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슈퍼비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상호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12. 상담스터디 - 우울성격

1. 학습된 무기력은 마음의 부적응 현상이다 우울증(마가렛)


우울증을 발달적인 관점에서 보면 존 볼비의 애착이론을 기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주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실과 분리, 거부 경험이 아이로 하여금 사랑받을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데 이러한 인식이 우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모성결핍) DSM-5진단기준을 보면, 우울증상은 정서, 동기, 신체 및 운동기능, 인지의 네 영역에서 문제로 드러난다. 이를 기준으로 주요 우울장애(정신병적 우울증), 기분부전장애, 양극성 장애(우울증과 조증이 번갈아 일어나는 상태), 순환성 장애로(계절성 우울증부터 가벼운 수준의 조증-경조증) 분류하여 설명하는데, 아마도 기분부전장애의 사람에게서 우울성 성격이 발현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주요 우울장애는 만성적인 우울증을 말하는 데, 적어도 2년 동안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 주관적으로 느껴지거나 타인에 의해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식욕부진 또는 과식, 불면증 또는 수면과다, 힘이 없거나 피로함, 자존감 저하와 집중력 약화, 결단력 장애와 절망감 증상이 적어도 둘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우 주 우울증으로 진단될 수 있다. 예전 수업에서 다룬‘멜랑콜리아’라는 영화 속 주인공 저스틴은 비탄에 빠져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절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활력이 거의 없었고(처음엔 조증상태가 두드러지다가 갈수록 우울증이 악화되었다.), 신체감각과 운동성이 느리고(멍하고, 몸이 축 늘어져 동작을 이어내지도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타인과 눈을 맞추거나 대화를 하는 것조차 힘겨워 하고, 공허함과 무가치를 견뎌내지 못해 자살충동이 일어나 일상생활이 지연되고 생활전반이 엉망진창인 것을 보여주었다. 독일의 정신의학자 크레펠린은 정신질환을 크게 내인성, 기질성, 심인성으로 나누어 보았는데, 내인성이란 외적인 원인이 없음에도 병리가 나타나는 것을 말하며 유전적인 요인이 크다.

 

기질성이란 뇌손상이 있거나 신체적인 질환의 이차적 영향으로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심인성이란 스트레스와 심리적 충격으로 우울 질환이 생겨난다. 질병은 발병에 이르는 메커니즘이 존재 한다-히스토리가 병을 만든다. 우울증은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는데, 중증 또는 경증의 우울증자는 비교적 가벼운 의기소침, 절망감, 적대감, 부정적인 태도, 피상적인 인간관계, 염세적이고 회의적인 태도, 신체화 증상을 경험한다. 이들은 쇼핑이나(사소한 일에 몰두-지갑과 어울리는 벨트를 사고, 그 벨트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신발을 사는 등), 과식(음식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마비시키고 에너지를 준다.), 일, 알코올, 도박, 흡연, 성, 약물사용 등으로 우울증을 (방어)부인하기도 한다. 또한 도피형 우울증의 사람은 휴식을 취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활기를 되찾으나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할 땐 우울감이 상승한다. 조울증은 기분이나 생각, 행동이 극과 극을 오간다하여 양극성 장애라고 한다. 


기분이나 행동이 과도하게 상승되는 시기가 지나면 어김없이 우울 시기가 오는데, 조증 때 에너지를 몰아서 다 써버린 탓에 우울시기에는 가라앉고 처진다.(며칠씩 잠만 자기도 한다.) 반면에 조증시기에는 먹지도 쉬지도 않으면서 행동화가 일어나는데, 어떤 사람은 조증시기에 차를 몇 대씩 주문하기도 하며, 학원수업을 동시다발로 여러 개 신청하기도 하고, 누가 봐도 가능성 없는 사업에 아무런 계획 없이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가 날리기도 하고, 지갑을 노숙자에게 통째로 주기도 하고, 집을 판돈을 전부 교회에 헌금을 하기도 한다. 또한 조울증정도는 아니지만 우울을 방어하며 행동화하는 경조증의 사람이 있다.(불안정 애착과 상관관계가 있다.)

 

이들은 생각하기보다는 행동하기 좋아하는데, 새로운 자극을 바라는 경향으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다. 호기심이 마이너스가 되기도 하고 때론 플러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쉽게 권태나 싫증을 느끼며 욕구좌절에 대한 내성이 약하다. 힘이 넘치고 계획은 많으나(직관력과 행동력이 뛰어나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획한 일을 완수하지 못하기도 한다. 대략적인 이해 즉 무엇이든 대충 인상으로 판단하기에 착각이 일어나 실수를 범하게 된다. 끈기나 집중력이 떨어져 마무리가 어렵고, 정리정돈에 서툴고, 부주의해서 실수를 연발하기도 한다.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게 스트레스라서 한 일에 오래 매여 있으면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평균이하가 된다고 한다.(꼼꼼함, 정확함이 요구되는 일보다 대략적인 감각으로 일처리가 가능한 일이 적합하다-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행동 하고-경험을 쌓으면 바로 독립한다.) 비현실적이며 근거 없는 낙관성을 가지며 자신의 가치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으로 보인다.),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만남이 있는 일을 하는 게 적성이다.(정착되는 게 힘들다-자기페이스대로 행동하는 편) 기분이 고양되어 있고 행복감을 표현하다가도 정서가 불안정하며 화를 쉽게 낸다.


충동조절의 어려움이 크면 주기적으로 적개심 폭발을 보이기도 한다.(짜증에서 격노)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대인관계는 피상적이다.(관계가 일시적이며 애착이 옅다.)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애착의 문제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경조증 사람은 안정적인 환경에선 행동상의 문제가 증대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좋은 가족관계나 배우자, 친구, 작업환경 등)


나는 스트레스에 짓눌리면 절망감이 한계치를 넘어버려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 매사 눈치를 살피면서 열심히 해야, 잘해야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인지체계를 가지고,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지레 작은 실수라도 찾아내서 내 잘못 때문에 상황이 힘들어졌다는 책임을 지게 되는 이상한 역동을(마음가짐을) 만들어내야 갈등이 정리 되곤 했다. 사람의 인지 특성을(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 인지심리학에서‘인지 스키마’라고 부른다. 개인의 스키마가 균형 잡혀 있다면 주위에 적응하기가 쉽지만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거나 유연성이 부족하면 적응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인지는 세월을 거쳐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작용이라 누구나 자신이 얼마만큼 편향되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그래서 수정하려고 할 때 그 저항이 만만치 않다.) 부정적 체험을 오래 끌고 가는 경향은 결국 불쾌한 체험을 한층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상처가 커지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불신감도 커지기 때문이다. 일어난 일에 부정적 해석을 더하여 부득부득 몇 차례고 반추 사고를 하게 되면서 부정적인 우울한 감정 또한 일어난다.


내가 쉽게 상처받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타고난 예민함에서 비롯된 높은 불안의 강도도 원인일 것이다. 아무튼 나의 편향된 사고를 알아차리기 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불편한 것의 원인이 내면의 편향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수용하는 연습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스트레스를(우울감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거기서 놓여나지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는 저절로(어느 정도이지만) 인생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매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고 있다. 여러 가지 우울한 모습 중에서 엄마로부터 분리개별화를 하지 못한 이유로 (개인적인)사회적 성공이 주는 심리적 의미 또한 견디기 어려웠는데(성공은 독립이 내포되어있다.), 나의 성공이 다른 사람의 시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아 불편했었다. 어릴 적 강렬한 엄마와의 관계가 반복적으로 쌓이면서 형성된 나의 우울함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태도가 되어버렸다.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상처로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한 나는, 나에게 닥친 모든 일이 부정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는 천성적으로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도 자립하지 못해 형성된 의존적인 사고가 더해져 위축되어 지냈던 것 같다. 분석을 받으면서 내 우울감은 사고와 직관보다 감성에 손상이 일어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강한 감정체험으로 파생된).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감성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무기력하고 나쁜 생각이 자꾸 든다. 기쁨도, 자신감도, 흥미도 엄마에게 통째로 빼앗긴 것만 같은 피해의식이 엄청 컸었다. 때때로 기분이 가라앉아 깊은 좌절감이 일어나기도 하며, 비애감(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사로잡혀 눈물이 나기도 한다. 예민해질 땐 사회적 활동에 관심과 기쁨을 덜 느끼며 기분이 언짢으면 잠을 더 잔다.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몸에 돌이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무기력할 때가 있다. 생활에서 어떤 과제를(미션) 연이어 능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불안한 상태에서는 마치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행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뭐든 막상 하면 잘 한다. 그러니 감성의 문제인 것이다. 올해 필라테스도 꾸준하게 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음에 불구하고 감성을 이기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때때로 집중력과 끈기가 부족하게 느껴져 일이 쉽게 손에 잡히질 않아 신경이 늘 곤두서곤 한다. 미묘하게 행동이 느려지면(지연되면) 강박적인 조급한 마음에 쉽게 짜증이 왈칵 일어나고, 최악은 과거의 일이나 행위를 후회하거나 이미 벌어진 일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나는 피책망상이 크다. 가족 안에서도, 시댁이라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서도 이 신념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왔다. 심지어 나는‘내 몸이 힘들면 내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모든 일에 임했다.


사실은 제사나 생일, 명절 같은 가족 모임이 다가오면 부담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하기 싫은 투정부리는 마음을 다독이는데 온힘을 쏟느라 애를 썼다. 버거운 마음을 다잡고 마치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어, 밝고 차분한 내가 진짜인 것처럼 사람들 앞에 나섰던 모습이 떠올라 그 가엾음에 눈물이 날 것 같다. 또한 엄마의 병적인 시기심으로 인해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도 없는 이상한 심리 상태가 있다. 엄마는 시기심으로 내 능력이나 노력을 요행으로 평가절하거나 엄마 덕분이라는 왜곡을 강요하신다. 더구나 엄마의 투사와(인색하고 자기중심적인 엄마 모습) 나의 내사로 인해 나는 베풀 줄 모르는 인색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자아상과 죄책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욕먹지 않기 위해 늘 다른 사람의 필요에 과하게 맞추려는 정신적 태도가 설정되었다. 사실 이러한 도덕방어는(페어베언이 말하는) 항시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고 내 안의 나쁜 것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나쁜 아이인 내가 엄마가 말하는 것처럼 착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하지 않게 베풀고 살면(엄마가 필요한 것을 잘 해주고 의지가 되는 딸이 되면) 나의 세상은 편안해지고, 나의 미래는 안정적일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사실 엄마가 말하는 주변 사람은 없다. 오직 엄마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만약 엄마가 정해주는 사람 이외의 사람에게 넉넉하게 마음을 쓰고 있다면 엄마는 나를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잉 일반화된 이 왜곡된 인지체계로 인해 긴 세월동안 나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정서에서 형성된 불안으로 과도한 책임감을 가지고 전투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우울은 애착대상과의 안정애착 실패의 결과이니 엄마와 불안정 애착관계를 맺은 내가 우울성 성격, 혹은 만성적인 우울상태인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내 정신 안에는 불평불만이나 욕망, 엄마와 다른 의견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엄마의 언어가 있다.“짹 소리 말고 있어.”라는 말은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함께하는 경험에 대한 혐오를 만들어냈다. 다시 말하면 자연스러운 의존욕구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피해망상으로 변질되었다. 나의 본심과 달리“늘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야해. 사람을 싫어하면 안돼. 사람을 부정해서는 안돼.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돼.”라고 감정을 억누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그 결과 점점 둔해져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게 되었다. 안전기지(안전애착)의 경험은 삶의 적응력을 좌우한다. 적응력은 한 개인의 능력이기도 한데 그 능력의 내용은 다른 사람의 힘을 얼마나 내편으로 만들 수 있는가(유대) 즉 남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라고 한다. 이것이 내 힘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나의 죄책감 안에‘학습된 무기력’이 있다. 무기력은 과한 외부의 힘 때문에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 차단당할 때 느끼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강압적인 엄마로 인해 생겨난-통제 불가능에 의해 발생한 무기력-전기충격과 같이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강압적이었던 엄마는 엄격하게 지시하고, 독촉하고, 자기 방식대로만 나를 몰아세웠다. 날 자신을 빛내줄 자랑거리로만 대했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어떻게 매번 엄마의 지시에 맞춰 행동할 수 있었겠는가. 힘들다고 아프다고 호소해도 엄마는 나를 위해 굽힌 적이 없었다. 나는 가끔 순응하는 척하면서 소극적인 반항도 했던 것 같지만 무기력에서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아이다운 호기심이나 관심을 표현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의욕이 없었던 것은 엄마의 무관심과 정신적인 폭력 때문이다. 무기력은 기력이 없는 상태, 단지 귀찮은 상태라기보다 해야 할 일을 하게끔 이끄는 의욕이 상실된 상태라고 한다.(의욕저하, 화도 안내는 상태) 엄마와의 관계에서 무의식중에 배워버린 무기력은 내 인생에 악영향을 미쳤다. 내가 더 많이 발달하고 자유로워지지 못한 이유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을 발휘할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수동적인 상태부터 뭔가 하는 것을 거부는 하는 상태까지 다 무기력이다. 사람은 이른 나이에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경험을 반복하면 나중에 자신에게 나쁜 결과가 오거나 손해가 생긴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게 된다고 했다.(그냥 이렇게 살 거야.) 중요한 것은 학습된 무기력의 핵심은 어느 날 갑자기 하기 싫어져 무기력해진 것이 아니다. 반드시 그 전에 잘해보려는 각고의 노력의 시절이 있었고, 그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학습한 결과이다.


나의 무기력은 엄마로부터 가해진 자극에 의해 무의식에 남게 된 ‘행하지 않으려는 힘’이다. 시간을 때우는, 빨리 빨리 대충 해치우는 습성, 때로는 매우 강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로인해 언제나 무슨 일을 하기도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해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발달심리학자들은 각 연령 때에 맞는 해야 할 것,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행한 사람이 편안한 노년을 맞을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나이와 위치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느끼며 즐거워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뜻대로 살아 본적이 없다. 무기력으로 인생을 허비하며 살았다. 엄마에게 순응하고 복종하며 좋은 관계를 한 듯 보이나 나의‘진짜인생’을 살지 못했다. 오랫동안 무기력에 빠져 삶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나는 타인에게 억압당한다고(침해, 침범, 통제)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감정적인 허탈감에 고통을 느끼고, 그로인해 타인을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대했었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두라고 고집을 부리며 혼자 고립을 자초한 적도 많다. 결국 그로인해 정서적 피로를 더 느끼고 유능감, 성취감도 낮아졌는데, 무기력이 아닌 존재의 부족함으로 잘못 인식하였다. 무기력 때문에 타인과 교제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자연히 가까운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고, 홀로 고립상태를 유지하면서 매사 냉소적으로“이게 다 뭐람. 무슨 의미가 있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라고 회의를 느꼈다.


아마도 주체가 빠진 삶, 내용이 없는 삶,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삶, 기계처럼 움직이는 삶을 살아와서 그런 것 같다.(감각의 상실이랄까.) 주체성을 가지고 말하고, 거부하고, 저항한 적이 없어서이다. 무기력한 나에게 화를 낸 엄마는 사실 나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도 엄마가 부담스럽고, 무섭다. 나는 평생엄마에게 친절하게 베푸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 나의 친절은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수용이 아니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추는 행동이었다. 안된다고 해도 소용없으니까 받아들인 것이다. 지금은 인간관계가 나의 부정적인 인자를 극복하는 방법임을 알고 나를 위해 타인에게 다가간다. 무기력한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은 내 문제가 너무 커서 그것을 해결하느라 에너지를 다 쏟아서 이기도 하다. 소량의 약물 도움으로 무기력 없이 내 일에 몰입하고 관계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꽤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좋은 모습조차도 내 능력이 아니라 약의 힘인가 생각되어질 때-평가절하) 그때 선생님은 건강한 그 모습이 원래‘본연의 모습-우아한 인성’이라고 알려주셨던 기억이 있다. 사실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점차 줄 것도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 엄마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오랜 분석이 일차로 마무리 되었다. 처음에 상담을 받을 땐 자기애적인 엄마와 오빠로부터 벗어나는 게 나의 살길이라 여겨져 내가 생각하는 잘못된 무엇인가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현실에서 텅 빈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엄마로부터 욕망의 재료를 받은 게 없어서 분석에서 나의 감정이나 의견을 내야 할 때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욕망을 집어넣어 줄때조차도“왜 나에게 좋은 소리만 하지. 진심일까.”하며 낯설게 느껴졌었다. 내 자신이 욕망하는 것은 무시하고 엄마가 욕망하는 것만 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욕망을 실현할 수 없을 때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에너지 상실이나 무가치감 같은 우울의 주된 증상들이 어느새 내 삶을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 불순한 것들을 걷어내면서 내 진짜 가치나 실력을 알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돌이켜보며 우울증은 잘못 걷고 있던 길에서 멈추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상처를 받고 엄마라는 장애물을 밀어내는 대신에 가던 길을 멈추고 내 상황을 찬찬히 돌아보게 되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우울했지만 기존에 삶의 에너지를 철수하게 만든 상황과는 달랐다.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기대하는 암담한 노력대신 내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오빠를 지원하는 것에서 거의 벗어났고, 엄마에게서도 대체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우울증은 파괴적인 증상이 아닌 나를 돌보고 나를 먼저 배려하라는 나를 존중해주라는 신호였다.“안돼.”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자기주장도 할 수 있게도 되고, 때론 불편한 사람과 심리, 물리적 거리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울증은 새로운 것이 성장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나의 일부(나의 일부라고 여겨지는 엄마)를 잘라낼 필요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상담 초, 중기에 목적지를(목표물) 찾아 애쓰며 돌아다니는 꿈을 꾸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우울증은 정신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어떤 무엇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애써 노력하지만 이득은 별로 없는 행동을 중지하고 보다 가치 있는 곳에서 삶의 에너지를 투자하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었다. 


아직 남은 우울을 겪어내야 함을 알고 있지만 해결방법은 그것을 정면으로 통과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정신분석을 통해 알게 된 진리는 힘겨운 일에 처했을 때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이 심리, 신체적인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감성이 다쳤다’는 얘기는 실제 엄마보다 엄마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가 어떤 감정과 행동을 만들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신념을 깡그리 긍정적인 신념으로 바꿀 수 없지만 긍정적 신념이 삶의 의미와 통제감, 유익함, 애정을 만들 수 있음을 안다. 나는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때 예전과 달리 장단점을 아우르는 긍정적인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의식적인 무기력은 오랜 훈련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벗어날 수 있겠지만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에 대해 이제는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기에 나의 우울함을 점점 좋아질 것이다.

 

수퍼비전- 스트레스의 내성을 높이는데 중요한 것은 사고의 전환을 유연하게 하는 거예요. 난제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울한데요.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느라 불안을 내려놓는 쪽으로 사고를 바꾸지 못해요. 기분 나쁜 말이나 언짢은 기억이 계속 맴돌아요. 그것이‘반추하는 사고’에요.(자동사고) 이럴 때 효과적인 전환방법은 몸을 움직이거나 장소를 이동하는 거예요. 음악을 듣거나, 요리를 하거나, 청소, 정리정돈, 산책, 머리를 흔드는 것, 잠시 자는 방법도 좋아요. 아무튼 기분전환을 하는 거예요. 너무 큰 위화감이나 뒤틀림이 생겨나면 참기보다 다른 가능성에 도전해보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고의 기준이 타인이 먼저 여서는 안돼요. 자기감정을 깨닫지 못하고 무조건 참는 것은 좋지 않아요. 어릴 적 엄마의 말을 잠자코 따라야 한다고 강요당했다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폐쇄된 공간이지만 기준이 되었어요. 부족한 정보로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거기에 맞추고 살게 되면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게 되고,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요. 더욱이 자신도 모르게 타인 위주로 살게 되요. 


상처를 받는 순간도 다른 사람이 세운 기준에 맞추어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요.(그럴만하니까 그렇게 되었다고요.) 정체성 발달을 위해 자기위주로(자기감정에 솔직한 거요.) 먼저 생각해보는 게 필요해요. 예를 들면 누군가 미울 때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강렬하잖아요.(사실 타인위주의 생각을 하는 거예요.) 미움이 인식된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거라 착각할 수 있는데요. 미운사람이 나에게 한 행동이 불쾌한 것이에요. 헌데 그 사람만 생각한다면 내가 없는 것입니다. 주체가 있으면 누군가 죽도록 미워도 그 감정을 자신이 받아들이고 나면 벗어나기 쉬어져요.“아 내 마음이 누구의 불쾌한 행동으로 분노가 들끓고 있네. 당연히 화날만해. 언짢고 맘 상했어. 상처를 받아 밉네.”라고 스스로 인정해보면(받아들이면) 자신위주의 사고와 감정을 사용한 게 됩니다.(주체 발달)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녀가 왜 나에게 그런 짓을 했던 걸까 고민하는 것은 내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각이에요.“아무 소용없어.”라는 단념과 거부당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지나치게 타인주의로 (남의 말대로 하는 게)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자각해야 해요.



2. 우울증(아델라)

선생님의 권유로 우울증 기저를 이해해보기 위해서‘애착장애’에 관한 자료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애착유형은 한 사람의 대인관계뿐만 아니라 감정과 인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애착유형은 평생 동안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패턴이 되면서도 자신이 도움이나 위로가 필요할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하는 심리적인 면에서도 크게 작용한다고 합니다. 저는 불안감이 매우 큰데요. 선뜻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주저하거나 아예 손을 내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상담을 시작했을 당시에도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요청하는 게 서툴러서 있었던 일만 장황하게 나열하고, 정작 중요한 말을 꺼내어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백일몽과 꿈이 대신 소통해주었어요. 울면 바로 안아주는 엄마와 아이는 애착이 안정되기 쉽지만,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엄마에겐 아이와의 불안정한 애착이 형성된다고 배웠습니다. 실제로 낳아준 엄마라 해도 끊임없이 옆에서 아이를 돌봐주지 않으면 애착은 형성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애착은 특정한 애착대상인 엄마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경험인데(애착은 여러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했어요.), 엄마는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무심하고 불안정한 분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의 애정이 견고했었더라면‘나’라는 존재감이 견고하게 유지됐어야 했고, 특히 인생의 고비마다 애착의 진면목이 나타났어야 하지 않았나싶어요. 어릴 적부터 내가 원하는 것에 엄마는 대체로 대응해주지 않았고, 부정적으로 반응했었습니다. 저는 안정된 유대감 대신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거부당할까봐 엄마에게 느꼈던 실망과 절망은 봉인하여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무 생각 없이)생기 없는 모습으로 생활하였습니다. 중요한 시기인 아동기 청소년, 청년기를 무력하게 지냈는데 제 인생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최근에서야 예쁜 본래의 모습인 ENFP의 삶을 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새로운 희망과 목표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포부와 달리 멍하고(존재감이 안 느껴지고), 근원을 알 수없는 무력감과 불안도 엄습해옵니다. (외부자극)약속이나 수업이 없거나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할 때면 시커먼 공포감이 엄습해 옵니다.(온몸은 마비된 듯하고 불쾌한 감정만 출렁거려요.) 나 자신이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한심한 바보처럼 느껴져 침울해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나쁜 결과가 일어날까봐 불안에 떱니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매순간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끝까지 버티다가 결과적으로 무너진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일어난 몸에 벤 모습일 것 같아요.

 

저는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갖기가 어려웠어요.(매사 자신감이 없는 이유에요.) 이러한 병적상태가 삼십대까지 계속되었다면 불안장애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으로 전환됐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상담초기에 무슨 일이든 변화가 있으려면 이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불쾌하지만 익숙한 불안의 정체가 자발성과 생동감 없는 상태라는 것을 이제는 확실하게 지각 됩니다. 궁여지책으로 불안정할 때는 항불안제를 한 알 더 먹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뭔가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발달하지 못한 인격 부분으로 인해 가슴이 답답합니다. 선생님은 현재 내 모습이 그러한 게 아니고, 어릴 적 소화되지 못한 감정의 상태가 현실의 자아를 위협하는 것이라 알려주셨어요. 그러니까 진득하게 하나씩 소화해보자하셨어요..상담을 진행하면서, 제가 과보호뿐만 아니라 인격발달의 중요한 시기마다 제대로 된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고 방치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대면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초등학교 내내 제대로 된 (단짝뿐만 아니라 어울려 지내는)친구가 없었습니다. 엄마의 섬세한 보살핌이 없어 부자연스러운 행동거지와 학습부진으로 왕따를 당했어요. 엄마가 마음을 과하게 써줄 때와 무관심의 차이가 클 때 아이는 불안장애를 겪을 위험성이 높고, 그 결과로 집단 따돌림 같은 피해를 지속적으로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엄마는 제가 무엇이 필요하다고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조차도 그것을 알아차려 개입해주지 않았고, 현재의 모습처럼 엄마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과하게 주셨어요.자신의 감정에만 사로잡혀 엉뚱하고 불필요한 도움을 주셨어요. 놀림이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러 죽을 것 같다고 소리쳐도 묵묵부답이셨어요. 보호는커녕 위급한 사태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도 몸도 많이 아팠었어요. 엄마가 제 마음을 헤아렸다기보다 엄마의 기대를 억지로 강요했는데 저는 그것에 부응하기위해 거짓으로 살아온 것 같아요. 제 기분은 엄마로 인해 늘 무시당했기에 솔직하게 말하는 것 자체를 잃어버렸어요. ENFP인 제가 친구도 없이 우두커니 교실에 덩그러니 놓여 아무런 교류나 소통 없이 지내는 모습이 상상이 가세요? 제 오감을 마비시키지 않았다면 죽었을 거예요. 불안형은 강한 의존에서 비롯된 대인불안, 긴장감이 강해 또래에게 공격성을 쓸 수 없어 따돌림의 타깃이 된데요. 보통의 경우 스트레스를 받으면 반격행동을 하는데, 공격성이 저에게로 향해 생긴 우울감이나 불안이 커서 대응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때 엄마가 저를 구해주길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몰라요. 특히 엄마와 소통되지 않는 정서적 문제에서 비롯된 학습부진으로 고생을 했는데요. 수학은 1점, 받아쓰기 0점, 4학년 때까지 한글을 제대로 못 떼서 추가 공부를 받아야 했습니다. 고학년이 되어서도 시계 보는 것, 오른쪽 왼쪽 구분하는 것도 헷갈려 했습니다. 학습 부진을 겪는 아이가 정서 문제로 인해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능력, 사회성 능력이 퇴보한다고 해요. 아이는‘엄마와의 관계 경험’을 통해 반드시 삶의 보편 지식을 배우고 그 지식에 맞는 삶의 대처방식들을 습득해 나간다합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적절한 양육을 제공 못하면 아이는 높은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게 되요. 자료를 보니 애착장애를 가진 아이는 자신의 잠재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담치료(안전기지)경험만으로도 일이년 사이에 지능지수가 30이상 오른 예도 많았어요.(NF기질이 그러하데요.) 다행히도 중고등학교 때는 성적이 중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시험불안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자고, 먹고, TV를 보는 회피 행동을 과하게 하였습니다. 무기력으로 부담될 만한 일을 피하면서 공상 세계에 빠져 헛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저는 정서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좀비처럼 지냈어요. 그저 시간을 죽이면서 살았던 거예요.


주체가 빠지고, 내용이 없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며 기계처럼 움직이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과 닿아 있는 부분은 죽어있고, 공상만 부여잡고 살았던 것 같아요. 상담에서 선생님이 부모님을 비롯해서 그 누구에게든 왜 반항하지 않았냐고 물으셨는데요. 어떤 형태로도 관심을 끌기 힘든 경험이 커서 세상 사람이 나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해서 패배감으로 저항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상대가 나를 알아줘야 기력과 의욕이 생기잖아요.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세상을 탐색하고 독립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되지 않다보니 더 무기력해지고 무능력해졌어요. 세심한 지원이 없었으니까 장기간 무기력한 채 지내는 불행이 지속되었어요. 


사람은 이른 나이에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경험을 반복하면 나중에 자신에게 나쁜 결과가 오거나 손해 생긴다는 것을 예측 할 수 없고, 알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고 해요.(학습된 무기력) ‘감정표현 불능’으로 인해 타인과 기쁨이나 슬픔을 공유하기 어려워 휑한 마음을 메울 수가 없어 무력했어요. 앞으로도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외로움과 공허감을(학습된 무기력을) 빼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꾸준한 사회적 접촉과 도전만이 여기서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는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것입니다. 애착장애가 있으면 부정적인 경험이 일반화되어, 외부에서 애정이나 좋은 자극이 와도 실망하면 힘들면 좋았던 일은 싹 잊어버리고, 예외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 사소한 상처에 꽂혀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제가 그래요. 회피형의 사람은 부정적 기억에 대한 접근이 억제되어 있지만(남편이 부정적인 일에 대해서 방어로 매사 오리발을 내밀었죠) 저 같은 불안형은 부정적인 기억이 지나쳐 긍정적 기억이 억제가 된다고 합니다.

  

저는 어려움이 생기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요. 충동조절이 안됩니다. 엄마의 불안이 전염되어서인지 제 안에 무질서한 행동 성향이 있습니다.(엄마는 어떤 중요한 틀, 규칙을 구조화시켜 주지 않으셨어요.) 저의 개인적인 욕구는 충족시켜주시거나 허용해주셨지만 여러 사람들과 잘 지내기기위해 필요한 집단 목표나 방향은 전혀 다루어주시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엄마는 남편이 저를 도구로 이용하는 독선적인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오히려 나쁜 짓을 하는 그를 더 이해해주고 배려해주었어요. 상대방이 싫어하고 혐오하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모습이 엄마모습과 같아서 혼란스러워 꼼짝을 할 수가 없었어요. 남편은 회피성 인격이라 자신의 인격적인 문제로 제가 힘들어 할 때나 고통을 느낄 때 태연하게 행동하고, 진심으로 알아주거나 아픔을 함께 느껴주지 못했어요. 자신의 문제를 타인의 일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고요. 당연히 저는 불안과 부정적 감정에 압도당해 남편이 이기적인 파렴치한 인간으로만 느껴졌어요. 상담을 통해 이혼과정에서 남편에게 문자로라도(소통 불능이라) 공격성을 사용해서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어떤 선까지 선의를 베풀 수 있는지, 무엇을 허락하지 않는지 표현해보았습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엄마가 이런 도움을 받았었다면 무기력하게 애처롭게 지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죽은 듯이 살지 않을 거예요.


타인이 괴로워할 때 그 일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고, 지속적으로 공감하고 배려해주는 게 안정애착을 지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선생님께 설명을 듣고 알았어요. 무엇인가 잘 하지 못하고, 정리되지 않는 혼란이 있어도, 멍 때려도 선생님은 최선의 노력이라고 해주셨어요. 제가 힘들다고 할 때 선생님이 “당연하다고, 잘 했다고, 그래도 된다고” 알아주셔서 그게 되게 신기했어요. 그 말을 정말 엄마에게 듣고 싶었지요. 제가 살아오면서 성취한 것도 있었을 텐데 엄마는 과잉보호로 성취한 것을 없애 버렸던 거예요. 이제는 엄마가 해준 것과 제가 한 것을 구별해 나가려고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연스럽게 습득해야 할 상식을 배우지 못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진로도(취미도) 충분하게 고려해서 긴 시간을 투자하면서 (열중해서)고민하기보다 약간의 정보만으로 성급하게 선택 결정해서 만족도나 지속성이 짧아 그만두는 일이 많았어요. 무엇보다도 애착관계가 엉망이라 저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일에 불안을 느끼고, 자포자기가 일어나곤 했어요.


엄마가 안전기지로 충분한 기능을 못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탐색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엄마가 불안의 근원이라 엄마만 살폈던 것 같아요-얼마 전에도 엄마가 제 몸을 온 힘으로 압박하는 백일몽을 꾸었는데요.-선생님은 엄마의 뜻에 순순히 순응, 복종함으로써 보살핌을 받는 게 이제는 부담스러워져서 이에 반항하는 꿈-발달해가는 도중에 일어나는 스트레스라고 안심시켜주셨어요. 그 결과 지적인 호기심도 부족하고 또래관계에서도 소극적이고 무관심했기에 더욱 고립되었던 것 같아요.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정한 엄마, 아버지로 인해 저는 불안정애착이 형성되어 불안장애로 인해 집단 따돌림 피해를 오랫동안 당했는데요. 중고등시기뿐만 아니라 대학 때도 또래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기 어려웠어요. 엄마가 아버지가 자신의 부모로부터 대우받은 대로 저를 다룬 결과라고 생각해요. 윗사람에게(기대고 의존하고픈 욕구에) 상처를 받아 생긴 스트레스를 자신보다 취약한 존재에게 발산하는 구조가 아프게도 대물림된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모색이나 저항을 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부모의 애착유형이 저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거예요. 망가진 결혼을 생각해보면 역시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이 적나라하게 반복, 일치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부당한 평가를 받은 제가 다시 부모를 난처하게 하는 일을 저질러 그 평가에 걸 맞는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인격장애나 복잡한 발달장애를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로 ‘애착장애’를 갖고 있어서라고 합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또한 애착문제가 잠재해 있으면 회복하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해요. 저는 현실에 적응하는 자아의 채널이 막혀있어 객관적으로 저를 돌아보는 능력이 부족해서 성격발달을 이해해보는 정신분석 이론 수업이나 심리치료, 상담 스타디가 아니었다면 여러 치료기관을 돌아다니며 성장을 시도하고 그만두는 행동만 반복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약물치료든 심리치료든 어떤 사람에겐 효과가 나타나고, 어떤 사람에게 참담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요. 어떤 문제 양상은 치료자와의 관계에 따라서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분석은 병의 원인과 결과를 부모라는 병렬적 관계를 통해 이해하도록 도와주니 도움이 많이 됩니다.



3. 우울증과 대상관계(바바라)

Freud(1917)는 자신의 논문인 ‘애도와 우울' 에서 슬픔에 잠긴 애도 반응과 멜랑콜리아 우울증(melancholic depression)을 구별하였다. 우울증은 초기 주요 대상에 대한 실망 및 상실 경험과 관계가 있다. 우울증의 유발사건은 중요한 현실 대상을 실제로 상실한 것이지만 감정적인 것이기도 하다(잃어버린 억압된 내적 대상을 그리워하면서도 비난하는 이중 구조 속에 살아간다는 뜻이다). 대상을 상실해도 정상적인 애도를 하는 사람은 이성적으로 안정된 자존심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만회가 가능한 발달상태), 깊은 우울증의 경우는 자존감과 자존심의 심각한 손상으로 자기 비난과 죄책감이 동반된다고 한다. Freud는 유아가 생후 처음으로 애착을 형성했던 대상인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상실감을 경험한 다음에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한 채, 그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하여 우울감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Freud에 의하면 유아의 리비도는 어떤 특정 대상, 대개는 엄마에게 집중되는데(애정을 느끼게 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랑하는 대상에게 박탈을 경험하면서 이때 대상으로부터 철수된 리비도가 다른 대상으로 옮겨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아(ego)는 포기된 대상을 동일시한다는 것이다.(내적대상과 함께 사는 내향화) 그러면 대상의 그림자가 자아에 드리워지게 되고 그 자아는 생명력을 잃게 되며, 대상상실이 곧 자아 상실로 옮겨지게 된다.

 

우울증은 대상상실이(애착했다가 상실한 대상-사별, 이별, 박탈 등) 현실로 지각되고 소화되었어야 만 했는데(위로로 떠나보내는) 어떠한 이유로 애도하지 못하고(사로잡혀서-거부하는 내적대상, 흥분시키는 내적대상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음을 배웠다), 상실한 대상을 내면에 집어넣고(떠나보내지 못하고) 외부세계에서 외부대상에게 리비도를 주지 못한 채(철수, 회피) 지속적으로 무력해지는 상태를 일컫는다.(외부대상관계를 전혀 하지 않는 고착된 상태가 멜랑콜리아-정신증상태다.) 자아가 외부대상에 관심이 없어지면서 자기발달은 멈추게 된다. 우울증에서 나오는 방법은 외부세계에 관심을 두고, 외부대상을 리비도 카텍시스를 해서(그 애정대상을 새로 동일시하면서) 외부세계로 나아가면 자아발달이 이루어진다.(우울증에서 나오게 된다.) 리비도 카텍시스 된 현실 외부대상은 내적 대상을 상쇄할 만큼 좋은 대상이어야 한다.(변화, 성장시키는 애정을 주고받는 의미 있는 대상, 좋은 기회나 계기) 또한 대상관계이론의 관점에서 자기표상과(타인 표상, 대인관계 표상) 관련지어 볼 때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때 우울증 자기 상태로 본다.(자기상이 부정적) 자기개념은 인간의 행동과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이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일 때는 만족과 기쁨을 느끼지만, 부정적일 때는 불만과 좌절감을 경험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부정적 사건에 몰두하면서 결국 부정적인 자기개념을 개선하지 못한 채 살게 된다. 우울한 사람들의 대인관계 특성은 개인의 문제나 실패경험에 몰두해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 패턴이 부정적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절행동과 회피행동을 창출해 사회적지지 체제를 무너뜨린다. 또한 우울한 사람들은 사회장면과 친밀한 관계형성에 있어서 정상인들보다 어려움을 경험하는데, 인지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우울한 사람들은 자기비판적인 성향이 매우 높고, 완벽 자체를 추구하고, 흑백논리로 실수를 혐오하는 속성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또한 정서적인 측면에서 지나치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게 문제인데 이런 사람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만 중요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자의적 해석이 과하고, 다른 사람을 신뢰하거나 사랑하지 못해서 사소한 자극에 상처를 쉽게 받는다. 그 결과 우울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위안을 추구하는 행동을 빈번하게 나타낸다고 한다.

 

우울증은 인격 장애처럼 편향적인 사고방식과 행동패턴으로 자신과 주변사람을 괴롭히며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 정보나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과 행동에는 개인차가 있고 기질, 성격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지만) 자신에 대한 비합리적인 면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도움을 주려고 가르쳐주면 침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감과 현실감이 없어 자신을 무능하다고 믿고, 남에게 묻거나 배우지 못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반복해서 열등감에 시달리고,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우울의 문제 정도가 지나친 것이다. 자신감이 결여된 우울한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그다지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의지박약해서 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려고 해서 위태로운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종속과 순응 그리고 남 탓) 나는 성당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석 달 사이에 여러 번 실수를 했다. 직장만큼이나 복잡한 조직에서 함께 유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부분에서 자기애적 성격 탓에 나에게만 집중해 있다가 전체를 못 보는 실수를 했는데 행사를 나중에 신청해야지 하고는 날짜를 놓치기도 하고,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전달을 잘 못하는 등 크고 작은 실수를 통해 불거진 문제로 스트레스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나는 솔직한 열린 대화로 어떤 대상에게 어울리는 대화가 불가능한데, 남이 인정해주는 것만이 진실인줄 알고 살아서인지 소통해야 할 때 내 정체가 발각될 날을 기다리는 죄인인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매사 책임지고 싶지가 않아 수동적으로 아주 최소한의 것만 하려고 하고 “내가 그럼 그렇지 뭘 잘하겠어?”하는 부정적인 느낌이 일어나 소화불량에 잠을 못잔 것도 아닌데 피곤해서 치료를 하다가도 졸기까지 한다. 그리고 망년회라고 잡힌 모임에 여러 이유를 대면서 나가지 않고 있다. 헌데 우울증 과제하면서 이러한 회피적인 모습이 무기력 증상이라는 것을 자각을 하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우울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회피행동이 나의 무력감과 연결되어 우울함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내가 원하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꼼꼼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건강한 자존감이나 가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배우고 실천을 해본 적이 없어서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회피나 부정 없이 산다는 것은 ‘의식하는 삶’을 산다는 것인데, 나는 내가 한 행동을 실감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주도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엄마에게 칭찬을 받기보다 “그걸 잘 하면서 다른 건 왜 못해?” 라는 핀잔을 들었기에 무엇을 제대로 잘하는지 몰랐고, 무엇을 완수해도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를 잘하면 다른 것을 요구받고, 요구받은 걸 못하면 “니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말로 모욕을 받았기에 매사 그 어떤 것도 책임질 수가 없어서 하기 싫은 것은 대충 하는 척, 피해의식이 커서 알아도 모르는 척 수동적으로 최소한의 것만 하고 살아왔다. 결국은 잘된 것은 그렇게 가르친 엄마의 힘, 능력이 되고, 안 되는 것은 가르쳐도 안 되는 내 탓, 무능력이었기에 부정적인 자아 표상만 거대해졌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마주하면 긴장이 되어 밥을 먹다가도 체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없을 때는 허기가 져 늘 무엇을 먹어도 배가 고팠었다. 좋은 심리적 영양분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와의 모든 사건에서 일어난 나의 반응은 평생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가를 결정해 주었다. 나는 엄마관계에서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자질을 느껴보질 못했다. 자존감이 손상되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면 내 인생의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삶에서 피해를 주거나 받으면서도 한 번도 진지하게 ‘내가 나 자신에게 내리는 판단’에 주목해 본적이 없다. 나는 현실감 있는 생활능력을 갖추고, 나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과 대체로 만족스러운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고, 실수나 좌절에서 회복할 수 있는 인내력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때때로 나의 효능감이나 장점들이 현실에서 느껴지지 않아 세상이 사람이 때론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나는 거대하고 도달하기 어려운 훌륭한 멋진 일에만 ‘도전’ 이라는 말을 쓰는 줄 알았다.

 

현실에서 자질구레하게 대응해야 하는 일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존감을 갖기 위해 현실에서 피해갈 수 없는 일에 능숙하게 대처하면서 그 에너지를 내안에 얻는 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자존감이 낮아 익숙하고 쉽고 편한 것만 찾아다니며, 어린 시절 엄마와의 관계에서처럼 회피적으로 만만하고 부담 없는 상황만을 찾아다녔지만 세상에 그렇게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삶은 피해갈 수 없는 문제투성이다. 나는 성당에서 여러 문제가 일어난 가운데도 그 경험을 통해서 삶의 소중한 지혜를 배우고 나를 성장시키는 기회로 삼으려는 마음보다는 아무 문제가 아닌 듯 하루 빨리 사건을 덮어두고, 그건 나만의 잘못은 아니었으며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며 나의 억울함을 변명하는 포장에만 집중했다.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건강한 죄책감 대신 나는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번에 운이 나빴으며, 나는 좋은 사람이고 그럴 의도가 없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계를 인정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실을 인식하며 내가 나아질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