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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신화 분석 : 일본 - 오쿠니누시

관리자
2020-08-29

오쿠니누시 : ‘힘없는 겁쟁이’가 ‘국가 주인’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조건


일본인의 민족무의식이 어떤지 알려면 무엇보다 고대 신화를 이해해야 한다. 고대 일본 신화의 중심에는 스사노오와 더불어 국가의 시조 오쿠니누시가 있다.

일본어로 ‘오쿠니누시’는 ‘큰 나라의 주인(大國主神)’이란 뜻이다. 이 이름은 그가 비범한 힘을 드러내며 국가를 건설하는 왕이 된 후에 붙여진 명칭이다. 왕이 되기 이전의 이름은 오호나무치다. 정신분석 관점에서 볼 때, 오쿠니누시 신화는 나약하고 미성숙한 오호나무치가 위대한 영웅인 오쿠니누시로 변신하는 과정을 표현한 민족서사시다.

오쿠니누시 신화에 상징화된 고대 일본민족의 정신성은 무엇인가? 그 집단정신은 신화 속 주인공을 통해 어떤 소망을 충족하고 무엇을 보충하는가? 이 신화에는 일본민족의 어떤 문제와 그 문제로 인한 곤경, 그 곤경과 대결한 방법에 대해 어떤 지혜의 메시지가 담겨있는가?


신화는 그것을 창조한 당대 집단정신 배후에서 역동하는 이전 세대들의 억압된 무의식을 반영한다. 신화의 중심 목적은 그 민족이 신화를 창조할 당대의 긴장을 해소하는 데 있기보다, 오랫동안 묻어둔 오래된 문제들과 긴장들을 ‘압축’해서 다중으로 해소하는데 있다. 그 오래된 민족무의식의 문제는 과거의 집단의식이 감당하기 너무 버겁고 두려워 억압되어왔다. ‘그것’의 본래 의미는 그것을 감당할 만한 정신성이 등장해야 비로소 의식에로 떠올라 직면되고 해석될 수 있다. 우리 시대에 무의식의 회귀를 기꺼이 감당할 만한 정신성을 지닌 대상은 누구인가?

일본민족이 거쳐 온 오래된 문제들과 방어 유형, 그리고 신화를 생성한 고대인의 정신과 욕망구조를 음미하기 위해 신화소에 대한 적극적 연상과 상징해석에 몰입해보자.


1. 영웅의 정신발달 과정


주인공의 정신이 성장하는 과정을 현대의 언어로 명료화하려면, 먼저 정신분석이 주목하는 정신발달 단계들과 정신성장 조건에 해당하는 신화소에 주목해야 한다. 그 신화소는 다음의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탄생 이전의 조건. 둘째, 유년기 콤플렉스 유형. 셋째, 청년기 통과의례 양태, 넷째, 조력자 유형과 과업 성취 내용. 다섯 째, 영웅의 최후


1) 유년기 환경 : 열악한 가족 내 ‘위치’와 박해불안


<아버지는 왕의 후손이며, 어머니는 아름답고 착한 여인이다. 오쿠니누시는 ‘막내’이며, ‘야소가미’로 불리는 ‘많은 형들’이 있다. 형들은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을 지닌데 비해, 그는 어머니를 닮아 참을성 많고, 정직, 친절하며 형제들 중 ‘가장 잘 생겼다.’>


영웅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어떤 위치’에서 결합하여 아기를 임신하게 되었으며, 태어난 아기의 가족 내 위치는 어떠한가? 고대일본에서 왕과 왕족은 대부분 ‘신성한 영혼’을 지닌 신 또는 신의 대리자로 믿어져왔다. 오쿠니누시의 경우 아버지는 이즈모 지역에 국가를 세운 왕이었다가 지하계의 왕으로 변한 스사노오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이에 비해 어머니는 평범한 가문 출신이다. 고대사회에서 왕은 여러 왕비와 궁녀를 거느렸고, 그들로부터 많은 왕손들이 태어났다. 오쿠니누시에게 팔십 명의 야소가미(八十神) 형들이 있음은 그가 왕과 궁녀나 여사제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 중 하나임을 추정케 한다. ‘팔’은 많음을 뜻하므로, ‘팔십’은 아주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많은 형제들 중에서 신분과 서열이 ‘낮은 위치’로 태어난 것이다.

막내는 형들에 비해 몸이 작고 정신력도 늦게 성장하므로 형제간의 경쟁에서 불리하다. 그런데 때로 그 약함과 불리함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각별한 보호와 애정을 받기도 한다. 그로인해 자신이 부모로부터 가장 총애 받는 대단한 존재라는 과대자기상을 지닌다. 어머니의 애정을 많이 받은 아이는 ‘자기애’가 충족되어 자존감에서 나오는 매력을 지닌다. 반면에 어머니의 애정을 독점한다고 형들의 집중적 시기를 받을 경우, ‘자기’가 손상되는 상처를 입어 박해불안에 시달리곤 한다.

막내의 입장에서 보면, 덩치 크고 힘센 수많은 형들은 자신의 자존감과 행복을 일순간에 빼앗을 위험하고 무서운 박해대상으로 지각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어머니의 애정 깊은 돌봄으로 ‘견실한 구조를 지닌 자기’가 형성될 경우, 부정적 자극들을 견뎌내고 충동을 통제하는 힘을 지닐 수 있다.


오쿠니누시의 정신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유년기의 환경과 주요 관계 대상은 모호하다. 특히 ‘아버지’의 역할과 특성이 애매하며, 6대 조상이자 지하계의 신(왕)인 스사노오가 동시에 아버지로도 묘사된다. 이러한 불합리성은 신화가 ‘역사적 사실’의 기호이기 보다 민족무의식의 소망과 목적을 담은 ‘초시간적 상징’이라는 데에 기인한다. 신화의 세계에선 무의식에서처럼 ‘시간의식’이 없거나 의식의 시간기준과 매우 다른 것이다.

막내만 성격이 좋고 형들의 성격이 모두 포악하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대비되는 성격은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라는 뜻과, 오쿠니누시를 영웅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그에 대립되는 대상일반을 ‘형들’로 상징화한 것이다. 그는 서열이 낮은 후궁에게서 태어나 힘 콤플렉스와 박해불안을 지녔던 수많은 ‘서자’들을 대변하는 원형적 인물상이다.

그렇다면 그의 최초 정신성 형성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을 최초양육자인 ‘어머니의 무의식’은 어떠한가? 그리고 정신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타자인 당대 사회 환경은 어떠한가? 당대 사회문화가 그에게 어떤 욕망과 ‘자기이미지ㆍ대상이미지’를 갖게 했을까? 어머니가 평범한 신분의 여인이고, 그가 형제관계 서열에서 맨 아래였다면, 그는 자신에 대해 낮은 존중감을 지닌 ‘힘없는 정신성’ 요소를 지닌다. 부모의 총애를 듬뿍 받은 막내가 지닌 숨겨진 야망과 출신성분과 서열이 낮은 데서 오는 열등감의 두 대립 요소는 통합되지 못한 콤플렉스인격인 오호나무치로 표상된다.


2) 사춘기 통과의례 : 격동기의 파노라마


사춘기는 촉발자극들에 의해 유년기 콤플렉스가 재활성화되는 시기다. 아울러 오래된 무의식이 의식에로 회귀해, 젊은이들(민족)에게 대결을 요구하는 격동기다. 이 격동기를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소년(민족)은 늠름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도 있고, 힘없는 아이로 퇴행할 수도 있다.

정신의 위대한 변환(transformation)을 일으키는 비밀열쇠는 험난한 통과의례 과정에 있다. 이 과정은 일차적으로 ‘어머니’로부터 분리-개별화되어 사회의 규범체계에로 진입하는 아동기에 시작된다. 그러나 유년기의 그 고통스런 경험흔적들은 대부분 무의식에로 억압ㆍ망각된다. 유년기 이후에 ‘주체적’ 의식을 가지고 직면하는 본격적 통과의례 경험과 정신의 전환은 사춘기와 청년기에 발생된다. 이 시기의 통과의례 양태는 인류 차원의 공통성과 각 민족마다의 차이성을 함께 지닌다.

오호나무치가 직면한 첫 번째 통과의례는 신화에서 ‘성대상의 애정 획득’ 경쟁으로 형상화된다. 그는 이나바의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형들을 쫒아’ ‘고향을 벗어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공주를 얻는 자는 사회적 권력을 얻는 동시에 남성적 자부심이 높아진다.


<형들은 오호나무치에게 자기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게 하는 등 잔인하게 다룬다. 큰 포대 짐을 힘들게 짊어진 그는 ‘형들에게 뒤쳐져’ 이나바를 향해 간다.>


사회적 위치와 신체의 힘에서 경쟁자들에게 밀리는 자는 힘센 타자들의 냉대를 원망하면서도 묵묵히 살 수밖에 없다. 중국과 한국에서 전해진 유교의 영향으로 고대 일본에서 형과 동생 간의 위계 서열은 엄격하였다. 힘없는 개체는 감히 사회의 거대한 가치질서에 도전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없다. ‘종’처럼 천대받으며 형들의 포대를 짊어진 오호나무치의 모습은 무기력하고 목적의식도 없고 천하게까지 보인다. 그런데 무릇 통과의례 ‘과정’에 있는 자는 대부분 천하고 추하다. 아이의 귀여움을 상실했으며 청년의 늠름함을 아직 형성하지 못한 사춘기 소년은, 삶의 목표와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한 애매한 존재이기에 천하고 추하다. 그가 신체에 짊어진 ‘포대’는 아직 독립된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은 성기표피(포경)나 소년을 감싸는 모성적 영향력의 상징인 ‘자궁’을 연상시킨다. 미성숙하고 약한 그가 강한 존재로 ‘전환’되려면, 그 포대를 과감히 벗어던지거나 형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비상한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런데 ‘당당한 남자’로 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매력 있는 ‘여성을 얻는 경쟁’에서, 그는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 불리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외부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보충하는 뜻밖의 체험이 필요하다.


(1) ‘토끼’와의 기연 : 최초 조력자와의 만남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상처입고 ‘아파서 우는 토끼’를 만난다. 토끼는 원래 ‘섬’에 살고 있었는데 육지로 오고 싶어 꾀를 내어 ‘악어들’을 징검다리 삼아 ‘등을 밟고’ 건넌다. 그런데 건너던 마지막 순간에 그만 ‘너희들은 속았다’고 성급히 말해, 악어에게 보복당해 가죽이 물어 뜯겨 벗겨진 상태다. ‘알몸의 토끼’는 길에서 만난 야소가미들이 ‘바닷물에 몸을 담근 후 바람에 말리면 좋다’는 말을 믿고 실행했다가 더 큰 고통 상태에 빠져있다.>


처량한 토끼는 무엇의 상징인가? 신화는 인류와 민족이 꾸는 꿈이다. 꿈에 ‘아파서 우는 처량한 토끼’가 나올 경우, 그것은 몽자(민족) 자신의 무의식 일부를 반영하는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 험악한 야소가미들과 오호나무치의 관계는 악어들에게 상처입고 우는 토끼와 유사하다.

토끼가 저지른 행동은 현실에서 좌절되고 억압된 오호나무치의 무의식적 욕망을 반영한다. 가령 토끼(오호나무치)는 ‘답답한 섬’을 벗어나 뭔가 ‘좋은 대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육지’(이나바)로 가고 싶어 한다. 토끼처럼 조그만 그는 크고 힘센 악어들을 미련한 놈들로 ‘얕보고’ ‘속이고’ 싶어 한다. 형들의 짐을 대신 ‘등에 지고’ 형들보다 ‘뒤처져’ 가는 현실은, 악어들의 ‘등을 밟고’ 육지를 향해 신나게 ‘달려가는’ 환상으로 바뀐다. 그러나 육지에 도달하기 직전 순간에 그만 형들을 비난하고 경멸하는 자기 속마음을 노출하는 실수를 저질러 보복당하고 만다. 이것은 무의식(이드)의 금지된 소망(환상)이 초자아에게 발각되어 처벌당할까봐 두려워, 일종의 타협책으로 ‘자기를 처벌’해 초자아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내면상태를 반영한다. 신화 속 ‘악어들’은 오호나무치의 안전과 행복을 위협하는 현실의 형들, 지배계급, 보수적 사회제도 등을 다중으로 상징한다. 토끼는 서자, 막내, 권력에서 소외된 민중, 새로운 가치관, 낮은 단계의 영웅, 그리고 굴(섬)에 숨어있다 외부세계로 출현하기에 ‘부활’ 능력을 상징한다.


오호나무치는 의식 차원에서는 순종하는 착한 동생(백성)으로 행동하지만, 무의식에선 형들을 얕보고 속이며 좌지우지하고 싶어 한다. ‘좁은 섬’은 민중들에게 답답함과 박해불안을 유발했던 고대일본의 특정집단과 폐쇄적 가치체계를 상징한다. 토끼는 ‘지혜’를 통해 불공정한 권력위계를 변화시키려는 낮은 단계의 영웅상이다. 오호나무치는 기존의 사회체제에서 겪는 심한 박탈과 좌절로 인해, 자신과 사회전통 모두가 바뀌기를 갈망하는 ‘냉대 받는 민중’의 상징이다.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토끼처럼 지혜를 내어 악어들의 ‘등을 밟고’ 목적지에 빨리 달려가 ‘공주와 결합’해야 한다. 그런데 토끼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과 준비가 아직은 부족한 단계의 존재다. 악어들과 당당하게 대결할 용기와 힘이 부족했기에 ‘꾀’를 쓴 것이고, ‘실수’를 한 것이며, 결국은 보복당한 것이다. “가죽이 벗겨진 알몸의 토끼”는 ‘거세’와 박탈, 박해불안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위축된 오호나무치와 일본민중의 상징이다. 신화 속 오호나무치는 아직 영웅이 아닌 토끼 상태에 있다.

야소가미들은 상처받은 토끼에게 조금의 연민과 배려를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고통을 심화시키는 잔인한 처방을 말해준다. 그 말을 믿고 따른 결과 토끼는 고통이 심해져 죽을 지경에 이른다. 오호나무치에게 형들은 결코 믿을 수 없고, 믿었다가는 상처를 입히는 잔인한 동물이다. 이 신화소는 고대 일본에서 서자ㆍ書生ㆍ민중의 무의식에 억압된 무서운 권력을 지닌 적손ㆍ무사ㆍ지배계급에 대해 축적된 상처, 불안, 불신, 피해의식을 반영한다.


<토끼가 도움을 청하자 오호나무치는 “‘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꽃가루 위에서 구르라”고 치료법을 알려준다. 회복된 토끼는 그에게 ‘예언’을 한다. “당신은 지금 짐을 운반하며 신분도 낮지만 공주와 결혼하게 될 것입니다.”>


토끼의 요청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청한 것인가? 이것은 신화를 창조한 주체인 고대 일본인의 ‘집단무의식’이 당대의 고통스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집단의 새로운 영웅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꿈에서 누군가를 치료해주거나,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받아 병에서 회복함은 기존 ‘정신 상태의 큰 전환’을 암시한다. 치료한 주체나 회복된 대상이 자기 자신일 경우, 이는 단절되었던 무의식의 에너지가 의식과 소통됨으로써, 정신이 뜻밖의 활력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토끼는 비록 몸이 작고 약하지만 ‘뜻밖의 힘’을 지닌 영웅상이다. ‘그’는 ‘예언’을 통해 주인공의 소망 성취와 정신 성장에 기여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꿈에 등장하는 ‘말(언설)’은 무의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이다. 고대인에게 ‘말’은 곧 ‘사실’ 내지 사실을 실현시키는 힘을 지녔었다. 토끼의 ‘예언’도 신기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암시된다.

개인과 민족이 연약하고 위급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그는 먼저 박해불안에 시달리는 ‘편집분열 자리’를 극복하여, ‘상처 준 대상’을 ‘회복’시키려 배려하는 ‘우울 자리’에 도달해야 한다. 그런데 오호나무치는 과연 박해불안을 극복했는가?


(2) 성대상 획득 : 공주의 선택을 받음


<공주는 먼저 도착해 청혼한 야소가미들을 모두 거절한다. 그리고는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잘생기고 성품 좋다고 소문난 오호나무치입니다”라고 말한다.>


남자가 욕망하는 여성은 신화에서 주로 ‘공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공주의 마음을 얻거나 가까이 접촉하는 자는 아니마가 보충되어 심신의 질과 능력이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그는 주목받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에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경쟁자들 앞에서 ‘공주’에게 ‘최고의 남자’로 선택받는 장면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소되는 표상이기도 하다.

사춘기에 뭇 사람들이 욕망하는 여성에게 사랑을 얻는 남성은 유년기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벗어난다. 이에 비해, 욕망 대상을 경쟁자에게 빼앗긴 자들은 오이디푸스 상처가 증폭되어 병리적 불안정 상태에 처하게 된다. 더구나 자기보다 힘없다고 느껴온 대상에게 욕망대상을 빼앗길 경우, 그의 자존감은 더 깊이 하락한다. 상처 난 ‘자기’를 회복하려면, 분노를 외부대상을 향해 직간접적으로 분출해야 한다.


야소가미들은 막내에게 분노한다. 이 분노의 원인과 의미는 무엇인가? 정신분석의 눈으로 본다면, 최초 양육자이자 최초 애정대상인 어머니의 사랑은 대부분 장남과 막내가 독점한다. 그런데 장남의 경우엔 그 사회가 인정하는 특권과 더불어 아버지에 버금가는 의무와 책임을 떠맡는다. 따라서 동생들이 공격성을 당당히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막내가 ‘권력과 애욕’의 상징인 공주를 차지할 경우, 형들의 위세와 자존감은 막내보다 아래로 추락한다.

“으. 내가 저 꾀죄죄한 녀석보다도 보잘 것 없는 존재란 말인가. 세상이 뒤집히는 구나!”

자신의 ‘위치’가 불안정해져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파괴욕동이 내부에서 솟구치며 자존감 회복을 촉구하는 초자아의 잔인한 명령이 작동된다.

“죽여라. 감히 형들의 뒤통수를 치는 엉큼한 나쁜 놈을 죽여 질서를 바로잡아라!”


(3) 두 번의 죽음과 부활 : 정신 변환의 입문 과정


<야소가미는 불에 달군 바위를 ‘붉은 멧돼지’로 속여 산 위에서 골짜기 아래로 굴러 내리면서 그걸 오호나무치가 막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그는 ‘불덩이를 몸으로 막다가 데어’ 죽는다.>


‘왕’이 되기 위한 경쟁관계에 놓여있는 형들의 공격은, 오호나무치가 감당해야할 실존 문제다. ‘멧돼지’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거친 공격성으로 인해 서양에선 ‘전쟁의 신’(아레스)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아레스는 멧돼지로 변신해 연애 경쟁자인 아도니스를 찢어 죽였다. ‘붉은 멧돼지’는 격노하는 야수성, 거대한 ‘불덩이 바위’는 통제하기 힘든 파괴욕동의 상징이다. 야소가미의 명령은 고대의 무사계급이 일본민중에게 행했던 가혹한 명령을 반영한다. ‘불덩이에 데어 죽음’은 감당할 수 없는 강한 자극에 방어막이 파괴되는 상처(트라우마)를 입어 무기력 상태에 처했다는 의미다. 지배자들의 사나운 행동에 일본민중은 주체성을 상실한 채 이처럼 거세당해왔을 것이다.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껴안고 ‘천상의 신들’에게 지극 정성으로 호소한다. 정성에 감동해 신들은 ‘붉은 조개’ 여신과 ‘대합’ 여신을 보낸다. ‘조개껍질 가루를 대합 즙에 녹여 오호나무치의 몸에 바르자 ‘더욱 멋진 남자로 살아났다.’>


오호나무치의 ‘죽음’은, 그가 ‘힘없는 존재’에서 위엄을 지닌 성인으로 전환되기 위한 본격적 입문의례 과정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꿈에서 ‘나의 죽음’은 콤플렉스의 소멸과 정신구조의 획기적 변화를 상징한다. ‘천상의 신들’이란 초인적 힘을 지닌다고 믿었던 자연 정령들, ‘마나’(비범한 힘)를 지닌 토템, 조상, 샤먼, 왕, 유년기 부모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합 여신’과 조개 여신은 생명력, 생식력, 여성성의 상징이다. 동서양에서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비밀스런 기능은 ‘자궁과 젖을 지닌’ 모성적 여성에게 있다고 믿어졌다. 죽은 오시리스를 부활시킨 이시스, 죽은 아도니스를 부활시킨 아프로디테, 지하계의 페르세포네를 지상계로 부활시킨 데미테르 등은 모두 여신들이다. ‘붉은 조개’는 생명력이 왕성한 자궁을, ‘대합의 즙’은 치유력과 생명력, ‘양수’와 ‘모유’의 상징이다.


두 여신이 자신의 몸에서 즙을 짜내어 오호나무치의 몸에 발라주자, ‘새 피부’가 돋아나 더 멋지게 소생한다. 고대인에게 ‘새 피부’는 새 생명의 상징이다. 가령 뱀은 매년 ‘낡은 껍질’을 벗고 새 피부를 얻기에 영생하는 존재로 믿어졌다. 무릇 곰, 개구리, 뱀 등과 잎이 메말라 죽었던 식물들은 겨울동안 죽은 듯이 자연의 품(지하, 동굴)에 있다가 이듬해 봄에 대지(地母神)로부터 생명력을 받아 생기 있는 피부를 드러내며 되살아난다. 마찬가지로 상처입고 쓰러진 인간도 생명력 넘치는 여성(자연, 모성신)의 에너지와 ‘접촉’하면, 부활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원시인들은 인간과 자연에 담겨있는 ‘精靈’을 주술에 의해 영생시킬 수도 파괴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 ‘주술적 사고’를 지녔다. 강력한 주술능력을 지녔다고 믿어진 자가 바로 제사장(샤먼)과 왕이다. 정신분석 관점으로 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기적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던 존재는 다름 아닌 ‘유년기의 부모’다. 아이가 못 견디게 고통스러워할 때 부모는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낸다. 아이에겐 유년기의 부모는 신 같은 해결사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도 감당키 힘든 뜻밖의 위기에 처할 경우, 무의식적으로 ‘아버지, 어머니’를 외치게 된다. ‘어릴 적 부모’의 전능한 힘과 도움이 다시 한 번 나타나 곤경에서 구원해주기를 갈구하는 것이다. 의식의 세계에선 그 기도 대상은 ’신‘으로 형상화된다. 그렇다면 ‘천상의 신들’이란 유년기 부모를 대리해 백성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토템, 조상, 왕, 샤먼들일 것이다.


<오호나무치가 살아나자, 야소가미들은 그를 ‘커다란 나무 틈 사이에 끼워’ 죽인다. 이번에도 어머니가 아들을 살려 낸다.>


고대사회에서 ‘큰 나무’는 오래 사는 생명력으로 인해 집단의 수호토템(神木)으로 간주되곤 했다. 옛날부터 현재까지 일본인은 ‘큰 나무’를 신성한 정령이 깃들었다 보고 왕궁이나 신전을 짓는데 사용해왔다. ‘큰 나무’는 토템, 왕과 왕족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큰 나무’ ‘사이에 끼워’ ‘압사시킴’은, 왕족의 권력과 권위를 사용해 그를 맥 못쓰게 ‘거세’했다는 의미다. 이번에도 ‘어머니의 조력’에 의해 구조된다. 죽은 자식을 두 번이나 살려낸 존재가 어머니라면, 그녀는 정령들과 교류해 병자를 회복시키는 주술력을 지닌 여사제(무녀)일 가능성도 높다. 고대 사회의 신전 여사제들은 강한 남성과 결합해 대지와 집단의 침체된 생식력을 순환시키고 집단의 병을 치유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무릇 ‘죽음과 재생’은 새로운 능력을 얻거나 새로운 존재로 ‘전환’하기 위해 영웅이 거쳐야하는 핵심 통과의례 과정이다. 그리고 고대사회에서 집단의 ‘지도자’는 죽음불안을 극복시키고 집단생명력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저승에 갔다가 돌아온 부활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믿음을 집단구성원에게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호나무치의 ‘죽음과 부활’은 곧 그가 영웅이 되기 위한 전형적 의례를 거치고 있음을 상징한다. ‘불덩이 바위를 몸으로 막으라’는 요구는 당시 ‘전사’에게 요구된 죽음을 초월하라는 명령의 표상이며, ‘큰 나무 틈새’에 끼어 압사됨은 권력집단 사이의 대립을 매개하고 통합하는데 목숨을 걸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집단을 수호하는 제사장(샤먼)은 잠시 이승을 떠나 타계를 방문하는 능력을 지닌다. 그리고 타계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 접촉했던 ‘신’에게서 병이나 재난을 치유하는 비범한 힘이나 지혜를 얻어 온다. 오호나무치의 ‘죽음과 재생’은 집단이 직면했던 죽음불안과 고통스런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집단이 제사장에게 요구했던 치료적 무속의례의 상징이다.


(4) 지하세계로의 모험 : 정신성의 마지막 전환 작업


<“여기 있으면 살해될 것이니 스사노오가 있는 지하계로 피신해 살 길을 모색하라”는 ‘어머니의 말’에 오호나무치는 지하계로 들어간다.>


왕이 되려는 경쟁관계 집단이 가하는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어머니의 돌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데 최고 권력자로부터 존재가치를 ‘인정’ 받거나 보호받는다면, 타자의 혹독한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수많은 왕손들 사이에서 험난한 경쟁을 뚫고 왕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법과 권력의 근원이자 모델인 ‘왕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지하계 왕의 인정을 받는다면 야소가미라도 함부로 위협할 수 없다. 그래서 박해불안 때문에 ‘참자기’와 욕망을 포기한 채 살던 고대일본 민중의 무의식은, 새로운 에너지와 접촉해 정신력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 오호나무치를 ‘지하계’로 보낸다.


지하계는 죽음의 세계다. 고대 일본인에게 저승은 비록 낯선 他界이지만 지상과 유사하게 정령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지각된다. 이런 지하계로 들어감은 기존 삶에 대한 애착을 전적으로 포기함을 의미한다. 그는 이미 불에 피부가 파손되었다 회복되었을 때, 나무 사이에 피부가 눌려 죽었다 재생됐을 때, 기존 피부를 버리고 ‘새로운 피부’를 얻은 경험이 있다. 이처럼 반복되는 ‘탈피’는 (뱀이 ‘탈피’할 때마다 더 성장하듯이) 생명력이 강인해져 존재가 고양됨을 상징한다. 고대의 성인식 의례는 아이를 괴물에게 잡아먹히게 하거나 남근표피를 잘라내고 자연에 얼마간 방치한다. 이는 아이의 정신-신체를 상징적으로 죽였다가 적절한 시간이 지난 후에 재생시킴으로써 새로운 ‘정신-신체’를 지닌 성인이 되게 하는 내용과 형식(구조)을 지닌다. 이나바의 토끼가 ‘가죽이 벗겨져’ 죽을 고생하다가 새 살이 돋아 ‘회복’한 후 ‘토끼 신’으로 변하듯이, 나약한 오호나무치도 성장을 위해선 지상의 삶을 탈피하는 죽음의 모험을 필요로 한다. 태내로 들어가듯 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간 지하계는 처음에는 母神 이자나미의 영역이었고, 지금은 스사노오가 통치하는 영역이다. 그의 방문 목적은 우선 야소가미에 대한 박해불안을 이겨내어 ‘자기’의 야망을 실현하는 당당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스사노오의 딸인 스세리뷔메를 만나자,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그 자리에서 결합한다. 몇 주 후 그녀는 아버지에게 ‘멋진 남자’가 왔다고 오호나무치를 소개하자 ‘추한 남자로군’ 하며 그에게 시험을 내린다.>


‘타계 여성’을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해 결합하는 장면은 ‘눈이 띄는’ 대목이다. 융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무의식과 의식이 상호 소통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새로운 정신발달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그동안 일본민중이 절실히 보충하고 싶어 했던 자신의 ‘아니마’(여성성. 성대상)에너지를 대면ㆍ결합ㆍ통합하여 정신의 균형을 회복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아니마 통합은 남성성을 강화하고 총체적 인격(‘자기’)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다. 프로이드의 관점에서 보면 어머니 외의 제3 여인과의 성적결합은 무의식의 유아성욕이 성인의 성기욕동에 통합되어 성욕동의 성숙한 발달을 이루어냄을 의미한다. 성적 결합을 통해 좌절된 유아성욕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성숙한 정서발달과 자아발달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스 창조신화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신화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 또는 기존 권력자와 새로운 영웅 사이의 대결에서 암암리에 큰 역할을 하는 조력자는 선임왕(아버지)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어떤 여인이다. 동서양 신화에서 선임왕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비범한 존재인 그 여인은 주로 선임왕의 딸이거나 아내이다. 그 여인과 ‘결합’해 그녀의 힘을 흡수해야 젊은 영웅은 기존 권력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스사노오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던 스세리비메는 오호나무치에게 어머니를 대체할 제2의 보호자이자 제2 성대상이다.


스사노오의 딸이라면 그녀는 오호나무치와 인척관계다. 옛 일본의 왕족에서는 신성한 혈통과 권력의 안정된 보존을 목적으로 근친결혼이 행해졌다. 바빌론과 동서양의 여러 지역에서 왕은 자신의 딸을 신전의 여사제로 임명하곤 했다. 그리고 곡물과 동식물의 생식력을 좌우하는 여신을 모시는 여사제들은 집단의 생식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강한 남성들과 결합해 아이를 낳곤 했다. 아버지가 불분명한 그 아이들 중에서 다음세대의 왕과 제사장이 나온다. 아버지의 권위와 힘의 원천인 황금양털을 이방인 연인에게 넘겨준 메데이아, 자신의 오빠(미노타우로스)를 죽일 대상(연인 원수)을 도운 아리아드네, 아버지의 금기 명령을 어기고 외부 남자와 결합해 자식을 낳아 결국 아버지를 파멸시킨 디나에처럼, 스세리비메 역시 오래된 권력자(아버지)의 ‘신성한 힘’과 권위가 새로운 연인(영웅)에게 옮겨가게 도와주는 여성조력자의 전형이다.


딸이 애인을 ‘멋진 남자’라고 소개하자 스사노오가 ‘추한 남자’라고 반응함은 무슨 의미인가? 일차적으로 아직 당당한 남성성을 지니지 못해 지하계로 도망 온 ‘못난 놈’이란 뜻일 수 있다. 또는 딸의 마음을 빼앗아간 새 경쟁자에게 오이디푸스적 질투와 경계심을 투사한 것일 수도 있다. 스사노오는 어머니 없이 태어나고 자라서 모성 결핍이 큰 존재다. 그래서 스세리비메는 정신의 안정을 제공하는 중요 대상의 상징이다.

변화 없던 지하세계에 매력 있는 젊은 남자가 출현함은 이미 선임왕(아버지)의 전성시대가 위협받거나 지나갔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신세대의 상징인 딸의 긍정적 대상표상과 대비되게 첫 대면 순간에 새로운 존재의 가치와 매력을 부정한 것일 수 있다.


스사노오는 젊은 도전자에게 세 가지 시험을 부과한다. 그가 내린 시험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자기 자신과 존재일반의 ‘전환’을 갈망하는 자가 대면하는 시험에는 여러 의미들이 압축되어 있다.

시험에는 일차적으로 새 도전자가 과연 기성 권력자를 넘어서는 강한 힘을 지녔는지를 확인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리고 시험 문제를 내는 주체가 오랜 동안 경험했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 무의식의 어떤 문제에 대한 시험이 담겨있다. 그 민족에게 본성인 양 반복되는 무의식의 오래된 문제들을 새 인물이 어떻게 대면하고 풀어내는지는 민족의 관심사이다. 그 시험을 거치는 과정에서 새 인물이 힘없이 ‘거세’될 보통의 유한한 존재인지, 아니면 비범한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영웅인지가 드러난다.


3) 통과의례 : 大他者의 요구들


<스사노오는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방에서 자라”고 요구한다. 스세리비메는 오호나무치에게 ‘뱀의 지느러미’를 건네주며 “뱀이 물려들면 지느러미를 ‘세 번’ 흔들어 쫓으라”고 알려준다.>


첫째 시험은, ‘독사 떼’ 속에서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독사’란 무엇인가? 자연의 신비한 이치를 파악해 겨울에 사라졌다가 봄에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부활하는 뱀을 고대인은 지혜와 생명력의 영물로 믿었다. 인간을 창조한 중국의 창조여신 복희는 뱀의 몸으로 묘사되며. 주역의 12간지에서 뱀은 지혜(天文)의 상징이다. 서양에서는 죽음과 병의 고통에서 구원해주는 ‘의술의 신’ 에크레시우스의 상징이 뱀이다. 따라서 집단을 보호하는 지혜와 생명력을 지녀야 하는 지도자는, 지혜와 생명력의 상징인 뱀과 교류해 그것의 힘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독사는 치명적 독을 지닌 존재다. 독은 영혼과 신체를 마비시켜 취하게 하거나 썩게 한다. 그렇다면 ‘독사’란 심신을 마취시켜 무력하게 만드는 위험한 힘을 지닌 어떤 대상이다. 고대인의 생명에 치명적 위협을 줄 대상은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인류학 차원에서 외부의 적들, 노쇠한 지도자, 타부를 어긴 자 등을 의미한다. 정신분석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유아의 정신을 집어삼켜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하는 자기애적 남근엄마, 정신을 점령하는 악령, 그림자, 콤플렉스를 뜻한다.

사악한 ‘독’에 빠지면 현실 판단 능력을 상실하여, 현실이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이 점에서 ‘독’은 ‘중독’을 유발하는 유혹(과잉자극), 쥬이쌍스와도 연관된다. 어린시절에 엄마와의 안온한 관계경험이 결핍되거나 유아성욕 충족이 심하게 좌절된 사람은, 고통을 준 믿을 수 없는 ‘현실 대상’ 대신에 자신의 욕구를 안전하게 충족시켜주는 듯한 환상, 돈, 상품, 마약, 술, 권력 등에 의존하여 불안을 해소하고 결핍을 보충하려든다. 중독자들은 원치 않는 위험한 자극들로 가득 찬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환상세계나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 휴식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독사에 물려 독 기운에 취하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무의식의 성환상을 자극하는 대상들이 그대를 유혹한다면, 당신은 그 대상에 빠져드는 걸 거부하겠는가? ‘행복한 삶’을 갈망하는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런 유혹을 과연 벗어날 수 있는가? 심신을 마비시키는 몽롱한 쾌락 속에서 아늑히 퇴행시켜주는 대상을 만난다면, 현실세계에서 굳이 뭔가를 애써 이룩하려 들겠는가? 이 물음에 대한 반응은 개인의 정신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자기’가 취약한 사람에겐 쾌락욕구보다 안전욕구 내지 안전한 대상관계 욕구가 우선적 관심사다. 그래서 외부환경과 외부대상이 정신과 육체 모두에 ‘안전감’을 보장해줄 경우에야 비로소 성욕동과 성적 쾌락에 관심 갖게 된다.


영웅이 감당해야만 하는 일차 시험인 ‘독사들과의 동침’에는 이처럼 여러 의미들이 압축되어 있다. 그 중에서 핵심의미를 알려면, 시험을 부과하는 주체의 무의식을 주목하여 파악해야 한다. 통과의례를 부과하는 주체는 통과의례 참여자들의 무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大他者(상징계, 왕)이다. 오쿠니누시가 출생하기 이전의 신화에서 스사노오는 애정결핍을 채우려고 천상계를 금기를 깨뜨려 혼란에 빠뜨렸고, 지상으로 추방되어선 음식여신과 괴물을 처치한 점에서 파괴욕동의 표상이었다. 그런데 오쿠니누시 신화에서의 스사노오는 당대 상징계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팔루스(힘과 의미의 근원)’를 상징한다. 고대일본의 상징계는 백성들이 보기에 여러 결함들을 지니며, 집단의 ‘팔루스’인 스사노오도 결여를 지닌다. 백성들의 선망 대상인 大타자 자체가 결함을 지닌 유한한 존재인 것이다. 이런 단편 해석들을 재구성해보면, 첫 번째 시험에는 大타자가 해결하지 못한 어떤 정신적 ‘한계’가 담겨있다. 스사노오와 고대일본사회의 한계를 언어로 표현해보자.


“과거의 나는 어머니의 애정이 결핍되어, 아버지가 부여한 임무를 거부하고, 천상계에서 금지된 욕망을 표출하는 타부를 범했었다! 그래서 지상국가 건립을 완성하지 못은 채, 죽은 어머니의 영역인 지하계에 머물고 있다. 나의 후손인 그대는 나와 별다른 존재인가?”


첫째 시험은, 뱀의 거대한 입에 삼켜지거나 독에 마취됨 없이, 정신을 파괴하거나 흥분시키는 치명적 독과 그 독을 지닌 대상들에 대한 통제능력을 보이라는 의미다. 지도자가 되려면 ‘독사 무리’에게 점유되거나 파괴됨 없이 냉정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뱀의 지느러미’를 ‘세 번’ 흔드니까 뱀들은 접근하지 못한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지느러미는 ‘옷’ 내지 보호막을 상징한다. 중국신화의 ‘순’도 위급 상황에서 용 지느러미가 그려진 옷을 입자, 용이 되어 곤경을 극복한다. 이처럼 고대 시대에서 특정한 색과 대상 그림이 그려진 ‘옷’은 곧 그 대상이 지닌 본질적 힘을 상징한다. ‘뱀 지느러미’는 뱀의 신령한 힘을 상징하며, 그것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뱀에 대한 주술적 통제능력을 지닌 자이다. ‘뱀 지느러미’는 또한 죽은 자를 회생시키는 주술도구인 “히레”라는 천을 뜻하기도 한다.


‘세 번’의 ‘셋(三’)은 안정성, 충족, 완전성의 기호이다. 남성이 정서발달을 위해 필요로 하는 세 여성은 양육자로서의 유아기 엄마(최초 대상), 오이디푸스기의 애정대상인 어머니(최초 성대상), 그리고 사춘기 이후에 만나는 연인(제2 성대상)이다. 이 세 대상과의 관계가 적절히 만족되어야, 애정을 갈망하는 반복되는 결핍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행히도 스사노오와 달리 오호나무치는 유년기의 어머니, 이나바의 공주, 지하계 스세리비메와 만족스런 애정대상 관계를 경험했다. 그의 정신과 육체 속에는 이미 각기 다른 힘을 주는 세 명의 여성이 ‘내적대상’으로 자리 잡아 그를 보호하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애정결핍과 연관된 ‘대상 허기’(object hunger)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흥분 자극과 유혹 대상을 욕망하지 않음을 ‘세 번’ 흔들어 알린 것이다. 따라서 독사들은 강력한 독과 이빨로 그의 육체와 정신에 침투해 그를 좌지우지할 수가 없게 되어, 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스사노오는 “독 지네와 벌들로 가득 찬 방에서 자라”고 요구한다. 스세리비메는 지네와 벌의 ’지느러미‘를 빌려준다.>


두 번째 시험은 지네와 벌 떼와의 동침이다. 다리가 수십 개인 지네는 ‘놀이치료’에서 유아기 상처가 깊은 아이들이 자주 선택하는 놀이대상이다. 아이들이 섬뜩한 이 대상을 놀이기구로 선호하는 이유는, 현실의 ‘어떤 대상’을 놀이에서나마 상징적으로 ‘통제’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네는 무엇의 상징인가? 그것은 자식을 자신에게서 못 벗어나게 수십 개의 팔다리로 간섭하며 좌지우지하는 ‘자기애적 남근 엄마’와 상처주며 박해하는 대상을 상징한다. 지네의 다리들과 독에 불안해하고 몽롱해진 아이들은 자기의 개성과 활력을 상실한 채 ‘엄마가 원하는 인생’을 비몽사몽 살아간다. 그러다가 아이가 심각한 현실 부적응 행동을 보이면, 그제야 그 엄마는 원인도 모른 채 당황해 한다.


‘벌’ 역시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독침’으로 쏘는 가혹하게 ‘침범하는 엄마’ 내지 파괴욕동에 지배받는 가혹한 초자아의 상징이다. ‘벌 떼’는 엄마에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유아의 꿈에 종종 나타나는 원초적 파괴욕동ㆍ박해불안 이미지로서, 위협하는 집단 환경을 상징한다.

지네와 벌은 모두 ‘독이빨과 독침’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자아의 방어막을 뚫고 침투해 ‘뜻밖의’ 상처를 입히는 무서운 무기이다. 벌 떼 같은 무리로부터 독침을 정신없이 쏘이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원시인류의 경험 흔적들이 유전된 그대의 본능으로부터 어떤 반응이 느껴져 오는가? 단 하나의 대상으로부터 받는 비난조차 때로 감당하기 힘이 든다. 그런데 독을 내뿜는 무리에 의해 사방팔방에서 공격당한다면 당신의 정신은 어떻게 되겠는가?

벌 떼는 독 묻은 칼날로 난도질하듯 개인을 평가 심판하여 매장시키는 타자들 내지 집단의 평가적 시선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두번째 시험은 집단의 어리석은 요구나 부정적 비난들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이 버티며 집단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력이 있음을 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박해불안에 시달렸을 백성을 안심시켜줄 만큼, 적들과 악령들의 위협을 꿋꿋이 ‘버틸 능력’이 있음을 보이라는 집단무의식의 요구를 상징한다.


‘참자기’(true self)를 지닌 자는 부정적 외부자극들을 받더라도 스스로를 달래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며, 난관을 창조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지닌다. 그렇다면 이 시험은 고통자극들에 함몰되기보다 그것을 창조적으로 이용하는 ‘참자기’ 능력을 지녔음을 보이라는 요구다.

지네와 벌 떼와 ‘한 방에서 자라’는 요구는 ‘나쁜 대상’들을 자아에서 분열시키고 회피하기보다 직면하고 교류하여 통합하는 능력을 보이라는 뜻이다. ‘지느러미’는 ‘유사성’을 지닌 것끼리는 서로 소통한다는 주술적사고에 의해 매개능력의 상징이다. ‘왕’이 되려면 보통사람이 두려워하는 무리들과도 교류해 그것을 제어할 수 있어야한다.

두 번째 시험에 은폐된 시험 주체의 한계는 무엇인가? 스사노오는 천상계의 타부를 깨뜨림으로써 집단에 의해 거세되었고, 괴물을 처치한 공으로 집단에 의해 경배되었다. 그에게는 파괴에너지만 드러날 뿐, 외부대상과의 조화로운 교류ㆍ공존ㆍ통합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직 박해망상에 시달리는 ‘편집분열 자리’에서, 대상을 위로하며 배려하는 ‘우울 자리’로 넘어가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그는 박해대상들을 이겨낼 힘 획득을 욕심내는 오호나무치에게 박해불안에 시달리는 ‘편집분열 자리’ 경계를 넘어섰다는 징표를 보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두 번의 통과의례 시험을 대면하는 과정에서 오호나무치는 스세리비메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그녀는 어떤 존재이기에, 그에게 이런 대단한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은 보통 인간이 보편적으로 거치는 유아기의 정신발달 과정들을 반영한다. 이 단계의 주요 과제는 ‘좋음/나쁨’이 양극적으로 ‘분열’된 경험세계와 자아구조를 하나로 통합하여, 파괴욕동을 통제하고 박해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려면, 무엇보다 모성적 대상과의 긍정적 관계체험이나, 불안을 담아주는 따스한 모성적 돌봄 체험이 필요하다. 야소가미들로부터의 박해불안에 시달리던 오호나무치가 스세리비메의 도움을 얻어 정신적 곤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은, 마치 유아가 엄마의 도움(‘대리자아’의 ‘자아 지원’)으로 정신의 성장을 향한 험난한 과정들을 무사히 통과해가는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무엇보다 ‘최초대상(유아기 엄마)’과의 관계 경험이 안정되어야, 새로운 단계에로 성장할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자신을 진심으로 존귀하게 여기는 대상과의 친밀한 애정관계를 유년기와 청년기에 경험한다면, ‘자기’가 견고해져서 외부와 내부의 부정적 자극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정신 내부에 안정되고 만족스런 ‘내적대상’이 있으면, 위협적 외부자극(지네와 벌)이나 치명적 유혹(독사)에 정신이 깨지거나 휘둘리지 않게 된다.


독사, 지네, 벌 떼는 원시인이 두려워했던 ‘나쁜 대상’들이었다. 이것들을 제압할 능력을 지닌 자는 비범한 주술능력을 지닌 샤먼과 왕 뿐이라고 믿어졌다. 그렇다면 ‘지느러미’ 이용법을 아는 스세리비메는 일상과 단절된 세계에서 자연정령(신)들과 교류하며 살던 샤먼(여사제)일 가능성이 높다. 오호나무치는 비범한 여자 샤먼과 결합하여, 그녀로부터 주술 능력을 습득한 것이다. ‘독사의 방, 지네와 벌들이 들끓는 방에서 잠을 자라’는 요구는, 동아시아와 미주북부지역 인디언들의 ‘성인식’에 실재 행해진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그것은 죽음의 공포를 견디며 과거와 다른 정신으로 새로 태어나라는 ‘죽음과 부활’ 의례이다. 이런 여러 의미를 함축한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박해불안을 감당하고 박해대상들 제압하는 주술비법을 습득한 오호나무치의 정신성은 점점 성숙하고 비범하게 변한다.


<스사노오는 우거진 초원에 ‘화살’을 쏜 후 “그 화살을 찾아오라”고 요구한다. 오호나무치가 초원에 들어가자 들에 불을 지른다. 들쥐가 나타나 “속은 비었고 겉은 오므라들었다.”는 말로 땅 속 구멍을 알려줘 불을 피했고, 화살은 쥐가 가져다준다.>


‘화살’은 위험하면서도 집단을 보호하는 강력한 무기다. 화살을 잘 다루고 보존할 수 있는 자는, 집단을 수호하는 지도자 자격을 지닌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한 자가 그것을 잘못 다루면 집단에 큰 재난을 일으킨다.

불과 화살은 리비도의 상징이기도 하다. 생존이 위태로웠던 원시기의 신화에서 리비도는 1차적으로 생존욕동, 생식력, 생산력을 의미했다. 그리고 ‘안전’이 보장된 이후에야 쾌락을 추구하는 성욕동을 의미했다.

‘우거진 초원’은 생명의 안전을 보호받지 못하는 울타리 밖의 위험한 세계인 동시에 뜻밖의 비범한 에너지가 있는 곳을 뜻한다. 동서양 도처에서 옛부터 거대한 나무는 신목(神木)으로, 그 숲은 함부로 접촉해서는 안 될 신성한 영역으로 숭배되어 왔다. 정령사상을 지녔던 고대에선, 우거진 숲 속에는 함부로 접촉했다간 치명상을 입을 악령들과 숲의 ‘원기’를 지키는 무시무시한 ‘神人’(‘숲의 왕’)이 있다고 생각해 접근을 꺼렸다.


‘화살’은 남성성, 남근, 공격력, 주인공 자신을 상징하며, ‘우거진 초원을 향해 화살을 쏜다’는 것은 안전함이 보장되지 않는 타계의 영역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힘을 보이라는 요구다. 게다가 초원에 ‘불’을 지른다면, ‘화살’과 인간은 어찌 되겠는가? 모든 존재가 불타서 소멸될 극한 상황은 죽음의 세계다. 보통사람은 이 세계에 들어가면 죽어 없어진다. 그러나 집단의 ‘왕’이 되려는 자는 용기 있게 죽음세계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오는 능력을 지녀야만 한다. 그래야 집단구성원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관ㆍ보호하는 생명력의 수호신으로 숭배될 수 있는 것이다.

시험을 내는 주체는 ‘불길 속에서도 손상되지 않은 화살’을 가지고 오라는 요구를 한다. 이런 비합리ㆍ비현실적 요구는 ‘사실적 의미’가 아니라 무의식을 드러내는 ‘상징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불 속에서도 손상대지 않은 화살’은 무엇을 뜻하는가?


상징의 의미는 그것이 놓여있는 맥락(상황)과 연관해서 해석해야 한다. ‘불’은 고대인의 일상에선 격정(파괴충동과 성충동), 또는 정반대로 충동 억제력, 지혜 등을 의미했다. 위급 상황에서의 불은 파괴와 죽음, 위험, 재난, 과잉자극, 공포 또는 정반대로 꺼지지 않는 생명력과 ‘정화’의 상징이다. ‘불타는 초원’은 피난처가 없는 위급한 환경을 나타내며, ‘불 속의 화살’은 타서 없어질지 모를 유한한 남성성과 멸절불안의 상징이다. 유년기에 아이에게 과잉성자극(상처)으로 작용되는 ‘원초 장면’(부모의 성관계 장면)도 꿈에 ‘불’로 상징화된다.


이 과제는 절망적 환경이나 저승세계에서도 ‘생명력, 생식력’을 지켜내고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을 보이라는 요구다. 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戰士)’인 동시에 집단이 숭배하는 ‘왕’이 될 능력을 ‘체득’하게 된다. 그처럼 기성 상태와 전적으로 단절된 ‘절대 변환’의 영역에 들어가서 생존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묘하게도 ‘인간’은 망각된 어린시절에 정신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곤혹스런 ‘죽음과 부활’ 과정을 거치는 저력을 지닌 존재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나’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전적으로 변하면’ ‘자기’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해체불안, 상실불안을 느낀다. 그런데 유아기에 최초로 형성된 ‘나’는 결코 영원불멸하는 ‘실체’가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죽고 새로 태어나는 변천 과정을 거쳐야 성숙해질 수 있는 무엇이다. 특히 어머니에 애착하던 ‘나’로부터 아버지의 요구를 수용하고 외부세계와 능동적으로 관계하는 ‘또 다른 나’(상징계의 나)로 바뀌어야 한다. ‘안전’과 원초적 쾌감에 안주하려드는 아이의 ‘나’는 ‘아버지와의 동일시’ 과정을 거치면서 근본적으로 변형되어야 한다.

‘아버지다움’은 새롭고 넓은 타자들의 세계에 눈뜨게 하여, 어떤 부정적 자극들 속에서도 당당하게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정신적 울타리와 힘을 제공한다. 왕은 백성들의 아버지다. 왕에게 강력한 아버지다움이 확립되어야, 생존불안에 시달리는 원시시대의 백성들이 ‘왕’과 동일시하여 험난한 삶을 꿋꿋이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다움을 확립했음은 곧 아버지를 적대시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긍정적 초자아를 형성했다는 의미다.


절망적인 위기상황에서 “들쥐”가 조력자로 나타난다. 인간과 우주의 운명적 조화를 해독하는 동양의 12간지에서 ‘쥐’는 天貴性을, 즉 귀한 재능을 지닌 존재이다. 쥐는 깜깜한 밤중에도 사물을 분간하여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하는 생존능력을 지닌다. 원시인에게 죽음공포의 표상이었던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는 신기한 동물인 것이다. 또한 동양의 속담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는 말이 있다. 들쥐는 위급하면 땅 속을 파고 들어가서 자신을 보호한다. 그 점에서 위기에 대처하는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고난극복 능력을 지닌다. ‘쥐구멍’은 위급할 때 유용한 지혜로운 탈출구인 것이다. “겉은 오므라들었지만, 속은 비었다.”는 말은 여성의 성기, 자궁을 연상시킨다. 거대한 지모신의 자궁은 곧 대지이다. 대지는 생명을 거두어들이는 묘지인 동시에 매년 끊임없이 생명체를 부활시키는 자궁이다. 들쥐의 말은 입구는 좁지만 안에 들어가면 넓은 공간의 동굴이 있다는 알림이다. 결국 오호나무치는 ‘거대한 어머니’인 ‘땅 속 동굴’을 발견해 그곳으로 피신하여 죽음의 위기를 벗어난다. 모태와 같은 땅 속 공간에서 밖으로 나오는 행위를 통해 그는 어느덧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존재로 고양된다.


신화 속의 기성 권력자가 새로운 경쟁자에게 부과하는 통과의례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독자는 그 의미를 유년기 콤플렉스, 민족무의식, 인류무의식 차원에서 다중으로 음미해야 한다. 오호나무치가 시험에서 직면했던 대상들인 “독사, 지네와 벌 떼, 초원 속 불길”은 유년기의 개인무의식과 원시기의 민족무의식에서 반복 작동하는 위협적인 환상, 정신에 불안을 일으키는 섬뜩한 그림자, 콤플렉스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험은 그것들이 정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대면해 보충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는 포악한 형들의 위압과 박해불안에 눌려 지내온 막내의 미성숙한 심리상태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이다. 또한 낯설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他界 대상들과 소통하여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오호나무치는 뱀의 방, 지네와 벌 떼 방, 땅 구덩이, 지하세계 등 모태를 연상시키는 ‘갇힌 공간’으로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오는’ (죽음과 부활) 행위를 거듭했다. 그 공간은 처음에는 위험과 불안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 공간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기존의 정신 상태와 다른 상태로 거듭난 그는 어느덧 명령에 순종하던 힘없는 겁쟁이 상태로부터 자율성을 지닌 성인, 죽음을 겁내지 않는 전사, 위대한 지혜의 신으로 변한다. 이런 그에게 마지막 시험이 덧붙여진다.


<스사노오는 그를 방으로 불러 “머리 속 이(사실은 지네)를 잡으라” 명령한다. 오호나무치는 스세리비메에게 받은 푸조나무 열매와 황토를 이용해 ‘입으로 지네를 씹어 뱉은’ 듯이 보이게 하자, 스사노오는 그의 ‘베짱’에 마음이 흐뭇해져 ‘잠들어버린다’.>


스사노오 몸의 이(지네)들은 지하계 이자나미의 몸에 구더기가 우글대던 모습과 유사하다. 구더기ㆍ이ㆍ지네는 더럽고 어둡고 부패된 생명에 기생한다. 두 신 모두 생명을 해체시키는 파괴성과 죽음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방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몸의 ‘이를 직접 잡으라’고 요구함은, 미워하는 대상을 독을 지닌 자신의 변으로 덧씌워 없애고 싶어 하는 항문기 가학성을 연상시킨다. 죽음여신 이자나미가 창조신 이자나기를 지하계에 붙잡아두려 했듯이, 스사노오는 딸 스세리비메를 자신에게서 내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지네) 잡는 요구는, “독있는 섬뜩한 대상들과 ‘접촉’하여 그것을 회피함 없이 감당해내라”는 요구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험난한 외부환경을 회피하지 않고 꿋꿋이 대면하려면, 무엇보다 파괴욕동 자체를 겁내지 않고 대면하여 자신의 에너지로 통합하여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몸을 누군가에게 보여 ‘이’를 잡게 함은 ‘친밀함’의 표시하기도 한다. 침팬지들은 친밀하고 안전하게 느끼는 대상에게 자기 몸을 접촉하게 하고 ‘이’를 잡게 한다. 스사나오는 자신조차 쉽지 않은 시험들을 무난히 통과한 오호나무치의 능력을 인정하여, 우호관계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두 존재는 ‘갇힌 공간’인 한 방에 틀어박힌다. 그들 중 누가 이 공간을 어떤 모습으로 벗어날지는 미지수이다. 오호나무치는 위장술로 스사노오 머리의 지네를 ‘용맹한 전사처럼’ 씹어죽이는 척 한다. 그러자 광포한 신 스사노오는 어떤 동질감을 느껴 그를 좋아하게 된다. 스사노오 몸의 일부를 입으로 받아들이는 오호나무치의 친밀 행위가, 마치 자신의 공격적 투정들을 공감하며 정성껏 담아주던 좋은 양육자 표상과 동일시되었을 수 있다.

“음. 이 자는 나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군. 좋다. 더 이상 너를 이방인으로 간주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너와 나는 동등한 존재다.”

“음. 이제 이 사람은 박해불안에 시달려 외부대상의 요구나 공격에 겁먹고 굴복하거나, 애정 결핍으로 유혹에 빠져 정신이 교란되거나, 오이디푸스 욕구에 휘둘려 ‘아버지의 법’을 함부로 부정하진 않겠구나. 어느덧 자기를 당당히 표현할 수 있는 듬직한 존재가 되었군!”

대상에 대한 이런 신뢰감에 스사노오는 지금까지의 공격적 태도를 거두고 방어 없이 ‘잠들어버린다.’ 그러자 지금까지 온순해 보이던 오호나무치는 뜻밖의 모습을 드러낸다.


<오호나무치와 스세리비메는 스사노오가 잠든 때를 틈타 그의 “머리칼”을 침상에 “묶고”, “커다란 돌”로 “방문을 막은” 다음, 칼, 활, 비파를 훔쳐 지상으로 도망친다.>


험난한 시험들을 통과하면서 오호나무치의 정신성과 힘은 이미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그의 정신은 박해불안에 위축되던 상태에서 자신의 욕구를 당당히 표현하는 능동성으로 바뀐다. 드디어 그는 자신의 야망을 결연히 드러낸다. 과거에 스사노오가 머리 여덟의 괴물을 잠들게 해 머리를 베었듯이, 그는 잠든 스사노오의 머리를 침상에 묶어 꼼짝 못하게 만든다.

‘머리칼’은 끊임없이 자라나는 생명력을, ‘머리’는 지혜의 근원이자 ‘남근’을 상징한다. ‘묶는다’는 것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며, 이는 곧 남근 능력의 ‘거세’이다.


기성 권력자를 거세한 행위가 ‘여인의 협력’에 의해 이루어짐을 주목해야 한다. 원시시대부터 ‘여성’은 남성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으로 간주되었다. 에너지의 원천이기에, 역으로 남성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 마력도 여성에게서 나온다. 그리스 창조신화에서 가이아 여신은 아들(크로노스)를 도와 天神인 남편(우라노스)을 거세했고, 다음 세대의 레아 여신 역시 최고신인 남편(크로노스)을 배신하고 아들(제우스)을 도와 새로운 권력을 탄생시킨다. 이처럼 여성의 협력이 중요 요인이 되어 권력은 선임 권력자로부터 새로운 영웅에게로 이동한다.


‘큰 돌로 집 입구를 막는’ 것은 屍身을 매장하는 고대의 풍습과 묘지 형상을 연상시킨다. 고대인은 죽은 자의 혼이 산 자에게 ‘접촉’되는 걸 매우 위험하게 생각했다. 죽음의 기운이 산 사람에게 내사되어 전염될까봐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겁고 큰 돌로 무덤의 입구를 막은 것이다. 지하세계로부터 지상으로 탈출한 것은, 죽음에서의 부활과, 독재적이고 노쇠한 아버지(선임 권력자)의 부정적 영향에서 벗어나 생생한 생명력과 생산적 욕망을 펼칠 수 있는 세계를 개척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혹한 시험을 부과하던 그 무시무시한 주체가 시험 당하던 대상에 의해 곤경에 처하게 된 이 상황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급작스런 변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밀폐된 방안에 두 사람이 함께 있었음과, 나아가 불신하던 적대적 태도를 거두고 스사노오가 오호나무치를 곁에 둔 채 방어 없이 잠들어버린 장면의 심층의미를 음미해야 한다.

두 사람은 각각 고대일본의 구세대와 신세대를 대변한다. 험한 시험들을 거친 후 둘이 방안에 함께 있음은 전통세력과 새로운 세력이 격렬한 투쟁을 거친 후 서로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하여 공존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스사노오가 잠들어버림은, 선임권력자가 새 영웅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암시이다. 오쿠니누시 신화는 새 영웅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기성 권력자와의 복잡한 관계를 어떻게 처리했는가를 전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스사노오는 잠이 깨어 움직이려다가 머리칼이 묶인 기둥이 무너져 집에 묻히게 된다. 그는 자기 방에 감금당한 것이다. 이제 그 방은 오호나무치의 통과의례 공간에서 스사노오의 통과의례 공간으로 변한다. 이제는 전통(대타자)의 상징인 스사노오 자신이 변해야만 한다. 변하지 않은 채 낡고 무기력해진 ‘전통과 권위’에 안주한다면 자멸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딸의 ‘분리’를 수용하고, 오호나무치를 적(敵)으로 간주해 보복하기보다 새로운 권력계승자로 인정해 그와 ‘화해’해야 함을 자각한다. 아버지가 자식(자손)의 미래를 배려해 보복 없이 화해한 것이다.


<도망치는 오호나무치를 향해 “네가 가지고 가는 그 보물로 야소가미를 물리치고, 이 ‘세상의 혼을 지키는 ’오쿠니누시(大國主神)‘가 되어, 스세리비메를 정실 아내 삼아 큰 나라를 이루거라”라는 ’축복의 말‘을 던진다. 오호나무치는 스사노오의 보물을 이용해 야소가미를 물리치고 국가를 건설하여 마침내 일본국가의 시조(오쿠니누시)가 된다.>


고대에서 “보물”이란, 신의 신성한 에너지가 응집되어 있는 무엇을 뜻한다. 그것을 소유하는 자는 특정 신이 지녔던 엄청난 힘(‘마나’)을 얻어 적들과 자연 정령들을 자신이 원하는 데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스사노오는 ‘괴물’을 처치한 신이므로, 그의 보물에는 ‘전사의 힘’이 담겨있다. 비파(거문고)는 ‘신의 소리’를 표출하여 적의 정신을 조정하거나, 백성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치유도구다. 칼과 활은 공격성을 분출하여 적을 제압(거세)하는 도구다.

오호나무치가 획득한 또 다른 힘은 大타자인 스사노오의 ‘축복의 말’이다. 고대인에게 ‘왕의 말’은 곧 왕의 존재와 등가물이다. 그것은 ‘심리적 효과’와 더불어 말의 내용을 실현시키는 구체적 힘을 지녔다. 특히 괴물을 처치한 괴력을 지닌 지하세계 왕 스사노오의 말에는 지하계의 비범한 힘이 실려 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왕의 말이 인정한’ 자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이 지상에 스사노오보다 더 강한 존재가 없는 한, 그의 ‘보물’과 ‘말’을 소유한 오호나무치는 더 이상 그 누구도 겁낼 이유가 없다.


타계의 권력자에게서 얻은 비범한 ‘보물의 힘’과 ‘말의 힘’으로 오호나무치는 강력한 존재가 되어 자신을 박해했던 야소가미를 모두 제압한다. 적들을 제압하고 지상에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움으로써 마침내 천하고 나약한 존재였던 오호나무치는 일본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오쿠니누시(大國主神)로 변신한다.


<오쿠니누시는 스세리비메와 결혼하고 이나바의 공주 및 여러 아내를 두어 많은 자손을 낳았다.>


아름다운 여성들을 아내로 얻음은 음양(여성성과 남성성)이 하나로 통합된 성숙한 정신상태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 상태에 도달하면 더이상 내면의 유아성욕과 외부의 유혹들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그리고 고대사회에서 ‘결혼’은 서로 다른 집단과 집단 사이가 대립관계에서 우호적 관계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오쿠니누시가 한명의 아내가 아니라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림은 ‘가부장제도’의 표상이다. 가부장제에서 남자(아버지)는 생명의 ‘씨앗’을 제공하는 주인공이고, 여자(어머니)의 자궁은 출산의 매개자로 간주된다. 왕이 아내들에게 ‘많은 자손’을 낳게 했음은, 집단의 생명력을 순환시켜 유지ㆍ보호하는 원천이자 모델인 왕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의미다.


4) 과업성취 : 나라 만들기, 농경문화 정착


<오쿠니누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여러 ‘토지의 신들’과 결혼하고, 토지를 개척해 생산력을 높인다. 그리고 작은 좁쌀신과 함께 각지에 곡물 재배 문화를 퍼뜨린다. 나아가 질병치료법과 재해방지법을 정하고, 부모자식과 부부의 ‘도리’를 가르친다.>


오쿠니누시는 일본민족에게 농경문화를 정착시켜 농작물의 풍요와 생식, 생산기능, 질병 치료 기능을 주관하는 신으로 경배된다. ‘토지의 신’들은 왕성한 생명력과 생식력을 지닌 자연과 여성, 지방 영주를 상징한다. 따라서 각 지역의 토지신들과 결혼함은 지역영주들의 딸들과 결혼해 각 지역으로 분열된 세력들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성적 매력’과 왕성한 생식력을 상징하는 ‘창’을 이용해, ‘생산자 신’의 힘을 충분히 발휘한다. 그가 곡물재배를 통해 토지 생산력을 높이는데 주력했음은 먹고 사는 것이 불안정한 원시기 수렵-어업사회를 안정된 농경사회로 변화시켰음을 상징한다.

치명적 상처를 입어 두 번이나 죽었다가 조개여신의 도움으로 살아난 고통 체험을 지닌 오쿠니누시는 또한, 자신의 고통 경험을 반추해 병으로 빨리 죽던 백성들에게 최초로 약과 온천 치유법을 전한 의료의 신이다. 문화제도를 확립했음은, 백성의 ‘아버지 위치’에 올라, 본능욕동의 즉각 충족을 갈망하는 백성들을 ‘사회적 존재’로 전환시키는 통과의례 요구의 주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그가 백성들이 동일시하고픈 힘과 가치의 원천이자 ‘자아 이상’의 모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5) 최후 : 권력 양도


<국가를 만들어 자손과 더불어 풍요를 누리던 오쿠니누시는 천상계의 아마테라스가 보낸 ’검신‘의 엄청난 무력에 의해, 결국 왕위를 천상계에 양도하고 물러난다.>


왕성한 생식력을 대표하던 ‘인간신’도 늙으면 노쇠해진다. 따라서 집단의 생명력에 활기를 유지시키기 위해선 ‘더 강한’ 새로운 영웅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집단의 무의식이 모든 왕들에게 바라는 바이다. 오쿠니누시 역시 한창 부귀영화를 누리던 중에, 뜻밖에도 강력한 무력을 지닌 외부세력의 침입과 도전을 겪게 된다. 그의 자손들에게 대항시켰지만 그 누구도 천상계에서 온 ‘검신’의 武力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집단의 안위를 위해 왕위를 양도함으로써, 훗날의 백성들에게 집단에 공헌한 영웅신으로 추대 받게 된다.


3. 맺는말


지금까지 꿈 요소들을 해석하듯이 신화소들 하나하나의 의미를 프로이드와 융, 현대정신분석 관점을 활용하여 해석하였다. 신화나 꿈의 심층 의미는 신화소나 꿈요소들 하나하나가 해석된 후에 야 비로소 자각되곤 한다. 그래서 정신분석 임상상황에서 내담자의 꿈에 대한 분석가의 해석은 맨 마지막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꿈에 관해 50분간 던져진 분석가의 질문과 이에 자극받아 우연히 떠오른 내담자의 연상언어들의 의미를 하나로 꿰뚫는 새로운 성찰을 담은 분석가의 짧은 해석 몇 마디는 꿈해석의 백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석해온 신화소의 의미들을 통합하는 오쿠니누시 신화의 핵심의미나 메시지는 무엇인가? 고대 일본인이 이 신화를 통해 ‘충족’하려한 소망이나 ‘보충’하고자 한 정신의 불균형 요소, 반복되는 ‘대상관계’ 패턴과 정신구조 유형, 집단무의식은 무엇인가?

신화에 출현하는 대상들의 특성을 주시하면, 그것을 창조한 집단의 정신상태가 드러난다. 오쿠니누시 신화에는 겁 많고 순한 오호나무치와 포악한 야소가미, 예언자 토끼, 오호나무치의 잠재능력을 인정해준 이나바 공주, 헌신적인 어머니와 생명치유력을 베푼 조개여신, 험난한 시험 과정에서 도움을 준 스세리비메, 험난한 시험을 부과하는 스사노오, 살 방법을 전해준 들쥐 등이 등장한다. 이들 각각은 고대 일본인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던 ‘대상’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오호나무치가 영웅이 되기 위해 겪은 통과의례 시험은 일본인들이 원시시대부터 국가를 세우기 이전까지 겪었던 곤경들과 극복과정을 상징한다.


일본국가의 시조가 힘없고 겁많고 천한 오호나무치로부터 용맹하고 권위있는 오쿠니누시로 변신하는 과정은 개인의 정신발달 과정과 더불어 민족과 인류의 정신발달 과정을 상징한다. 원시기의 일본민족은 험한 주위 환경과 대상들로 인해 죽음불안과 박해불안에 떨면서 간신히 생존해왔다. 그러다가 안전한 생존을 이루려 필사적 모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신성한 조력자들(어머니, 토끼, 이나바 공주, 스세리뷔메, 들쥐, ‘스사노오의 보물과 말씀’)의 도움을 얻게 되었다. 그 신성한 힘들 덕분으로 겁 많고 무기력했던 원시 정신차원에서 벗어나 포악한 현실대상(야소가미)들을 담대하게 물리쳐 통합된 정신성을 이룬 영웅적 주체로 변화되었다.

지역의 여러 종족과 지역 권력가들로 나누어져 있던 일본을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컷던 고대의 상황에서 형성된 오쿠니누시 신화에는, 일본민족의 정신적 결핍을 보충해주는 신적 에너지를 지닌 조력자들이 여럿 등장한다. 여러 조력자들의 등장은 역으로 당대의 일본민족이 외부환경과 정신내면에 많은 결핍을 지녔다는 신호이다. ‘오쿠니누시’는 여러 결핍에 시달리던 오호나무치 상태의 일본민중들의 좌절된 욕망을 대리 보충시켜주는 이상적인 환상대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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