은 여성신의 상징인 곰과 만나 화합하고 결실로 단군왕검을 탄생시킨다. 단군 신화와 그 내용이 흡사한 중국 산동성의 무씨사당 벽화의 내용 속에는 단군 신화에는 나오지 않는 남신이 여신을 살해하려는 장면이 보인다. 규원사화에서도 환웅이 옥녀 玉女라는 여신을 살해하려 한다. 아마도 이것은 이 신화가 전승되어졌을 당시 가부장제 문화유산으로 유교 문화의 영향권 아래서 신화의 원형이 일부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하늘신 환웅과 지모신 웅녀가 배우자를 만나는 과정이라든지 웅녀만이 동굴에서 인고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부분 등은 태초 모계시대 지모신의 원형적 개념이 많이 변형된 ‘웅녀의 재해석’이다. 따라서 웅녀의 본래 의미를 음미하려면 겉으로 표현된 수동적인 페르조나를 벗기고 문화의 금기로 여겨왔던 ‘웅녀의 양성성’을 회복해야 한다.


“문화의 금기”란 여성의 야성적이고 공격적 아니무스인 “호랑이성”의 복원을 의미한다. 동굴 안에 존재한 호랑이와 곰은 분리된 두 존재의 상징이 아니고 미분화된 한 존재안에 내재된 ‘양성성’의 상징이다. 동굴은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하는 것으로, 정신적 물질적 안식처의 역할을 한다. 자궁인 동굴은 불완전성이 완전성으로 질적 변이를 일으키는 성스러운 "변형의 장소”(place of transformation)이다. 동굴 안에서 일어났던 웅녀의 여인화 과정은 일종의 ‘성인식’으로, 그 안에서 웅녀 인격의 전체적 변형(wholistic transformation)이 일어난 것이다.

‘동굴’이 상징하는 어두움과 미분화성은 여성성으로 동질화시키며, 동굴 안의 양성성과 전체성을 구성하는 두 요소는 호랑이와 곰으로 상징화된다. 따라서 단군신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남편과 득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웅녀의 이미지는 한국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이상화시킨 모성애의 표상이다. 이런 웅녀의 모습은 전통적 어머니상으로, 독립성과 자기애를 지닌 주체적 존재로서의 적극성은 상실되고, 모성애로서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지니는 수동적 존재임을 상징한다. 즉, 웅녀에게 양성성을 상실한 자기소외의 불완전한 이미지가 투사되고 있다.


“곰”은 역사적으로 민족의 지모신으로 숭배되었다. 곰신은 어머니이자 땅의 신, 물의 신 그리고 생산의 신으로서의 위상을 지닌다. 서양의 영웅 신화에선 제우스신이 인간여성(다나에, 알크메네..)을 일방적으로 수태시키는 수직 관계임에 반해, 단군신화는 천부지모의 농경사회적 신화세계를 그리며, 지모신에 대한 중요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수렵채취나 유목생활이 기본 터전인 문화권에서는 신에 대한 이해가 남성적이며 땅은 하늘에 예속된 것으로 이해하고 여성성과 함께 지배의 대상이 된다. 반면에 농경문화에서는 땅의 중요성과 함께 지모신의 역할과 그에 따른 여성의 월경주기성이 신성화되고 하늘과 땅은 항상 하나이며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유지된다. 이렇듯 서양의 남성권력적 세계관과 한국의 천부지모의 종교적 세계관은 그 신화의 형성배경이 다르다.


환웅과 웅녀의 성 결합은 관계성(relationality)을 상징하며, 성관계는 창조성과 사랑의 우주적인 힘의 상징으로도 해석된다. 성 결합은 생명력의 근원적 힘이며 성적이면서 영적이며 또한 정치적 힘이고 사랑의 힘이다.

한국 정신사 속에서는 근본적으로 서양유럽의 경우에서와 같은 남녀 간의 극단적인 성적 충돌현상이나 균열 현상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서양에서처럼 여신이 ‘악마화’(메데이아, 키르케, 메두사..) 되는 과정은 겪지 않았다고 보인다.]


3장. 주몽 : 마마보이 서자가 건국 영웅으로 변하기 위한 조건


집단무의식을 공유하던 고대 민족이 꾼 꿈인 (영웅)신화에서, 주인공은 그 신화를 창조하고 믿은 그 민족의 주요 정신성을 반영한다. 따라서 주인공이 신화에서 드러내는 여러 특성들을 정신분석의 관점과 개념으로 들여다보면, 그 민족의 신화시대 정신성을 이해할 수 있다.

개인의 정신성에 익숙한 현대인의 성향과 관점을 고려하여, 현대정신과 고대정신의 지평융합을 위해, 신화 속 주인공을 개인정신과 집단정신을 함께 상징하는 존재로 이해해보자.

신화 속 영웅은 정신의 성장 과정에서 보통사람과 다른 특이한 환경과 위치, 특이한 경험과 반응 태도를 지닌다. 그리고 그 특이성이 그 민족의 고유 정체성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한민족 역사에서 분산되었던 고조선의 집단정신을 다시 응집하고 확장시킨 고구려의 건국영웅은 어떤 심리 특성을 지녔는가? 그는 어떤 경험 과정을 거쳐 집단의 영웅으로 성장했는가? 시련을 헤치고 거대 과업을 실현한 그 영웅은 그 민족의 어떤 욕망과 정신 상태를 반영하는가?


1) 탄생 이전의 사건 : 대타자들의 갈등 흔적


“ 천제의 자식이자 북부여 왕 해모수는 사냥 갔다가 압록강에서 놀고 있는 ‘세 여자’를 본다.

- 해모수가 ‘말채찍으로 땅을 긋자’ 구리집이 솟았고, 방안엔 ‘비단자리와 술상’이 차려졌다. 세 여인이 그곳에 들어와 술 마시고 취하는데, 왕이 들어오자 도망가고 장녀 ‘유화만 붙잡힌다.’ - 유화를 데리고 그녀의 아버지인 하백을 만나러 간다.

- 하백이 분노한다. “도대체 네가 누구 이길래, 내 딸을 ‘빼앗아간’거냐? 돌려주지 못할까.”

- 결혼 요청에 하백은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변신술을 겨루는 신통력 대결 (잉어-수달, 사슴-승냥이, 꿩-독수리)에서 해모수가 이긴다.

- 하백이 해모수의 ‘능력을 인정’하고 혼인을 승낙하는데, 해모수가 딸을 버리지 않을까 걱정되어, 술 취하게 해, 둘을 ‘가죽부대’에 넣어 수레에 태운다.

- ‘술이 깬’ 해모수는 유화의 황금비녀로 가죽을 뚫고, ‘혼자’ 하늘로 올라간다.

- 화난 하백이 ‘가문을 욕되게 한’ 죄로, 유화의 ‘입술을 동여매고’ 석 자 늘려 추방한다.


(해모수의 아들) ‘부루’가 하느님의 계시로 도읍을 동부여로 옮긴다.

- 부루왕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산천에 제사지내 ‘대 이을 아들’ 얻기를 기원한다.

- 타고 가던 ‘말’이 ‘큰 돌’을 보고 눈물 흘려 돌을 들추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아기’가 있어, ‘금와’라 이름 짓고 태자로 삼는다.

- 부루의 대를 이은 금와왕이 그물에 잡힌 ‘무서운 얼굴’을 한 유화의 ‘입술을 세 번 잘라’주자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 유화를 ‘별궁에 거처’하게 한다. “


집단을 위태롭게 하는 큰 사건은 단지 최근의 환경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근본요인은 오랜 기간 무의식에 잠복해 있던 어떤 무엇으로부터 온다. 의식의 눈에는 눈앞의 사건이 당대의 문제에 의해 갑자기 출현한 듯이 보일 뿐이다.

거대한 야망을 지닌 영웅을 출현하게 만든 근원적 힘 역시, 지금 세대가 아니라 오래전 세대들의 복잡한 사연과 욕망으로부터 온다. 왜 어떤 인물이 독특한 능력을 집요하게 개발하여 보통사람들이 풀기 힘든 과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일까? 한국의 신화에선 그런 영웅상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들에 의해 생성되는 것인가?

개인과 민족(씨족, 부족)의 정신성은 일차적으로 이전 세대로부터 ‘전승’받은 독특한 무의식의 흔적과 환상에 의해 영향 받는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정신에 무의식적 환상으로 전승되었거나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선조들은 누구인가? 주몽으로 하여금 일반인과 다른 삶을 살게 만든, 그들의 특성은 어떠한가?


해모수-해부루-금와-주몽과 유화 사이의 관계는 연대기적으로 볼 때 비현실적이다. 가령 해모수와 금와는 여러 세대의 차이를 지니는데, 유화는 해모수와 금와 모두와 남녀 관계를 맺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신화는 꿈처럼 ‘시간의 논리’에 구속받지 않으므로, 이것을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또한 주몽 신화가 여러 부족의 신화를 나중에 통합하여 재구성한 ‘혼합 형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즉 북부여의 ‘천제-해모수’ 신화와 동부여의 ‘해부루-금와’ 신화, 그리고 강변 부족의 ‘하백 – 유화’ 신화가, 후세에 위 부족들을 정복한 고구려에 의해 하나의 주몽 신화로 재구성되어 통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신분석적 신화해석은 신화의 역사적 진위 판별보다, 독특한 신화를 창조한 집단과 그 신화를 믿고 내면화해온 집단의 무의식 상태를 주목한다. 주몽 신화가 여러 부족의 신화를 압축한 신화일지라도, 압축된 신화소를 하나하나 분석하면, 특정한 신화이미지와 이야기를 생성한 부족들의 배후 무의식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주몽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이전 세대 인물상들의 정신 특성은 어떠한가?


주몽의 모친인 유화는 ‘강의 신’ 하백의 장녀이다. ‘강물’은 고대부족에게 식수와 농업용수를 제공하는 생명의 원천이다. 프로이트는 ‘갈증 해소’를 배고픔 해소와 더불어 생존본능의 표상으로 본다. 그렇다면 원시인류에게 ‘강의 신’이란 생존과 연관된 중요 관심 대상으로서, 물의 사용을 통제하는 부족장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유화는 민족에게 생명수를 제공하는 강변 마을 족장의 딸이다.

유화는 권력을 지닌 ‘하늘부족 왕’의 아들 해모수와 만나 결합한다. 그런데 해모수는 유화와 혼인하여 성관계를 맺고는 돌연 홀로 떠난다. 그리고 나중에 누군가와 관계해서 해부루를 낳았고, 해부루는 ‘아버지의 나라를 떠나’ 동부여를 건국했지만 후손이 없어 양자로 삼은 금와에게 왕위를 양도한다.

금와는 금빛개구리를 뜻한다. 개구리는 겨울잠을 잔 후 봄에 불쑥 나타나므로 죽음에서 부활하는 생명력의 상징이다. 또한 물과 육지 모두에서 활동하므로, 물의 세계와 육지세계를 매개하는 신기한 동물이다. 그렇다면 금빛개구리 금와는 내륙과 강에 거주하는 부족을 통합한 족장의 상징일 수 있다.


주몽은 하늘, 강, 육지라는 각기 다른 배경과 특성을 지닌 어머니와 아버지의 에너지를 받고 태어남으로써, 서로 대립하던 여러 부족을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 운명적 임무를 지닌다.

주몽은 나중에 자신을 하느님(천제)의 자손이라 표현함으로써, ‘하느님-해모수’를 이상적 대상으로 내면화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해모수’가 그의 실재 아버지라는 증거는 아니다. 이는 ‘원시적(유아적) 소망’에 기인한 ‘심리적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는 현실의 아버지가 초라해 보이고 못마땅할 때 환상 속에서 ‘위대한 아버지’상을 만들어내어, “진짜 아버지는 따로 계시다”고 믿음으로써 자신을 위로한다. 그렇다면 주몽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

신화 속 금와는 친부모에게서 버려져 해부루의 양자로 키워진다. ‘부모가 미상’인 아기란 대부분 사회적으로 금지된 관계를 맺은 사람의 후손임을 암시한다. 또는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구지 묘사하고 싶지 않은 합병한 어느 부족이나 가문의 자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금와는 불륜 관계의 자손이던가, 국가에 흡수 통합된 어느 소외된 집단의 자손일 수 있다. 신화에는 그를 ‘누가’ 양육했는지 서술되어 있지 않기에, 금와의 정신이 어떤 대상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 정확히 이해하긴 어렵다. 그러나 배경적 집단에서 분리(단절)되거나 ‘친모로부터 버려진’ 인물은, 모성 결핍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 모성성이 결핍되면, 자기애가 취약해진다. 그 경우 자신만을 존귀하게 여기면서 사랑해줄 ‘모성적 대상’을 갈망하게 된다. 그래서 모성결핍을 지닌 금와가 ‘선대왕의 여자’인 유화를 귀양살이로부터 구조하여 궁궐로 데려온 것이며, 금지된 애정을 채울 수 있는 환경이 생성된 것이다.

다른 한편 금와가 해부루의 ‘왕위를 물려받았음’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아 ‘아버지다움의 힘’을 획득했다는 징표이다. 아버지다움은 ‘사회적 법’의 권위를 유지하는 강력한 힘을 상징한다.


“ 유화의 품에 ‘햇빛’이 비쳐 몸을 피했으나, 햇살이 따라다니며 비쳤다. 임신하여 왼쪽 ‘겨드랑이’에서, 닷 대 크기의 알을 낳았다.”


대부분의 신화 속 영웅은 관습체계나 권력자의 입장에서 볼 때 축복받기 힘든 성관계의 결과로 출생한다. 조부모나 부모의 금기 일탈 행위로 인한 ‘태어나선 안 될’ 출생이거나, 가족과 사회 속 ‘위치’가 기구하여 평범한 즐거움을 누리기 힘든 운명을 지닌다.

주몽은 아버지를 모르거나, 알아도 세상에 밝혀선 안 되는 사생아다. 그런데 건국의 시조는 모든 백성이 ‘동일시’하고픈 이상적인 모델 기능을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신화 기록자는 반사회성을 지닌 사실을 결코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가 없다. 그로인해 민족무의식과 집단의식은 타협하여 주몽이 ‘햇빛’에 의해 임신되었고, 유화의 ‘왼쪽’ 겨드랑이에서 ‘알’로 태어난 것으로 변형시킨다.

‘햇빛’은 무엇의 상징인가?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원시인의 눈’에 태양과 햇빛은 죽음공포를 가라앉히는 경탄스럽고 존귀한 존재, 왕, 아버지, 남성성의 상징이다. 그리고 ‘왼쪽’은 성스러운 방향을, ‘알’은 수많은 잠재력과 우주를 담고 있는 성스런 존재(‘우주적 자기’)의 상징이다. 알은 또한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성스러운 동물로 간주해 온 새의 출생 양태이다. 신성한 하늘의 기운과 접촉하는 새는 신성한 존재이기에, 위대한 영웅은 새처럼 알에서 태어난다.


‘새’의 어미는 알을 낳고는, 또다시 알을 정성껏 품어 부화시킨다. 즉 엄마의 신체적 출산고통과 출산 후 애정 쏟음이라는 ‘이중의 정성’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 순간에야 알 속 새끼 ‘스스로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태어난다. 이런 ‘알 탄생’은 고귀한 존재의 탄생을 묘사하는데 적합한 보편상징으로 전 세계 신화 속에 표현된다.

임신-출산되는 순간부터 아기는 이미 그를 태어나게 한 부모에 의해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 특히 아이를 대하는 어머니의 무의식적 욕망과 불안은 아기에게 민감하게 감지되며, 아이의 정신은 외부대상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자극과 관계들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구조화된다. 그렇다면 아기주몽은 어머니와 아버지 각각으로부터 어떤 관심을 받으며 태어났는가?


2) 유년기 성장 과정 : 험난한 초기 환경, 최초 대상들


“ 금와는 사람이 ‘알’을 낳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며 ‘마굿간에 버렸는데, 말들이 지켜주었다. 산에 버리니 짐승들이 지켜주었고, 깨뜨리려 했으나 깨지지 않았다. 그래 알을 유화에게 돌려주니, 정성껏 품어 알에서 사내가 태어났다. “


금와왕은 태어난 알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궁궐에 거처하는 여인을 왕이 아닌 자가 감히 성관계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더구나 유화는 선대왕의 여자이기에, 왕이라도 함부로 성관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다만 모성 결핍(애착)이 심한 왕이라면, 무의식의 소망을 자극하는 모성적 대상을 만날 경우 예외적 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 유화는 ‘선대왕의 여인’(‘아버지의 여인’)이라는 ‘위치’로 인해, 금와(부족)의 무의식적 유아 성환상을 자극하는 강력한 요인을 지닌다. 그리고 강의 신의 장녀인 유화는, 어머니처럼 ‘아버지의 욕망 대상’이 되어 아이를 갖고 싶은 오이디푸스 욕구와, 욕망대상이 결핍한 것을 보충해주고 싶은 모성성을 지닌다. 금와와 유화의 무의식적 욕망(결핍)은 서로 조화되기에, 상호 애착 가능성을 지닌다. 그런데 금와는 ‘아버지의 법’을 상징하는 왕이다. 그리고 부족국가 시대의 족장은 절대왕권 시대의 군주와 달리 민심을 잃으면 부족원들에게 희생양으로 살해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금와는 자신의 부적절한 행적이 세인에게 드러나는 걸 불안해한다. 그는 불륜관계로 태어난 자식인 주몽의 존재가치를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타부규칙과 충돌하는 부모의 사연(소망충족 행위)으로 인해 신화 속 주몽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버지와 상징계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부정적 자극들에 둘러쌓이게 된다.


아기 주몽에겐 기성관습을 대변하며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는 아버지의 존재가 모호하다. 즉 그는 부모 관계의 어떤 원인 때문에, 아버지(기성 상징계)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림받는다. 국가의 시조가 된 존재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국민윤리를 혼란스럽게 하므로 결코 있는 그대로 표현될 수 없다. 그래서 영웅의 아버지는 ‘햇빛’이며, 영웅을 학대한 자는 아버지가 아닌 제3자인 양 각색된다. 그러나 정신분석과 현실의 눈으로 보면, 아이를 최초로 학대한 자는 대부분 실재의 부모이다.

알은 먼저 마구간에 버려진다. 말들의 오물이 쌓이는 마구간은 더럽고 사회로부터 대접받지 못하는 하찮은 곳이다. 부모로부터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아기는, 자신이 하찮은 곳에 방치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존중받지 못한 아기의 자존감(자기애)은 활력을 잃고 얼어붙는다. 그런데 ‘말’들은 이상하게도 그 알을 짓밟지 않고 보호한다. 왜 그럴까? ‘말’은 당시에 신성하고 귀한 동물로 여겨졌다. 프로이트는 ‘말’을 힘 있고 거대한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알은 겉으로는 버림받지만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로인해 아기의 자기애 상처는 회복되어 ‘자기(알)’가 깨지지 않은 채 유지될 수 있다.

알은 그 다음에 산에 버려진다. 원시부족에게 ‘산’은 일차적으로 집과 마을이라는 보호막 경계에서 벗어난 위험한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지대이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알은 동물들의 보호를 받는다. 산과 야수의 무의식적 의미는 무엇인가? 산은 한편으로 ‘거대하게 품는’ 이미지를 지닌다. 거대하게 알을 ‘품어주는’ 존재는 곧 어머니의 상징이다. 산이 거대하게 ‘버텨주는’ 기능을 할 때는 아버지를 상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외견적인 위기 상황과 달리 알은 어머니 산과 무시무시한 ‘야수’가 상징하는 아버지에게서 암암리에 보호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금와왕은 마지막으로 알을 ‘깨려’ 했지만 알은 깨지지 않았다. 신화 속 표현은 사실 묘사라기보다 상징이다. ‘깨뜨림’은 과잉자극, 파괴, 박해, 거세의 표상이다.

알(‘자기’)을 잔인하게 공격함은 금와의 무의식에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유년기 상처, 분노, 불안이 컸음을 암시한다. 또는 모성적 대상인 유화의 첫 번째 애정 자리를 자식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콤플렉스가 작동한 것일 수도 있다. 또는 ‘타인의 부정적 평가 시선’에 의해 비난받고 거세당할까봐 두려워, 불안의 싹을 없애려는 금와의 취약한 ‘자기(애)’와 박해불안, 거세불안을 나타내는 현상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불안과 콤플렉스는 ‘자식’에 대한 본능적 애정욕동에 의해 완화된다. 그래서 알로 상징되는 주몽의 ‘자기’(self)는 아버지의 불안과 사회환경의 부정적 자극들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채 보존된다.


탄생 초기의 시련은 부모와 사회의 어떤 결함으로 인해 기구한 운명을 짊어진 영웅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태어난 미래 영웅은 산이나 강에 버려져 외지로 떠나 보내지거나, 알 상태(잠재태)에서 환경에 의해 여러 고초를 격어야 한다.

알은 ‘세 번의 시련’을 버텨내고 마침내 어머니에게 양도된다. 프로이트와 융은 ‘삼(三)’을 ‘남성적인 힘’, 성스러움, 완전성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세 번’의 시련은 대타자의 결함과 과오로 인한 운명적 불행을, 아이가 버텨내고 극복할 수 있다는 상징이다. 보통의 아이가 유년기에 겪는 ‘세 번’의 통과의례란, ‘최초 대상’(엄마, 젖가슴)과의 분리, ‘최초 성대상’(이성의 부모)과의 분리, ‘아버지(대타자)’에 대한 갈등(애증) 감정 극복이다.

창세신화는 정신(‘나’)이 최초 형성되는 신기한 과정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알’에서 아기주몽이 탄생되었음은 곧 집단무의식 상태로부터 ‘보이지 않게 보호해주는 힘’과 어머니의 정성에 의해, ‘자아의식’이 분화된 것이다. 또는 비록 외부환경에서 오는 크고 작은 고통자극이 있었지만 좋은 보호하는 힘에 의해 유아의 ‘참자기’(true self)가 건강하게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참자기’를 형성한 아이는 장차 험한 고통자극이 밀려와도 정신이 붕괴되지 않고 버텨내며, 고난과 역경에 창조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주몽의 유년기 생활은 신화에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영웅과 그 민족의 유년기가 초라했거나, 고통스런 상처나 불안, 좌절된 욕구, 금지된 욕망 때문에 정신이 그것에 대한 기억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가령 부부도 아니고 부부 아닌 것도 아닌 유화와 금와 사이의 애매한 관계는, 아이(민족)의 정신에 혼란을 주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한 주몽은 왕자도 아니고 왕자가 아닌 것도 아닌, 애매한 대우를 받으며 이복형제들로부터 소외된다. 이런 애매하고 소외된 관계는 기존 사회의 가치체계에 대한 부정적 지각과 환상을 형성시킨다. 주몽의 경우 어머니와 연관된 최초양육 경험과 최초 성대상 경험은 긍정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중심 문제는 동일시 대상인 아버지와 당대 가치규범 체계에 대한 부정적 생각과 느낌일 것으로 추정된다.


a. 주몽의 아버지 콤플렉스


유년기는 정신이 최초로 구조화되는 격변의 시기이다. 주몽신화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점은 프로이트가 강조했던 남근기(오이디푸스기, 아동기)이다. 이 시기에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분리되어 규범과 언어적 분별을 익히는 ‘아버지의 세계’로 진입하는 정신적 변환을 겪어야 한다. 그런데 태어난 사회적 위치가 애매한 아이의 경우, 그리고 아버지의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역할이 없거나 애매한 아이의 경우, 아버지의 세계에 입문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주몽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공개적으로 받지 못한 채, 암암리에 보호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애매한 관계는 아이의 정신을 혼란시켜 고통스럽게 한다.

금와는 주몽을 자신의 친자식으로 당당히 인정하기 힘든 공인의 위치에 있다. 그로인해 주몽을 본처의 일곱 자식들처럼 왕자로 대우해 키우기가 곤란했을 것이다. 주몽은 주위 사람들에 의해 애매한 위치로 취급되며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그 아동은 기존의 상징적 규범체계, 가치체계에 대해 결코 긍정적 가치감을 갖거나 ‘동일시’하기 어렵다. 추정컨대 주몽은 아동기의 최초 사회화 과정에서, ‘아버지의 법’에 대한 양가감정에 휘둘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로인해 아버지 동일시가 애매하여, 사회적 권위자나 전통 규범에 편안히 적응하기 힘든 감정 상태를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고착된 성격유형은, 아버지의 권위와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해, 긍정도 못하고 완전히 부정도 못하는 애매한 갈등에 시달린다. 이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의 법’보다 더 훌륭한 ‘자기의 법’을 세우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그가 그 욕구를 ‘현실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영웅이 되지만, 환상 속에 안주한다면 현실에 부적응하는 신경증자가 되거나, 현실에서 소외당하는 비참한 존재가 된다.


기성 가치세계에서 천시되는 사생아로 태어났기에, 주몽은 신뢰할 수 있는 든든한 동일시 대상인 아버지를 온전히 가질 수 없다. 그는 ‘아버지’를 상징하는 ‘왕’(금와)으로부터 관습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가치와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그로인해 아버지 동일시를 통한 ‘아버지다움’을 충분히 내면화하지 못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아버지 체험의 실패는 기성 규범에 온전히 만족하질 못한 채 늘 의심하고 갈등하는 신경증적 성격을 유발한다. 그래서 신경증자는 기성체제와 일상의 일들에 대해 보통사람처럼 흥미와 즐거움을 얻기 힘들다. 그가 진정으로 만족을 느끼려면, 그는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법, 새로운 제도를 현실 속에서 스스로 창조해야만 한다. 그것이 현실에서 불가능할 경우, 자신의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신화적 영웅상을 창조하여 그것과 동일시함으로써 대리만족이라도 얻어야 한다.


b. 형제 콤플렉스


“주몽은 어릴 적부터 비범했으며, 활을 잘 쏘아 사냥 시합에게 일곱 형들을 모두 이겼다.”

존귀한 왕자 대접을 받는 (이복)형제들에 대해, 권력에서 소외된 옛날의 서자들은 어떤 느낌을 지녔을까? 그들에게서 위협적이고 천대하는 눈총을 받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형제 서열에서 아래 위치에 있는 아이의 경우, 신체적 힘에서 형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머니나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자기’가 위축되거나 터질 듯한 분노와 파괴욕구가 솟구칠 것이다. 그러나 공격성을 함부로 외부로 표출했다가는 엄청난 곤욕을 치루기 때문에, 그 공격성은 억압되어 내향화될 수밖에 없다. 그로인해 ‘힘없음’에 대해 불안과 권력 콤플렉스와, 공격성에 대한 통제가 정신의 주요 현안이 된다.

서자 주몽은 권력 콤플렉스로 인해 자신이 형제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 그들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현실에서 입증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분노와 공격성을 외부로 분출하고, 박해 및 거세불안을 떨치기 위한 방어책으로, 필사적으로 궁술을 익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런 유별난 행동과 공격력은 주위사람들의 정신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로인해 주몽은 기존의 현실 속에선 안정된 지위나 관계에 진입하기 힘든 불행한 운명을 반복한다.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상처의 흔적들은, 정신의 어딘가에 각인된다. “타고난 능력에 비해, 부당하게 상처받은 억울한 내 인생!” 이 초기 상처가 큰 경우에, 원초적 분노와 불안이 밀려들고 이에 대한 원초방어기제가 과잉 작동되어, ‘자아, 자기’가 병리적으로 구조화된다. 그 결과 사소한 부정적 자극에도 정신이 분열되고 파편화되며, 외부세계에 대해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충동 통제가 불안정한 성격이 형성된다. 다행히도 신화 속 주몽은 강력한 ‘자아 지원’ 역할을 하는 헌신적이고 지혜로운 어머니를 지닌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그를 보호한다. 그로인해 부정적 자극을 받아도 버텨내며, 공격성의 간접적 분출(활쏘기)이 가능한 존재로 성장한다. 활쏘는 사냥 시합에서 모든 형들을 이김은, 차별당한 콤플렉스가 그로 하여금 일곱 형들을 능가하는 힘을 기르게끔 추동시켜 생긴 결과이다.


(3) 청소년기 통과의례 : 형제의 위협, 말 기르기, 고국 탈출, 기득권자와의 대결


“태자가 주몽의 왕위 찬탈 위험성을 간언하자, 금와왕은 주몽에게 ‘말 기르는 일’을 맡긴다.

낙심한 주몽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출가’ 뜻을 밝힌다. “남쪽 땅으로 가 새 나라를 새우려하나, 어머니가 이곳에 있어 도망치기 힘듭니다.”

- 아들의 안위를 걱정한 유화는 아들의 탈출을 도울 ‘붉은 준마’를 골라, 말의 혀에 침을 꽂아 말을 마르게 한 다음 부왕으로부터 그 말을 물려받게 만든다.

- ‘세 친구’ 및 부하와 남쪽으로 도망하자, 동부여 군사들이 추적한다.

- 강 건널 배가 없자, 물을 향해 외친다. “난 천제(天帝)의 자손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건너갈 ‘배’와 ‘다리’를 달라”며, 활로 물을 친다.

- 자라, 물고기가 나타나 다리를 만들어 주어, 도주에 성공해서 나라(졸본부여)를 세운다.


청년기는 힘없던 어린시절에 억압했던 무의식이 회귀하여, 결함과 결핍의 보충과 해결을 강력히 요구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억압되어 오랫동안 잠복해온 민족무의식이 갑자기 사회적 곤경들을 발생시켜, 당대인으로 하여금 이를 해결하라는 고통스런 과제를 부과하는 시기이다. 청년과 민족은 유아적 무의식과 민족무의식의 문제들을 주체적으로 직면하고 통합해야 비로소 성숙한 자아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 강력한 국가를 확립하지 못했기에 거대국가 중국에게 침략 당했던 고대 한민족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주몽의 일차적 문제는, 생사를 좌우하는 권력자(아버지와 형제)에 대한 박해불안과 권력 콤플렉스이다. 이것은 청년기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자리(가치위상)를 정립하는 문제로 전환된다. 그런데 기존의 제도와 사회적 관계는 좀처럼 주몽에게 긍정적 환경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청년기에 이르자, 형제들과 신하들은 주몽이 왕권을 위협할 위험한 존재이니 제거해달라는 강한 요구를 왕에게 한다. 일찍이 자신의 명예를 위해 주몽에게 거리를 두어온 금와에게도 비범한 활쏘기 능력을 지닌 신세대에게 도전받는 불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의) 핏줄을 차마 죽일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고 집단의 요구를 무마하는 타협책으로 권력과 무관한 ‘말 목동’ 역할을 주몽에게 부여한다.


그런데 왜 주몽이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왕위 찬탈 위험성을 지닌 존재로 의심받고 위협받게 되었을까? 그것은 단지 주몽의 활쏘기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기 보다, 그의 내부에 억압된 분노와 공격성, 권력 콤플렉스와 오만한 자기애가 가득 차있음을 타인의 무의식이 느꼈기 때문일 수 있다. 왕위 위협자로 의심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그가 금와의 핏줄임을 주위 사람들이 암암리에 인지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로 인해 주몽은 이복형제들로부터 위협받는 부정적 경험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적대적인 환경은 부모의 사연(금지된 성관계)로 인해 미래의 영웅이 평생 짊어져야 하는 운명적 과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사람의 경우라면 힘센 타자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기 위해 자기 개성을 숨기거나 낮추는 선에서 타협을 볼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 모성경험으로 ‘참자기’가 형성된 주몽은 자기의 욕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말을 관리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낮은 직책이다. 이것은 주몽의 권력콤플렉스를 자극하여 그를 심란하게 한다. 그는 그 고통을 ‘어머니에게 표현’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고통을 전적으로 공감해주면서,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비법을 알려준다. 이에 대해 선행 연구자의 해석을 주목해보자.

“말은 아버지 권력의 상징이고, ‘혀’는 권위를 나타내는 남근의 상징이다. 혀에 침을 꽂아 말을 마르게 함은, 남근을 거세하여 아버지의 힘을 못 쓰게 함을 의미한다.”


자식의 콤플렉스를 정확히 파악하여 근심을 해소해주는 어머니 유화의 역할은 대단하다. 위의 해석처럼 고대에 ‘말’은 높은 신분들만 소유할 수 있는 권력과 재산의 상징이다. 더구나 최고의 준마는 고귀한 대상만 소유한다는 점에서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준마를 무력하게 만들었다가 회복시켜 자신이 부리는 소유물로 만드는 행위는, 힘 있는 대상(아버지, 왕)을 제압하는 보물과 주술력을 습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 욕구와 힘 콤플렉스를 해소하는 상징 행위이기도 하다. 말목동이 이런 대단한 ‘심리적 위치’라면, 그 역할에 대한 주몽의 수치감은 진정될 것이다.

유화가 주몽에게 골라준 준마는 ‘붉은 말’이었다. 붉은말은 (검은말과 더불어) 남성다운 힘의 상징이다. 프로이트에게 ‘말’은 거대한 몸체와 큰 남근으로 인해 아버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붉은말은 주몽에게 결핍된 ‘아버지의 힘’을 보충해 주는 상징적 대상이다. 그리고 붉은말을 길들여 제압함은, 주몽이 아버지를 이기고, 아버지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함을 상징한다. 일종의 아버지ㆍ왕 살해(거세)인 것이다.


(4) 조력자


시련에 처한 영웅에게 ‘새로운 힘’을 제공하는 조력자가 어떤 특성을 지닌 존재인가에 따라, 그 민족이 보충하고 싶어 하는 에너지가 무엇이며, 영웅이 어떤 힘을 발휘할 것인지가 암시된다.


a. 조력자 I : 어머니, 세 친구


어떤 사람이 영웅으로 성장하는 데 핵심 요소는 ‘누구’로부터 ‘어떤’ 힘을 흡수하느냐에 있다. 주몽은 곤경 상황에서 ‘어머니로부터’ 힘을 얻었다. 사춘기에 유년기의 콤플렉스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남성은 여성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남성에게 여성은 모성적 대상인 동시에 성적 욕망대상이다. 그런데 전 세계 신화에서 영웅에게 도움을 주는 여성은 대부분 어머니가 아닌 제2의 여인 내지 여신이다. 유년기 엄마를 대체하는 새로운 여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유아적 모성애착에서 분리-독립하여 성숙한 남성적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주몽 신화엔 제2의 여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고구려 시조로 부각된 주몽과 그를 동일시한 고구려 민족은 성정체성과 자아정체성에 있어 중요한 문제를 내포한다.

주몽의 아들 ‘유리 신화’를 통해 추정해보면, 주몽은 청소년기에 어떤 여인과 성관계하여 임신시킨 후 (해모수처럼) 여인을 버리고 떠났다. 그런데 ‘주몽 신화’에는 여인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마도 주몽신화를 ‘광개토왕 비문’에 새긴 고구려 시대와, 나중에 역사 기록으로 정리한 고려시대의 사회 이념에 뭔가가 검열되어, 여성과 연관된 부분이 삭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검열되었다면, 검열 이유와 검열된 내용이 무엇일까? 그것은 주몽이 (아버지 금와처럼) 금지된 성관계를 맺었거나, (할아버지 해모수처럼) 여인과의 성적 친밀관계를 감당하기 힘들어 도망치는 미성숙한 행동을 반복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버지 역할을 하는 대상이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은 어머니와의 애착관계가 유난히 강하다. 그 경우 청년이 되어서도 새로운 여인에 대한 욕망이 적거나, ‘어머니 상실불안’ 때문에 다른 여인과 진정한 친밀관계를 맺기가 힘들게 된다! 그래서 주몽이 “남쪽 땅으로 가 서 새 나라를 세우려하나, 어머니가 이곳에 있어 도망치기 힘들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여자 대신에 동성의 ‘세 친구’와 생사를 함께하는 친밀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 애착이 강한 아들의 경우 어머니 이외 여자와의 친밀관계는 강한 죄책감과 어머니에게서 ‘자기’가 떨어져나가는(dis-identification)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동성 친구와의 친밀관계는 이런 불안을 막아주는 동시에, 무의식의 문제를 회피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친밀한 친구관계는 자기애를 보충시켜 아버지와 형제에 대한 권력콤플렉스를 완화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는 당시의 고구려인들이 해소하고 싶어 한 가장 큰 문제가 성대상 관계를 통한 애정충족보다, 완벽한 보호(양육)자 관계를 통한 외부민족(중국)의 박해불안 해소와, 강력한 대상과의 동일시 관계를 통한 권력콤플렉스 해소에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주몽이 ‘어머니의 승인’을 받고서 ‘어머니를 남겨두고’ 친구들과 함께 고향을 탈출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무의식적 욕망’과 ,아버지와 형제에 대한 박해불안과 권력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싶어 하는 주몽의 무의식적 욕망이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유화는 주몽이 자신을 버린 하백과 해모수, 그리고 애매한 관계 대상인 금와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을 무릅쓰더라도 자식이 자신에게서 ‘분리’하는 걸 기꺼이 도왔을 수 있다. 어머님의 이런 욕망을 알기에, 주몽은 아버지보다 더 강력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자신의 목적을 집요하게 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주몽은 해모수처럼 ‘자기’ 상실불안 때문에 어머니 이외의 여인과 ‘친밀관계’를 못 견뎌하는 정신성을 지녔을 수 있다. 그런데 주몽이 여러 곤경을 극복해가며 국가를 건국했다면, 그의 ‘자기(애)’는 결코 약하다고 보기 어렵다. 어릴 적에 모성적 사랑을 충분히 받았고 친구들이 많았다면, 친밀한 2자 관계를 못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여인에 무관심했고, 처자식을 버려둔 채 고국을 떠난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석은 뒷부분으로 잠시 유보해두자.


b. 조력자 II : 내적 대상(천제, 하백), 물고기, 자라


위기 상황에 처한 자는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대자보다 더 높고 강력한 대상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만약 현실에서 그런 대상이 없다면 ‘환상’을 형성해서라도 그런 대상을 내면에 소유해야 한다. 주몽은 그 대상을 하늘의 신 ‘천제’와 강의 신 하백에게서 찾는다. 그는 자신이 ‘천제와 하백의 자손’이라는 생각(환상)을 통해, 아버지 결핍을 보충하여 자아정체성을 확립해온 것이다. 모국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위기에 처하자, 주몽의 자존감 높은 정체성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외부로 표출된다. “나는 (가짜 아버지 금와왕 보다) 높은 ‘천제의 자손’이시다! 나를 제대로 받들 거라~” 정신에 내재된 이런 과대자기 환상이 그로 하여금 열악한 현실 환경을 버티게 했으며, 아버지보다 강한 국가 건설을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기게 한 무의식의 동인이다.

무릇 비범한 힘의 근원은 어머니로부터 받는 무형의 정서에너지와 아버지로부터 흡수하는 상징계의 형상 에너지가 결합하여 생성된다. ‘상징계의 형상’이란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의미와 가치의 질(등급)을 의미한다. 주몽은 자신을 강의 신의 외손이며, 하늘 신의 친손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자기정립은 물과 대지를 매개하는 금빛개구리(금와)보다 자신의 피가 우월하다는 욕망환상을 내포한다. 즉, ‘나’는 아버지와 형제들보다 우월한 능력과 존재가치를 지닌 귀한 존재인 것이다.


영웅은 대타자의 과오와 결함을 운명적으로 대신 짊어지고 태어나기에 불행하다. 게다가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해 아버지 동일시에 실패하면 사회적 관계 능력이 결여되어 큰 과업을 성취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주몽이 ‘큰 이상’을 품고서 절친한 ‘세 친구’ 및 부하들과 더불어 동부여를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로부터 아버지성을 흡수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버지성’을 내면화하지 못한 존재는 정신의 뼈대가 형성될 수 없기에, 국가 건설은커녕 자기 자신조차 온전히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능동적 남성성과 강력한 왕의 에너지는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프로이트의 「가족 로맨스」에 의하면 현실의 아버지에 대해 실망한 아이는 보다 위대한 ‘진짜 아버지’ 환상을 갖게 된다. 주몽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고려할 때, 그의 실재 아버지는 금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금와가 당당한 아버지 역할을 하지 않았기에, 그는 금와보다 더 강하고 존귀한 ‘천제’를 자신의 ‘진짜 아버지’라고 환상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또한 자신을 어머니의 부친인 하백의 외손자로 호칭한다. 이런 주몽의 당당한 주장에 부응하듯, ‘물고기’와 ‘자라’가 나타나 위기에 처한 주몽을 도와준다. 물고기는 활기찬 움직임과 인간에게 식량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자라’는 육지와 물을 왕래하며 오래 사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모두 생명력의 상징이다. 생명력은 곧 ‘신’이기에, 그들은 특정 부족의 토템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즉 물고기, 자라를 각각 토템으로 섬기는 강변 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추정된다. 이를 융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부여에서 탈출하여 박해불안에 시달리는 초기 고구려인들에게 활력과 성장을 상징하는 물고기와 장수를 상징하는 자라가 나타나, 정신의 안정과 균형을 제공해 주었음을 의미한다.


(5) 과업 성취 : 국가 건설 (졸본부여 ; 고구려 )


국가 건설은 야망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이 조화롭게 통합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매우 현실적인 작업이다. 상징적 규범체계를 지닌 집단을 형성한 것은, 이미 주몽이 주관적 상상계를 벗어나 현실세계와 접촉하고 교류하는 현실자아 능력을 획득했다는 증거이다. 즉 탄생 순간부터 짊어진 곤경들을 어머니의 보호와 활쏘는 능력으로 겨우 감당해내다가, 어머니를 떠나 세 동료 무리와 더불어 외부세계에 적극 대처하는 힘을 얻었음을 뜻한다. 무릇 국가는 ‘어머니 자연’에 대비되는 ‘아버지 상징계’를 상징한다. 이는 주몽 스스로 새로운 아버지상을 정립하여 아버지 콤플렉스를 극복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주몽의 국가 건설은 해결해야할 여러 과제를 지닌다. 먼저, 토착 세력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 주몽은 이에 대해 어떤 대응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a. 기존 권력자와의 대결


“토착 지배자인 비류국의 송양왕이 주몽의 힘을 시험하는 시합을 제안한다.

첫째 시합인 ‘활쏘기’에서 주몽은 무난히 승리한다.

두 번째는 ‘그대 나라의 ‘북과 나팔’에 위엄이 없다.’는 송양왕의 비난에, 주몽의 신하가 비류국의 ‘오래된 북’을 ‘훔쳐와’ 검은 색으로 위장하여 승리한다.

세 번 째는. ‘나라를 누가 먼저 세웠는지’ 따지는 시합이다. 주몽은 궁궐을 지을 때 ‘오래된 나무’로 ‘기둥’을 세워, 천년 묵은 것처럼 위장하여 시합에 이긴다.

마지막에는 주몽이 ‘사슴’을 거꾸로 매달고 하늘에 호소해 “비류국을 비로 휩쓸어 버려라.”는 주문을 외자, 홍수가 난다. 주몽이 백성을 구해주자, 송양이 항복하여 나라를 바친다.“


주몽의 본격적 통과의례는 기성 권력자와의 대결이다. 주몽은 이미 형제들에 대한 힘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노력한 과정에서 타자와 대결 능력을 개발해왔다. 그래서 낯선 대상과의 대결 자체에 위축되지는 않는다. 첫 번째 대결은 활쏘기였다. 활과 화살은 ‘수렵사회’에서 동물을 사냥하고 적을 제압하기 위해 발명한 최초의 문명적 무기이다. 활쏘기가 시합의 중심에 있음은 당대가 아직 정착된 농경사회가 아닌 수렵사회임을 상징한다. 농경사회와 왕조국가에선 활보다 ‘검’이 주요 무기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몽신화는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 환경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

활쏘기는 위협적인 외부대상을 제압하고, 부정적 자극들로부터 자신과 집단을 지킬 수 있는 원초적 방어능력을 뜻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적을 향해 당당히 표출할 수 있는 공격능력을 뜻한다. 주몽은 일곱 형제들과 오랜 대결 과정에서 이 능력을 익혀왔기에,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다.

그런데 두 번째 관문은 그를 당황스럽게 한다. 상대방은 주몽에게 ‘오래된 북’을 지녔다는 징표를 보이라고 요구한다. ‘북’은 깊고 넓게 사방으로 울려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중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광대한 메시지로 혼돈 상황을 질서 있게 만들어 집단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권위가 형성된다. 이런 권위의 최초 모델은 ‘유년기의 거대한 아버지’이다. 그런데 젊은 주몽은 거대한 북소리처럼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위엄 있는 아버지성을 아직 현실에서 경험하거나 실천해보지 못했다. 그로인해 그는 천년을 변함없이 진동하는 든든한 ‘북’의 능력을 아직 형성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 주몽은 오랜 통치 경력을 지닌 경쟁자보다 능력이 떨어진다. 어찌할 것인가? 자신에게 결핍된 근본적 한계에 부딪혀 주몽은 난처해진다.

이때 부하가 나타나 ‘위대한 과업’을 성취하려면 불가피하게 상대방의 북을 ‘훔쳐야한다’고 간언한다. 이 방법은 떳떳하지 못하다. 그러나 젊은 영웅이 노련한 권위자와 대결하기 위해 때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수단으로, 세계 영웅 신화에 종종 등장하는 소재이다. 정신분석에서 ‘훔치기’는 자신에겐 없는 ‘대상이 지닌 어떤 힘’을 ‘동일시’를 통해 자기 것으로 흡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곤경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때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강력한 경쟁자의 힘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통합해야 한다.


셋째는 “누가 먼저 나라를 세웠는지 따져보자!”는 요구로서, 일종의 ‘자존감’ 대결이다. 이 대결에서 지는 개인과 집단은, 氣 꺾인 존재가 된다. 그런데 의식 차원에서 먼저 나라를 세운 것은 송양이다. 이 곤경을 어찌하면 좋은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주몽의 무의식에는 ‘오래된 나무’, 즉 오래된 ‘대타자의 흔적’이 존재한다. 그는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와 해부루의 ‘동부여’ 역사가 곧 천제의 자손인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국가명칭을 처음에 ‘졸본 부여’라 칭했던 것이다. 더구나 신성한 천제의 후손에겐 지상 국가의 역사쯤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이런 자부심 있는 마음가짐으로 인해 주몽은 곤경 상황을 극복하여 시합에서 이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슴’을 거꾸로 메달고서 주문을 외자, 송양의 도읍이 물에 잠겨 무력화된다. 자연정령에게 접촉하여 인간의 소망을 전해 소망을 충족하는 주술능력은, 샤먼왕이 되기 위한 핵심 능력이다. 결국 주몽은 기성 권위자의 항복을 받아낸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지녀온 아버지와 형제에 대한 무의식의 힘 콤플렉스가 극복되는 의미깊은 상황이다. 드디어 그는 스스로 지역을 다스리는 새 나라의 ‘아버지 왕’으로 등극한다. 이로서 힘이 있어도 존재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해온 서자계층, 백성, 중국에 인접한 소수민족의 ‘한’을 상징하는 주몽의 콤플렉스는 극복된다.


b. 민족무의식의 문제 유형


송양왕과의 대결 내용은 고대의 한민족이 새 지도자에게 해결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은 민족의 문제와 소망을 상징한다. 즉, 주몽 이전의 한민족은 외부세력과의 경쟁에서 공격성을 당당하게 분출해본 경험이 없거나 위축되어 있다. 한민족은 자신보다 거대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권력집단인 중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수치감을 겪으며 통제당해 왔다. 최초국가인 고조선이 중국에게 침략당한 이후, 오랜 동안 한민족은 국가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지 못해왔다. 따라서 우리민족에겐 강한 힘을 갖고서 외부세력을 향한 당당한 공격력(활쏘기), 위엄 있는 지도력(오래된 북), 연륜 있는 자존감(오래된 나무), 집단을 위협하는 거대 대상(‘자연’, 중국)을 통제하는 주술적 힘을 지닌 지도자가 절실하다. 그런 영웅에게야 비로소 민중은 진심으로 그를 민족의 보호자, 동일시 모델로 모실 수 있다. 오랜 연륜을 지닌 중국의 보물을 훔쳐서라도 중국을 이겨내거나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비로소, 한민족은 박해불안과 권력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온전한 정신발달을 이룰 수 있다.


(6) 영웅의 최후 : 마지막 과업


영웅의 임무는 이전 지도자(아버지)의 결함이나 부정적 측면을 제거하여, 집단의 막히고 위축된 생명에너지를 순환시키고 해방시키는 것이다. 영웅은 태어날 때부터 기구하게 기존 사회와 부모의 문제를 고통스레 짊어온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환경의 부정적 측면과 치열하게 대결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다.

이제 주몽의 무의식에 남은 소망 내지 마지막 과업이 있다면 자신이 겪었던 부정적 부-자 관계를 집단 차원에서 다시는 반복하지 않게 하는 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40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되거나 새 영웅에게 비참하게 거세당한다. 그래서 현명한 “아버지는 아들(신세대 도전자)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 한다”

한 집단의 생명력은 영웅의 희생적 죽음과 그것에 의한 새 영웅의 등장이 순환됨으로써 유지된다. 이것이 바로 인류 정신의 ‘자율적 균형과 발달’을 지향하는 집단무의식의 움직임이며, 집단이 스스로의 균형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비밀스런 원리이다.


(7) 후손에게 전승된 대타자의 욕망


졸본부여는 2대왕 유리에 의해 고구려로 개칭되고, 유리는 아버지의 모국인 부여와 대결한다. 그러다 그의 아들인 무휼(대무신왕)이 부여를 정복하고 주몽을 괴롭히던 의붓형 대소왕을 죽인다. 결과적으로 주몽의 恨과 무의식적 욕망이 아들과 그 아들에 전승되어 마침내 손자에 의해 대신 충족되어진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근본 ‘소망’이란 유년기에 품었던 (금지된) 욕망을, 성인이 된 후에 초자아 불안(양심의 가책) 없이 마음껏 해소하는 것이다. 주몽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받았던 냉대와 분노를, 결코 직접 그 대상들을 향해 분출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그것을 원치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무의식적 욕망은 교묘하게 자식과 ‘자식의 자식’에게 전승되어, 후손을 통해 초자아 불안 없이 당당하게 충족된다. 먼 선조의 ‘큰 사건’과 소망은 이처럼 오랜 기간의 잠복기를 거쳐 '나중에'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8) 주몽-유리의 공통된 문제와 과업성취 : 아버지 결핍과 ‘아버지성의 확립’


신화 속 영웅들은 종종 기구한 출생 환경으로 아버지가 모호해, 이상적 아버지상이 결핍되어 있다. 영웅이 정신발달을 위해 겪는 통과의례의 성패는, 이 ‘유년기의 결핍’과 당대 사회의 문제를 청년기에 대면하는 과정에서, 과거 상처를 보상ㆍ보충해줄 새로운 조력자를 경험하느냐에 좌우된다. 주몽과 유리는 모두 유년기에 이상적 아버지 경험을 하지 못한 결핍을 지닌다. 반면에 그들은 ‘좋은 엄마’ 경험을 했다는 공통성을 지닌다. 그 헌신적 모성경험에 의해 험난한 자극에도 쓰러지지 않는 강한 '자기애'(과대자기)가 지닌다. 그런데 유리는 주몽과 달리, 민감한 사춘기에 진짜 아버지(주몽)를 ‘현실에서’ 만나 그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주몽처럼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모험ㆍ통과의례 없이 ‘아버지성’을 내면화해 계승할 수 있었다. 그 힘을 바탕으로 훗날 자신이 동일시한 아버지의 소망을 실현하는 기반을 닦을 수 있었고, 그 힘을 자식에게 물려줘 아버지와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게 했을 것이다. '표정, 말, 투사적동일시, 무의식적 욕망' 등을 통해 인간에서 인간에로 보이지 않게 전승되는 무의식의 힘은 이토록 교묘하고 강한 것이다.


(9) 주몽과 한민족의 미해결 과제 : 어머니 애착!


다른 민족들의 영웅신화와 달리 주몽의 통과의례 과정에 (어머니 외에) 여성 조력자가 출현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주몽의 첫째 문제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와 형제에게 분출하지 못했던 공격성과 박해불안의 해소와 권력콤플렉스다. 그는 존경스런 이상화 대상과 자기자신을 동일시하는 대상관계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통과의례 과정에서 그가 의존했던 현실 조력자는 어머니와 세 부하였다. 여기서 물음을 던져보자. 여자에 대한 애착이 없는 듯이 묘사된 신화 속 주몽이미지의 심층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대의 우리민족이 강력한 ‘어머니 애착’을 지니고 있었다는 상징이 아닌가? 그래서 친밀관계를 맺을 다른 여자가 불필요했고 불편했기에 어머니만이 신화에 최고 조력자로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인생 향유를 포기했던 어머니! 자식의 안위와 성공을 위해 자식의 떠나감을 기꺼이 도와주신 어머니! 신화 속 주몽은 박해불안과 권력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를 떠났다. 그런데 그는 진정 어머니 애착에서 ‘분리-독립’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의 대표적 영웅 신화에 어머니의 역할만 부각될 뿐 ‘제2의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세계 신화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이것은 어떤 (유아적) 불안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분리’할 수 없었기에, 어머니의 애정 소유를 둘러싼 부자갈등과 형제갈등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아내의 가치’를 마음속에 진정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고구려인의 정신 상태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