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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ud의 신경증 원인론 : 외상, 환상, 사후작용

관리자
2020-08-21

저자 :  이 창 재 (Ph.D)


<서론>


정신의 병리 현상은 어떤 원인에 의해 어떻게 생겨나는가? 왜 의지를 벗어난 실수와 증상들이 반복되는 것인가? 왜 만물의 영장임을 자랑하는 인간이 안전한 환경에서도, 정신 내적 원인에 의한 스트레스에 휘둘려 사는 것인가? 필자의 정신분석 강의에 참여한 절반의 사람들은 그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절반의 사람들은 자신이 고통 받는 원인을 약간은 짐작하지만, 증상이 어떤 과정들을 거쳐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사상가들은 어떤 설명을 제시하는가? 전통 형이상학자들은 덧없이 변화하는 육체와 세속의 권력에서 영속적 만족을 기대하기 때문에, 고통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들의 눈에 육체와 세속의 권력은 결코 궁극 실체가 아니며 영원한 만족을 제공하는 대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은 마치 그것에 대단한 가치가 담겨있는 양 관심을 쏟는다. 이 잘못된 관심 때문에 그것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그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할 경우, 분노, 피해의식, 열등감을 느낀다. 형이상학의 관점은 정신이 고통 받는 원인을 나름대로 설명해준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체의 건강과 사회적 권력의 소유는, 실제로 정신의 행복과 병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신의 성질을 수십 년간 공부하고 가르쳐 온 학자들조차, 사회적 권력의 주변으로 밀려날 경우 정신에 상처를 입곤 한다. 이런 현상은 심지어 “세속의 권력은 허망한 것이며 영혼의 구원이 인생의 궁극목적이다”고 설파하는 종교가들에서조차 다반사로 관찰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더 이상 내밀한 소문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더 이상 말과 실천이 어긋나는 학자나 종교가를 진심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현대인은 육체의 건강과 쾌감, 그리고 정신적 안정과 기쁨을 제공할 ‘대상’을 원한다. 이런 대상을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할 때 그들의 자아는 불안정해져, 강화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게 된다. 그런데 ‘대상 항상성’이 파편화되는 자본주의와 정보화 환경에서 현대인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유지시켜줄 신뢰할 만한 ‘대상’을 만나기란 구조적으로 쉽지가 않다.

프로이트는 영원하고 순수한 관념세계가 덧없고 복잡한 현실보다 가치있다고 믿는 사변적 학문들은 인간 삶을 병리적 방향으로 유도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병리적 정신상태의 징후라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인간’은 양육자에게 오랜 기간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며, 사회적 관계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지닐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그는 주어진 정신-신체적 조건들을 최대한 활용해 ‘불필요한 고통’들로부터 벗어난 삶을 사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인간을 편견과 환상에 고착시켜 ‘자아 발달’을 저해하는 사변적 학문들과 종교를 대체할 새로운 관점으로서 정신분석학을 개척한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정신의 병은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2. 신경증의 기원 : 유년기의 성적 외상


인간은 어떤 원인들로 인해 삶을 즐기지도 못하고, 이익되게 행동하지도 못하는 불행한 심리상태에 처하게 되는가? 자아의 기능이 일부 마비되는 신경증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신경증자들에 대한 정신분석 과정에서 그들 대부분이 유년기에 주위 사람으로부터 강한 성적 자극을 받았으며, 그것이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토로하는 것을 관찰한다. 억압된 무의식을 의식에 드러내는 정신분석 작업에서 신경증자들은 오랜 방어적 저항 기간을 거친 후에 자신이 숨겨온 컴플렉스가 성적 상처와 관련된 것임을 내밀히 토로한다. 프로이트가 만난 신경증자들의 정신분석 과정은 대부분 성적 상처의 회상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성적 상처는 놀랍게도 대부분 유년기에 생겼다고 표현된다. 이런 일련의 임상적 관찰을 통해 그는 신경증이 유년기에 가까운 대상으로부터 받은 성적 트라우마(外傷, 상처)에 의해 발생한다는 이론을 정립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유년기에 지나치게 강한 성적 자극을 받으면, ‘성적 해독noxa’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아이는 아직 성기관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성 자극에 의해 축적된 내적 긴장을 성교 활동을 통해 외부로 분출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운동기관이나 인지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에, 흥분과 긴장을 운동으로 대리 발산하거나 사회적 노동으로 승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 긴장이 축적되면 감당하기 힘든 불쾌로 느껴지며, 그로 인한 정신의 붕괴를 막기 위해 병리적 방어기제가 본능적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병리적 방어기제를 사용한 결과로 자아에너지가 고갈되고 정신구조가 기형화되어 신경증 증상이 발생한다.


3. 신경증의 종류 : 현실신경증과 정신신경증


프로이트는 신경증을 현실신경증과 정신신경증으로 구분한다. 현실신경증은 외상이나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 병이 아니라, 단지 성욕동 분출의 부적절함으로 인한 자아 기능의 마비 상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무의식에 대한 정신분석이 불필요하며, 현실 경험을 통해 성욕동을 적절히 분출해주면 해소될 수 있다. 현실신경증은 ‘불충분한’ 성욕동 분출로 인한 불안신경증과, ‘불만족스런’ 성욕동 분출 경험에 기인된 신경쇠약증으로 구분된다.

정신신경증은 ‘전이신경증’(히스테리, 강박증, 공포신경증)과 자기애적 신경증(편집증,분열증)으로 구분된다. 프로이트는 성욕동을 외부 대상에게 ‘전이’할 수 있는 ‘전이신경증’만이 정신분석 관계 맺음과 치료가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에 성욕동이 외부세계로부터 철수하여 자신의 자아에 부착된 자기애적 신경증은 분석가와 내담자 사이의 정신분석 관계가 맺어지지 않기 때문에 정신분석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신분석 치료의 대상인 전이신경증은 어떤 원인들에 의해, 어떤 과정들을 거쳐 발생하는 것인가?


4. 사후 작용론


“기억 흔적들의 형태로 현전하는 재료들은, 새로운 환경들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재-배열, 재-기록된다.”


「과학적 심리학을 위한 계획」(1895)에서 프로이트는 엠마라는 13세 소녀의 가게공포증 사례분석을 통해 신경증의 발생원인과 과정을 설명한다. 엠마는 혼자서 가게에 들어가지 못하는 공포증을 지닌다. 가게공포증 증상이 발생한 원인을 ‘자유 연상’을 통해 추적해보니 다음의 사건이 엠마에 의해 기억되었다.


첫째, 12세에 엠마는 옷을 사러 옷가게에 혼자 들어갔다. 가게에는 손님이 없고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가게 점원 두 사람이 있었다. 엠마는 옷을 고르던 중 우연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는데, 두 점원이 나이에 비해 노숙한 옷을 입고 있던 그녀의 <옷>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 중 한 점원의 모습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뭔가에 놀라서 황급히 가게를 뛰쳐나왔고, 집에서 2주 정도 앓다가 전에 없던 가게공포증 증상이 생겼다.


프로이트는 위 기억에서 점원이 엠마의 옷을 보고 웃는 상황 만으로는 증상을 유발하는 상처와 병리적 방어기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고서, 자유연상을 더 진행시켰다. 방어적 ‘저항’을 헤쳐 가며 진행된 몇 달 간의 자유연상 작업 결과 가게공포증의 단서가 될 어떤 사건이 엠마의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간신히 떠올랐다.


둘째, 8세 경에 엠마는 사탕을 사러 사탕가게에 혼자 갔다. 가게에는 손님이 없고 중년의 가게 주인만 있었다. 엠마가 사탕을 고르던 중, 가게 주인이 엠마에게 다가와 <씩 웃으며> 엠마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성기를 여러 번 압박했다. 엠마는 사탕을 사고 집에 왔고, 특별한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열흘 쯤 후에 엠마는 한 번 더 그 가게에 갔고, 아무일 없었으며, 그 후엔 그 가게에 가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위 두 사건이 신경증 발생에 모종의 관련이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먼저 옷가게에서 엠마가 남자점원의 웃는 모습을 보고 기분 좋음을 느낀 순간, 갑자기 놀라서 황급히 달아난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든 엠마는 점원이 자신의 옷을 보며 웃는 순간, 어떤 흥분을 느꼈다. 그 흥분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일종의 ‘성감정’이었다. 그런데 그 성감정과 그녀의 옷을 쳐다보며 웃는 점원의 모습은, 그녀가 까맣게 잊고 있던 무의식의 사탕가게 인상들과 갑자기 연결(연상)되었다. 그 순간 점원의 웃음은 사탕가게 주인의 씩 웃는 모습과 연결되고, 점원이 바라보던 자신의 <옷>은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성기를 압박하던 장면>과 연결되었다. 프로이트는 이를 신경증자들의 정신에서 자주 발생하는 ‘잘못된 연상’이라고 칭한다. 이런 뜻밖에 연상된 사탕가게 인상들은 엠마의 정신에 과거 그 시점에선 없었던 ‘성적 방출’을 일으킨다. 그리고 갑자기 엄청하게 생겨난 성적 흥분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엠마의 정신에서 불안으로 변형된다. 이 불안과 더불어 그녀는 방금 전엔 매력 있게 느껴지던 점원이, 과거의 사탕가게 주인처럼 자신을 ‘성추행(공격)’할지 모른다는 무의식적 추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무의식적 사유와 불안 때문에 황급히 도망간 것이다.

집에 와서 엠마는 2주 동안 정신적 혼미상태로 앓아 눕는다. 그 후에 뜻밖의 가게공포증 증상이 그녀에게 출현했다. 그렇다면 그 2주 동안 그녀의 정신에 어떤 일들이 발생했기에 신경증 증상이 생기게 된 것인가?


엠마의 자아는 뜻밖의 ‘기억’으로 인해 발생한 성 흥분과 불안에 대해 정상적 방어를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자아는 주로 외부지각에 대한 방어에 주의를 집중하므로, 정신 내부에서 돌출한 뜻밖의 생각과 그것에 병행된 정서적 불안과 불쾌에 대해서는 미처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의식에 대한 ‘억압’ 방어에 실패한 자아는 제2의 병리적 방어기제인 <대체, 투사, 회피>를 황급히 작동시킨다. 그로인해 정신이 해체될 것 같은 불안과 위기를 해소시키는 반면에 ‘대체된 고통’을 유발하는 공포증 증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개인의 정신에 순간적으로 발생한 일련의 정신적 연상과 방어작용은 무의식적이다. 따라서 엠마는 자신이 놀라게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가게에 갈 때마다 어떤 불쾌하고 불안한 무의식적 환상에 시달려, 가게에 혼자 가지 못하는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엠마가 8세 때에 사탕가게에 두 번째 다시 간 것을 13세의 지금 기억해 내고는 너무도 괴로워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사탕가게에 어떤 ‘나쁜 기대’를 가지고 다시 간 것인 양 심한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린다. 그리고 이런 죄책감과 수치심은 엠마가 2주간 앓고 있던 시기에도 출현했다가 즉각 억압되어 망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2주 동안 엠마는 자신의 과거사건에 대한 ‘어떤 기억과 해석’에 의해 괴로워하다가 방어적 억압이 작동되었고, 무의식의 강력한 회귀역동으로 억압이 힘들어지자 더 강력하고 원초적 방어작용들인 ‘대체, 투사’가 작동된 것이다. 그리고 그 병리적 방어작용이 정신에 고착되었기 때문에 공포증 증상이 생긴 것이다. 가게공포증 증상의 발생은 당시의 엠마에겐 일종의 무의식적 타협책이다. 그 이유는 엠마가 자신의 불미스런 과거를 의식이 기억하여 유지하다간 내면의 초자아나 외부대상에게 발각되어 처벌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모욕받고 버림받아 처참하게 끝날지 모른다는 주관적 환상과 수치감과 공포에 시달린다. 다른 한편으로 그녀의 자아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성숙하게 재해석하여 승화시킬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그녀의 자아는 그 어떤 ‘현실적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원초적 방어기제들을 과도하게 작동시키며, ‘증상’이라는 제3의 통로를 만들어, 자신의 무의식적 불안과 환상을 상징적으로 분출하게 된 것이다.


‘억압’은 불쾌한 기억을 즉각 망각시키는 유용성을 지닌다. 그리고 ‘대체’는 강한 수치감을 주는 사건(성추행)을 덜 창피한 무엇(가게공포)으로 ‘전치’시킴으로써,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완화시킨다. ‘투사’는 내부적이고 주관적인 원인(취약한 자아, 강한 성욕동)을 외부 대상(가게)의 탓으로 돌려, 자책감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런 대체와 투사로 인해 외부대상(가게)은 온갖 부정적 내용(성추행하는 곳, 날 파멸시키는 곳)을 담지한 곳으로 ‘환상화’된다. 따라서 공포증자는 자신의 의식적 판단(“가게는 사소하고 안전한 곳”)과 무관하게, 무의식이 투사된 그 대상(가게)을 반복해서 ‘회피’하게 된다. 이런 무의식적 동기와 과정들을 통해 발생된 가게공포증은 그녀의 삶에 심각한 불편을 유발한다. 따라서 신경증적 타협책은 결과적으로 합리적 선택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녀의 무의식적 방어작용에 의해 타협책으로 형성된 증상이 개체의 삶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합리성을 지니려면, 증상으로 인한 자아 발달 정지와 심리적 고통이 ‘잠정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일단 증상이 발생되면, 그로인한 정신-신체적 고통은 평생 반복해서 지속된다. 따라서 증상을 통한 타협적 방어는 결코 자아의 효율적 자기보존 전략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위에 서술한 신경증 증상의 원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엠마에게 신경증을 일으킨 ‘근본 원인’은 8세 때에 옷가게에서 받은 성적 과잉자극에 있다.

(2) 엠마의 신경증을 유발한 ‘촉발 원인’은 12세 때의 옷가게 경험에 있다.


신경증은 일반적으로 유년기에 겪은 강력한 ‘근본 원인’에 사춘기 이후에 경험한 사소한 ‘촉발 원인’이 결합되어 발생한다. 그런데 위 두 정리는 최종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위 두 설명으로 신경증의 원인이 충분히 설명되는가? 프로이트는 위 두 원인에 대한 보충설명으로 ‘사춘기 도래의 지연’이라는 요소를 덧붙힌다. 이것은 유년기와 사춘기의 성욕동 유형과 자아 발달 상태가 매우 다르다는 걸 뜻한다. 이런 차이성이 부각되는 이유는 양 시기 사이에 ‘잠복기’라는 심리-성적psycho-sexual 으로 평온한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잠복기’는 유년기의 정신관점과 사춘기 정신관점의 ‘차이성’이 증가하는 기간으로서 신경증 발생에 고유한 역할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이 ‘차이성’이 신경증 발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사후 작용’이 기능하기 위한 주요 조건이기 때문이다. 가령. 자아와 성기관이 미성숙했던 8세 때에 받은 성기 자극은, 당시의 엠마에게 ‘성적인 의미’로 해석되지 않았다. 그런데 잠복기(8-12세) 동안 교육을 통해 습득한 성 지식과 성욕동의 발달로 인해, 사춘기에 접어든 엠마는 옷가게에서 예기치 못한 ‘성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현재(사춘기)의 관점과 정서’로 과거 사건에 ‘성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즉,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관점’에 의해 사후(事後) 기억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사후 해석’이 작동한 것이다. 이 사후 작용으로 인해 과거 사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성적 의미’와 ‘성 흥분’과 ‘성추행’ 당했다는 ‘심리적 불쾌, 불안’이 뜻밖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해 ‘사후 해석된 기억’이 과거 경험의 의미와 정서를 변질시켜 ‘정신적 상처’를 일으킨 것이다. 이런 ‘심리적 사실psychological fact’의 변질은 성욕동과 자아 상태가 나이에 따라 변화했고, 교육에 의해 성에 대한 특정 가치관점이 정신에 각인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에 외부로부터 받은 자극을 ‘보통의 지각’에서 충격적 상처로 변질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사후 작용’의 정체를 주시해보자. 엠마의 신경증을 발생시킨 사후적(Nachträglich) 작용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하나는 ‘지연 작용deferred action’이고 다른 하나는 ‘회고 작용retroactive action’이다.


4.1. 지연 작용


‘지연작용’이란 강한 외부자극이 곧바로 병을 일으키지 않고 무의식에 있다가, ‘나중에’ 우연히 어떤 유사 자극과 결합될 경우 증폭효과에 의해 비로소 병인으로 작동하여 증상을 일으키는 것을 지칭한다. 이 ‘지연 작용’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발생하기 때문에 갑자기 생긴 증상에 당황하는 당사자들은, 도대체 왜 증상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과 과정을 알지 못한 채, 각가지 억측과 상념에 잠기게 된다. 지연 작용은 이처럼 먼 과거의 어떤 사건이 잠복된 상태로 오래 ‘지연’되다가 불현듯 그 병리적 힘을 드러내기 때문에, 병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어렵게 만든다. 이 지연작용은 정신에 상처와 불안을 발생시키므로,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병리적 방어기제를 작동케 한다. 그로인해 자아의 인식기능은 심각히 훼손된다. 일단 신경증자가 되면 병리적 방어작용으로 인해 증상의 원인들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좀처럼 ‘성찰’하기 어렵다. 그로인해 그의 삶은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의 어떤 생각과 정서에, 반복해서 휘둘리게 된다. 가령, 엠마의 경우 8세 때의 사탕가게 사건은 그 당시에 ‘상처’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의식에 보존된 ‘흔적’과 ‘지연 작용’에 의해, 나중에 (12세 때 옷가게에서의 사소한 자극과 결합되어) 상처로 변형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당대의 금욕적 가치관에 의해 억압된 자극들 중에서 특히 유년기의 성적 자극들의 ‘흔적’이, 잠복기라는 ‘지연 기간’을 거쳐, 성욕과 성지식에 눈뜨는 사춘기에 받는 사소한 자극들과 결합하여 ‘지연 작용’을 일으키고, 그로인해 ‘외상’이 발생된다고 해석한다. 지연 작용은 신경증의 원인이 유년기에 받은 강한 성적 외부자극에 기인한다는 ‘성적 외상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즉, 신경증은 유년기에 외부대상으로부터 받은 성적 과잉자극에 기인한다. 프로이트는 ‘외상설’을 일명 ‘유혹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유혹’이란 누군가가 성적 과잉흥분을 유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흥분이 내부에 과도하게 축적되고, 외부로 분출되지 못하면, 그 개인은 어찌되는가? 그 경우 정신에 축적된 성적 긴장들은, 승화되지 않는 한 ‘성적 해독(害毒)sexual noxa’이 되어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 프로이트는 초기(1892-1897)엔 유년기에 받은 유혹이 신경증 발생의 필요충분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혹은 아이에게 ‘성적 해독’을 발생시켜, 필연적으로 병리적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고, 그로 인해 나중에 (사춘기 이후) 증상이 발생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치료과정에서 내담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듣거나 여러 상황을 종합해 구성한 유년기의 외상적 유혹 사례들은 ‘원초적 장면’(자신의 출생비밀과 연상된 부모의 성교장면)의 목격, 가까운 인물로부터의 강간, 성적 학대, 성적 공격, 유혹 받음 등이다. 이처럼 유년기에 받은 성적 과잉자극이 성적 해독을 발생시키고 그 독이 병리적 방어기제 작동을 유발해 잠재된 병리 상태를 유지시킨다. 그리고는 ‘잠복기라는 지연 기간’을 거쳐 사춘기 이후의 촉발적 사건과 결합하는 순간 지연작용에 의한 외상과 증상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외상설(유혹설)이다. 외상설에서는 정신에 각인된 과거 사건의 흔적은, 이후의 정신상태에 평생 영향을 미친다. 즉 인간은 의지와 의식으로는 좀처럼 과거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과거에 얽메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무의식에 억압된 흔적은 의식에 의해 기억되어 재해석되지 않는 한 계속 강박적 영향을 미친다.

무의식의 외상 흔적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가와의 ‘정신분석’ 작업이 필요하다. 이미 무의식적 상처, 불안, 병리적 방어기제에 고착되어 있는 개인은, 아무리 지식과 합리적 사유능력이 높을 지라도, 의지와 의식으로 자신의 무의식을 엄밀히 인식하고 변형시킬 수 없다. 또한 의식은 정신현상들을 일으키는 정신작용들에 대해선 객관적 인식을 결코 가질 수가 없다. 정신작용들은 ‘인식의 조건’이므로 ‘직접적 인식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로인해 정신작용들 대부분은 무의식적이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완벽한 기능체가 아니다. 정신작용은 외부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방어적으로 위축되기도 하고, 능동적이고 창조적 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즉, 개인의 정신작용들은 의식의 의지에 의해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본능과) 외부세계와의 타협적 관계 속에서 그 기능이 결정된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정신작용에 병리적 영향을 미치는 외부환경과 내부 요인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자아가 미성숙하고 약한 유년기에, 외부로부터 받는 과도한 성적 자극은 정신에 큰 부담을 준다. 그로인해 과도한 방어활동이 작동되어, 자아발달을 저해한다. 그래서 유년기의 성적 외상(유혹)이 자아기능의 부분적 마비상태인 신경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는 유년기의 외상 흔적을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위치 이동시키면, 그것의 영향력이 해소된다고 본다. 그래서 신경증을 유발하는 무의식의 흔적들을 추적해 기억하고 의식에 통합하는 정신분석 작업을 시도한다. 그런데 그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신활동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또다른 종류의 사후작용인데, 지연 작용이 아닌 ‘회고 작용’이다. 그는 이 독특한 작용이 신경증을 유발하며, 역으로 신경증 치료의 열쇄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회고 작용’의 역할에 주목함으로써, ‘외상설’을 포기하고 ‘환상설’을 구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가 정신분석 초기부터(1895) 주목한 ‘회고적 사후작용’이란 무엇인가?


4.2. 회고 작용(retroactive action) : 사후 해석


“경험들, 인상들, 기억-흔적들은 새로운 경험들과 조화되기 위해, 또는 새로운 발달 단계의 획득과 조화되기 위해 나중에 ‘개정’될 수 있다. 이 사후 작용 속에서 과거 사건들은 ‘새로운 의미’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심리적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


‘회고 작용’이란 현재의 정신 관점에 의거해 과거의 경험들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심리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입문하기 힘들어하는 자들은 정신분석학이 마치 개인의 과거가 현재를 좌우하는 단일한 결정론인 양 오해한다. 그러나 개인 삶의 모든 문제들이 유년기에 받은 상처에 기인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전부는 아니다. 개체는 과거의 경험들을 회고하여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바로 이 재해석이 과거 사건들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과거와 ‘현재 정신’ 상태를 모두 함께 변화시킨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사후 해석과 의미 부여를 하느냐에 있다. 병리적 회고 작용을 하면 상처와 증상이 발생하며, 역으로 성숙하고 긍정적인 회고 작용을 하면 상처와 증상이 해소된다. 정신분석이 신경증자의 무의식에 억압된 과거 상처들을 그토록 집요하게 기억해내려 하는 까닭은 바로, 억압되어 망각된 과거는 의식에 ‘기억’되어야만 비로소 회고적 사후 해석에 의한 개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엠마의 경우를 통해 그녀의 신경증이 어떻게 이 회고 작용에 의해 발생됬는가를 음미해보자.


옷가게 남자점원이 엠마의 옷을 쳐다보며 웃는 것을 본 순간,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그녀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야릇한 성감정을 느꼈다. 그 성감정이 느껴지는 순간 무의식에 묻혀있던 과거 사탕가게 장면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 순간 회고 작용에 의해, 그녀는 과거에 겪었던 일이 일종의 ‘성 추행’이었다고 해석한다. 그 순간 ‘억압’이 작동되어 성흥분은 강한 불쾌감으로 변질되고,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 있는 점원이 과거의 사탕가게 주인처럼 자신을 ‘성추행’할지 모른다는 신경증적 환상과 불안이 돌출한다. 그 순간 놀라서 가게를 뒤쳐나간다.


불쾌하고 불안한 기억은 즉각 억압된다. 그로 인해 엠마는 자신이 왜 가게를 뛰쳐나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왜 가게공포증 증상이 생기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그녀는 반복해서 가게공포증에 시달릴 뿐이다. 여기서 독자 여러분은 점원의 미소를 보고서 기분좋은 성감정이 드는 순간과 갑자기 어떤 불쾌와 불안감이 들어 가게를 뛰쳐나가는 순간 ‘사이’를 주목하라. 그 짧은 찰나에 엠마의 정신에는 독특한 병리적 ‘회고 작용’이 작동된다. 엠마는 4년 전 사탕가게 사건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 그것을 사춘기의 ‘현재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그로인해 성적 의미가 없었던 과거 사건에 ‘성적 의미’가 부여되자 갑자기 ‘성 흥분’이 방출되었다. 그리고 습득된 금욕주의적 도덕관으로 인해 과거에는 없었던 ‘추행 당했다’는 생각이 ‘새로 발생’되어, 강한 심리적 불쾌, 불안, 수치감이 생성되었다. 즉 과거 사건이 ‘회고 작용’에 의해 (재)해석되는 순간 그 사건은 ‘상처(트라우마)’로 변질된 것이다. 조금 ‘특이한 사건’이 ‘섬뜩하고 수치스런 상처’로 변질되는 순간, 정신은 강한 불쾌감 때문에 그것을 의식에 계속 담고 있을 수가 없다. 그로인해 억압이 작동해 불쾌하고 불안한 표상과 정서를 무의식으로 밀어낸다. 그 결과 억압되어 무의식에 보존된 ‘불안한 생각과 환상’으로 인해, 가게에 갈 때마다 원인모를 공포에 시달리는 증상이 발생한 것이다.


과거의 흔적들은 모두 회고적 (재)해석의 대상이 된다. 이런 사후 해석은 유기체의 생리적 성숙과 인지 능력의 변화, 그리고 문화 환경의 변화에 의해 발생된다. 이 회고 작용은 개체가 새로운 차원의 의미에 접할 수 있게 하며, 개인의 초기 경험들을 재활성화 한다. 이 재활성화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병리적 정신상태에서 이루어질 경우, 그 개인은 뜻밖의 상처와 증상에 휘둘리게 된다. 그러나 성숙한 정신상태에서 회고작용이 일어나면 과거경험들에 긍정적이고 통합된 의미가 부여되어, 삶의 새로운 희열과 성장이 일어난다.

프로이트는 정신에 ‘회고 작용’이 발생되기 위한 조건으로, 유년기의 과잉자극, 잠복기, 성욕동 상태의 변화, 촉발 사건, 문화적 가치 교육에 의한 (초)자아관점의 변화 등을 주목한다.


5. 새로운 병인론 : 환상설


프로이트는 신경증자들이 유년기에 성적 유혹을 받았다고 ‘한결같이’ 생각한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의혹을 갖게 된다. 이들의 생각은 개인경험의 우연성과 개연성을 넘어 과도한 보편성을 지닌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신경증자들의 부모나 친척들은 모두 성도착자이어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기차공포증을 떠올리며, 자기 부모가 어릴 적에 자신을 유혹했는지 ‘꿈해석’을 통해 ‘자기 분석’한다. 그는 4세 경에 엄마의 벗은 몸을 ‘우연히’ 보고, 혼자 흥분했던 장면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엄마가 어떤 능동적 유혹을 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가 능동적 유혹자였다면, 남동생과 여동생들도 유혹을 받았을 것이고 신경증자가 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들에겐 신경증이 없었다. 그렇다면 신경증이 외부대상이 아이에게 능동적으로 가한 강한 성자극에 기인한다는 이론은 엄밀한 보편성을 지닐 수 없다. 아버지의 사망과 더불어 밀려든 깊은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수년간 자신의 무의식을 분석한 결과, 그는 신경증자들이 유년기에 ‘외부로부터 받았다’는 유혹은 사실이 아니라, 내부 요인에 기인된 환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린다. 즉 성인신경증자들이 유년기에 주변 인물로부터 유혹을 받았다고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환상이 유년기 말엽에 보편적으로 억압된 것에 기인한다. 그 억압되어 망각된 성환상은 무의식에 보존되어 있다가 정신분석 과정에서 우연히 떠오르는 순간, 마치 현재의 장면인 양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신경증자들은 성환상을 마치 사실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년기 말엽에 성환상에 대한 억압이 발생했다는 것은, 유아들이 이미 성욕동과 성감정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겪었다고 믿는 성적 유혹의 정체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과정에서 회상된 성적 장면들은 사실에 대한 기억이기 보다, 유년기에 지녔던 환상 내지 회고적 은폐기억(screen memory)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그런 성환상을 보편적으로 갖게 되는 것인가? 그는 이를 욕동이론으로 설명한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독특한 성욕동을 지니며, 그 성욕동이 성환상을 발생시킨다. 그 성 환상은 아이가 부모를 동일시하여 초자아가 생긴 이후부터 억압되어 무의식에 묻혀 있다가, 정신분석 과정에서 분출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추론에 의해 그는 유아성욕과 성욕동 발달론을 구성하게 된다.


 6. 유아성욕, 성욕동 발달론에 의거한 신경증 원인 해석


프로이트는 유아성욕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지금까지 주장해온 외상설을 포기하고 환상설을 주장하게 된다. 이 관점에 의거해 엠마의 사례를 다시 해석해보자.

(1) 엠마는 이미 유년기에 성욕동과 성적 소망(성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8세의 시기는 성욕동이 잠잠한 잠복기 초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8세적 사탕가게 사건은 강한 성자극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억압된 오디푸스 성환상으로 인해) 중년의 가게주인의 행동에서 엠마는 모종의 흥분을 느꼈을 수 있다. 그랬기에 그녀가 그 가게에 10일 후 다시 가게 된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8세의 사건이 큰 고통을 주지 않았다면, 그것을 신경증의 근본소인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무릇 ‘쾌감’이란 정신이 ‘감당할 만한 흥분’을 뜻하기에, ‘외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2) 8세에서 12세 사이의 오랜 잠복기 동안에 엠마에겐 사회적 도덕교육이 주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대의 금욕주의 문화를 고려해볼 때, 성에 대한 모든 생각과 정서는 금지․부정되고 억압되었을 것이다. 이 경우 억압된 무의식이 불현듯 의식에 떠오르면 의식을 구성하는 중심관념들과 심한 마찰을 일으켜 정신의 불균형과 불안, 죄책감이 발생하게 된다. 왜냐하면 억압이 일어나는 원인은 성충동에 있기보다, 과거의 성자극․성환상과 현재의 (초)자아 관점 사이의 불일치, 대립에 있기 때문이다.

(3) 사춘기에 진입한 12세 엠마는 옷가게에서 남자점원을 보며 뜻밖의 성감정을 느꼈고, 그것이 8세의 성흥분과 우연히 ‘결-합’된다. 그런데 성욕동이 왕성한 사춘기의 ‘현재 관점’에서 회고된 과거사건은, 성에 대해 무지했고 무덤덤했던 그 당시와 달리 강한 흥분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현재의’ ‘사후 해석’ 작용에 의해, 당시의 지각 자체와 다른 섬뜩한 환상(성추행)이 발생한 것이다. 예기치못한 강한 흥분과 표상이 내부에서 솟구치면, 평상적 방어가 힘들어진다. 그로인해 더 강력한 방어기제(대체, 투사)가 추가로 작동되며, 그 결과로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유아성욕과 성욕동 발달론은 ‘사후 작용’론과 결합하여 신경증의 발생 원인에 대해 심화된 이해를 제공한다. 이 이론들에 의거해 프로이트는 그의 숙원이던 신경증 원인에 대한 ‘정신분석’만의 고유 설명 모델이 확립되었다고 확신한다. 위 해석에서 우리는 신경증의 원인은 특히 성적 요인에 있다고 프로이트가 강조한 이유를 주시해야 한다. 그것은 다른 본능들과 달리, 인간의 성욕동은 유아기부터 성기기에 이르기까지 유난히 다양하고 큰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과거 사건에 대한 의미 해석의 차이를 확대시키며, 그로부터 강력한 사후작용과 ‘상처’와 병리적 방어기제가 작동되어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7. 외상설과 환상설 사이에서


신경증의 원인은 실제로 겪은 외상에 있는가, 아니면 내부의 성욕동과 사후 작용에 기인한 환상에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프로이트의 입장은 말년에 이르기까지 단일하지 않다. 정신분석을 ‘무의식’을 규명하는 첨단학문으로 정립하기 위한 운동과정에서 그는 여러 학자들로부터 정신분석의 비과학성과 비도덕성을 비난하는 공격에 직면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신경증의 원인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정신분석이 과학처럼 사실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학문이라면, 신경증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신경증의 원인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될 수 있는 것인가? 프로이트는 자아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정신-신체 현상들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의식에 있으며, 무의식은 객관적이고 직접적으론 관찰되지 않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그 무의식의 핵심에는 유년기의 ‘성적 상처’가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그 ‘상처’가 외부대상으로부터 받은 외상(外傷)인지, 아니면 내부의 성욕동과 사후작용이 만들어낸 주관적 환상인지에 대해 엄밀한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아이와 어른의 ‘경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유아의 비언어적 경험들을 성인의 언어적 사고로 정확히 재현하는 기억은 구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기억된 내용이 정확한 사실인지에 대한 객관적 확인이 어렵다. 이 때문에 정신분석은 검증될 수 없는 자료들을 통해 자기 이론의 정당성을 보증받으려는 비학문적 가설이라고 비난받는다. 이런 비난에 답하기 위해 프로이트는「정신분석에서의 구성」(1937) 글을 통해 다음의 입장을 밝힌다.


정신분석가의 과업은, “과거 사건들이 정신에 남겨놓은 ‘흔적’들 중에서 어떤 원인(억압)에 의해 ‘망각’되어 온 부분을 판독,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재)구성 작업은 수 천 년 간 묻혀온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작업과 유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고학자는 중요한 부분들이 이미 상당히 소실되었거나 ‘파괴된 대상들’을 짜맞추어 (수천년․수만년 전의) 원대상을 재구성한다. 이에 비해 정신분석가는 현재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무의식의 자료를 다룬다. 개인의 과거는 정신 속에 대부분 보존되어 있다. 심지어 강력한 방어기제에 차단되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과거경험도 꿈, 증상, 실수, 전이 등을 통해 그 정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분석가는 내담자의 ‘전이’ 표현과 꿈을 통해 에서 무의식의 과거 표상과 감정이 생생히 ‘반복 재연’되는 자료를 얻어낼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만약 고고학이 땅 속에 묻혀진 인류 역사의 비밀을 밝히는 하나의 소중한 학문으로 인정받는다면, 무의식에 묻혀있는 정신의 자원들과 비밀을 탐색하는 정신분석이 “학문”으로 인정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정신분석적 ‘구성’이란 자유연상에서 나온 파편화된 자료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무의식이 증상을 통해 의식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본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분석가는 내담자가 밷어온 말들 중에서 사소한 전의식의 언어, 방어적으로 각색한 언어, ‘무의식의 언어’를 선별해 이리 저리 짜맞추어, 증상을 유발한 원인(외상, 환상, ‘부정적 사후해석 관점’)을 ‘구성’한다. 그리고 내담자가 망각해온 외상과 성환상과 부정적 사후해석 관점이 지금까지 정신에 미쳐온 무의식적 영향들을 ‘해석’한다. 분석가의 ‘구성’은 망각된(억압된) ‘사실’을 정확히 판단한 것일 수도, 분석가의 주관적 상상일 수도 있다. 이 구성이 신경증자의 무의식적 병인을 온전히 반영하는가 아닌가는, 분석가의 해석에 대해 내담자의 무의식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의해 파악된다. 만약 분석가가 구성한 내용이 무의식의 병인(病因)을 제대로 지적한 것이라면, 내담자에게 깊은 ‘정서적 인식’ 반응이 나타난다. 반면에 부정확한 구성일 경우, 내담자의 무의식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신분석가가 ‘구성해낸 진실’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재로 있었던 ‘외부 사실’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환자의 ‘주관적 환상’에 대해 분석가가 만들어낸 ‘또다른 환상’인가?


프로이트는 이 의문에 대해 ‘분석가의 구성’이란 일종의 ‘추측(conjecture)’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내담자의 무의식을 역동시켜서 그로 하여금 자신의 망각된 진실을 상기하게끔 만드는 치유적인 추측이다. 그런데 내담자가 상기한 무의식적 진실의 정체는 주관적 환상인가, 아니면 외부적 사실인가? 이에 대한 프로이트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내담자가 상기한 것은 분석가가 구성한 바로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과 연관된 어떤 무엇일 수 있다. 분석가의 정확한 구성활동에 자극되어 억압되었던 무의식이 의식으로 회귀되지만, 여전히 내적 저항이 발생하기 때문에, 회귀된 무의식은 덜 중요한 대상들로 ‘대체(전치)’된다. 이 대체된 무엇은 ‘일종의 환상’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환상들에는 유아기에 경험되고 잊혀졌다가 회귀한 사실이 왜곡된 방식으로 담겨있다. 분석가는 이런 ‘왜곡된 사실’(환상)에 부착된 신경증자의 리비도를, 그것의 환상성을 자각시킴으로써 ‘철수(de-cathexis)시켜야 한다. 분석가의 ’구성‘은 억압되어 상실된 경험 조각들을 (의식의 자료로) 회복시켜 현실검증력을 높이는 효력을 지닌다.


신경증의 원인에는 과거에 경험했다가 억압되어 망각한 ‘사실적’ 외상의 측면과, 내부의 욕동들과 병리적 방어기제와 부정적 사후작용이 만들어낸 환상의 측면이 함께 있다. 또한 신경증자가 지닌 성적 환상들(거세,유혹,원초적 장면..)에는 개인이 직접 겪은 사실이 아니라, 인류의 ‘원초적 환상’들이 개인에게 유전된 요소가 있다. 이 경우 그것에는 환상의 요소와 더불어 원시인류가 실재로 겪은 사실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정신분석 과정에서 분석가의 구성과 해석에 자극받아 내담자가 망각했다가 기억한 내용에도, 환상의 요소와 사실의 요소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실이 한번 억압되어 망각되었다가 ‘(재)상기’될 때에는 결코 원형그대로 회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적 사실성’은 인간 정신의 독특한 현실이다. 신경증자는 정신분석 과정에서 상기된 과거내용을 자신이 겪은 그 사실인 양 믿는다. 그런데 이런 믿음의 이면에는 우리가 엠마의 경우에서 관찰한, ‘현재 관점’에서의 회고적 사후해석 작용이 은폐되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프로이트는 이 사후작용이 정신에 일으키는 심리적 효력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 한편에는 자유연상과 ‘구성’ 활동을 통해 내담자의 무의식에 억압된 과거의 진실을 원형 그대로 발굴해내어 ‘자기 인식’을 돕는 것이 정신분석의 본질이라는 실증주의적 과학정신이 작동한다. 그는 여전히 계몽주의적 과학정신에 의거해 정신의 영역에서 환상과 진실의 차이성을 명료히 구분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앞둔 말년까지 무의식의 ‘성찰’을 강조하면서, 내담자의 현재 정신관점과 기대에 만족을 주는 치료기법(공감기법)을 경계한다.(「종결될 수 있는 분석과 종결될 수 없는 분석」1937) 신경증의 근본치료를 위해서는 현존하는 증상의 원인뿐만 아니라, 더 깊은 무의식에 숨겨진 근본 원인을 기억하여 그것의 환상성을 ‘성찰’하여 해체하도록 자극해야 한다. 그래서 내담자가 자신의 ‘무의식적 현재 환상’에 안주(고착)하지 못하게끔, 현상태를 공감해주길 원하는 내담자의 (자기애적) 욕구를 좌절시키는‘비공감적 치료’술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다른 한편으로 ‘회고 작용’에 대한 고찰을 통해, 무의식적 과거에 대한 ‘사실 대 환상’의 엄밀 구분이 원리적으로 힘든 것임을 자각한다. 따라서 말년의 그는 외상설과 환상설 사이에서 단일한 입장 표명을 유보한 채, 상황에 따라 양쪽 관점 모두를 적절히 인정하는 태도를 취한다.


 8. 사후 작용의 현대철학적 의미 : 시간, 인과, 의미의 비결정성


신경증의 발생 과정에서 사후 작용의 역할에 대한 프로이트의 성찰은, 철학자들에게 시간성, 인과성, 의미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관점을 제공한다. 이를 음미하기 위해 다시 엠마로 돌아가 보자.

그녀의 가게공포증 원인은 무엇인가? 8세 때의 사탕가게 사건인가? 아니면 12세 때의 옷가게 경험인가? 아니면 8세와 12세 사이의 ‘잠복기’에 교육을 통해 정신에 각인된 당대의 금욕적 가치관인가? 8세 때의 사탕가게 사건만으로는 엠마에게 증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8세 때의 사건을 떠올리게 한 어떤 자극을 그녀가 받지 않는다면, 엠마는 평생 정상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지닌다. 따라서 8세의 사건이 결정적 병인이라고 규정하기 곤란하다. 그렇다면 12세 때의 옷가게 경험인가? 그 경험만으론 신경증의 발생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엠마는 불안이나 불쾌감이 아닌 흥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증상을 일으키는 ‘상처’는 잠복기 동안의 금욕적 도덕교육에 의해 생겨난 것인가? 금욕적 성교육만으로는 인간일반에게 트라우마(상처)가 발생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신경증을 유발하는 병인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어떤 사건이 병의 원인이고 어떤 사건이 병의 결과인가?


서양 고-중세 형이상학과 근대이성은 시간이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로 단일하게 흘러간다고 해석해왔다. 그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증상을 발생시킨 원인은 항상 과거에 위치한다. 그런데 사후작용에 의하면 정신세계에는 ‘고정된 과거 - 현재 - 미래’란 실재하지 않는다. 즉 과거란 끊임없이 이동하는 ‘현재’에 의해 그리고 미래의 ‘현재’ 시점에서 그 내용이 바뀔 수 있는 무엇이다. 그렇다면 과거는 단지 과거인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내포한다. 어떤 자극은 정신에 지각되었다가 새로운 자극에 밀려 의식에서 사라지는 ‘과거의 흔적’이 되는 동시에, 시간의식이 없는 무의식에선 항상 역동하고 있는 ‘현재’이며, 사후작용에 의해 미래에 그 의미가 가치가 변화될 가능성을 지닌 미래이다. 따라서 ‘고정된 객관적인 과거사실’이란 ‘심리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무엇에 대해 명료한 ‘과거 사실’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어떤 특정한 현재 순간에서만 ‘잠정적’으로 유효한 발언이다. 따라서 과거/현재/미래라는 발생학적 선-후 관계 구분은 결정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시간 구분은 사실을 지칭하는 기호가 아니라, 잠정적인 쓰임 기호일 뿐이다. 또한 무의식에는 시간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에,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위의 생각들을 신경증의 원인론에 적용해보자. 우리가 ‘지연 작용’을 주시하게 되면, 인간정신은 늘 따라 다니는 과거흔적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해석된다. 반면에 ‘회고 작용’을 주시하면 정신세계에서 과거흔적은 (그것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기억될 수 있는 한) 현재의 자아에 의해 그 의미와 가치가 개정될 수 있는 무엇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과거경험이 아닌 ‘현재의 정신관점’ 내지 자아 발달 상태이다. 신경증자를 비롯해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자기 인식’을 회피하는 자들은, 늘 과거 흔적들에 반복해서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자기 분석’을 꾸준히 해가는 사람은 ‘현재의 발달된 자아 관점’에 의해 부정적인 과거 환상을 긍정적인 현재의 의미로 변형시킨다. 그리고 외부세계의 새로운 자극들을 수용하고 통합하는 과정들을 통해 자아가 ‘발달’해가기 때문에, 발달된 사후해석 관점에 의해 주체적이고 새로운 의미세계를 살아가게 된다. 신경증자는 과거의 의미세계에 ‘고착’되어 늘 ‘과거적 현재’를 살아간다. 이에 비해 성숙한 자는 새로운 자극들에 대한 개방적 수용과 과거에 대한 새로운 사후해석으로 인해 과거에 고착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프로이트의 사후작용론은 또한 전통 형이상학과 근대이성의 단일한 인과 관점을 전복시킨다.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사후 작용들이 활동하는 정신세계에서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일의적인 규정이 어렵다. 가령, 과거의 흔적들이 현재의 정신관점을 결정하는 원인이기도 하고, 현재의 정신관점에 의해 과거의 의미가 개정되기도 한다. 이런 상호 영향관계에 놓여있는 ‘심리적 현실’에 대해 기존의 인과 범주에 의거한 일의적 설명은 타당성을 지니기 어렵다. 왜냐하면 기존의 인과범주는 시공간적 방향성과 필연적 관계성을 내포하는데, 쌍방향으로 사후작용하는 정신세계에 대해 시공간적 방향 설정과 필연적 관계가 제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심리적 사실’에 대한 이해에 적합한 새로운 ‘인과’ 관점 개발이 요구된다.


프로이트의 사후작용론은 또한 포스트 모던 기호론의 선구적 모델이 된다. 즉, 어떤 경험(기호)의 의미와 가치는 일의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신상태와 외부 상황에 따라 예측할 수 없게 변화된다. 프로이트는 엠마에게 성에 대한 새로운 가치교육을 통해 그녀 스스로 자신의 부정적 과거환상(성추행)을 ‘보통의 사건’으로 사후해석 하게 도와줌으로써 증상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탕가게와 옷가게 경험은 엠마에게 ‘상처’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인생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동일한 사건일지라도 개인의 정신 관점과 외부세계의 가치 시선에 따라 그것의 의미와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그렇다면 정신세계에서는 병의 ‘객관적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두 종류의 사후작용론에는 이처럼 근대사상을 전복시키고 현대사상을 개시하는 혁명적 인간학과 인식론, 의미론이 담겨있다. 그에게 ‘정신분석’이란 병리적(부정적)으로 고착된 사후해석을 성숙한(긍정적) 사후해석으로 변화시켜, 삶의 의미를 다중적으로 음미하게 돕는 활동이다. 이런 정신분석 이론과 관점, 기법을 현대인들은 자신의 정신 발달을 위해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해야 하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적 ‘구성’은 정신분석의 최종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예비 작업일 뿐임을 강조한다. 이 말은 일반 학문들은 탐구 대상에 대한 구성(해석)이 탐구활동의 최종상태와 최종목표이지만, 정신분석은 ‘구성’을 통해 고통의 원인들을 인식하고, ‘훈습’ 과정을 통해 그 깨달음을 자기 것으로 숙성하는 ‘실천적 학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끊임없는 교류활동이 없는, 이론중심적이고 사유중심적인 탐구활동은 의식의 자기애적 환상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늘 경계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유가 현실과 일치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활동을 경시하는 인문학은 일종의 자기애적 사변활동이라고 비판하는 프로이트에 대해, 현대의 인문학자는 어떤 응수를 할 수 있는가. 현대의 인문학자는 자기자신과 인류의 정신적 고통들에 대해 얼마만큼의 현실적 치유능력을 지니는가? 자본주의가 생활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하는 환경속에서, 스트레스와 상처를 호소하는 내담자나 대중들에게 정신분석가나 인문학자들은 프로이트를 넘어설 어떤 정신적 힘과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가?


첨가하는 글


: 프로이트는 신경증이 다중 원인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 논문에는 지면관계상 원인들 모두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 원인을 주목하는 프로이트의 시각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초기 :. 외상 - 성적 외상 - 유년기 성적 외상 - 사후작용, 방어작용.

중기 : 성환상 - 성욕동 발달 장애(고착) -오디푸스 컴플렉스

후기 : 자아 발달 장애, 경직된 초자아, 죽음본능. 나쁜 환경.


프로이트 이후 :


자아심리학에서는 ‘자아발달 장애’를 고착된 방어기제 유형 및 불안들과 연관해서 주목한다.

대상관계론자들은 초기 대상(엄마) 관계 장애로 인한 ‘자기’와 자기애의 취약성을 주요 원인으로 본다.


<요약>


신경증은 다중 원인들에 의해 발생한다. 그 원인들 대부분은 무의식에 위치한다. 따라서 꿈, 증상, 실수, 전이와 저항, 자유연상 언어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야 접근가능하다. 그 원인들을 ‘성찰’하면 증상은 극복된다. 이 전제들을 가지고 신경증자를 정신분석한 결과 프로이트는 다음 원인들을 발견한다.

1. ‘외부’ 대상에게서 받은 ‘과잉자극’(외상)

2. 외부 대상에게서 받은 ‘성적’ 과잉자극 즉 ‘유혹(성적 외상)

3. ‘유년기’에 가까운 외부대상에게서 받은 ‘유혹’

4. ‘내부’의 ‘유아성욕’이 과도충족되거나 과도좌절되어 생긴 ‘유년기 성환상’. 그리고 성욕동 발달 장애(‘고착’)

5. 무의식의 ‘외상과 환상’이 사춘기 이후의 작은 상처와 결합될 경우 작동하는 부정적 ‘사후 작용’.

6. 정신구조의 불균형, 자아 발달 장애와 병리적 방어기제, 죽음본능, 경직된 초자아, 나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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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신경증 원인론 : 외상, 환상, 사후작용

1. 서론


정신의 병리 현상은 어떤 원인에 의해 어떻게 생겨나는가? 왜 의지를 벗어난 실수와 증상들이 반복되는 것인가? 왜 만물의 영장임을 자랑하는 인간이 안전한 환경에서도, 정신 내적 원인에 의한 스트레스에 휘둘려 사는 것인가? 필자의 정신분석 강의에 참여한 절반의 사람들은 그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절반의 사람들은 자신이 고통 받는 원인을 약간은 짐작하지만, 증상이 어떤 과정들을 거쳐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사상가들은 어떤 설명을 제시하는가? 전통 형이상학자들은 덧없이 변화하는 육체와 세속의 권력에서 영속적 만족을 기대하기 때문에, 고통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들의 눈에 육체와 세속의 권력은 결코 궁극 실체가 아니며 영원한 만족을 제공하는 대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은 마치 그것에 대단한 가치가 담겨있는 양 관심을 쏟는다. 이 잘못된 관심 때문에 그것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그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할 경우, 분노, 피해의식, 열등감을 느낀다. 형이상학의 관점은 정신이 고통 받는 원인을 나름대로 설명해준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체의 건강과 사회적 권력의 소유는, 실제로 정신의 행복과 병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신의 성질을 수십 년간 공부하고 가르쳐 온 학자들조차, 사회적 권력의 주변으로 밀려날 경우 정신에 상처를 입곤 한다. 이런 현상은 심지어 “세속의 권력은 허망한 것이며 영혼의 구원이 인생의 궁극목적이다”고 설파하는 종교가들에서조차 다반사로 관찰된다. 이런 현실은 더 이상 내밀한 소문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더 이상 말과 실천이 어긋나는 학자나 종교가를 진심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현대인은 육체의 건강과 쾌감, 그리고 정신적 안정과 기쁨을 제공할 ‘대상’을 원한다. 이런 대상을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할 때 그들의 자아는 불안정해져, 강화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게 된다. 그런데 ‘대상 항상성’이 파편화되는 자본주의와 정보화 환경에서 현대인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유지시켜줄 신뢰할 만한 ‘대상’을 만나기란 구조적으로 쉽지가 않다.

프로이트는 영원하고 순수한 관념세계가 덧없고 복잡한 현실보다 가치있다고 믿는 사변적 학문들은 인간 삶을 병리적 방향으로 유도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병리적 정신상태의 징후라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인간’은 양육자에게 오랜 기간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며, 사회적 관계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지닐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그는 주어진 정신-신체적 조건들을 최대한 활용해 ‘불필요한 고통’들로부터 벗어난 삶을 사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인간을 편견과 환상에 고착시켜 ‘자아 발달’을 저해하는 사변적 학문과 종교의 문제를 극복할 새로운 관점으로 정신분석학을 개척한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정신의 병은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2. 신경증의 기원 : 유년기의 성적 외상


인간은 어떤 원인들로 인해 삶을 즐기지도 못하고, 이익되게 행동하지도 못하는 불행한 심리상태에 처하게 되는가? 자아의 기능이 일부 마비되는 신경증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신경증자들에 대한 정신분석 과정에서 그들 대부분이 유년기에 주위 사람으로부터 강한 성적 자극을 받았으며, 그것이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토로하는 것을 관찰한다. 억압된 무의식을 의식에 드러내는 정신분석 작업에서 신경증자들은 오랜 방어적 저항 기간을 거친 후에 자신이 숨겨온 컴플렉스가 성적 상처와 관련된 것임을 내밀히 토로한다. 프로이트가 만난 신경증자들의 정신분석 과정은 대부분 성적 상처의 회상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성적 상처는 놀랍게도 대부분 유년기에 생겼다고 표현된다.(Freud,1894, 231) 이런 일련의 임상적 관찰을 통해 그는 신경증이 유년기에 가까운 대상으로부터 받은 성적 외상(外傷, 상처, trauma)에 의해 발생한다는 이론을 정립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유년기에 지나치게 강한 성적 자극을 받으면, ‘성적 해독noxa’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아이는 아직 성기관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성 자극에 의해 축적된 내적 긴장을 성교 활동을 통해 외부로 분출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운동기관이나 인지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에, 흥분과 긴장을 운동으로 대리 발산하거나 사회적 노동으로 승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 긴장이 축적되면 감당하기 힘든 불쾌로 느껴지며, 그로 인한 정신의 붕괴를 막기 위해 병리적 방어기제가 본능적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병리적 방어기제를 사용한 결과로 자아리비도가 고갈되고 정신구조가 기형화되어 신경증 증상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치료 대상으로 본 신경증(히스테리, 강박증, 공포증)은 어떤 원인들에 의해, 어떤 과정들을 거쳐 발생하는 것인가?


3. 사후 작용론

“기억 흔적의 형태로 의식에 현전하는 재료들은, 새로운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재-배열, 재-기록된다.”(Freud,1894, 233)


프로이트는 엠마라는 13세 소녀의 가게공포증 사례분석을 통해 신경증의 발생원인과 과정을 설명한다. 엠마는 혼자서 가게에 들어가지 못하는 공포증을 지닌다. 증상이 발생한 원인을 ‘자유 연상’을 통해 추적해보니 다음의 사건이 엠마에 의해 기억되었다.(Freud,1895,353-356)


첫째, 12세에 엠마는 옷을 사러 옷가게에 혼자 들어갔다. 가게에는 손님이 없고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가게 점원 두 사람이 있었다. 엠마는 옷을 고르던 중 우연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는데, 두 점원이 나이에 비해 노숙한 옷을 입고 있던 그녀의 <옷>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 중 한 점원의 모습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뭔가에 놀라서 황급히 가게를 뛰쳐나왔고, 집에서 2주 정도 앓다가 전에 없던 가게공포증 증상이 생겼다.


프로이트는 위 기억에서 점원이 엠마의 옷을 보고 웃는 상황 만으로는 증상을 유발하는 상처와 병리적 방어기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고서, 자유연상을 더 진행시켰다. 방어적 ‘저항’을 헤쳐 가며 진행된 몇 달 간의 자유연상 작업 결과 가게공포증의 단서가 될 어떤 사건이 엠마의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간신히 떠올랐다.


둘째, 8세 경에 엠마는 사탕을 사러 사탕가게에 혼자 갔다. 가게에는 손님이 없고 중년의 가게 주인만 있었다. 엠마가 사탕을 고르던 중, 가게 주인이 엠마에게 다가와 <씩 웃으며> 엠마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성기를 여러 번 압박했다. 엠마는 사탕을 사고 집에 왔고, 특별한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열흘 쯤 후에 엠마는 한 번 더 그 가게에 갔고, 아무일 없었으며, 그 후엔 그 가게에 가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위 두 사건이 신경증 발생에 모종의 관련이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먼저 옷가게에서 엠마가 남자점원의 웃는 모습을 보고 기분 좋음을 느낀 순간, 갑자기 놀라서 황급히 달아난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든 엠마는 점원이 자신의 옷을 보며 웃는 순간, 어떤 흥분을 느꼈다. 그 흥분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일종의 ‘성감정’이었다. 그런데 그 성감정과 그녀의 옷을 쳐다보며 웃는 점원의 모습은, 그녀가 까맣게 잊고 있던 무의식의 사탕가게 인상들과 갑자기 연결(연상)되었다. 그 순간 점원의 웃음은 사탕가게 주인의 씩 웃는 모습과 연결되고, 점원이 바라보던 자신의 <옷>은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성기를 압박하던 장면>과 연결되었다. 프로이트는 이를 신경증자들의 정신에서 자주 발생하는 ‘잘못된 연상’이라고 칭한다.(Freud, 1895, 352-356) 이런 뜻밖에 연상된 사탕가게 인상들은 엠마의 정신에 과거 그 시점에선 없었던 ‘성적 긴장’을 일으킨다. 그리고 갑자기 엄청하게 생겨난 성적 흥분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엠마의 정신에서 불안으로 변형된다. 이 불안과 더불어 그녀는 방금 전엔 매력 있게 느껴지던 점원이, 과거의 사탕가게 주인처럼 자신을 ‘성추행(공격)’할지 모른다는 무의식적 연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무의식적 환상과 불안 때문에 황급히 도망간 것이다.

집에 와서 엠마는 2주 동안 정신적 혼미상태로 앓아 눕는다. 그 후에 뜻밖의 가게공포증 증상이 그녀에게 출현했다. 그렇다면 그 2주 동안 그녀의 정신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했기에 신경증 증상이 생기게 된 것인가?

엠마의 자아는 뜻밖의 ‘기억’으로 인해 발생한 성 흥분과 불안에 대해 정상적 방어를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자아는 주로 외부지각에 대한 방어에 주의를 집중하므로, 정신 ‘내부’에서 돌출한 뜻밖의 ‘기억’과 그것에 병행된 정서적 불안과 불쾌에 대해서는 미처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Freud.1895,357-358) 따라서 무의식에 대한 ‘억압’ 방어에 실패한 자아는 제2의 병리적 방어기제인 <대체, 투사, 회피>를 황급히 작동시킨다. 그로인해 정신이 해체될 것 같은 불안과 위기를 모면하는 대신에 ‘엉뚱하게 대체된’ 대상(가게)에게서 ‘집중된 불안’을 느끼는 공포증 증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개인의 정신에 순간적으로 발생한 일련의 정신적 연상과 방어작용은 무의식적이다.(Freud,1896.p.167) 따라서 엠마는 자신이 놀라게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가게에 갈 때마다 어떤 불쾌하고 불안한 무의식적 환상에 시달려, 가게에 혼자 가지 못하는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엠마가 8세 때에 사탕가게에 두 번째 다시 간 것을 13세의 지금 기억해 내고는 너무도 괴로워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사탕가게에 어떤 ‘나쁜 기대’를 가지고 다시 간 것인 양 심한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린다. 그리고 이런 죄책감과 수치심은 엠마가 2주간 앓고 있던 시기에도 출현했다가 즉각 억압되어 망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2주 동안 그녀는 자신의 과거사건에 대한 ‘어떤 기억과 부정적 해석’에 의해 괴로워하다가 방어적 억압이 작동되었고, 무의식의 강력한 회귀역동으로 억압이 힘들어지자 더 원초적 방어기제들인 ‘대체, 투사’가 작동된 것이다. 그리고 그 병리적 방어작용이 정신에 고착되었기 때문에 공포증 증상이 생긴 것이다. 가게공포증의 발생은 당시의 엠마에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종의 무의식적 타협책이다. 그 이유는 엠마가 자신의 불미스런 과거를 의식이 기억하여 유지하다간, 내면의 초자아나 외부대상에게 발각되어 처벌받을 위험이 있다고 심각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모욕받고 버림받아 처참하게 끝날지 모른다는 주관적 환상과 수치감과 공포에 시달린다. 또한 그녀의 자아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성숙하게 재해석하여 승화시킬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그녀의 자아는 그 어떤 ‘현실적 대응’을 모색하지 못한 채 원초적 방어기제들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증상’이라는 제3의 통로를 만들어 무의식적 불안과 환상을 상징적으로 분출하게 된 것이다.

‘억압’은 불쾌한 기억을 즉각 망각시키는 유용성을 지닌다. 그리고 ‘대체’는 강한 수치감을 주는 사건(성추행)을 덜 창피한 무엇(가게공포)으로 ‘전치’시킴으로써,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완화시킨다. ‘투사’는 내부적이고 주관적인 원인(취약한 자아, 강한 성흥분, 불안)을 외부 대상(가게)의 탓으로 돌려, 자책감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런 대체와 투사로 인해 특정 대상(가게)은 본래의 특성(상품구입)과 무관하게 온갖 부정적 내용(성추행하는 곳, 날 파멸시키는 곳)을 담지한 곳으로 ‘환상화’된다. 따라서 공포증자는 자신의 의식적 판단(“가게는 사소하고 안전한 곳”)과 무관하게, 무의식이 투사된 그 대상(가게)을 반복해서 ‘회피’하게 된다. 이런 무의식적 동기와 과정들을 통해 발생된 가게공포증은 그녀의 삶에 심각한 불편을 유발한다. 따라서 신경증적 타협책은 결과적으로 합리적 선택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타협책’으로 형성된 증상이 개체의 삶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합리성을 지니려면, 증상으로 인한 자아 발달 정지와 심리적 고통이 ‘잠정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일단 증상이 발생되면 무의식의 원인들이 제거되지 않는 한, 정신-신체적 고통은 평생 반복해서 지속된다. 따라서 증상을 통한 타협적 방어는 결코 자아의 효율적 자기보존 전략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위에 서술한 공포증의 원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근본 원인’은 8세 때에 사탕가게에서 받은 ‘강한 성적 자극’에 있다.

(2) ‘촉발 원인’은 12세 때 옷가게에서의 ‘특이한 자극(성흥분)’에 있다.


신경증은 일반적으로 유년기에 겪은 ‘근본 원인’에 사춘기 이후의 ‘촉발 원인’이 결합될 경우 발생한다. 이를 ‘구조론’의 관점으로 표현하면 증상은, <무의식>의 흥분자극과 <(전)의식>의 자극이 ‘결합’할 경우 무의식이 의식에로 ‘회귀’하여 ‘의식의 구조’를 일부 점령․마비시킴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를 ‘경제론’의 관점으로 표현하면 증상은, 무의식에 축적된 ‘많은 <양>의 흥분’이 전의식의 작은 <양>의 흥분과 ‘결합’해 생긴 뜻밖의 ‘과도 흥분’을 비경제적으로 처리한 결과로 발생한다. 프로이트는 항상 ‘구조론’과 ‘경제론’을 혼합하여 증상의 원인을 설명한다. 구조론은 주로 무의식과 의식 구조의 차이성과 상호 관계, 어떤 경험이 정신의 어떤 구조(의식/무의식)에 위치하느냐에 따른 가치 변화 등을 주목한다. 그리고 경제론은 어떤 사건이나 대상에 욕동에너지가 얼마만큼 “집중, 반집중, 과도집중, 철수”되느냐에 따른 결과와, 욕동 ‘양’의 다양한 ‘변형적 이동’ 활동(승화/증상/꿈)을 탐구한다.

그런데 위 두 정리는 최종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위 두 설명으로 신경증의 원인이 충분히 설명되는가? 프로이트는 위 두 원인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사춘기 도래의 지연’이라는 ‘발달론’적 요소를 덧붙인다.(Freud,1895.356) 이것은 유년기와 사춘기의 성욕동 유형과 자아 발달 상태가 매우 다르다는 걸 뜻한다. 이런 차이성이 부각되는 이유는 양 시기 사이에 ‘잠복기’라는 심리-성적psycho-sexual 으로 평온한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잠복기’는 유년기의 정신관점과 사춘기 정신관점의 ‘차이성’이 증가하는 기간으로서 신경증 발생에 고유한 역할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이 ‘차이성’이 신경증 발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사후 작용’이 기능하기 위한 주요 조건이기 때문이다. 가령 자아와 성기관이 미성숙했던 8세 때에 받은 성기 자극은, 당시의 엠마에게 ‘성적인 의미’로 해석되지 않았다. 그런데 잠복기(8-12세) 동안 교육을 통해 습득한 성 지식과 성욕동의 발달로 인해, 사춘기에 접어든 엠마는 옷가게에서 예기치 못한 ‘성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현재(사춘기)의 관점과 정서’로 과거 사건에 ‘성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즉,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관점’에 의해 사후(事後) 기억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새로운 ‘사후 해석’이 작동한 것이다. 이 사후 작용으로 인해 과거사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성적 의미’와 ‘성 흥분’과 ‘성추행’ 당했다는 ‘심리적 불쾌, 불안’이 뜻밖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해 ‘사후 해석된 기억’이 과거 경험의 의미와 정서를 변질시켜 ‘정신적 상처’를 일으킨 것이다.(Freud,1895,356.) 이런 ‘심리적 사실psychological fact’의 변질은 성욕동과 자아 상태가 나이에 따라 변화했고, 교육에 의해 성에 대한 특정 가치관점이 정신에 각인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Freud,1896,164)

여기서 우리는 과거에 외부로부터 받은 자극을 ‘보통의 지각’에서 충격적 상처로 변질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사후 작용’의 정체를 주시해보자. 엠마의 신경증을 발생시킨 사후적(Nachträglich) 작용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하나는 ‘지연 작용deferred action’이고 다른 하나는 ‘소급 작용retroactive action’이다.


3.1. 지연 작용

‘지연작용’이란 강한 외부자극이 곧바로 병을 일으키지 않고 무의식에 있다가, ‘나중에’ 우연히 어떤 유사 자극과 결합될 경우 증폭효과에 의해 비로소 병인으로 작동하여 증상을 일으키는 것을 지칭한다. 이 ‘지연 작용’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발생하기 때문에 갑자기 생긴 증상에 당황하는 당사자들은, 도대체 왜 증상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과 과정을 알지 못한 채, 각가지 억측과 상념에 잠기게 된다. 지연 작용은 이처럼 먼 과거의 어떤 사건이 오랜 기간 잠복된 상태로 있다가 불현듯 그 병리적 힘을 드러내기 때문에, 병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정신에 예기치 못한 상처와 불안을 발생시키므로,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병리적 방어기제를 작동케 한다. 그로인해 자아의 인식기능은 심각히 훼손된다. 일단 신경증자가 되면 병리적 방어작용으로 인해 증상의 원인들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좀처럼 ‘성찰’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그의 삶은 기억도 나지 않는 먼 과거의 어떤 생각과 정서에, 반복해서 휘둘리게 된다.(프로이트,1939/1997, 102-104) 가령, 엠마의 경우 8세 때의 사탕가게 사건은 그 당시에 ‘상처’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의식에 보존된 ‘강한 자극’의 ‘흔적’이 나중에 12세 때의 사소하지만 특이한 자극과 결합되는 순간, 지연작용에 의해 ‘과잉 자극’(상처)으로 변형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당대의 금욕적 가치관에 의해 억압된 자극들 중에서 특히 유년기의 성적 자극 ‘흔적’이, 잠복기라는 ‘지연 기간’을 거쳐, 성욕과 성지식에 눈뜨는 사춘기에 받는 사소한 자극들과 결합하여 ‘지연 작용’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상처’가 발생된다고 해석한다. 지연 작용은 신경증이 유년기에 받은 강한 성적 외부자극에 기인한다는 ‘성적 외상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즉, 신경증은 유년기에 외부대상으로부터 받은 성적 ‘과잉’자극에 기인한다. 프로이트는 ‘외상설’을 일명 ‘유혹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유혹’이란 누군가가 성적 과잉흥분을 유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흥분이 내부에 과도하게 축적되고 외부로 분출되지 못하면, 그 개인은 어찌되는가? 그 경우 정신에 축적된 성적 긴장들은, 승화되지 않는 한 ‘성적 해독(害毒)sexual noxa’이 되어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 프로이트는 초기(1892-1897)엔 유년기에 받은 유혹이 신경증 발생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혹은 아이에게 ‘성적 해독’을 발생시켜, 필연적으로 병리적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고, 그로 인해 나중에 (사춘기 이후) 증상이 발생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치료 과정에서 내담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듣거나 여러 상황을 종합해 구성한 유년기의 외상적 유혹 사례들은 ‘원초적 장면’(자신의 출생비밀과 연상된 부모의 성교장면)의 목격, 가까운 인물로부터의 강간, 성적 학대, 성적 공격, 유혹 받음 등이다. 이처럼 유년기에 받은 성적 과잉자극이 해독을 발생시키고 그 독이 병리적 방어기제 작동을 유발해 잠재된 병리 상태를 유지시킨다. 그리고는 ‘잠복기라는 지연 기간’을 거쳐 사춘기 이후의 촉발적 사건과 결합하는 순간 지연작용에 의한 외상과 증상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외상설(유혹설)이다. 외상설에서는 정신에 각인된 과거 사건의 흔적은, 이후의 정신상태에 평생 영향을 미친다. 즉 인간은 의지와 의식으로는 좀처럼 과거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과거에 얽메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무의식에 억압된 흔적은 의식에 의해 기억되어 재해석되지 않는 한 계속 강박적 영향을 미친다.(프로이트, 1910/1995. 87)


무의식의 외상 흔적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가와의 ‘정신분석’ 작업이 필요하다. 이미 무의식의 상처, 불안, 병리적 방어기제에 고착되어 있는 개인은, 아무리 지식과 합리적 사유능력이 높을 지라도, 의지와 의식으로 자신의 무의식을 엄밀히 인식하고 변형시킬 수 없다. 또한 의식은 정신현상을 일으키는 정신작용들에 대해선 객관적 인식을 결코 가질 수가 없다. 정신작용들은 ‘인식의 조건’이므로 ‘직접적 인식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정신작용들 대부분은 무의식적이다. 또한 인간의 정신작용은 완벽한 기능체가 아니다. 정신작용은 외부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방어적으로 위축되기도 하고, 능동적이고 창조적 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즉, 개인의 정신작용들은 의식의 의지에 의해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욕동들과 외부세계와의 타협적 관계 속에서 그 기능이 결정된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정신작용에 병리적 영향을 미치는 외부환경과 내부 요인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자아가 미성숙하고 약한 유년기에, 외부로부터 받는 과도한 성적 자극은 정신에 큰 부담을 준다. 그로인해 과도한 방어활동이 작동되어, 자아발달을 저해한다. 그래서 유년기의 성적 외상(유혹)이 자아기능의 부분적 마비상태인 신경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는 유년기의 외상 흔적을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위치 이동시키면, 그것의 영향력이 해소된다고 본다. 그래서 신경증을 유발하는 무의식의 흔적들을 추적해 기억하고 의식에 통합하는 정신분석 작업을 시도한다. 그런데 그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신활동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사후작용인데, 지연 작용이 아닌 ‘소급 작용’이다. 그는 이 독특한 작용이 신경증을 유발하며, 역으로 신경증 치료의 열쇠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소급 작용’의 역할에 주목함으로써, ‘외상설’을 포기하고 ‘환상설’을 구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가 정신분석 초기부터(1895) 주목한 ‘소급적 사후작용’이란 무엇인가?


3.2. 소급 작용 : 사후 해석

“경험, 인상, 기억-흔적들은 새로운 경험과 조화되기 위해, 또는 새로운 발달 단계의 획득과 조화되기 위해 나중에 ‘개정’될 수 있다. 이 사후 작용 속에서 과거 사건들은 ‘새로운 의미’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심리적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Laplanche,1973,111)


‘소급 작용’이란 현재의 정신 관점에 의거해 과거의 경험들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심리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입문하기 힘들어하는 자들은 정신분석이 마치 개인의 과거가 현재를 좌우하는 단일한 결정론인 양 오해한다. 그런데 개인 삶의 모든 문제들이 유년기에 받은 상처에 기인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전부는 아니다. 개체는 과거의 경험들을 소급하여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바로 이 재해석이 과거 사건들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과거와 ‘현재 정신’ 상태를 모두 함께 변화시킨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사후 해석과 의미 부여를 하느냐에 있다. 병리적 소급 작용을 하면 상처와 증상이 발생하며, 역으로 성숙하고 긍정적인 소급 작용을 하면 상처와 증상이 해소된다. 정신분석이 신경증자의 무의식에 억압된 과거 상처들을 그토록 집요하게 기억해내려 하는 까닭은 바로, 억압되어 망각된 과거는 의식에 ‘기억’되어야만 비로소 소급적 사후 해석에 의한 개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엠마의 경우를 통해 그녀의 신경증이 어떻게 이 소급 작용에 의해 발생됬는가를 음미해보자.

옷가게 남자점원이 엠마의 옷을 쳐다보며 웃는 것을 본 순간,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그녀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야릇한 성감정을 느꼈다. 그 성감정이 느껴지는 순간 무의식에 묻혀있던 과거 사탕가게 장면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 순간 소급 작용에 의해, 그녀는 과거에 겪었던 일이 일종의 ‘성 추행’이었다고 해석한다. 그 순간 ‘억압’이 작동되어 성흥분은 강한 불쾌감으로 변질되고,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 있는 점원이 과거의 사탕가게 주인처럼 자신을 ‘성추행’할지 모른다는 신경증적 환상과 불안이 돌출한다. 그 순간 놀라서 가게를 뒤쳐나간다.

불쾌하고 불안한 기억은 즉각 억압된다. 그로 인해 엠마는 자신이 왜 가게를 뛰쳐나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왜 가게공포증이 생기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그녀는 반복해서 가게공포에 시달릴 뿐이다. 여기서 점원의 미소를 보고서 기분 좋은 성감정이 드는 순간과 갑자기 어떤 불쾌와 불안감이 들어 가게를 뛰쳐나가는 순간 ‘사이’를 주목해보자. 그 짧은 찰나에 엠마의 정신에는 독특한 병리적 ‘소급 작용’이 작동된다. 엠마는 4년 전 사탕가게 사건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 그것을 사춘기의 ‘현재 관점으로 소급해 해석’한 것이다. 그로 인해 성적 의미가 없었던 과거 사건에 ‘성적 의미’가 부여되자 갑자기 ‘성 흥분’이 방출되었다. 그리고 습득된 금욕주의적 도덕관으로 인해 과거에는 없었던 ‘추행 당했다’는 생각이 ‘새로 발생’되어, 강한 심리적 불쾌, 불안, 수치감이 생성되었다. 즉 과거 사건이 ‘소급 작용’에 의해 (재)해석되는 순간 그 사건은 ‘상처(trauma)’로 변질된 것이다. 조금 ‘특이한 사건’이 ‘섬뜩하고 수치스런 상처’로 변질되는 순간, 정신은 강한 불쾌감 때문에 그것을 의식에 계속 담고 있을 수가 없다. 그로인해 억압이 작동해 불쾌하고 불안한 표상과 정서를 무의식으로 밀어낸다. 그 결과 억압되어 무의식에 보존된 ‘불안한 생각과 환상’으로 인해, 가게에 갈 때마다 원인모를 공포에 시달리는 증상이 발생한 것이다.


과거의 흔적들은 모두 소급적 (재)해석의 대상이 된다. 이런 사후 해석은 성욕동의 ‘발달’과 인지 능력의 변화, 그리고 문화 환경의 변화에 의해 발생된다. 이 소급 작용은 개체가 새로운 차원의 의미에 접할 수 있게 하며, 무의식에 묻혀온 경험들을 재활성화 한다. 이 재활성화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병리적 정신상태에서 이루어질 경우, 그 개인은 뜻밖의 상처와 증상에 휘둘리게 된다. 그러나 성숙한 정신상태에서 소급작용이 일어나면 과거경험들에 긍정적이고 통합된 의미가 부여되어, 삶의 새로운 희열과 성장이 일어난다.

프로이트는 정신에 ‘소급작용’이 발생되기 위한 조건으로, 무의식에 억압되는 유년기 과잉자극, 잠복기, 성욕동 발달 상태의 변화, 촉발 사건, 문화적 가치 교육에 의한 (초)자아관점의 변화 등을 주목한다.


4. 새로운 병인론 : 환상설

프로이트는 신경증자들이 유년기에 성적 유혹을 받았다고 ‘한결같이’ 생각한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의혹을 갖게 된다. 이들의 생각은 개인경험의 우연성과 개연성을 넘어 과도한 보편성을 지닌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신경증자들의 부모나 친척들은 모두 성도착자이어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기차공포증을 떠올리며, 자기 부모가 어릴 적에 자신을 유혹했는지 ‘꿈해석’을 통해 ‘자기 분석’한다. 그는 4세 경에 엄마의 벗은 몸을 ‘우연히’ 보고, 혼자 흥분했던 장면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엄마가 어떤 능동적 유혹을 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가 능동적 유혹자였다면, 남동생과 여동생들도 유혹을 받았을 것이고 신경증자가 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들에겐 신경증이 없었다. 그렇다면 신경증이 외부대상이 아이에게 능동적으로 가한 강한 성자극에 기인한다는 이론은 엄밀한 보편성을 지닐 수 없다. 아버지의 사망과 더불어 밀려든 깊은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수년간 자신의 무의식을 분석한 결과, 그는 신경증자들이 유년기에 ‘외부로부터 받았다’는 유혹은 사실이 아니라, 내부 요인에 기인된 환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린다. 즉 성인신경증자들이 유년기에 주변 인물로부터 유혹을 받았다고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환상이 유년기 말엽에 보편적으로 억압된 것에 기인한다. 그 억압되어 망각된 성환상은 무의식에 보존되어 있다가 정신분석 과정에서 우연히 떠오르는 순간, 마치 현재의 장면인 양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신경증자들은 성환상을 마치 사실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년기 말엽에 성환상에 대한 억압이 발생했다는 것은, 유아들이 이미 성욕동과 성감정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겪었다고 믿는 성적 유혹의 정체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과정에서 회상된 성적 장면들은 사실에 대한 기억이기 보다, 유년기에 지녔던 환상 내지 회고적 은폐기억(screen memory)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한다.(프로이트,1899/1998,70,75)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그런 성환상을 보편적으로 갖게 되는 것인가? 그는 이를 욕동이론으로 설명한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독특한 성욕동을 지니며, 그 성욕동이 성환상을 발생시킨다. 그 성환상은 아이가 부모를 동일시하여 초자아가 생긴 이후부터 억압되어 무의식에 묻혀 있다가, 정신분석 과정에서 분출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추론에 의해 그는 성욕동 발달론을 구성하게 된다.


5. 성욕동 발달 장애 : 유아성욕 고착

프로이트는 유아에게 선천적 성욕동이 있다는 확신과 더불어 지금까지 주장해온 외상설을 포기하고 환상설을 주장하게 된다. 여기서 환상이란 무의식에 억압된 유아성욕으로부터 발생한 유아적 성환상을 지칭한다. 이 성환상에는 많은 <양>의 정서에너지가 부착되어 있다. 그로 인해 사춘기 이후에 이 환상을 자극하는 어떤 대상이나 자극을 접하게 될 경우, 강한 정서 역동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환상은 무의식이기에, 당사자는 자신이 왜 어떤 대상에 대해 강한 욕망과 흥분을 느끼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즉 유아성환상은 성인이 느끼는 욕망의 무의식적 ‘원인인 동시에 모델’ 기능을 한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유아성욕과 유아성환상에 과도하게 고착할 경우,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과 검증력이 떨어져 사회생활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 결과 위기로부터 벗어나려는 타협책으로 신경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성욕동이 유아성욕에 고착되어 성인의 성기욕동에로 발달하지 못할 경우,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


이 ‘발달론’의 관점에 의거해 엠마의 사례를 다시 해석해보자.

(1) 엠마는 이미 유년기에 성욕동과 성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8세의 시기는 성욕동이 잠잠한 잠복기 초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8세적 사탕가게 사건은 강한 성자극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억압된 오디푸스 성환상으로 인해) 중년의 가게주인의 행동에서 엠마는 모종의 흥분을 느꼈을 수 있다. 그래서 그녀가 그 가게에 10일 후 다시 가게 된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8세의 사건이 큰 고통을 주지 않았다면, 그것을 신경증의 근본소인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무릇 ‘쾌감’이란 정신이 ‘감당할 만한 흥분’을 뜻하기에, ‘외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2) 8세에서 12세 사이의 오랜 잠복기 동안에 엠마에겐 사회적 도덕교육이 주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대의 금욕주의 문화를 고려해볼 때, 성에 대한 모든 생각과 정서는 금지․부정되고 억압되었을 것이다. 이 경우 억압된 무의식이 불현듯 의식에 떠오르면 의식을 구성하는 중심관념들과 심한 마찰을 일으켜 정신의 불균형과 불안, 죄책감이 발생하게 된다. 왜냐하면 억압이 일어나는 원인은 성욕동 자체에 있기보다, 과거의 성자극․성환상과 현재의 도덕적 (초)자아 관점 사이의 불일치, 대립에 있기 때문이다.

(3) 12세 엠마는 옷가게에서 남자점원을 보며 뜻밖의 성감정을 느꼈고, 그것이 8세 때의 흥분과 우연히 ‘결-합’된다. 그런데 사춘기의 민감하고 왕성한 성욕동으로 인해, 성에 대해 무덤덤했던 잠복기 때의 흥분은 (무의식의 성환상과도 연결되어) 더욱 강하게 증폭될 수 있다. (Freud,1896,167) 그리고 그 ‘강한 흥분’에 대항하는 ‘억압’ 작용에 의해, 당시의 지각 자체와 다른 불쾌감과 섬뜩한 성환상(성추행)이 발생한다.(프로이트,1899,/1998.70,75) 예기치 못한 강한 흥분과 표상이 내부에서 솟구치면, 평상적 방어가 힘들어진다. 그로 인해 더 강력한 방어기제(대체, 투사)가 추가로 작동되며, 그 결과로 공포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성욕동 발달론은 ‘사후 작용’론과 결합하여 신경증의 발생 원인들에 대한 확장된 이해를 제공한다. 이 이론들에 의거해 프로이트는 그의 숙원이던 신경증 원인에 대한 ‘정신분석’만의 고유 설명 모델이 확립되었다고 확신한다. 위 해석에서 우리는 신경증의 원인은 특히 성적 요인에 있다고 프로이트가 강조한 이유를 곰곰이 음미해야 한다. 그것은 다른 본능들과 달리, 인간의 성욕동은 유아기부터 성기기에 이르기까지 유난히 다양하고 큰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Freud,1894.236) 이 변화가 과거 사건에 대한 의미 해석의 ‘차이’를 확대시키며, 그로부터 강력한 사후작용과 ‘상처’와 병리적 방어기제가 작동되어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6. 외상설과 환상설 사이에서

신경증의 원인은 실제로 겪은 외상에 있는가, 아니면 내부의 성욕동 발달 좌절과 사후 작용에 기인한 환상에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프로이트의 입장은 말년에 이르기까지 단일하지 않다. 정신분석을 ‘무의식’을 규명하는 첨단학문으로 정립하기 위한 운동 과정에서 그는 여러 학자들로부터 정신분석의 비과학성과 비도덕성을 비난하는 공격에 직면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신경증의 원인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정신분석이 과학처럼 사실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학문이라면, 신경증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신경증의 원인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될 수 있는 것인가? 프로이트는 의지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정신-신체 현상들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의식에 있으며, 무의식은 객관적이고 직접적으론 관찰되지 않음을 성찰한다. 그리고 그 무의식의 핵심에는 유년기의 ‘성적 상처’가 있을 것으로 해석한다. 문제는 그 ‘상처’가 외부대상으로부터 받은 외상(外傷)인지, 아니면 내부의 성욕동과 사후작용이 만들어낸 주관적 환상인지에 대해 엄밀한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아이와 성인은 성욕동 발달 양태와 정신의 구조가 다르므로, 유아의 비언어적이고 비규범적인 지각들을 성인의 언어적 사고로 정확히 재현하는 기억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된 내용이 정확한 사실인지에 대한 객관적 확인이 어렵다. 이 때문에 정신분석은 검증될 수 없는 자료들을 통해 자기 이론의 정당성을 보증받으려는 비학문적 가설이라고 비난받는다. 이런 비난에 답하기 위해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에서의 구성」을 통해 다음의 입장을 밝힌다.

정신분석가의 과업은, “과거 사건들이 정신에 남겨놓은 ‘흔적’들 중에서 어떤 원인(억압)에 의해 ‘망각’되어 온 부분을 판독,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 ‘구성’하는 것”이다.(Freud,1937, 258-259) 이런 (재)구성 작업은 수 천 년 간 묻혀온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작업과 유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고학자는 중요한 부분들이 이미 상당히 소실되었거나 ‘파괴된 대상들’을 짜 맞추어 (수천․수만 년 전의) 원대상을 재구성한다. 이에 비해 정신분석가는 현재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무의식의 자료를 다룬다. 개인의 과거는 정신 속에 대부분 보존되어 있다. 심지어 강력한 방어기제에 차단되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과거경험도 꿈, 증상, 실수, 전이 등을 통해 그 정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분석가는 내담자의 ‘전이’ 표현과 꿈을 통해 무의식의 과거 표상과 감정이 생생히 ‘반복 재연’되는 자료를 얻어낼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만약 고고학이 땅 속에 묻혀진 인류 역사의 비밀을 밝히는 하나의 소중한 학문으로 인정받는다면, 무의식에 묻혀있는 정신의 자원들과 비밀을 탐색하는 정신분석이 “학문”으로 인정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Freud,1937, 259-260)

정신분석적 ‘구성’이란 자유연상에서 나온 파편화된 자료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무의식이 증상을 통해 의식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본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분석가는 내담자가 밷어온 말들 중에서 사소한 전의식의 언어를 방어적으로 각색된 ‘무의식의 언어’와 분리ㆍ선별해 이리 저리 짜맞추어, 증상을 유발한 원인들(외상, 환상, ‘부정적 사후해석 관점’...)을 ‘구성’한다. 그리고 내담자가 망각해온 외상과 성환상과 부정적 사후해석 관점이 지금까지 정신에 미쳐온 무의식적 영향들을 ‘해석’한다. 분석가의 ‘구성’은 망각된(억압된) ‘사실’을 정확히 판단한 것일 수도, 분석가의 주관적 상상일 수도 있다. 이 구성이 신경증자의 무의식적 병인을 온전히 반영하는가 아닌가는, 분석가의 해석에 대해 내담자의 무의식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의해 파악된다.(Freud,1937,261-262) 만약 분석가가 구성한 내용이 무의식의 병인(病因)을 제대로 지적한 것이라면, 내담자에게 깊은 ‘정서적 인식’ 반응이 나타난다. 반면에 부정확한 구성일 경우, 내담자의 무의식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신분석가가 ‘구성해낸 진실’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재로 있었던 ‘외부 사실’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환자의 ‘주관적 환상’에 대해 분석가가 만들어낸 ‘또다른 환상’인가?

프로이트는 이 의문에 대해 ‘분석가의 구성’이란 일종의 ‘추측(conjecture)’이라고 말한다.(Freud,1937,265)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내담자의 무의식을 역동시켜서 그로 하여금 자신의 망각된 진실을 상기하게끔 만드는 치유적인 추측이다. 그런데 내담자가 상기한 무의식적 진실의 정체는 주관적 환상인가, 아니면 외부적 사실인가? 이에 대한 프로이트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내담자가 상기한 것은 분석가가 구성한 바로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과 연관된 어떤 무엇일 수 있다. 분석가의 정확한 구성활동에 자극되어 억압되었던 무의식이 의식으로 회귀되지만, 여전히 내적 저항이 발생하기 때문에, 회귀된 무의식은 덜 중요한 대상들로 ‘대체(전치)’된다. 이 대체된 무엇은 ‘일종의 환상’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환상들에는 유아기에 경험되고 잊혀졌다가 회귀한 ‘사실’이 왜곡된 방식으로 담겨있다. 분석가는 이런 ‘왜곡된 사실’에 부착된 신경증자의 리비도를, 그것의 환상성을 자각시킴으로써 ‘철수(de-cathexis)시켜야 한다. 분석가의 ‘구성’은 억압되어 상실된 경험 조각들을 (의식의 자료로) 회복시켜 현실검증력을 높이는 효력을 지닌다.


신경증의 원인에는 과거에 경험했다가 억압되어 망각한 ‘사실적’ 외상의 측면과, 내부의 욕동들과 병리적 방어기제와 부정적 사후작용이 만들어낸 환상의 측면이 함께 있다. 또한 신경증자가 지닌 성적 환상들(거세,유혹,원초적 장면..)에는 개인이 직접 겪은 사실이 아니라, 인류의 ‘원초적 환상’들이 개인에게 유전된 요소가 있다.(Freud,1937,268-269) 이 경우 그것에는 환상의 요소와 더불어 원시인류가 겪은 사실의 요소가 섞여 있다. 그리고 정신분석 과정에서 분석가의 구성과 해석에 자극받아 내담자가 망각했다가 우연히 기억해낸 내용에도, 환상의 요소와 사실의 요소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실이 한번 억압되어 망각되었다가 ‘(재)상기’될 때에는 결코 원형그대로 회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적 사실성’은 인간 정신의 독특한 현실이다. 신경증자는 정신분석 과정에서 기억된 과거내용을 자신이 겪은 그 사실인 양 믿는다. 그런데 이런 믿음의 이면에는 우리가 엠마의 경우에서 관찰한, ‘현재 관점’에서의 소급적 사후해석 작용이 은폐되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프로이트는 이 사후작용이 정신에 일으키는 심리적 효력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 한편에는 자유연상과 ‘구성’ 활동을 통해 내담자의 무의식에 억압된 과거의 진실을 원형 그대로 발굴해내어 ‘자기 인식’을 돕는 것이 정신분석의 본질이라는 실증주의적 과학정신이 작동한다. 그는 여전히 계몽주의적 과학정신에 의거해 정신의 영역에서 환상과 진실의 차이성을 명료히 구분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앞둔 말년까지 무의식의 ‘성찰’을 강조하면서, 내담자의 현재 정신관점과 기대에 만족을 주는 치료기법(공감기법)을 경계한다.(「종결될 수 있는 분석과 종결될 수 없는 분석」1937) 신경증의 근본치료를 위해서는 현존하는 증상의 원인뿐만 아니라, 더 깊은 무의식에 숨겨진 근본 원인을 기억하여 그것의 환상성을 ‘성찰’하여 해체하도록 자극해야 한다. 그래서 내담자가 자신의 ‘무의식적 현재 환상’에 안주(고착)하지 못하게끔, 현상태를 공감해주길 원하는 내담자의 (자기애적) 욕구를 좌절시키는 ‘비공감적 치료술’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한 것이다.(Freud,1937, 231-233) 그런데 그는 다른 한편으로 ‘소급 작용’에 대한 고찰을 통해, 무의식적 과거에 대한 ‘사실 대 환상’의 엄밀 구분이 원리적으로 힘든 것임을 자각한다. 따라서 말년의 그는 외상설과 환상설 사이에서 단일한 입장 표명을 유보한 채, 상황에 따라 양쪽 관점 모두를 적절히 인정하는 태도를 취한다.


7. 사후 작용의 현대철학적 의미 : 시간, 인과, 의미의 비결정성

신경증의 발생 과정에서 사후 작용의 역할에 대한 프로이트의 성찰은, 철학자들에게 시간성, 인과성, 의미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관점을 제공한다. 이를 음미하기 위해 다시 엠마로 돌아가 보자.

그녀의 가게공포증 원인은 무엇인가? 8세 때의 사탕가게 사건인가? 아니면 12세 때의 옷가게 경험인가? 아니면 8세와 12세 사이의 ‘잠복기’에 교육을 통해 정신에 각인된 당대의 금욕적 가치관인가? 8세 때의 사탕가게 사건만으로는 엠마에게 증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8세 때의 사건을 떠올리게 한 촉발적 자극을 그녀가 받지 않는다면, 엠마는 평생 정상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지닌다. 따라서 8세의 사건이 결정적 병인이라고 규정하기 곤란하다. 그렇다면 12세 때의 옷가게 경험인가? 그 경험만으론 신경증의 발생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엠마는 불안이나 불쾌감이 아닌 흥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증상을 일으키는 ‘상처’는 잠복기 동안의 금욕적 도덕교육에 의해 생겨난 것인가? 금욕적 성교육만으로는 인간일반에게 상처(trauma)가 발생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신경증을 유발하는 병인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어떤 사건이 병의 원

서양 고-중세 형이상학과 근대이성은 시간이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로 단일하게 흘러간다고 해석해왔다. 그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증상을 발생시킨 원인은 항상 과거에 위치한다. 그런데 소급작용에 의하면 정신세계에는 ‘고정된 과거—현재—미래’란 실재하지 않는다. 즉 과거란 끊임없이 이동하는 ‘현재’에 의해 그리고 미래의 ‘현재’ 시점에서 그 내용이 바뀔 수 있는 무엇이다. 그렇다면 과거는 단지 과거인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내포한다. 어떤 자극은 정신에 지각되었다가 새로운 자극에 밀려 의식에서 사라지는 ‘과거의 흔적’이 되는 동시에, 시간의식이 없는 무의식에선 항상 역동하고 있는 ‘현재’이며, 사후작용에 의해 미래에 그 의미와 가치가 변화될 가능성을 지닌 미래이다. 따라서 ‘정신의 세계’에서는 ‘고정된 객관적 과거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무엇에 대해 명료한 ‘과거 사실’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어떤 특정한 현재 순간에서만 ‘잠정적’으로 유효한 발언이다. 따라서 과거/현재/미래라는 발생학적 선-후 관계 구분은 결정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시간 구분은 사실을 지칭하는 기호가 아니라, 잠정적인 쓰임 기호일 뿐이다. 중요한 점은 어떤 경험이 개인 정신의 어떤 ‘구조(의식/무의식)’에 위치하느냐에 있다. 그것이 ‘의식’이라는 특정 구조 속에 위치하게 되면, 직선적 시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무의식’에 위치하게 될 경우 무의식에는 시간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에,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에 영향 받지 않는다.


위의 생각들을 신경증의 원인론에 적용해보자. 우리가 ‘지연 작용’을 주시하게 되면, 인간정신은 늘 따라 다니는 과거흔적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해석된다. 반면에 ‘소급 작용’을 주시하면 정신세계에서 과거흔적은 (그것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기억될 수 있는 한) 현재의 자아에 의해 그 의미와 가치가 개정될 수 있는 무엇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과거경험이 아닌 ‘현재의 정신관점’ 내지 자아 발달 상태이다. 신경증자를 비롯해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자기 인식’을 회피하는 자들은, 늘 과거 흔적들에 반복해서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자기 분석’을 꾸준히 해가는 사람은 ‘현재의 발달된 자아 관점’에 의해 부정적인 과거 환상을 긍정적인 현재의 의미로 변형시킨다. 그리고 외부세계의 새로운 자극들을 수용하고 통합하는 과정들을 통해 자아가 ‘발달’해가기 때문에, 발달된 사후해석 관점에 의해 주체적이고 새로운 의미세계를 살아가게 된다. 신경증자는 과거의 의미세계에 ‘고착’되어 늘 ‘과거적 현재’를 살아간다. 이에 비해 성숙한 자는 새로운 자극들에 대한 개방적 수용과 과거에 대한 새로운 사후해석으로 인해 과거에 고착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프로이트의 사후작용론은 또한 전통 형이상학과 근대이성의 단일한 인과 관점을 전복시킨다.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사후 작용들이 활동하는 정신세계에서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일의적인 규정이 어렵다. 가령, 과거의 흔적들이 현재의 정신관점을 결정하는 원인이기도 하고, 현재의 정신관점에 의해 과거의 의미가 개정되기도 한다. 이런 상호 영향관계에 놓여있는 ‘심리적 현실’에 대해 기존의 인과 범주에 의거한 일의적 설명은 타당성을 지니기 어렵다. 왜냐하면 기존의 인과범주는 시공간적 방향성과 필연적 관계성을 내포하는데, 쌍방향으로 사후작용하는 정신세계에 대해 시공간적 방향 설정과 필연적 관계가 제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심리적 사실’에 대한 이해에 적합한 새로운 ‘인과’ 관점 개발이 요구된다.


프로이트의 사후작용론은 또한 포스트 모던 기호론의 선구적 모델이 된다. 즉, 어떤 경험(기호)의 의미와 가치는 일의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신상태와 외부 상황에 따라 예측할 수 없게 변화된다.(Lacan,Ècrits,1977, 48-49) 프로이트는 엠마에게 성에 대한 새로운 가치교육을 통해 그녀 스스로 자신의 부정적 과거환상(성추행)을 ‘보통의 사건’으로 사후해석 하게 도와줌으로써 증상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탕가게와 옷가게 경험은 엠마에게 ‘상처’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인생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동일한 사건일지라도 개인의 정신 관점과 외부세계의 가치 시선에 따라 그것의 의미와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그렇다면 정신세계에서는 병의 ‘객관적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두 종류의 사후작용론에는 이처럼 근대사상을 전복시키고 현대사상을 개시하는 혁명적 인간학과 인식론, 의미론이 담겨있다. 그에게 ‘정신분석’이란 병리적(부정적)으로 고착된 사후해석을 성숙한(긍정적) 사후해석으로 변화시켜, 삶의 의미를 다중적으로 음미하게 돕는 활동이다. 이런 정신분석 이론과 관점, 기법을 현대인들은 자신의 정신 발달을 위해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해야 하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적 ‘구성’은 정신분석의 최종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예비 작업일 뿐임을 강조한다.(Freud,1937,260) 이 말은 일반 학문들은 탐구 대상에 대한 구성(해석)이 탐구활동의 최종상태와 최종목표이지만, 정신분석은 ‘구성’을 통해 고통의 원인들을 인식하고, ‘훈습’ 과정을 통해 그 깨달음을 자기 것으로 숙성하는 ‘실천적 학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끊임없는 교류활동이 없는, 이론중심적이고 사유중심적인 탐구활동은 의식의 자기애적 환상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늘 경계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유가 현실과 일치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활동을 경시하는 인문학은 일종의 자기애적 사변활동이라고 비판하는 프로이트에 대해, 현대의 인문학자는 어떤 응수를 할 수 있는가. 현대의 인문학자는 자기 자신과 인류의 정신적 고통들에 대해 얼마만큼의 현실적 치유능력을 지니는가? 자본주의가 생활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하는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와 상처를 호소하는 내담자나 대중들에게 정신분석가나 인문학자들은 프로이트를 넘어설 어떤 정신적 힘과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가?


<요약>


신경증은 다중 원인들에 의해 발생한다. 그 원인들 대부분은 무의식에 위치한다. 따라서 직접적 관찰이 불가능하며, 꿈, 증상, 실수, 전이와 저항, 자유연상 언어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야 접근가능하다. 그 원인들을 ‘성찰’하면 증상은 극복된다. 이런 전제들을 가지고 신경증자를 정신분석한 결과 프로이트는 다음 원인들을 발견한다.

1. ‘외부’ 대상에게서 받은 ‘과잉자극’(외상)

2. 외부 대상에게서 받은 ‘성적’ 과잉자극 즉 ‘유혹’(성적 외상)

3. ‘유년기’에 가까운 외부대상에게서 받은 유혹

4. ‘내부’ ‘유아성욕’의 과도충족/과도좌절로 인한 ‘고착’이 유발하는 ‘유아적 성환상’. 그리고 성욕동 발달 장애

5. ‘무의식의’ 강한 ‘외상과 환상’이 사춘기 이후 ‘(전)의식의’ ‘특이한 자극’과 ‘결합’될 경우 작동하는 부정적 ‘사후 작용’

6. 갈등의 심화, 정신 구조의 불균형, 자아 발달 장애와 병리적 방어기제, 과도한 죽음욕동, 경직된 초자아, 나쁜 환경.


참고문헌

프로이트,(1899)「어린시절의 기억과 은폐기억들」󰡔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1998),서울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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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1910)「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기 기억」,󰡔프로이트 예술 미학 분석󰡕(1995) 서울:글벗사

______(1913)「토템과 타부」,(1939)「모세와 유일신교」󰡔종교의 기원󰡕(1997), 서울 : 열린책들.

Shweder, A, R. 󰡔문화와 사고󰡕(1997) 서울 : 교육과학사. 9장.

Freud, S.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London : The Hogarth Press (1966) 프로이트의 영문 참고저서는 이 책으로 통일해 SE로 약칭함.

______(1894), letter. SE,I..188.190-192.231,233,236.

______(1895)"Project for a scientific psychology", SE.,I..

______(1896)"Futher Remarks on the Neuro-Psychoses of Defence",SE,III.

______(1937)"constructions in Analysis",SE.XXIII,

______(1937)"Analysis Terminable and Interminable",SE.XXIII,

Lacan,J. Ècrits, trans.by Alan Sheridan)1977), New York ;W.W.Norton & Company.

Laplanche,J.&Pontalis,J.-B.(1973) The Language of Psycho-Analysis, trans. by D.N.Smith., New York :;Norton &Company. "Primary phantisies",33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