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소임을 마치고 2021년 명예롭게 은퇴한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지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매월 1회 상호 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13. 강박증 성격

상담스터디


1. 강박증 “저도 강박증을 갖고 싶어요” 에머랄드님


(초자아가 건강한)강박성 성격을 지닌 사람은 반듯해서 대인관계나 일에서 책임감이 강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도덕, 윤리 또는 가치관이 양심적인데요. 이들은 자기 편한대로, 제 멋대로 하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 억제가 강하고, 바른 것과 그른 게 분명해서 잘못을 범하는 것은 악이라는 신념이 강합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반드시 성과나 보답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노력하는데 큰 가치를 둡니다. 모든 결과가 자기 노력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일이 잘되지 않거나 실수하면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실제로 일의 결과라는 것이 우연적 요소와 여러 요인의 연관성에 의해 생겨나기도 하는데 말예요. 자기 스타일로 일에 매진하다보니 몸에 밴 일 처리나 업무에 대한 고착이 심해서(자기고집)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요.


강박적인 사람은 융통성 없이 엄격한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기도 하는데요. 상대방이 이들의 고집을 바꾸려면 전면전이 시작되는데 재고의 여지가 없어요. 남이 자기 방식대로 정확하게 따르지 않으면 일을 맡기지 않을 뿐더러 함께 일하지 않으려고 해요. 무슨 일이든 강박사고가 강해 완벽하지 않으면 세상이 끝장 난 듯 행동해요. 선택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간과해버려서 편향된 방식으로 극단적인 판단을 해서 때론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의리가 강해서 인간관계를 맺으면 먼저 절교를 선언하지 않는다고 해요. 배우자가 어떠한 지경에 처하더라도 책임과 의무로 끝까지 돌보기도 하고요.(침몰하면 배에 끝까지 남는 유형)


영화 ‘플랜맨’의 주인공 역시 정확한 계획과 실천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인물입니다. 자신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사람 눈에는 평범하지 않죠. 신호등 건너는 시간, 편의점 가는 시간의 하루 일과를 오로지 손목시계의 알람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플랜맨’이에요. 그는 예측불가능하고 무질서하며 모순투성이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모든 일을 알람을 맞추어 계획대로 사는 평화로운 삶을 추구합니다. 단 1초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시간관념을 가진 그에게 칼 출퇴근은 식은 죽 먹기이고, 자로 잰 듯 매사 인생살이가 쉽습니다. 6:00 기상, 밤새 흐트러진 침구 다림질, 6:35 샤워, 드라이기로 욕실 물기 제거, 8:00 옷 입기, 8:30 출근, 8:42 횡단보도 건너기 등. 그에게 ‘계획 없는 삶’이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재앙입니다.


하지만 강박증자는 이렇게 하루 종일 부지런히 움직이며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지만 정작 즐기지 못하고 계획적으로 실행만 할뿐입니다. 여가활동과 친구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일과 생산성에 과도하게 몰입을 하는데요. 돌발적인 우연한 일은 불쾌한 사고나 실패일 뿐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무엇이든지 계획대로 하는 것을 좋아해서 가이드북대로 해야 하는데요. 항시 무엇을 하지 않고 못 배기는 성격이기도 해서 자신을 혹사시켜요. 완벽해지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아 하죠. 강박 신경증의 사람은 초자아가 강해 의지력으로 웬만한 일은 극복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데, 공부, 일, 스포츠, 놀이, 양육 등 모든 면에서 자기 이상을 향해 쉬지 않고 노력을 해나가요.(고행하듯이 살아가요.) 이들과 잘 지내려면(인간관계이든 일관계이든) 책임의 범위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해야 해요. 질서와 규칙에 집착하는 강박증자가 안심하고 자기역할에 몰두할 수가 있어서 과한 통제를 하지 않도록 말예요.(경계가 선명하면 과도한 책임감으로 푸시하지 않아요.)


저는 강박증자의 단점보다는 강점을 염두에 두고 과제를 꾸며 보았습니다. 자신이 자율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기준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 어떻게 하느냐를 보면 알 수가 있는데요. 자율적인 사람은 누가 시키든 시키지 않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든 혼자 있든 기본적으로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자율적인 사람은(강박적인 사람일지라도) 기본적으로 삶과 행위의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성실하게 꾸준히 잘 해요. 자율적이지 못한 사람은(강박지연도 있는 사람) 누가 지켜보거나 보상이 주어질 때만 움직이는데 말예요.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저도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늘 부담스럽고 힘들어요. 어려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하는지 지나치게 챙겨준 엄마가 있었기에(무관심 반이요.) 뭔가를 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하고 준비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매뉴얼이 있고, 누군가 강제로 시키면 하는데 혼자 알아서 하라고 하면 힘이 나질 않아요.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율성을 갖고 참여자의 기쁨을 누려보질 못한 것 같아요. 무엇이든 탐구할 마음가짐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여부와 상관없이 스스로 목표와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루틴한 일상이나 공부가 고역이 아니라 저의 정체성이자 삶의 중심이었으면 좋겠어요. 요새는 혼자 사는 사람이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 비해 더 자유롭고, 활발한 친교 활동과 다양한 네트워크에 참여해 인간관계 폭도 넓다고 해요.(심리 생리적으로 더 건강하다고 해요.) 삶의 능동성과 자율성은 불안한 조바심과는 다른 것 같아요. 능동성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지만 분함은 외부에 의해 끌려 다니는 것이니까요. 외부와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부적응도 문제이지만 외부에 자신을 맞추느라 자신에게 맞게끔 환경을 변화시켜나가지 못하는 것도 부적응이라고 합니다.


저는 쉽게 의욕을 상실하거나 질리거나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보고, “어쩜 나랑 저렇게 다르지? 나도 강박적이고 싶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족 그리고 엄마와 과도하게 밀착된 관계로 인해 힘들어 결국 상담실에 오게 되었는데요.(표면은 남편문제였지만) 우리 가족은 자율성과 관계의 충돌이 컸습니다. 인간관계란 밀착되면 의도하든 안 하든 상대에 대한 집착과 간섭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은 알게 모르게 돈, 보살핌, 힘이나 위협으로 저를 조정하셨어요. 그러하니 저의 자율성이나 개별성이 억눌릴 수밖에요.


선생님께서 코로나사태로 인해 일상생활의 루틴이 깨져서 퇴행이 일어나는 것을 보시고 솔루션으로 알람을 맞춰서 수면 시간, 식사 시간이라도 지켜보라고 하셨지만 결국은 제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할 일이 없으면 또 자버려 규칙적인 생활은 불가능했습니다. ‘플랜맨’ 주인공과 달리 저는 해야 할 일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지만 계획대로 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면서 엉뚱하게 시간을 보내버립니다. 저는 어릴 적 부모님의 지원으로 주기능인 직관을 지원받고 사용하지 못해서(발달하지 못해서), 부기능인 감정으로 살아왔는데요(과잉 활성화). 충동이 조절되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부족했던 것으로 인해 일상생활의 요구에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실제 자원을 축적할 기회가 적었던 것 같아요. 또한 제 나이에 맞는 사회생활, 관계 경험이 부족해서 사고기능이나 판단 능력 또한 키우지 못 했습니다. 열심히 하려는 겉으로 보여 지는 모습과 달리 긴장 불안 수준이 높아 침울해하고 지레 겁을 먹습니다. 무엇보다도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이 큰 것 같아요.


영화에서 플랜맨이 연애에 성공하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줄을 맞추는 습관을 멈추고 청결강박과 (시간강박)계획세우는 것을 포기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데요. 쉽지 않아 보였어요. 강박장애의 증상은 크게 특정 생각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서 끊임없이 머리에서 맴도는 ‘강박사고’와 특정 행동을 계속 반복하게 되는 ‘강박행동’으로 구분되는데, 강박사고가 주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강박행동이 더 비중이 큰 사람도 있고, 두 가지 모두가 함께 뒤섞여 있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강박행동은 자신의 손이 오염되거나 병이 옮을까 두려워 문손잡이를 만지지 못 한다든가, 손을 계속 씻는 것과 같이 청결에 집착하는 행동,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거나(이를테면 항상 알람을 맞춰서 하는 행동-세부목표, 규칙, 순서가 중요해요.), 저장강박이 있는 경우 물건을 버리지 못하거나 돈을 비축하고, 물건을 항상 선에 맞게 놓거나 잠긴 것들을 확인합니다.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성격장애는 아니고요. 일반인 중에도 상당수에서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이 있어요. 강박사고나 행동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 대인관계, 직업적 기능 등에 상당한 지장을 가져올 때 강박 장애로 진단하게 됩니다.


국내의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중 강박장애 환자는 약 1.9%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정신의학적으로도 강박장애는 불안장애의 한 종류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신경계통의 호르몬(신경전달물질)과의 관련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행복호르몬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대사되는 과정에 불균형이 생기면 강박장애가 생길 수 있고 그래서인지 강박장애의 대표적인 치료약물로 세로토닌 계통의 약물이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세로토닌 외에 우리 신경계에는 많은 신경전달물질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여러 신경전달물질들도 강박장애의 발생이나 경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들로 인해 강박장애 환자들은 완고해 보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완벽해서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지만 이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이 있다고 합니다. 플랜맨은 어린 시절 아이큐가 200 이상 되어 기억력 소년으로 방송을 출연하게 되었는데, 원주율을 외우고 피아노의 재능을 보여주어 그의 어머니는 미국 유학을 계획하게 됩니다. 하지만 플랜맨은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서 생방송에서 고의로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 과정에서 항의를 받게 되어 엄마가 사람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려다가 계단에서 떨어져 돌아가십니다. 그 끔찍한 사건에 대한 죄책감과 엄마가 어린 플랜맨에게 이야기했던 모든 것을(엄마의 소망) 지키려고 했던 배경이 그의 강박증의 근원이었습니다.


이처럼 강박장애 환자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안이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강박증자는 자신들의 그러한 생각이나 행동이 불합리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최소한 ‘머리’로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무의식에서 후회되는 과거의 상황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 모든 것을 제자리로 원위치 시키는 집착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2.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의 주인공은 강박증자일까? 강박성격장애자일까?” -다이아몬드님


강박성 성격장애와 달리 강박증은 불안장애에 속해있다. 불안장애에는 공항장애, 공포증, 범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가 포함되어있다. 강박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불안을 느낄 수 있지만 강박증환자를 따라갈 수가 없다. 강박증자는 자신의 증상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고치려고 하는 사람이다.(자아 이질성) 반면에 강박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비합리적 행동을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특성이 있다.(자아 동질성-남들이 자신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강박증은 지속적으로 떠오르고 집중을 못할 정도로 강력한 모든 시간을 소모시켜 버리는 강박사고와 강박사고를 줄이기 위해 하는 강박행동이 있다. 강박사고는 하나의 생각이고 강박행동은 충동이다.


한 예로 강박사고는 주변 환경이 더러워서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 지내는데 이들은 하루 종일 감염될 위험에 대해 걱정하고 이를 막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이런 시도가 성공하지 못할 때 그 불안감을 덜기위해 다양한 강박행동을 하게 된다. 강박행동이 시작되면 하루 종일 손을 씻게 되고 한 번 쓴 수건은 다시 쓰지 않고 버리게 된다.(하루 종일 오염을 통제하기위해 비닐장갑이나 휴지를 몇 박스씩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충동을 이겨내고자 몸부림치지만 결국 반복적인 강박행동에 빠진다. 강박증자는 신경에 거슬리며 부적절하게 느껴지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사고, 충동, 심상이 현저하다. 반복적인 행동과(손 씻기, 정돈하기, 확인하기) 정신적인 활동을(기도하기, 숫자세기, 속으로 단어 반복하기) 원칙에 따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야말로 엄청나다. 이들의 강박행동이나 강박사고의 목적은 고통을 예방하거나 감소시키고, 두려운 사건이나 상황을 방지하거나 완화시키려는데 있다.(하지만 방지는커녕 지나치게 강화된다.)


그러나 강박증자는 나름대로 이러한 불안을 억압하려고 하며 다른 생각이나 행동에 의해 중화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자신의 정신적인 산물임을 인정한다.) 강박성 성격인 사람들은 심각한 자기 의심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이들은 아동기에 부모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았고 충분히 사랑받았다고 느끼지 못하였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게 채워주었을 망정 감정적으로 지원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보다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둔다. 또는 외적인 성취를 과도하게 중시한다. 학문이나 스포츠를 비롯한 직장에서 성공하는데 있어서 목적, 준비, 조직, 생산성에 몰두한다. 어린 시절에 무관심이나 거절 받은 상처나 분노는 성장한 후에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지속적인 어려움을 준다. 이들은 정서적으로 잘해줄 수 없었던 부모에 대하여 강력한 채워지지 않는 의존 갈망과 축적된 분노를 가지고 있다.


강박증자는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분노나 의존 등이 발견되면 반동형성과 감정의 격리 같은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이런 감정에 대하여 방어를 한다. 강박성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을 부정하기 위한 역 의존적 노력(counterdependent effort)으로 자신의 독립심과 강인한 개인주의를 보이며, 또한 모든 분노를 완벽하게 제어하려고 노력하고, 심지어는 분노의 감정을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하여 지나치게 경의를 표하거나 아첨을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 때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강박증자는 자주 불안과 불행감을 느끼는데 삶을 통제하는 이유다. 강박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완벽성의 추구이다. 이들은 완벽함이라는 초월적 단계에 이름으로써 마침내는 어렸을 때 상실하였던 부모의 인정과 존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비밀스러운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성장하는 일이 많고 성인이 되어서는 무언가를 충분히 못하고 있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모가 강박증자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초자아로서 내재화되었다. 강박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일중독자’가 되는 이유가 바로 자신들이 선택한 직업에서 괄목할만한 성취를 얻으려는 영웅적 노력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랑과 인정을 얻을 수 없다는 무의식적 확신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완벽의 갈구에는 이들이 스스로 거둔 어떠한 성취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는 모순이 들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에 비해 진정한 흥미는 적어 보인다.


이들은 항상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명령을 내리는 자신의 내적 감독자에 의해 강요당하고 있다. 역동적으로 표현하면 아무런 자율성 없이 그저 초자아의 명령에만 따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다시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세우고 몰두한다. 또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를 강요할 때가 많다. 하지만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강박증자의 끊임없이 일하고 보상을 바라지 않고 몰두하는 행위는 자신의 이기심을 숨기는 방어일 수도 있다. 강박증자는 자신의 불안전함을 인정하고 야망을 포기해야 비로소 우울증에서 나오게 된다.


강박적인 사람들은 인지와 정신작용을 이상화한다. 이들은 대부분의 감정을 유치함, 나약함, 통제 상실, 혼란, 불결로 평가절하 한다. 강박사고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형식적이고 공적인 역할은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도 친밀하고 가정적인 역할이 요구될 때는 깊이가 없고 서투르다. 이들도 애정이 깃든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만 불안과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신의 부드러운 부분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감정을 나누어야 할 상호작용을 위압적인 인지적 상호작용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래서 이들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감추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강박적인 사람에게 무엇 무엇에 대해 어떻게 느꼈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생각했다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많다.


또한 모든 면에서 전적인 합리성과 논리성을 추구하며 통제되지 않은 감정이 나타나는 상황을 두려워하여 모든 일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기계적으로만 행동하려는 경향이 세다. 하지만 의외로 강박증자는 긍정적이고 매력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을 경우가 있어서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지나치게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성숙하고 배려심 많은 배우자를 찾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물론 히스테리와는 단짝이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동반한 강박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억눌렀던 감정을 깨닫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치료자를 의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료를 거부한다.(신뢰, 의존, 힘겨루기를 계속 다루어야 한다.)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권위적인 사람을 만나면 자기 파괴적이고 반항적인 행동이 두드러진다. 약물치료와 병행되는 정신치료는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


강박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 지적능력, 도덕성, 세부사항에 대한 주의력, 정직함의 장점이 있다면 치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강박증 성격장애의 모습은 어떨까? 비현실적이고 완벽한 목표를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는 거의 듣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하기 전에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수없이 바꾼다. 창의성을 잃은 채 양적인 측면만 강조하기도 하고(눈앞의 결과에만 집착하고), 모든 것을 모으기만 할 뿐 그 누구와도 가진 것을 나누지 않는다. 분노에 사로잡혀있고, 정보나 자원을 절대로 공유하지 않고, 남의 성취를 가로채고, 사람을 밀어내며(실수를 찾는데 빠르고 공격하고), 삶의 재미와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한 예로 물건을 살 때 비현실적인 기대로 서비스나 물건의 작은 부분까지 확인하고 앞으로 생기게 될 문제에 대해서까지 질문을 하면서 끝까지 살지 말지 고민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 물건에 대해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하는데 강한 저항감을 느끼고, 정당한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의한다. 사업하는 사람이 이윤을 남기는 게 당연한데 돈을 지불하는 것을 미루기도하고 내지 않기도 한다.(환불, 취소) 자신의 기대가 지나치거나 비현실적이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 기대가 무너지면 분노하고 공격적인 태도가 강렬하게 일어난다. 이때 타협은 불가능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작은 일에 앙심을(이용, 착취당했다고) 품고 문제제기를 한다.(항의, 고소, 고발)


이들의 경직된 사고와 완고함 때문에 사소한 의견의 차이는 전투로 변해버린다. 이들에게 타협은 주도권상실이 된다.(패배) 그래서 이들과는 힘겨루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의견이 불일치하면 바로 힘겨루기가 된다.) 이들과 시비가 생겨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더라도 전쟁이 벌어진다. 지옥처럼 심하게 평생 싸우던지 모든 주도권을 내어주고 조용히 살던가 해야 한다. 물론 상대방이 양보를 해도 저평가를 당하면 갖은 비난을 받게 된다.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 고유의 장점이 다 사라져 쓰디쓴 후회를 하게 된다.


성격장애를 지닌 강박증자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공감하고 감사하거나 따뜻함을 내보이는 데 인색하다. 돈에서도 인색하지만 감정에 있어서도 인색하다. 이들에게 감정적 교감을 기대하면 큰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들은 세밀한 것, 조직화하는 것, 수량화하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만 다른 사람이 가진 창의성이나 원만한 대인관계능력을 평가절하 한다.(자신을 만족시키고 맞추라는 식이다.) 상대방이 이러한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면 위협하고, 공격하고 가혹하게 아주 오랫동안 비난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영화 속 주인공인 멜빈 유달은 로맨스 소설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을 지닌 그는 다른 사람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사람들을 비꼬며 살아간다. 이러한 신경질 적인 성격 탓에 모두들 그를 꺼려한다. 강박증세가 심해 길을 걸을 땐 보도블럭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걷는다. 오염 강박으로 살아있는 강아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거나, 화장실 수납장에 각을 세워 정리된 비누로 손을 닦아내고 버린다. 현관문을 닫는 잠금 장치를 5번씩 돌려서 잠그고, 식당에서는 1회용 식기를 사용하고, 매번 앉는 자리에 앉는다. 사실 그는 강박행동으로 인해 고립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행동 속에는 “내가 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두려움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이다.


그런데 멜빈 유달은 자기 삶을 누구보다도 잘 제어하면서 살고 있다고 자부하며 불편함 없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 본다. 식당에서 자기가 앉아야할 자리에 앉은 손님을 안하무인격으로 쫓아내면서도 매번 자신의 시중을 들었던 웨이트리스가 나오지 않자 안절부절 하며 그녀가 없으면 식사를 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일을 하는데 벨을 눌러 방해했다는 이유로 강아지의 행방을 묻는 이웃에게 게이라고 모욕을 주며 상황에 맞지 않는 격한 분노를 뿜어내다가 연인인 프랭크에게 물리적으로 위협을 당하자 그는 금새 꼬리를 내리며 순응해서 강아지까지 떠맡게 된다. 이런 모순적인 주인공의 태도는 자신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처벌하는 부모에 대한 분노와 그런 부모라 할지라도 자신을 떠나버리고 버려지는 공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 사이의 갈등(분노vs순응)으로 양가적인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모습에서 비롯된다.


주인공은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 외부와의 고립을 선택했었는데 철옹성 같았던 벽에 작은 실금을 만든 사소한 경험으로 그도 발달하기 시작한다. 강도에게 폭행당해 입원한 이웃의 애완견을 돌보게 되었는데(애완견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흡족해 하는 모습에서 진짜 그가 받고 싶은 것이 관심,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와 생겨난 소소한 친밀함이 그를 좀 더 쉽게 타인과 동화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가까워지려 하면 통제감 상실로 거세게 밀쳐내는 반응을 해서 상대를 질려버렸을 테니까 말이다.(출판사 직원이 그의 작품에 호감을 느껴 존경의 눈빛으로 찬사를 쏟아내자 그는 온갖 독설로 그 직원을 녹다운시켜 버렸다).


강박증자인 멜빈 유달은 감정이 참 서툴다. 영화 속에서는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주인공이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면서 틀릴 때 마다 어머니가 회초리로 주인공의 손등을 때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멜빈 유달의 어머니는 처벌적이고 가혹했던 것 같다. 그런 어머니는 아이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아이를 감정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다.


강박증자는 해결해야하는 문제 상황이 예상되면 생각해서 최고의 해결책으로 일을 끝마친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 인간관계에서는 감정의 교류, 공감이 중요하다. 여자를 힘들게 꼬셔서, 여행까지 가서, 넥타이에 자켓 드레스코드까지 장착하고 그녀에게 하는 말 “나는 옷을 사 입었는데 넌 입던 옷이나 입고 나오게 했네.” (나름 그녀가 신경을 써서 입은 옷인데-제너럴 디스크렙션이라고 생각해서) 라고 폭탄발언을 한다. 물론 칭찬이다.(여자에게 칭찬으로 얼굴 크다고 말했다고 생각해봐라.) 주인공은 미리 계획을 세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했지만 융통성 없는 그의 계획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어떻게든 겨우 상황에 맞추어 멋진 식당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여자의 칭찬해 달라는 요청에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라는 말로 감동을 주었지만 이내 춤을 추자는 말에 또다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그는 감정이라는 것 자체를 불편하고 불유쾌한 것으로만 받아들여서 자신의 감정을 세세하게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타인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해 쉽게 관계가 깨졌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은 이웃에게 자기 방을 내줄 정도로 강박성이 옅어졌기에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항상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캐롤 코넬리는(웨이트리스) 멜빈을 안쓰러워하면서도 존중한다. 누군가의 공감을 받는 일은 정서적 안정감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멜빈은 강박증자답게 캐롤 코넬리의 조건, 돈, 환경을 보지 않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 그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주목한다.(유일한 사람의 의미다. “내가 가진 것을 본 것이 아니라, 나 자체를 본 사람”) 그녀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열심히 무엇이든 정성스럽게 해내는 그의 모습은 정말 섹시할 것이다. 그리고 행복할 것이다.


사실 강박증자는 바쁘게 생활을 통제해가면서 자신의 경험을 느끼거나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함으로써 우울증을 감춘다. 우울증의 고통과 맞닥뜨리지 않게 위해 자기 성찰을 피하고 정서적 경험과 소통하지 않는다. 강박적으로 바쁘게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고통스런 감정과 고민되는 생각들을 감추는 것이다. 강박증 행동은 우울증과 정반대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저변에 깔린 슬픔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강박적인 행동을 못하는 사람은 중독이 되기도 한다. 위장된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뭔가를 하지 않고 있으면 자기안의 어둠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피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우울증을 감추는 과잉활동의 특성은 사소한 일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현대에서는 과잉활동을 이익이 되는 훌륭한 것으로 평가한다. 일중독을 통해 얻는 이익은 명백하다. 더 많이 일하면 일할수록 많은 돈을 벌고 찬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강박적인 과잉활동을 통해 많은 보상을 얻어낼수록 마음 저변의 우울증과 접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내면의 진정한 가치나 흥미로부터 멀어진다. 우울증을 숨기는 사람일수록 피상적인 대인관계만하고 어떠한 진실한 관계를 하지 못한다. 불행하게도 우울증을 덮고 있는 가면은 쉽게 깨질 수 있는데 지나치게 매달리고 몰입한 일이 망쳐지면 심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살충동을 느끼게 된다. (물론 강박적인 몰두를 하는 일 외에 매사 지루하고 공허하다.) 강박증이라는 표면 아래에는 이렇게 취약한 감정이 있다. 그러한 감정을 숨기려고 하기보다 직면해야지만 자신의 삶을 잘 통제할 수 있게 된다.



3. 강박증 스터디 - “실수하면 안 되니까 안 해. 나는 상처 받는 게 싫어. 그래서 아무것도 안할 거야.” -아쿠아마린님


강박증은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행동을 주저하는 이유는 완벽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것들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실수 없이 잘하려는 성취감이 강해서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에는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모든 상황을 편리하게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그 결과 여러 시도를 하지 않게 되어 정체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강박성향의 사람은 뭔가를 잘해야 한다고 사고하지만 독단적이고 융통성이 부족해서 어떻게 보면 정서적, 인지적으로 외부와 차단되어있다.(그래서 외롭다.) 찬사나 칭찬을 받기 위해 미루는 이들의 모습은 겉에서 보면 우유부단해 보이기도 하고 감정표현에 인색해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일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혹시 엉뚱하게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계속 생각하므로 쉽게 불안해지기 때문에 어떤 일을 과감하게 시작하지 못하고 미루고 꾸물거린다. 역시 이러한 양상은 미루기와 회피와 같은 저항의 모습이다.


나는 강박증 성격구조일까 한 참을 고심하였다. 강박증자의 실행 기능이란 과제를 실수 없이 능률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이다.(멘탈 갑이다.) 반면 나는 집중력과 끈기가 약해서 사실 오랜 시간동안 집안일 등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고 노력해도 마음만 앞설 뿐 꼼꼼하게 실행하지 못했다. 강박증자처럼 내가 저지른 과거의 행위를 끝없이 후회하거나 이미 벌어진 일이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지도 않는다.(지적을 당하면 수치심을 느끼지만 민폐를 끼쳤다는 죄책망상이 없다.)


강박증자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에도 역경을 극복해내면서 더욱 씩씩해지는 사람들이다. 일상 속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일일이 반응하지도 않는다.(누군가 불쾌감으로 지적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질서와 규칙을 좋아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헌신하는 경향이 높은 주체성이 강한 사람이다.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타인에게 의지 하는 의존형 사람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주체적이지 않으면서 주위 사람을 배려하다 보면 그로인한 저항심(반항심)과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일어난다. 그러다가도 상대방이 싫어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의견이나 생각이 충돌하지 않게 하기 위해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맞춰서 행동하다가 꼭 탈이 난다.


강박증자는 나의 우유부단과 의존심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명백하게 불이익이 되거나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일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강압적으로 요구당하면 마음에도 없으면서 어떤 일을 추진하고야 만다. 구태여 희생을 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일단 사람을 (한 번 믿고)의존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 같다. 나 자신을 과소평가해서 실제로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는 잘 해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강한 의지를 지닌 존재에게 기대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강한 의사를 지닌 존재에게 자꾸 지배를 당하게 된다. 어렸을 때 지나치게 억제하면서 엄마의 기분을 살피면서 살아온 모습이다.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엄마가 잔소리가 심하고 부정적인 말로 나의 주체성을 침해해서 그렇다. 나는 상처를 받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뭔가 열심히 하지 않는 이유도 남들보다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아예 시도조차 꺼릴 때가 많다.(귀찮다고 합리화하며 매사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 많다.)


차라리 하지 않고 버티면 무능력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대신 회피전략을 선택한다. 회피성이 강해 비판이나 비난, 거절, 인정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타인과 접촉해서 처리해야 하는 활동을 몹시 부담스러워 한다. 때로는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사람과는 아예 관계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창피를 당하거나 조롱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가까운 사람들 외의 관계는 피해버릴 때도 있다. 타인에 비해 열등한 사람이라고 느껴서 사회적 활동에서 비판받거나 거절당하는 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인간관계가 부정적일 수 있음을 우려해서 대인관계를 억제한다.


당황스러워하는 것을 남에게 들킬까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일에는 대체로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일도 하고 싶지 않아 한다. 최근에 분석 중에 꾼 꿈이다. 대학 축제에서 장기자랑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사실 나는 집에 가고 싶다. 내 옆의 젊은 친구는 자기표현도 잘하고 노래도 잘한다. 그러나 나는 요즘 노래도 도통 모르겠고 축제나 사람들 사이에 거리감, 소외감이 느껴져 괜히 남은 것 같아 핑계대고 그냥 가야하나 고민을 한다. 결국 노래도 못 부르고, 춤도 못 추고, 자기표현도 못했다. 나 자신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게 정말 싫다. 나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즐거워 보인다. 위축되어서일까? 괴롭고, 외롭고, 힘들고, 불편하고 불쾌하다.


꿈속에 내 모습이 유약하고 회피적으로 보여 창피하다. 겉으로는 수줍음이나 거만함 때문인 것 같지만(계속 판단하고 짜증내고 있는 모습) 사실은 실패하거나 비난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매력 없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나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엄마로부터 감정적인 학대인 수시로 쓸모없다는 말을 들어서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표현이나 태도는 나를 움츠리게 하므로 사람을 대할 때는 최대한 긍정적인 표현과 태도를 보이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나는 왜 외부의 자연스러운 상황이 강압으로 느껴져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엄마관계에서 형성된 강압, 과보호, 징벌, 거부의 경험에서 비롯된 무기력과 반항심의 모습 때문에 그렇다.


매사 더 잘하려고 노심초사하는 것 또한 (우물쭈물하는 모습) 엄마의 강압적인 부정적인 경험이 지금 현재에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선생님이 해석해주셨다. 꿈속의 나는 참 유약하고 충동적인 사람이다.(뭔가를 제대로 못하는 모습) 삶을 즐기지도 못하고, 매사 지루해하며 인내심이 부족한 것도 과보호해주던 엄마의 영향을 역시 벗어나지 못한 상태를 말해준다.


나는 왜? 어딘가에(현실에서나 꿈에서나) 제대로 소속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일까? 한 참을 고민해보았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태도는 엄마가 거부했던 방식을 나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의 유약한 모습은 충동적인 행위, 발끈하는 성격, 다른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부족한 것이다. 저항감은(매사 제대로 안하려는) (나를 닦달했던 부정적인 엄마 상)엄마에게 하는 보복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결국 불만족 상태가 되어 다시 무기력해진다. 나는 성인인데 적극적으로, 곧바로, 제대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지 못한다.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대신 늑장부리고 회피하고 딴청부리며 소극적인 저항을 한다.


어릴 적부터 무서운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탈이 났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반항하는 전략이 세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적극적으로 곧바로 행동하지 못한다. 엄마의 부정적인 자극으로 인해 나는 여러 가지 일에 열의가 생기지 않아 참여하는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때론 만족해하는 일도 하기 싫어하고 불평이 많다. (게을러 노력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다고 우긴다. 항상 무기력과 저항은 세트다.)


스타디 과제를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으로)여러 자료를 찾고 요약하는 노력을 하기 전에 완성에 대한 저항감으로 어려워 못하겠다고 한 동안 투털 댄다. 목적이나 목표를 향에 에너지를 쓰는 것에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서이다. 대신 하는 척만 함으로써 모든 일을 무마시키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게 몸에 베여있다. 해야 할 일을 두고 빈둥거리고, 늑장부리는 여러 가지 반항은 절로 일어난다. 과제는 또 매번 새로운 시도라서 몰입하는 에너지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선생님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못하면 실패했다는 생각에(수치감에) 회피하려는 저항이 일어난다.


책의 강박사고에 대한 자기 점검표에서 “당신은 조절되지 않는 반복적인 생각이나 어떤 일을 걱정하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날까봐 끊임없이 걱정하는가?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불안을 경험한 일이 있는가?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확인하고 요구하는가?”라는 항목에서 내가 강박사고를 가지고 있구나를 알게 되었고 생활 속 사례가 떠올랐다. 나는 어릴 적부터 청소년시기까지 늘 버스를 타기 전에 화장실 가는 버릇이 있었다. 가까운 거리를 가도 왠지 버스를 타려면 화장실 먼저 다녀와야 한다는 걱정을 한다. 어린 시절 원주 외갓집을 오고 가는 시외버스를 탈 때마다 엄마가 화장실에 안가면 차에서 오줌 싼다고 겁을 주면서 그로 인해 일어날 창피함에 대한 이야기와 만일 곤란한 상황이 일어나게 되면 버리고 간다고 무섭게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화장실을 가고 안가고의 문제가 아니라 적대적인 엄마로 인해 그 상황이 무서웠었는데 “엄마 때문이야.”라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대신 당시 그 불안이 통째로 무의식에 숨어들어 “버스에 타면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봐 안달복달하는 강박적 사고”가 형성되었다.


또 나는 강의를 듣거나 미사를 드릴 때 정해진 내 자리가 있다. 누가 내 뒤통수를 바라본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불안한데 서로 마주 앉거나 동그랗게 앉을 때는 괜찮은데 일렬로 앉을 경우에는 뒷자리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비판하고 평가할 것 같은 강박사고가 일어난다. 어릴 적 외갓집 식구들과 물놀이를 갔는데 엄마가 내 뒤에 앉아 있었다. 친척 언니들과 놀면서도 엄마의 말에 신경을 쓰게 되었는데 엄마가 이모와 외숙모들에게 내 욕을 하면서 나를 향해 주먹질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보게 되었다. 그 때 모욕을 받고 느낀 수치심과 엄마말만 듣고 나를 나쁘고 못되게 쳐다보는 시선과 엄마 힘들게 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에서 굉장한 수치심을 느꼈던 경험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늘 나 외에도 어떤 당사자를 앞에 두고 뒤에서 소곤소곤 욕을 하고 당사자에게는 웃으면서 “너 잘한다는 말이야.”라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셨다.


나는 가장 믿고 싶은 대상에게서(엄마) 소외를 겪어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고 뭔가 함께 하는 일은 긴장이 일어나서 부담이 크다. 그래서 혼자 고립되는 게 편하다. 몇 년 전에 성당에서 미사 전례 해설을 하였는데 첫 해설에서 긴장을 해서 목소리가 많이 떨렸었다. 그 이후 마이크 앞에만 서면 잘못할 것 같고 틀릴 것 같은 강박사고가 일어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끊기고, 쉰 목소리가 나서 진행이 매끄럽지 않았었다. 이비인후과 검사에서 목을 많이 써서 성대과용과 긴장성 발성장애라 진단받아 음성 치료를 몇 달간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진단받고 목상태가 안 좋아서라고 외부 귀인을 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음성 치료 선생님이 목의 상태가 소리가 안 나오거나 떨릴 정도는 아니라며 목소리를 낼 때 자기 소리에 책임을 안 지려하는 것 같다고 심리적인 문제 아니냐는 피드백을 받았다.


해설 봉사를 그만두고 생각해보니 신부님에게 엄마 모습이 투사되어 언제나 과하게 긴장을 했었고, 전례의 완벽함을 바라는 신부님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회피하고 싶은 저항이 처리가 안 되어 높은 불안이 일어났던 것 같다. 항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주변과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며 결국 내게 불리한 조건을 선택한다. 비난, 반대, 거절이 두려워 중요한 사람들과의 교제나 활동을 피하고 나를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과 어울릴 수가 없고,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창피당하거나 비난받을까봐 조심한다. 늘 곤란해질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런 내 태도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맞춰야 생존할 수 있었던 내 삶의 방식이다. 나는 엄마의 영향으로 무기력과 미루기, 회피 같은 저항이 엄청나다.


두 번째 꿈이다. 나무가 있었는데 크고 울창해서 그 나무에 아래에 서니 하늘이 안보였다. 그 나무 밑에서 그게 다인 줄 알고 있었는데 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그런데 푸른 하늘이 좋은 게 아니라 싫고 섬뜩했다. 사실 나는 스스로 인생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도 개척하지도 못한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바로 그 사람에게 확인을 받고 그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한다. 나에게 들어온 정보를 믿어도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없다. 그 결과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여 주어진 지시대로만 행동한다.


물론 내가 책임지고 싶지 않은 이유도 크다. 그래서 힘센 누군가 뭔가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맡겨 버리다가 낭패를 보곤 한다. 무방비 상태로 상대방의 말과 요구에 귀 기울이고 따르고, 경계가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리분별이 되지 않아 감정만 억울할 때가 많다. 강한 의사를 지닌 존재에게 지배되기 쉽고 심지어 스스로 나서서 그런 자리와 상황을 적극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나는 엄마로부터 홀대 받았던 경험과 부정적인 말이 인이 박혀 관계에서 도무지 안심을 할 수가 없다. 지금도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불안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도 부모와 똑같은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 뿐이다. 나를 통제하는 힘 있는 존재가 선의를 갖고 이익을 주는 존재라면 다행이지만 교활한 사람이나 타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용당하거나 거부당하고 만다.


나는 변덕스러운 엄마로 인해 평생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이전의 규칙이나 틀을 믿을 수 없게 되며 진행해야 할 방향이나 믿어야 할 기준을 쉽게 잃어버린다. 예측된 사건이 안정제로 작용하는 것과 달리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불안감이 상승된다. 세뇌로 인해 쉽게 믿고, 의존하다가 갑자기 하고 싶지 않아 저항하면서 불안감에 휩싸이는 게 나의 강박사고의 패턴이다. 이러한 혼란상황에 빠지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나 자신을 돌이켜보기보다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보기 위해 두려움에 떨며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런 심리 상태에 놓여 긴장이 높아졌을 때 불안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타협하고 상대가 말하는 대로 따라가게 된다.


결국 나는 문제가 없고 상대방이 문제인 셈이다. 문제와 마주 서기를 피하고 핑계만 생각할 때 지적을 당하면 강하게 저항하고 부정하게 된다. 누군가로부터 단정하는 말을 들을 때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다가도 강한 반발심이 일어나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 어려웠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아 발전하지도 못했다. 선생님이 무서웠던 이유도 나의 (모순)비리를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새 상담관계뿐만 아니라 스타디라는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어서 일까 선생님의 부정적인 표현이나 태도라고 여겨졌던 피드백이 수용이 되기 시작했다. 어떤 변화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저항성 때문에(나는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말귀도 어둡고, 내용보다 뉘앙스나 태도가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만 살폈던 것에서 벗어나 선생님과 함께 나의 장점과 단점을 아우르고 있다.



4. 바닥보다 더 깊은 침체(루비님)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하는 힘’, ‘의지와 상관없이 의미 없는 무언가 반복적으로 행동하거나 생각하는 현상’이라고 설명되는 강박 증상이 나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엄마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서 무의식중에 나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강박증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반항하고 상처를 주면서도 현실에서 도움을 제대로 받았다면 나 자신을 망치고 벌주는 모습으로 살진 않았을 것 같다.

 

나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 모순된 엄마를 부정하고 내 인생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어떻게든 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강박행동이라니.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기도 했었지만(엄마는 나를 멸시하며 지긋지긋하다는 태도를 보이셨다.) 내 정신 안에서 사는 엄마가 ‘넌 하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매사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부모에게 직접적인 보복이 어려우면 자신을 망치고 힘들게 해서 간접적으로 부모에게 고통을 준다고 한다. 엄마 죽이기는 자기 죽이기로 이어진다.)

 

엄마로부터 안도감을 얻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껴서 그런지 나는 쉽게 상처를 받는다. 늘 상처받고 손해만 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부정적 반응이 공포수준이다. 쉽게 상처받는 성향은 우울해서이기도 하지만 분노가 더 큰 원인일 것이다. 나는 쉽게 분노하지만 그 분노를 의식에서 이성으로 잘 통제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비합리적인 강박사고와 행동이 어마어마하게 일어난다.(강박증은 분노의 모습이다.)

 

오랜 시간 정신분석공부를 하면서 분노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나는 분노를 표현하고 조절하는 것을 전혀 배우질 못했던 것이다. 나는 화가 나면 문제해결이 되거나 관계가 원만하게 처리되질 않는다. 분노로 분란을 일으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인해 불안정해지곤 했었다.(과거에 매우 그랬다.) 엄마 또한 자기부정이 강한 거친 분이시다. 성격이 불안정하셔서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해 두려워했으며 사랑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모순된 감정에 시달리며 지내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강박증상의 원리) 내가 지닌 심한 강박증은 엄마가 살아온 비합리적인 삶의 방식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 엄마의 문제가 있는 행동에 솔직한 표현이 어려워 엄마가 하는 대로 순종하면서 내사한 것이다. 지금 현실에서는 엄마가 측은해서 잘 해드리고 싶으면서도 상반되게 혐오와 적대감이 생겨난다. 나는 여전히 엄마가 힘들다. 떨어져 있어도 엄마에 대한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와 일체화된 상태에서 아직 미분화되어서 그렇다.

 

분석에서 나는 일생동안 잘하고 싶은 마음과 망치고 싶은 저항의 마음이 충돌하며 삶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일상은 잘하고 싶은 마음과 망치고 싶은 반항 심리가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와 ‘하기 싫고 망치고 싶은 나’도 서로 싸우고 있다. 아침 알람에 맞춰 눈을 뜨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나는 일어날 마음이 없다. 한참을 상념에 빠져 뒹굴 거리다 마지못해 일어난다. 꼭 해야 하는 일이(남편과 아이의 도시락 싸는 일) 아니면 계속 누워 있을 거 같다. 다행히 아침을 준비하면서는 부정적인 기운은 사라져 하는 일에 열심이다. 반주나 성가를 불러 달라고 부탁을 받을 때가 있어 평소에도 연습을 해야 하는데 피아노 앞에 앉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안 해도 되는 딴 짓을 하다가 가까스로 피아노 앞에 앉는다.

 

강의를 듣거나 과제를 해야 하거나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해야 할 때도 한참을 멍 때리고 있거나 쓸데없이 전화로 수다 떨거나 스마트폰을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다행히 해야 하는 일을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지루한 느낌이 있긴 하나 예전과 달리 시작하고 나면 애를 쓰는 힘은 생겼다. 나는 뒷배가 약해서 어떤 일이든 소극적이고, 도전을 겁내고, 대인관계이든 몸을 움직이는 일이든 지식탐구든 외부세계를 탐험하는 일이든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고 포기하며 살았다. 나는 우울감과 공허감으로 인한 불균형한 자기애와 정체성의 문제가 있는데, 진로적성, 연애, 결혼, 육아에 그 악영향을 주었다. 삶의 중요한 시기마다 나의 미해결된 모습과 마주해야했기에 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세대의 비극이다.)

 

나의 의무감이나 결벽증은 모성의 온화함과는 거리가 있다. 모성이 강할수록 고집이나 결벽은 사라지고 포용력이 크다고 한다. 이는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 생리적인 메커니즘의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모성이 충만하면 성격이 온화하고 관대하다고 한다. 모성을 바다에 비유하는 것은 아마도 모든 것을 수용하는 엄마의 마음이 넓어서일 것이다. 모성의 본질은 적절함과 커다란 포용력이기에 엄마가 되면 인내가 필요한 육아를 견뎌내고 기쁨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괴롭히는 존재가 되면(강압적으로 통제하고, 조정하며, 협박하고, 모욕주고, 나쁜 아이라고 비난하면) 모성의 원래 모습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질된다. 적절함과 포용 대신 결벽과 강박으로 아이를 괴롭히면 아이는 괴물이 된다.

 

그럴 때 엄마는 가시나무로 덮인 험한 산의 혹독함을 준다고 한다. 모성은 이해관계나 결벽증이나 통제감과 정반대되는 성질이 있다. 모성이 부족할수록 결벽이 심하고, 완벽주의가 강해서 사소한 문제에 민감하고, 처벌적이고, 적대적이고, 비난하고, 배타적이라고 한다. 상담 초기에 선생님께 그렇게 나 자신을 우선으로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면 모성이 사라진다고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다. 사실 완벽을 추구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배제시켜버리는 게 안전했기 때문에 내 아이와 다른 사람입장에서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했었다.)융합적인 나에게 모성적이고 공감적인 접촉이 없다는 선생님말도 청천병력이었던 기억이 있다.

 

정신증 성격구조를 지닌 엄마에게 어떻게든 안심할 수 있는 구석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살아왔다. 엄마를 갈망하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과 그렇게 하는 게 위험하고 불안전하다는 모순된 상황에서 행동과 마음이 상반되는 상태가 몸에 배고, 분노까지 쌓여 즐겁고 행복해야 할 순간이 늘 무겁게 느껴지고 머지않아 나쁜 일로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불안에 갇혀 지냈던 것 같다.(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살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했다.) 더욱이 엄마가 매우 약하고 불안정해서 맹목적인 신앙에 의지를 하셨는데 적당한 수준이라면 해롭지 않지만 삶의 중심이 될 정도로 집요하게 편집적인 신앙에 빠져 계신다. 원래 불안정하고 미약한 사람에게 신앙이라는 강압이 더해지면 더 편협해진다. 이런 예는 주변에 넘쳐난다.(자신만의 도덕성만 강요하는 것도 강박이라고 한다.)

 

또한 강박증은 그만 해야 하는데 멈추지 못하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멈추지 않는 괴력을 부리기도 한다. 청소나 정리가 시작되면 중간에 쉴 수도 있고 힘들면 다음에 할 수도 있는데 나는 쓰러질 때까지 멈추지 못해서 일을 끝내 놓고는 번 아웃이 된다. 탈진이란 피할 수 없는 압박을 느끼면서 동시에 만족감을 찾을 수 없을 때 경험되는 상태이다. 평소에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영어 강의를 듣는 일과 노래를 연습,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다.

 

어쩌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건너뛰게 되면 맥이 끊겨서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생각도 안 난다. 나중에 후회와 자책을 하며 다시 결심하지만 강박 때문에 유연성이 생겨나지 않는다.(물론 무가치하다는 감정도 일어난다.) 이런 점 때문에 뭔가를 끝까지 제대로 해내는 게 어렵다. 사람들한테도 ‘열심히 해 볼게요’, ‘그래도 힘을 내서 해야지’, ‘이렇게 해 볼까?’ 머릿속에서 결심과 좋은 계획도 세워보지만 막상 그 날이 되면 이렇게 저렇게 미루는 바람에 못하게 될 때도 많다. 딸의 몸을 만드는 것은 엄마의 말이라고 한다. 엄마가 본인의 갈등을 해결하기위해 만들어낸 잔혹한 말이 주입되어 새겨지면 엄마의 말을 고스란히 따르며 살게 된다고 한다. 게으른 모습이든 지독한 모습이든 말이다.

 

어쩌면 엄마의 내재화된 지독한 독설을 지우기 위해 쓰러질 때까지 강박행동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에 와서 마트에 장 보러 다니는 일이 신나는 일 중 하나였는데 이젠 가기 싫은 곳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돌고 나서부터이다. 사람들로부터 바이러스가 묻어 왔을까봐 장을 보고 오면 옷은 모두 벗어 세탁기에 넣어 버리고 사온 물건들은 전부 소독을 하고 물로 헹군 뒤에 사용한다. 택배가 온 물건들도 장갑을 끼고 만지고 소독 후 집에 들인다. 모든 사람이 나를 위협하는 존재로 느껴져서 마음이 괴로울 때가 많다. 마스크 쓰는 것을 귀찮아하고 손 씻는 것도 물로만 대충 씻는 남편을 한동안 감시했고 폭풍 같은 잔소리를 해댔다.

 

마트에서는 장갑을 끼고 일하는 직원에게만 가서 계산을 한다. 나는 지폐를 만져도 오염불안에 손을 닦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손잡이를 잡아야 하니 장갑을 끼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동물건은 언제나 꺼림칙하다. 빨래하는데 세탁기를 두 세 번씩 돌린 적도 많았다. 거품을 한 가득 만들어서 뜨거운 물로 빡빡 씻어내는 설거지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씻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쓰니 피곤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찜찜함을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여행을 가거나 오랜 시간 집을 비워야 할 때 호텔같이 집안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집에 돌아와서 안정감과 기분 좋음,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서다.

 

나는 우리 연구소를 좋아하는데 특히 일렬로 잘 정리되어 있는 책꽂이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안정감이 든다. 우리 집에도 여러 물건들이 있지만 책꽂이만큼은 늘 잘 정리 되어있다. 가스레인지 잠그는 것, 문단속하기, 자동차 문 잠그기 확인하는 것은 예전만큼 심하지 않지만 그래도 신경을 쓴다. 특히 누군가에게 메시지로 숫자를 보내야 하거나 서류에 숫자를 적을 때 몇 번이고 반복 확인해서 보내거나 적는다. 예전에 센터를 운영할 때 카드 단말기에 금액을 눌러야 할 때도 숫자를 몇 번이고 확인하고 영수증도 재차 확인했다. 장부를 정리하는 일도 몇 번씩 확인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다. 참 신기한 건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도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 당연히 내 방식대로 일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한다.

 

이렇게 나의 가장 큰 어려움은 불안인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수행했는지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계속 반추하고 이 때문에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며 꾸물거리다가 실수가 두려워 결국 시도 자체를 미룬다. 외부에서 보면 나는 무능력하게 보이겠지만 나는 작은 결함이나 실수에도 큰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의무에 이끌려 행동하다가도 내가 서투르거나 무력해지기에 아이처럼 자괴감에 쉽게 빠진다. 자기 긍정감은 통상적으로 엄마가 보강해주지 않으면 정착이 되지 않는다고 배웠다.(과대자기 축) 가장 오래 곁에 있는 어른에게 무조건적으로 긍정 받은 경험이 건강한 자기애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딸의 인격이 형성되는데 있어서는 엄마의 말이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는 오늘도 엄마의 저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강박행동을 한다.

 


5. 강박증자는 행동의 주체자가 아니다.(진주님)

 

강박성 성격은 강박사고-강박행동, 강박사고 그리고 강박행동 성격구조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강박사고-강박행동 성격구조는 사고와 행동이 그 사람을 움직이는 주된 동력이 되는 반면 느끼고, 직관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찾아가면서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진 않는다. 강박증자의 능동성이나 자율성은 조바심에서 나오는데 바쁘게 뭔가 하고 있는 모습은 열정이 아니라 불안 때문이다.(행동의 주체가 자신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은 빠져있다.) 강박사고 성격구조는 생각이 심적 에너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행동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특성을 보이나 지적 활동에서 쾌감과 자존감을 얻지만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압력은 느끼지 않는다. 반면 강박행동 성격구조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과제를 달성함으로써 만족을 느끼지만 지적인 정교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Freud는 강박증을 항문기 배변훈련과 관련지어 설명하였는데 배변훈련 시기에 아동은 처음으로 사회의 기대에 순응하도록 요구받는다.(자기의 본능적인 배설에 대해 외부 통제를 받게 된다.) 이때에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마음대로 충족 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한다. 배변훈련 시기에 아이가 수차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할지라도 부모는 너그럽게 받아줄 필요가 있는데 부모가 강압적이거나 벌(모욕)을 준다면 아이의 마음속에 부모 대상에 대한 분노와 공포가 생겨난다.

 

이런 경험과 환상을 자기의 일부분으로, 즉 나쁘고 가학적이며 더럽고 수치스러운 자기의 부분으로 느끼게 되기 때문에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으로부터 통제당하는, 지시받는 것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가 존재하면서 동시에 규칙이나 선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받게 되는 비난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복종하는 경우 구두쇠, 청결, 질서, 정돈, 정확성 등의 항문기 강박 성격이 형성되고, 부모에 대한 반항이 큰(항문기 폭발 성격) 아이에게는 불결, 고집, 낭비(성문란), 어지럽히기, 신뢰성 결여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의무감이 강한 사람인 강박증자는 정서를 억제하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회피하며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리는 합리화하는 특징이 강한데 이들에게 언어도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감추기 위해 사용된다. 임기응변을 잘하지 못하고 정해진 문구나 대사가 아니면 말하는 걸 불안해한다. 무엇이든 교과서대로 하는 것을 좋아해서 우연히 무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격한 질서와 규칙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것을 어겼다고 생각되어지는 경우에 화를 내는 것은 정당한 것으로 여기며, 엄격한 초자아의 영향으로 자신에 대해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도‘더’를 요구하게 되면서 쉽게 만족감을 느끼지 않는다. 일 중독자가 되어 한계가 없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함에서 오는 수치심으로 괴로워한다. 변화가 적은 시대에는 이런 삶의 방식이 높게 평가되어 강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민첩성과 유연성이 욕구되는 현대에는 융통성 없는 기질이 불리하게 작용하여 활약할 무대가 제한되기도 한다. 하지만 신경증에서는 병리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정도가 적고 자신만의 고통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사실 강박증자의 무의식에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거나 자신의 윤리, 가치관과 충돌하고 자아상을 해칠 만한 생각과 감정이 숨겨져 있다. 참기 어려운 욕구, 차마 인정할 수 없는 분노, 시기와 질투, 수치심이 강렬해서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 말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정서적인 궁핍을 모른 체하면 현재의 불편하고 불행한 생활의 원인을 알아차릴 수가 없다.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성격 측면을 못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그 견디기 어려운 내용물을 어떻게 피할까? 사소해 보이는 일 때문에 감정이 폭발하고 나면‘내가 이런 감정을 계속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구나’하고 불현듯 알게 된다. 하지만 힘든 감정을 지속적으로 눌러버리면 내면이 황폐해지고 처세능력 또한 떨어진다. 과도한 방어기제는 자신의 격한 감정을 전혀 다른 곳으로 표출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하게 가로막는 기능을 한다. 강박성 성격은 감정의 격리(강박사고), 반동형성, 취소(강박행동)와 같은 1차적인 방어기제부터 기능 수준이 높은 방어기제인 치환, 도덕화, 구획화, 주지화, 합리화, 이타주의 등을 사용한다.

 

습관처럼 자주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한 사람의 성격전반에 영향을 준다. 과한 방어기제로 삶을 일관하면 자신의 욕구를 외면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정에서건 친구 관계에서건 감정의 원인을 알아보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강박증자는 자만심이 지나쳐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방어기제는 무의식적이라서 반사적이고 한 순간의 고통을 피하기만 하면 그뿐 그 뒤에 어떤 파장이 일어날 지 고려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강박증자의 인생이 밋밋하게 느껴지거나 따분해 보이는 것은 억압이 강하게 작동되기 때문이다. 감정이 끼어들 자리 없이 아주 논리적인 태도로 인생을 살아간다. 큰 상실을 겪었는데 별 다른 느낌이 없다 던지, 모욕적이고 불쾌한 일을 당했는데도 대응하지 않는다던지, 목표를 달성했는데 흡족한 기분이 들지 않아 한다. 하지만 감정은 모든 대인관계의 생명선이기 때문에 이들로 인해 배우자, 친구, 동료는 제대로 감정적인 이해를 받지 못해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준과 규칙, 가치, 윤리, 도덕을 엄격히 지키고, 자신과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과 의견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가 되거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범위가 좁다. 딱 잘라 사람을 거부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경직적인 태도를 보이는 강박증자를 떠나기도 한다.

 

사람들이 부정하는 가장 흔한 감정 중에 하나가 분노이다. 분노의 치환은 원래의 대상에서 합법적인 대상으로 분노를 돌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면서 분노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면에서 강박증자에게 유용하다. 또한 강박행동적인 사람은 용납할 수 없거나 죄책감을 일으키는 행동, 사고, 감정을 상징적인 방법을 통해 무효화시킨다.(피해를 무효화시켜 원상복귀하려는 의도) 강박적인 행동 자체는 해로울 수도 있고 때로는 이로울 수도 있는데, 강박적인 이타행동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반동형성 방어기제는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나 충동을 정반대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지나친 공손함이 어색하게 느껴질 경우 반동형성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행위를 보다 허용 가능한 것으로 해석하는 합리화도 반동형성이다. 강박적인 사람은 양심적이고, 까다로우며, 아끼고, 부지런한 것은 무책임하고 지저분하며, 낭비하고 싶고, 반항적이고 싶은 소망에 대한 반대경향이고, 이들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합리성은 충분히 감추지 못한 미신적이고 마술적인 사고에 대한 반대경향이다. 반동형성은 양가감정을 견디지 못하는데서 오는 방어라는 점에서 강박적인 사람은 반대되는 두 측면 모두에 고착되어있다. 협력과 반항, 자발성과 게으름, 청결함과 지저분함, 질서와 부질서함, 검약과 낭비 등. 강박 행동적으로 조직된 사람은 누구나 엉망진창인 서랍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강박 성격의 사람은 부모와 어떤 대상관계를 하였을까? 우선 어릴 때부터 자녀의 모든 생활을 엄격히 통제하고자 했던 양육자와의 경험이 있다. 유년시절 과도한 관심을 받아서 어른이 되어가면서 진짜 자의식을 발전시킬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고, 부모의 지나친 높은 기대 때문에 오히려 존중받는 느낌을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감정이나 생각은 충분히 받아들이고 관찰함으로써 효과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고, 행동은 상황에 맞게 다루어져야 하는 영역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통제 당하게 되면 반동형성과 같은 방어를 하며 살아가게 된다.“너처럼 다 큰 여자애라면 엄마를 좀 더 도울 줄 알았다”와 같이 죄책감을 유발하는 도덕적인 말로써 자녀를 통제하는 양육자 경험이라든지 감정을 배제하고 옳고 그름, 규칙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부모의 언어는 아이를 옥죄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둘째, 양육자로부터 지도와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경우이다. 자녀는 가족보다 더 큰 문화의 이상적인 행동과 감정의 규준을 참고하여 이에 맞추어 살아가게 된다. 아이는 먼저 가족 안에서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규준들을 경험하면서 유연성 있고 현실적응적인 규준을 배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규준 자체가 추상적이기도 하고 인간적인 균형감각에 의해 완충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가혹한 강박 성향을 소유하게 된다.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도덕과 윤리 혹은 가치관에서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엄격하며 경직적이다. 융통성 없이 모든 행동 규정을 수용하고 따른다는 뜻이다. 형법에 명시된 규정이든, 게임규칙이든 세뇌된 것처럼 과도하게 집착한다. 이들은 공격적이고 욕망에 사로잡힌 자기의 부분을 엄격히 통제 아래 묶어 두는 일을 올바른 행동과 동일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자존감은 엄격한 부모가 심어놓은 높은 수준의 행동 또는 생각의 기준을 따르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오히려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자기의 적개심을 두려워하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자신의 욕정, 탐욕, 허영, 게으름, 질투감정에 과도한 불안을 느낀다. 또한 강박사고적인 사람은 모든 선택에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선택 가능한 결과를 통제하려고애를 쓰지만(실제로는 통제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환상) 결국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죄책감과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완벽한 결정이 무엇인지 분명해질 때까지 결정을 미루지만, 잘못된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는 강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결정과정이 지연되고 결과적으로 외부대상이나 외부환경의 결정에 의지하고 만다. 선택에는 책임이 수반되며, 책임을 지려면 정상적인 수준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감내해야 하지만 강박적인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리고 자율성을 보존하려는 지나친 고집으로 인해 결국 자율성을 침해당한다.

 

남편은 대형 로폄의 변호사이다. 평생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스스로도 본인의 일에 대한 성공과 사회적 인정에 대해 자랑스러워했지만, 이제 은퇴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자 그동안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지 모르겠다는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집에 돌아와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늘 핸드폰을 손에 들고, 이 메일에 즉각 답을 하고, 서류를 정리하고, 여기저기 일을 지시하는 전화로 바쁘다. 물론 일로 지쳐 무기력하게 앉아 멍하니 tv를 보는 시간이 많지만, tv를 보면서도 핸드폰은 여전히 손에 쥐고 있다. 의식에선 한 시라도 마음 편하게 잘 지내고 싶어 하지만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겠는 불안감이 있어서 일 것이다. 사회적인 능력과 달리 인생을 향유하는 게 안 되는 것 같다.

 

강박증자는 타자에 거리를 두는 방어가 아니라 대상이 자신을 향유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방어가 일어난다. (엄마)최초의 대상이 과도하게 향유 대상으로 삼아 그렇다. 최초대상이“너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존재야”라고 말한 것에 대해 자신의 기쁨을 희생하는 삶을 살았기에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싶지만 대상이 자신을 과도한 향유대상으로 삼을까봐 불안이 뜬다.(엄마의 보충 처리 대상) 자기 실존이 사라질까봐 향유를 못하게 막는다. 특히 타인에게 조정이나 통제를 당한다고 생각되면 자신도 모르게 부조리한 명령에 대해 혐오가 일어나고 귀찮은 대상으로 지각되어 모가 난 행동을 한다. 남편은 자기 가치관에 사로잡혀 외곬으로 파고드는 면이 있다. 하지만 도와주면 사고의 폭이 넓어져 편향성과 경직성이 보완되기도 한다.

 

나는 남편에게 선택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고 어떤 것이 최선인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남편은 여행을 가도 세세한 일정에 따라 아침부터 밤까지 돌아다닌다. 긴장을 풀고 여유를 찾지 못할 뿐더러 잘 놀지 못해서 모든 것을 의무로 행동한다.(편안한 가십거리나 농담도 진지하게 받아들여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어 다툰 적도 많다.) 여행을 가거나 골프 등 놀이를 할 때도 즐기기보다 계획대로 움직였는지 신경을 쓰느라 주변사람을 배려하지 않아 스트레스로 인해 지친마음이 되곤 했었다. 남편이 긴장을 늦추는 테크닉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기와 똑같길 바라기보다 그 차이에 눈을 돌려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인생을 즐기며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

 

건강한 신체와 좋은 지능, 남이 부러워할 만한 사회 경제적 능력이 커도 최초 엄마 문제를 정리를 못하면 인생의 상당부분 자신의 욕망을 접고 살아야 한다. 시어머니는 꼼꼼한 원칙주의자, 완벽주의자이신데 살아계실 때는 물론, 유품을 정리하면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을 하였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언젠가 필요하리라 믿기 때문에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래되어서 쓸모가 없는 옷들이나 이불, 혹은 천들, 정말 족히 50년씩은 되어 보이는 물건들이 정성스럽게 정리되어 있는 것들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정리하고 보관했어야 했나 하는 의문과 자신의 의견에 매우 집착하시고, 융통성이 없으셔서 변화를 꺼려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또한 예의를 중시하는 유교적인 전통을 철저히 지키려고 애쓰셨는데, 언제나 내가 느낀 것은 예의나 전통을 지켜나간다는 것 보다 본질의 의미가 형식에 묻힌다고 생각되었다. 가족모임은 서로 안부를 묻고 과거를 회상하며 즐거움과 기쁨을 얻는 게 목적이지만 어머님이 설정한 진행과정을 고집해서 정작 그 일의 목적을 놓치고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셨다. 제사뿐만 아니라 집 안의 행사에서도 어머님께서 형식을 과하게 중요시하다 보니 그 형식을 맞추다 보면‘내가 여기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무의미감과 의무감만 남는 경험을 오랫동안 해왔던 것 같다. 아마도 남편 또한 엄격하고 경직된 어머니 밑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억제하고 통제받으면서 성장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남편은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동시에 자신이 통제받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심리가 있는데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항상 일에 매여 있고 가족과 친구, 즐길 수 있는 모든 행동에서 벗어나려고도 한다. 집안 일의 경우에도 항상 결정을 나에게 미루고, 무슨 설명이든지 내가 훨씬 이해를 잘 하고 질문도 더 잘 한다며 어디든 같이 가자고 하는데 이러한 결정하지 못하는 그의 상태를 오랫동안 알아채지 못했다. 20년 넘게 클럽에서 러닝머신 이외에는 그 어떤 운동기구도 시도하지 않는데,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기구를 설명하며 바꾸어 보거나 개인 피티를 권해보았지만 트레이너와 시간약속을 하는 것 자체를 못견뎌하고 참견으로 받아들여 계속 러닝머신만 고집한다. 내가 평범하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선의로 몇 시까지 퇴근해달라고 하거나 기사를 언제까지 보내겠다고 하는 것은 그가 생각하는 통제당하는 침해 행위이기 때문에 그의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알게 되었다. 얼마나 서운하고 당혹스럽고 괘씸했는지 모른다.

 

강박증 과제를 하면서 내가 왜 남편의 성격 때문에 늘 마음이 상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간파를 하지 못해서 그에 맞게 나 자신을 무장하면서 살지 못했었다.(올바르게 행동하면서도 상처주지 않으면서 할 말을 다 하는 방어 장치) 내 식으로만 남편의 말과 행동에 담긴 의미를 해석했던 것 같다. 바깥에서 이상한 사람과 마주하면 기분이 나쁘고 짜증이 일어나고 속은 것 같은 감정이 밀려오게 마련이지만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안 만나면 그만이다. 그런데 남편은 남이 아니라서 어떤 불편함이 생기면 부부사이의 문제가 되었다. 남편의 경직된 모습 때문에 화가 나고 언짢은 감정의 찌꺼기를 배설하지 못해서 끙끙 앓은 적이 많다. 물론 내 경험에서 배운 대로 남편을 대하는 방식도 있었음을 안다.(혼자서 잘해보라는 식)

 

또한 남편의 모습 안에 내 모습도 있다. 엄마와 오빠가 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 남편이 자신만이 옳다고 끝까지 주장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내 말의 꼬투리를 찾아내어 공격하고, 자신의 옳음이 확실하지만 특별히 너에게 양보한다는 듯한 우월적인 태도를 보이면 열등감을 자극받게 되기도 하고,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적개심과 동시에 심한 무기력감을 느끼게도 된다. 또 자신의 요구만을 충족시켜 주기를 바랄 때 상처받은 민감함이 작동되어 억울했었다.(똑같은 것을 당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큰 소리로 억울함을 성토하기만 했었다.)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 고압적인 자세로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내색을 하면 초라함을 느끼게 되고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나만 그렇다고 느꼈을 땐 너무나도 괴로웠다.) 내가 일방적으로 뭐든지 아는 체하는 사람을 힘들어 하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 기분, 상황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통행식의 태도에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 말을 하고 상대는 듣기만 해야 한다면 진정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고 말은 곧 명령, 지시가 되어버린다. 엄마가 늘 아는 체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한 칼날에 상처를 받아서 누가 옳고 그름만으로 이야기를 하면 나는 빈정상한다. 절대적인 정의란 존재하지 않기에(주관적이라) 불평가가 그러한 고집을 피우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요구를 절대로 들어 줄 수 없기에 나도 옳다고 말해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6. 강박성 성격-크리스탈님

 

사람에게는 의식 외에 무의식 차원의 정신적 측면이 있다. 개인의 성격 안에는 고통스러운 감정, 생각,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 정신분석은 그 모르는 부분을 알려주는 일을 한다. (성격화된)심리 방어기제는 인격의 보편적이고 필수적이 부분인데,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가게 돕는다. 물론 이러한 방어기제는 성장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방어차원에서만 성격이 단단히 굳어버리면 인간관계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며 자존감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자신을 더 잘 인식하는 사람이 어떤 이득을 얻는지 알고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고통을 한 번에 마주할 수 없듯이 분열성 성격, 편집성 성격, 우울성 성격에 이어 강박성 성격을 통해 새롭게 얻는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기대해본다. 습관처럼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한 사람의 성격 전반에 영향을 주는데 자신의 욕구를 외면하고 살아가면 타인과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할 수 없을 뿐더러 분노나 불행을 눌러 없애버리면 모든 이유에서 감정의 원인을 알아보려는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그 결과 다른 누군가가 자신이 두려워하는 감정이나 행동을 보일 때 마다 위협을 느껴 한정적인 불만족스러운 관계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Freud는 강박적인 성격 구조를 가진 사람을 항문기 특성으로 잘 설명하였다. 항문기는 1.5세에서 3세에 해당된다. 구강기에 큰 어려움이나 좌절감 없이 발달이 진행된다면 구강기에서 항문기로 넘어가게 된다. 만약 아이에 대한 학대나 무관심한 엄마의 상태가 지속되면 항문기로 넘어가지 못하고 구강기에 고착된다. 구강기 고착된 성인은 과도한 의존성이나 불신으로 타인을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아이가 젖 뗀 후 리비도 집중이 입에서 항문으로 이동하면서 배설물을 만들어 내는 일에 흥분을 느낀다.(배변기능의 숙달-귀중한 변을 부모에게 선물로 준다.)

 

먼저 항문기 전기는 괄약근의 미성숙으로 변이 축적되면 의지와 무관하게 배설되는 시기이다.(엄마가 배설에 대해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이때에 고착되면 (조절이 어려운, 지저분한) 헤픈 성격이 형성된다. 항문 괄약근이 후기에 발달하니까 (엄마가 말끔하게 정리해주지 않으면 스스로의)충동조절이 불가능해진다. 이들은 행복하게 싸버리는 낙으로 산다. 즉 소비하는 게 낙이다. 규범이 내면화 되지 않아 충동조절이 불가능해서 돈, 시간, 재능, 열정을 모두 비워 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현실적 삶이란 수많은 사회적 코드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과정인데, 이들은 무분별하게 감정에 따라 행동을 하며 큰 틀의 규칙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행동하고 만다(자기중심성, 비 관습적).

 

아이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고 아이를 돌보는 것을 귀찮아하는 자기애적인 엄마 경험을 하게 되면 아이는 어떤 성격이 될까?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외톨이가 될 수 있고, 왜곡된 인식과 비정상적인 미숙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결정이나 판단이 어려워 지나치게 순응하는 성격을 지닌다. 항문기 후기는 대변의 보유와 배설을 의지에 의해 조절할 수 있는 시기다. 변을 자기 몸의 일부로 느끼는데 청결의식이 없는 유아는 변을 더럽게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과 애착대상에게 친근함의 표시로 자신의 변을 묻히려 한다. 또한 큰 대변을 보겠다는 소망으로 생산지향적인 지향을 갖는다. 이 시기에 엄마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아이에게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변을 보도록 요구한다.(아이도 자신이 배변을 제대로 하느냐 마느냐로 부모의 기분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싫어.”의 의미와 힘을 알게 되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에 대한 개념도 형성된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대변을 누면 엄마는 마치 선물을 받은 양 기뻐하는데 아이는 대변을 엄마에게 줄 수 있는 선물로 생각한다.(황홀한 기대와 찬사를 받는다.) 훈육방식에 따라 선물로써 적절한 배변이 아닌 반항으로써 변비현상이 일어나는데 애정이 부족하면 엄마의 사랑대신 똥을 간직한다. “안 눌거야.”식의 지배욕이 강해고 인색한 사람이 된다. 이 시기에 고착된 사람은 낡아서 필요가 없는 물건, 잡다한 고장 난 물건도 절대 버리지 않는다.(과도한 근검절약) 물건을 버리는 것은 낭비이기도 하지만 언제 다시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모든 일에 과도하게 자세한 계획을 세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자신의 관점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배변을 참았다가 터트리듯 싸면서 엄마의 화난 표정을 보고 쾌락을 느끼는데 즉 불쾌한 감정을 쌓았다가 폭발시킨다.(항문기 가학증은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즐거움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쾌감을 느낀다.) 이 단계에서 순종과 반항(청결의식 또는 적대적 무기로 유분, 야뇨증상), 청결과 더러움(통제 또는 묻히는 지저분함), 내보내는 것과 보유(선물 또는 인색, 소유욕, 집착), 신속함과 꾸물거림, 자율성과 수치심, 가학증과 피학증이 형성된다.

 

아이는 항문기에 한계에 대해(최초의 규범) 배우게 되는데 신체, 정서적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적절한 이해와 수용이 필요하다. 공격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인데 표현방식은 부모와의 상호작용으로 학습이 된다고 배웠다. 아이는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정도와 적당한 때와 장소, 방법을 배워야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버릇을 없애기 위해 과도한 규칙을 부여하면서 비난이나 엄격한 벌을 주는 것은 애정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한다. 즉시 복종하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솜씨 좋게 아이를 달래면서 적절한 통제감을 살려주는 게 좋다.(용변을 강요하면 고집이 세지고 남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성격이 된다.) 항문기 발달의 성공은 수치심 없이 자기 결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지나친 고집을 부리지 않고 협력하는 것이다. 엄마의 부정적 통제나 지배로 상처 받아 항문기 후기에 고착되면 사람들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갖고 협력하는 게 어려워진다. 누구든지 자신의 기준이나 기대를 따르지 않을 때 차갑고 무섭게 거부하게 된다. 다른 시선으로 사람이나 세상을 바라볼 능력이 없기에 자신의 의견에 매우 집착한다.

 

이들은 좋은 사람이란 소릴 듣기도 하는데 반동형성이라는 방어기제 때문에 그렇다. 자신에게 강제적으로 가혹하게 대한 엄마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큰데 의식에선 부모이고 아무튼 잘해준 부분이 있으니 자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에서 용납하기가 어렵다.(처벌 받을 까봐. 욕먹을까.) 그래서 누구이든 극진하게 잘해주지만 속에 처리되지 못한 보이지 않는 분노가 커서(경멸, 질시 등-내가 지한테 어떻게 했는데) 관계가 일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잔인한 부모경험으로(내적대상관계) 주변인과 진짜 애정관계에 성공할 수가 없고, 다양한 좋은 사람의 인격을 받아들이고 경험 할 수가 없어서 자신이 부여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지 못하고 인간관계가 끝이 나기도 한다.

 

강박증의 사람의 도덕적 요구는 실질적이고, 정확하고, 빈틈이 없어서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는 이런 성격 특성이 증상 행동으로 응축될 수 있다. 이들을 ‘살아있는 기계’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들 중에서 성숙한 모습을 지닌 자아기능 수준이 높은 사람도 있지만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로운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정신 병질적인 수준의 사람도 있다.

 

강박성은 유전적 소인도 있지만 강박성 성격을 지닌 사람은 전형적인 특징(청결, 고집, 규칙성)이 배변 훈련 과정에서 불거진 주제이다. 그들의 일상생활, 언어, 꿈, 기억 환상 속에서 항문기적 심상이 발견된다고 한다. 모든 것을 제 자리에 두는 행동은 이른 시기 혹은 엄격하게 배변 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프로이트는 아동에게 있어서 배변훈련이란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을 위해서 자연스러운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첫 번째 상황이 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일정에 맞추어 볼일을 보라고 요구 받는 경험은 아동에게서 불안과 공격 환상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아동은 정체감과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규칙적이고, 이성적이게 자신을 확실히 통제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무력감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느낌이다. 그 무력감을 줄이기 위해 상황을 통제하려 애쓰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사람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을 할 수 없게 되면 그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틀에 박힌 일상과 규칙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 통제할 수 있다는 위안을 준다.

 

질서정연한 생활은 통제하기 어려운 변덕스러운 것에서 안정감을 준다. 강박적인 의례 행위를 통해 통제력을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주변사람을 미치게 만들지만 자신 또한 그 비합리적인 면으로 고문 받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취미를 선택할 때조차도 규칙이 강한 스포츠나 극도의 주의력과 고난이도의 활동을 선호하며, 항상 무언가를 완벽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극기, 헌신, 희생) 이들은 놀이도 하나의 질서를 배우는 방법이다. 강박사고적인 사람들은 미루고 지연하는 데 반해, 강박행동적인 사람들은 너무 앞서 나간다고 한다. 강박적인 사람은 자신의 적개심을 두려워하기에 실제적인 공격성과 순전히 정신적인 공격성 모두에 대해 지나치게 자기비난을 하며 괴로워한다. 욕망, 욕심, 허영, 게으름에 굴복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안해할 수 있다. 이들은 그러한 태도를 수용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제 행동에 국한해서 자기존중이나 자기비난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충동을 느끼는 것 자체를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또한 생각은 실제로 어떤 행동을 취하기전에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중대한 실수를 피할 수 있다. 분석적인 사고가 많이 필요한 직업을 가진 강박적인 사람은 학구적 연구, 법률 서류, 화학분석 등에 몰두한 나머지 감정적인 관계에 마음을 쓰질 않는다. 그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성공하려면 딴 데 한눈팔면 안 되니까 인연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사고)주지화를 많이 사용하는 강박증자는 머릿속에서 사는 시간이 많아서 욕구와 욕망을 알려주는 몸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주지화를 통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강렬한 감정을 두려워해서 그것이 일어날 만한 상황이나 인간관계를 피해버린다.

 

이들의 강박사고는 유난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심란할 때 강화된다. 힘든 경험을 감당하는 자신만의 방식인 것이다. 일상에서 누군가 휴식을 하거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질책을 하고, 작은 근심을 생사를 좌우할 만한 커다란 문제로 부풀리고, 느긋하게 이만하면 되었다고 만족하는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 당장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계속 신경을 쓰고 몇 번이고 확인하고 감시하는 강박증자로 인해 주변인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함을 느낀다.

 

강박 심리를 발전시키게 된 경우는 부모 대상이 어릴 때부터 높은 행동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맞출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육자는 좋은 행동은 보상하고 나쁜 행동은 벌주는 일관되고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부모가 기본적으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일 때 이들의 자녀는 정서적으로 혜택을 입은 아이들로 자라서 부모의 철저한 헌신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방어를 사용하겠지만 양육자가 터무니없이 엄격하고 나이에 비해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부족한 행동뿐만 아니라 그에 동반되는 감정, 생각, 환상마저도 가혹하게 비난한다면 자녀의 강박적인 몰두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종교적 신심이 깊은 집안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아온 아이는 사춘기에 성적 욕구에 대해 지나친 자기 비난에 빠져서 다른 또래 남자아이들이라면 별 문제없이 즐기고 통제하는 법을 배웠을 성 감정을 막아 내느라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상관계적인 조망에서 볼 때 강박적인 사람들이 성장하는 가정에서 통제의 문제가 매우 중요시 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화장실 규칙을 설정했던 어머니는 아이를 시간에 맞추어 먹이고, 일정한 시간에 낮잠을 자도록 요구하고, 자연스러운 신체활동을 억제하고, 관습적인 성 역활을 고집하고, 말을 똑똑하게 못하면 벌을 주는 등의 일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우리도 어느 정도 강박적인 활동에 친숙하다. 배가 더 이상 고프지 않는데도 접시의 음식을 싹 비우거나, 필요한 물건은 반드시 사고야 말며,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도 정리정돈을 한다. 이렇게 강박적인 활동 차제는 해로울 수도 있고 이로울 수도 있다. 어떤 활동을 강박적으로 하는 것은 몰입할 수 있는 특성이기도 해서 강박 행동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한 그것 때문에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다. 또한 강박행동은 무의식적 의미를 갖고 있다. 강박행동은 전능통제라는 무의식적 환상을 드러낸다. 환상과 충동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할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그에 필적하는 강력한 힘으로 그것을 제압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게임을 하기 전에 항상 특정한 의식을 하는 야구선수, 외출 전에 뭔가 빼먹은 일이 있으면 불안해하는 사람,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자신이 만약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통제 불가능 한 것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프로이트는 강박적인 사람이 양심적이고,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한 것은 무책임하고, 지저분하고 낭비하고 싶고, 반항적이고 싶은 소망에 대한 반동 형성이라고 하였다. 어떤 특성에 과도하게 책임을 느끼느냐에 따라 어떤 숨겨진 성향과 싸우고 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강박적인 사람이 줄기차게 추구하는 합리성은 강박사고 방어로 충분히 감추지 못한 미신적이고 마술적인 사고에 대한 반동형성이라고 한다. 바르고 책임감 있게 사는 데 심하게 집착하는 사람도 우리들 대부분 직면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방종의 유혹과 투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동형성은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나 충동을 정반대의 것으로 바꿔놓는 심리방어기제이다. 특히나 분노와 공격성에 시달리는 사람이 반동형성을 성격의 한 측면으로 갖고 있다고 한다. 성숙한 강박증자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법으로 자신의 공격성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풀지 않고 낯선 사람이나 사회적 대의로 옮겨놓는다. 동물보호운동가, 환경운동가, 보수주의를 비난하는 자유주의자가 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공격성을 차마 마주할 수가 없어서 반동형성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분노나 증오는 피할 수 있겠지만 우울증에 사로잡히고 만다.

 

강박적인 사람은 남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왜 화가 나는지 진짜 이유를 파악해도 진실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한다. 자기 잘못을 모르고 애먼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나면 죄책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죄책감은 적절하다. 최선을 다해 사과하고 상대에게 준 상처를 보상해준다. 그러고 나면 남의 말이나 행동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강도가 훨씬 약해진다. 물론 여전히 어떤 일에는 반사적으로 혐오감이 들지만 그 감정이 진짜라고 믿지 않기에 그 반응은 서서히 약해진다. 가끔씩 진실이라고 확신하면 발끈하기도 하지만 강요하지 않는 신중함 있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서로 다른 시각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절대적이지 않은 답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아끼는 사람에게 화가 나면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분노를 있는 그대로 다 터뜨리지 않는다. 고의로 상처를 주려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다른 사람의 분노를 참을 수 있고 실수를 인정하는 게 굴욕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물론 나중에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하고 느끼는 걸 동시에 수용해나간다.

 

강박성 성격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내사적이고 자기 정의를 지향하는 유형이며, 두 번째는 의존적이고 관계 속의 자기를 지향하는 유형이다. 내사형의 강박적인 사람들은 통제와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강한 초자아동일시) 즉 공격적이고 욕망에 사로잡힌 자기의 부분을 엄격한 통제 아래 묶어 두는 것을 올바른 행동과 같은 것으로 본다. 이들은 대개 종교적으로 진지하고, 근면하고, 자기에 대해 비판적이고 믿음직스럽다. 이들의 자존감은 내재화된 부모상이 (높은 초자아가)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행동 혹은 생각의 기준에 따르는 데서 온다.

 

현대는 두 번째 형태의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프로이트 시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도덕에 집착과 달리 수치심으로 인해 강박적 패턴을 많이 보이는 것이다. 강박적 성격을 만드는 배경으로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아무런 지도와 가르침을 받지 못해 이상적인 기대와 기준이 없고, 단지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이상적인 행동과 감정의 규준을 얻어와 그것에 맞추어 살아 나간다. 이런 기준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을 본받아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가혹한 면이 있다. 그리고 자기중심적이다. 깊은 수치심에 시달리는 경우 반동형성이 몰염치함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몰염치함이란 특정 행동을 과시하고 어떤 사회규범이나 가치에 공공연히 반항한다는 의미다.(여러 자기애적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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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