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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과 철학상담의 조화로운 통섭 방법

관리자
2020-02-15

 

* 2016년도 강원대학교 인문치료 특강 원고.   '무의식'을 모른 채 인간을 이해했다 착각하며 치료하려는 철학상담의 부작용에 대한 조언.


<정신분석과 철학상담의 통섭을 위하여>

이창재 (프로이드정신분석연구소 소장)


머리말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하는 내담자를 철학상담치료사는 어떤 치료적 관점과 태도로 대면할 것인가?

내담자는 치료사를 향해 자신의 고통상태를 최대한 표현하여 효과적인 치료를 받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최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말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그는 의식에선 현재의 고통과 불편감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을 지닌다. 그런데 오랫동안 고통증상을 떠안고 살아온 성격장애자와 신경증자는 실상 그 고통이 없어지는 것을 전적으로 바라지 않는다. 대체 그는 어떤 마음으로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받으러 온 것일까? 철학상담치료사는 어떤 관점, 어떤 지식, 어떤 기법으로 내담자를 도울 수 있는가?

내담자는 치료자가 ‘자신의 고통’에 대해 자신보다 많은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처럼 특정 고통증상을 지닌 사람들의 증상 원인들과 치료법에 대해 이미 이론과 경험 차원에서 모두 숙지하고 있으리라 믿고서 찾아온다. 정신이 변형되는 ‘치료 작용’(therapeutic action)은 바로 그런 ‘이상화된 믿음’ 속에서 비로소 작동된다. 이 믿음이 치료전문가를 만나 상담하는 시작부터 과정을 거처 종결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지되어야 치료 관계가 유지된다. 이 믿음과 관계를 유지시키는 능력과 전문적 기법이 바로 치료사의 예비조건이다. 그런데 철학치료사는 이 능력과 비법을 지니고 있는가?


1. 철학 치료의 뿌리를 돌아보기

‘생각에 집중하며’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철학자들이 ‘상담’이라는 말과 ‘치료’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해, 자신의 이미지에 변신을 꾀하고 있다. 현실에서 ‘공인된 치료사’를 지향하는 이 변신은 과연 철학자의 품격을 높이는 바람직한 것인가?

‘상담’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표현하고 자신이 갖고 있지 않는 전문 능력을 지닌 분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할 현명한 조언을 듣는 활동이다. 인간 생활의 수많은 분야(정치, 경제, 문화, 체육, 오락...)에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상담 치료’라는 말은 의미가 매우 깊다. 그것은 정신내부의 요인들로 인한 ‘만성적인 고통’(불편감, 불안, 공포, 우울, 신체와 사고 마비. 대인관계 문제, 반복되는 실패, 원인모를 증상들)과 대결하는 작업이다. 인류사에서 정신을 치료하는 전문가는 큰 명예, 힘, 권리와 더불어 매우 무거운 ‘책임’을 지녀왔다. 역사적 현실에서 이 ‘책임’ 부분은 매우 민감하고 때로 치명적이기에, ‘치료’라는 명칭은 조심해 사용해야 한다.


여러 신들을 믿었던 신화시대(B.C.8천년~B.C,8백년)에 인간의 평균수명은 불과 30세 정도였다. 병이 들면 치료법을 몰라 얼마 후 죽었기에, ‘마음의 병’에 대해 따로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고대인들은 (심신의) ‘병’이 ‘인간의 죄’와 ‘신들의 분노’에 기인한다고 믿었다. 가령, 신에 대해 오만한 행동을 하거나, 타부를 어길 경우, 신의 분노를 일으켜 병이 생긴다.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에 의하면, 이 시대 사람들은 내면과 외부에서 생생히 들리는 ‘신의 목소리’의 안내를 받으며 살았었다. 신이 내리는 (환각적) 명령을 어길 경우, 즉각 심신에 처벌이 내려져 병이 들었다.(현대의 정신분열증자 역시 내부에서 명령하는 목소리의 지시를 어기면, 가혹한 심신의 통증을 겪게 된다.) ‘사고하는 나(의식)’가 아직 미발달된 이 시기에 치료사의 ‘치료’는 신의 목소리가 잘 기능하게 돕든 것이다. 왜냐하면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의식’이 없었기에, 대신 판단하고 안내해주는 신의 목소리가 없으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00-400명 규모의 집단이 모여 살던 이 시대 사람들은 동일한 집단무의식에 융합되어, 유사한 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았기에, 집단원의 정신을 ‘신의 이름으로’ 하나로 묶어 신의 에너지에 접촉하게 만드는 ‘공동체 의례’가 집단치료의 중요 활동이었다.

아울러 “만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自然精靈論을 믿었던 고대인은 인간의 병이 병자의 허약해진 몸과 정신에, 나쁜 기운을 지닌 다른 정령이 침입하여 점령하고 있는 상태로 이해했다. 가령 결코 접촉해선 안 되는 대상이나 장소와 접촉하면, 나쁜 정령이 스며들어와 개체의 몸과 영혼을 점유한다. 현대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타자의 ‘투사적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작용에 함입된 상태라 칭한다. 투사적동일시란 ‘자기의 일부’가 미립자처럼 쪼개져 상대방의 정신 속으로 침투되어 상대방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공감, 조종, 지배..) 작용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이를 ‘氣’라 칭했다.

우리가 좋은 인간을 만나면, 그의 심신에서 좋은 ‘기’가 나온다. 정신이 구조적으로 또는 잠정적으로 망가진 정신증자, 반사회성 성격자(조폭, 사기꾼,..), 악성 성격장애자와 가까이 ‘접촉’하면, 그에게서 내뿜어지는 ‘분열된 정신 요소(시기, 불안,,)’의 기에 의해 영혼이 민감하고 약한 자는 순식간에 전염되어, 자신모르게 복잡하게 꼬인(타자의) 인생을 (대신) 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반면에 정신성이 통합된 인간을 만나 교류하면 답답하거나 심란했던 심신이 상대방의 좋은 ‘기운’에 의해 순환되고 정화되어 그와 유사한 상태로 안정되곤 한다.

히스테리를 만나면 유혹받는 기운에 기분이 들뜨게 되고, 경조증자를 만나면 그의 들뜬 기운에 함께 기분이 들썩거리고, 악성 경계선인격자를 만나면 머리가 아파지고, 정신증자를 만나면 사고와 정서가 멍해진다. 어떤 대상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거나, 압도당하거나, 꼼짝 못하거나, 화가 치미는 것도 상당부분 이 투사적동일시에 기인한다. 그런데 투사적동일시는 타인의 마음에 파고들어가 상대방의 심리상태를 읽어내거나 내 마음상태를 타인에게 전하는 소통 기능과, 내 안에 있던 좋은 에너지를 상대에게 집어넣어 상대방의 기운을 회복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대인의 정신 치료는 샤먼에 의해 행해졌는데, 샤먼은 염력(투사적동일시)를 통해 자신을 찾아온 병자의 정신 속에 들어가 그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으며, 어떤 원인으로 병이 들었는지를 직관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와 지혜로 병자의 정신을 점유한 이질적 정령을 내보낼 수 있는 경우 금새 치료하고, 그 정령의 힘이 쎌 경우(병세가 중한 경우)는, 자신이 숭배하는 신(강한 정령)에게 부탁하여, 병자의 정령을 제압한다. 샤먼은 자신의 영혼(anima, soul)을 내려놓고 다른 정령(치유의 신, 병을 일으키는 귀신)과 접촉하는 능력을 지니며, 영과 영 사이를 조화롭게 매개하는 (영매) 능력을 지닌 자다. 샤먼은 병자와 집단을 위해, 자기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기꺼이 다른 정령들과 접속하는 능력과, 접속한 정령(자연신)에게 병자가 바라는 바를 자신이 대신 전달해주는 기능과, ‘주술’로서 병을 일으킨 정령을 ‘회유, 조종, 소통, 간청’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신과 세상과 인간의 기원과 인간의 본질, 고난을 극복한 영웅 이야기 등을 담은 ‘신성한 신화’를 들려주어, 삶의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해 불안해하고 방황하던 영혼을 응집시켜주는 비범한 정신성의 존재였다. 사먼은 집단원 모두가 신뢰하는 치료사요 구세주였다.

샤먼(제사장)이 치료자로 활동하던 시절은 집단원들의 자율적 의식기능이 아직 개화되기 이전시기이며, 주로 주술적 사고와 ‘투사적동일시’(기)로서 소통하던 애니미즘(만물정령론)에 근거한 ‘신화시대’였다.

시대환경이 바뀌어 언어로 사고하는 의식이 출현하자, 샤먼의 주술적 치유술은 주변화되고, 자연정령론(다신교)은 유일신론으로 바뀐다. 신화시대에서 ‘종교시대’에 진입해 신의 말씀과 뜻을 일반인에게 해석해 전해주는 매개자인 사제집단이 치유자로 등장한다. 이 시대에 병들 역시 대부분 타부병으로 해석되었다. 즉, 유일신이 정한 행위 규범들에 어긋나는 오만한(Hybris), 반인륜적인, 신성모독적인 행동을 하면, 신의 노여움에 의해 처벌받아, 병이 생기는 것이다. 지역마다 여러 신들이 존재하던 신화시대의 타부병과 유일신을 믿는 종교시대의 타부병은 ‘내면 심판자’의 자동적 처벌이 내려진다는 점에선 유사하다. 그런데 자아의식과 문명적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의 내면심판자와, 이후의 내면심판자는 그 질감이 다르고, 그에 따라 정신질환의 유형도 다르다.

신화시대의 정신질환은 그리스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행동에서 나타나듯, 원시적 초자아의 가혹한 명령들과, ‘편집증 자리’ ‘분열성 자리’에 서 일어나는 박해망상, 멸절불안과 연관된 광기로 나타난다. 이는 오늘날 편집증(정신증), 조울증, 정신분열증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종교시대의 병리성을 현대의 정신분석 언어로 해석하면, (문명적) 초자아에 의한 (양심적) 자기처벌 증상이다. 그것에는 주로 심인성신체화장애(히스테리), 강박신경증, 공포증 등이 속한다.

사제집단이 신의 목소리를 대신 중개해서 전하는 종교시대에는, 종교가 정한 타부규칙을 어기게 되면, 내면에서 작동하는 초자아의 위력에 의해 심신에 엄청난 초자아 불안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불안을 벗어나려는 타협책으로 심신의 병(증상)들이 생긴다. 수십년간 신체 일부가 여기저기 마비되어 끊임없이 통증에 시달리는 히스테리 증상이 그 대표적 예다. 히스테리는 무의식에 신의 계율(타부)을 어기는 ‘금지된 욕망’을 품고 사는데, 현실에서 우연한 자극에 의해 그것을 행동에 옮기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 순간, 강력한 초자아의 비난과 억압 방어가 작동되며, 심리적 불안과 욕구가 신체증상으로 전환된다. 그래 원인모를 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히스테리 내담자는...든든한 아버지 같은 권위와, 보통사람들이 모르는 특별한 지식을 지닐 것으로 믿어지는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종교시대의 심신의 병들은 여성의 경우 히스테리와 신체화장애가, 남성의 경우 강박증과 공포증들이 많았었다. 이 병들은 신이 금지한 욕망을 마음속으로 또는 때로 현실에서 어긴 데에서 온 타부병이었기에, 신을 대리하는 신부(神父)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신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해주는 엄청난 권위를 지닌 신부의 ‘말씀 소리’를 들으면,...(초자아의 내적 비난이 정화되어) 신기하게도 병이 치유(완화)되곤 했다. 지난 천오백년동안 고해성사의 기법은 세련화 되어, 어떤 고백환경에서 어떤 종류의 내용을 어느 정도 깊이까지 이야기해야 치료효과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종교집단마다 오랜기간 축적한 무게 있는 지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철학자는 어떠했는가? 역사에서 철학자의 등장은 본격적인 자아의식의 출현을 의미했다. 스스로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이전시대의 일반인은 소유하지 못한 귀한 능력이며, 오직 샤먼, 예언자, 왕 만이 집단을 위해 사용했던 능력과 유사하다. 그런데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출현한 철학자들이 당대의 현실세계에서 고통증상에 시달리는 병자들에게 공인 치료사로 직접 활동했는가? 이 물음에 대해 현재의 우리는 차분히 음미해야 한다. ‘철학자’란 어떤 활동을 하는 존재인가?

서양의 경우 철학자는 세상의 기원, 신의 본질, 인간의 본질, 인식의 특성, 참된 사유방법, 옳고 선한 행동에 대해 주체적으로 사유하여, 세인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해주는 활동을 해왔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철학교수 그룹이 출현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서양의 철학은 명문 귀족 플라톤과 알렉산더 왕의 선생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이론과 틀이 정립되어,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 사제그룹에서 종교와 더불어 탐구되었고, 대중과 접촉하는 여러 사제그룹과 시인들을 통해 전파된 활동이다. 즉 철학은 인류역사 속에서 독자적 치료사로 존재하기보다, 샤먼이 들려주는 위대한 신화 속에, 정신을 응집시켜주는 사제그룹의 말씀과 세계관 속에 내면화되어, 그들과 더불어 ‘치료 작용’을 일으켜왔다. 철학(형이상학)은 각 시대의 주요 정신 치료사 역할을 하는 집단에게 흡수되어, 간접적인 치료기능을 담당해온 것이다.


철학의 시조인 소크라테스가 대중을 ‘직접 치료’했는가? 이 물음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다. 소크라테스는 과연 집단(상징계)이 ‘공인하는 치료사’ 였는가?

정신분석 상담치료활동을 해온 필자의 눈에는, 소크라테스는 ‘어떤 대상’들에겐 훌륭한 치료사였다. 누구에게? (어떤 요인에 의해) 현실에서의 출세와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에 흥미를 전혀 지니지 못했던 명문귀족 플라톤과, 그의 탁월한 대화술에 감탄한 귀족 R과, 몇몇 시민에게 정신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는 (치료사) 역할을 했다. 그런데 대다수의 아테네인에겐 전혀 치료사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에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공인된 치료사가 되는데 어떤 결함이 있었던 것일까? 현대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어떤 인격유형의 인간에게 철학적 치료가 유용하고, 어떤 대상에겐 ‘독’이 되는지를 구분하여 진단하는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는 개개인의 특성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인간(인생)의 본질’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철학자로서는 탁월한 범주 선택이었는데, 개개인을 치료하는 치료사로서는 중대한 결함이자 실수였다.

개인의 성격특성과 욕망에 부합하는 세계관과 삶의 목적을 철학적 대화를 통해 스스로 자각하게 해주는 철학치료는, 이 치료법을 필요로 하는 적합한 대상에겐 인생을 바꾸는 대단한 힘과 치료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이 치료법에 맞지 않는 만성적인 증상을 지닌 사람들에겐 답답하고 짜증나고 분노를 일으키는 활동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신이 취약해 사소한 부정적 자극에도 ‘자기(Self)’가 파편화되는 사람은, 힘(권위) 있는 대상에게서 힘찬 긍정적인 말을 들어야 정신이 응집되어 불안이 완화된다. 이런 분들에겐 상대방이 오랫동안 지녀온 관점이나 신념을 뒤흔드는 소크라테스적 문답법은 독이 된다. 그런 사람에겐 소크라테스는 마치 자신의 소중한 것을 파괴하는 ‘전적으로 나쁜 대상’으로 지각된다. 자신의 취약한 정신을 그나마 버티게 만든 중요 관념과 관점이 타자에 의해 공격당한 듯한 느낌에서 나온 분노와 불안과 피해의식은 오래 지속되며, 외부로 분출되어야 비로소 진정이 된다. 소크라테스가 고발되어 민주투표에 의해 사형판결은 받게 된 것은 이런 인과응보에 기인한다. 단지 아테네 시민이 어리석어서 생긴 일이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시민들의 현실적 ‘심리 특성’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분열성 성격(schizoid)으로 추정된다. 이 성격구조를 지닐 경우 사람들과의 친밀관계가 불편하게 느껴지기에 늘 대인관계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 외로움을 사유 활동을 통해 보충한다. 내면에서 절절히 음미된 그의 ‘깊은 사유’는 보통사람들이 간과하는 요소를 매우 잘 보며, 상식에 만족하는 사람이 하지 못하는 독창적인 사고를 생성해낸다. (분열성성격은 철학자나 철학교수 직업에 매우 적합한 성격이다.) 상식과 규범을 넘어선 기발한 사고를 제공하는 스키조이드를 유독 좋아하는 성격은, 자유롭고 싶어 하지만 특정한 도덕적 사고틀에 억메이는 강박형 성격이다. 감각적 지각이나 현실의 출세에 무관심하고, 죽음의 문제에 걸려있고, 늘 사고하기를 좋아했던 플라톤은 전형적인 강박형성격자다. 플라톤에게 소크라테스는 ‘죽음’ 불안을 극복해낸, 그 누구도 말로 표현하지 못한 고귀한 생각을 전해준 유일한 가치대상이었다. 소크라테스는 현실의 삶에 대해 의미와 가치감을 느끼지 못하던 플라톤의 리비도 에너지를 철학적 사고활동에로 ‘전환, 승화’시켜 인류의 정신을 고양하는데 사용하게 도움을 준 점에서 영혼의 치료사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현실에 적응하며 잘 살고 싶어 한 일반시민에게 훌륭한 치료사인가? 이 물음은 다른 치료사와 ‘비교’할 때 보다 선명해진다. 가령,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 중에 누가 현대적 의미의 좋은 치료사인가?

이 물음은 21세기 한국의 ‘현실에서 공인된’ 철학치료사가 되기를 바라는 분들이 진중하게 음미해볼 필요와 가치를 지닌다. 철학치료사가 되려는 분들이 바라는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성을 지닌 ‘치료자’상은 어떤 것인가?


그리스 전성기에 그리스인에게 최고의 치료사로 부각된 존재는 단연 소피스트였다. 유명한 소피스트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순회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와 접촉하려고 심신이 들떠있었다. 왜인가? 그를 만나면 인생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풀리기 때문이었다.

플라톤의 저서에 나온 기록을 현대의 관점에서 재음미해보자. 유명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를 만난다는 흥분에 싸인 P에게 Socrates 가 묻는다. “너는 프로타고라스가 <누구라고 생각>하고서 만나러 가는 거냐?” 자, 같은 물음을 현재의 우리에게 던져보자. 소피스트는 어떤 존재인가?

사람들의 영혼을 들뜨게 한 고대의 소피스트는 현대의 인물로 해석하면, 스티브잡스, 최고 연예기획사의 대표, 최고의 투자상담 전문가, 입시전문가, 성형외과 의사, 최고의 결혼중매사, 정신치료사, 프로 운동 코치..변호사, 국회의원 제조가..,원하는 대학에 가장 빠르게 교수되는 비법을 알려주는 존재다. 그를 만나는 순간, 대다수인은 현실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법과 기술을 전수받아 출세할 수 있다! 그 어떤 고민이든, 현실에서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처방책을 직간접적으로 전해주는 자. 현실에서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와 현실요법 상담치료 방법을 전해주는 자다. 어떤 인간이든 그와 가깝게 접촉할수록,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게끔 만들어주는 최상의 해결사다.

이에 비해 소크라테스는 어떤 존재인가? 대중 대다수가 관심 갖지 않는, 덕, 영혼, 죽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유도하는 자. 시민이 지녀온 상식적 가치들에 대한 기존 신념을 뒤흔들어놓는 자. 감각적 쾌락이나 출세와 무관한, 저 세상의 영원한 가치를 강조하는 자. 우리 자신 안에 신적 영원성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고, 그 능력(이성)을 잘 연마하면 세속의 실패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부심이 고양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고 역설하는 자다. 그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자신의 내적 본질을 직면하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런데 아직 의식의 사고활동이 초보단계에 불과했던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수행하기 매우 힘이 든다.

당신은 주어진 현실에서 진정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누구를 만나면 당신의 인생이 활력과 기쁨을 느끼며, 행운이 찾아들었다고 느끼겠는가? 열심히 노력한 만큼 ‘현실’에서 정당하게 인정받는 구체적 방법을 전해주는 소피스트인가? 사람과 친밀하게 사귀는 방법이나 현실에서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 어떤 구체적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세속인들과 친근히 지내기 위해 필요한 기존 신념을 뒤흔들어 심란하게 만든 후에, 현실에서 받은 고통과 상처를 보상해줄 신기한 관념세계에 관한 앎에의 욕구를 채워주어 자존감을 북돋아주는 소크라테스인가?

현대의 현실에서 내담자에게 benefit를 제공할 수 있는 ‘철학치료사’는 소피스트인가 소크라테스인가?


소피스트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난관을 돌파하는 현실적 방법을 전수해 정신을 안정시켜주는 오늘날의 ‘현실요법’ 전문가이다. 소크라테스는 현실에서 기쁨과 의미를 찾는 삶을 살기엔 이미 정신구조적으로 깊은 문제를 지닌 사람들에게, 감각적 현실 아닌 곳에서도 삶의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정신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치료사다. 두 사람 중 누가 21세기 한국인이 필요로 하는 철학치료사 모델에 가까운가? 당신이 철학치료사가 된다면 한국인 내담자에게 어떤 모델을 안내할 것인가?

김성진 철학상담치료학회 회장은 이렇게 답한다. “내담자가 소크라테스를 원하면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를 원하면 소피스트를 안내해 줄 것이다. 철학치료사는 내담자의 정신유형에 따라 융통성 있게 철학 모델을 제공하는 전문가다. 그러므로 내담자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그의 선택에 어떤 철학적 의미가 있는지를 명료화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이 답변은 철학치료의 주요 관점과 기법을 담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한 마디 더 묻고 싶다. ‘그 내담자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내담자의 (호불호 유형과 방어 유형을 내포하는) 성격 유형’들에 대해 철학치료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2. 철학상담치료를 위해 철학치료사가 보충해야할 지식


철학사에 등장했던 대부분의 철학들에는, 당대 생존환경의 어떤 문제점에 대처(적응)하기 위한 요소들이 담겨있다. 샤먼이 병치료에 사용했던 인간의 기원과 본질을 담은 창세 신화와 역경을 이겨낸 영웅 서사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플라톤의 이데아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론(존재론, 인식론, 윤리학) , 중세의 종교철학, 근대의 경험론, 합리론, 독일관념론, 생철학, 현상학, 해석학, 실존주의, 구조주의, 분석철학, 실용주의..그리고 동양의 유가, 불가, 도가 사상 등등은 각각 당대 현실에서 부각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실천적 치유 목표를 가진 사유의 결과물이었다. 이들 각 철학에는 어떤 유형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고유의 에너지와 실천방법론이 담겨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치유에너지를 담고 있는 자원을, 현대의 한국에 실존하는 어떤 인간들에게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이다. 이를 위해 치료사가가 유념해야 할 점들은 무엇인가?

1) 철학은 ‘인간의 보편적 본질’에 대해 탐구해 왔다. 그런데 현실에서 구체적 내담자나 소수 집단을 상대로 ‘치료’를 하려면, ‘인간’이라는 거시적 보편범주보다, 서로 다른 정신구조 유형 (신경증/성격장애/정신증), 성격유형(자기애성격/경계선성격/..), 고통(증상) 유형(증상학)의 범주가 필요하다.

위에 언급된 다양한 유형의 철학들 중에서 유독 자신의 관심을 끄는, 활력을 얻는 철학의 장르는 개개 철학자마다 다르다. 마찬가지로 내담자들 역시 그의 정신유형에 따라, 그에게 맞는 치유에너지를 줄 수 있는 철학유형이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2) 그런데 철학치료사는 과연 인간의 정신유형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가? 철학치료사는 큰 기대를 갖고 자신을 찾아온 내담자와 철학상담을 해가면서, 그가 어떤 유형의 철학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어떤 정신적 결핍을 지닌 인격유형인지, 어떤 관점과 어떤 기준들에 의거해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철학치료사는 여러 유형의 심리치료 기법들보다 유독 철학치료를 필요로 하는 인간들이 어떤 치료동기를 지닌 어떤 정신유형의 인간인지에 대해 얼마나 ‘소화된 지식’을 갖고 있는가?

만약 그것에 관해 아는 바가 없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전문가에게 어떻게 배워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철학자들은 학문의 특성상 오랜 기간 ‘지적 사유세계’에 몰입해온 정신성을 지닌 분들이다. 그래서 현실계에서 다양한 정신유형의 사람들이 주로 어떤 문제로 인해 원인모를 만성적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되고, 좋은 안내자를 만나지 못할 경우, 평생을 이리저리 방황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해 현실적 지식이 적은 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현실적, 심리적 이유로 유명 점쟁이들, 종교가들, 정신과의사들, 심리치료사들에게 늘 사람들이 들끓고 있는지...그 원인에 대해 체계적 안내를 받거나 깊이 체험한 적이 거의 없다.

인간은 어떤 때 어떤 원인으로 불안이 일어나며, 불편감이 들며, 기분이 나빠지며, 세상에 대해 의욕이 상실되며,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지에 대해, 매 시대의 철학은 당대의 현실 문제를 직시하며 나름의 답변을 제시해 왔다. 그리고 현실을 종합적 관점에서 조망하던 철학에서 오늘날에는 정치학과 사회학, 언어학, 심리학, 정신분석학이 분리되어 독립영역을 형성함으로써, 철학자가 ‘현실’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에 대해 종합적 사유를 할 수 있는 길이 오래전부터 부재하는 상황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을 2천5백년전에 던지고 탐구하면서, 나름 당대인의 정신을 현실에서 치유해주는 구체적 힘을 발휘해온 철학이, 오늘날은 실천적 활동의 상당부분을 사회과학(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심리과학에 자리를 내줌으로써, 오늘날 철학자들에게 현실 삶의 구체적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러 찾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대학의 철학과에서 철학적 담론을 연구하는 활동으로 축소되어 버린 철학함의 현실에서, 21세기 한국의 철학자들이 치열한 경쟁세계에 살고 있는 일반인들을 향해, 과연 어떤 유형의 ‘치료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 힘있는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도 미소로 버텨야하는 생존경쟁이 눈앞에서 매일 벌어지는 ‘현실’에 대해 오랜 경험적 지식을 축적해온 사람들을 향해, 대학에서 철학책을 열심히 탐구한 철학자들은 그들에게 어떤 ‘현실적 치료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일까?

정신의 고통을 해소해주는 능력과 연관해서 철학치료사들은 기존의 여러 유형의 치료사들에 비해 어떤 장점을 지녔다고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것일까?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가 10만원을 내면, <평생>의 운세와 한 해 운세를 40분에 걸쳐 알려준다. 마음이 심란할 때 그 점쟁이에게서 듣는 ‘단 한마디 언어’가 한 개인의 삶에 평생 든든한 치료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음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단 한번만 만나도 수십년간 마음을 정리시켜주는 힘을 주는 점술가의 기법과 자원을 능가하는 에너지를 철학치료사는 준비할 수 있는가?

유능한 정신분석가를 만나면 50분씩 5회 예비상담에서, 수십년간 고통을 혼자 낑낑 짊어지고 온 내담자가, 어떤 심리적 원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수십년간 불편하고 억울하게 살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예리한 진단과 미래 처방책을 안내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정신분석 치료에 적합한 인격유형일 경우, 개인에 따라 30회-200회 정도의 분석상담으로, 만성적 고통증상을 발생시켜온 다중의 내부 원인들, 자신의 정서와 자아발달을 방해해온 숨겨진 원인들에 대해 ‘하나씩 소화해가며 자아에 통합해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능한 심리상담사를 만나면, 불과 10-20회 단기상담으로도 몇 년간 정신의 불편감을 덜 느끼면서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유능한 정신과의사를 만나면, 수십년간 분노와 파괴적 행동으로 가족과 주변에 피해를 주어온 사람이 저렴한 비용으로 불과 2주일~2달 이내에 자신에게 맞는 약물을 만나, 편안한 삶을 살게 된다.


예전에는 심리학이 철학의 한 분야였기에, 철학자는 인간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전문가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쉽게도 철학자는 인간 정신이 어떤 원인들로 인해 충동과 감정을 만성적(구조적)으로 통제하기 힘들어지는지에 대해 전문적인 배움도 지혜도 지니지 않은 상태다. 이런 사실을 이미 대중이 알고 있기 때문에, 고통에 시달리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철학자를 찾아가 상담치료를 요청하지 않는다.

이제 철학자가 과거의 철학자들이 행했던 실천철학을 복원하기 위해, ‘철학상담치료’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렇다면 철학치료사들은

현실계의 사람들과 밀접한 접속점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의 노력을 내담자들의 어떤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충하는게 좋을까?

철학자들은 정직한 마음을 당연하게 전제하고,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논리적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에, ‘징후 해석학’에 약하다는 걸 주목해야 한다. 가령, 고통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은 이미 여러 병인들이 복합적으로 표현된 결과물이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내담자가 표현한 언어를 표현된 내용 자체에 주목하여 명료하게 정리해주려는 태도는, 철학적 사고 훈련 차원에서는 유용하다. 그러나 ‘치료’차원에서는 내담자에게 결과적 이익을 주지 못한다. 가령 연극성성격자(Histrionic)가 표현한 말은 대부분 치료사의 마음을 유혹하기 위한 허구들로 구성된다. 자기애성격자는 자신의 가치를 손상시킬 말은 대부분 망각하고, 자신의 위신을 살리는 말들만 표현한다. 경계선성격자는 좋음과 나쁨이 혼합되어 있는 현실을, 전적으로 좋게 표현하거나 전적으로 나쁘게 표현한다. 편집증자는 자신에게 잘대해주는 소수의 인간 외의 모든 현실은 모두 부정적으로 지각해 비난하는 표현을 한다. 이처럼 내담자들의 언어는 현상학적 가치를 지니기보다, 무의식을 적절히 은폐하거나 변형시켜 드러내는 타협적 증상언어이다.

내담자들은 이런 자신의 정신 상태를 온전히 지각하지 못한 채, 자신에 관해 치료사가 자신보다 훨씬 잘 알고서, 자신의 고통증상을 해소해주기를 바란다.

내담자의 말을 정성스럽게 청취했는데, 그 말들이 여러 유형의 방어기제와 환상에 의해 왜곡된 말이었음을 자각하게 될 때, 철학치료사는 당황하게 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을 믿고서, 진실의 소리를 경청하여, 그의 말이 어떤 철학적 오류를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고, 내담자가 보지 못해온 새로운 사유와 인생관이 가능함을 전해주어, 사고의 영역을 새로이 확장시켜주는 활동은 원리적으로 매우 유익한 치료활동이다.

그런데 철학치료사의 치료욕구는 이성적 사고를 거부하는 ‘증상 언어’들을 연이어 접하는 순간 근본에서부터 흔들릴 수 있다. “어, 이게 뭐야. 저 사람은 분명 내게 진실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였는데, 믿었는데, 지금까지 죄다 꾸며낸 말이란 말이야?! 그런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어~.”


자아가 가장 발달한 유형인 히스테리는 ‘분석가가 좋아할 것 같은 내용을 미리 직관하여, 자신이 원하는 말이 아니라, 분석가가 원하는 말을 한다.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은, 아버지 환상을 일으키는 귄위있는 분석가로부터 ’매력적인 여자‘로 사랑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철학치료사는 어떤 방법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사고’활동을 유난히 좋아하는 강박신경증자는 대부분 인텔리(의사, 박사..)이다. 이들은 상담치료사가 자신이 모르는 비범한 지식이나 능력을 지닌다는 믿음을 견실히 유지시켜주지 못하면, 치료에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런데 철학치료사가 인텔리 내담자가 모르는 비범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가? 합리적 의식 차원에서 아무리 고상한 철학적 지식을 전해줄지라도...증상에 시달리는 인테리 강박증자의 경우 정신의 ‘치료 작용(therapeutic action)’은 고상한 합리적 지식에 의해선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세상에서 자신이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숙연해지는 순간은 오직 치료사가 ‘무의식에 숨겨진 소망과 진실’을 건드리는 찰나에만 일어난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내용을 담은, 억압된 정서를 건드리는 말’이어야, 강박신경증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자기 삶에 뭔가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욕망과 기대를 생겨나게 한다.

철학자는 내담자의 말을 대화를 위한 현상학적 자료로만 수용하기보다, 결과적 징후로 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 이런 눈을 지니려면, 무엇보다 ‘병인론’을 공부해야 한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책에 나와 있는 병인 개념들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을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좌우하는 무의식의 병인들을 정서와 인식이 연결된 상태로 소화해가는 정신분석적 병인론 공부가 필요하다.

정신분석에서는 인간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온갖 병인들을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소화한 그 만큼만, 그가 치료사의 기능을 수행해낼 수 있다고 본다. 치료사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병인들을 개인분석을 받는 과정에서 체험적으로 소화했기에, 분석가와 내담자는 만나는 순간부터 일차적 공감대를 지니게 된다. 즉 내담자는 자신보다 더 깊이 병을 직간적접으로 체험하여 병인들에 익숙한 어떤 존재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을 깊이 오랜 기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고통에 수십년간 시달려온 사람에게 과연 어떤 무게를 지닌 치유적 언어를 선물할 수 있는가?

철학치료사들이 철학의 실천화를 이루기 위해, 고대의 철학자들이 주목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심리적 관심을 회복하려면, 다음의 요소가 유익함을 줄 수 있다.


3. 정신분석 치료란?


첫째로, 치료사는 자신에게 삶의 불편감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에 대해 가능한 빠르게(5회 이내)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심리검사’를 통한 진단 활동이 이미 정교히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상태를 설문지를 통해 심리검사하는 관점은 철학의 특성에 그리 조화되지 않는다. 철학자의 독특한 힘은 보통사람이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고 규명되지 않은 ‘실재(X)의 성질’에 대해 물음을 던져, 그것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시도하는 것에 있다. 이런 철학활동은 이미 주어진 상식과 표준에 기초한 심리검사나 심리학적 지식보다 무의식에 뭍혀 있는 인간 삶을 꼬이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원인들에 대해 깊이 사고하고 접촉하는 것에 가깝다. 즉, 철학과 정신분석은 그 뿌리와 방법이 매우 유사하다.

감각적 쾌락과 외부현실에서 성공하는 것에 관심을 쏟은 그리스 시민들을 향해 소크라테스가 던진 ‘너 자신을 알라’ 는 말은 당대인의 정신이 수용하기 힘든 매우 거북한 메시지였다. 그것은 19세기 프로이드에 의해 “당신의 정신에서 지금까지 당신이 알지 못해온 부분(무의식)을 대면하라!”는 말로 현대화 된다. 보통사람의 눈에 지각되지 않는 무의식의 심연에서 요동치는 병인들을 하나하나 이성의 빛으로 끄집어 올려서 자아에 통합시키는 작업은, 철학치료사들이 주목해야할 거대 스케일의 철학치료 활동이다. 그런데 철학에 몰입해온 분들은 인간의 정서와 내면심리에 대해 낯설기 때문에, 무의식에 접속하는 방법, 무의식의 병인을 끄집어내는 방법을 서서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가야 한다.

두 번째는 정신분석의 치료비법인 ‘전이’, ‘저항’에 대한 해석능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환상을 지니고 산다. ‘전이’는 자신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리라 기대되는 치료자를 대면할 때, 내담자가 어떤 유형의 환상을 투사해 지각하는 것을 지칭한다. 치료사는 각 내담자의 전이 유형을 분별해내고, 그 전이환상이 치료과정과 치료작용에 얼마나 긍정적/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유념해가면서, 치료 작업을 수행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인간의 성격과 정신은 이미 사춘기에 대부분의 뼈대가 완성된다. 따라서 치료사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환상 작용인 전이를 활용하지 못하면, 어떤 고급의 철학적 언어에 의해서도 정신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전이환상의 유형과 강도를 읽어내어 치료에 활용하는 능력은, 내담자의 정신 상태에 대한 치료자의 예리한 진단능력, 병인론 이해능력과 비례한다.

정신의 변화를 일으키는 치료 작용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형성된 정신구조, 성격구조는, 기존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강력한 보수성을 지니기에, 치료에 대한 무의식적 ‘저항’이 일어나게 된다. 치료과정에서 이 저항들은 때로 매우 거칠게 표출되기 때문에, 저항의 원인과 대처방법을 숙지하지 못한 채, 철학적 문답법으로 내담자가 미처 자각하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주어 새로운 힘의 메시지를 제공하려는 철학치료사의 정성은 뜻밖의 좌절에 부딪치게 된다.

셋째는, 꿈에 대한 이해와, 꿈해석 능력의 활용이다. 꿈은 모든 인간이 경험하며, 내면세계의 상태를 생생하게 드너래 주는 보편적 징후학에 해당한다. 이 꿈의 의미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내담자의 내면상태를 내담자와 치료자가 생생한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소통하게 하는 핵심 치료무기를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해당한다. 어떤 심리 치료사가 꿈해석 능력이 있음은, 곧 그가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심층인식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에 접촉하는 방법과 그것과 소통하는 방법을 읽혔다는 것을 함축한다.

진단능력, 병인에 대한 이해와 해석능력, 전이와 저항에 대한 이해와 해석, 꿈해석 능력을 철학치료사가 익힌다면, 철학치료사는 현대인의 정신을 치료하는 무게있는 전문치료사를 등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