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슈퍼비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상호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11.상담스터디 - 애착장애

1. 'NO’하고 싶어요.(엄마와 분리하고 싶어요.) 불안정 애착 -테오도라


불안정한 애착은 아이가 일관되지 않은 애정과 불안한 양육환경을 제공한 엄마에게 적응한 결과라고 한다. 불안정한 아이는 원할 때만 자신을 보살펴주는 엄마에 대한 기대나 바람자체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적응을 한다. 한 예로 울면서 떼를 쓸 때만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엄마에게 적응하기 위해 과잉행동을 하게 된다. 격한 반응으로만 관심을 끌 수 있다. 공격적인 행동이나 말, 울부짖음으로 엄마를 난처하게 하는데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불안을 거울처럼 반사할 뿐이다.(토라짐, 짜증, 식사거부 등) 물론 문제행동의 원인은 아이에게 있는 게 아니지만 자신이 느꼈던 해결되지 않은 강렬한 혼란스러운 감정은 증상으로 표현된다.(자동반사) 불안정애착은 어린시기만의 문제가 아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불안정한 애착을 극복하지 못해 계속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불안을 억압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나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고 부정적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마음속에 늘 불만이나 증오만 가득 차게 된다. 불안정 애착을 지닌 사람에겐 늘 환경이 문제가 된다. ‘주변에 힘들고 나쁜 사람들만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자신과 대상을 건강한 방식으로 돌보질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엇갈리는 것만큼 불행을 자초하는 일도 없다.


상대의 의중과 무관하게 자신이 생각한 현실이 진리라는 착각이 늘 일어나는 것이다. 상당수 정신질환이나 피행망상(피해를 받지 않았는데 이미 받은 것처럼 느끼는 상태), 피책망상(상대로부터 책임을 떠맡지 않았는데도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고 상대방에게 맞추며 무리하는 상태), 피해혐오는(타인에게 미움을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혐오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상태이고, 자신의 약점이나 공포가 외부로 투사되어 강렬한 혐오가 일어나는 상태이다.) 애착이 좌절되면서 증상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특히 불안을 진정시키는 약물치료의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일수록 만성화된 심각한 애착의 문제가 있는 경우라 한다. 이들은 현실과 무관하게 상상속에서 좌절하고 혼자 지쳐가는 사람이다. 내 무의식 안에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화를 내는 불안정 애착의 형태가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특정인물에게 나를 버리지 말라며 의존하고 매달리는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도, 상대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빈껍데기가 될 지도(poor 해지거나 혼자 남을지 모른다는) 모른다는 공포가 일어난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버림받는다는 공포, 누군가에게 휘둘린다는 공포이다. 엄마는 변덕이 심해서 어떤 날은 나의 요구에 지나칠 정도로 과민반응을 하다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곤 하셨다.


엄마의 어긋난 반응과 엉뚱한 반응으로 하루하루가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과잉자극을 주었다가 소홀해지는 엄마에게 적응하기위해 나는 엄마가 반응할 때 까지 집요하게 요구하는 모습이 강화되었다. 내가 사람들의 표정에 민감하고 지나친 애정과 인정을 바라는 모습이 이렇게 엄마관계로부터 강렬하게 전염되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엄마에게 사랑받아 안정을 얻고 싶은 욕구가 정말 강렬했었다. 지금도 과거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화가 난다. 나의 어린 시절은 무시간성으로 무한 반복 진행중이다. 평생 동안 엄마는 딸인 나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해서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이런 저런 요구를 하신다. 더 기가 막이는 것은 엄마의 이런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와서 그것을 분리하려는 의식적 태도로 격노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엄마의 말, 눈빛, 정서 상태를 통째로 내사해서 그 행동을 마치 내 것처럼 동일시하였다. 어린 시절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인 엄마의 이상한 요구는 제대로 나의 것이 되지못하고(분별이 불가능하고) 극심한 혼란과 정서불안의 상태로만 느껴진다. 엄마를 미워하는 것인지 내가 미운지 분간이 안 된다. 결국 분석에서 엄마에 대한 원망이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표출된다고 알게 되었다. 부모에 대한 의존이 다 증오로 바뀌었다. 엄마는 지금도 나에 대한 과한 걱정과 부정적인 우려가 크다. 걱정은 과잉보호이고, 과잉 간섭인데 결국 나에게 의존하는 엄마의 분리불안이 해결이 안 되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원래는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쪽이 사실 엄마였던 것이다.


평생 엄마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딸과 내가 느끼는 현실이 너무도 달라서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울화가 치민다. 엄마의 말 한마디에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괴력이 느껴진다. 엄마의 말을 적당히 거절하고 거리를 두어야하는데 나는 그러한 거리 설정이 되질 않는다. 경계가 망가진 게 아니라 이제 벽돌을 쌓아 올려 경계를 만들어야 한다. 엄마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조차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문제는 이렇게 고착된 엄마와의 관계가 모든 사람에게 반복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일을 처리하고, 타인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관계의 정확한 거리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한다. 상대를 먼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다음에 관계의 정도를 설정하는 것이다. 헌데 나는 인간관계에 거리 감각이 매우 부족하다. 친밀함이 주는 행동에 대한 과잉 기대가 늘 발동해서 그렇다. 나는 자연스러운 인간관계가 어렵다. 누구든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관계를 이어나가려면 적당한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 여러 타입의 사람을 구별하고 파악해야하는데, 모든 사람이 좋아 하는 한 덩어리의 사람으로만 느껴진다. 취향이 맞는지, 가치관이 어떤지, 매너가 있는지, 친밀도 차이가 어떠한지, 자기만의 세계에 있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무조건 맞추는 무리를 하다가 파국이 일어난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요구를 잘 들어주는데 기가 빨려 금새 지쳐버린다. 작은 일도 모든 사람이 동의해야 일이 진행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결코 나라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거절당할 내용인데 객관화가 되질 않는다. 바라지 않던 일이 일어나면 무조건 나의 약점과 연관 지어 거부당했다고 결론지어진다. 무엇보다도 큰일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러지 않아야 하는 사람에게 푸념을 털어놓거나 거리 있는 사람에게 불만을 늘어놓는 다는 것이다. 나를 긍정하지 하는지 구별을 하지 않고 내면의 심각한 문제를 쏟아 놓는다. 내가 무슨 일을 겪는지 다 알려주고 싶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피하고 싶은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들이 나를 피하거나 거부하고 평가절하 한다고 분기탱천한다. 정작 현실적인 안목이나 확신, 경계가 없어 타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때는 부탁을 하지 못한다. 허투루 한일, 실레, 무례함, 무감각을 정말 구별 못한다. 온통 나 자신만 중요해서(의존욕구가 강해서) 상대방의 처지를 가늠할 시간이 없다. 상대를 바라보지 않는 것은 결국 자기집착이 강한 것이라 하는데 엄마와의 동일시 상태를 깨지 못하는 유아적인 태도와 심한 애정결핍으로 유대에 대한 기대감이 엄청나서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로보지 않아 나의 위치나 역할을 모른다고 선생님께 늘 지적을 받지만 늘 무시하고 무리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 약점을 드러내도 이해받을 수 있는 관계는 늘 따로 있다고 하지만 나는 모든 약점을 드러내어 불필요한 짐을 마구 나누어지게 한다.


사실 친한 사이에서나 하는 행동이나 아닌 행동 무엇인지 가려낼 수가 없어 선생님이 항상 내 상황 속에 함께 계셔 가려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고 상대는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나와는 어떤 형태의 관계를 원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배우는 것이 나에게 중요한 일이다. 제어되지 않고 절제하지 못하는 마음이 심각한 애정결핍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않고 주변사람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나에게만 집중하여 하는 생각이나 말과 행동이 얼마나 현실세계를 반영하지 못하는지 그 정도가 심각하다. 나에게 중요하지만 상대에게 중요하지 않고, 나에게나 상대에게 중요 할 때도 상대의 반응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선생님은 가끔 내 귀에 좋은 달콤한 말을 해주고, 나만 바라보고 좋아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일 수 있다고 하셨다. 반대로 불편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도 잘 들어보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하신다. 똑같은 말에 어찌 해석이 그리 다를 수 있을까.


선생님은 남편이 나의 약점을 찾아내어 비난하고 조롱하고 원망할 때 남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보복이나 복수심은 자기중심성에서 갇힌 비현실적인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누누이 알려주시지만 나는 그 상태에 동일시되어(남편상태가 되어) 응징으로 그 억울함을 규명하고자 난리가 난다. 이런 히스토리를 가진 까닭에 내가 아이들에게 온전한 안정감을 주며 독립할 수 있도록 정상적인 평범함을 가르쳤을 리 없다. 엄마의 변덕과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불안과 부정적인 흥분을 전염시키며,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변명 아래 내가 경험한 부정적인 사랑을 전수하였다. 딸에 대한 분리불안과 아들에 대한 분리불안은 그 모습이 달랐다. 큰 아들은 이른 나이에 결혼 생활과 낯선 유학 생활을 동시에 겪으며, 일생의 대혼란 가운데 주위에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이 이국땅에서 태어났다. 나는 심한 산후우울증으로 표현조차 불가능한 불안을 해소할 수 없는 상태에서 병리적인 괴기한 행동을 하다가 결국 아이를 한국 친정엄마에게 던져버리고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후 아들을 마주할 힘이 없어 여전히 공부 핑계로 친정집에 두고서는 따로 떨어져 살았다.


어느 순간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게 되었고 둘째도 생겼지만, 혼란과 불안으로 아이들과 온전하게 함께 할 수 없었다. 언제나 도망치고 싶은 극도의 불안을 경험하며 아이들을 방치했던 것 같다. 불안정한 내 상태로 인해 아이들에게 칭찬이나 사랑의 안정감을 주기보다 공포, 불안, 혼란과 같은 부정적 감정만 전염시키다 보니 아이들은 엄마처럼 불안정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야 말았다. 결국 먼저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즈음 학교생활이 힘들게 되고 성적도 곤두박질되니 나와 대립하게 되었다. 그 당시 모든 책임이 엄마라며 엄마가 해준 것이 무엇이 있냐는 아들의 말이 와 닿지 않을 뿐더러 내 인생을 포기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억울함만을 아이에게 주장했다. 결국 초등 고학년인 아들은 분뇨의 문제까지 생기게 되었다. 온통 아들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던 나는 내문제와 아들의 문제 사이에서만 혼란으로 우울해했고 둘째아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둘째아이가 중학교 2학년부터 행동장애를 보이며 반항과 가출을 통해 ‘엄마! 나 좀 보세요!’라는 호소를 하였다. 나는 여전히 아이 탓을 하며 홀로 여행하고 도망갈 구멍만을 찾았다. 딸아이의 엄청난 자기혐오 행동을 보이고 나서야 나는 그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아이를 살리려 갖은 애를 쓰며 노력했다. 엄마에게 딸은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나의 복제인간이다. 나와 같다, 나와 같은 상태라는 근거 없는 안도감때문인지 섬세하게 다루어주질 못했다.


그래서 딸이 나와 다른 욕구가 있어 나와 다르게 행동할 때 외계인 같고 믿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난다. 딸의 성격을 파악하지도 잘 개입하지도 못하는 부분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런 부분은 훌륭한 누군가에게 맡겨야겠다는 생각만 앞섰다. 딸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엄마가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한데 그 분리가 수용되지 않아 나는 딸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결국 나도 엄마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면 버려질지도 모른 다는 공포를 심어주었다.(엄마가 없으면 살 수가 없어 엄마에게 멀어지면 큰일 나.) 역시 나는 딸에게 의존했던 것이다. 딸의 어떤 점이 나의 단점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면 나를 보는 것 같아 싫고 나보다 뛰어난 부분이 보이면 서운하다. 하지만 아들은 나와 다르다는 셀렘과 기대가 항상 일어나는 존재다.(이상적인 이성) 나와 다른 존재라고 생각되어서 지나친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느껴지지 않고 무조건 사랑스러웠다. 지금 아들은 다행히 NYU에 입학하여 자기 생활을 해나가고 있지만 인내심의 결여, 감정 과잉, 공포감과 욕심, 사회적 감정의 결여로(적대감에 압도당해서 악의로 가득 찬 사람에 대한 확신이 크다) 고생하고 있다.


사소한 말에 기분이 상하고 무턱대고 타인의 언동에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불안정애착의 기운 때문인지 아들을 밝고 강렬한 분위기가 아니면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시끌벅적하고 흥청거리는 파티 속에 있어야 하고 정숙하고 절제된 세계를 두려워한다. 아들이 자신의 혼란을 이해하지 못해서(부모의 것도) 어른노릇을 못할까봐 걱정이 크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세상이 당연히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줘야 한다고 생각하여 원망만 하며 살까봐 무섭다. 나의 불안정감과 열등감으로 인해 아들을 과잉보호해서(완전한 보호) 일체의 고민이나 번뇌가 없는 유아기상태로 퇴행하며 살지 않도록 현실에서 책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분리시키고 싶지만 어렵다. 아들은 성장하기를 포기한 어린아이처럼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해라는 오만하고 미숙한 나르시시즘의 세계에 갇혀있다. 유아기 엄마의 존재를 갈망하지만 충족되지 못해, 무엇을 받아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짜증 가득 예민한 아이가 되었다. 계속 반복되는 실수나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남 탓을 하거나 이유를 붙여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어릴 적 나의 비합리에 맞서 제대로 공격성을 써보지 못하고 눌려버린 아이는 이제 한마디에도 발끈하며 닫아버리고 소통하지 않으려는 고집불통이 된 것이다. 더욱 기가 찬 노릇은 아이가 교정 받지 못하는 아이가 될까 봐 내안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 착각으로 이미 성인이 된 아이에게 엄마로서 무언가 해주어야 하는 것 같은 정상적이지 못한 융합 욕구가 일어나 아이에게 달려들어 이리저리 살피고 이것저것 모두 들어주는 엄마가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안 되는 것은 분명하고 또렷하게 ‘NO’라고 말하며,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견뎌 주어야 하는데 이 미성숙한 엄마는 또다시 자기 불안으로 아이를 흔들어댄다. 선생님은 불안한 나에게 오늘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살라고 한다.(더 짧게는 오전 오후) 이미 일어난 불쾌한 일, 일어날 일도 오늘만 생각한다. 오늘이 괜찮으면 내일도 괜찮겠지 생각해본다. 잘못된 습관의 관성을 벗어나는 것을 힘겨운 일이지만(나쁜 생각만 하면 프리징이 온다.) 새로운 매뉴얼로 조금씩이라도 예전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보는 것이 쌓이다 보면 내가, 내 삶이 완성되지 않을까.



2. 불안정 애착(리브가)

애착이란 한 개인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강한 정서적 유대관계이며, 유아의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진화된 인간의 능력이다. 인간은 언어발달 이전에 이미 애착행동인 여러 가지 신호행동(웃음이나 울음 같은)과 접근행동(기어가기, 안기 같은)을 통해 부모와의 접근을 추구함으로써 스스로의 생존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았다. 동물행동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애착형성과정에서 영아는 스스로 보살핌을 이끌어 내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애착은 어머니와 영아 간의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애착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던 Bowlby의 말처럼 애착은 다른 사람에게 접근추구를 하고 접근을 유지하려는 행동이며, 가장 가까운 사람과 연결되게 하는 강렬하고도 지속적인 정서적 결속이다. 애착은 선택적인 특성을 갖고 있어서 극히 제한된 소수의 대상에게 형성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애착이 형성된 대상에 대해서는 공간적, 심리적으로 가까이 있고 싶은 욕구를 가지며 애착대상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내용으로 애착의 질이 결정된다. 영아가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주위를 탐색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애착대상에게 갖는 신뢰감을 바탕으로 하는 안전감에 기초한다. 영아가 양육자를 낯선 환경이나 불안한 상황에서 언제든 되돌아 올 수 있고 정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안전기지로 여기는 것이 애착의 근본적인 모습인 것이다. 영아의 경우 생후 2년 이내에 양육자와 맺은 애착형성의 결과가 이후의 정서발달 및 대인관계 발달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영아가 성취해야할 최초의 사회적인 발달 과제가 애착이다.

 

애착행동은 성장하면서 감소하고 스트레스상황에서는 증가 한다거나 편안한 상황에서는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한 번 형성된 애착의 모습은 변화되기가 힘들고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Ainsworth는 각 에피소드에 나타나는 영아의 행동을 근거로 애착유형을 ‘안정애착’, ‘불안정-회피애착’, ‘불안정-저항애착’으로 분류했다. ‘불안정-혼돈애착’은 후에 추가되었다. ‘안정애착’은 연구대상의 65%정도의 영아에게서 발견되는데, 주위 탐색을 위해 엄마와 쉽게 떨어지고, 함께 놀 때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분리 시 울 수도 있고 울지 않을 수도 있으나, 울더라도 쉽게 진정되고 주변 환경을 다시 탐색한다. 엄마가 돌아오면 반갑게 맞이하고 쉽게 편안해지는 모습이다. 엄마와 영아 사이에 애정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비교적 행복한 영아들이다. 엄마는 아기의 요구, 신호에 일관되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편안하게 허용해 주고, 영아는 필요시 엄마가 안전기지 역할 한다는 것을 기대하므로 분리 시에도 쉽게 탐색으로 돌아간다. ‘회피애착’은 연구대상의 20%정도의 영아에게서 발견되는데, 엄마가 방을 떠나도 울지 않고, 돌아와도 무시하거나 회피한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친밀함을 추구하지 않고 낯선 사람과 엄마에게 비슷하게 반응한다. 환경에 대한 탐색도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엄마로부터 어떤 위안이나 애정도 끌어내질 수 없는 영아들이다. 엄마는 아기의 요구에 무감각하고 신경질적이며, 거부적이고, 영아는 엄마의 거부와 화내는 것을 막기 위해 애착행동을 억제하며 속으로는 불안하고 엄마의 동태를 살피면서도 애착행동을 표현하지 못한다. ‘저항애착’은 연구대상의 10-15%정도의 영아에게서 발견된다. 이 영아들은 엄마가 방을 떠나기 전부터 불안해하고, 옆에 붙어 별로 탐색을 하지 않으며 분리 시 심한 분리 불안을 보인다. 엄마가 돌아오면 접촉하려는 시도는 하지만, 안고 달래도 엄마로부터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믿을 수 없다는 의미) 분노를 보이며 내려달라고 소리치거나 어머니를 밀어내는 양면성을 보인다. 엄마에게 끌리나 신뢰하지 않는 영아들이다. 엄마는 비 일관적인 양육행동으로 아기의 욕구를 무시하다 들어주고, 영아는 애착행동이 강화되어 언제 보일지 모르는 엄마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과장된 애착행동 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혼돈애착’은 연구대상의 5-10%정도의 영아에게서 발견된다. 불안정 애착의 가장 심한 형태로 회피애착과 저항애착이 결합된 것이다. 엄마와 재결합 시 얼어붙은 모습으로 멍한 상태를 보이며,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다가 엄마가 다가오면 갑자기 피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극단적인 혼돈상태로 엄마에게 접근해야할지 회피해야할지 혼란을 보이는 영아들이다. 엄마가 해결되지 않은 상실이나 외상을 경험한 경우, 정신장애(우울증, 알콜중독 등)로 인해 아동방치, 학대와 같은 위협적인 양육태도를 보이고, 영아는 접촉에 대한 욕구는 강하나, 버림받고 구박받는데서 오는 공포가 공존하게 된다. 불안정 애착을 성인의 모습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불안정 애착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얼마나 인정하는가에 매우 민감하다. 상대방의 기분이나 표정을 살피며 인정받으려고 노력하지만 조금이라도 자기를 낮게 평가하는 기색이 엿보이면 기분이 가라앉고, 언짢은 반응까지 오면 공격적인 대응을 한다.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는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불안정 애착형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지나칠 정도로 착한 사람 행동을 한다.

 

하지만 금세 한계가 오는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착한 사람과 정반대의 나쁜 모습을 드러낸다. 본인 입장에서는 자신을 화나게 만든 상대가 나쁜 사람이지만 본인도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불안정 애착형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나치게 바라는 의존 성향 때문이다. 호감을 느끼거나 좋아하는 대상이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모습일 때는 좋은 모습이 나오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나쁜 모습이 드러내는데, 어린 시절 무서운 부모에게 야단맞았던 아이가 크면 무서운 부모가 되어 나쁜 사람을 꾸짖는 격이다. 상대방이 착하게 굴면 자신도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자신도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성급하게 내린다. 불안정 애착형은 외면당하거나 거부당했다는 느낌이 들면 기분이 상해서 부정적 상태로 돌변한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은 필요 없다는 식이다. 또한 뭔가 불쾌한 일이나 자기 생각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주동자라고 여기는 사람을 끊임없이 비난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아무리 상대가 도움을 주려해도 마음이 열지 않는다. 자신이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떨쳐내지 못해서 그런 언행을 보인 상대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안정 애착형은 자신의 불평이나 불만을(고통과 괴로움에) 누군가 진지하게 귀 기울여 줄때 안정감을 느낀다. 실질적 조언이나 지원은 그 다음이다. 이들이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이야기 했을 때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적극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불안정 애착형은 특히 일관성이 있는 성실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성실하고(응답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해주기에),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긍정적인 관심을 기울여 주는 사람을 원한다. 또한 불안정 애착형이 기분 나쁜 태도와 거부,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때는 이해해달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반응을 보고 상대방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짓거나, 아니라고 하거나, 귀찮다는 태도를 취하면 관계는 순식간에 관계가 나빠진다.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도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흘려들으면 안 된다. “알았어. 편할 때 이야기해줘. 왜 그러는지 말해주면 좋은데.”라고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이들은 자신이 힘든 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다가가는 것을 주저해서 그렇다. 중요한 것은 다가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엄마는 자기중심적이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지 못하신다. 자신의 말에 상대가 얼마나 상처를 받는지 가늠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부족한 분이셨다. 어릴 적부터 예민했던 나는 설상가상 엄마로부터 너무나 센 상처를 받았다. 예민한 사람에게는 예민함 자체보다 예민함을 이해받지 못하는데서 오는 고통이 더 크다. 예민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상식도 차이가 크다고 한다. 평생 나는 예민함을 감추며 아무렇지 않게 무서운 엄마를 무리해서 맞추고 살아왔다. 엄마의 간섭과 통제, 과보호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내성이 생기지 않아 감각적인 예민함, 심리적인 예민함으로 평생 박해기대와 박해불안에 시달리면서 말이다. 어떤 때는 최악의 상태를 생각하는 게 오히려 덜 낙담하고 적게 상처받는다고도 생각된다. 스트레스에 대처할 힘이 부족해서 사람이나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다보니 기대되는 이익보다 혹독한 비극을 떠올리는 게 어느 순간 방어가 된다. 외부에서 힘든 자극이 오면(무엇보다도 사람) 아예 멀어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만 제외하고 차단한다. 예상치 못한 일에는 불안이 크게 일어나는데, 내가 가장 힘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강제성이 느껴지면 감각적인 회피와 심리적 회피가 세게 일어난다.

 

즉 나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침해당했다고 느끼면 제정신이 아니다. 요새 드는 생각은 “내가 만약 그때 나를 잘 알았더라면 지금의 남편과 결혼 안 했을 거야.” 이다. 결혼을 해서(언제나 관계 속에 재생되겠지만) 원 가족 안에서 느꼈던 소외감과 상처를 다시 경험할 것을 알았더라면 말이다. 남편은 가벼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한 살 터울의 형과 7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우리가 결혼할 당시 미혼이었던 아주버님과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가씨를 포함한 시댁의 다이나믹이 내 상처를 건드릴 지 어떻게 알 수가 있었겠는가. 어머님은 불쌍하다고 여긴 큰 아들을 과보호하며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쓰셨다. 시부모님의 태도를 보며 친정엄마에 대한 기억이 자동 소환되었다. 어머님의 과잉보호는 아주버님이 결혼을 한 이후에 형님에게까지 확장되어 적용되었다.

 

형님은 자기가 불쌍한 사람을 구제해 주었으니 모두 자신에게 잘 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주어진 의무인 제사나 명절, 시부모님의 생신 같은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려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집 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나의 몫이 되어 버렸다. 친정에서 오빠로 인해 터무니없는 피해를 받았던 상황이 재현되니 불쾌했던 트라우마가 연타로 느껴지면서 피해의식이 밀려왔다. 형님은 일단 상대와 친해졌다고 생각되면 과도한 기대를 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상대가 일일이 알아주고 챙겨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대는 늘 새로운 욕구로 바뀐다. 애착하는 엄마에게 보호를 받은 아이는 그 존재에 절대적인 안도감과 신뢰감을 갖는다. 그것이 안정된 애착의 모습이다. 하지만 거부나 방치당한 아이는 도움을 바라는 것을 어리석은 짓으로 생각하고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살아간다. 남에게 의지하거나 약점을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결국 인생은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불만으로 가득 찬 위협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던 엄마로부터 배운 것은 솔직한 감정을 누르고 버림받지 않고 눈치껏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무엇이든 제대로 열심히 하고, 꽤 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척척해냈던 것 같다. 그만큼 존재감에 대해 인정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헌신이나 희생을 하면서도 정서적 부침이 너무나 컸었던 같다. 누군가 대가없이 나의 헌신을 요구 한다면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상처를 크게 입고 불안해 지기 때문이다. 인정이나 안심을 얻으려고 지나친 애착행동을 했던 것인데, 염치없이 그 공로와 수고를 가져가 버리면 나는 너덜너덜 상처투성이가 된다. 그때는 나도 힘들다는 시늉을 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시어머님의 사랑을 갈구하며 전심전력으로 모든 일을 처리했었다. 마음속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쌓여갔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많은 일을 처리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상황을 다루지 못하는 어머님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고, 무언가 더 잘 하면 더 많은 의무로 나를 힘들게 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기대가 일어나 그 어떤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시어머님에 대한 양가감정이 생겨났을 때(모순되게 느껴져 미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확신하지 못해(어떤 게 옳은지 알 수가 없어, 복잡한 감정이 부담스러워 거부하는 게 나아보였다.) 나의 욕구가 여러 방향으로 갈려 불안하다가 거리두기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도나 노력이 불가능했다. 인간관계의 본질(사랑과 신뢰)을 알지 못해서 그렇게 행동했다. 누구에게든 짜증이나 불만이 생기는 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인데 분노나 불만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잘못된 선택의 증거로 삼았다. 내가 엄마에 대한 양감감정이 해결되었다면 친구이든 가족이든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분노, 가끔은 증오까지 참아내며 친밀한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양가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미워죽겠지만 그 감정이 지나가면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배웠다.(나는 절교가 쉽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복잡한 감정을 인내하지 못해 나는 친밀한 관계가 어렵다. 얼마 전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지난 20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아쉬운 점은 어머님과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점이다. 감정적 욕구나 나약함은 ‘아기’와 같다. 책임감 있게 스스로를 돌보면서 욕구를 직접 채우거나 욕구를 충족해줄 사람을 찾는다.

 

나의 내면 안에 어른과 아이가 마구 뒤섞여 있다. 어떤 부분이 밖으로 투사가 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뿐이다. 큰 문제는 대부분 내가 과도하게 아무 것도 필요 없는 것처럼 무리를 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의지하게 만든다. 평생 시부모님께 의지해서 위로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려다 탈이 나버렸다.(엄마와 나의 구도) 또 관계를 하지 않으면서 편했느냐. 그건 아니다. 극도의 긴장으로 기력을 소모한 탓에 많이 무기력했다.(소진 증후군) 나에게 관계는 해도 탈, 안 해도 탈이다. 안정애착의 관점에서 보면 실제의 자신을 표현하고 살면 ‘진짜’가 찾아온다. 나에게 찾아온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불안정애착의 사람은 누구와 사귀어야 행복해지는지를 알지 못하고, 대상도 잘못 고른다. 내게는 중요한 일도 상대방에게는 별의미가 없는 경우가 있고, 내가 지나치는 것에 상대는 주목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일이든 한결같은 반응을 기대해서 여러 오해 속에 살았다. 적절히 가까운 관계를 갖지 못하면, 친밀해야 할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면 삶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이제야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완벽한 인간이 되려다가 보니 부족한 사람은 나에게 미움을 받았다.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그리스 신화로 나그네를 공짜로 재워주는 대신 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침대길이에 맞춰 자르고,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춰 늘려 죽였다는 잔인한 이야기) ‘그래야만 하는 나’는 엄마의 부적절한 기대를 채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너무 잘못된 어려운 수준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나와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살아왔던 것 같다. 아직도 나는 상대와 친밀함을 공유하지 못해서 의견이 다르거나 언쟁을 하는 것만으로 관계가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다행히 애착연구에서 긍정적인 감정과 인지는 안전기지 역할을 해서 의욕을 높이고 인간관계와 사회적응을 돕는다고 한다. 지금 노력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모습에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나에겐 좋은 부부관계, 자녀관계, 자녀의 학업적 성취 그리고 사회적 명성과 부, 인격이 훌륭한 남편, 좋은 친구들과 가치 있는 모임 등 안정적인 애착의 모습이 있다. 이 스펙트럼 안에서 나의 불안정 애착의 모습을 살펴본다. 이렇게 넒은 시야로 나를 보는 모습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겐 하나의 모습만 있지 않다. 그게 이상할 일도 아니다.



3. 회피성 애착유형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유나)

볼비의 애착이론 공동 연구가인 에인스워스는 엄마의 감수성을 애착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다. 엄마가 아이의 변화나 징후를 놓치지 않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이의 애착이 안정되었던 반면 엄마가 아이의 반응에 관심이 없거나 아이가 무엇이 불편한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울어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은 가정에서는 엄마와 아이 사이의 애착이 약하거나 심지어 전혀 없었다. 실험에서 엄마가 사라져도 아무 관심 없이 놀이만 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 아이들은 엄마가 돌아와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평소에도 엄마에게 전혀 응석을 부리지 않고 특별히 친밀하지 않았다. 에인스워스는 이를 회피형 애착이라고 칭했다. 물론 회피성아이는 엄마와 분리되었을 때 심박수의 변화가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없어도 신체는 실제로 반응했다. 회피형 성격구조를 지닌 엄마는 대체로 아이에게 무심하고 아이가 다가오는 것을 귀찮아한다. 아이가 울거나 슬픈 표정을 지어도 아이를 좀 더 안아주거나 적극적으로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무심하고 아이와의 신체적 접촉도 부담스럽게 여긴다.


아이가 애걸복걸해야 바라보고 원하는 것을 해준다. 아무리 엄마를 원해도 엄마가 반응을 충분히 보이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니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엄마에게 거부당했다고 느껴 분노하기도 하는데 (분노가 억압되어)차분하다가도 갑자기 화를 폭발하기도 한다. 분노가 내재되어 회피성 성인은 상처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부모의 부정적 태도가 압도적이고 거의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인지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무엇을 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신념 또한 강하다. 회피형 엄마는 자녀와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는 편이다. 많은 시간을 자신의 관심사에 몰입한다. 대신 일상의 물질적 필요는 채워주지만 정서적 필요가 무시된다. 아이가 기쁠 때나 힘들 때 그 마음을 읽어주고 반응해 주어야 하는데 회피형 엄마는 평상시 아이의 감정도 잘 공감하지 못하고 매사에 자기방식대로 통제하려고 한다. 무심한 부모의 모습과 정반대로 지나친 보호와 간섭을 하는 엄마에게 통제를 당해도 회피형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주체성이나 욕구와 상관없이 일방적인 지시와 의무를 강요받으면 아이는 자기 의지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엄마는 아이에게 원하지도 않는 것을 과잉으로 주거나 삶에서 스스로 습득해야 하는 대부분을 결정해주기에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엄마에게 심리적으로 지배를 당하면 커서도 주변사람을 자신의 자유를 방해하는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겨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안전을 추구하게 된다. 회피형 아이는 일찍부터 자립해서 부모를 비롯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하는 반면 심리적 지배를 과하게 받게 되면 ‘착한 아이’로 눈치를 살피며 의존하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심리학자들은 회피성 성격의 자녀에게 매우 강박적이거나(완벽주의-즐거움보다는 의무 이행중시) 자기애적인 부모가(엄마가 주인공-너무 훌륭한 부모로 부담스러운 존재) 있을 거라 추측한다. 결국 회피형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도 점차 부모와의 관계를 회피하거나 차단한다.(쌀쌀맞게 거부하면서 의존하지 않는다.)


이는 부모에게 마땅히 받아야할 사랑과 관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 경험한 좌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모습이다. 회피형은 어려서부터 사람을 피하거나 마치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무시하고 혼자 지내왔다. 신체감각이나 감정에 둔하고 괴로운 심정을 표현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게 서툴러 문제해결도 어렵지만 이들은 성장하면서 지속적으로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성향을 보인다.(자기애성, 강박성, 분열성성격의 스펙트럼) 사회성이 부족하고, 뭐든 혼자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태도가 강해서 인생을 외롭고 힘들게 살아간다. 가장 친밀해야 할 부모와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거절을 경험했던 회피형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애착행동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스트레스의 원인). 자신의 힘든 마음을 표현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렵기에 회피하거나 그대로 문제를 방치해서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기도 한다.(외롭지 않니? 모르겠어요. 별다른 느낌이 없는데요.) 우리 언니는 회피형 애착 유형인 것 같다. 


언니가 돌을 맞이하기 며칠 전에 오빠가 태어났다. 오빠가 태어난 뒤에 엄마는 오빠를 업고 다니느라 막 돌이 지나 잘 걷지도 못하는 언니를 무리하게 걷게 하였고 그로인해 언니가 다리가 아파서 정형외과에까지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오빠는 종손이었기 때문에 가족, 엄마로부터 받는 기대가 컸다. 엄마가 오빠 백일 때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주며 지난 언니 돌 사진도 함께 찍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엄마는 오빠를 유치원도 보내고 집과 멀리 떨어진 사립국민학교에 보내기 까지 했지만 언니는 유치원도 가지 않았고 평범한 국립학교에 보내졌다. 엄만 언니가 뭐든지 알아서 잘해서 신경 쓸 일이 없었다고 했다. 정신분석에선 ‘말 잘 듣는 아이’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말이 있다.(차갑다.) 말 잘 듣는 아이는 언제나 자신을 양보하고 무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날들이 지속되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 말은 부모의 기대와 요구를 들어주는 모습으로 자신을 억압하면 사랑이나 인정을 받을 것이라 확신하기에 좋은 사람이 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게 된다. 일찍이 언니는 엄마에 대한 기대를 접었던 것이다. 언니의 성격은 차가웠다. 언니는 감정에 대해서도 “그깟 감정놀음 따위”이라며 무시했다. 어릴 적 엄마아빠가 무섭게 싸우는 소리에 오빠와 나는 겁이 나서 벌벌 떨고 울고 있을 때 언니는 울지 않았고, 엄마가 아빠랑 싸워 집을 나가 시골에 가면 오빠와 나는 밤새 엄마 잠옷을 붙잡고 울 때, 언니는 어땠는지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함께 울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성인이 된 후 가끔 언니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였다. 언니에게 부모가 별 문제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 같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도 힘들었던 과거와 마주하지 못하고 기억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마음의 평화가 유지된 것 같다. 언니가 평생 감정을 표현하고 즐거운 감각을 써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아 애처롭게 느껴진다.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을 갖춘 어른이라면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이해한다. 때론 철이 없지만 사랑스럽다고 버릇없는 아이를 너그럽게 받아준다. 그러나 ‘조숙한 착한 아이’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 운이 좋아 그러한 대상이 있어도 어리광을 보일 수가 없다.(사람다운 모습)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인데 착한아이는 평생 이러한 편안한 감정을 모르고 산다. 사랑이나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생각보다 간단하다) 자신을 긍정하고 무리하지 않고 솔직한 사람은 행복을 얻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언니 같은 회피성 인격을 지닌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는 게 부담이 되고 그 노력이 오히려 역효과가 되기도 한다. 사랑에 대한 이상이 너무 크고, 이상적인 자신과 현실의 자신을 비교하니 행복해 질 수가 없다. 언니는 되도록 일찍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으며 결혼도 안할 거라 했었다.


두려움 회피형 인격을 지닌 언니는 자신이 가족을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공포)이 커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잘 안되었던 것 같다. 한 때 언니의 냉정함이 서운해 언니와 동생의 정을 원한다고 얘기했더니 언니는 자신한테 그런 거 바라지 마라며 매몰차게 대했다. 이런 태도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의 모습이기도 하다. 부모가 안전기지 역할을 못하고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으니 언니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돌볼 가치가 없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믿었던 것 같다.(의존을 주고받지 못했다.) 언니는 늘 사람을 대할 때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시니컬하게 대하면서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행동은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불행하게도 회피형은 자신도 그러하지만 누군가에게도 안전기지가 되어주기 힘들다고 한다. 때론 가족이라 할지라도 문제가 없을 때는 지내기가 괜찮지만 상대가 약해서 의존하거나 요구가 많고 거부할 때 긍정적인 반응을 하기 어렵고, 도움을 청하면 부담을 느끼고 자기방어를 세게 한다.


“너 한테만 어떻게 신경을 써, 너무 의지하지마, 왜 그리 원하는 게 많아, 자기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지, 왜 그리 귀찮게 해.” 그래서인지 한 성격하는 엄마가 가장 어려워하고 꼼짝 못하는 사람이 언니였다. 언니는 그다지 친구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는데, 언니가 고등학교 때 친구와 영화를 보러 나가려던 참이었다. 언니는 늘 일등으로 알아서 공부하는 사람이라 잔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엄마는 공부하라고 언니를 못나가게 하였다. 언니는 울부짖으며 “나는 친구가 없어. 친구들이 떡볶이 먹으러 갈 때 가고 싶었지만 내가 공부만 하는 아이라며 배제될 때마다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알아! 화장실에서도 친구들이 잰 공부만 한다는 욕하는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야 했어, 엄마가 이런 걸 알아? 유나보다 공부를 잘해도,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유나가 부러웠어, 이번에 처음으로 친구가 어렵게 영화 보러 가자해서 용기를 내어 가겠다고 했는데 그걸 못 가게 해!” 하며 엄마에게 분노하였다. 언니는 결국은 나가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면 언니는 마음속으로는 매사 따뜻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거부당하거나 상처받는 게 두려워 무엇이든 시도하고 탐색하는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언니는 이렇게 자기 정당화를 하며 마음의 거리를 좁혀 살았던 것 같다. 표면에서만 관계를 맺었지 자신이 진정 원하고 도움을 바란다고 친절하게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가까워져 편하고 친밀해지는 것에 장애물이 있다. 언니는 대학 때 친한 친구들을 2-3명 정도 사귀었는데, 투병 초기에는 그 친구들에게도 투병사실을 알리지 않다가 3번째 전이 된 안 좋아진 시기에야 친구들에게 알렸다.


한 친구는 언니의 투병 사실을 알게 된 뒤 일주일에 한 번씩 언니를 방문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지만, 언니 장례식 날 이복언니의 존재도 처음 알게 될 정도로 언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투병 중에 부모에게 받은 상처들을 내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상처들을 언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계속 겪어왔을 터이다. 그런데 빨리 죽고 싶다했던 언니가 투병 중에 살고 싶어 했다. 언니는 내게 “너는 쟤네들(언니의 아들, 딸들)이 안쓰럽고 걱정되지? 근데, 나는 내가 더 중요해, 나는 지금 너무 살고 싶어”라고 말했다.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며 형부의 사랑을 받고 안정적인 가정을 일구며 진짜의 삶을 느꼈기 때문에 살고 싶어졌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언니는 자신이 누군가의 안전기지가 되는 것도, 누구를 안전기지로 삼는 것도 어려워서인지 종교도 무시했었다. 그런 언니가 다행히 투병하면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언니는 어릴 적부터 세세한 보살핌의 경험부족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감정을 표현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상처만 입는 다는 선입견으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온 것 같다.


오랜 세월 자신의 진심이나 감정을 억제하며 살아왔는데 어떻게 초월자에게 의지할 수 있었을까 싶다. 사람이든 신이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애착을 느끼면 상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아마 언니는 그것이 제일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다. 다 의무와 속박으로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는 고집을 피우다가 하느님의 자비를 느끼게 되어 다행이다. 정말 그러하길 바란다. 언니는 늘 자기 생각대로 지시하거나 자기 생각대로 남을 따르게 하는 사람이다. 자기 방식이나 관심사만을 기준으로 삼아 결정하고, 상대방은 그냥 자신의 기준을 대입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상대방과 자신이 다를 때 상대방이 그냥 도움이 안 된다고만 느낀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과 사정 때문에 자신의 요구를 응하지 못했는지 고려하지 못했다. 언니는 실질적인 많은 도움이 필요했을 텐데 평생 제대로 마음의 문을 열고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제대로 응석을 부리고 살아오지 못해서(응석을 부릴 상황이 아니라서) 성인이 되어서 또 위기를 겪고 있을 때조차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몹시 서툴렀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있지만 타인을 믿지 않고 평생 사람과 거리를 두고 애착행동을 최소로만 한 우리 언니는 애착장애를 지닌 사람이었다.

 


4. 미해결, 무질서-혼란 애착(세실리아)

미해결-혼란 애착은 부모의 부재, 무관심, 사망, 질병, 이별 또는 학대를 장기간 당했을 때 나타난다고 한다. 아이를 보호해야하는 부모가 오히려 위협의 주체가 되어 아이를 공포와 두려움에 몰아넣으면 아이는 부모에게 다가가지도 도망치지도 못하는 혼란에 빠진다. 접근과 회피 가운데서 꼼짝 못한다. 이러한 외상적 경험으로부터 장시간 회복되지 못하면 분열된 세계에서‘자신이 누구인지’모르는 정체성 혼란을 겪어야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혼란된 애착을 경험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 과잉행동장애나 조현병이나 경계선 성격장애와 같은 정신병리 상태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정한 상태, 가족과의 불안한 관계로 고통을 받는다-해리성 인격이나 의존성 인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혼란한 애착을 경험한 아이는 충동이나 정서 불안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뿐더러 인지, 기억 및 집중력 장애까지 갖게 된다. 낯선 상황 실험에서 보면 엄마가 잠시 떠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혼란한 애착을 경험한 아기들은 얼어붙듯 굳어지고, 엄마에게 고개를 돌리고 다가가지만 울면서 뒷걸음질 치거나, 팔다리를 뻗은 체 꼼짝 않고 바닥에 엎드려 있는 반응을 보였다. 엄마가 과연 위로의 대상인지 혹은 또 다른 불안의 대상인지 판단을 못하는 것 같았다. 학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엄마에게 애착을 느끼면서도 공포를 느끼는 가혹한 상황을 받아들이다 보니 그러한 반응을 하는 것 같다.


미해결-집착형(양가형)의 모습은 사소한 문제로 기분이나 태도가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정서불안과 자기 파괴적 행동이 나타나며(대인관계 긴장이 매우 심하다.), 미해결-회피형의 모습은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간다. 회피형은 상처를 덮어두고 괜찮은 척하지만 매사에 무기력하고 소극적이다. 극심한 불안과 혼란 그 자체인 정신증적 성격구조를 지닌 엄마를 둔 나는 삶의 많은 부분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로인해 나의 혼란한 애착 경험과 발달하지 못한 미숙한 자아 때문에 부부관계에 어려움이 있다. 특히 연대감을(융합) 느끼지 못할 때마다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난다. 남편을 보면 지속적으로 억울한 마음이 올라오고, 아주 사소한 것에 마음이 토라져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밖에서 사람들과 즐겁게 잘 지내고 들어와서 그 활력을 남편에게 나누어주고 자랑하기보다는 먼저 집에 들어와 있는 남편을 보면 얼음처럼 마음이 식어버린다. 각자 하루를 보내고 함께 의기투합해야 하는 즐거운 저녁 시간은 삭막, 살벌한 침묵의 시간이 된다. 때론 내가 해 준 밥을 먹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얄미운 마음이 올라올 때도 있다. 그것은 내가 돌봄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엄마가 대체로 무심하고 변덕스러워서 안정감을 얻지 못해서 나는 아주 예민하게 필요이상으로 안심을 원한다. 대체로 짜증을 내는 방식으로 관심을 얻으려는 것인데 사실 누가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 평화를 느낄 수 있겠는가.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눈치 채곤 하는데 표면에선 고약한 심술을 부리고 만다.(“아,


그렇구나. 와, 그랬어가 아닌 왜 미리 얘기 안했어? 왜 뭐, 나한테 왜 그래?” 라는 식이다.) 나의 상황과 남편의 상황은 엇갈릴 때가 많다. 나는 남편이 무엇을 하는지 노심초사하고, 언제 올지 조바심을 내며 잘 기다리지를 못한다. 내가 불안정한 사람이라서 어떤 계획에 대해 미리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알려주거나(특히 변수 없이) 거기에 긍정적인 칭찬이나 위로가 더해져야(보상까지) 평화가 주어진다. 현실의 다양한 채널을 갖고 남편을 배려를 해야 신뢰감이 생길 텐데 때때로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남편이 늦게 들어오거나 휴일에 자신이 좋아하는 명상센터나 영어공부를 하기위해 나가면 마지못해 다녀오라고 말은 하나 그 이후 삐져서 언짢은 상태로 남편을 대한다. 나를 잊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결론 나지 않는 이런 혼란 속에 살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서로 지치고 정나미가 떨어진다. 미해결된 마음의 상처로 인해 남편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면서도 거꾸로 질책하고 거부를 일삼는다.


설상가상 내가 근본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는 혼란으로 마비가 온다. 남편의 모든 행동은 나를 배려하지 않는 심한 처사 같다. 단순한 주의나 지적, 언짢은 말투나 표정도 나의 안정을 뒤흔든다. 혼란형 애착을 겪는 낯선 상황 실험에서의 아기의 모습이 현재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을 내 안전기지로 삼고 싶으면 나부터 남편의 안전기지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안전기지 역할을 못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거부를 당하면 방어본능이 작동되어 공감하고 양보하기보다 자신을 지키는 것에 주의와 에너지를 집중하거나 적개심이 오랫동안 쌓이면 받은 데로 되갚는 보복이 부부사이에서도 일어난다고 한다. 나는 상담을 통해 나만 생각하며, 남편이 차갑고 다정하지 않다는 나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착은 상호적이라 상대를 부정하고 적의를 보이면 상대는 반듯이 그렇게 반응하고 결국 내가 잘못 바라본 그 모습이 되어 버린다고 하는데 정말 큰일이다. 남편의 친절한 행동을 받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친절하라고 하지만 나는 선생님처럼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안 된다. 그냥 남편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분노가 일어난다. 사랑과 관심을 받기위해 남편을 매번 난처하게 만드는 이런 습관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남편이 흠이라도 보이면 웬지 속은 생각이 들어 남편 전부를 부정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당신은 최악이야. 보기 싫어. 왜 안해 줘?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막말을 해버리면 매순간 쌓여 진 좋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데 조절이 되지 않는다. 모순되게도 남편을 나쁘게 대하면서도 그 안에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 남편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날 대하면 버림받는 공포와 혐오가 일어난다. 나의 나쁜 생각과 말버릇이 좋은 관계를 좀먹고 있다. 나쁘다는 말이 늘어날수록 친밀감과 신뢰는 사라지고 있다. 나는 가끔 내가 투사한 감정이 되돌아와 예측한데로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박해불안이 밀려올 때가 있다. 상담을 통해서 내가 뭘 두려워하는지 이해와 수용을 받으면 간헐적으로 안심이 되지만 바로 다시 증오로 희망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나는 겉에선 말씨도 상냥하고 순하지만 누구든 깔아뭉개는데 능숙하다. 엄마가 전혀 접촉이 되지 않았고 아버지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성마른 분이셨다. 두 분 다 내가 서투르거나 잘못한 일에 대해 무조건 무섭게 진노를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욕구불만으로 가득 찬 불행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나는 부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을 잘 견디질 못한다. 나를 부정하고 타인을 긍정하는 심리가 강해서 누가 나보다 무엇인가를 더 갖고 있거나 잘하면 주눅이 든다. 그러니 누가 나를 부정하거나 비난하면 나는 죽을 것만 같다.


부모님으로부터 따뜻한 감정을 받아 자신감을 얻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늘 증오를 상대방에게 투사해서 사람을 혐오하셨다. 억압의 방어기제가 작동되지 않을수록 투사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나 또한 부모님을 닮아 사람이 너무 무섭다. 미움 받고 배척당하지 않는데 그런 대우를 받고 있다고 착각하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투사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시어머님께서 다녀가셨는데 남편이 나가고 없는 틈에 언제 교회로 다시 돌아올 것인지에 푸시를 하셔서 곤란했던 적이 있다. 그렇잖아도 미국에 들어가면 아주버님(구원파 목사님)과 종교로 인해서 갈등을 겪을 생각에 마음이 벌써부터 그 무게감과 부담감이 엄청나다. 우리 부부가 우여곡절 끝에 구원파 교회를 나왔을 때 시댁식구들의 몰이해가 컸었다. 무서운 초자아로 우리 부부를 진리에 반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가족이라서 이해해주는 유도리가 전혀 없었다. 나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에 대해 존중을 받고 싶고, 각기 다른 종교 정체성에 대해 존중받고 싶은 바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어렵게 마련한 나의 안전기지가 산산조각 나 버릴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헌데 남편은 이 일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


불안한 이 상황을 남편에게 알려서 도움을 청하고 뭔가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시댁식구들에 대해서 화만 나고, 정 떨어지게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미워하며 지낸다.“어떻게 해주면 참 좋겠어. 고맙겠어”가 나오질 않는다. 자기 집 식구일로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걸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 눈치를 보는 것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남편과의 문제가 생기면 서로 조율하고 소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남편이 어떻게 해주는지 처분을 바라고 되도록이면 내가 좋은 방향으로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 유아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나의 수준이다. 시댁식구와(이슬람 국가 같다) 굳이 부딪치지 않고 예의를 차리면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해보고 싶다. 원하는 것부터 분명하게 얘기해보는 연습을 먼저 해야겠고, 말을 할 땐 좀 긍정적로 호의를 담아 직절적인 말보단 돌려 말해보아야겠다. 관계를 할 땐 늘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내가 때론 싫다고 말해도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다고 선생님이 알려주셨으니 믿고 될 때까지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나와 다른 존재니까.) 내 인생의 반복되는 메카니즘을 끊으려면(상처받았다고 확신하고 방어하는 자동반사) 이미 만들어진 나쁜 생각의 고리를 잘라내야 한다. 대립각을 세우지 않기 위해 미리 할 말을 만들어 놓고 비슷한 상황에서 편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하자.(퍼블릭 프라이버시-안전한 레파토리를 만들자.) 또한 무조건 싫어, 좋아가 아닌 은근히 좋아, 싫어를 해보자. 그리고 홀로서기를 하기위해 job도 가져볼 생각이다. 꽃꽂이라는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



5. 혼란형 애착 관점에서 본 인간관계 양상(디도)

<안정형 애착>

(특징)

1. 비교적 쉽게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편이다

2. 타인이 나에게 의지할 때에도 마음이 편안하다

3. 남에게 거리낌 없이 도와달라고 말한다

4.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

5. 타인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안정애착 아동의 부모)

① 아이의 욕구와 감정에 민감 → 긍정적 타인/세계관

② 긍정적 메시지/감정전달 + 대화/놀이 → 긍정적 자아개념

(안정애착 아동의 반응)

=> 아이의 인식 : 자신 + 타인+

=>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기쁨경험

=> 스트레스 상황에서 타인의 존재로 인해 위안을 얻음

=> 높은 자아존중감과 주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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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애착>

(특징)

1. 상대방이 나를 완전히 좋아해주지 않으면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다

2. 부모님 또는 이성친구가 나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3. 나의 본 모습을 안다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봐 걱정 된다

4. 내가 상대방을 생각하는 만큼 상대방이 나를 생각하지 않을까봐 걱정 된다

5. 친해지려고 내가 너무 다가간 탓에 오히려 사이가 멀어진 사람이 몇 명 있다

(저항애착 아동의 부모 : 비 일관적 양육태도)

① 대체로 아이의 욕구와 감정에 둔감

② 특정 상황에서만 아이에게 긍정적 관심 제공

- 자신의 기분이 좋을 때

- 아이가 욕구와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할 때

(저항애착 아동의 반응)

=> 아이의 인식 : 자신 - 타인+

=> 타인의 사랑/인정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와 확인

=> 타인의 사랑/인정을 획득해야만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안심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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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 애착>

(특징)
1. 대인관계가 좁은 편이다

2. 내가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내 힘으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 웬만하면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 한다

4. 좋은 마음으로 그런다는 것은 알지만 끈끈한 관계를 요구하며 다가오는 사람이 부담스럽다

5.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보다 혼자 있을 때에 가장 마음이 편하게 느껴진다

(회피애착 아동의 부모)

① 아이와의 친밀한 관계 부재

- 긍정적 감정표현 및 신체접촉↓

- 아이와 함께 하는 놀이↓

②-1. 과잉통제

- 주된 관심사 : 아이로 하여금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

- 지시↑, 수용↓

- 부정적 정서표현

②-2. 과잉보호

- 주된 관심사 : 아이에게 사랑받기 타인에게 좋은 부모라고 인정받기

- 지시↓, 수용↑

- 관심 쏟아붓기 : 아이의 문제를 부모가 대신 해결해 주기 아이가 원하지 않을 때에도 관심 제공하기

(회피애착 아동의 반응)

=> 아이의 인식 : 자신 + 타인 -

=>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형성을 스스로 회피

=>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는 관계에서는 대체로 사교적으로 행동

=> 스트레스 상황에서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스스로 해결

=> 친밀한 관계형성을 회피함으로써 타인에게 실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

=> 학교, 회사 등의 집단생활에 대한 불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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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형 애착>

(특징)

1. 친밀한 관계를 원하기는 하지만 남을 완전히 믿기는 어렵다

2. 남에게 나의 본심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3. 내가 상처를 받을까봐 혹은 배신을 당할까봐 두렵다

4. 내가 봐도 나는 형편없는 인간이지만 남들도 별반 다를 것은 없다

5.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뭔가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혼란애착 아동의 부모)

① [수용⇔학대/무관심]의 반복

② 높은 우울성향

- 아이의 욕구와 감정에 둔감

- 부정적 정서의 표출

③ 부모 자신도 학대를 경험

(혼란애착 아동의 반응)

=> 아이의 인식 : 자신- 타인-

=> 우울, 분노

=> 신뢰에 기반한 대인관계의 부재


나는 혼란형 애착 유형에 속하는 것 같다. 이 과제를 완성하는 게 내 발달상태의 미숙함을 폭로하는 것 같아 한참 동안 불편했었다.(창피하다. 인생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건들이 일어나곤 했었는데(불이익이나 파국을 도외시), 최근에 들어서) 더욱이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증상으로 인하여 열정과 달리 현재의 나와 과거, 미래를 연결시키는 작업이 되질 않아서 힘들었다. 돌이켜보면 이제야 내면을 인정하기 시작해서 풀이 죽어 지내곤 한다. 나의 현실감의 결여 상태는 매사 어딘가 모르게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경향으로 인해 현실에 발을 딛고 고민하여 문제를 돌파하기보다 간단히 해치워버릴 수 있다는 식의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며, 앞뒤 재지 않고 대응하다가 낭패를 보곤 한다. 나는 과잉으로 자신감이 절정에 달했을 때와(자아 인플레이션) 자신감 없는 최악의 상황에(자아 디플레이션) 처하는 양극단의 이중구조 속에 놓여있다. 나에게 혼란형과 회피형의 모습이 둘 다 두드러지는 이유는 나 자신이 하찮다는 느낌과 우월감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서이다.(조울증처럼) 사실 착실한 노력으로 무엇인가 성취함으로써 전능감을 현실화시키려면 노력과 인내,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거창한 꿈을 품다가 책임감 있는 일을 맡으면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여 안절부절 하여 실패를 반복한다.


우월감이 일어나면서도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고 불신하는 것은 혼란형과 회피형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되었다. 무력감은 어린 시절 반복적인 경험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어릴 때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스트레스에 반복해서 노출되면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왜소한 자신에 대해 말 못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현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의 근원) 우울이란 불안과 마찬가지로 자아의 정서반응이다. 나의 자아는 늘 억제되고 마비되어 위험을 직면할 능력이 없다.(자신이 없다.) 좌절에 직면했을 때는 무장해제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우선 도망을 가야한다. 물론 회피를 하면 또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괴롭다. 누군가가 내 곁에 머물다가 떠날 때도 내가 가치 없기 때문에 떠나갔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잠깐 일어나는 낭만적인 사랑은 장기적인관계로 발전하는 현실적인 형태의 사랑으로 발전하질 못한다.(그런 힘겨운 감정을 견디질 못한다.) 처음에는 사랑을 이상화하면서 완벽한 친밀감을 바란다.


사랑에 빠지면 나에게 중심이 된 그 사람에게 모든 걸 바치면서 다른 인간관계나 일은 소홀할 정도다. 완벽한 친밀함을 꿈꾸지만 그 관계의 시간이 오래가진 않는다. 회피성인격이 출두하면 의존성이 사라져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내쳐버리기 일쑤이고,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끝내버린다. 난 통제감이 강해, 내 인생에서 완벽한 주인이 되기 위해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권리를 강하게 지키고 싶어 한다. 어릴 적 나에 대한 어머니의 무심한 태도나 애정이 충분하지 않아 아마 그런 상황에 적응돼서 점차 어머니와의 관계에 기대를 하지 않고 살아온 게 다른 사람에게도 일반화가 된 것 같다. 나 역시 부모님에 대해 무관심하고 그다지 응석을 부리지 않는 모습이 있다.(회피형 애착) 성공이란 결국 부모에게 의존했던 상태에서 벗어나 성인으로서 독립하는 것인데, 나는 부모로부터 심리적 독립이 어려운 상태다. 그래서인지 책임을 지는 성인의 상태로 살아가는 게 꽤 부담스럽다. 유년기 적대적인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컸지만 그러한 분노를 처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억압했던 것이 아버지(대타자들)에게 대들 경우 무시무시한 처벌이 따를 것이라는 두려움과(피학상태의 악몽을 꾼다.) 고생하시는(지금은 연로하신) 아버지에게 화를 내면 안된다는 죄책감이 커서 사회적 적응을 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나는 누군가에게 통제당하다고 생각하면 이성을 잃는다.)


그러면서 가학적이게도 과도한 죄책감으로 나 자신을 강박적으로 지쳐 쓰러질 때까지 푸시하고 편하게 놔둘 질 못한다. 성취 면에서 반복적인 실패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내안에 분명하게 ‘자기 파괴적인 면’ 이 있다. 앞의 설명처럼 자기애적인 성격특성과 오디푸스의 미해결, 분리개별화의 실패, 어머니에 대한 미해결된 양가감정으로 인해 삶에서 올바른 성취를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아버지의 우울하고 경직된 이미지가 나의 초자아로 자리 잡혀 나를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아 매사 자신이 없다. 그 시선으로 내 자신이 하찮게 느껴진다. 그 과한 병리적인 초자아로 인해 죄책감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타인에게 처벌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피학적인 태도가 있다. 이러한 부담에 짓눌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어릴 적 어머니와 아버지가 따뜻하게 격려해주고, 너그럽고, 때론 시원시원하게 실수를 눈감아주고, 불안을 부드럽게 소화해주고, 튼튼하고 확실한 현실적인 경계를 세워주셨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나일 것 같다. 정신분석을 공부해보니 평범한 부모가 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감정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양육의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하면(자신의 욕구와 기분에 몰두해 아이를 돌보지 못하면) 아이는 수렁에 빠져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부모에게 기본 신뢰감을 받지 못하면 신뢰감에 뒤따르는 자신감이 부족해 수치심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특히 부모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으로 생기는 수치감은 존재감을 흔든다.(나 자신이 기형인 것 같다.)


수치심의 정의는 ‘나의 어떠한 결함 때문에 사랑과 소속감을 느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고통스러운 감정 또는 경험’이다. 나는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때마다 수치심을 느낀다. 내가 결함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알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종종 있다. 결국은 스스로 결정한 것도 잘 믿지 못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되지도 않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한없이 추락한다. 부지불식간에 수치심 일어나 타인의 조롱을 피하기 위해서 남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고 조금이라도 모욕을 받으면, 바로 폐기하고 더 완벽한 것을 찾는다. 사람들의 부정적 평가가 있으면 바로 결정을 쉽게 번복해버린다.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려고 하니 ‘이만하면 됐다’라는 적정한 정도를 파악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좌절을 경험하면 혼자만의 세계로 돌아가 자책으로 수치심을 느끼며,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임했던 일들을 기억에서 지워버려, 꾸준한 보완으로 결과물을 도출하질 못한다. 그리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두려워서 같은 상황을 미연에 회피하려 성급히 사람과 장소를 떠나게 된다. 관계하는 사람을 전 인격적으로 살피지 못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어 상대를 우수하게만 보다가 그런 사람에게 매료 되어 의존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상대에 내쳐지지 않기를 바라며 항상 노심초사, 긴장하며 눈치를 살피며 지내지만 상대를 일방적으로만 맞추는 관계에서는 나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어 회피자아가 출몰하곤 만다.


이러한 패턴이 지속되면, 나는 결국 지쳐가고 상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사라진다.(남는 게 없는 회의감이 들고, 아무런 가치도 안 느껴져 허무하고, 시간낭비를 한 것 같고 다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수치감 못지않게 나에게 일어나는 감정이 하나 더 있는데 무력감이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기피하는 마음상태는 무기력증으로 해석한다. 무기력 상태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가 없지만 나는 무의식중에 무력감을 이용해 사람을 통제하고 사람들의 도움을 바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약속했던 일을 잊어버려 누군가 뒷마무리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또는 책임지는 게 버거워) 나에게 지나치게 도움을 주려하거나 내 인생의 문제나 책임을 대신 짊어지려는 사람은 결국 사기꾼임을 알게 되는 상황도 있었다. 


무력감 깊은 곳에서 나타나는 ‘low registration’ 현상이 있다. 오랜 상담을 통해 어렴풋이 인식이 될 때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직 직면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다. 선생님은 몇 년째 이런 모습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여러 자극을 반복해서 주시지만 자꾸 정신이 파편화되어 느껴지질 않고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일을 척척 해내지 못하는 것, 인식을 못하는 것, 사회적 둔감, 상대의 불쾌한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누가 부르거나 다가와도 무슨 목적인지 눈치 채지 못하고, 대화의 첫 마디를 놓치거나 빠르게 하는 말을 따라가지 못하고(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자주 되묻는다.), 약하고 애매한 자극으로는 신경계가 반응을 하지 않아서 멍해지거나 중요한 순간에 졸기까지 한다.(긴장이 되어야 집중력이 생긴다.)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내용의 일부를 빠뜨리고 듣는 경우가 많고, 스트레스가 있을 때는 듣는 것 자체가 약해진다.(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못한다.) 멍하게 흘려들어 이후에 무슨 말을 들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해서 황당한 실수를 한다. 찾는 물건을 눈앞에 있어도 모르고, 표식이나 안내판을 바로 발견하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반응과 행동이 느려 기민하게 작업을 할 수 없기도 하지만 부주의하기도 하다. 또한 (비합리적이라 할지라도)어떤 일을 시작하면 멈추질 못한다(대응과 수습이 늦다). 예민할수록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압도적으로 크다 던지, 무엇인가 하나가 맞지 않으면 전부 거부한다. 특히 주의 배분이 어려운데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다른 것에 대부분 둔해진다. 얼마 전 미니 뇌졸중으로 많이 아팠었다.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고 하는 것처럼(몸과 마음은 하나다) 감정의 언어를 표현하는 법을 알지 못해서 속 시원히 표현하지 못한 불안이나 공포가 신체증상으로 나온 것 같았다. 그때의 힘들었던 체험이(신체에 대한 통제감을 상실했던 고통와 공포) 플래시백 현상이 되어 공포가 일어나 아무 일도 못하겠다.(자신이 없고 회피가 일어난다.) 이렇게 주의 전환이 어려운 게 low registration 증상이라고 한다.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를 지키려는 방어 반응은 너무도 강렬하다.


수퍼비전 - 회피형 자아는 무쾌감증이 있는데요.(low registration 같은 증상) 특히 타인과 교류하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즐거움을 얻지 못해요. 그 원인으로 영유아기의 양육 요인이 있어요.(자신의 생존이 귀찮을 정도로 방치나 학대) low registration은 주변에 대한 무관심과(자기애적인 태도) 현저히 더딘(고착된) 발달상태가 있는 것입니다. low registration이 높은 사람은 사람에 대한 사소한 배려, 자잘한 데까지 신경을 쓰지 못해 사회적응이 좀 힘들어요. 멍할 때가 많고, 척척 움직이지 못해서 반응이 늦어 주변사람들도 힘들어하곤 해요. 무쾌감증은 사회적인 체험뿐만 아니라 생활체험에서 얻는 즐거움이 약한 상태에요. 결국 사람과 교류하거나 즐거운 일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서 얻는 기쁨이 없기 때문이죠. 사회적인 스트레스나 긴장을 동반될수록 고통이 크지만, 사람과 접촉하는 기회를 줄이고 사람사이에서 얻는 즐거움이 적을수록(피할수록) 정신이 퇴화할 위험이 커요. 회피형 애착스타일은 아주 이른 나이부터 결코 부모를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해서 일어난 현상이에요. 


건성으로 미화하거나, 막연히 좋은 부모정도로 간주하긴 해요. 그다지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리지도 못하고, 곤란한 일이 벌어져도 털어놓고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표면적인 관계로만 지내는 거예요. 대인관계도 그 연장선에서 일어나죠. 디도씨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는 ‘주체성’은 관심을 갖는 일에 꾸준하게 매진할 때 조금씩 길러져요. 그것은 그냥 단순하고 획일화된 경험이 아니에요. 단조로운 일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루틴하게 사회성을 키워주는 소소한 활동에 참여하고,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는 연습은 중요해요. 무엇보다도 갑자기 충동적으로 책임을 떠안지 말아야 해요. 책임으로 부담이 생기면 큰 불안이 생겨요(회피). 익숙한 일을 하면서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에요.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어도 익숙해지면 확실하게 일을 잘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지요. 디도씨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길 좋아 하는 탐구심이 있어요.


학습과 숙달에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 곤란한 일이 생기면 즉시 누군가와 상의하는 습관도 잊어서는 안돼요. 해결 안 된 문제나 불만을 오래 끌면 거기서 생기는 분노와 짜증이 마음을 힘들게 해요. ‘안전기지 경험’은 마음의 내성을 키우지요.(주체성이 만들어져요.) 믿을 수 있는 관계는 스트레스를 받고 고립되기 쉬운 사람에게 매우 중요해요. 주체성을 회복하려면 자신의 일을 결정하고 반드시 실천해야 되요. 한 가지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누군가에 의해 이끌리는 것보다 개선의 여지가 커요. 어떤 일을 해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신뢰하길 바래요. 자신의 한계를 넘었을 때 나타나는 게 혼란과 공황장애에요. 목표를 낮추고 중압감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져야 해요. 그리고 힘들면 도망쳐도 돼요. 힘이 생기면 회피해야 할 것과 도전해야 할 것의 균형이 생겨요. 삶에 따분함을 없애고 활기를 찾기 위해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거나, 쇼핑, 집안일, 요리, 마사지도 좋아요.(디도씨는 감각추구가 필요해요. 움직이면서 마음의 균형이 따라와요.) 쾌락 반응을 위해 희망을 말하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최종목표는 미루고 목표를 작게 나누는 연습을 해봐요.(오전, 오후)



6. 애착(요셉)

○애착과 유형분석 - 영국의 존 보울비선생님은 생애 첫 2년 6개월에서 3년 동안의 애착대상과의 애착관계 경험이 성격발달의 중요한 핵심요인임을 제시하였다. 특히 생후 12개월까지의 기간이 애착형성의 가장 중요한 기간이라고 했다. 즉, 모성결핍은 아동에게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보울비의 연구원이었던 제임스로벗슨과 조이스로벗슨 부부는 병원내에서 치료 받으면서 ‘분리’를 경험한 아이들의 문제를 관찰하고 ‘2살 아이 병원에 가다’ 등의 영화를 제작하여 분리가 미치는 영향을 대중에 알렸다. 부모와 떨어져 병원에 입원한 아이들은 저항 단계 절망단계 단절단계를 거치게 된다. 메리 에인즈워스는 보울비 선생님과 공동연구를 통해 애착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안전이론의 영향을 받았다. 생애 초기의 가족 안전성은 아동의 의존성 유형을 결정하게 하며 아동이 바깥세상에 흥미를 느끼고 새로운 기술을 형성하게 한다. 가족의 안전성이 결여된 곳에서는 아동은 소위 안전기지 (a secure base)라고 불리는 것이 없기에 장애를 가지게 된다는 이론을 발표하였다. 유명한 연구인 낯선 상황 실험, 즉 아이가 엄마와 잠깐 떨어져서 ‘낯선 상황’을 만들어 분리와 재회과정의 실험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4가지의 유형을 분석하고 제시하였다 (표).유형 분석을 통해 영아와 주 양육자와의 애착관계가 인간의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유형분석

낯선 상황 실험 내용

B유형–안전형

66%

○관찰반응

안정애착관계를 형성한유아는엄마와 함께 있을 때 자유롭게 장난감 갖고 놀이. 엄마가 사라지면 일시적으로 당황하지만 엄마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고 놀이지속. 엄마가 돌아오면 반갑게 맞이함.

○양육특징

영아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

영아의 부정적인 감정을 잘 받아주어 자녀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신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일관적인 태도로 양육 한다.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영아를 보살핀다.

○성장 시 특성

성장한 후에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가치가있다고 생각하고 주변 환경 또한 자신이게 호의적일 것으로 기대, 따라서 신뢰감과 행복감을 가지며 관계를 만듦.

A유형-회피형

22%

○관찰반응

유아는 엄마와 함께 놀이를 하다가 엄마가 떠나도 큰 행동의 변화가 없음.

엄마가 다시 등장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음. 자기에 집중하면서 스트레스 환경에 반응 하지 않고 회피.

○양육특징 – 아기의 반응에 외면하는 태도, 영아의 신호를 거절하거나 보류하여 지연 시킨다. 영아의 신호보다 주 양육자 자신의 일이 우선 한다

영아와의 감정적인 교류가 적다. 다른 유형에 비해 스킨십이 적다

○성장 시 특징

성장 후에 주위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누군가와 지나치게 가까워지거나 친밀감을 표현하면 불편함과 두려운 감정을 느낌

C유형-저항형/양가형

12%

○ 관찰반응

엄마가 옆에 있음에도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엄마에게 매달림. 엄마가 떨어지려고 했을 때 울고 떼쓰는 등의 스트레스반응. 엄마가 놀이방을 나갔을 때는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함. 엄마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울며 밀치고 소리를 지르는 등의 분노감

○양육특징 – 아기 요구에 일관되지 않은 태도 (민감 반응을 하기도 외면하기도) 영아의 신호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불규칙적으로 반응. 주 양육자 자신이 과도한 감정을 영아에게 표현. 주 양육자 자신의 불안 지수가 높은 경향이 있어 영아를 과보호하며 불안해함. 주 양육자의 기분에 따라 영아에게 반응.

○성장 시 특징

타인과 지나치게 많이 가까워지기를 원하나 본인이 원하는 만큼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 것을 심하게 걱정. 이성으로부터 버림받거나 사랑받지 못할까 심각하게 두려워하는 모습

혼란형

5%

○ 관찰반응

예측할 수 없는 행동패턴 부모앞에서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

엄마를 보고 뒷걸음, 얼어붙기, 바닥에 쓰러지기, 망연자실상태

○ 양육특징

양육자가 영아에게 안전기지이면서 동시에 위험기지가 될 경우 아이가 상반된 자극에 대해 혼란. 가족배경에 가난, 정신과적 질병, 약물중독 등의 열악한 환경

영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정적 자극에 과도하게 노출

주 양육자로부터 트라우마 경험

안정적 애착을 위한 양육에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아이의 식욕, 수면욕, 배변 등의 다양한 요구를 알아차리는 세심함이다. 두 번째는 이런 요구를 적절하게 대응하고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세심함과 대응력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일부 아기들은 다른 아기들보다 심하게 울거나 보채기도 한다. 이런 아기의 경우 엄마와 친밀한 신체접촉을 유지하며, 아기의 욕구를 헤아리고 달래준다면 결과적으로 나중에 점차 덜 울게 될 것이다. 아기의 욕구를 너무 채워주게 되면 양육자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이 생길 것 같지만 실제는 자기 신뢰감을 가지며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성인에서의 영향

영아들에서 결정된 애착유형에 따라 성인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장기적인 관점(a longitudinal study) 에서 분석하는 미네소타 연구가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으며, 이 연구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각 나이별로 애착유형별로 여러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 성인기의 관찰 결과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정형의 성인들은 다른 유형보다 일관적이고 개방적인 관계를 형성하였으며 남녀 간의 애정관계에서 안정된 관계를 보였다. 갈등도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하였다. 성인기의 세 가지 적응 과제가 애착유형과 관계가 있었는데 ① 일, 교육에서의 적절한 발달 ②가족, 친구, 파트너와의 의미 있는 관계 ③ 기능적 수준의 자기각성이다. 성인기에 나타나는 애착관계의 표상, 자녀양육, 애착의 세대전이가 애착유형과 관계하였다. 영아기에 혼란형으로 분류될 경우 다음 세대의 혼란 유형을 예측할 수 있었음 – 혼란 유형의 세대 간 전이현상은 ‘분리’에 의해 중재되었다. 이런 관찰은 유형별차이가영아기 이후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어떤 행동적 변화를 일으키는 가에 대한 답변을 제시한다. 결국 유아기 결과를 통해 성인애착을 예측하는 발판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에 연결됨을 확인하면서 언어학자였던 메인은 성인애착인면접 측정도구를 제시하여 성인기의 애착유형을 분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낯선 상황 실험

성인애착면접

안정형 secure

안정자율형 secure-autonomous

회피형 avoidant

거부/무시형 dismissing

저항/양가형 resistant/ambivalent

집착형 preoccupied

혼란형 disorganized

미해결/혼란형 unresolved/disorganized


○애착유형 발현의 요소 – 안전기지와 안전도피처

애착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네 가지 핵심요소로는 근접추구와 유지, 안전한 도피처, 안전기지, 분리의 고통을 제시했다. 네 가지 요소가 긴밀한 상호작용 가운데 서로 영향을 미치며 영아의 애착유형을 구체화시킨다.


(그림 애착의 요소와 애착유형)

안전기지와 안천도피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특징은 다음과 같다.

안전기지

안전한 도피처

주변환경탐험을 가능하게하는 역할

탐험을 통한 지식과 기술의 습득

탐험행동체계와 관련

부재시 탐험 중단, 사회적 의존성 방해, 탐험을 통한 기술과 습득 중단

위협직면 시 스트레스와 부정적 정서를 해소하고 안정감을 회복하는 역할

근접추구행동과 관련

부재시 허위 대체대상 형성 및 건강한 의존적 안전에 대한 방해

○세대 간 전이

메인은 애착현상이 세대 간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부모 마음상태에 나타난 애착에 관한 특징들을 자녀가 초기 관계를 통해 경험할 때 자녀들은 그 특징들을 하나의 규칙으로 내면화 하게 되어 결국 세대 간으로 전이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자녀의 전반적인 정신작용에 적용되어 자녀가 살아가는 동안 행동과 대화패턴에 영향을 주게 되고 자녀의 애착 관계적 특징으로 구조화됨으로 다음세대로의 전이가 가능하게 된다. 놀랍게도 안정형과 불안정형으로 예측할 수 있는 확률은 무려 75%에 달한다. 성찰적 기능 (reflective function)이 뛰어난 엄마는 자녀의 감정과 행동을 자녀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기에 자녀들은 엄마의 마음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된 자신만의 마음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애착의 신경과학적 측면

애착관계가 뇌의 편도체(amygdala)의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였는데, 안정애착은 위협상황과 관련된 편도체의 활성화 기능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불안정 애착관계는 기억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마의 세포밀도를 감소시킨다는 결과를 제시한바 있다. 즉, 애착이론이 뇌 과학적 입장에서의 접근으로 확장되고 있다.


애착의 측면에서 먼저 가슴에 떠오르고 우려되는 것은 내 아이들이다. 쌍둥이는 생애 초기에 힘든 시간을 가졌어야만 했다. 그 당시 나또한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돌을 갓 넘겼을 무렵 전처는 첫째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경계선자라 도우려고 할수록 상태가 악화되었고 관계가 최악이 되었다. 기분도 행동도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이다. 전처는 처음엔 쌍둥이를 키우면서 시댁에서 양육을 도와주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백일 이후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 살며 도움을 받았었다. 쌍둥이를 키우는 것은 예상보다 힘든 일이라 첫째는 전처가 주로 맡았고, 둘째는 어머니가 돌보았다. 아무튼 그 이후로 집을 나간 전처는 9개월 정도 장모님과 큰아이를 돌보다가 결국 아이를 돌려보냈다. 어느 날은 한 밤중에 아이가 열이 나고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도움을 청해 아이를 응급실에서 회복시켜 보냈던 기억이 있고, 장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며칠 그냥 두고 간적도 있었다. 큰 아이가 엄마에게 돌아갈 때 떨어지지 않으려던 모습은 가슴의 응어리로 남아있다. 당시 아이 엄마는 새로 시작한 직장과 박사학위 논문을 쓰느라 바쁘고 정신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니 퇴근 후 바로 자기 일을 하느라 아이의 요구에 응해주고 해소해주는 애착관계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더욱이 전처는 불안정한 사람이라 자기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아이를 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경계선 성격구조에 어린 시절 박탈로 유아성 인격을 지녔다면 아이를 낳고 어떻게 케어 해야 하는지 모르는 혼란으로 어떠한 책임도 지는 게 힘들어 아이를 내팽개쳤을 것이다. 장모님 또한 비상식적인 양육태도로, 어린 아기를 유아원에 보내고 돌 지난 아이가 바로 앉지 않는 다는 이유로 자세 잡는 교육을 시켰다는 자랑을 해서 가슴이 무너졌던 기억이 있다. 9개월간의 분리 후에는 다시 우리 집으로 큰 아이가 돌아올 수 있었지만 아이는 말라있었고, 주눅 든 모습이 역력하였다. 적응기간엔 간혹 커튼 뒤로 숨기도 하였다. 무언가 맛있는 것이 있으면 입안 가득히 집어넣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가족들 모두 몹시도 가슴아파했었다. 당시 큰 아이는 애착을 느낀 나와 아버지로부터 한 동안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요구가 있으면 때를 심하게 부리는 모습을 보였다. 가족은 지극한 사랑으로 큰 아이를 보살피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이가 따뜻한 돌봄과 애정을 받으며 조금씩 안정되게 변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둘째 아이는 나와 떨어진 경험은 없다. 하지만 한 살 이후 엄마와 떨어지게 되었으니 그 놀램과 불안은 엄청났을 것이다.(간과한 무의식적 사실이지만) 그리고 큰 아이를 집중 케어 하고 그 염려와 관심이(안쓰러움) 지속되어 둘째가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을(경쟁심까지) 캐치하여 세심하게 다루지 못해서 작은아이가 큰 아이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서운함을 넘어) 크다.


당연히 쌍둥이라 모든 면에서 함께 하는 행동으로 같은 학원, 같은 선생님에게 배우며 경쟁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큰 아이가 안쓰러워 자연스레 우선시 했던 관심이(과잉보호가) 작은 아이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두 아이다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둘째는 애착불안이 커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며 상대방의 마음에 들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기분과 상황에 민감하다. 끊임없이 여러 가지를 자신과 비교하며 조금이라도 우선순위나 관심에서 밀려나면 자신을 안 좋게 생각한다고 느끼면서 자신이 버려졌거나 존재 가치가 없다고 느껴져 화를 내기 일쑤다. 사실 우리 가족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하였지만 ‘진짜 엄마’라는 대상 결핍은 메우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할머니는 할머니이고, 엄마는 엄마이기에 말이다. 최근에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여러 문제 양상이 드러나기 시작 했다.(자연스러운 발달의 기회) 먼저 작은 아이에 대한 어려움을 표현해보고자 한다. 작은 아이는 언니에 대한 불만이 크고(편애 당했다는 생각과 언니가 이기적이라 자기 것을 빼앗는 다는 생각), 또래 관계의 어려움(엄마가 없다는 열등감으로 인한 소외감과 피해감), 우울감으로 인해 학습 동기나 지적 성취감이 저조하고, 충동조절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둘째아이는 사실여부를 떠나 소외당하고 미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극에 달아 대인기피현상도 생겨났다.(이러한 의기소침도 상담하는 과정에서 인식-발견되었다.)


어릴 적 엄마와의 애착 부재로 인해 즉 엄마를 통해 다양한 정서를 인식하거나 경험하지 못해서 자신의 감정과 일치하는 여러 표현이 막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할머니에게 순수한 자신의 공격성을 마음껏 사용하지 못했다.(양가감정의 미해결) 아이에게 할머니는 중요한 양육자이면서도 보호해야 할 약자이기 때문이다. 발달단계에서 생겨나는 적나라한 공격성(변형적 내재화가 필요한)을 써보지 못한 둘째는 착한아이가 되어야 버림받지 않고 사랑받는 다고 생각해서 적대감을 꽁꽁 숨겨(억압) 지내다가(사실 할머니 맘에 드는 조숙한 아이다.) 억압이 되지 않는 사춘기를 맞이하자 쌈닭이 되어버렸다.(나에겐 가족관계에서만 관찰되었지만) 선생님 표현에 의하면 표출하지 못한 적대감이(엄마의 배려나 관심이 없는 환경에서 비롯된 불신과 분노를 마음속에 품게 되어) 밖으로 투사되어 사람이 무섭다고 느낀다고 한다.(대인공포와 분리불안) 작은 아이는 학교, 학교생활, 친구들, 선생님들을 몹시도 불편해 한다.(낮설고, 부담스럽고, 무섭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생님의 권유로 심리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에게서 해결되지 않은 무의식적 불편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없는 소외감이나 열등감은 애착 결핍-애정 결핍 증상이었다.


엄마의 홀딩, 미러링, 정신화, 모델링 역할이 부족해서 아이는 자신의 발달수준에 따른 복잡한 감정이나 사고 행동을 수용 받을 기회가 부족했었던 것 같다. 작은 아이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불안을 공상화 시키면서 가까스로 불안을 억눌러온 것 같다. 이 똑똑한 아이는 상담에서 유치원 때부터 얼마나 자신이 프리징 상태였는지 선생님께 보고했다. 또한 원하는 지적 관심과 능력을 확장시키기엔 심리내적자원이 부족해서 잠재능력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먼저 엄마와의 접촉이 이루어진 바탕에 자기와의 접촉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작은 아이는 긴장 불안 수준이 매우 높아 매사 작은 일에도 침울해하고 지레 겁을 먹는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은 있는 아이인데, 겉으로 보여 지는 모습과 달리 어디에서든지 소외감과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유아기부터 우울과 무기력을 경험해 왔을 것 같고 이후 계속된 양육방식에서도 허전하고 외로운 욕구 등 정서적 어려움이 채워지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가족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는 엄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며 불편한 심리상태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엄마로부터 자신이 부정당해 얻은 실망(상처)이 치유되기 위해서인지 아이는 몸과 마음이 아픈 상태이다. 둘째아이는 인정받고 싶고,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고, 대접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엄마와의 친밀감을 기반으로 한 의미 있는 대인관계를 통해 만족되는 법인데 아이입장에서 얼마나 어려웠을까 생각된다. 현재 아이는 선생님과 좋은 관계가 되어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좋은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의 균형) 둘째아이는 높은 긴장으로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자극을 받지 않고 혼자 있기 위해 한 때는 학교를 다니 않으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 학교혐오가 크다. 어릴 적 엄마에게 버림받은 경험으로 인해 타인은 자신의 삶을 침해하는 못마땅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외적으로 관계를 잘 하는 듯 보이나 소외감으로 관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분열성이나 회피성인격처럼 타인과 가능한 한 거리를 두고 다가가지 않는 게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초기 친밀한 엄마 경험의 실패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지나치게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를 강하게 들어내기에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자신의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하는데도 어려움이 크고, 이와 더불어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문제 해결과 의사결정을 하는데도 그 상황을 어떻게 다루고 느끼고 처리해야하는지를 알지 못해 아이가 자지러진다. 둘째아이는 엄마를 충분히 소유해보지 못한 경험으로 인해 자신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하기위해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동일시해야 하는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고, 부모가 이혼을 해서 그리고 이성의 부모와만 사니 정체성의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체성에 대한 갈등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주체적인 존재에 대한 의심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진로나 직업적 정체성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지금 둘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혼란을 정리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시간이 무난하게 지나가길 바라지만 쉽지가 않다. 아이가 가장 애정이 필요한 민감한 시기에 감정에 상처를 받게 되어 그 상흔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각인되어 버림받는 공포에 시달린다니 그저 미안하고 애처롭다. 사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릴 적 충격을 받았던 경험에서 느꼈을 감정이 해소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을 못했다. 너무도 어렸으니까 그리고 그 힘든 경험은 과거이고 최선을 다해 보살폈으니까. 지금도 아이들이 감정으로 고통받아왔다고 하는(과거의 힘들었던 경험이 회복되기 위해 재현된다는) 선생님의 언어가 소화가 안 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실망을 표현하는 아이를 잘 반영을 해주지 못한다. 


아이를 다 안다는 전제하에 내 방식대로만 반응하게 된다. 전처에 대한 문제가 정리되지 않아서일까. 개인적인 발달과 관련된 좌절을-나의 부정적인 요소를 스스로 해결해본 경험이 없어서일까. 아이의 상황이 머리로만 이해가 되어 아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옳은 소리만 하게 된다. 둘째아이는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것으로 욕구불만을 표출한다. 경미하지만 자해를 시도해서 약을 먹게 되었다. 감정이나 생각의 채널이 좁아진 상태에서 자해를 하고, 예전에 경험한 끔직한 불안의 경험이 되살아나는 플래시백이 일어나 스트레스 상황에 혐오감이나 공포감으로 흥분상태가 되는 것 같다.


자해행동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괴로움을 알아주길 바라는 신호이고(가족의 걱정과 관심이 자신을 향해서 애정욕구가 일시적으로 충족되는 바램), 자해자체에서 얻어지는 카타르시스 효과(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쏟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강한 할머니의 과잉보호(간섭과 통제)로 인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분리되고 싶고 세상을 탐색하고 싶은 욕구) 심정일 수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지만 실제로 없는 대상은 아니다. 엄마와 단절되어 아이들은 거부당하고 홀로 버려진 느낌이 일어났을 거라고 짐작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양육한 할머니는(어머니) 책임감 강하시고 매사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시는 분이시지만 아이 마음에는 둔감하고 원리원칙이 강하셔서 아이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알아차리시거나 수용하질 못하신다. 아이가 상담을 받고 약물치료를 하는 것을 반대하신다. 공들여 힘들게 키웠는데 본인의 양육 실패라고 판단당하는 것 같아 치료받는 아이에게 배신감을 느끼신다. 아이들과 기질도 정반대라서(가치관이 정반대) 보이는 현실적인 요인 외에 아이들의 내면세계나 직관적인 풍부한 감성은 사소한 일로 치부해버리신다. 둘째 아이를 할머니는 대체로 어린애 취급하면서(과잉보호와 간섭) 아이가 공감이해를 바라는 중요한 때는 “넌 이제 다 컸잖아. 네가 양보해.” 라며 거리를 두신다. 자신을 과도하게 챙겨주면서도 지배적인 할머니의 행동에 불만을 느끼는 모순된 상태를 아이가 많이 답답해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관찰 가능한 사실이나 사건만 인식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아이들은 보여 지는 의식의 영역을 넘어서서 어떤 사실이나 사건의 이면에 감추어진 의미나 관계 또는 가능성을 더 잘 인식하니 당연히 대화는 어렵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특히 둘째에겐 더 자신의 분신처럼 이런 저런 요구를 하신다.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인 할머니의 요구는 온전히 아이의 것이 되지 못하고(특히 맞지 않는) 정서불안의 원인된 것 같다. 아이는 상담에서 할머니의 기대를 매번 채우는 게 힘들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거울역할을 아이가 해온 것 같다. 한 동안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지금은 불편한 할머니의 모습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간접적으로라도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선생님께 죄책감 없이 맘껏 분출하고 나서) 강한 할머니에게(자신을 돌보는 엄마 같은 존재) 자신의 주체성을 침해당할 때 아이는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응원을 받기보다 그런 행동은 장래에 도움이 안 된다거나 나쁘다고 거절당하면서 의지를 포기하도록 압박을 당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참견과 조언이 아이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을 보호하기위해 어머니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질 못했다.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려고 스스로 움직이지 않아 아이에게 잘 대처하지 못해 개선이 늦어졌던 것이다. 나의 이상만 고집하며(직업생활에 몰두하며) 무엇이든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위화감을 부각시켜 움직이지 않는 회피자아를 지닌 나를 아이는 많이 답답해하고 자신을 돕지 않는 힘없는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사실 나에게 있어 ‘해야만 한다’ 는 ‘할 수 없는 나’를 책망하도록 만들며 힘을 빼앗는다. 둘째아이는 유아기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서 그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느꼈을 때(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착각이겠지만) 마치 믿고 의지할 대상이 없었던 경험으로 되돌아가 무력감을 느꼈을 것 같다.


둘째는 가끔씩 마음을 닫고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는 짜증이나 분노폭발을 한다. 고의가 아니라 아이가 답답해서(무의식) 그러는 것일 텐데 지금까지는 가족관계에서 일어나는 병렬적인 행동 패턴을 이해하지 못해서 도와주질 못했다. 충동조절이 되지 않는 아이를 대처할 때 표면적인 반응을 하지 않고(그 건 잘못된 행동이야. 아빠 안 그랬어. 사랑해 등), 그 행동의 근원을 이해하고 신중하게 대처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사춘기로 시작되어 자립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고립감과 분리감을 잘 극복하면서도 자신의 본질(참자기)을 잘 찾아가는 심리적 재탄생이 되도록 열심히 도와야겠다. 지금의 힘든 시간이 잘 마무리되어 아이가 힘 있게 세상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7. ‘엄마 집착’(프리스카)

선생님과 인연이 되어서 스터디 일원이 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스터디 일원으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갈지 기대가 됩니다. 첫 시작부터 주어진 과제가 애착유형이라서 흥미롭게 과제를 했습니다. 유아기 때 제일 소중한 사람과 어떤 애착을 맺었는가에 따라 인생의 모든 관계가 그 영향아래에 있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아가게 되었으니까요. 누군가 성인인 나에게 “엄마를 어떻게 떠올리세요? 엄마는 어떤 사람이에요?” 라는 질문을 하면 보통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객관적인 정보가 아닌 “엄마가 참 좋아요. 엄마는 참 좋은 분이세요.” 라고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답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어른의 시각으로 엄마를 설명하는 말은 아니고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는 엄마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나를 낳아 길러준 엄마 덕뿐입니다. 누구나 엄마라는 특별한 대상에게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엄마가 기대했던 대로 해주지 않아서 슬프고 화가 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엄마는 제 요구나 감정을 귀찮아하지 않고 늘 다정하게 수용해주세요. 그래서인지 저는 어딜 가서 미움을 받은 적이 없고,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아기 때와 똑같은 모양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엄마의 안정된 품이 따뜻하고 행복해서 우물쭈물하다가 자립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엄마의 매우 큰 사랑을 길게 받았는데요. 그로인해 제가 잃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어요. 발달하지 못해서인지 저는 스트레스에 민감해서 좌절이나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특성이 있어요. 그 결과 제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고, 제 삶을 씩씩하게 개척하고 싶었는데 번번이 실패했어요. 어느 순간 혼자서는 어렵겠다 싶어 결혼을 해서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그 결혼도 제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남편을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현재로서는 저에게 버거운 짊을 주는 사람이에요. 생각해보면 남편은 저보다 엄마한테 더 잘 맞는 사람인 것 같아요. 엄마는 어느 시기에 결혼 매니저를 자처하시고 제 결혼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셨어요. 제가 선보러 가면 몰래 따라 나서 맞선 상대를 보고 판단해주시고, 저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 환경적 조건이 있으면 과감하게 커트해주셨어요. 


남편은 군인이었는데요. 만난 지 3일 만에 propose 받고, 5개월 만에 혼인신고를 하고, 7개월 만에 식을 올렸어요. 아버지가 육군사관 학교를 나오셔서 키 크고, 바르고, 성실한 남편을 맘에 쏙 들어 하셨어요. 남편과 사귀기 시작하여 참 좋다고 느꼈을 때쯤 남편이 이상한 행동을 했는데요. 겉으로 보인 것은 조루 증상이었지만 성격의 문제와 결합된 증상인 듯해요. nomal 하지 않은 남편의 행동에 놀라 결혼을 유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고, 울고 불며 설득을 해보았지만 부모님은 오히려 저를 달래고 협박하면서, “성질 죽여라. 그 못 참는 성격 때문에 좋은 남자 놓친다. 여자가 참고 푸근해야 지’ 하시면서 물심양면으로 남편의 문제를 돕기 위해 적극적이셨어요. 유명하다는 성 치료기관을 다니며 전전긍긍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 부모님은 왜 ‘넌 성인이니까 네 인생의 결정도 책임도 스스로 지는 거고 엄마는 네 선택을 믿을게’ 라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저는 부모님께 사랑스러운 아기 같은 존재지만, 인정받는 믿음직한 어른이 아닌 거예요. 상담을 몇 회기 시작할 무렵 꿈을 꾸었습니다. 단조로운 한 장면이었지만 인상적이었습니다. 엄마와 관람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공 장소였는데 엄마가 저를 어린 아이취급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해서 짜증을 왈칵 내는 꿈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엄마에 대한 거부감을 자각하는 모습은 ‘현재 그 문제와 마주하고 있는 모습’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에 대한 감정이 양가적이라는 것입니다.(좋으면서 짜증나는) 저는 엄마와 사이가 매우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일방적으로 순종하거나 어쩌면 엄마를 돌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정체성이 엄마의 친구인지, 엄마의 효녀인지 헷갈립니다. 꿈의 모습에서처럼 실상은 불안정한 엄마에게 저를 맞추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와의 관계가 nomal 하지 않으면 문제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인생 전체를 좌우한다고 합니다. 엄마라는 병은 유대관계의 병이며, 심리적일뿐더러 생리적, 신체적 병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엄마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침범당하며 자란 탓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서 엄마에게 늘 의지하면서 마음속에 짜증과 불만이 응어리진 것 같습니다.(꿈에서 그러하듯) 요새는 엄마를 만날 때마다 또는 만나고 헤어진 뒤에 마음이 불편해지고 우울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엄마 품이 답답한지 오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세상으로 나아갈 마음에 힘을 키우지 못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지만(선생님은 상담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늘 그랬을 거라고 합니다. 의식에서만 인정이 안 되었을 뿐이라고요.) 지나치게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엄마의 마음에 들려고, 기분을 살피고, 엄마를 배려해서 그런 모양입니다. ‘엄마의 병’ 중에서 좋은 부모 자식관계의 모습으로 착각하는 ‘부모와 친구 같은 사이로 지내는 경우’ 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엄마를 무엇이든 이야기 할 수 있는 상대로 여깁니다. 비밀이 없습니다.(전혀 방어를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만) ‘말 하지 말아야지. 말하면 안 되는데, 말 할 필요가 없어’ 라고 판단하다가도 엄마를 만나면 무장해제 되어 여과 없이 쏟아내고 말아요. 친구 또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공유했었고, 남편과의 성문제까지도 거침없이 얘기 합니다. 아마도 저 또한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사려 깊은 어른 흉내를 내면서 엄마의 기분을 헤아려주고, 충고도 하고 지낸 것 같습니다. 왜냐면 엄마와 저는 그러한 경계 없는 융합으로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금세 알아차리고 거기에 맞춰서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사이거든요. 그래서 서로 구별이나 차이나 거리가 느껴지면 불쾌감과 죄책감이 크게 일어납니다.


아마 상담치료로 발달이 되면 제 모습이 변할 텐데 제가 갑자기 변한 이유가 무언가 밖에서 나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엄마는 상처를 받고 분노하여 상담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할 것입니다. 저 또한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픈 습관적인 모습이 있을 것이고요. 엄마와 저는 아주 오랜 시간 여전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의 환영을 꿈꾸겠지요. 엄마가 독립하려는 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저는 어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안정된 관계가 아닌 그것은 ‘퇴보’ 일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제가 스터디에 참석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현재 남편의 문제를 대하는 자세도 어른의 모습이 아닙니다. 응석만 부리며 자라서인지 불편한 욕구를 참아 내거나 여러 가지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과보호를 받아서 원하는 것을 거의 얻으며 자랐기에 미숙하고 무절제한 자기애가 남아 있어서 갈등을 참고 대처하지 못해서 힘들다고만 호소할 뿐 힘 있는 누군가 해결해주기만 간절히 바랍니다. 엄마에게 집착했듯이 또 남편에게 집착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지나칠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해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으면(분리 개별화) 독립적인 어른이 되는 게 어렵듯이 남편에게도 엄마에게서처럼 안전감이나 안도감을 얻지 못하면 보호받지 못한다고 여겨져 비극적으로 반응합니다. 엄마와의 관계가 유전자처럼 늘 다른 대상에게 옮겨지는 것 같습니다.


요새 하인즈 코헛의 자기 심리학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헌신과 희생으로 충만한 엄마에게도 과대자기애가 숨어 있다고 합니다. 에코처럼 자립적이지 못한 엄마는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기에 자기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는 아이를 더욱 의존적으로 만들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얻는다고 해요. 아이의 진정한 욕구나 주체성을 무시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엄마는 제가 원하는 것을 항시 완벽하게 미리 준비해주시고, 무엇이든 거절하지 않으세요. 하지만 결국은 저의 미래를 고려하지 못하시는 거지요. 언젠가 엄마 품을 떠나 독립해서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요. 제 판단력을 키워주지 못하고 단지 귀여워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눈앞의 만족에만 사로잡혀 계셔요. 더군다나 저는 앞의 형제를 잃고 낳은 딸이라서 더 특별한 존재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강한 불안감으로 저를 애지중지하고 과보호를 하셨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엄마도 돕고 저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이제는 엄마가 다정하게 안아주시기보다 올바른 것과 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가르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와 분리를 해나가야 하는데 엄마가 자신감을 빼앗고, 두 발로 서는 힘을 약하게 하고 저를 배신하는 존재로 여길 까봐 두렵습니다.



7. 어린 시절 큰 상처를 받아 애착이 불안정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안정을 되찾는가 (미리암)

그동안 수업을 통해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을 공부하였는데 남편의 애착 유형에 대해 정리를 해보면서 어린 시절 큰 상처를 받아 애착이 불안정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안정을 되찾는가를 심사숙고해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우울, 불안, 긴장, 무기력, 섭식장애, 감정의 기복, 가정폭력, 주의력 결핍, 외톨이, 발달장애등. 요새 심리학자들은 이 모든 문제의 공통원인으로 불안정애착을 꼽는다. 애착은 후천적인 것이지만 개인의 행동이나 정서, 스트레스 내성 등에 유전자처럼 관여해서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반면에 애착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위협과 불안으로부터 지켜주고 안정과 행복을 주기에, 자기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편한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개선하는데 도움을 준다. 어려운 부모관계뿐만 아니라 부부, 자녀관계에(모든 인간관계) 드러나는 심리현상은 애착정도를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집착형 불안정 애착”을 경험한 사람은 ‘엄마가 항상 같이 있다’는 믿음 없이 엄마가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정신에 내재되어 엄마가 자기 옆에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안심을 하고, 엄마와 떨어지게 되면 극도로 불안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특정 인물에게 자신을 버리지 말라며 의존하고 매달리는 강한 집착을 보이게 된다.


나를 끊임없이 통제하려는 남편의 심리는 분리불안과 관련이 있었다. 연예를 할 때 나를 좋은 사람, 결코 놓치면 안 되는 사람, 곁에 두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강한 추진력으로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을 밀어 붙였다. 말단 경찰 공무원에 고등학교만 나온 남편의 눈에 이상적으로 비친 나는 대학원을 나오고, 대학병원의 언어치료사였으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양친의 사랑을 받은 친절하고 따뜻해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누나였던 것 같다. 연애를 하던 때 잠시 남편의 집착이 부담스러워서 헤어지려고도 해보았지만 남편이 죽는다고 협박을 하다가도 동정을 유발해서 결국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결혼 후 남편은 나를 모든 회식 자리에 불러냈으며 때론 회식 한 사람들을 운전하여 데려다 주게 하였다. 그러한 행동을 내세우며 자신이 부인에게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지 과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거리가 느껴질 때면 불안해하고 내가 떠날 까봐 두려워했다. 


나를 위해주는 행동이나 말도 결국 자신의 안정감이나 자신을 긍정하기위해 한 말이었고, 자신에게 멀어지면 큰일 난다는 무언의 협박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친구와 일본 여행을 너무나 가고 싶어 어렵게 말을 꺼냈다. 미리 상의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결국 망설이다 여행 전날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남편은 옷장의 옷을 캐리어에 쳐 넣으며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더니 뺨을 때리고는 무릎을 꿇고 빌라고 했다. 나는 너무나 놀라고 자존심이 상하였으나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라 남편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잘못을 빌었다.


가까스로 2박 3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온 날 남편은 술에 취해 엉엉 울면서 자기를 제발 떠나지 말라고, 내가 없는 동안 죽을 것 같이 무서웠다고 다시는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였다. 나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에 굶주린 남편의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누군가였다. 남편은 엄마가 마음속에 내재화되지 못해 어른으로서 자립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였다. 나를 너무 가까이 두려고 하지만 나를 진심으로 믿고 의지도 못했던 것이다. 남편은 진노하며 사랑받고 싶은 불안한 마음을 성토하지만 모든 감정을 쏟아 놓아도 문제가 해결된 적이 없다. 그냥 분이 풀릴 때까지 호소만 할 뿐이었다. 부모님의 불행이 그대로 자신에게 내재화되어서 그런 것 같다. 기댈 곳 없고, 믿을 대상이 없어 자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과한 기대와 현실과의 괴리사이에서 시달리며 현실의 자신을 돌보는 여유가 없이 어른이 된 것 같다. 단 한 번의 실패로도 자신의 모든 것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실패는 단지 과정인데(하나의 경험) 자신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다. 남편이 무리하지 않고도 손에 넣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시아버님은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중 남편이 열 살 때 돌아가셨다. 어릴 적부터 장손이라고 애지중지 하시며 키워주시던 할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시어머님과 싸우고 작은 집으로 가시고는 돌아가실 때까지 남편 집에 안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시어머님은 남편이 열두 살 때 남자친구를 소개해주었는데 연애를 하는 엄마를 많이 증오했다고 한다. 시어머님은 암으로 남편이 19세 때 돌아가셨다. 그 뒤로 남동생과 살기 위해 우유배달과 신문배달을 하면서 동생 공부시키고 어렵게 컸다. 남편은 빨간불에 신호등에 가로막히면 “그럼 그렇지,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나는 참 안 되는 놈이야. 남들은 잘도 가는데 꼭 내 앞에서만 걸려. 재수 없는 놈이 그렇지 뭐” 라고 한탄한다. 매사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멸시를 받고 있지 않는데 자신이 혐오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애를 쓰며 고생하며 살아온 그 삶을 부정하고 불평하는 것 같다. 본인이 배우고 싶은 피아노와 야구대신 새벽에 식당에 나가서 밤늦게 오는 어머님을 대신하여 동생 밥을 차려주고, 연탄이 꺼질까 집을 지키며, 빨래를 하던 그 소년을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아버지가 없고 못산다고 도둑으로 의심을 받기도 한 어린 소년에게 샐리의 법칙 대신 머피의 법칙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시어머니는 3남매 중 막내셨는데 전쟁 때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오빠와 언니들과 지내다가 결혼을 해서는 거의 남같이 살았고, 암에 걸리셨을 때조차도 “먹고 살기 힘드니까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한다. 돌아가실 때까지 외롭게 사셨고, 남편은 장례식에도 오지 않은 이모와 외삼촌에 대한 분노가 컸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는 작은 아버지댁에 살았는데 어머님이 남긴 집을 작은아버님이 팔아서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는 결국 남편과 시동생은 결혼할 때조차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를 비롯해서 친척에게 조차 버림받았다고 느끼며 자란 남편이 늘 거부와 버림받는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상처가 남편 삶의 번데기였기를, 오랫동안 머물렀던 그 허물에서 나와 아름다운 날개를 펴서 날아 보기를 바래본다. 머리로만 남편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부담스러웠는데 이 과제를 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남편을 바라보게 되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누가 태어나면서부터 미움을 받고 거부당할 만한 무엇을 가지고 태어나겠는가. 부모를 비롯해서 주면 사람들이 사랑을 베푸는데 미숙했을 뿐이다.


이러한 결핍이 평생 남편의 마음속에 고정관념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도와달라고 사랑해 달라고 소리치지 못한 원망은 평생을 두고 희석되어 가야할 일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남편을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의식에선 때로 혐오대상). 상담과 스터디를 통해 조금씩 성숙해가면서 엄마와 분리를 이루어 나가며 남편과 진짜 관계를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마음이 병든 사람에게 “고마워. 아, 그랬구나. 도와줘. 사랑해. 미안해. 부탁해. 덕분이야”라는 말은 구원이 되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 이러한 말을 주고받고 있다. 원한의 감정이 이러한 따뜻한 애정의 표현으로 변하도록 남편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사랑해주지 못한 내 모습이 있다. 남편과의 관계가 순조롭다는 것은 서로 관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서로가 양보하고 배려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나의 자기애적인 태도 때문에 남편의 친절함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남편의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제스처를 무심결에 흘려보냈다. 행복이란 공감하고 연대한다는 것을 나또한 배우고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남편을 있는 그래도 바라보지 못하고 진정한(평등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은 나의 이미지로 남편을 제멋대로 상상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서로 잘 소통되지 못한 원인으로 결혼생활이 위태로워진다.


인터넷에서 만나 유대감을 갖고 동반자살을 하는 것도, 강렬하게 사랑으로 시작한 관계가 파국으로 끝나는 사태도 결국은 혼자서 살다가 죽어가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일 것이다. 친정엄마와의 융합 관계에 시달려 남편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 자신에게만 몰두되어 있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애적 허영심으로 늘 못마땅함으로 남편을 대해왔다. 남편의 모든 말과 행동을 나에게 불리하게 해석했었다. 상담을 통해 주변사람이나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여 하는 말이나 행동이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지 알아가고 있다. 예전에 이러한 분석(지적)이 공포스러웠지만(선생님이 무서웠다.) 


지금은 공부한지 7년 정도 되니 이해와 수용이 절로 되어간다. 남편이 너무나 귀찮았는데 그를 보는 게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나는 자만에 빠져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신을 비하하는 모습이 있다. 이것이 관계구도가 되었던 것이다. 내가 때론 남편에게 미움을 받는 이유가 나의 약점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약점을 숨기고 허세를 부렸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는 진실을 알아가고 있다. 내가 가장 어려운 것은 나에게는 중요하지만 남편에겐 중요하지 않은, 남편에겐 중요하지만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그리고 나에게도 상대에게 중요한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오지 못한 것이다. “하느님, 남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그리고 그 자비를 누군가에게 베풀며 살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저 또한 남편을 위해 새로운 방법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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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