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슈퍼비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상호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분노' - 따귀 맞은 영혼

따귀 맞은 영혼(메리골드님 )

 

마음상함이란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는 것인데, 그 결과 우리의 내면이 심하게 불안정해지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복수를 꿈꾸게 된다. 저자는 마음이 다친다는 것은 마음에 따귀를 맞는 것과 같은데 이는 얼굴에 가하는 주먹질 같은 것으로 마음에 깊은 아픔을 주는 일격이라고 설명한다. 사소한 좌절부터 다른 사람의 불친절과 거부, 자신의 사랑이 응답받지 못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마음상함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다. 마음상함의 해결방법은 현실과 마주하여 실패를 인정하고, 어떻게든 사태를 건설적으로 이끌어나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처하고 덜 파괴적인 방법으로 대응해나가는 것이다.

 

1. 일상 현상으로서의 마음 상함

(1) 마음상함이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마음을 다쳤다고 느낄 때 일어날 수 있는 반응전반을 가리킨다.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한계상황이 외부로부터 주어졌을 때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자신을 깎아내리는 쪽으로 관련지어 생각한다. 반면에 자존감이 안정된 사람은 쉽게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상대가 부정적으로 하는 얘기를 그리 예민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지만 그것을 바로 자기와 연관시켜서 불안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2) 건강한 자기애는 안정된 자존감과 맞물려 있는데반해 자기애성 성격은 자기 불신이나 열등감을 숨긴 채 자신의 완벽한 겉모습만 유지한다. 자신감이나 업적, 완벽주의 같은 그럴듯한 독립성으로 꾸며진 외양을 유지하기 위해 진짜 감정이나 소망, 욕구등을 포기한다. 행복한 사람이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지닌 현재 장점을 바탕으로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는 것 그 자체다. 외모를 포함해 소유한 것들은 삶의 행복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진심을 주고받는 관계와 삶에 대한 만족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에 달려있다. 자기애적 기본 욕구가 어린시절 채워지지 않으면 세상과 사람들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 대신 두려움이 일어난다. 결국 마음 상함을 경험하면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되살아나 상대를 외면하거나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모르게 된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지나친 겸손이나 우월감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니라 소통을 통해 각자의 욕구와 소망을 존중하고 따로 또 같이 행복을 추구해 나가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우월감을 느끼는 자기애 성격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남을 불신하고 오만하며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이다. 또한 스스로를 모든 정보를 내보내는 발신자로 삼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데 서투르며 의견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대단하고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반면에 우울한 자기애 성격은 수신자의 모습이 강하다. 남들의 비판과 비난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빠르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압도적인 자기애에 빠진 사람은 열등감을 완전히 지우고 자신을 과대망상에 가까운 자아와 동일시하는 반면에 열등감을 지닌 우울한 사람은 끊없이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때문에 자신을 어떻게든 개조하려한다.

 

(3) 거부나 비판을 받을 경우 열등감이나 무력감에 젖기도 하고, 멸시받았다고 굴욕감을 느낀다.(우연한 일도 거부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 오해나 견해차, 다툼, 관계단절등은 다른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했으나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든가, 아니면 강력히 억제하는 데 원인이 있다. 자존감이 약할수록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인식하기가 힘들어서 비판이나 거부에 큰 상처를 입는다.

 

(4)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고통, 절망, 분노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치심이 일어난다. 수치심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굴욕감을 느끼는 상태이다. 수치심에 휘둘리면 비판의 내용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할 뿐더러 비판 자체가 올바른지 판단하지 못한다. 수치심은 깊은 무력감과 막막함을 자아내는데(마비)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전혀 행동할 수가 없다. 또한 수치심의 방향을 바꾸어 남에게 죄를 묻다 보면 분노와 복수심에 젖어 남에게 모욕이나 창피를 주게 된다.

 

(5) 상처받은 분노를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해버린다고 해서 일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내면의 압력이 좀 뺀 정도이다. 분노는 경멸과 함께 상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자기에게 있다고 믿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극도의 파괴적 성향, 냉혹함과 무자비함이 이러한 분노성격에 속한다. 분노는 자신의 상상대로 되어야만 한다고 믿었을 때 생기는 감정이므로 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실망을 하는 마음 상함을 경험한다. 수치와 분노 외에 고통도 상처받은 마음의 반응이다. 마음상함은 살아 움직이는 감정이 아니라 고정된 상태인데, 고통은 일단 형성되면 눈물이나 한탄의 형태로 표현되었다가 누그러진다. 마음상함이나 우울증 같은 형태는 며칠, 몇 주 동안 지속되는데 강도에 변화는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상함같은 정서적 상태를 이해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와 결부된 감정을 찾아내어 표현해야 한다. 분노는 자존감의 손상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데서 오는 고통과 상처를 표현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와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적절한 욕구의 표현이자, 남에게 받아들여지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있다는 신호가 분노인 것이다. 실망과 분노가 크다는 사실이야 말로 그 사람의 동경이(받아들여지고, 존중받기를 정도 이상으로 갈망)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마음에 상처가 생기는 것은 바로 이 깊은 갈망과 결핍의 고통 때문이다.

 

2. 마음 상함의 개인별 주제 : (1) 내사 - 최초의 깊은 상처는 초기의 자아도취, 즉 아이의 자기애가 상처를 입은 것이다. 아이의 발랄함과 적응성, 자존감을 망가뜨리는 부정적 메시지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아이는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아들여 ‘내사’를 만들어낸다. 내사는 어떤 메시지가 현실에 동화되지 못하거나 씹지 않은 채 삼켜지면서 내면화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사는 신념이 되어 할 일, 못할 일을 정해주지만 정작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은 고려되지 않는다. 환경이 긍정적일수록 긍정적인 내사가 아이에게 형성되고, 외부 환경이 아이를 상처입혔을 경우 아이의 내면에는 자기불신이 형성되어 삶에 대해 불안해하는 태도가 형성된다. 성인이 되면서 내사는 성격적 특징이 되지만 그 사람의 일부로 동화되진 않는다. 엄밀히 따져보면 그 내사내용은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평생 이물질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릴 적 격렬하게 부모가 싸우는 것을 보고자란 경우 혐오나 두려움 때문에 싸움을 회피하고 산다면 감정을 내보이면서도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또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멈출수가 없다. 감정을 내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겨지고, 비합리적인 행동의 이면을 인정하고 성찰할 때 비로소 내사가 해결된다.

 

어떤 아이가 사랑받는 체험을 할 때 ‘너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라는 이전의 내사는 좋은 체험을 통해 변화되기도 한다. 특히 발달단계에서 일어나는 반항기나 사춘기는 새롭게 독립적인 길을 발견하고 싶어하는 시기이면서 부모관계에서 생겨나는 내사로부터 자유로워지기위해 애쓰는 시기이다. 이 분리 작업에 실패하거나 독립과정에서 방해를 받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독자적인 의견을 갖는 대신 남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내사는 남의 의견이나 규칙들을 검토하는 대신 아무런 비판 없이 따르는 태도이다. 프리츠 펄스는 내사가 강한 사람은 무엇이든 (유아처럼)미리 다 씹어진 상태로 받고싶어하고, 남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검토해보지 않은 상태로 그냥 받아들인다고 했다. 남이 하는 말을 자기에게 맞는지 따져보지도 않은 채 삼켜버린다.(이해없이 수용한다.) 비판력이 없이 남의 영향을 받고 설득당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사 성향이 센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마음을 다치기가 훨씬 쉽다. 남의 비판에 옳고 그름을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삼켜버리기 때문에 상처가 크고 작게 생겨난다. 모순을 느끼지 못한 채 남이 옳다고 일단 인정해버림으로써 실수나 실패가 일어나면 자신이 못나고 실수투성인 사람으로 느낀다.(스스로를 폄하한다.)

 

누구든 자신을 싫어한다고 믿는 내사가 있을 때 타인에게 다가가는 소망을 억제하기도 하고, 편안하게 관계하고 싶은 바람에 타인에게 자신을 맹목적으로 맞추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서운한 일이 생기면 거부로 지레짐작해서 관계를 회피한다. 상대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오로지 자기에 대한 호의의 표현이냐 아니냐 하는 관점에서만 평가하여 만약 호의가 아니라면 금세 모욕감을 느껴고 상대를 몰인정하다고 물리치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믿는 내사에서 시작해서 결국 남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체험으로 끝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완벽주의 내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닌 이상적인 사람이 되도록 강요하고, 자기 폄하적인 내사는 고착된 부정적 자기상으로 고통받는데, 누군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마음을 다친다. 내사는 이렇게 우리 삶의 질과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내사는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있어서 선명하게 가리기도 쉽지 않다. 내사된 믿음을 직면하려면 대개 외부에서 계기가 주어져야 한다. 모욕감이나 우울증등 여러 괴로움의 계기말이다.(괴로운 사건, 사고를 상담에서 다루면서 미처 소화하지 못한 채로 존재하는-현실에 동화하지 못한 이물질인 내사경험을 다시 소화해 낸다.) 마음이 상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면 불쾌한 경험을 개인화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어떤 상황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서로가 좋게 대하는 방법) 어릴적 부모로부터 소화해내기 어려운 경험과 상처를 크게 입으면(트라우마) 자기 내면의 힘과 외적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자기 조절이 불가능해진다. (원래)일관성있는 자기모습이 사라지는 것이다. 안전하고 선한 세상의 모습, 고귀하고 자발적인 자신의 모습은 사라진다. 현재 경험하는 스트레스(상처)는 옛 상처가 건드려서 어린아이로서 느꼈던 공포와 경악이 되살아난 것이다.

 

(2) 정서적 착취

아동의 육체적, 성적, 정서적 착취는 자존감을 말살시키는 본질적인 트라우마이다. 애정과 보호를 기대했던 어른에게 착취를 당하면 아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에 공격을 받는다. 또한 정서적 착취를 당하면 그 후유증으로 아주 심하게 내사를 하게 되어 자신의 느낌과 감각을 독자적으로 느끼거나 행동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애정도 믿지 못한다. 자기에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 무엇이 도움이 될지, 남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능력도 없고,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지각하지 못한다. 오히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그로인해 자기가 조종받는다고 느끼면서도,(침범) 다른 한편 버림받거나 거부당할까봐 겁을 먹는다. 그 밖에 모든 잘못된 일을 자기와 관련시켜서 쉽게 창피해하며 모든 일은 자기탓이라고 믿는다. 정서적 착취는 배신을 내포하고 있다. 아이가 신뢰로운 관계에서 상처받고 착취당했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다.(배신이 반복된다.) 어린 시절 안정감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역시 남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착취 트라우마는 극단적 무력감, 속수무책 상태로 내버려졌다는 느낌과 결합되어 있어서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고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는 강한 부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게 된다. 트라우마는 정신의 건강한 경계 감각을 파괴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나중에 예나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할 수 없게 되거나 아니면 남과 자기 사이에 한치의 여유도 없는 선을 그을때만 안전감을 느낀다.(사소한 문제에 오래 집착한다.) 부모관계에서 정서적 착취란 아이가 부모의 정신적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거나 돌봐주는 것이다.(종속관계, 부모역할 대행) 자기애성 착취 경우는 부모가 자신의 정서적 만족을 위해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대로 그대로 되어야 한다. 아이가 특정한 능력이나 특성을 갖추어서 부모의 정서적 결손을 채워주어야 한다. 아이의 능력만이 아니라 감정이나 욕구를 착취하기도 하는데, 부모가 좋다고 인정하는 욕구나 특정한 감정만 느끼도록 제한받을 때 아이는 그 밖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지내야 한다. 특히 자기애성 착취를 당하면 부모의 감정까지 떠맡아서 자기 것으로 하는 일이 생겨난다. 아이가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의 처지가 되어 그 불안과 고통을 자기 것처럼 느낀다.(그 결과 아이의 감정세계가 망가진다.) 아이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항상 자기가 아닌 (이상적인 엄마의 이미지)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박감에 시달린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해버리고 부모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되어버리는데 대신 이들이 부모에게 받은 것은 주로 물질적인 이득이다.

 

(3) 접촉 기능의 붕괴

마음 상함은 거부에 대해 유연하지 못하게 반응하는 모습으로, 이런 경직성은 자아가 발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유연할 수 없는 이유는 다시 마음을 다칠까 두려워서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이며(거부속의 예전의 경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열면 보호막도 동시에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마음 상함을 겪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스스로 나쁜 방향으로 예상하는 바에 맞추어 행동하게 마련이므로 투사된 우려로 현재 행동을 해버린다.(낭패를 보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지못한다.) 마음을 다치면 분노에 싸여 자기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데 한 번의 후퇴가 철저한 관계 단절로 굳어지기도 한다. 사실 극단적으로 관계가 멀어지는 원인은 이전에 너무나 가까이 ‘융합’해서이다. 자신과 상대방의 의견이 똑같은 것이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융합의 상태는 퇴자나 비판, 거절로 깨진다. 특히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이 융합 상태를 추구하는 편인데 외부의 확증을 받아서 그 힘으로 자기의 자존감을 확립한다. 이들이 마음을 상하는 진짜 이유는 거부당함으로서 자신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버림받는 데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실존을 위협하는 차원의 것이다.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어린 아이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바로 그것이다. 현실상황이지만 무의식속에서 정서적으로 자극을 받는 것이다. 처음 마음을 다쳤을 때의 나이가 바로 정신적으로 현재의 나이이다.

 

내사와 미해결 과제로 인해 내적 통합이 손상되면 편안한 마음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남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지만 마음을 열 수가 없고, 마음이 상한 김에 관계를 단절한다. 하지만 마음이 상한 사건을 계기로 헤어지는 사람은 결국 미해결 과제로 인해 서로에게 묶여 있게 된다. 십 년이 지났어도 어제처럼 밉다.(접촉 기능의 손상-행동의 유연성 상실)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불편함을 무릅쓰고라도 계속 남과 접촉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넓여 가야 하지만(자아의 적응기능) 상대방과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굳어진 것이다. 접촉은 새롭고 창조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기꺼이 경험하고 놀라운 일들에 마음을 여는 동시에 신뢰하는 것이다.(인간은 발전하고 변화하는 존재이다.)

 

(4) 유대감의 손상

엄마와의 유대감을 경험하면서 아이는 자신에 대한 좋은 인상, 자존감,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생기며, 주변 사람들이 선하며, 자신을 기꺼이 도와줄 거라는 믿음을 형성한다. 인성은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생겨난다. 유대감의 체험은 아이가 자기 내면의 상태와 외부 환경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면서 대인 관계의 거리를 조정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유대감 체험이 대인 관계에서의 거리 조정이나 자율성 욕구가 만족되는 쪽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아이는 헤어질까봐 불안해하는 일 없이 남과 적당히 가까워질 줄 알고, 남을 신뢰하는 안정된 유대방식을 갖게 된다. 반면 유대감이 손상된 경우 헤어짐에 대한 불안, 가까워짐에 대한 불안, 인간관계에서의 신뢰 결여, 지나친 독립에 대한 욕구가 생겨난다. 독립에 대한 지나친 욕구란 의존 상태를 잘 견디지 못하고 남과의 관계에서 책임지기를 거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네 가지 수치가 높을경우 버림받는 공포와 부정적인 자아상이 형성된다. 남과 가까워지는데 대한 불안과 남을 신뢰하지 못할 때 남이 자기를 받아줄 것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반면에 네 가지 수치가 낮으면(적절하면) 헤어짐과 가까워짐을 겁내지 않고, 불신이 적고, 긍정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며 남과 가까워지고 싶은 현실적 욕구와 충분한 접촉 기능이 어우러져 정상적인 자율성을 갖게 된다. 유대감을 확실히 가진 사람이 어떤 일을 경험할 때 마음이 다칠 위험성은 낮고, 자율성이 높아 다른 사람의 의견에 좌지우지되지 않으면 비판을 받아도 자존감을 다쳐가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이렇게 유대감은 관계 속에서 느끼는 안정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인격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3. 관계에서 일어나는 마음 상함 (1) 마음 상하게 하는 사람과 마음 상한 사람

사람은 만남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을 성장시키고 본래의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인성은 다른 사람과 자꾸 관계를 맺어가는 가운데 발달한다. 사람이 관계를 하는 것은 그 존재의 중심을 이루는 요소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느낌이 들 때 마음상함이 발생하는데, 상대방은 생각이 다를 뿐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이런 생각만 할 수 있어도 언짢음이 가라앉고, 신뢰의 위기라고 오해했던 것을 건설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상대가 나와의 관계를 내가 중시하는 것만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마음이 상한다. 상대가 의리를 저버렸다는 느낌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애정이나 존중, 수용에 대한 나름대로 가치관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그것이 어그러지면 상대가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이라고 의심부터 한다. 많은 관계들에서 자신의 고정된 기대, 그리고 그 기대가 반드시 채워져야 한다는 오해로 관계를 틀어지게 만든다.

 

(2) 희생자 vs 가해자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과 상처를 받는 사람 사이에는 희생자-가해자의 심리 게임이 전개된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상처를 준 사람은 가해자로 낙인찍는다. 가해자 역시 자신을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는 희생자라고 여긴다. 마음을 다친 피해자는 자기의 권리와 명예를 위해 싸우다보면 어느새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상처를 준 사람쪽에서는 죄책감과 열등감을 느끼다가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기도 한다.(서로 마음상함의 책임을 전가) 누군가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한 이런 심리게임은 계속되다가 마침내 관계가 깨져버린다.

 

(3) 상처 입히는 사람 역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은 본질적으로 거울에 상이 비치는 것과 같다. 상처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양식이 비슷한 까닭이다.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남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에 민감반응을 보인다.(상대도 자각할 때) 자기의 행동이나 말로 인해 상대가 마음을 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자책까지 하게 되어 자존감이 망가지기도 한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자기가 설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했을 경우 오랜동안 자기비판을 하는 사람은 평소 자신의 내사(나는 좋은 사람으로서 어떠해야 한다는 신념)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그런 일을 했다는 그 사실이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다가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빌미를 준 상대에게도 화가 난다. 이렇듯 두 사람이 각각 마음에 갖고 있는 상처의 종류가 맞아떨어질 때 상처는 더 쉽게, 크게 발생한다. 인간은 본래 접촉을 통해 새롭고 긍정적인 체험을 하고 싶어하지만 항상 똑같은 일로 상처를 받고 마음이 다치는 것은 반복 강박때문이다. 상대를 배려하느라 긴장하다보면 어색해지고, 부자연스러워지고, 답답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피하려고 했던 그것, 결국 상대를 상처입히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피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 일어난다.)

 

(4) 시기심

시기심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소망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는 데 있다. 자신의 숨겨진 소원,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이 다른 사람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을 본 순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심지어 부정할 때 그 소망은 시기심으로 변한다. 시기심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폄하하여 자신을 실패한 가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또는 자존감에 상처를 받아 고통을 느끼며 부러워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된다. 그 사람이 그걸 갖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심정일 때, 시기심은 시기대상을 깎아내리거나 심지어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으로 무엇인가 가치를 손상시킬 만한 점이 발견되어야 안정을 찾게 된다. '시기하는 마음'은 그 자체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라 본래부터 안정감이 없다. 우리가 시기심을 내놓고 얘기할 용기를 가질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낼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해서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시기심을 극복할 수 있다. “나는 그 사람이 가진 무엇이 부럽다. 나는 누구에게 질투심을 느낀다”라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면 시샘이나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바뀐다.

 

4. 마음 상함에서 벗어나기

 

(1) 마음 상했음을 고백하기

심하게 마음을 다치면 분노와 무력감이 생기고, 심리적 에너지, 사고 기능이 저하되기도 한다. 마음을 다친 사람은 꼼짝못하고 주저앉아 있다. 마음을 다쳤을 때 추스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일이나 여가 활동을 하면서 균형을 찾기도 하고,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육체적 일로 분노를 해소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 상함을 고백했다가 다시 상처를 받을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지, 그로 인해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못했는지 그 상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 상함을 얘기하다보면 마음이 상했다고 해서 단절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솔직히 말함으로써 관계가 가까워진다는 것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마음 상하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이 관계를 틀어지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 비하는 줄어들게 되고, 감정적으로 격하게 반응했던 이유가 상대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예민한 특성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해결책을 찾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욕구와 상처를 알린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조롱하거나 비꼬지 않고 진지하게 해줄거라는 확신이 없으면 말을 함으로써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2) 거리두기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길은 관계를 끊는 대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교제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상한 상황으로부터 내면적 또는 외면적으로 물러나는 것을 뜻한다.(언젠가는 자연스레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상대를 폄하하지않으면서(멸시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내려다보지 않고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는) 거리를 둔다는 것은 물러남,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고, 일어난 일을 이해하면서 감정을 적당한 수준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3) 자기 고유의 심리적 주제 인식하기

마음 상함이란 현재의 사건 뒤에는 예전의 원초적인 마음 상함-어릴 적 경험한 거부, 비난, 충격 같은 기억-이 자리 잡고 있는데, 현재의 새로운 마음 상함이 계기가 되어 그와 결부된 내사와 불안, 채워지지 않은 욕구가 되살아난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자기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마음 상함에 대해 잘 알아두는 것이 현재의 마음 상함은 물론 과거의 근원적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는 바탕이 되며, 상처받는 마음을 둔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상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소화할 수 없는 지침, 자기를 옥죄는 금지 사항 같은 내사를 변화시켜야한다. 내사는 찾아내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가 그것을 확실히 의식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의 느낌에서 비롯된 고통과 분노를 의식하고 표현해내는 과정에서 내사가 변할 수 있다. 내사를 처리하려면 오랜시간 새롭게 고쳐진 내용을 깊이 체험하여 자기 것으로 해야한다. 과거 내사에 따라 행동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넘어서느냐 하는 선택권은 항상 우리에게 있다. 왜냐하면 내사는 행위 즉 정신의 태도이지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사를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동정심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거부당하고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찾아내어 얼마나 외롭고, 겁을 먹고, 공포에 질려 있는지를 수용해줄 때(동정심이 싹텄을 때) 비로소 내사가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사는 불안을 먹고 자라며 지속적으로 불안을 만들어낸다. 내사를 바꾸게 되면 새로운 경험을 할 용기가 생겨나고, 엄두도 못냈던 일과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려서도 유연한 대처를 할 수있다.

 

(4) 자존감 확립하기

자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갖고있다. 따라서 마음을 다치는 일도 적다. 반면 자의식이 낮은 사람일수록 마음을 쉽게 다치는데, 이들은 자기애적 자존감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까닭에 실제와 가상을 혼동하여 자신의 위대함, 즉 멋짐으로 열등감을 감춰보려고 하지만 전적으로 자신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자존감이 불안정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면적으로 우월함, 열등감이 실제와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그렇다. 이 세 가지 영역을 자신의 내면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능력 밖의 일이나 싫어서 숨기고 싶은 자기 모습도 꿰뚫어 볼수 있다. 또한 남보다 낫거나 최소한 남과 비슷한 면도 높이 평가한다. 자기의 감정, 욕구와 더불어 정체성을 느끼면서 자신을 사실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영역 사이의 간격이 벌어질수록 각각의 영역은 서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고 통합된 모습을 느낄 수 없다. 보잘것없는 존재로 자처(열등감)하는 동안에는 이상화된 자기의 멋진 모습과 어우러진 실제 모습을 느낄 수 없다. 오로지 세상과 자기를 업신여기는 마음과 자기 불신만 가득 차게 된다. 반면 자기가 위대하다고만(우월감) 느끼게 되면 스스로 지나치게 강하다고 느끼는 바람에 열등감조차 사라진다. 현실의 자기 모습(실제)을 볼 수 있는 통로가 폐쇄되어 자신을 현실적으로 전혀 파악하지못한다. 열등감과 우월감, 실제영역이 서로 접촉할 기회가 적어질수록 마음 상함은 더 심해진다. 마음 상함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자신과 남, 그리고 세상에 대해 너무 높은 기대와 이상을 갖진 않았나 생각해 보아야한다. 다음으로 열등감을 갖게 된 계기의 배경을 찾아내어 검토를 해보거나, 자신의 가치있고 발랄한 면, 참조적이고 유쾌하고 똑똑한 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우월감과 열등감을 연결하여 실제를 보기 위해서 “창조적 표현”이라는 것이 있는데 몸짓, 색깔, 음악, 소리, 그림, 글쓰기, 말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소질과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표현방법을 찾아내어 새롭게 체험하게 되면 긍정적인 자존감이 형성된다.

 

(5) 변화의 열쇠는 접촉

실제 자기 모습을 인지하고 나면 열등감이나 우월감 같은 가짜 자신의 상태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사물을 보고 사건을 해석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을 상하는 일도 적어진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 적당한 정도로만 기대하면(실현 가능한 만큼만 이상화한다면) 그 기대는 만족감뿐만아니라 불필요하게 마음을 상하지 않을 수 있다.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것을 달성하지 못했다고(스스로 상처내기)해서 자기를 비하할 필요도 없고, 남들이나 세상에 대해 기대를 했다가 받지 못했다고 느낄 필요도 없다. 자신과의 현실적 접촉은 비판이나 퇴짜, 거부 등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바깥에서 오는 모든 일을 자신의 책임이거나 실패라고 해석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비판하는 말이 부분적으로 자신과 관계된 것일 수도 있지만 비판하는 그 사람의 (상황이나)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열쇠는 접촉이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 있는 한 우리에게 자기 연민에 빠질 기회가 없다. 자기 연민이란 모욕감을 느껴서 접촉을 끊고 물러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마음 상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함께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면 비로소 자신의 솔직한 감정, 즉 상처와 그로인한 분노 그리고 두려움까지도 해소된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떠맡음으로써, 관계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다.

 

(6) 사물을 다르게 보기

비판이나 지적을 받으면 자신의 인격이나 업적이 거부된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사실 비판이나 지적은 자기를 풍부하게 해주는 격려로 받아들이면 자아를 발달시킬 수 있다.

 

(7) 몸을 움직이기

마음 상함을 딛고 일어서는 일, 마음상하기 쉬운 성향을 변화시키는 일은 언제나 몸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마음 상함의 상태를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며 고립상태에서 접촉으로 옮겨 오는 것이기도 하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몸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면 주변 환경이 새롭게 지각된다. 몸의 움직임은 마음도 함께 움직이게 하면서 상처 난 부분을 계속 치료해나간다.

 

(8) 공감과 화해

이해심과 공감을 갖는다는 것은 상처를 받고서도 화를 내지 않고 저항을 하지 않는 뜻이 아니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여전히 마음을 열어놓는다는 뜻이다. 공감능력을 갖게 되면 우선 성급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고 상대방을 존중할 수가 있다. 마음상함 속에는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서 남들에게 늘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남들에게도 이와 같은 중요성을 부여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을 벗어나서 공감과 이해를 통해 좁은 시야를 넓혀서 다른사람을 봐야한다. 이해심과 공감은 화해의 조건이다.

 

(9) 희망 그리고 느긋함

희망이나 느긋함으로 마음 상함을 극복할 수 있다. 희망은 기대에 대립되는 말이고, 느긋함은 통제나 권력과 반대되는 말이다. 기대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실망이 온다. 반면 희망은 훨씬 참을성이 있어서 기다릴 여지가 있다. 희망이 부서지면 그 결과로 슬픔이 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마음을 잘 다치는 사람은 시간을 갖고 기다릴 능력이 없어서 인정을 받고 싶을 때 나중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따라서 기대하는 대신 희망을 품는다면, 끈기 있게 기다릴 수 있기에 마음 상함은 피할 수 있다. 또한 기대에서 희망으로 가는 이 변화를 이루어내려면 통제하려는 욕구를 버려야 하는데, 통제하지 않을 때 나타날 그 결과가 두렵기때문에 버리기 쉽지않다. 상대에게 자기가 싫어하는 면이 있는데 거기에 대응할 방도를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든 간섭해서 바꾸고 싶다. 왜냐하면 자기의 힘이 전혀 미치지 않은 일과 마주할 때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어디선가 그 일을 조종할 수 있는 장치를 찾아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조종은 통제나 간섭이 아닌 신뢰이다. 그런데 신뢰는 강제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선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희망을 품고 느긋해질 때 마음 상함을 피해가기 수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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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