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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분석 : 일본 신화 - 스사노오

관리자
2020-08-29

<일본 신화에 대한 정신분석>


일본신화에서는 제사(祭祀)와 정치를 대표하는 아마테라스, 전사(戰士) 모델인 스사노오, 생산자 기능을 상징하는 오쿠니누시의 의미가 중요하다. 일본의 왕은 천상계의 태양여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으로 일컬어진다. 태양신은 天父神 이자나기로부터 생성되었다.

이런 신화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일본의 핵심 상징인 국기를 음미해 보자.

흰 색  바탕의 중앙에 붉은 원이 있는 일장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붉은 원은 태양이자 ‘여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사방(동서남북)에 모든

색을 반사하는 흰 바탕은 '하늘, 아버지 신’을 상징한다. 이 이미지를

“모든 존재에는 ‘정령’이 있다”고 믿는 원시인의 마음으로 바라보자.

중앙에는 일본인을 따스하게 응시하며 조건 없이 생명력을 나누어주는 빛과 에너지의 원천인 처녀신(태모, 모성신) 태양이 있다. 그 배후엔 드높고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는 아버지 하느님(우주, 하늘)이 있다. 주술적 세계관을 지녔던 고대일본인에게 왕은 곧 최고신의 대리자였다. 그렇다면 일본인은 국기를 응시하면서 어떤 느낌이 들까?

일본국기는 모성적 여성 에너지와 부성적 남성 에너지, 그리고 그 두 에너지를 조화롭게 통합하여 백성들에게 중계 재현하는 샤먼왕(천황)의 신성한 주술에너지를 함께 발산한다. 국기 상징을 통해 생명력의 우주적 원천을 마음으로 접촉하는 이런 원시적 내사ㆍ융합 체험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한결같은 ‘현재 차원’이다. 신화의 세계에는 무의식처럼 시간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이자나기)과 태양(아마테라스)과 천황(중보자)이 존재하는 한 일본과 일본민족은 ‘신화적 사고’ 속에서 신성한 힘(‘마나’)과 동일시되어 현세의 모든 불안과 고통을 이겨내며 영원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민족적 신념과 정서는 일본신화가 다수의 민속 의례와 전통종교와 연관해 일본인의 정신에 내재되어 있기에 계속 유지된다. 이 독특한 은유적(환상적) 일체감은 태고 적부터 유전된 민족무의식과 유년기에 각인된 개인무의식이, 현존하는 신화적 환경(神社)ㆍ전통의례와 결합하면 역동적으로 발현된다. 신화와 그것에 대한 전통화된 믿음이 없을 경우 일본 국기는 그냥 흰 색 바탕에 붉은 원 일뿐이며, ‘일본인’ 고유의 정체성은 존립하기 어렵다.

수만 년 전부터 생물학적 유전과 문화적 전통을 통해 전승된 일본인의 민족무의식 특성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무엇보다 일본신화를 이해해야 한다. 그 신화의 뿌리와 접촉하기 위해 일본 영토의 창세신 아자나기, 이자나미와, 일본 국가의 시조신인 스사노오, 오쿠니누시 신화를 주목해보자.


I장. 창세 신 이자나기, 이자나미 : 성교, 창조, 죽음, 다툼, 분리, 단독 창조


<태초의 혼돈 속에 어렴풋한 어둠과 만물의 싹이 있었다. 맑고 밝은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쌓여 땅이 되었다. 하늘과 땅이 갈라질 때 무형의 생명 신들이 생겨났고...바다에서 갈대의 싹이 피어나고 흙이 생겼다. 그리고 남신 이자나기와 여신 이자나미가 생성되었다. 두 신은 성교를 하여 여러 섬들과 신들을 창조한다. 이자나미는 ‘불의 신’을 낳다가 화상을 입고 죽어 지하계 신이 된다.>


일본의 창세 신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최초의 남신 이자니기와 여신 이자나미가 출현하기 이전과 이후의 신들 특성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이자나기 이자나미 이전에 출현한 신들은 남녀 구분이 없다. 이 신들은 ‘생명에너지’와 ‘자연의 작용’(생산, 파괴. 회귀)을 상징한다. 그들 속에는 이후에 전개될 무수한 창조 ‘가능성을 지닌 힘’들이 역동한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창세신화에서 두드러진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인간의 정신 발달 과정에서 남녀 성차이를 지각하기 이전과 이후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느낌과 지각 분별이 매우 다른 것과 유사하다. 인류에게 구체적 영향을 미치는 본격적 창조활동은 신들 사이에 남녀 구분이 출현한 이후에 이루어진다.

또다른 주목할 점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성관계하는 장면의 묘사가 다른 민족의 신화들에 비해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대화를 음미해보자.

“이자나기 : ”당신의 몸은 어떻게 생겼는가?“

이자나미 : ”내 몸은 완성되었지만, 아직 한 곳에 구멍이 뚫려 있어요.“

이자나기 : “내 몸은 완성되었지만, 남아도는 한 곳이 있다. 그래 나의 남은 부분을 당신의 구멍에 찔러 넣으면 국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 생각은 어떤가?“

이자나미 : “좋아요. 그렇게 하지요”

성관계하기 전에 이자나미는 이자나기를 향해 “얼마나 멋진 남자인가!”라고 찬양하고, 이어 이자나기는 “얼마나 멋진 여자인가!”라며 이자나미를 찬양한다.“ 기원후 8세기경에 기록된 문헌에 이렇게 성적 묘사가 선명한 것은, 일본민족이 남녀 간의 성관계를 신성한 생명체 창조 활동의 근본으로 지각했기 때문이다. 성쾌락은 생명창조 행위를 촉진시키는데 기여하는 본능의 한 특성인 셈이다. 이자나미는 일본의 여러 국토와 인간 생존에 중요 기능을 하는 여러 신들(바람, 나무, 산, 들판, 안개, 계곡, 파도의 신,..곡물여신) 을 생성하고는 마지막으로 “불의 신을 낳다가 화상을 입고 병들어 죽는다.” 그것이 세계 최초의 죽음이다.

그런데 왜 하필 ‘불의 신’을 낳다가 죽은 것인가? ‘불’은 추위를 이기게 하는 열도 있지만, 어둠을 밝히는 빛을 지니는 점에서 사물에 대한 ‘분별력’을 뜻한다. 그리스 지혜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신들만의 보물인 ‘불’을 인류에게 넘겨주고 큰 곤욕을 겪듯이, ‘이자나미가 불을 낳은’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즉 태초 모성신은 ‘불(지혜의 분별력)을 낳는’ 순간 자신의 존재 역할을 마치게 된다.

‘불’은 또한 열정과 쾌락 불꽃을 일으키는 성욕동(리비도)과 연관된다. 두 남녀신의 성교는 많은 생명을 탄생시킴과 동시에 강렬한 ‘불’(성향락)로 인한 죽음을 유발한다. 그래서 지모신의 자궁은 생명의 입구이자 죽음의 입구인 것이다.

인간 역시 ‘성’(불)을 매개로 자손을 남길 수 있게 되고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고대인에게 ‘죽음’은 과학적 세계관에서 보는 무기물로 분해되는 것이 아니다. 태양이 밝게 빛나다가 수평선 아래로 사라진 후 다시 살아나듯이, 식물이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피어나듯이, 죽음은 미지의 세상에서 머물거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이해된다. 창조 모신인 이자나미가 불의 신을 낳다가 사망해 지하계 여신으로 변신한 까닭 역시, 고대 일본민족의 ‘죽음 관점’을 반영한다. 즉, 생명창조와 죽음과 재탄생(변형된 부활)의 순환율동이 자연계에서 영원히 반복된다고 믿은 것이다. 그렇다면 모신(母神) 이 ‘불’로 인해 사망한 후 지하계로 퇴장해 죽음여신이 된 것은, 그녀를 대체하며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새로운 여신의 출현(변형된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물려준 것이다.


<아자나기는 죽은 아내를 구하러 지하계로 가 이자나미에게 지상으로 돌아와 달라 애원한다. 지하계 신들과 의논하겠다고 궁으로 들어가며, “절대 안으로 들어와 내 모습을 보면 안 된다” 말한다. 아자나기는 금기를 깨뜨리고 불을 밝혀 궁으로 들어가, 구더기가 들끓는 추악한 시체인 아내 모습을 보곤 겁에 질려 도망친다. 화가 난 이자나미가 추격하자, 지하계 입구를 거대한 바위로 막는다. 입구의 바위 아래에서 이자나미는 이자나기에게 “내게 돌아오지 않으면 지상계 인간을 매일 천 명씩 죽일 거야”라 말한다. 이에 이자나기는 “인간을 매일 천오백명씩 태어나게 할 거야”라 답한다.

이자나기는 강에 들어가 지하계에 오염된 몸을 씻는다. 왼쪽 눈을 씻자 태양 여신 아마테라스가, 오른쪽 눈을 씻자 달의 신 츠쿠요미가, 코를 씻자 폭풍우와 천둥의 신 스사노오가 탄생한다.>


이자나기는 죽은 자의 세계인 요미노쿠니(지하계)로 내려간다. 그런데 지상계에서 국토와 자연생명체를 창조하던 이자니미는, 지하계에 위치하자 과거와 다른 특성을 드러낸다. 그녀는 이자나기의 지상계로의 귀환 요구에, “지하계의 음식을 이미 먹었기에 지상계 귀환이 간단치 않다”고 답한다. 그리고 지하계 신들과 의논하러 가면서, “일곱 밤과 일곱 낮 동안 내 모습을 보아선 안 된다”고 당부한다. 인간이 절대로 ‘가까이 보아서는 안 되는 그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이자나기는 금기를 무시하고 ‘불’을 밝혀 지하계 이자나미의 ‘실상’을 보게 된다. 아름답고 풍성하던 (의식계의) 여신모습과 대비되는 ‘죽음’(무의식)의 섬뜩한 진면목을 본 것이다.

어머니의 ‘모성’ 역시 자식에게 이런 양면성을 지닌다. 인간은 성장하면 정신의 자립을 방해하는 모성의 부정적 측면을 인식하고, 상징적 ‘어머니 살해’를 행하여 어머니의 힘에서 ‘분리’되어야 비로소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자나기의 지하계 모험은 이 점에서 애착했던 최초 대상과의 관계가 ‘변화하는 삶’에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가 이자나미의 변화된 실상을 본 것은, 삶과 ‘죽음’의 진면목을 깨우친 성인의 정신으로 성장하기 위한, 죽음과 재탄생의 ‘성인식’ 의례와 유사하다.

지하계와 지상계의 입구에서 거대한 바위를 사이에 두고 이자나미와 이자나기가 나눈 대화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신들의 그 대화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죽음과 출생’ 현상의 유래를 원시인류에게 이해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지하계 입구에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절연함으로써, 그 후부터 삶과 죽음, 지상계와 지하계의 경계 구분이 명료해진다.

이 신화소로 인해 일본민족에게 ‘죽음’은 창조모신이자 죽음여신인 이자나미가 생명을 거두어가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경우 죽음은 인간에게 양가성을 지닌다. 하나는 태모신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긍정적인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지상계의 기운들과 단절된 두렵고 낯선 곳으로 가는 느낌이다.


이자나기는 섬뜩했던 지하계의 오염을 씻기 위해 강물에 목욕을 한다. 원시인류가 지녔던 ‘주술적 사고’에선 어떤 대상이나 지역에 가까이 가면 그곳의 기운에 접촉 전염된다. 좋은 기운을 접촉하면 신성해지기에 그 기운을 고이 보관하고, 나쁜 기운을 접촉하면 오염이 되기에 그 기운을 씻어내야 한다. 창조 大神인 이자나기가 목욕하며 눈을 씻고, 코를 씻는 과정에서, 여러 신들이 탄생하는 장면은, 주술적 사고의 백미를 드러낸다. 가령 주술적 사고의 모방(유사)법칙과 인접(전염)법칙에 의해, 창조 원기를 지닌 신이 코를 씻으면 그곳에서 코의 특성을 지닌 신이 태어나고, 눈을 씻으면 눈의 특성을 지닌 신이 태어나는 것이다.


눈이 뜨이면 세상을 환하게 보며, 눈이 닫히면 세상이 어둠이 된다.(‘태양’과 ‘달’이 뜨면 세상이 환하고, 지면 암흑이 된다.) 눈은 세상을 향해 눈빛을 발하여 만물을 분별 지각하는 힘을 지닌다. 태양과 달 역시 하늘에 뜨면 만물을 비추어 분별하게 해주며, 하늘에서 지면 분별력이 사라진다. 눈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고, 태양과 달 역시 둥글다.

이처럼 인간신체의 두 눈과 자연계의 태양과 달은 ‘유사성을 매개로’ 주술적 사고(은유적 동일시 작용)에 의해, 서로 다른 영역의 두 대상들임에도 마치 동일한 영역의 밀접한 관계대상인 양 지각된다. 여기에 ‘생명에너지’를 뜻하는 ‘신’을 붙이고, 원시정신의 특성인 자연대상의 ‘인격화’와 ‘신격화’를 하면, 두 눈에서 ‘태양신’과 ‘달의 신’이 태어나는 것이 원시인류에겐 매우 자연스런 사고인 것이다. 인간의 코에서 호흡할 때 콧김과 바람이 일어나듯, 창조신의 강력한 콧김에 섞인 습기와 거친 숨결이 폭풍우를 일으킨다고 생각한 것이다.

태양신, 달신, 폭풍신은 일본민족의 삶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므로, '세 귀한 신’('三貴子')를 얻은 이자나기는 기쁨에 젖는다. 남신 단독의 창조 행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창세신이 지닌 에너지가 신성한 몸에서 자기 밖으로 분출되어 다른 대상에게로 옮겨가거나, 다른 기능체를 생성해낸 것이다. 특히 大神의 영원불멸하는 생명에너지는 자연계 대상들에게로 자유롭게 자리를 이동할 수 있고, ‘자기의 일부가 자기에서 분리’되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은, “만물에는 정령(anima, 신)이 깃들어 있으며, 정령들은 인접(접촉)한 대상들에게 (투사적동일시에 의해) 이동(轉移, 변신)하여 생명활동을 지속한다”는 인접원칙에 의거한다. 또한 “인간은 샤먼의 주술을 통해 자연정령들에게 원하는 바를 전달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술적 사고에 근거한다.


임신과 출산의 생물학적 원리를 모르는 유아는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자아 전능환상’을 지닌다. 아울러 주관세계에서 객관세계에 대한 지각으로, 자기애 단계에서 대상애 단계에로 인지양태가 발달해가는 '과도기 단계'(transitional stage)의 아이는, 주관적 환상과 객관적 사실을 구별하지만, 자신이 욕구를 마음껏 표출해도 무탈하게 자신의 욕구를 수용해주는 환상적 '중간 대상'(transitional object)을 창조해 만족스레 관계한다. 원시인류도 '과도기 단계'의 놀이에 도취하는 유아처럼, 주관과 객관, 환상과 사실이 혼재하며, 현실 경험의 결핍을 보충해주는 '자기대상, 중간대상'을 생성해낸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실재인 양 지각한다.


열악한 생존환경에서 죽음공포에 시달리던 원시인들은 집단의 강력한 수호정령인 신ㆍ토템ㆍ샤먼왕을 이상화하고 숭배하고 동일시하여, 든든한 보호자 결핍과 정신의 불균형으로 인한 불안을 해소한다. 그런데 고대 일본민족은 삶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던 ‘태양, 달, 폭풍’신(‘三貴子’)을 왜 남신 혼자 창조한 것으로 표현했는가?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이 신화를 문자로 기록한 8세기 무렵 일본의 집단의식이 가부장적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세 귀중한 신이 이자나기가 '저승세계의 오염을 씻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점과 연관된다. 즉, 세 귀한 신은 이자나미가 지하계 입구에서 저주내린 (매일 천명의) 죽음을 지연시키는 생명력의 모델이다. 태양과 달과 바람은 인간에게 죽음 표상인 ‘암흑과 정지’ 상태를 벗어나게 해준다. 인류에게 생명의 활력을 제공하는 ‘세 귀한 신’은, 이자나기가 지하계로 내려가 죽음의 실상을 직면하고 이자나미로부터 ‘분리’되는 체험을 했기 때문에, 비로소 탄생할 수 있게 된 정신적으로 진화된 단계의 신들이다.

고대 일본인은 위대한 구원자(‘왕ㆍ영웅’)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 다른 두 세계(천상과 지하, 삶과 죽음, 부계와 모계)를 두루 접촉하여 그 실상을 절절히 체득하여, 두 세계를 매개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고 믿었다.


이자나미는 원래 이자나기와 함께 일본국토와 여러 신들을 창조한 어머니신(太母神)이었다. 그런데 ‘불의 신’을 낳다가 죽어서 지하계 신이 된 후로는, 정반대로 변신해 목숨을 거두어가는 ‘죽음 신’ 특성을 드러낸다. 여신이 이렇듯 대립되는 특성과 형상을 나타내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류에게 여성은 생명을 낳아 돌보아준 최초보호자(어머니)이며, 남자의 욕망을 일으켜 살고 싶게 만드는 ‘연인’이라는 점에서 ‘생명력’의 상징이다. 반면에 자식을 많이 낳고 나이가 든 후에는, 자식들을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해 성장(‘분리-독립’)을 방해하며, 자식을 ‘엄마와의 융합 관계’에 애착시켜 사회적 ‘3자(의미창조) 관계’에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방해한다. 그러다 노년에는 애써 만들어낸 젊은 시절의 모든 관계와 의미와 생명을 일시에 거두어가는 죽음(대지, 묘지)을 상징한다.

신화에서 이자나미는 남신이 성적으로 결합하고 싶어 한 매혹적 연인이자 남신을 도와 국토창조 과업을 이루게 한 조력자이며, 아이를 낳는 어머니였다. 그런데 생명력이 고갈된 노년에는, 추한 몰골로 남성(배우자, 아들)의 삶을 속박하려 드는 섬뜩한 괴물로 형상화된다.

이자니미가 '불의 신'을 낳고 죽은 것은, '불'이 지닌 지혜ㆍ문화창조력ㆍ파괴에너지 등과 연관된다. 창조 여신이 죽어 지하계로 퇴장한 것은, '불‘(문명)의 출현으로 변화된 환경에서 늙은 여인의 역할이 끝났기 때문이다. 태모신은 임신 출산 양육 능력을 지닌 어머니처럼 새로운 생명체를 출생시켜 돌보다가, 아기가 성장해 문화적 지혜(’불‘)를 습득해 자아능력과 개성과 의미창조력을 발현하는 시점에서는, 자식 삶의 배후로 물러나야 한다. 그녀는 남성의 청년기엔 욕망대상인 연인(아니마)으로 변신해 출현한다. 그러다 남성이 노쇠해지면 생명을 거두어가는 죽음여신(운명의 여신)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인류의 자아에 지각되는 태모의 표상들은 이처럼 변화무쌍하다.


지하계에서 이자나기에게 보였던 이자나미의 ‘진면목’을 무의식의 눈으로 음미해보자. 몸에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모습'은 죽음욕동의 표상이다. '구더기'는 음습한 곳에서 유기체의 자양분을 먹고 유기체를 분해하는 벌레이다. 자기애가 취약한 여성은 스스로의 힘만으론 삶의 의미와 가치감, 자존감과 활력을 생성해내지 못한다. 그런 여성은 정신내면에 '좋음'들이 다 파괴되고 소멸되어 자립적 생존이 힘든 기생충 상태이다. 그래서 침체되고 고갈된 생명 상태에서 회복하기 위해, 생명력을 지닌 타인의 삶을 점유하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굴레를 씌워, 그의 에너지가 자신만을 위해 쓰이게 필사적으로 속박하는 삶을 살게 된다. 가령 자식과 배우자의 생명에너지와 시간을 전적으로 좌지우지해 자기를 위해 쓰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에너지를 보충 받고 싶어 한다. 이런 여성은 얼핏 보면 아이나 배우자를 위해 관심을 쏟는 ‘좋은 어머니, 좋은 배우자’로 착각된다. 그러나 실상은 아이나 배우자를 ‘자신의 욕망’에 순응시켜 개성이 죽은 존재로 만든다. 그 결과 개성을 추구하려는 아이(배우자, 민족)의 무의식에서 그녀는 ‘참자기’(true Self)를 '삼켜 없애는'ㆍ'지옥 동굴에 가두는' 괴물로 상징화된다. 그렇다면 고대 일본인은 이자나미에 대해 무의식에서 어떻게 느꼈을까? 그 답의 단서는 이자나미의 여러 특성과 이자니기의 반응에서 발견된다.

<이자나미는 신체에 ‘모자람’(남근 결핍)이 있고, ‘혼자서는 불완전한’ 느낌을 지니며, 성관계할 때 ‘수동적 태도’를 요구받으며, ‘평범한’ 일상성인 ‘오른쪽’을 상징한다. 그러다 ‘불의 신’을 낳고 죽은 후엔, 암울한 지하(무의식계)에서 ‘본 모습을 숨기려’ 들며, 지상계의 활기찬 삶을 사는 인간들을 ‘시기’하여 죽이려 든다.>


혼자서는 공허하고 암울하며, 상처받기 쉽고, 추한 모습을 감추려 들며, 시기심이 커 상호교류가 어려움은 ‘자기애 성격장애’의 특성이다. 일본의 국토와 여러 신들을 창조하는 중요 역할을 했던 태모신은, ‘불’의 신을 낳고 죽은 이후엔 부정적 존재로 가치 위상이 바뀐다. 심지어 오늘날까지 적지 않은 일본인은 일상에서 이자나미를 떠올리는 걸 기피한다. 왜 그런가?

‘과도하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꿈과 신화에 나타날 경우, 이것은 실상 과거엔 아주 친밀했거나 숭배되던 대상이 내부의 억압 작용과 외부의 검열에 의해 정반대로 바뀌었기 때문일 수 있다. 가령 이자나미의 신화 속 이미지가 초기의 긍정성에서 후기의 부정성으로 바뀐 것은, 개인의 정신 발달과정에서 ‘어머니’에 대한 관계 양태가 바뀌기 때문이다.

무릇 남자든 여자든 아이의 정신성에서 성인의 정신성으로 도약하려면, 절대적 보호자였던 어머니에 대한 유아적 애착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 분리와 독립에 실패한 개인은 상징계 관계망으로 엮어진 사회적 삶에 진입하여 그 속의 어떤 역할(자리)을 하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일본민족이 모계적 씨족공동체에서 부권적 부족국가를 형성해 상징계 문화를 일으킨 시점에서, 太母神의 이미지가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집단 차원'에서 본다면, 모계제를 지녔던 최초의 토착부족이 나중에 이주해온 가부장제 문명부족에게 정복되어, 기존에 숭배되던 母神의 가치와 특성이 부정적으로 전락했다는 기호일 수도 있다. 어떤 부족이 숭배하던 토템과 신은 다른 부족에게 정복당한 후엔 대부분 제거ㆍ억압되거나 위협적 존재나 악령으로 변화한다. 즉 ‘부정적 대상’으로 평가된다는 조건하에서만 생존한다.


여신에 비해 남신 이자나기는 “신체에 ‘남음’(남근)과 능동성을 지니며, 비범한 왼쪽과 왕성한 생명 창조력, 밝음과 청결함을 지닌다. 그리고 거대한 바위로 여성의 유혹과 위협을 차단하는 강력한 힘과 엄격함을 지닌다.” 아버지의 중요 역할 중 하나는 ‘엄마-아이’ 2자 사이의 융합관계를 냉정하게 차단하여 사회적 3자관계로 진입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세 신을 창조한 아버지신 이자나기는 묘하게도 자신의 ‘좋음’을 대부분 딸 아마테라스에게 물려준다. 마치 과거에 이자나미에게 부착했던 리비도 에너지를 딸 태양여신에게 모두 물려준 듯한 느낌이 든다. 이에 비해 어머니 없이 출생한 아들 스사노오에겐 고독감과 폭풍의 광포함이 역동한다.

따스함ㆍ밝음ㆍ항상성ㆍ생명력의 상징인 태양여신과, 흐림ㆍ형체없음ㆍ변화무쌍ㆍ광포함의 상징인 폭풍 남신은, 정신 내부에서 대극을 이루는 삶본능과 파괴본능을 표상한다. 이 대극 요소들의 '분열'이 심해지면 민족정신이 응집성을 잃어 불안정해진다. 그러나 대극성이 상호 접촉하여 소통하면 무의식의 본능에너지와 원형의 지혜들이 당대의 자아의식에게 전해져 엄청난 창조에너지를 발현할 수 있다. 이 경우 갈등과 대립, 대극 관계를 통합한 민족정신은 새로운 단계에로 발달을 이룰 수 있다. 아버지신이 자신의 신성한 힘(‘마나’)을 남신이 아니라 여신에게 물려줌은,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그리스, 한국, 중국 신화 관점과 차이를 드러낸다.

태양을 아버지ㆍ아들신으로 본 메소포타미아 지역 민족들과 다르게 일본의 태양정령은 특이하게 처녀신으로 표상된다. 태양은 만물이 고유한 잠재능력을 발현하게끔 자신의 에너지를 대가없이 나누어 준다. 일본민족이 자신의 생명력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 심신으로 ‘접촉’하고픈 대상은 생명ㆍ생식력의 상징인 처녀여신이다. 그녀는 허약하거나 상처입어 불안정해진 생명에게 자신의 기운을 조건 없이 나누어줄 뿐 결코 타자의 삶을 통제하거나 의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태양의 배후인 거대한 하늘에는 태양을 창조한 ‘아버지신’이 든든히 버티고 있다. 일본민족의 불안을 안정시켜 주고 결핍을 균형 있게 보충해주며 영원성에 대한 믿음을 주는데 있어, 일본신화의 구성은 탁월한 ‘심리적 가치’를 지닌다. 그 때문인가? 과학문명이 발달한 국가라고 자부하는 일본의 문화에는 여전히 수많은 신화의 신(정령)들과 소통하는 전통의례에 대한 믿음, 샤먼 요소가 존재한다.


2장. ‘폭풍의 신’ 스사노오 - 반사회적 성격의 치유 과정


1. 유년기 콤플렉스 : 어머니 부재, 아버지의 무관심


<이자나기의 ‘눈’에서는 아마테라스가, ‘코’에서는 스사노오가 태어났다.>


태양신 아마테라스와 폭풍신 스사노오를 통해 일본민족의 정신성을 음미해보자.

튀어나온 '코'는 때로 남근을 상징하며, 남근은 권력과 생명력의 표상이다. 코의 구멍에서는 숨결이 들락날락해 바람이 일어난다. 숨결은 생명의 징표이다. 그렇다면 '코'에서 태어난 스사노오는 원래 생명의 신이다. 그런데 왜 바람(폭풍)의 신으로 명명되었을까? 바다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리던 고대 일본인에게 바람이나 폭풍은 어부의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절대적 힘으로 지각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유사성(생명 좌우)에 기인한 연상작용에 의해, 생명의 신이 어부들의 생사에 직접 영향을 주는 바람(폭풍)의 신으로 대체된 것이다.

만약 비범한 힘을 지닌 ‘神人’인 부족장이나 제사장(샤먼)이 주술의례와 신화낭송을 통해 폭풍신 스사노오와 접촉하여, 바람을 일본민족에게 유용하게 전환시킬 수 있다면, 일본민족은 불안에서 벗어나 힘과 풍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13세기에 몽고제국이 고려와 연합해 일본을 정복하려 2차례 침투했을 때, ‘폭풍신’의 도움으로 일본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이자나기는 아마테라스에게는 하늘을, 스사노오에겐 바다를 다스리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하늘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고, 바다에는 폭풍(바람)이 있다. 태양과 폭풍은 고대일본인의 생존을 좌우하던 핵심 환경이다. 만약 태양정령과 폭풍정령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면, 일본민족의 삶은 대단히 풍요로워질 것이다.

창조신 이자나기가 ‘하늘’의 통치권을 스사노오가 아닌 태양여신에게 맡긴 것은 당대 일본민족의 독특한 소망을 반영한다. 당시의 많은 일본인은 ‘태양’을 바라보면서 무서운 남신의 기운보다 부드러운 여신의 기운을 흡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태양은 자신의 따스한 에너지를 조건 없이 무한정 나누어주는 특성을 지닌다. 그 점에서 모성적 여성의 에너지와 유사하게 지각되었을 수 있다. 태양여신은 하늘세계에서 모든 신들의 환영을 받으며 아버지가 위임한 중심 역할을 해낸다. 그런데 스사노오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버지(왕)가 성장한 자식에게 요구하는 일차 메시지는 “공동체의 규범을 세우고 준수하고 실천하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실행되려면 먼저 본능충동들과 太母(태초 어머니, 유아기 엄마)와 융합하려는 욕구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의 성숙도’를 시험받는 변화된 환경의 새로운 요구 상황에 처해, 고대 일본남성의 표상인 스사노오의 무의식은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스사노오는 부여된 일에는 무관심한 채 “엄마가 보고 싶다”며 격렬하게 울어댄다. 그 울음에 나무가 말라죽고, 산, 강, 바다가 마르며, 재앙이 들끓는다. 이자나기는 화가나 그를 내쫒는다.>


원시인류는 인간 삶에 중대 영향을 미치는 낯선 타자들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애쓴 끝에, 자연 현상들을 '인간화'하여 해석했다. 그 결과 '폭풍'은 엄마를 애타게 원하는 아이의 '격렬한 울음소리‘로 지각된다! 그 울음을 달래지 못하면 폭풍의 진노발작이 심해져, 인간세상은 엄청난 재난 사태에 휘말린다. 나무가 말라죽고, 강과 바다가 마르는 자연생태계 위기가 닥칠 때, 고대 인류는 그 사태를 어떻게 대면했겠는가? 일본민족은 시조신 이자나기가 자연계를 보호하기 위해 화를 내며 폭풍을 다른 곳으로 내쫒는 중이라고 해석했다. 이 신화적 사고가 이루어지는 순간, 그들은 공포상태에서 벗어나 안정을 이룰 수 있다.


'폭풍신의 울음'은 모성적 사랑이 심하게 박탈된 고대 일본민족이, 무의식의 원초 분노를 스사노오를 통해 분출하여, 그 결핍을 보충해달라는 상징의미다.

‘엄마-유아’ 사이의 최초 대상관계가 박탈ㆍ결핍된 아이의 경우 ‘자기’(애)가 취약하거나 ‘참자기’(true self)가 포기되어 무의식에 묻힌다. 따라서 그 결핍이 보충되고 ‘자기’가 회복되어 외부세계에 대한 긍정적 느낌을 지닐 때까지, 외부권위자(지배자)의 규범요구는 정신에 온전히 수용되지 못한다. 그 경우 수많은 타부(금기)들로 둘러싸여 이를 엄격히 준수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지역)왕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은 감당하기 벅찬 요구로 느껴진다. 그래서 상징계에 진입해 왕 '자리'를 차지하라는 요구를 실행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모성 결핍을 채워 달라!”며 ‘아이처럼’ 울어댄 것이다. 이 ‘울어댐’에는 열악한 생존환경과 냉혹한 위계적 계급 제도 속에서 고통 받던 고대 일본민중의 애정결핍과 생존불안, 욕구를 제대로 표현해보지 못한 분노와 恨이 담겨있다.

‘아버지’(왕)에게서 ‘좋음’을 충분히 물려받지 못한 채, 아버지의 화에 의해 쫒겨난 스사노오는, 권력에서 소외된 민중 내지 새로운 지배집단으로 군림한 아마테라스 부족에게 밀려난 토착부족을 대변하기도 한다.

공격성 분출을 존중해주고 정성으로 품어주며 인내로 버텨주는 양육자의 모성적 돌봄 체험이 결핍될 경우 유아의 공격성은 파괴성으로 변질된다. 그로인한 내적 파괴 작용으로 인해 미성숙하고 연약한 유아의 ‘자기’는 산산조각 나는 불안을 겪게 된다. 그 경우 생존불안에서 벗어나는데 급급하여, 개성 있고 창조적인 ‘참자기’를 발현하고픈 욕구는 포기된다. 그 결과 생존과 안전을 좌우하는 권력자나 사회의 요구에 전적으로 ‘순응하는 거짓자기’의 삶을 살게 된다. 외면적으로 착하고 성실히 행동하는 거짓자기 인격의 이면에는 수용 받지 못한 엄청난 분노와 파괴성이 ‘분열, 억압’되어 있다. 이 무의식의 파괴성이 오랜 기간 축적되다가 어떤 촉발자극과 결합해 활성화될 경우, 섬뜩한 반사회적 범죄행위나 할복자살, 보복당할 위험이 적은 약자를 공격성 분출의 희생양으로 삼음(이지메), 집단차원의 전쟁(2차대전) 등으로 분출된다. 지배자에게 ‘순종적’이던 착실한 일본민중이 근대역사에서 분출한 엄청난 파괴적 침략전쟁에 함입된 원인이 오랜 동안 잠복되어온 고대의 민족무의식에 있음을, 폭풍신 신화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前오이디푸스기(구강-항문기)에 엄마와의 안정된 관계가 결핍된 아이의 경우, '엄마와 분리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수용하는 오이디푸스 과정을 거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그 경우 부모의 말씀이 진정으로 고맙고 존경스러워 내면화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 순응하는 차원에서 외부의 요구와 압력을 수용하게 된다. 그 결과로 형성되는 내면의 부모(초자아)는 자상한 양심의 목소리이기보다, 파괴욕동에 전염된 혹독한 ‘심판자’ 특성이 커진다. 신화에서 이자나기(지배자)는 아들(백성)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인내로 버텨주지 못한 채, 화내며 벌을 준다. 그래서 권력자에게 힘듬을 공감 받지 못한 일본백성의 무의식적 ‘한’이 투사되어 창조된 폭풍신은, 마치 모든 생명체를 파괴하려는 듯이 험악하게 울부짖는다.


2. 사춘기의 방황 : 천상계 방문


<스사노오는 어머니가 있는 지하계로 떠나기 전에, 누나 아마테라스를 찾아간다. 그녀는 그가 하늘나라를 빼앗으러 온 줄 알고 경계한다. 스사노오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한다며 각자 ‘애 낳기 내기'를 제안한다. “만일 내가 여자애를 낳는다면 추악한 마음을 지닌 것이고, 남자애를 낳으면 결백한 것으로 하자”는 '약속'을 한다. 아마테라스는 “만일 스사노오의 마음이 청정하다면, 네가 낳은 자식은 남자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아마테라스는 ‘남동생의 검’을 받아 우물에 행구고 ‘입으로 문 후 내뿜어’ '세 여신'을 낳는다. 스사노오는 ‘누나의 머리 장식(옥)’을 물었다가 내뿜자 '다섯 남신'이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폭풍신은 위로받고 싶어 누나 태양여신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녀는 드세고 충동통제를 못하는 남동생의 천상계 방문 동기를 의심하며 경계한다.

그 의심과 경계를 풀기 위해 스사노오는 ‘애 낳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의심을 푸는데 왜 하필 애낳기 놀이인가? 이 내기는 자신도 부모처럼 ‘소중한 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유아적 전능 환상을 반영한다. 부모(권위자)를 모방해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고픈 욕구의 표현이기도 하다.

오이디푸스기 남아는 ‘최초 성대상’인 엄마에게 흥분스런 사랑만족을 얻고 싶어 한다. 이런 욕구는 의식에 지각되는 순간 도덕적 금기를 요구하는 내면 초자아에게 가혹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즉각 억압된다. 그리고 억압되기 때문에 무의식에 자리 잡아 성찰되고 해소되는 그 순간까지 영원히 의식을 향해 분출을 꾀한다. 이 경우 의식과 무의식 사이, 자아와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 '타협형성'이 일어나, 변장되고 완화된 양태로 신화나 꿈, 증상으로 분출된다. 가령 ‘누나와의 각자 애낳기 놀이’로 변형되는 조건에서야 표현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애낳기는 ‘가장 친밀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상징이다. 즉 권력을 빼앗으려는 탐욕과 시기심이 아니라, 애정욕구와 친밀관계를 맺고 싶은 동기를 지녔음을 표현한 것이다. ‘놀이’에는 본능욕구를 분출하는 쾌락 요소와 더불어 본능욕구를 상징화한 승화적 의미도 있다.


‘약속’이란 “언어에 혼이 담겨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언어주술’이다. 고대사회에서 ‘말(言’)은 곧 ‘사실(事’)이기도 하다. 부족원의 생명 원기를 담고 있다고 간주되던 ‘권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말이 가리키는 ‘일’을 실현시키는 힘을 지닌다. 즉 ‘말’해 버리면 그것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된다.

"스사노오가 여자애를 낳는다면 추악한 마음을 지닌 것이고, 남자애를 낳으면 결백한 것"이라는 말에는 “유사는 유사를 낳는다”(남자는 남자를 낳는다.)는 유사원칙에 근거한다. 또한 여자-남자 사이의 '성차이 지각'이 명료하며, 남녀 가족관계에 ‘금기가 있다’는 지각이 담겨있다. '남신이 여자를 낳으면 추악하다'는 말에는 당대 문화의 '성 타부' 의식이 강하게 담겨있다. 일본문화에는 사촌들 사이의 결혼 허용과 남녀 혼합 목욕 등 '성 타부'가 모호한 듯 보이지만, 근친상간은 추악한 타부로 간주되었다. 남녀관계에 '추악함-결백함'이 부각되는 신화소는, 금지되어 억압된 성욕동이 고대 일본민족에게 매우 강했음을 반영한다.


'내기'란 현실에선 '중대한 대결'을 뜻한다. 이들은 대체 무슨 내기를 한 것일가? '애 낳기 내기'는 고대인류의 1차관심사인 집단에 '생명력을 보충해주는 힘겨루기‘다. 아이를 낳지 못함은 생명력이 막혀있어 지도자로서 무능함의 표상이다. 태양여신은 '세 여신'을, 폭풍신은 '다섯 남신'을 낳은 것은, 숫자로만 보면 폭풍신의 생명창조력이 더 왕성해 보인다. 그러나 '세' 여신의 '3'은 완전수의 모델이다. 그리스의 운명여신들, 파리스에게 미를 심판하게 한 여신들도, 리어왕의 딸들, 신데렐라신화에 등장하는 자매 수도 모두 '셋'이다. 이 셋은 '창조의 여신(어머니), 욕망의 여신(연인 배우자), 죽음의 여신(대지 여신)'을 통합하는 완전수이다. 이에 비해 스사노오가 옥을 물고 뱉어 생성한 '다섯' 남신은, 우주만물의 생명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원소 (동양의 오행-금목수화토)를 떠올리게 한다.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오의 ‘검’을 입에 넣고 잘 씹어 뿜어내는 장면과, 스사노오가 아마테라스의 ‘몸에 달린 옥’을 입에 넣고 씹은 다음 숨결을 뿜어내는 장면은, 성적 의미를 지닌다. 꿈의 논리나 주술적 사고에 의거하면, 어떤 대상이 몸에 지닌 물건은 곧 그 대상(의 몸)을 뜻하며, ‘검’과 ‘옥’은 각각 남녀 성기의 상징이며, ‘입’은 ‘성기’의 전치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의 몸과 성기를 탐닉한 후 생명력의 씨앗인 정액과 난자를 뿜어내 새로운 신(생명력)을 만들어 냈다는 의미이다. 고대 일본에서는 서로를 파괴하는 행위가 아닌 기쁘게 하는 행위일 경우, 친밀관계의 표시로 간주된 듯하다. 그래서 왕족의 경우 오누이 사이의 근친결혼을 인정했다.


이들의 내기에는 여신 대 남신, 모성신 대 부성신, 모계제를 추종하는 세력대 부계제를 주장하는 세력 사이의 대결 요소도 압축되었을 수 있다. 집단에 안정된 생명력을 보충해줄 수 있는 대상이 수호신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신화에서 이들은 각각 자신이 대변하는 세력의 완전성을 표출한 것이다.

스사노오는 자신이 여신이 아닌 남신을 낳았기에, 누나에 대해 나쁜 의도를 갖지 않았다는 '결백'이 입증되었고, 내기에 이겼다고 기뻐한다. 그런데 아마테라스는 스사노오의 결백을 인정했지만, ‘자신의 소유물(옥)’에서 다섯 남신이 나왔기에, 그들을 자신의 자식이라고 구별한다. 이 다섯남신 중 장남인 아메노오시호미미는 나중에 다카미무스히의 딸과 결혼하여 ‘천손 호노니니기’를 낳는데, 그가 일본황실의 조상으로 지상계에 내려오게 된다. 처녀신 아마테라스는 황실의 조모신이 된다.


<스사노오는 “내가 이겼다”며 승리의 기쁨에 아마테라스가 경작하는 밭을 망가뜨리고, 논 개천을 메우고, 신전에 똥을 싼다. 더구나 신성한 베 짜는 곳의 ‘지붕에 구멍을 뚫고’ 안으로 ‘가죽 벗긴 말’을 던져, 놀란 ‘베 짜는 여인’이 베틀 북에 ‘음부를 찔려’ 죽는다.>


스사노오가 힘겨루기 시합에서 이겼다면, 집단의 생명력을 수호하는 새로운 왕(수호신)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그리고 아마테라스가 시합에서 졌다면, 태양여신이 최고신(절대 생명력)에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애낳기 내기’는 결백 입증 시합이기에, 권력의 패권을 다투는 시합과 의미가 다르다.

그런데 아마테라스(사제, 귀족계급)는 과연 스사노오(무사계급)의 애정결핍(모성 콤플렉스)을 충분히 위로해주고 보충해주며 버텨줄 수 있는가?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을 누나에게 보상받으려는 스사노오의 행동들은 매우 질서 파괴적이다.

스사노오의 행동은 위대한 신(왕)의 행동이 아니라, 어머니의 애정을 박탈당한 아이가 드러내는 전형적인 反사회적 표현이다. 반사회적 아이는 온전히 공감ㆍ존중ㆍ수용 받지 못한 자신의 원초 공격성을 있는 그대로 공감해주고 담아주고 버텨줄 자상하면서도 든든한 대상이 나타나, 박탈된 모성성을 보충해주길 갈망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애정과 관심을 몰두하지 않는 모성적 대상을 향해,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집중해 달라는 메시지로 반사회적 비행을 저지른다. 폭풍신의 反사회성은 어머니의 대리자인 모성적 태양여신의 주변에 표출된다.

‘논밭 파괴’, ‘신전에 똥을 쌈’, ‘근친상간’은 고대사회에서 가장 경계하는 타부 행동이다. 그것은 ‘문화 질서’를 해체하여 ‘동물 차원’으로 퇴행하는 행위다. 고대 인류에게 타부행위는 우주의 성스러운 질서를 부정하는 범죄이며, 그 죄는 우주와 집단 전체에 재난을 유발한다. 그래서 타부행위는 단호히 죽음의 처벌을 받았다.

프로이트 관점에서 보면 성스러운 타부 영역인 ‘신전에 똥을 싼'(오물을 뿌린) 행동은, 부모의 배변훈련 요구에 저항하는 항문기 가학충동과, ‘부모의 침실’에 침입해 부모의 성관계를 방해하고 싶은 남근기 아동의 욕망을 상징한다. 즉 아버지의 규범 요구에 저항해 아버지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어머니에게 자신의 존재와 힘을 알리려는 항문욕동과 오이디푸스 욕구의 표현이다.


클라인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을 독성을 지닌 자신의 변으로 뒤덮어 파괴하고 싶어 하는, 사랑받지 못한 유아의 시기심 표현이다. 융의 ‘개성화 과정’ 차원에서 보면, 새로운 정신 국면으로 ‘전환’(발달)하기 위해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활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속학 차원에서 보면, 원시 토착부족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새로운 문물을 가지고 이주해온 새 지배계급에게 품은 억눌린 분노의 반영이다.

‘가죽 벗긴 말’은 붉은 속살이 길게 드러난 남근 형상이다. “지붕에 ‘구멍을 뚫고’ 안에다 가죽 벗긴 ‘붉고 긴 살덩이를 집어넣은’” 것은 ‘성관계 장면’을 목격하고 놀란 아이의 유아적 부분지각(환상) 내용을 연상시킨다. 스사노오의 행동에 놀란 ‘베짜는 여인’이 ‘베틀에 음부를 찔려’ ‘죽었다’는 표현은, 부모의 ‘원초적 성관계 장면’을 보고 충격(과잉자극) 받은 아이의 정신이 마비된 상태와 유사하다. 여기서 스사노오가 질서파괴적이고 성적 행위를 직접적으로 분출하고 싶은 원대상은 베 짜는 여인이 아닌 아마테라스일 것이다. ‘베짜는 여인’은 아마테라스의 전치이다. (아마테라스가 놀래서 석굴로 피신한 것은), 베틀북(남근)에 의해 음부에 상처입은 대상은 아마테라스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스사노오의 행위엔 어머니에 대한 유아성욕의 극단인 근친상간 욕구가 담겨있다.


‘파괴욕동’에 주목해 해석할 경우, ‘성소의 지붕’은 아버지의 권위, 머리, 남근의 상징이다. 그것에 ‘구멍을 뚫음’은 권위를 훼손하는 ‘거세’ 행위다. 이 경우 ‘말’은 아버지이고, ‘가죽 벗긴 말’은 아이가 무의식에서 ‘잔인하게 죽인 아버지’ 의 기표다. ‘여인의 죽음’은 자신을 버려둔 채 일찍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압축, 전치된 것이다.

고대민속학 차원에서 보면, ‘가죽 벗긴 말’은 ‘살해한 토템동물(신)’의 상징이다. 원시 수렵사회에서는 토템으로 숭배하던 신성한 ‘동물신’을 매년 축제일에 살해해 그 가죽을 벗겼다. 이는 부족원의 생명력을 매년 갱신시키기 위해, 모든 질병과 나쁜 액운들을 그 ‘동물신’이 대신 짊어지고 가게 하기 위한 주술의례다. ‘베짜는 여인이 놀래서 죽었음’은, 의례 과정에서 순결한 여인 또는 여사제가 신에게 희생 제물로 살해되었던 흔적을 반영한다.

위 해석들을 재구성한다면, ‘스사노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척박한 자연(폭풍), 죽음ㆍ박해 불안 때문에 ‘진정한 자기’를 포기한 채 온갖 금지와 ‘권력자의 요구’에 머리 굽혀온 피지배계층의 무의식에 있는 수치와 분노, 모성 콤플렉스, 오이디푸스 욕구 등이 ‘혼합된 형상’이다. 공감ㆍ존중받지 못한 공격성이 파괴욕동으로 변질되어 분열된 무의식에서 수천 년 보존되어 있다가, 투사되어 스사노오로 형상화 된 것이다. 민족정신이 오래된 불안ㆍ불균형 상태를 벗어나 성장하려면, 민족무의식이 신화 속 형상으로 일단 표현되어 의식의 인식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남동생의 난폭한 행동에 아마테라스는 상심하여 동굴 석실로 들어가 칩거한다. 태양이 사라지자, 세계는 어둠에 묻혀 재앙과 혼돈에 빠진다. 하늘의 신들은 놀라서 대책회의를 열고, 지혜 여신의 ‘웃기기’ 묘책으로 아마테라스의 호기심을 유발해 석실에서 나오게 한다. 스사노오는 소란을 피운 ‘죄’로 천계의 신들에게 ‘수염을 잘리고, 손발톱을 뽑힌 채’ 하늘나라에서 추방된다.>


고대사회에서 집단의 대표자는 집단원의 원초불안을 해소시켜주는 든든한 수호령이며, 생명력의 원천이자 모델이다. 그 대상이 사라짐은 그 집단원 전체가 위기에 처함을 의미한다. 이런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려고, 고대부터 왕을 보호하고 병들거나 사라지지 않게 ‘감시’하는 수많은 터부가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는 집단의 생명력 유지를 위해 왕이 노쇠하거나 죽기 전에 새로운 왕으로 대체했다. 그래서 중신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연구한다. 그후 ‘막힌 입과 길을 열어주는’ 여신 아메노우즈메가 등장해 석실 앞에서 요염한 춤을 추니, 그것을 본 모든 신들이 궁이 진동할 정도로 크게 웃는다. 이 웃음소리가 동굴에 숨은 태양여신에게 '호기심을 유발'해 석실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웃는 이유를 묻는다. 그때 신들은 그녀 앞에 거울을 들이 댄다. 석실 밖에서 여성적인 매력을 발휘하는 아메노우즈메의 모습과 어른으로 변신한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아마테라스는 석실 밖으로 나온다. 그러자 천상계에 다시 빛과 생명의 활기가 돌아온다.


동굴 속에 들어가 은거하다 재출현함으로써 아마테라스는 보다 성숙한 존재가 된다. 상처입은 아가씨에서 성숙한 여성으로 변신한 것이다. 석실 속 (죽음, 자아마비) 상태에서 석실 밖 (생명, 자아활동)으로 ‘전환’하는 일종의 입문의례 과정을 거쳐, 새롭게 ‘발달’한 정신이 된 것이다.

‘하늘나라’는 일하지 않고 놀고먹으면서 자유롭게 지내던 유년기를, 하늘나라의 신들은 유년기의 부모를 상징한다. 그리고 수염은 ‘머리털’의 전치이며, 머리는 ‘남근’의 전치이다. 손발톱은 손발의 전치이며, 손발은 왕성한 활동력ㆍ남근의 전치다. 따라서 수염이 잘리고 손발톱이 뽑힘은 남근(‘생명력’)이 ‘거세’됨을 뜻한다.


옛날에 ‘형벌 유형'은 저지른 ‘죄의 유형'에 대응한다. 그렇다면 ‘거세’ 처벌을 받은 범죄자가 저지른 죄의 유형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제1 타부 사항인 ‘오이디푸스 욕구’의 직접적 표출로 볼 수 있다. 폭풍신 스사노오는 부모에게 수용 받지 못한 공격성과 결핍된 모성적 사랑 및 성욕망을 한꺼번에 해소하고자, 천상계 누나를 향해 금지된 행동들을 분출한 것이다. 모계제가 가부장제로 대체된 이후부터, 고대사회에선 동일 토템을 섬기는 씨족원들 사이의 성 접촉은 엄격한 타부였다. 집단구성원이 근친상간 타부를 어기면 집단 전체에 재난이 닥친다고 믿어졌다. 이를 반영하듯이 스사노오의 타부 파괴 행동은 아마테라스에게 큰 상처를 입힘으로써, 집단전체에 재난을 가져왔다. 타부를 어긴 자는 집단구성원에게 그 나쁜기운이 ‘전염’되므로, 공포와 혐오 대상이 되어 그와의 모든 ‘접촉’이 차단되며, 그 벌로 (아버지의) ‘법‘에 의해 혹독히 거세당한다.


고대의 ‘거세’ 형벌은 대부분 사형이나 집단의 보호 울타리로부터의 추방이었다. 거세는 공격력과 생명력을 무력화시키거나 성기능을 제거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손발톱과 수염’은 손발과 남근의 전치다. 그렇다면 생명력과 성기가 손상되는 벌을 받은 것이다. 거세된 인간은 자아전능 감정에 도취하게 하던 자기애와 자아전능 환상이 깨진다. 그 결과 자신을 거세한 강한 외부세계(상징계)의 존재와 요구들을 냉엄한 ‘현실’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사회적 인간’이 되거나, 분노가 증폭되어 통제하기 힘든 반사회적 인격이 된다. 또는 자신의 상처를 위로하고 보상해줄 더욱 안전한 환상대상을 찾아 헤매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서기』의 전승에는 스사노오가 받은 벌이 몸에서 ‘수염, 침, 콧물을 받아낸' 것으로 되어있다. 이는 신체의 일부라고 하기에 ‘모호하면서도 부정한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유아적 환상에 고착된 미숙하고 분별없는 ‘아이 상태’에서 분별력을 지녀 사회질서를 수용하는 ‘어른의 범주'로 이행시켰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죄와 부정을 씻는 의례를 집행함과 동시에, 일종의 ‘성인식’ 통과의례를 거치기 위한 기초 조건을 그에게 제공한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졌던 스사노오의 천상계 방문은 결과적으로 아마테라스와 천상계 전체와 스사노오를, 미숙한 정신 상태에서 성숙한 정신 상태로 전환시키는 주요 계기가 된다.


3. 성인식 통과의례 I : ‘음식 여신’ 살해


<천상에서 지상으로 추방되자 스사노오는 먼저 ‘음식 여신’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녀가 코, 입, 엉덩이에서 나온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자, 혐오감에 화를 내며 그녀를 죽인다. 죽은 여신의 몸 각 부분에서 여러 종류의 농작물이 나온다.>


본능욕동을 현실에서 마음껏 분출하면 준엄한 심판의 벌을 겪게 된다는 것을 고통스레 체험한 이후부터, 인간은 소위 유아적 천상세계(상상계)로부터 냉엄한 지상세계(상징계)로 ‘내려와’ 살게 된다. 스사노오는 나름 성숙해진 상태로 지상에 내려온다. 그런데 그에겐 아직 유아적 결핍이 온전히 해소되질 않았다. 그래서 그 결핍을 채우기를 기대하며 ‘음식 여신’을 찾아간 것이다. ‘음식’은 구강기의 엄마 젖처럼 생명과 힘의 원천이고 만병치유약이며 존재를 성장시킨다. 음식을 섭취함은 세상을 내면화해 파악함이며, 포만감과 배설과 생산력을 얻게 된다. 먹은 음식을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내적으로 수용하면 신체의 변화, 변환이 일어난다.

음식은 또한 유아기 구강욕구를 만족시키는 대리물이다. 욕망대상으로부터 원하는 애정을 얻지 못할 때, 그 대상 대신에 ‘음식’을 탐욕스럽게 삼키거나 씹어대면 대리만족이 얻어진다. 음식섭취는 배설물을 생산하여 배설 쾌감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음식 여신’은 ‘성’과 연관되기 이전 시기인 구강기-항문기에 젖과 배설 만족을 제공하던 엄마를 상징한다.

‘음식’을 몸에서 꺼내는 ‘음식 여신’의 행위는 마치 어머니가 젖가슴에서 모유를 뿜어내는 것과 유사하다. 수염과 손발톱을 뽑혀(거세되어) 무기력해진 스사노오는 어머니의 음식(‘젖’)으로 생명력을 보충하기 위해 ‘음식 여신’에게 갔을 것이다. 그런데 입과 항문으로 음식을 만드는 그녀의 모습과 행위는 스사노오에게 뜻밖에도 유치한 모욕으로 느껴진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항문은 유아가 자기 신체의 일부이자 자랑스런 창조물로 느끼는 '대변'을 보관하는 보물창고이며, 대변이 직장을 훝으며 배설될 때 강한 쾌감을 주는 쾌락기관이자 배설기관이다. 그런데 곤혹스럽게도 유아는 원치 않는 시간과 장소에 변을 배설하라고 부모로부터 요구받는다. 부모의 그 배변훈련(청결) 요구 때문에 항문기 아이는 '변 상실감'과 '배설쾌락 상실'의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일단 부모와 사회의 배변훈련 요구를 수용한 후엔, 아이는 이전에 애착했던 항문과 변에 대해 더러움과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유아는 엄마의 몸속에 온갖 맛있고 귀한 것들이 담겨있다는 무의식적(선천적) 환상을 지닌다. 구강기(편집분열자리)의 유아는 이런 ‘엄마 몸’을 탐욕스럽게 소유하는 환상과 더불어 시기하여 파괴하는 환상을 지닌다. 프로이트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서 심판받아(부모에게 야단맞아) 거세된 자가 무심결에 ‘음식 여신’을 찾아간 것은, 거세 상처 이전 시기로 퇴행하여 구강-항문욕동을 충족함으로써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나 집단의 압력에 의해 구강항문 성애가 과도 억압된 경우, 원래는 친밀했던 구강 항문과 변을 연상시키는 음식에 대해 정반대의 역겨움과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구강만족이 과잉 좌절되면, 유아의 내부엔 탐욕과 시기심이 들끓게 된다. 이 부정적 감정들을 외부대상에로 투사되면, 그 대상은 온갖 ‘좋은 것들’을 몸속에 독점한 ‘나쁜 엄마’이자, 그를 모욕하거나 독살하려드는 ‘오염된 마녀’로 환상화 된다. 음식여신에게 격노한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시기심과 더불어 이런 박해망상ㆍ박해불안이 스사노오(고대일본인)를 엄습했기 때문일 수 있다.

엄마의 공감적 돌봄을 받지 못해 ‘자기애 상처’가 심한 사람의 경우, 타인의 사소한 낯선 행동에도 그것이 마치 자신을 비하하는 것인 양 오해하여 쉽게 모욕감을 느낀다. 정신 내부에 자리잡은 '부정적 자기표상’과 부정적 대상표상' 때문에, 자신의 요구에 대한 대상의 반응에서 조금이라도 부정적 요소가 지각되면 격노가 일어난다.

그로인해 그는 항상 ‘배고픔’(대상의 애정갈망) 상태에 처한다. 이런 ‘배고픔’ 상태는 그가 엄마(최초대상)에 의해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제대로’ 공감ㆍ반영(mirroring) 받지 못했던 초기 박탈감 상태의 반복재현이다. 그로인해 그는 항상 타인의 행동을 오해하고, 타인과 온전한 상호 반영 관계를 맺지 못해 환경으로부터 소외된다.


다른 한편으로 '음식여신을 죽임'은 구강기 어머니에게 의존하고 융합하고픈 유아적 욕구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정신 단계에로 전환하는 의미를 지닌다.

고대민속학 관점에서 보면, 음식여신은 곡물정령의 상징이다. 고대인은 곡물을 수확한(죽인) 후에 내년에도 곡물이 되살아나 식량을 제공해주기를 기원하며, 인간을 제물로 바쳐 그 피를 대지에 뿌려 곡물여신을 위로했다. 따라서 음식여신 살해는 매년 곡물수확과 연관해 자연생명의 죽음과 부활(풍요)를 기원하던 고대인의 주술 의례를 반영한다.

고대 일본민족이 왜 하필 폭풍신을 통해 음식여신을 죽여야 했는가를 민족정신의 ‘목적’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인간의 정신발달은 엄마와의 융합(공생) 상태를 충분히 향유한 후에 그것에서 점차 ‘분리-개별화’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이와 유사하게 ‘음식 여신’ 살해는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며 ‘자연과 융합(공생)’ 해 지내던 고대 일본민족이, 이젠 자연에서 과감히 ‘분리’하여 자연을 적극 관리하는 문화적 농경사회로 변화하려는 집단무의식의 목적을 담고 있다. 어머니에 의존하고 융합했던 기존의 유아적 세계가 죽어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눈에 보이듯이, 음식여신이 살해되자 여신(모신)의 시체에서 농경생활에 긴요한 여러 곡물들이 나온다.


4. 통과의례 II : 괴물 처치


<그 후 이즈모 지역에 가니 여덟 딸 중에서 괴물에게 먹힐 하나밖에 남지 않은 딸을 두고 우는 ‘노부부’를 만난다. 그 딸과의 ‘결혼’을 허락받아 ‘여인을 빗으로 만들어 머리에 꽂고’, ‘여덟’ 개의 머리와 꼬리를 지닌 ‘거대한 괴물’을 여덟 개 ‘문’에 놓은 여덟 ‘항아리’의 여덟 해 익힌 ‘술’에 취하게 한 후, 칼로 난도질해 죽인다.>


처녀들을 잡아먹는 괴물의 정체는 무엇인가? 원시시대에 실제 행해졌던 관습적 사건들의 흔적은, 훗날에 신화, 꿈 ‘무의식적 환상’, 종교의례 등으로 회귀한다. 프레이저의 민속학 자료에 의하면, ‘괴물’은 일차적으로 부족을 통치하던 족장을 뜻한다. 고대인은 집단원들의 생명력을 대신 떠맡아 보호하던 족장이 노쇠하거나 병이 들면, 집단에 재난이 닥치거나 부족원 전체의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고 믿었다. 그 경우 과거엔 ‘위대한 神人’이던 족장은 제거되어야 할 ‘괴물’로 변질된다. 그래서 부족원들은 나쁜 기운을 집단에 전염시키는 족장을 살해할 강력한 새로운 영웅이 나타나 쇠퇴해가는 집단의 생명력을 회복시켜주기를 기원한다. 잡아먹힌 처녀들과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딸, 늙은 부부는 쇠퇴한 집단생명력의 반영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古代엔 처녀들의 목숨을 수호신(‘자연 정령’)에게 바치는 희생제의(人身公會) 풍습이 있었다. 희생제의의 목적은 목숨을 바쳐 신을 공경하는 인간의 정성에 감응하여 ‘신'도 인간집단의 생명력을 풍요롭게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있다. 이 때 희생자는 집단의 재난과 죄들을 대신 떠맡아 정화시키는 ‘대속자’ 역할을 겸하기도 했다. 그 경우 ‘처녀들을 잡아먹는 괴물’이란 처녀들을 제물로 죽여 제사지낸 ‘토템 신’ 내지 희생제의 관습 자체를 상징한다. 그런데 그 신과 관습이 더 이상 민족에게 문제 해결과 정신 위안을 주지 못할 경우, 새로운 문화에 의해 과거 신과 관습은 ‘괴물’로 변질된다. 스사노오 신화가 문헌에 최초 기록되고 농경문화가 정착된 8세기 무렵의 일본에서, ‘왕 살해’,‘인간제물’은 문제가 많은 惡習으로 간주되어 타파된 직후였을 수 있다.


융의 관점에서 보면, ‘괴물’은 보편적으로 그 민족이 외면해오다가 대면할 수밖에 없게 된 민족무의식의 그림자ㆍ콤플렉스를 상징한다. 그 민족이 보다 성숙한 정신단계에로 ‘전환’하려면 반드시 괴물과의 대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프로이트는 꿈에 등장하는 ‘거대한 괴물’을 원시 씨족집단의 ‘원아버지’(씨족장)ㆍ'오이디푸스기 아버지’의 상징으로 본다. 힘없던 고대 일본민중에게 괴물은 여성들을 혼자 독점하다가 희생 제물로 죽게 만드는 무서운 힘(‘마나’)을 지닌 부족장(아버지)의 상징이다. 그래서 지배자(아버지)를 향해 직접 표출할 수 없었던 억압된 공격성을, 신화 속 스사노오를 통해 괴물에게 한껏 분출한 것일 수 있다. 본능의 차원에서 보면, ‘처녀들을 잡아먹는’ 괴물은 당대 일본민족이 충족하고 싶어했던 구강욕동과 남근 성욕동이 혼합되어 외부로 투사된 형상일 수 있다. 이 경우 '처녀들'은 고대인이 먹고 싶어 한 '엄마 젖, 생명력, 성대상'의 표상이다.


괴물의 특성을 세세히 살펴보면 그것의 무의식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더 많은 단서들이 드러난다. 괴물은 여덟 개의 머리와 꼬리를 지녔다. 동양에서 여덟(八)은 ‘많음’, ‘풍요’의 긍정적 의미와 무덤(穴)의 죽음공포를 함께 상징하는 숫자다. 머리와 꼬리는 남근을 상징하므로, 머리와 꼬리가 많음은 제압하기 힘든 왕성한 생명력과 생식력(생산력)을 의미한다. ‘문’은 존재의 변형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를 상징한다. 전통 제례나 꿈에서 주인공이 ‘문’을 통과하면,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존재상태로의 변형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괴물의 여덟 머리가 여덟 개의 ‘문’으로 통과함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소통이 단절된 채 정신을 괴롭히던 무의식의 콤플렉스들이 자아의식의 대상으로 대면ㆍ교류되어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 괴물에게 항아리의 오래된 술을 먹여 취하게 해 목 잘라 죽임은 무슨 뜻인가? 새로운 탄생이 있기 위해선 ‘생성해내는 자궁’과 기존 상태의 마비ㆍ죽음이 필요하다. 소중한 무엇을 '담아내는' 항아리는 대지의 흙으로 만들어지므로, 地母神의 자궁을 상징한다. ‘술’은 기존(유아적) 정신의 변형을 위한 ‘망아(忘我)’ 상태를 일으키기 위해 사용된 신비의 매체다. 술은 심신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힘이 솟게도 한다. 地母神의 ‘오래된 술’은, 자연이 매년 봄에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듯, 쇠퇴한 생명력을 부활시키는 생명수의 상징이다.


여덟 개의 머리와 꼬리를 가진 거대한 몸집의 괴물은, 자기만족을 위해 아이의 삶을 일일이 머리로 간섭하고 꼬리로 좌지우지하여 결국 아이의 개성을 잡아먹는 ‘자기중심적 남근 엄마’의 상징일 수도 있다. ‘자기중심적 엄마’(narcissistic mother)란 스스로의 힘으로 능동적 삶을 살아가지 못한 채, 아이들의 생명에너지에 의존해 착취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자기애와 모성성 결핍이 심한 ‘남근 엄마’는, 상과 벌로서 아이의 삶을 무섭게 통제하여 아이를 ‘자신이 원하는’ 로봇으로 만들어 봉사하게 한다. 타자를 자신의 자기애를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이들의 착취와 폭력은 교묘하다. 그로인해 아이들은 활기 없고 불행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삶이 자기애 결핍이 심한 엄마의 문제에 기인된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채, 자신의 문제라고 자책하게 된다. 그러나 꿈이나 무의식에선 ‘괴물’을 살해하는 환상과 ‘거대한 괴물’에게 삼켜지고 학대당하는 불안에 시달린다.


‘공포스런’ 괴물은 이처럼 통제되지 않는 파괴욕동, ‘자기중심적 남근엄마’, 거세공포를 일으켰던 ‘原아버지’, 위험한 왕, 자연 재해, 콤플렉스, 오이디푸스 욕구를 비난하는 초자아 등등이 다중으로 압축된 상징이다. 또한 괴물은 과거엔 친밀하고 소중했지만 집단의 정신발달을 위해 이젠 대결하여 제거하거나 ‘분리’되어야 하는 어떤 무엇의 상징이다.

‘괴물 처치’는 민족의 현실문제와 콤플렉스들을 의식의 칼날로 성찰ㆍ해체함을 뜻한다. 괴물을 처치한 ‘칼’에는 본능충동을 통제하고 환상의 장막을 꿰뚫어 찢는 자아의식의 지혜 능력, ‘진정한 자기’가 지닌 당당한 공격성, 그리고 남성적 생명력 등이 압축되어 있다.


집단무의식의 관점으로 보면, ‘노부부’란 생식력을 지닌 ‘후손들을 낳아 잘 기르는데 헌신적 도움을 주는 지혜노인, 자연창조력의 상징이다. 반면에 생식력이 왕성한 처녀들을 집어삼키는 ‘괴물’은 자연이 지닌 파괴력(죽음본능)과, 새로운 변화를 방해하여 집단생명력을 고갈시키는 구시대 악습, 노쇠한 왕 등을 상징한다. 인자한 노부부와 포악한 괴물은 자연의 두 대극적 특성을 상징한다. 스사노오가 괴물을 처치했음은, 그 집단을 불안하게 했던 자연의 파괴력과 대결하여, 척박하고 공포스런 자연을 ‘생산물을 제공하는 자연으로 바꾸었음’을 의미한다. 또는 ‘자연(신)’의 소유였던 자연생명들을 거두어가고 재생하는 능력을 인간(문화)의 소유로 바꾸어, 자연신의 권력을 대체하는 새 유형의 권력체인 국가와 왕의 출현을 암시한다. 샤먼과 족장들의 시대에서 일본 최초로 보다 큰 집단의 왕이 출현함으로써, 인간은 자연과 균형적 대칭을 이루던 삶으로부터 특별한 왕권과 국가에 소속되는 ‘백성’으로 변화된다. 괴물의 몸에서 나온 ‘보검’은 자연이 지녔던 ‘비밀스런 힘’을 상징하며, 이것을 인간이 소유하게 됨으로써,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균형관계는 인간우월주의로 변화한다.


괴물과 싸운 스사노오 행위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모성결핍을 채우고 싶은 갈망 때문에 ‘아버지의 명령’을 수용하는 걸 거부했던 스사노오는 아직 악을 무찔러 정의를 구현하는 ‘사회 지도자의 모델’이 아니다. 모성결핍을 극복하지 못한 자에겐 사회적 ‘선/악’ 분별이 일차적 관심사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융의 ‘개성화 과정’에서 보면, 괴물과 싸워 위기에 처한 여인을 구해내 결합하는 것은, 모성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무의식의 아니마(여성성)를 통합하여, 유아기 엄마 환상으로부터 ‘분리’를 성취하고 정신의 균형과 전체성을 확립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영웅적 정신발달을 이루기 위한 핵심 과정이다.


괴물의 수많은 머리와 꼬리를 칼로 난도질함은, 무의식의 ‘나쁜 엄마 환상’들로부터 ‘분리’하여 ‘독립적인 남성성’을 정립하려는 활동이다. 괴물을 처치하고 원하는 여인을 얻었다는 행복감과 승리감이 느껴지고 나서야 스사노오는 비로소 모성 콤플렉스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비로소 ‘아버지가 부여한 임무’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어머니를 대리한) 누나에게 오이디푸스 욕구를 분출해 상처 입히고, ‘음식 여신’을 죽이고, ‘괴물’을 살해하는 과정들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정신성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다. 집단의 난제를 해결하여 집단으로부터 인정을 획득한 스사노오는, 그의 존재가치와 남성적 힘을 경탄하고 욕망하는 여성과 결합한다. 이 결혼은 그동안 모성(아니마) 결핍으로 인해 방황하던 스사노오의 정신을 안정시킨다. 이제 그는 파괴욕동과 박해망상ㆍ박해불안과 모성결핍에 시달리는 광포한 (‘편집-분열 자리’) 상태로부터 벗어나, 현실 ‘대상’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배려하기 시작하는 (‘우울 자리’) 상태에 진입한다. 그 징표로 도덕의식이 없던 그가 갑자기 자신이 누나에게 했던 과거 행동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그녀를 위로하고 보상하는 행동을 한다.


<스사노오는 괴물의 몸속에서 나온 ‘보검’을 누나에게 바쳐 ‘화해’를 청한다.>


‘보물 검’은 ‘거인’처럼 보이던 유년기 아버지조차 제압할 수 있는 ‘마술적 힘’의 상징이다. 이 보물을 지닌 자는 보통사람이 접할 수 없는 힘(‘마나’)을 지니므로, 집단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된다. 그런데 그 보물을 ‘소유’하기보다 타인에게 준다는 것은, 권력의 중심이 자신보다 아마테라스에게 있음을 공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애 단계로부터 타인에게 진정한 관심을 쏟는 대상애 단계로 성장하여, 타자에게 에너지를 증여하는 힘을 지닌다는 기표다. 또한 든든한 ‘자기(애)’가 형성되어 원초적 충동과 불안에 대한 자율적 통제능력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은, 아버지 말씀과 상징계의 요구를 내면화한 초자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화해’는 무의식과 의식, 파괴욕동과 삶욕동, 증오와 애정, 하늘나라와 지상나라로 분열되었던 정신요소들을 균형 있게 통합함을 의미한다.


5. 업적 : 국가의 토대 이루기


< 스사노오는 여인과 결혼하여 많은 ‘신들’을 낳는다. 그리고 이즈모에 정착해 나라를 이룬다.>


괴물을 처치한 것이 어떻게 반사회적 정신성을 영웅의 정신성으로 변환시킨 動因이 되는가? 신화 속 스사노오의 최초 모습은 모성 결핍으로 ‘자기(애)’가 취약해 마구 울어대거나 충동 조절을 못하는 광포한 반사회적 성격자였다. 그는 ‘권위자(아버지)의 요구’를 거부했고, 근친상간 금기를 비롯한 여러 금기를 깨뜨려 천상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런데 천상계에서 ‘거세’당한 후, 지상에 내려와 ‘음식 여신’을 살해하고, 이즈모 지역에서 노부부를 만나 여인과의 '혼인 약속'을 받은 이후부터, 파괴적이던 그의 공격성은 ‘괴물’(집단의 그림자)과 대결하는 당당한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된다. 그리고 괴물을 처치한 이후부터, 그 자신을 비롯해 그를 대하는 ‘세상의 시선’이 달라진다. 그는 집단을 위태롭게 하는 타부파괴 죄를 범한 위험한 존재에서 집단을 보호하는 신성한 힘을 지닌 지도자로 성질과 위치가 급변한다. 이런 변화의 근본 원인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자신의 돌봄을 간절히 필요로 하며 자신의 가치를 대단히 존중해주는 '여인과의 결합’은, 엄마 없이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방황하던 스사노오의 결핍된 모성성을 ‘보충’시키는 핵심 계기로 작용한다. 모성결핍이 보충되고, 아니마에너지가 정신에 통합되자, 그의 정신성에 큰 변화가 발생한다. 즉 모성결핍으로 인한 파괴욕동의 외부 ‘투사’로 인해 외부세계로부터의 박해망상에 시달리는 ‘편집분열 자리’ 정신구조로부터, 대상의 좋은요소와 나쁜요소를 두루 지각하여 통합하는 능력을 지닌 ‘우울 자리’ 구조로 정신 발달을 이룬다. 아직 스사노오는 우울자리에 걸려있는 존재다. 그에겐 더 대결하고 자아에 통합해야 할 무의식의 과제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무의식의 문제는 ‘혼자’의 힘만으로 직면하거나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고대사회에서 ‘비범한 힘('mana')’을 지닌 신(자연정령, 제사장, 왕)들조차도 오랜 세월 잠복되어온 무의식의 복잡한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괴물과의 대결’은 원초적 충동과 엄마환상 속에 거주하는 의존적 아이를 ‘상징적 대화’ 능력과 ‘자신의 욕망에 대해 책임’지는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성년식’ 통과의례를 의미하기도 한다.

노부부는 지역의 토착 ‘山神’을, 딸(들)은 토지여신 내지 곡물정령의 상징일 수 있다. 이 경우 노부부 딸(들)과의 결혼은 토지의 생식력과 남성적 힘(씨뿌리기)이 결합하여 자손을 번식하고 곡물이 풍성히 열리는 농경사회가 만들어질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러나 아직 당대의 일본에는 곡물재배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진 않았다. 곡물의 번식은 오쿠니누시에 의해 나라세우기가 완성되어 지상에 농경문화가 퍼진 다음에 시작된다.

스사노오는 거친 ‘戰士의 힘’으로 흉포하고 척박한 자연(여덟 딸 중 일곱 딸의 죽음)과 대결해, 빈곤하고 혼돈스럽던 이즈모 지역에 풍요로운 농경문화와 국가를 세우는 토대를 마련한다. ‘괴물(자연재해)’과의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그는 모성 콤플렉스와 죽음불안을 극복한 어엿한 성인 전사로 성장한다. 그런데 괴물의 시체에서 나온 ‘보검’이 무의식의 콤플렉스들을 해체하는 예리하고 강건한 힘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신의 소유로 삼지 않고 누나에게 바친 까닭은 무엇인가?


'보검'은 인류무의식의 예리한 분별력과 욕망을 실현시키는 힘인 남근에너지를 보유한다. 스사노오가 획득한 '보물'을 인격발달의 궁극적 실현이나 통일국가 건설 실현에 활용하지 않고, 천상계의 여왕에게 선물한 것은, 일종의 '화해'를 원하는 표시다. 태양여신과의 화해는 지상계와 하늘계 사이의 대립 투쟁 흔적을 넘어, 조화로운 공존 관계를 바라는 집단의 욕구가 표현된 것이다.

누나는 어머니의 심리적 대리자이므로, 보물 선물은 '어머니와의 화해' 시도를 표상한다. '아버지와의 화해'는 없고 '어머니와의 화해'만 등장하는 이런 신화소의 의미는 무엇인가?

유아기에 ‘자기애적 상처’가 깊은 사람은 내면에서 끊임없이 ‘최초 양육자’의 사랑과 칭찬을 갈망한다. 스사노오의 정신성은 엄마에게 '자신의 본래성’을 온전히 존중ㆍ공감ㆍ‘반영’(mirroring) 받지 못한 자의 유아기 ‘자기애 결핍'을 극복하는데 머물고 있는 것이다..


6. 최후 : 콤플렉스 잔여, 미완성 과업


<스사노오는 지상에 오래 머물지 않고 지하계로 사라진다. 그의 자손들은 번성했으며, 6대 자손인 오쿠니누시가 이즈모에 통일 국가를 세운다.>


스사노오는 지상에서의 국가 건설 작업을 완성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나라인 지하계로 떠난다. 이 기표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인 남성이 사회적 과업성취를 미완성할 경우, 그 일차적 원인은 부모 콤플렉스와 연관된다.

기존 정신구조에 어떤 고통과 결핍을 지닌 사람이 새로운 정신상태로 변화하려면, 변화를 방해하는 무의식의 내적 저항을 극복해내야 한다. 그런데 개인 혼자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저항의 힘을 변화시킬 수 없다. 무의식의 변화를 위해서는 ‘자신보다 더 강력한’ 새로운 힘을 지녔다고 믿어지는 ‘조력자’의 존재가 필요하다. ‘정신분석’ 작업이란 바로 정신분석가라는 조력자와 더불어, 내담자가 자신의 무의식과 대결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스사노오는 과연 그런 강력하고 새로운 힘을 제공한 조력자를 경험했는가?

괴물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그는 노부부에게서 ‘괴물을 마취시키는 술’을 제공받았다. 그리고 여인을 ‘머리에 꽂고서’ 괴물과 싸웠음은, 여인에게서 어떤 에너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도움 받은 것에 대한 외적 표현이 소소하다. 즉, 그가 본래부터 지녔던 어떤 결핍과 한계를 보충ㆍ극복시키는 ‘새롭고 강한’ 힘을 주는 이상화 대상의 힘과 존재가 애매하다. 이 점에서 그의 정신성이 과연 초기 콤플렉스 상태로부터 극적인 ‘전환’을 이루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그에겐 넓은 세상에로 나가는 것을 원하는 능동적 특성이 모호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상에 국가의 기초는 놓았지만, 능동적인 국가 체계 정비나 의미부여 작업을 성취하진 못한 채, 이내 지하계의 어머니에게 회귀한다. 인생 초기에 심한 모성박탈을 지닌 ‘자기애 인격’자의 인생과정은 끊임없이 고독하고 공허하다. 그의 고통과 결핍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나 ‘현실의 여성’이 온전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기 박탈에 의해 활성화된 강력한 죽음욕동은 끊임없이 ‘반복강박’을 일으켜 상처받기 이전 상태로의 회귀를 유발한다.


민속학 차원에서 해석할 경우, 戰士의 공격성은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낳을 때에는 귀중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단 질서가 잡힌 이후에는 파괴성을 지닌 위험한 힘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당대 민족의 바람에 의해, 지하계로 활동영역을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사노오가 ‘지하계로 감’은 산 자의 지상세계와 죽은 자의 지하세계를 ‘중계’해 소통시키기 위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대인에게 1차적 관심은 죽음불안 문제였고, 궁극적 관심은 ‘죽음’이라는 운명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집단의 우두머리와 제사장은 죽음의 세계와 교류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죽은 후에도 삶의 연속성을 이루고 싶은 집단원의 소망에 부응하기 위해, 영웅은 기꺼이 지상세계를 버리고 망자의 세계에로 가는 최후를 선택해야 한다. 뱀이 성장을 위해 껍질을 벗듯이 영웅은 집단의 영생을 위한 최후의 ‘전환’을 위해 삶의 껍질을 벗고 지하계로 가야한다. 영웅이 중계하기 가장 힘든 것은 죽은 자와의 관계 통로를 여는 것이며, 영웅 신화의 최대과제는 죽음영역과의 단절된 교류를 푸는 데 있다.


IV. 결론


‘스사노오’는 고대 일본민족의 어떤 무의식을 상징하는가? 고대 일본인들은 스사노오를 통해 무엇을 표출하고 싶었고, 무엇을 충족하였는가?

‘무의식’을 다루는 정신분석은 결코 단 하나의 ‘보편적 설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신화 해석 과정에서 발굴된 다중의 의미들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종합하느냐는 해석자 각자의 몫이다. 어떤 일본인은 공포스런 폭풍 속에서 어머니가 그리워 심란하게 울어대는 스사노오의 울음소리를 떠올리며, 불안을 달랬을 것이다. 폭풍에 요동치는 파도 속에서 죽음공포에 떨던 어부들과 광포한 자연현상 속에서 위협감을 느끼는 수렵인들은 거대한 괴물을 퇴치한 스사노오에게 제사지내며 보호를 요청했을 것이다. 스사노오는 인간과 자연에 담겨있는 원초적 공격욕동이 투사된 형상일 수도 있다. ‘정령사상’을 지녔던 고대인들은 내부에서 치솟는 충동들을 ‘악마적 힘’으로 공포스러워 했다. 그런데 공격성도 적절하게 사용되면 ‘괴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는 창조적 생명에너지 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스사노오가 전해준다. 그는 武士의 신이다. 武士는 백성들을 광포하게 위협하는 부정적 대상인 동시에 적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는 경탄스런 구원자이기도 하다. 고대 인류의 일차적 관심이 생존과 안전이라면, 괴물의 위협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해주는 무사 스사노오는 곧 집단의 수호령인 것이다.


신화에 처음 등장할 때의 스사노오는 심각한 애정 결핍을 지닌 유아적 반사회적 성격자였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거친 후 그는 위엄을 지닌 영웅신으로 변신한다. 그렇다면 그는 단절된 대극 특성을 지닌 ‘병리적이고 무기력한 아이’와 ‘위대한 영웅’ 사이를 서로 통하게 매개하는 인격이다. 그는 아버지에 의해 바다를 관리하는 신으로 임명되고, 천상계로 갔다가 지상으로 내려와 이즈모 지역에 국가를 세웠고, 최후에는 지하계로 떠났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으로의 이동은, 서로 대립되거나 단절된 타자성들을 서로 연결시켜 소통시키는 활동이다. 그는 유치함과 성숙함, 반사회성과 질서, 생명과 죽음, 높음과 낮음을 대립과 분열의 관계에서 통합의 관계로 전환시킨 중개자이다. 무릇 영웅이란 자기 자신과 집단의 발전을 위해, ‘분열’되어 막혀있던 집단 내부의 에너지를 중개 역할을 하여 소통하게 만드는 존재다. 이 점에서 스사노오는 영웅의 특성과 기능을 드러내는 좋은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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