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슈퍼비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상호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2. 의존성 성격 두 번째 이야기 - 꿈 분석 사례


몇 번이나 똑같은 일을 겪는 건 운이 나쁘기 때문일까? 인생이 힘든 게 아니라 저 자신이 인생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마가렛)

 

꿈 사례  

<<어두컴컴한 방이다. 벽 한쪽 철장 안에 치료했던 아동 J(반응성 애착 장애로 의뢰가 된)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지만 케이지 깊숙한 곳에 호랑이가 있다.  "J가 얼마나 무서울까. 아이 엄마는 뭘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J는 무서워하기보단 무기력해 보인다.) 케이지 맞은편에 아이 엄마인 듯한 여자가 침대에 누워있다. 아이는 철장 밖으로 나와 컴컴한 방에서 티비를 멍하니 보고 서 있다. 나는 아이가 가여워 꼭 안아주었다. 누워있던 아이의 엄마(긴 까만색 머리의 여자)가 반쯤 몸을 일으켜 세워 아이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어...... 근데 우리 엄마잖아!” >>

 

전날 자극 

: J는 초기 상처로 자폐막에 둘러싸여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아이다. 아이의 부모는 부유하여 아이에게 좋다는 여러 가지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신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가 다가오니 아이도 엄마도 불안해하는데 나는 그 불안을 견뎌주지 못하고 아이를 소장님께 의뢰했다. J엄마는 실력이 있는 소장님께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내심 좋아하셨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던 것 같다. 현실에서는 상담을 옮길 만한 어머님의 거절이나 구체적인 종결 의사는 없었다. 사실 상담 중에 다른 센터에서 놀이치료를 병행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지레짐작으로 거부나 무시를 느꼈던 것이다. 왜 여러 군데서 상담을 받는지 이유를 묻고 아이에게 미칠 혼란을 표현하고, 나 역시 배려받지 못한 불편한 것을 이야기했었어야 했다. 그러기는커녕 두려움에 물러나 버리고(추궁당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 엄마에게 선생님의 책까지 선물했다.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으면 그런 감정을 품게 된 나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나이스한 행동과 달리 속마음은 단념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어차피 말해봤자 아이 마음이나 상담자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상담자도 부모로부터 불신을 당하면 상처를 입는다. 자신의 마음이나 상황도 중요하겠지만 타인의 진심이나 감정을 무시하는 자기 위주의 사람을 보면 분노와 절망이 일어난다. 과거 엄마가 나에게 실망해서 치를 떨며 피아노를 없애버렸듯이 나도 J엄마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나도 모르게 아이를 버린 것이다. 엄마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비슷한 일로 반복되어 고통이 컸음을 꿈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밝고 힘 있게 긍정적으로 살고 싶지만 과거에 고통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앞으로 한 걸음도 내디딜 수가 없는가 보다. “그때 나는 어떻게 하고 싶었을까? 엄마는 왜 날 지원해주지 않았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어쩌면 나는 과거가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힘든 일이 떠올려질까 봐 혼자 있는 걸 못하는지도 모른다.

 

 일상의 자극

코로나 사태로 상담센터 사정이 어려워 프리랜서로 전환하게 되어 노심초사하였다. 그리고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공항불안과 우울한 감정이 조절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남자친구의 비합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언사에 대해 합리적인 분노가 일어났다. 이기적인 그의 모습과 반복되는 비상식적인 그의 언사에 대해 예전처럼 모른 척, 아닌 척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평소와 달리 참아주고(억압시키고) 홀딩해주지 않는 나에게 적잖이 당황하며 그 스트레스로 자신이 성폭행범으로 몰리는 꿈까지 꾸었다고 하소연했다. 또한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은 지 3주가 넘어 마음이 불편했었다. 가슴속 응어리로 엄마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 경험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지도 못할 만큼 엄마는 나에게 충격적인 대상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엄마나 남자친구의 마음이나 처지를 배려하느라 ‘진짜 자신’을 잃어버렸다. 


보통의 경우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친구나 주변 사람에게 의지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지뿐만 아니라 그간 알지 못했던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거나 정신적인 버팀목을 얻기도 하고, 구체적인 대처 방법을 깨닫거나 지속적인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문제 그 자체보다 주위의 이해 부족으로 상처를 더 크게 받았던 것 같다.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이나 부정적인 반응이 너무나 무섭다. 무관심이나 방관하는 태도에 상처를 깊게 받아 절망한다. “내가 뭘 또 잘못했을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이해를 바랄수록 상처만 커진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 상처를 반복하면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꿈의 재료 : 컴컴한 방은 나의 우울함, 무기력함, 공허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무드이다. 내담 아동은 초기 주 양육자가 바뀌고, 주 양육자의 불안정한 정서와 양육 태도가 트라우마가 되어 세상과의 모든 관계를 두렵게 지각하고 있다.  J의 불안정한 모습은 분열된 내 무의식일지도 모르겠다. 호랑이는 무서운 대상이다. 엄마는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존재이고, 남자친구 역시 나를 압도시키는 불편하고 공포스러운 존재이다. (남자친구가 꿈에 독사로나오기도 했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에 사로잡혀서 제대로 발달을 하지 못했다. 의식이 나 자신으로 향해 있어야 하는데 그 의식이 지나칠 정도로 상대방에게 향해 있다. 사실은 미움보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안에 나는 없다. 


상담에서 선생님은 격한 감정을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하셨다. 상대방을 죽이고 싶은 만큼 밉다면 그 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상처를 받았으니까 그렇게 자신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이고, 진짜 화나고 괴로운 기억을 제대로 소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비로소 안도하거나 아픔을 치유하고 긍정적인 행동을 할 수있게 된다고 한다. 호랑이라는 꿈 이미지처럼 입체적으로 파악해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일이 내안에 많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지 아니면 부정할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로 나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라는 의미인 것 같다.

 

잃어버린 기억 - 나는 대입을 여러 번 실패했다. 우리나라에서 명문 예술학교인 예원(중)학교와 서울 예고를 거쳤다면 서울대, 이대, 연대, 한예종을 목표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꿈 공부를 시작하면서 실패한 입시 때 기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입 시험의 실패는 내게 일어설 수 없는 좌절을 맛보게 했으며, 엄마의 멸시와 거부 또한 큰 상처가 되었다. 삼수를 끝으로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고(그때 엄마의 실망스러운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엄마는 바로 피아노를 팔아버렸다. 물론 피아노를 그만두기로 했으니 팔라고 말했지만(감정적으로) 그렇게 빨리 정리하실 줄 몰랐다.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딸로 전락하였다. 친 할머니의 천도제를 지내기 위해 가족이 모두 춘천으로 내려가야 하는 날이 기억난다. 내가 대입에 실패한 것이 가족들에게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고, 그래서 가족과 함께 있는 다는 것 자체가 심리적, 정서적으로 힘들어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는데 그래도 데려가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엄마, 아빠, 남동생은 날 기다려주지 않고 떠나버렸다. 나는 어두컴컴한 집안에 홀로 남았는데 많이 불안했었다. 재수를 하면서 나는 세상과 단절했다. 친구들이 다들 원하는 대학에 다니는 모습을 보니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친구들과도 단절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오후 1시까지 피아노 연습을 했고, 점심과 간식을 먹고 2시부터 7시까지 연습을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9시에는 무조건 잠을 잤다. 강박적으로 연습 시간이 지켜지지 않으면 불안했고, 렛슨을 받으러 가는 날이 아닌 이상 외부에 나가지도 않았었다. 내 피아노 방은 항상 어두웠다. 밝은 것이 싫었고, 스탠드 하나만 켜고 연습을 했었다. 가끔 엄마가 방에 들어와 눈 나빠진다며 불을 켜주고 나가면 나는 다시 꺼버렸다. 전기 스위치를 꺼버리듯 그렇게 세상과의 스위치도 꺼버렸다.

 

나의 친 할머니는 내가 5살 때 돌아가셨다. 친가는 춘천이었고, 당시 가족은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난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할머니 손을 이끌고 문방구에 가서 좋아하는 종이 인형을 잔뜩 샀던 것도 기억나고, 할머니가 해주셨던 미숫가루에 설탕을 섞어 가루로 먹던 것도 기억난다. 또 할머니의 냄새도 좋았다. 연년생이었던 사촌이 할머니 집에 살다시피 하는 게 부러워했던 것도 기억난다. ‘어두컴컴’ 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우두커니’ 라는 단어가 연상되었으며  ‘ㅇㄷㅋ’ 자음이 비슷한 걸 발견했다. 우두커니...... 우두커니 서 있다...... 라는 생각을 하다가 친 할머니의 죽음이 생각났고, 사랑했던 할머니의 죽음에 슬퍼 울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5살이었고, 사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내가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고 기억하며 살아왔었는데 그 기억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관을 붙잡고 울었던 것은 사촌 동생이고, 나는 그때 그 옆에서 울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왜 내가 울었다고 기억했을까. 할머니의 죽음은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고, 많은 사람이 큰 소리로 곡을 하는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에 놀라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던 것 같다.


사촌 동생의 모습을 빌어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간직했는지도 모르겠다.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이 있는데, 나는 유치원 봉고차에서 아이들에게 “사람은 7살이 되면 죽어” 라고 말했다. 억압된 그것이 공포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좋은 의존을 경험 할 수 있었던 할머니를 따라가길 소망했던 것은 아닐까. 할머니의 죽음은 나의 유일한 의존 대상과의 단절이었다. “이제 나는 세상에 혼자야. 이런 무서운 세상에 혼자서 살아가긴 너무 벅차. 나도 죽는 것이 나아.”

 

연상 : 티비 → 수치심, 죄책감, 통제와 억압으로 물든 나의 도피처(분열)

이 십대 피아노를 그만둔 이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깊은 우울증에 빠졌었던 것 같다. (어쩌면 대입 시기에 과도한 불안으로 발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항상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티비만 봤다. 밤에는 깜깜한 거실에서 티비만 켜 놓고 누워있었던 게 기억난다. 내가 고등학교 때 엄마는 안방 문을 항상 잠궈 놓고 외출을 하셨다. 안방에 티비와 컴퓨터가 있어 통제하기 위함이었고, 또 엄마는 자신의 물건(화장품, 옷, 가방)에 누가 손대는 것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 못하게 하면 더 한다고 나는 그 문을 어떻게든 열고 들어가 티비도 보고, 컴퓨터도 하고, 엄마 물건도 구경하고 그랬다. 


어느 날 잠겨진 문을 억지로 열다가 문이 부서졌다. 엄마한테 엄청 혼날 거라는 걱정을 했던 것까지는 기억나지만, 그 이후 기억은 없다. 내가 다섯 살쯤 티비를 틀어 놓은 거실에서 아빠가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엎어버렸던 기억도 있다. 사람이 학대나 무시 등 너무 힘든 일을 겪고나면 죽고 싶다고 생각이 들 만큼 괴롭다. 하지만 마음은 그런데 몸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기억이면 무의식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기억을 지워버린다고 한다. 무의식이 생명 유지 장치와 같은 역할을 해서 기억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유 모르게 늘 불안했다. 침습적인 불안으로 두렵고 공포스럽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무서운지는 잘 몰랐다. 기억은 사라져도 고통스러운 감정은 남아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몰랐다는 것은 괴로웠다는 것이다.

 

개인분석을 시작한 지 두 달 되어간다. 선생님과 현실에서 일어나는 관계로 나의 과거와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나의 시점에서만 바라보는 사물과 세계가 현실적 관점에서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알게 되어 당혹스럽다. 때때로 상담시간, 선생님도 배경으로 밀어낸다. 선생님이 여러번 질문을 하셔도 내 진심과 사실이 마구 엉켜버려 나에게 일어난 일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선생님께서 여러모로 감지를 하시는 것이지 나는 누구랑 있던 간에 감정과 사고가 둔해진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에 입을 다문다. 할 말이 없다. 내 큰 문제는 마음이 집착이나 의존으로 뒤덮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는 것이다. 판단할 수 없다기 보다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눈을 가리고 매사 부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누군가 내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결국 나에게 일어난 일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게 된다.


내 세계에 빠져있다가 또는 남의 말대로만 하다가 타인의 표면적인 말과 행동이 갑자기 직면되면 마음에 커다란 타격을 받는다. 이미 시간을 두고 여러 징후가 나타났을 텐데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봉변을 당하는 것이다. 자기 감정을 깨닫지 못하고 참기만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다. 감정을 직시할 수 없는 원인은 물론 가정환경에서 비롯된다. 엄마와 나의 관계는 폐쇄된 공간 그 자체 였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세상과 달라도 나는 그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우리집이 다른 가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부족한 경험을 토대로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인 채 그것에 나 자신을 맞추고 내 진심이나 감정을 무시하며 살았던 것이다.

 

호랑이 연상 - “도깨비 빤스는 튼튼해요. 질기고도 튼튼해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이 천년 입어도 까딱없어요. 도깨비 빤스는 더러워요. 냄새나요. 더러워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이 천 년 동안 안 빨았어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도깨비에 끌려서 도깨비의 상징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도깨비는 눈에 보이는 도깨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도깨비가 있다고 한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도깨비가 왠지 더 끌린다. 어릴 적 나는 투명 망토를 입고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라는 공상을 해보기도 했으니까.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무얼 해볼까? 필요하고 좋은 물건을 훔칠 수도 있고, 많은 것들(사람, 사물)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도 있고, 초 인간적인 괴력으로 악한 인간들을 공격하는데 쓸 수도 있겠다. 또한 원할 때 필요한 모습으로 변할 수가 있다. 하지만 도깨비는 다리가 하나다. 매번 사람에게 씨름을 청하지만 다리 때문에 지기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씨름을 청하는데 참 미련하기 짝이 없다. 이런 도깨비의 미련함을 이용하여 사람들은 재물을 얻거나 이득을 보기도 한다. 도깨비에게 한번 돈을 꾸어주었더니 매일 저녁 꾼 돈을 가져와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의 예화도 있다. 도깨비는 노래와 춤을 즐기고 놀이를 좋아하는 점도 있다. 형체가 없는 도깨비를 통해 알 수 있듯 나는 타인에게 무조건적으로 맞추어 대립하고 갈등이 일어나는 일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며 수동적이라 자기표현도 못한다. 도깨비의 미련함, 순진함도 내 모습과 닮았다. 피학적인 나는 가학적인 상대를 만나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감정, 정서, 신체, 시간, 경제적인 많은 것들을 착취당한다. 또 노래와 춤을 즐기고 놀이를 좋아하는 다소 한량스러운 면도 내게 없지는 않다. 이 부분은 많이 억누르며 살아왔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것을 즐기면 안되는 사람으로 강요당했는데, 엄마는 항상 내가 남들보다 늦었는데 그런데 시간 쓰고, 돈 쓸 여유가 어디 있냐며 그러다가 길거리로 나앉는다며 폄하를 하셨기 때문이다.

 

(침대의 여인) 엄마 연상 - 하얀 침대에 하얀 옷, 까만색 긴 머리의 여인, J 엄마인 줄 알았는데, 얼굴을 보니 우리 엄마다. 

꿈에서 깨어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니 그 여인이 무서운 귀신처럼 느껴졌다. 엄마에게 연락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크지만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했을 때 엄마의 반응을 미리 상상하며 겁을 먹는다. 서운해 하는 표현이 차갑게 들리고 날 밀어내는 것 같아 무섭고 두렵다. 엄마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과 정서가 곧 내가 세상에게 느끼는 감정과 정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두 무서워”, “세상은 무서운 곳이야”, “살아남기 위해선 최대한 꼭꼭 숨어야 해. 피해야 해.”

 

엄마의 연장선인 남자친구 - 엄마는 자기 자신이었던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나를 세상과 고립시켰고, 조종하며 엄마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로 만들려고 했다. 나는 독립을 하고, 엄마와 장기간 단절하며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음악을 끝까지 하지 못한 한 때문에 음악가에 대한 동경으로 결국 엄마와 비슷한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남자친구는 내가 무얼 하든 지지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다. 그도 어쩌면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상담과 정신분석 공부, 그리고 스타디등으로 내가 성장하고 변하면 자신이 버림이나 거부당할 것을 미리 예상하는 것 같았다. 자기에게 써야 할 에너지와 애정이 다른 곳으로 갈 때 남자친구가 불안해 할까봐 미리 혐오스런 얼굴로 처벌을 바라는 마음이 반영되어 있다. 남자친구는 날 너무 나도 사랑한다고 한다. 나를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의 행동 어딘가가 또는 대부분이 잘못됐는데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무엇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하고, 불편함에 대해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고치지 않고 그렇게나 부탁을 했는데 조금도 도와주지 않는다.) 한 학기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상처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세운 기준에 맞추어 괜찮다거나 나쁘다고 해서는 안된다. 나는 왜 무기력하게 살았을까 생각해보면 ‘언제가 그 사람이 바뀌고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기대하며 스스로 발달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자신을 직시하는데 뛰어나다고 한다. 나는 원하는 것을 달성하거나 성취하지 못한 좌절감이 컸었고, 그로 인해 수치심과 죄책감이 크다. 그 무의식의 블랙홀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거리며 세상을 향해 표출하지 못하는 공격성을 결국 내게로 돌려 줄곧 공상에 빠져있었고, 사람과 세상에 대해 피학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곤 한다. 또한 친 할머니의 죽음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어두컴컴한 방의 압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이 십대 후반 호스피스 전문가 과정을 공부하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했던 이유도 그것에 있지 않을까. 티비는 세상을 두려워하며, 현실을 직접 접촉하지 않고 회피하고, 억압하는 나의 분열적 방어기제를 나타낸다. 장난끼 가득하고, 파괴적인 음의 신, 나의 억압된 힘과 정서, 쾌락본능을 도깨비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며 깨달았다. 원하는 데로 변장할 수 있는 도깨비는 호랑이로 변장된 것일지도 모르겠다(호랑이는 꿈속에서 어두운 곳에 있어 보이지 않았으니 비가시적인 도깨비일까.).

 

또한 무서운 호랑이 이미지는 늘 부정적인 큰 소리로 분노를 분출하는 부모님한테서 호통과 비난을 들으며 자라서 클레임을 걸어대는 사람에게 깊게 받은 상처가 무의식중에 또 다시 크게 반응한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의 처지나 가정환경, 과거의 경험등을 종합적으로 조합해보면 다 이유가 있다. 그냥 단순히 그가 나쁘다 혹은 다 내 잘못이다는 없다. 과거에 겪은 마음의 상처에 집착을 하면 피해자가 되버린다. 그래서 간혹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음에도 상처를 받았다는 의식이 강한 나머지 나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제서야 분석을 통해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나의 편향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 문제를 늘 간과하고 살았고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무의식은 매사 비슷한 형태로 일어나고 비슷한 과정을 거쳐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고 알려준다. 

분석을 시작했지만 경제적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간헐적인 상담을 하게 되었지만 이 작은 시작이 행동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행동 자체‘가 나의 불안을 치유해주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없이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맞추며 살아왔는데 타인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알아채고 그에 알맞은 반응(맞춰주기)을 하지만 그것은 배려가 아니었다. 그것은 항상 사람들을 방해하고, 위협하는 호랑이로 전치된 도깨비처럼 나의 자기실현을 방해하고 스스로를 위협하고 있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나는 상담을 받으면서 남자친구와의 분리를 준비하고 있다. 서로 융합되어있어서 분리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살기 위해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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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