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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과 연관된 (꿈, 예술작품,  신화, 증상론, 병인론, 치료기법)  논문 및 특강 자료를  세상과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각 자료  독서 후 유익함이 있을 때  감상문 올리면  저자와 심층 대화가 열릴 수 있습니다.

<‘왕 살해’ 풍속의 의미와 ‘원시 사고’의 특성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

해안.
2022-03-02

이창재 (프로이드정신분석교육원)


 <목차>

 1. 서론 : 인류학과 정신분석학의 공통관심사 ‘왕 살해’

2. 프레이저 : 주술적 사고, 왕 살해

3. 프로이드 : 신경증적 사고, 아버지 살해

4. 융 : 상징적 사고, 부정적 관습ㆍ부정적 부모상 살해

5. 클라인, 자아심리학 : 편집증적ㆍ경계선적 사고, 나쁜 엄마 살해

6. 프로이드, 융, 현대정신분석 관점의 상호 대립적 보완 관계

7. 결론 : 다중 관점 해석의 유용성

  

서론 : 인류학과 정신분석학의 공통관심사 ‘왕 살해’

 

원시인류는 변화무쌍하고 공포스런 자연현상과 인간사에 대해 어떤 ‘심리적 생존술’로 대처해왔는가?

환경에 적응하는 정신적 생존술은 자아의 방어활동으로 발현되며, 방어 유형은 각 시대 특유의 ‘사고방식’에 반영된다. 그런데 원시인류의 사고방식은 현대인의 정신 심층에 잠재되어 있어 명료한 인식이 쉽지 않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려면, 고대인과 현대인의 서로 다른 정신 지평 사이를 매개하는 매개물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현대인은 고대인의 정신성에 접속하여 그들의 풍습과 사고방식에 공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매개물을 지니고 있는가?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무의식’에는 시간 범주와 시간성이 없다. 그로인해 무의식에서는 아이와 노인, 고대인의 심성과 현대인의 심성이 시간을 초월해 공존하며 지금여기에서 생생히 공명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출생 직후 아기의 정신성이 원시적 본능 상태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문명화 상태로 발달해가는 과정을 지난 백이십 년 간 탐구해왔다. 인류의 정신이 최초 형성되어 발달해간 과정의 흔적은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기에, 의식은 이것을 직접 인식할 수는 없다. 그곳에 접속하려면 꿈, 예술작품, 증상, 신화, 그리고 ‘특이한 풍속’ 등의 매개물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인류학자 프레이저가 ‘인류’의 본성을 드러내는 단서로 주목한 ‘왕살해 풍속’을 매개로, 그 풍속의 심리적 원인과 의미가 무엇이며, 그 풍속과 연관된 ‘원시 사고’의 특성이 어떠한지 정신분석의 관점과 개념으로 명료화할 것이다.

왕살해 풍속의 의미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프로이드와 융 학파에 의해 이미 시도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해석에는 각각의 한계가 있다. 필자는 원시적 사고의 특성과 왕 살해 풍속의 의미 해석에 대해 프로이드와 융이 미처 주목하지 못한 요소를, 현대정신분석 개념을 보충하여 명료화할 것이다. 이 작업이 잘 진행되면, 민속학ㆍ인류학 담론과 정신분석학 담론 사이를 소통시키는 다리가 생겨, 민속학 연구물이 일반인의 정신에 보다 생생히 공명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무의식’에서 우리모르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고대 인류의 사유원리와 근원 욕망에 보다 소화된 친숙함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학과 정신분석학이 함께 주목한 왕살해 풍속의 의미와 ‘원시 사고’의 특성에 대해, 인류학의 해석에 먼저 주목해보자.

 

2. 프레이저 : 주술적 사고, 왕 살해

 

원시 사고의 특성에 대한 본격적 연구문헌은 인류학자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시작한다. 그는 세계 각지에 분포된 원시 민족들의 풍습을 연구하면서, 다수의 민족이 집단의 왕을 신으로 숭배하다가, 그 대상이 병약해지면 즉시 살해하는 풍습을 지녔던 것에 주목한다. 수수께끼 같은 이 풍습이 세계 도처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되어온 원인과 의미가 규명되면, “인류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이 상당부분 풀릴 수 있다.

프레이저는 그 수수께끼를 푸는 하나의 단서를 ‘황금가지’에서 찾았다. 황금가지란 참나무에 기생하는 노란 빛을 내는 약용식물인 겨우살이를 지칭한다. 유럽에는 이방인이 그 “황금가지를 꺾으면, 신성한 참나무 숲 속 신전을 지키던 사제왕과 집단의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믿음이 문명화 이전 시기에 오랜 기간 존속했다. 그 믿음은 북유럽의 신화에서, 빛의 신 발데르가 강력한 생명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악한 신 로키가 꺾은 겨우살이 가지에 몸을 관통당해 죽었다는 신화소와 연관된다. 그런데 그 신화소에 대한 믿음이 원시인류에게 두루 전파되고 수용되어 오래 유지된 까닭은 무엇인가? 현대인에겐 불합리해 보이는 그 믿음이 원시인류의 마음에 확실한 진리로 공명된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프레이저는 이 의문을 풀려면 먼저 원시 인류가 지녔던 ‘주술적 사고’를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문명인의 과학적 사고와 대비되는 이 사고는 “자연 만물에 고유한 생명에너지를 지닌 정령(精靈, anima,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사상(animism)을 토대로 한다. 만물의 움직임을 정령의 힘과 연관해 지각했던 원시인류는 동물과 식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물, 바위, 대지, 태양, 별, 바다, 강, 숲, 바람 등에도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그들과 공존하며 조화롭게 소통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만물정령론이 주술적 사고와 결합하면, 자연 대상과 자연의 운행을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통제하고 싶어 하는 인간중심적인 세계관, 사고관이 형성된다. 주술은 인간이든 신이든 모든 존재가 만물을 통제하는 비인격적 힘에 복종한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그 힘은 의례와 주문에 따라 그것을 조정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즉, 고대 주술사는 심지어 최고신들마저도 자기 명령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권능을 지닌다.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면 거의 모두 유령이나 정령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신비한 주술의례로 대상을 통제하는 비결을 간직하고 있다.

이 주술적 사고의 핵심은 “유사는 유사를 낳는다”(유사성을 지닌 대상들끼리는 영혼이 서로 닮거나 감응, 소통, 옮겨간다)는 유사(모방)법칙과, “두 대상이 가까이 접촉하면 영혼이 서로 전염 된다”는 인접(접촉, 전염)법칙이다. 이 두 법칙은 인간을 포함해 자연의 정령들은 서로 감응한다는 의미로, ‘공감 주술(Sympathetic Magic)’이라 지칭된다.

인류의 의식표면 아래에는 이런 주술의 효능에 대한 믿음과 공감주술 체계가 모든 시대와 사회에서 동일하게 존재한다. 가령 원시인류는 어떤 유사성을 지닌 대상들끼리, 그리고 가까이 접촉한 대상들 사이에는 ‘주술 법칙(공감주술)’이 작동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주술사는 집단과 개인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상(자연의 신령들)에게 접속하여, ‘주술’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그 정령’에게 요구하고 영향 미칠 수 있는 신통력을 지닌 존재라고 믿었다. 가령, 가뭄이 계속 되어 비를 갈구할 때, 주술사가 빗물이 하늘 위에서 땅을 향해 쏟아지는 것과 ‘유사한 움직임’을 재현하면서 주문을 외면, 주술법칙에 의해 하늘에 있는 비의 정령이 감응하여 비를 내릴 것으로 생각했다.

원시인류는 또한 곰의 가죽을 몸에 걸치고(인접법칙), 곰의 행동을 흉내 내면(유사법칙)서 주문을 외며 소망을 빌면, 공감주술에 의해 무기력하던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곰처럼 (강인하고 영생하게) 변한다고 믿었다. 독수리의 신체 일부를 몸에 지닌 채 독수리 흉내를 내면 독수리가, 늑대 머리를 머리에 쓰고 늑대의 특성을 모방하면 인간의 심신이 늑대처럼 용맹스러워진다고 믿었다. 공감주술의 모방(유사)법칙과 접촉(인접)법칙을 활용하면 인간은 호랑이, 곰, 소, 새, 뱀 등등 자신이 닮고 싶은 대상으로 영혼이 변형될 수 있었다.

인접원칙에 근거한 감염주술의 예로, 머리카락, 손톱ㆍ탯줄 같이 신체에서 떨어져 나간 부분과 그 본인 사이에 주술적 공감관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들 수 있다. 내 신체의 일부를 함부로 방치하면 그것을 소유한 외부 정령에 의해 당사자의 영혼이 지배ㆍ손상당한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가까이 접촉(인접)했던 대상들 사이에는 정령의 기운이 상대 정령 속으로 침투되어 연결(결합)된 상태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집단의 정신성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원은 결코 함부로 이방인과 접촉하면 않되며, 왕의 경우 외부인과의 접촉을 엄격히 선별하는 타부를 지켜야 한다.

원시인류는 집단에 재난이 발생하면 두 주술법칙에 근거한 공감주술을 통해, 자연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믿어진 힘있는 정령(신령)과 소통하여 그의 힘을 빌리면, 인간이 해결하지 못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가령, 주술사(샤먼왕)의 도움을 매개로, 자연의 운행을 주제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신(령)이 기뻐할 제물을 바치고 소원을 빌면서 주문을 외면, 그것이 신령에게 감응되어 재난을 겪고 있는 인간의 문제를 신이 대신 해결해준다고 믿었다.

원시인류는 또한 “영혼이 죽음을 초래하지 않고도 몸을 잠시 떠나 있을 수 있으며”, 유사법칙에 의해 유사성을 지닌 대상들 사이엔 영혼들의 상호 옮겨감이 가능하다 생각했다. 이런 독특한 사고를 지녔기에, 원시인류는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가장 안전한 대상에게 ‘대신 맡기는’ 방법으로, 덧없이 병들어 죽을 것 같은 자신의 생명을 오래 보존하려는 생존전략을 꾀했다. (“덧없는 저의 생명을 영생하는 신께 맡깁니다. 부디 제 생명을 받아 주세요!”) 가령, 마법사는 자신의 생명을 아무도 모르는 비밀상자 속에 숨겨둠으로써, 그 상자가 외부의 적에게 발견되어 파괴되지 않는 한, 좀처럼 죽지 않는 존재가 된다. 프레이저가 주목한 ‘황금가지’(겨우살이)는 집단원들이 자기 생명을 보관해둔 바로 그 비밀스런 외부 대상에 해당한다. 그래서 황금가지가 외부인에 의해 꺾이는 것이, 집단생명의 수호자이자 주술사인 샤먼왕과 집단원의 목숨에 그토록 치명적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원시인류는 또한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건강 상태로 보호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죄, 나쁜 기운, 근심들을 ‘특정 대상에게 옮겨서 대신 떠맡게 하면’, 병과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고를 지녔다. 가령 환자의 얼굴을 특정 나무의 잎사귀로 때린 다음 그걸 내다버리면 병기운이 잎사귀로 옮겨갔기에 병이 치료된다. 연을 만들어 날리면, 재앙이 연에 옮겨가 저 멀리 떨어진 곳에로 실어 보내진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위에 언급된 두 주술 법칙에 근거한 주술적 사고와, 자신의 생명 또는 영혼을 외부의 가장 안전한 대상에게 맡길 수 있다고 믿고 맡기는 정신활동을 토대로, 고대 인류의 왕살해 풍습을 해석해보자. 그들은 왜 신처럼 경배하던 왕이 병약해지면 ‘곧바로 살해’한 것인가?

그 하나의 동기는 ‘집단원의 생명력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주술적 사고에 기인한다. 가령, 원시인류는 자신이 숭배하던 왕이 병약해지면, 모방(유사)법칙에 의해 힘있는 왕을 모방하며 살던 집단원들이 곧바로 병든 왕과 닮은 병든 상태로 변질될 것을 공포스러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집단의 중심에 병약한 존재가 위치하면, 인접(전염)법칙에 의해 그와 가까이 생활하는 집단원들에게 그의 병기운이 전염되고 전염된 자들이 또다른 전염원이 되어 급속도로 집단 전체에 퍼져나가 집단 전체가 멸망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명 규모의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의존하고 하나로 융합해 생활하던 원시인류는, 주술적 사고를 지녔기 때문에, 나쁜 기운이 빠르게 모방, 공감, 전염을 일으키는 사태를 가장 공포스러워 한 것이다. 그래서 위중한 병자나 타부를 어겨 집단의 영혼을 어지럽힌 자는, 이웃이 그를 닮거나 전염되지 않기 위해 먼 곳으로 ‘격리’(감금, 추방, 귀양)시키거나 곧바로 죽여 없앴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전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대신 맡겨둔’ 그 대상(왕)이 갑자기 죽으면, ‘유사(모방)법칙에 따라’ 그와 더불어 자신의 생명과 영혼도 소멸될까봐 공포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력한 생명력과 신통한 주술력을 지닌 대상은 신왕으로 경배하고, 그의 힘을 모방하여 영혼의 안정을 도모했기에 목숨 바쳐 그를 보호했던 것이다. 그러나 왕 자신이 타부를 어겨 외부 악령의 나쁜 에너지에 감염되거나 병약해졌다고 판단되면, 집단원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왕을 곧바로 살해하고 다른 힘있는 대상을 왕으로 추대하는 것을 최상의 생존술로 생각한 것이다. 힘 있는 ‘외부 대상(왕)에게 생명과 영혼을 맡기는’ 원시적 자기보호술과 주술적 사고가, ‘왕살해’ 풍습을 그토록 오랜 기간 유지하게 된 핵심 원인이었던 것이다.

 

3. 프로이드 : 1차과정, 신경증적 사고, 아버지 살해

 

프로이드는 프레이저가 정리한 두 주술원리인 유사(모방)원리와 인접(감염)원리를, 정신분석의 관점과 개념으로 재해석한다. 가령 그는 원시인류의 사고가 정신내부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의 ‘1차과정 사고(primary mental process)’ㆍ‘연상 작용의 두 원리(유사, 인접)’와 같다고 해석한다. 주술이란 관념연상이 사고를 지배하는 상태, 즉, 관념적 결합관계를 실제적 결합관계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원시인류는 자기 내면의 (주관적인) 관념질서를 (객관적인) 자연의 질서로 오인하여, 자기의 생각들에 대한 통제가 곧 외부 사물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 1차과정(주술적) 사고를 계속 작동되게 만드는 내적 추동력은 원시인류의 ‘억압된 소망’에 기인한다. 원시인류는 현실에서 좌절되어 충족하지 못한 욕구들을 주술적 사고와 함께 일어나는 환상(망상, 환각)으로 충족했던 것이다. 주술은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누리는 환각적 만족 경험과 유사하며, 주술적 사고는 좌절된 욕구에 대해 심리적 사고활동이 제공하는 만족 방법에 대한 과대평가의 산물이다. 이것은 사유와 실재 사이의 관계에서, 사유에 대한 과대평가이며, 현실에 대한 ‘생각’(심리적 현실)이 현실자체보다 더 중요하게 간주된다. 또한 관념들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들은, 당연히 현실 대상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고 전제된다.

프레이저는 인류의 정신이 ‘정령론(애니미즘) 시대~> 종교시대~> 과학시대’로 발전해 왔다고 구분했다. 이에 대해 프로이드는 이 구분 각각이 개인 정신의 발달 과정인 “자기애 단계~> (동성) 부모를 이상화하는 동성애 단계 ~> 외부세계를 향해 대상리비도를 집중하는 단계”와 대응한다고 해석한다. 자기애 단계의 핵심 특성은 “자신이 생각하면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유의 전능’이다. 즉, 주술 원리는 자기애적 사고의 특징인 ‘사유의 전능 원리’와 같다. 그래서 주술만 익히면, 우주도 신도 마음껏 통제할 수 있다고 자아중심(자아팽창)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주술적 사고에 담긴 ‘사유의 전능’ 특성은 현대의 신경증자, 특히 강박신경증자의 사고 특성과 유사하다. 가령 강박신경증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을 저주했을 경우, 그로인해 그가 죽게 될 것이며,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지게 된다고 생각한다.(“어릴 때 내가 언니를 몹시 미워했는데, 언니가 갑자기 사고로 죽었어요! 아. 저의 ‘나쁜 생각’ 때문에 죽었어요!”)

이런 신경증 중상의 발생을 결정짓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그에게 체험된 ‘심리적 현실’, 즉 ‘생각의 현실’이다. 신경증자는 ‘심리적 화폐’만이 통용되는 별난 ‘생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들에겐 집중적으로 사고된 것, 열정적으로 상상된 것만이 삶에 중요하고 영향력을 미치며, 그것들이 외부현실과 일치하느냐 않느냐는 부차적이다.

이처럼 마음에서 일어난 일들을 현실보다 과대평가하는 것은, 신경증자의 정서생활과 그것에서 파생된 증상에서 무제한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생각만을 통해’ 외부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점에서, 신경증자는 주술적 사고를 지닌 원시인류와 유사성을 지닌다.

프로이드의 눈에, 인류 최초의 세계관인 정령(精靈)주의는 ‘심리주의 세계관’이다. 원시인류는 투사가 강해, 주관적 지각과 객관적 인식의 구분이 모호했다. 즉, 자기 내부의 감정과 생각을 마치 객관적 외부현실과 동일한 것인 양 지각했다. 원시인류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정령론, 주술의례, 민속, 신화르 통해 외부로 옮겨놓고는, 그것을 (객관적 진실인 양) 발견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따라서 민속, 신화의 심리적 발생과정과 의미를 해석하면, 원시인류의 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정령주의를 배경으로 한 주술행위는 정신의 법칙들을 외부 사물들에 강제로 적용시키려는 의도를 지닌다. 신들과 악령들은 원시인의 내적 감정을 외부로 투사하여 생성된 ‘심리적 대상’들이다. 원시인류는 자신의 욕동과 감정의 여러 요소들을 환상작용으로 ‘인격화’하고, 투사작용에 의해 그것들을 외부세계에 위치시켜(외재화), 자기의 내면상태들을 자기 밖에서 다시 발견한다. ‘투사’는 인간의 불안과 심리적 부담을 경감시키는 이점을 지닌다. 가령 편집증적 정신구조를 지닌 인간은 정신을 ‘전적으로 좋은 영역’과 ‘전적으로 나쁜’ 영역으로 분리하고 각각을 외부세계로 투사함으로써, 내적 긴장을 해소한다.

 

프로이드는 고대 인류의 ‘왕살해, 토템(신) 살해’ 픙습에서 ‘살해당하는 왕ㆍ토템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프레이저가 부각시킨 “원시인류가 자신의 영혼을 그곳에 옮겨서 맡겨두는 안전하고 신성한 토템”과, 토템에 연관된 원시인류의 타부 내용들을 주목한다.

원시인류에게 토템이란 집단원의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신성한 대상, 생명을 위협하는 온갖 위험들에서 벗어나 영혼이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를 의미했다. 원시인류는 자기 영혼과 생명을 그 토템(신)에게 맡기면, 자신이 질병과 외부의 적들로부터 재난을 겪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토템을 보호하기 위한 타부규칙들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데 원시인류는 왜 자신이 목숨 걸고 지키고 떠받들던 그 토템 신을, 연중 특정 기간에는 살해하는 의례를 행한 것인가? 이 상반되는 태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서양의 고대신화에는 경배 받다가 ‘살해당하는 왕, 신, 영웅’(오시리스, 발데르, 아도니스, 디오니소스, 오르페우스, 예수)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살해당함의 심리적 상징의미는 무엇인가?

프로이드의 눈에, 토템과 연관된 근본 타부는 “토템동물을 살해하거나 먹지 마라,” “같은 토템을 섬기는 구성원 사이에서는 성관계나 결혼하지 마라”이다. 그는 이 두 타부가 원시인류의 정신에서 절대적 힘을 지녔으며, 이것을 어기면 심리적ㆍ사회적으로 죽음의 벌을 면치 못했던 현상의 심리적 원인을 탐색한다. 도대체 원시인류의 정신을 지배하던 이 두 타부규칙에서, 그들이 자신의 영혼을 맡겼던 신성한 대상인 동시에 살해하고 먹은 그 토템 대상의 심리적 정체는 무엇이며, 이 상반되는 행위의 심리적 의미는 무엇인가?

정신분석의 눈으로 볼 때, 원시인류의 정신에선 ‘투사’ 기제가 많이 작동되었기에, 토템신은 원시인류의 내면 감정과 생각이 투사된 형성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원시인류가 신으로 떠받들며 최고의 권위를 부여했을 그 원대상은 누구인가? 그리고 고대 인류는 왜 그토록 강렬한 공포와 죄책감을 가지고 그 토템을 절대적 신으로 섬겨 왔고, 타부규칙을 엄격히 준수해온 것인가? 대체 원시인류가 죽이고 싶었거나 죽였던 그 대상이 누구였기에, ‘토템 살해에 대해 그토록 강력한 금기가 설정되고 처벌이 행해져 수 만 년 간 유지된 것인가?

 

문명사회에서 엄격한 금기의식을 지닌 대표적 인격유형은 강한 억압 방어와 경직된 초자아와 초자아불안ㆍ죄책감에 시달리는 강박신경증자이다. 그리고 많은 정신분석 임상 자료에 의해 드러난 강박신경증자가 억압하는 ‘무의식의 그것’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살해욕구ㆍ살해환상ㆍ이성의 부모에 대한 성 환상이다. 정신분석이 임상에서 발견해낸 ‘무의식’에 관한 이 자료를 참조한다면, ‘토템 살해’와 동일 토템 씨족 간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두 타부규칙과 연관된, ‘토템’의 심리적 의미는 ‘아버지’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수 천 년에 걸쳐 왕과 신을 경배하다가 왕과 신이 무능하고 무기력하다고 지각되는 순간 즉시 살해했던 풍습행위의 심리적 원인은 무엇인가? 프로이드는 그것을 원시인류의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던, 왕(씨족장)의 자리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최초아버지에 대한 애증 양가감정과, 오이디푸스 욕구 때문으로 해석한다. 셈족, 라틴족에게는 ‘신을 제물로 삼는 행사’가 거행되었는데, 그 신은 아들들에 의해 살해당한 원아버지를 상징한다. ‘신살해’ 의례가 매년 공적으로 엄숙히 거행된 심리적 이유는, 실제 일어났던 아버지 살해 행동을 상기시켜, ‘원죄’에 대한 죄책감을 활성화해, 참회하고 타부규칙을 엄격히 준수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죽은 아버지는 자신의 살해행위를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아들들에 의해 극도로 이상화되어 ‘불멸성을 지닌 위대한 신’으로 추앙된다. 그로인해 아버지에 대해 ‘좋았던 기억과 두려운 감정이 죽은 아버지에게 투사되어 형성된 불멸의 신 표상이 그 민족의 정신내면에 자리 잡아, 권력을 휘두르던 생시의 아버지보다 죽은 아버지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원시인류가 자신의 영혼을 맡기던 신성한 외부대상은 원래는 원시 씨족사회에서 절대 권력을 지녔던 씨족장(원아버지, 샤먼왕)이었다. 그런데 최초 ‘아버지 살해(왕 살해)’가 행해진 이후로 죽은 아버지는 ‘토템신’이 되어 ‘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영원히 살아계신 좋은 아버지’의 기억표상들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토템(아버지, 신, 왕, 신성한 동식물) 살해를 금지하는 타부의식이 매우 엄격했던 것은, 아들들에 의한 ‘아버지 살해’ 욕구와 행위 흔적이 정신내부에 억압되어 계속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이저가 주목한 왕살해, 신살해 풍습의 심리적 뿌리를, 프로이드는 억압된 오이디푸스 욕구와 연관된 무의식의 ‘아버지 살해 소망충족’으로 해석한 것이다.

 

5. 융 : 상징적 사고, 부정적 관습ㆍ부정적 부모상 살해


프로이드는 왕살해 풍습이 억압된 아버지 살해 욕망을 ‘변장’시킨 결과물로 보았다. 이에 비해 융은 풍속과 신화가 개인무의식을 변장시킨 것이 아니라, 초개인적인 인류무의식을 상징화한 것으로 해석했다. 고대인은 고유의 상징적 사고와 상징적 풍속을 지녔던 존재다. 고대 풍속과 신화의 상징의미는 집단정신에 융합해 지내던 원시인류에겐 직관적으로 지각되었다. 그런데 과학적 의미체계를 내면화하고 개인주의 가치관을 지닌 현대인의 정신은 고대인의 상징체계와 단절되어 있다. 그로인해 옛 풍속의 의미를 연구한 민속학ㆍ인류학 지식의 도움을 통해야 비로소 ‘고대인의 사고’와 왕살해 풍속의 상징의미에 일부 접속할 수 있다.

융은 ‘원시 사고’가 ‘꿈사고’ㆍ예술적 사고와 유사하다는 프로이드의 입장에 동조한다. 그러나 고대인의 사고가 ‘자기애 단계’에 고착된 미성숙한 유아적 사고이며 병리적 사고라는 프로이드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한다. 가령 고대 인류의 신화에 표현된 사고는 고유의 성숙한 목적을 지닌다. 신화에는 안전하지 않은 원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현실적 목적’과, 정신의 균형과 전체성(본질)을 실현하려는 인류의 ‘선천적 목적’이 담겨있다. 즉 자아의 현실적응 목적과 ‘자기’(집단무의식)의 자율적 자기실현(개성화) 목적이 담겨있다. 따라서 현대의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해, 고대인의 상징적 사고를 미개한 병리적 사고로 판단해선 안 된다.

신경증자는 오이디푸스기(남근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겪는 불가피한 상처와 갈등에 고착된 자다. 따라서 신경증자의 중심 소망은 금지되어 억압된 오이디푸스 욕구의 적절한 해소이다. 그런데 현대 신경증자의 이런 문제와 소망은, 고대인이 지녔던 핵심 욕구나 심리상태와 매우 다르다. 가령 신화 속 인물이 지닌 문제, 욕구, 불안(재난)은 현대 신경증자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신경증자의 정신은 억압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관된 개인무의식에 휘둘릴 뿐, 원시인류로부터 유전된 ‘집단무의식’에 휘둘리진 않는다.

원시인류의 정신 특성을 구지 현대인의 인격유형들과 비교한다면, 신경증자가 아닌 정신분열증자와 유사하다. 분열증자의 내면세계에서는 원시인류가 현실에서 경험했던 주요 사건들과 괴물들, 신과 신의 목소리가 환상과 환각으로 재현된다. 그의 약한 자아가 집단무의식의 강력한 힘에 함입되어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시인과 분열증자의 일차 관심은 영유아기의 안전욕구, 전적으로 신뢰할만한 보호자와의 융합 관계 및 그것의 박탈과 연관된 원초 불안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성욕동과 성쾌락은 결코 일차적 욕구나 소망이 아니다. 그들은 멸절-박해-유기불안, 안전과 공허, 공포 문제로 고통 받는다. 따라서 이 결핍을 보충하고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화를 창조하고,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을 내사하며 신화를 경배해온 것이다.

정신분열증자의 사고내용과 원시인류의 사고내용이 일치함은 민속학 자료와 임상자료의 비교를 통해 확인된다. 그러나 원시인과 분열증자는 다음의 점에서 매우 다르다. 분열증자는 ‘현대’라는 독특한 문화와 사회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며, 현실과의 모든 관계에서 철수한 채, 원시적 환상세계 속으로 퇴행해 고착하는 문제에 함입된 자다. 이에 비해 원시인은 상징적 사고와 주술적 사고를 통해, 당대 현실에서 나타난 문제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현실 적응’과 ‘정신의 안정’이라는 두 유형의 목적을 추구하는 삶을 산 것이다.

프로이드는 이런 점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원시인류가 생명에너지를 비롯해 다양한 의미를 지닌 ‘리비도’를 쾌락욕구와 연관된 성욕동으로만 좁게 해석했다. 그리고 원시인류의 중심문제와 타부의식을, 前오이디푸스기 차원에서 조명하지 못한 채, 대부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관시킨 면에서 해석관점의 한계를 지닌다.

옛 풍속과 신화에는 각 민족이 ‘정신의 균형과 발달’을 위해 집단의식에 대면시켜서 통합해야 했거나 미래에 실현해야할 원형들이 상징화되어 있다. 가령 신화에 등장한 ‘근친살해’와 ‘근친상간’은 금지된 오이디푸스 욕구의 충족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 등장한 영웅을 매개로 집단정신의 내면에서 분열(단절)되어 있던 부성성과 모성성, 기성세대와 신세대, 남성성과 여성성(아니마-아니무스)에 자아의식이 접촉하여, 이들을 새로운 차원으로 통합해내는 상징행위이다.

따라서 신화 속 ‘왕살해’ㆍ‘아버지 살해’는 개인적 소망의 충족 차원이 아니라, 초개인적 목적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 가령 집단내부의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생명력(리비도)의 소통이 막혀있거나 단절되면, 집단의 삶이 침체되거나 병이 생기는 위기 상태에 처한다. 이 국면은 영웅에 의한 ‘왕 살해ㆍ아버지 살해’, 그리고 부정적 모성성의 상징인 ‘괴물(뱀, 용, 메두사) 살해’를 통해서야 전환되고, 집단의 생명력과 정신성이 고양된다.

신화 속 ‘괴물 살해’가 주로 부정적 모성성과의 대결을 의미한다면, ‘왕 살해’는 부정적 아버지성과의 대결을 의미한다. 모성은 본능의 힘을 부성은 문화의 힘을 대변한다. 따라서 왕 살해는 변화된 현실 환경에 부적합해진 낡은 통치체계, 제도, 권위, 규범, 가치, 이념과의 대결을 상징한다. 살해되는 왕은 옛 것을 대표하고, 그와 싸우는 영웅은 새로운 것을 대표한다.

 

5. 클라인, 자아심리학 : 편집증적ㆍ경계선적 사고, ‘나쁜 엄마’ 살해

 

프로이드는 원시인류의 억압된 소망과 환상이 원초(1차) 사고과정을 거쳐 자연대상에게 투사된 결과로, ‘자연의 인격화(정령론)’ 현상과 신적 대상들이 생성된 것이라 해석했다. 또한 원시인의 리비도가 자기애 단계에 고착된 결과로, 유사(모방) 원리를 매개로, 자신의 생각이 곧 외부현실과 동일한 것인 양 착각하는 ‘마술적(유아적) 사고’를 지녔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그는 주술적 사고를 구성하는 ‘인접(전염)원리’가 어떤 심리기제와 연관되는지에 대해서는 명료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프로이드가 미처 해명하지 못한 그 원시적 정신작용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상화하던 왕이 병들거나 노쇠하면, 원시인류가 불안해져 기존 왕을 즉각 살해하고 강한 생명력을 지닌 왕으로 대체했던 현상의 심리적 이유는 무엇인가? 프레이저는 그것이 원시 인류가 ‘집단의 생명력을 안전하게 유지(보호)하기 위함’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프로이드는 이를 억압된 오이디푸스 욕구를 지닌 젊은 세대가 탐욕스런 폭군으로 느껴진 아버지(왕)의 자리를 차지하고픈 무의식적 소망의 외적 행동화로 해석했다. 그런데 프레이저와 프로이드의 설명은 뭔가가 부족하다.

왕의 영혼과 신체가 병약해지면 집단 전체가 ‘금세 불안해져’ 곧바로 새로운 강한 왕으로 대체하는 행동이 전 세계 민족에게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원인은, ‘집단생명력의 안전한 보호’ 관념이나, 억압되어 감추어진 오이디푸스 욕구와 일차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프레이저는 “감염주술이 인접성에 따른 관념들의 결합에, 즉 한 번 접촉한 사물은 항상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오류에 근거 한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모방주술과 감염주술이 “어떤 비밀스런 공감작용을 통해, 보이지 않지만 상호 전달되는 정령의 기운 같은 것을 통해, 멀리 떨어진 사물과 상호작용한다고 가정한다.”고 생각했다. 앞에 인용한 구절은 프레이저가 원시인류의 사고 특성을 인류학의 관점으로 개념화한 것이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의 눈으로 보면, 위 구절에는 프레이저의 연구물이 지닌 시대적 한계가 담겨있다. 즉 그는 원시인류의 정신기능과 정신성을 정신분석의 눈으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원시인류의 주술적 사고를 단순히 ‘미개한 정신성에 기인한 오류’로 해석한 것이다. 만약 그가 정신분석 지식을 습득했다면, 그는 자신이 연구했던 원시인류의 사고 양태가, 원시적 방어기제에 기인한 당대의 외부대상 관계에 대한 생생한 ‘경험적 지식’을 반영한 것임을 성찰했을 것이다. 가령, “한번 접촉한 사물은, 항상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인접(감염)법칙은 비과학적인 오류추리이기보다, 투사적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와 내사적동일시(introjective identification) 작용에 기인한 임상적 현상(경험적 현실)과 일치하는 표현이다.

오늘날에도 원시적 정신성을 지닌 사람에게는 중요 외부대상을 접촉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투사(projection), 투사적동일시, 내사(introjection), 내사적동일시’ 작용이 왕성히 일어난다. 그 작용으로 인해 가까이 접촉한 두 대상이 지닌 내적상태와 기운은 서로에게 분출되고 각자의 정신내부로 흡수되어 내적대상 내지 내적 구성요소로 남는다. 접촉한 그 대상은 다른 대상에게 영혼의 기운(‘자기’와 욕동의 미세 조각’)을 흩뿌리기 때문에, 그것이 정신내부에 들어와 어떤 기운과 기분으로 계속 남아 영향을 미침을 생생히 경험하게 된다.

즉 문명화된 문자언어를 사용하기 이전 시대의 원시인류에겐 일종의 영적 기운ㆍ본능욕동(생명에너지)ㆍ감정의 일부분을 미세하게 쪼개서 외부대상에게 쏘아 집어넣는 원시적(비언어적) 소통수단이자 방어기제인 ‘투사적동일시’가 강하게 작동된 것이다. 그들은 이 심리활동을 사용해 타자와 소통하거나 타자를 자신의 의도대로 조정하려 했기에, 원시인류끼리는 가까이 접촉하는 순간 늘 모종의 ‘공감 주술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자기 영혼과 본능욕동의 상당부분을 투사적동일시로 집어넣어 맡겨둔 각별히 중요한 외부대상일 경우, 설령 그가 멀리 떨어져있을지라도 어떤 위태로운 상태에 처하면, 그가 내 영혼의 주요 부분을 담고 있는 ‘또 다른 나’이기에, 나에게 그의 현재 심신상태가 함께 공명된다.(“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쑤시네. 혹시 그 분에게 나쁜 일이 생긴 것 아닌가!”) 현대정신분석학이 제공한 원시적 방어기제의 특성과 원시적 정신성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원시인류의 모방주술과 감염(접촉)주술이, 비과학적인 ‘사유 전능화의 오류’ 추론이 아니라, 개체와 개체 사이의 구체적인 심리 경험에 근거한 현실 지각의 반영임을 알게 된다.

 

프로이드가 초점화한 오이디푸스 욕구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아들이 어머니에 애착하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압력을 가하는 순간에 강력히 발동된다. 그런데 기존 왕이 병약해진 상황은, 그런 상황과 다르다. 아버지가 병약해진 상황은, 그동안 억압되었던 오이디푸스 욕구가 자동적으로 활성화되어 회귀하는 최적의 보편상황으로 등식화하기 어렵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주목할 점은, 왕이 병약해지면, 원시 집단 전체가 ‘금세 불안해지는’ 현상이다. 만약 오이디푸스 욕구가 제1욕구였다면, 왕(아버지)의 병약해짐은 원시인류에게 억압상태에서 벗어날지 모른다는 기대와 안도감과 해방감을 주었을 것이다.

집단 전체가 금세 견딜 수 없이 불안해졌던 현상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현대인과 달리 고대인의 정신에서 원시 방어기제인 내사ㆍ내사적동일시(원초적 동일시) 작용이 왕성했기 때문이다. 아기는 젖가슴을 본능적으로 빨고 젖을 삼키듯 절대보호자인 엄마의 정서와 심신상태도 원초적으로 흡입(내사)하여 보호자와 융합한다. 그 때 아기는 자신과 엄마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존재라고 지각한다. 발달심리학자와 정신분석가는 생후 최초시기의 심리상태와 최초 인류(원시인)의 심리상태가 유사할 것으로 추정한다. 즉 고대 인류 역시 유아처럼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맡아서 보호해주는 대상(왕, 신)의 모든 것을 ‘전적인 좋음’으로 간주해 강렬히 흡입(내사)하고, 왕(신)의 생리심리 상태에 금세 동화(융합, 동일시)되어 생활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까이 있는 대상(보호자, 왕)을 내사하여 그와 동일시하는 정신활동은 곧 인접원리(“가까이 있으면 전염된다.”)를 반영하는 심리기제이다. 힘 있고 존귀해 보이는 대상에 다가가서 그를 동일시하여 심신의 안정을 꾀하는 것은, 불안정한 원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대 인류가 구조화시킨 최선의 심리적 생존술이었다.

그렇다면, 집단의 생명을 맡아서 안전히 관리해주던 강력한 왕이 갑자기 병약해져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 처하면, 그에게 의존해 살던 집단원의 정신성은 어찌 되는가? ‘인접(전염)원리’인 내사와 내사적동일시 작용을 통해 왕의 기운을 흡수하여, 왕으로부터 얻는 그 에너지로 살던 원시집단에게, 왕의 병듦은 어떻게 지각되는가?

왕의 병듦은 왕을 동일시해온 집단원의 심신을 순식간에 병 상태로 오염시키는 섬뜩한 위기 상황으로 지각된다. 그래서 순식간에 극도의 멸절(죽음)불안에 시달리게 되는 그들은 마음이 잠시도 평안할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의 원천에서 불안의 원천으로 변질된 기존 왕을 대신해줄 강력한 새 왕이 구세주처럼 나타나주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원시인류는 정신을 둘 또는 여럿으로 ‘분리(분열)’시켜서, 감당하기 힘든 부정적인 자기표상ㆍ대상표상과 고통감정을 정신의 특정 부분에로 몰아넣고 심리내적으로(intra-psychic) 봉쇄한다. 그리고 기분 나쁜 경험지각과 정서(공포, 분노, 수치)로 가득찬 정신의 그 나쁜 부분을 낯선 외부대상에게 (배설하듯이) 쏟아 넣는다.(투사, 투사적동일시) 그 결과로 ‘그 대상’은 접촉하면 자신이 오염되어 위험해질 ‘전적으로 나쁜 대상’(괴물)으로 지각된다. 그래서 공포와 파괴욕동에 들떠 그 대상을 즉시 살해한 것이다. 그리고 분열된 구조의 정신에서 (삶욕동에 접촉된) 좋은 부분은 힘있는 안전한 대상(왕, 신, 토템)에게 (생명을 바치듯이) ’집어넣어 맡기고‘, 좋게 지각되는 그 대상을 가까이서 내사(introject)하며 살았다.

 

클라인학파와 자아심리학자는 임상장면의 경계선인격자에게서 이런 원시적 정신현상과 정신작용이 빈번히 일어나고 강하게 작동됨을 주목하였다. 원시방어기제들 중에서 특히 ‘분열’(splitting)과 ‘투사적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작용을 충분히 이해해야 우리는 비로소 프레이저가 『황금가지』에서 주목한 ‘왕살해 수수께끼’를 온전히 풀 수 있다.

왕이 병약해졌을 때 목숨 바쳐 수호하고 경배하던 왕을 즉시 살해하고 힘있는 새 왕으로 대체했던 풍습의 심리적 의미를 이해하는 열쇠를, 프레이저는 ‘외재하는 영혼’으로 묘사했다. 즉, 원시인류는 자기의 영혼과 생명을 힘있고 영생한다고 믿어진 외부대상(왕, 신, 비밀대상)’ 속에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투사적동일시 작용을 통해 맡겼던 것이다. 즉, 나의 생명과 영혼은 나보다 더 안전한 외부의 ‘그 분’ 속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과 영혼을 보관하고 있는 왕이, 외부의 악령이 쏜 나쁜 기운(투사적동일시)에 습격당해 심신이 병약해지거나 변질될 위험에 처하면, 왕에게 맡겨둔 자신의 영혼과 생명 역시 왕과 동일 상태로 전락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왕의 영혼과 생명이 외부 악령에서 정복당하면, 왕에게 생명을 맡기고 그와 융합해온 집단원 모두의 삶도 동일한 운명을 겪게 된다!

 

‘분열’과 투사, 투사적동일시는 자아기능이 최초 작동되는 유아기에는 정상적 방어 작용이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해서 계속 작동되면 대상(양육자)이 지닌 좋은 요소와 나쁜 요소를 전체적으로 인지하여 통합하는 자아기능이 미발달하게 된다. 그 결과로 대상이 ‘전적으로 좋은 대상표상’과 ‘전적으로 나쁜 대상표상’으로 각기 다르게 지각된다. 서로 모순되는 이 두 대상표상을 개체의 자아가 통합하지 못할 경우, 경계선인격자처럼 대상에 대해 ‘모순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즉 대상이 좋은 대상으로 지각될 때는 극도로 이상화하여 경배하는 태도를 취하다가, 자신을 헤치는 나쁜 대상으로 지각될 때는 평가절하여 극도의 적대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정신분석 임상에서 경계선자는 분석가를 하루는 좋은 대상으로 지각해 공경하고, 다음날은 나쁜 대상으로 지각해 적대적 태도를 취한다. 모순성을 내포한 경계선자의 이런 태도는, 심리내적(intra-psychic) ‘분열’과 투사 작용으로 인해 생성된 대립적 대상표상들이, 자아에 의해 통합되지 못한 채 심리외적 대인관계(inter-personal)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원시인류가 ‘왕’을 구세주로 경배하다가 왕이 쇠약해지자 ‘살해’한 행위는, 경계선인격자가 임상에서 드러내는 자기 모순적 태도와 많은 공통성을 지닌다. 즉, 원시인류의 내면에서 작동되는 ‘분열’과 투사 기제로 인해 힘있을 때의 왕(전적으로 좋은 대상)과 쇠약해진 왕(전적으로 나쁜대상)은, 동일한 왕이 아니라 전혀 다른 별개의 대상으로 지각(환상화)된 것이다.

대상의 좋은 요소와 나쁜 요소에 대해 두루 통합한 표상을 지닌 인간은, 대상에 대해 변함없는 표상(‘대상항상성, object constancy)을 지니게 된다. 즉, 대상(왕, 보호자)의 상태가 좋다가 나쁘게 변할 지라도, 불안해지지 않고 대상에 대한 안정된 표상을 내면에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경계선인격의 자아는 대상항상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환경이 급변하거나, 자신이 의존하던 이상적 대상이 부정적 특성을 드러내면, ’외부대상의 상태에 영혼이 즉시 감염되어‘ 곧바로 나쁜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원시인류의 정신 역시 대상항상성이 결여되어,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된다. 그래서 집단지도자(왕)의 심신 상태를 좋게 만들고자 온갖 헌신을 하다가, 왕이 치명적으로 쇠약해지면, 그 상태를 못 견뎌 즉시 ’살해‘하고 힘있는 새 지도자를 추대한 것으로 해석된다.

 

분열, 투사적동일시, 내사적동일시는 원시인류와 유아, 경계선인격자뿐만 아니라, 보통사람의 내면에서도 상황에 따라 많고 적게 작동된다. 프로이드는 이 사실을 주목하지 못했다. 그로인해 ‘억압’ 기제를 사용하는 신경증자의 내면세계만 주로 분석했던 프로이드는 ‘왕살해’ 풍습과 ‘원시인의 사고’를 (강박)신경증자가 지닌 심리특성의 반영물로만 이해했다. 그에게 ‘왕살해’ 풍습은 그것을 창조한 저자(민족)의 내면에 ’억압‘되어온 오이디푸기의 아버지살해 소망이,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타협과정을 거쳐 ’왕살해‘로 변형(전치)된 심리적 생성물로 이해된다.

프로이드는 신경증자의 무의식만 주목했기에, 원시인류의 주술적 사고와 왕을 자기목숨처럼 경배하고 수호하다가 그가 무기력해지면 즉시 살해하는 풍습의 심리적 원인을 전체적으로 규명하기 어려웠다. 프레이저가 부각시킨 왕살해 풍습과 주술적 사고를, 현대인의 내면에서도 작동하는 (영유아기의) ‘원시적 방어기제’들과 연관시켜 세세히 음미하거나 해석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발견과 해석은 프로이드 이후에 출현한 자아심리학과 클라인학파가, 원시적 심성을 지닌 비신경증(정신증, 경계선인격) 환자들에 대한 정신분석 작업에서 얻어진 자료들을 종합하고 재구성하여, 인류의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치료이론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낸 이후에야 가능하다. 신화 해석에 프로이드 이론과 더불어 현대정신분석학 관점의 보충이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을 가장 힘 있고 안전한 대상에게 ‘대신 맡기고’, 자신의 나쁜 기운은 희생양에게 ‘대신 떠넘겨’ 처리하는 원시인류의 심리적 생존술은, 현대정신분석학이 주목해온 원시적 방어(분열, 투사, 투사적동일시, 내사, 내사적동일시, 원시적이상화ㆍ평가절하)에 해당한다. 오늘날 경계선인격에게 왕성히 작동되는 이 원초 방어기제를 미처 이해하지 못했기에, 프레이저는 주술적 사고를 단지 ‘미개한 비과학적 오류’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프레이저가 현대정신분석을 알았다면, 내면상태를 외부로 투사ㆍ투사적동일시하는 활동의 과도함으로 인해 자연 만물이 자신과 유사한 영혼을 지닌 대상으로 지각되었고(인격화), ‘원시적 이상화’ 작용으로 인해 인간의 생존을 좌우하는 자연의 힘들과 주술을 행하는 샤먼왕이 ‘전능한 신’으로 지각(신격화)된 것임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 살고 싶어서, 안전하다 여겨지는 특정 자연대상(겨우살이, 토템동물)이나 왕에게 자기 정신과 생명의 주요 부분을 ‘투사적동일시’로 집어넣어 맡기었고, 나의 ‘좋은 부분’이 투사되어 ‘전적으로 좋은 대상’(신)으로 지각되는 그 왕을 내사(흡입)하고 동일시(융합)함으로써, 자신을 신과 닮은 대단한 존재로 자부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태롭고 열악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원시인류의 정신이 이루어낸 현실적응적인 심리적 생존술이었던 것이다.

 

이런 원시인류의 방어기제와 주술적 사고는 오늘날에는 불안정한 정신구조를 지닌 경계선인격자에게서 유사하게 재연된다. 경계선인격자는 대상이 드러내는 상반되는(좋은, 나쁜) 모습들에 대한 자아의 통합ㆍ종합기능이 미성숙하며, 스트레스를 감당해내는 자아능력이 약하다. 그래서 어떤 대상을 전적으로 이상화하며 경배하다가도 그 대상이 부정적 특성을 드러내면 , 엄마로부터의 분리(유기) 불안과 엄마에게 삼켜지는 불안 사이에서 시달리는 3세 아이처럼, 정신이 갑자기 몹시 불안해진다. 경계선인격은 대상항상성(object constancy)이 결여되어 전적으로 좋게 지각되어 믿고 의존하던 그 대상이 어느 순간 무기력해지면 자신을 손상시키는 나쁜 대상으로 지각된다. 그로인해 극도로 실망하며 관계를 단절해 철수하거나, 자신을 불안케 만든 그 대상에게 격노하고는 새로운 힘있는 대상을 찾는 행동을 반복한다.

이런 모습은 원시인류가 왕, 신, 토템을 열렬히 숭배하다가 냉혹하게 살해한 과거시대의 행동 패턴과 유사하므로, 원시인류가 대부분 경계선인격구조를 지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생명보존이 매일 위태롭던 원시 환경에서는, 힘있는 보호자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해하는 경계선인격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현실에 적응하는 가장 적절한 정신구조였을 수 있다.

전 세계 민족들에게 오랜 세월 존속된 왕살해ㆍ토템살해 풍습의 수수께끼는, 원시적 사고의 기능과 특성을 현대정신분석이 규명해낸 원시방어기제 작용과 연관해 해석해냄으로써 비로소 온전히 풀어진다. 프레이저가 주목하여 정리한 원시인류의 주술적 사고를 프로이드의 신경증적 사고보다 자아심리학과 클라인이 임상활동에서 규명해낸 경계선인격의 정신기제로 풀어내어 설명할 경우, 현대의 우리는 원시 풍습의 의미를 보다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6. 프로이드, 융, 현대정신분석 관점의 상호 대립적 보완 관계

 

융에 의하면 현대인의 정신은 과학적 합리주의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에, 원시심성과 신화적 사고와 단절되어 고대인의 상징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원시심성은 말소된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정신심연에 위치한 집단무의식에 여전히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현대인도 민족의 신화와 자신의 꿈을 매개로 자기 내부에서 역동하는 집단무의식에 관심을 기울이면, 원시인류의 정신성과 원시 사고에 접촉하여, 고대 풍속의 상징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프로이드의 눈으로 보면, 개인의 경험은 억압되어 망각된 무의식과, 의식에 지각된 최근의 자극이 혼합되어 구성된다. 가령 무의식의 본능욕동들은 내부압력을 행사하여 현재의 우리로 하여금 고대 인류가 겪었던 경험을 암암리에 반복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 경험에는 이미 선조(원시인류)의 정신성과 체험이 반영된 요소가 들어있는 것이다.

프로이드, 융, 클라인, 자아심리학 각각은 꿈사고와 예술가의 사고, 아동과 신경증자의 사고, 유아와 분열증ㆍ경계선인격의 사고 등을 통해 현재 우리의 정신 밑바닥에서 역동하고 있는 ‘원시적 사고’에 접속하는데 고유의 안내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고대 풍습(‘왕살해’)의 의미와 ‘원시 사고’의 본성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면 프로이드와 융을 비롯해 현대정신분석학의 여러 개념과 관점에 대한 병행적 이해가 필요하다.

프로이드, 융, 현대정신분석 관점은 상호 대립 요소와 상호 보완 요소를 함께 지닌다. 가령 ‘원시인류의 정신성’을 前외디푸스기에 고착된 정신분열증자의 심리에 연관시켜 해석하는 융의 입장과 편집증과 경계선인격의 원시 방어기제와 연관해 사고한 클라인과 자아심리학은, 오이디푸스기(아동기)에 고착된 신경증자의 심리와 연관시키는 프로이드와 외견적으로 대립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발달 과정이 영유아의 자폐적 분열증 상태로부터 ‘엄마로부터 분리’ 문제로 갈등하는 ‘경계선 상태’를 거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지니게 되는 아동기의 신경증 상태로 전개된다고 보는 발달심리학의 관점을 고려한다면, 이들 관점은 인간이해에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개인과 민족의 정신 내부에는 편집분열 요소, 경계선 요소, 신경증 요소가 함께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7. 결론 : 다중 관점 해석의 유용성

 

지금까지 원시 수렵시대부터 농경사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의 다수 민족들에게 행해졌던 ‘왕살해’ 풍속의 의미와 ‘원시 사고’의 특성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 관점들을 비교하였다. 인류학자 프레이저는 왕살해 현상을 ‘주술적 사고’와 연관하여 집단의 생명력을 안전히 보호하기 위함으로 해석했다. 이런 인류학적 해석에 대해 프로이드는 원시인의 ‘주술적 사고’가 신경증자의 사고와 유사하다고 보고, 풍습의 ‘무의식적 동기’에 주목하여 오이디푸스기의 아버지 살해욕구가 왕살해 풍속의 숨겨진 동인이라 해석한다.

융은 왕살해 풍속의 초개인적 상징의미와 정신적 목적에 주목하여, 왕살해를 신구 세대교체를 통한 집단정신의 발달 욕구와, 부정적 부모상과의 대결을 통한 자기실현 활동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이에 비해 자아심리학과 클라인은 원초 불안에 대처하는 원시 방어기제의 작동방식에 주목했다. 이 두 학파가 규명한 유아와 편집증ㆍ경계선인격의 사고양태와 방어기제는, 프로이드가 주목한 신경증자의 사고보다 원시 사고의 특성을 보다 온전히 반영한다. 가령 원시인류의 왕살해 행위는 자신이 의지하던 보호자가 갑자기 사라질(죽을) 경우 엄습할 ‘정신의 멸절불안과 유기불안’에 대처하기 위한 경계선자의 행동과 유사하다. 경계선인격에겐 ‘경배하는 왕’과 ‘살해하는 왕’은 각각 ‘분열’된 정신의 서로 다른 부분이 투사적동일시된 대상이기에, ‘전해 다른 대상’으로 지각된다. 따라서 왕살해 행위에 대해 죄책감이나 심적 고통을 겪지 않기 때문에, 그 풍속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원시인류가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외부의 힘있는 대상(왕)에게 맡기고 살았다”는 프레이저의 ‘외재적 영혼’ 개념은 현대인에게 납득되지 않는다. 프로이드도 그것을 프레이저가 지녔던 하나의 심리학적 견해로만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현대정신분석의 눈으로 보면, ‘외재적 영혼’은 ‘투사적동일시’를 사용하는 (정신증적) 경계선인격자가, 의존하고픈 대상과의 관계에서 실행하는 심리현상이다. 왕살해 풍습을 지녔던 고대 인류는 현대의 경계선인격자와 유사한 정신성을 지녔던 것이다.

현대정신분석의 개념들을 활용하면, 이처럼 왕살해 풍습의 의미와 ‘원시 사유’의 수수께끼가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그리고 프로이드, 융, 현대정신분석의 관점을 함께 활용하면, 프레이저가 해명하지 못한 왕살해 풍속의 심리적 의미를 다중으로 드러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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