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슈퍼비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상호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8. 안경

1. 우리가 함께 엮을 때(나오미)


“우리가 함께 엮을 때”를 보면서 부모교육에서 배웠던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특히 영화중에서 두 가지 상징물이 유독 마음에 남았는데, 첫 번째는 편의점 삼각 김밥이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주인공 아이는 편의점 삼각 김밥을 우걱우걱 삼키고 있었고, 삼각 김밥껍질이 무수히 쌓여진 쓰레기통을 보며 아이가 매 끼니를 삼각 김밥으로 때우고 있었음을 짐작 되었다. 아이에게 삼각 김밥은 나쁜 엄마와 나쁜 엄마관계를 상징한다. 외삼촌의 여자친구(린코)를 만나기 전 진짜 보살핌과 사랑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 나쁜 사랑이 독이라 할지라도 그냥 삼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린코의 참사랑을 경험한 뒤에는 아이는 더 이상 삼각 김밥을 먹을 수 가 없었다. 두 번째 상징물은 작은 손수건과 린코가 마지막에 선물한 털실로 짠 젖가슴이다. 나는 이 두 개가 질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중간대상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이는 자신을 보호해주지도 마음을 안정시켜주지도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 꼬질꼬질한 작은 손수건을 꼭 쥐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아이가 외삼촌과 린코의 집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이의 손수건은 외삼촌의 집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린코의 따뜻한 사랑으로 성장해 이제 더 이상 그 옛날의 작은 손수건은 필요가 없어진 것 같았다. 대신 그 아이는 따뜻한 젖가슴을 갖게 되었다.


아마 그 젖가슴으로 아이는 삶을 좀 더 잘 견디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에게 온전한 젖가슴이란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며, 따뜻한 보살핌이고, 의사소통이고, 책임감이고, 건강함이고, 유대감일 것이다. 그런데 왜 아이는 외삼촌과 린코와 같이 살지 않고 엄마와 살기로 선택을 했을까? 하는 점이 의문이었다. 따뜻한 사랑을 주는 완벽한 곳인데 왜 차갑고 박탈을 주는 이기적인 엄마에게로 돌아간다고 했을까? 물론 나쁜 대상이라 할지라도 진짜 엄마가 없는 것보다 나쁜 엄마라도 아이에게 있어야 함을 정신분석에서 배웠지만 마음이 무겁다. 이 찹찹한 심정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이러한 의문 속에서 일어난 생각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 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에 대해서 감히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고 판단할 수가 없었다. 무섭고,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엄마에게 화를 내거나 대들 수가 없었고 늘 조심하고 비위를 맞추고 또 혼을 내면 그냥 당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그런 엄마를 벗어나고만 싶었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엄마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특히 언니의 투병과정과 죽음 속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고 괴로웠다. 언니가 우리 곁을 떠나기 한두 달 전 계속 언니를 돌보던 형부도 지쳐 잠시 친정집에 있기를 바랬지만 엄마는 내게 짜증과 신경질을 내며 왜 엄마를 재촉하는지, 엄마보고 어떻게 하라고 그러는 거냐며, 또 가사도우미가 없는 주말에는 내가 와야 한다고 하시며 언니를 돌봐야 한다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셨다.


또한 주말에 내가 언니의 식사 준비와 식이요법을 위한 야채스프 등을 만들 때에도 엄마는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 엄마라면 당연히 자식이 아프다는데 엄마에게 가겠다는데 어서 오라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더구나 지금껏 언니가 투병하는 중에 직접적으로 돌보아준 일이 없었기에 엄마의 그러한 태도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도 처음부터 친정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았고, 2주정도 뒤에 언니의 상태는 악화되어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얼마 안 있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이후 엄마의 태도는 세상 그리 사랑하는 딸을 잃은 사람 같았다. 언니의 제삿날과 생일을 정성스레 챙기고, 언니의 무덤앞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며 “00야~ 엄마는 너를 사랑했다~~”고 울부짖었고, 너무 그립고 슬퍼 울지도 엄마를 말하지도 못하는 조카들한테 엄마 무덤에도 와보지도 않는다며 형부에게 섭섭해 하고 닦달하고 애들이 모질다고 하였다. 나는 그런 엄마의 태도가 가증스러웠다. 


살아있을 때 잘 하지, 살아 있을 때에 엄마를 필요로 할 때에는 냉정하게 도망갔다가 이제와 사랑을 이야기하니 엄마의 이기적 태도, 자기에게만 매몰되어 있는 태도에 실망하는 것을 넘어서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내가 “엄마”라는 상에 대해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게 되었다. 그렇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넓은 품으로 감싸 안고 자식이 힘들 때 위로가 되고 힘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5-6세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 충분히 배울 수 있었고, 사랑받을 수 있었는데 그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셨다. 또 엄마는 반짝반짝 빛나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농사일과 어르신들을 모시느라 바쁜 외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돌봐줄 여유가 없었다.


엄마는 그런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 아빠를 택했다. 아빠를 통해 시골에서 벗어나 서울로 갈 수 있었고 대학을 다닌 아빠로 인해 배움에 대한 욕망을 대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빠도 엄마가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다. 이런 과정에서 엄마는 누군가와 인간적이고 따뜻한 정서적 관계를 맺는 걸 경험하고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누군가를 돌보는 것도 서툴고 또 돌봄을 받는 것도 서투르다. 우리가 엄마를 생각해 선물을 하면 엄마는 항상 짜증을 내며 “뭐 이런 걸 사왔냐! 네가 사온건 내 맘에 쏙 드는 게 하나도 없다!”하며 선물 사온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관계라는 게 주고받는 것인데 엄마는 일방적이다. 누군가를 통제하거나 착취하려고만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미 죽어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과는 좋은 모습이고 또 엄마가 높으신 어른이라고 따르는 스님들이나 엄마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엄마 말이면 뭐든지 다 옳다고 하는) 저희 외숙모와는 좋은 모습으로 지내는 것 같다. 엄마는 양육과정 속에서도 또 결혼생활에서도 의존할 수 있는 대상으로부터 충분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은 적이 없어서, 결국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줄 수도 없었던 거 같다.


우리 엄마는 그런 한계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 한계 속에서 엄마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마음이 편할 때 엄마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까지이다. 나도 내 이상으로서의 엄마가 아닌 진짜 나의 불완전한 엄마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엄마뿐만이 아니라 내 주위의 다른 사람 특히 가족들에 대해 실망과 두려움, 불안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모습을 갖길 바라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기말고사를 맞이한 아들에 대해서도 ‘시험기간에 공부하는 완벽한 중학생’의 모습을 기대하였지만 기대를 저버리는 아들에게 화가 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 혼자서 내적 투쟁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최근에 아빠가 몸이 좋지 않으셔서 우리 집에 5-6일정도 머무르시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잘 모셔야겠다고 생각해서, 매일 새로운 국을 끓이고 고기가 아닌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는 반찬을 준비하고, 아빠가 거의 혼자 계시지 않도록 일이 끝나면 바로 퇴근, 아빠와 같이 산책, 아빠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또 아빠가 원하면 티비 시청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전혀 평소의 내 생활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4일이 지나는 날 나는 심하게 체했고, 음식을 만들기 위해 가스레인지 앞에 서면 구토가 날 것 같았다. 물론 아빠도 편하지만은 않으셨다. 결국 난 소위 오버를 한 거다. 우리 집에 계신 동안 아빠를 완벽하게 모시겠다는, 아빠를 충분히 만족시키겠다는 나의 오만이 불러일으킨 결과라 생각한다. 아빠가 다시 아빠 집으로 가시자마자 내 체기는 사라지고 다시 편안히 가스레인지 앞에 설수 있었다.


수퍼비전-예전에 수업에서도 언급하셨던 것 같은데 사람에 대해 이상적인 모습을 기대했다가 실망했던 에피소드 얘길 하셨지요. 그 이유를 분석해 보실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부모에게서 떠나는 일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가족과 주변 이들에게 의존적인 모습이 강해요. 물론 의존의 모습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전치(변장) 되는데 누군가에게 이상적인 기대를 하는 모습을 갖는 것도 그러합니다. ‘사람은 어떠한 자질이 있어야 하며, 무엇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어떠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사실 나의 기호에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민의 답을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지요. 또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적입니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나와는 잘 지낼 수도 있고, 믿었던 사람이 부도덕한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조화를 이루기 위한 인생의 균형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좋은 사람도 부족한 사람이 있어야 빛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군가의 역할이나 행동, 기분이나 심리로 상처를 덜 받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적절함에 대한 두려움은 늘 수동적이게 만들죠. 나이에 맞지 않는 과도한 관심이나 늘 기분 좋다고 여기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거나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매우 이상적인 모습이에요.



2. <안경>루도비카

이 영화는 상담선생님을 통해 추천받아 봤던 작품이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줄탁동시’를 말씀하시면서 그 영화 속에서 팥을 삶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이번에도 그 장면이, 그리고 그 할머니의 표현이 내 가슴을 두드렸다. “절대로 조급하면 안돼, 절대로” “그러면 반드시 기필코 언젠가는...” 조급함은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또 상담을 하면서 많이 갖게 되는 감정이다. 당장이라도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 그런 불안감에 팥을 뒤적이고 불을 켰다가 줄였다가 하는 것처럼 괜히 아이를 들쑤시고 혼내고 종종거렸다. 상담에서는 그 불안을 견디지 못해 초반에는 일찍 종결시켜버리는 경우도 많았었다. 그러나 내가 버티고 그 시간을 견디어준 아이는 어느새 변화된 자기의 새로운 세계를 내게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내 아이가 중간고사 공부를 하기로 계획해 놓고는 운동을 갖다 와서는 그냥 자버리는 것이다. 


나는 아이에 대해 걱정하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서 내가 싫어하는 아이 아빠와 닮은 점을 발견하고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까지 아이를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아이 아빠에 대해서 화도 나고, 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속을 끓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저 모습이 저 아이의 미래, 결과, 끝이라고 단정 짓지 말자고 생각했다. 지금은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방법을 알려주자,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게 도와주자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잠시 아이가 잠을 잘 수 있게 내버려 두었고 어느 정도 잠을 잔 뒤에는 깨워 계획한 것을 다 이루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획한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니 조금이라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편안히 자자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아이도 나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계획한 것을 20여분 정도 한 뒤에 다시 잠에 들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나도 편안할 수 있었다.


수퍼비전-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결정이나 매순간 일어나는 크고 작은 중요한 결정은 아이는 스스로 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에게 계속 배우고 훈련해 나가야 합니다. 의존적인 사람만이 삶의 중요한 결정을 항시 다른 사람에게 내리게 해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겉으론 잘 따라서 동의하는 듯해 보이지만 수동적으로 방관하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앞의 피드백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엄마가 의존적일 때 아이의 반대편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고(나쁜 엄마이거나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아이를 보호하면서 제대로 반응을 못하게 되면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갈등 속에 갇히게 됩니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 닮아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과잉보호의 모습이든 박탈의 모습이든 그 상호작용은 평생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3. 영화 안경,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마태오)

안경 영화 처음부터 안경에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배우 대부분들 안경을 쓰고 있다. 렌즈에 도수가 들어있지 않은 안경을 쓰고 있으니까 이건 무언가 메타포적인 설정이다라고 더 확신하게 된다. 영화는 전반에 걸쳐 숨을 뚫어 두어 생각할 여지를 주고, 거꾸로 생각할 필요 없다는 말도 하고 있는 듯하다. 타에코 씨는 짐을 길에다 두고 오면서 자유와 사색으로 진입하며, 빙수를 맛보고, 안경을 바람에 날리게 되면서 수용과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관심은 없다. 그냥 여기서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사색하며 위로받는다. 동화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특히 쉽게 다다를 수 없는 오지라는 점에서, 이전의 시공간과 분리되어 사색하게 된다. 드디어 가만히 있음으로 역설적으로 더 길게 갖게 된다. 뜨개질을 하며 공기를 함께 담는다.


 ““사색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니””라고 놀란다. ‘음, 이런 놀람이 더 놀람을 일으킬 사람들이 훨씬 많을텐데’라는 웃음. 그들 또한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워하지만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지만 동화되게 하는 힘이 있다. 어디에서라도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받게 하는 것일 수 있겠고, 사쿠라 씨도 생명이 꿈틀대는 봄에 와서 자유의 힘을 얻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은 문득 시작되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지요””, ““뜨개질은 공기도 함께 뜨는 거다””라는 대사가 특히 더 남는다(감독에게 뜨개질이란 무엇일까). 여행의 마감은 물리적 시간의 유한이기도하지만 상황의 따분함이기도 하겠다. 뜨개질의 공기처럼 비어있는 공의 의미를 품는 것이 삶의 위로이자 동력이란생각이다. 나는 어떠한가? ““무엇이 이리 바쁜가요?””라는 말에 ““바쁜 척이요.””,““그냥 다 그렇잖아요.””라는 둥의 말로 응수한다. 힐링이라는 단어의 강박성에 상처입기도 하지만 힐링, 치유, 기다림, 느림, 대면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특히 지금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네가 어디서 무얼 하(였)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어깨가 무겁고 목이 뻗뻗해서 매주 주사를 맞는다. 나는 무엇을 길바닥에 버려야하는 걸까. 좀 무책임해진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채움보다는 비움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타이코씨의 가방에서 배운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나에게는 안경이라는 영화보다 이 영화가 더 친절하게 느껴졌다. 빈틈이 좀 없어서일 거 같고, 더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참고로, 나는 다른 분들보다 LGBT를 만날 기회가 좀더 있다. 환자 중에는 트렌스젠더도 실제로 있고, 그의 부모님도 만난다. 유난히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식구란……감독님이 이전에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도 제작하였다는데 함께 먹는 것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본다. 그러고 보니, 나는 거의 매번 점심식사를 또는 저녁식사를 혼자 해왔구나. 영화를 보면서 ““내면의 어린아이””가 생각난다. 토모의 할머니, 어머니 모두 아픔의 어린아이가 보인다.““나는 엄마이기 전에 여자란 말이야. 숨이 막혔어””.


린코의 털털하고 보듬어주고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어머니 덕에 린코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고 돌보고 싶어한다. 헤세는 내면의 어린아이를 키워가는 중이다. 다행히 이제 토모는 내면의 어린아이를 보듬어줄 마키오와 린코가 있다. “네가 잘못한 거 없어.””, ””부모와 자식도 결국은 사람대 사람이야.””라고 말해준다. 같이 계단에 앉아서 셋이서 뜨개질을 한다. 이렇게 진심으로 엮으면서 가족이 된다. 어린아이를 가진 어른이 다른 사람에게 아픈 어린아이를 심어주는 것 같다. 나의 어린아이는? ““잘 해야만 해, 끝까지 가야만 해, 너는 싫으면 안되. 말 잘 듣지. 너는 떠날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어느 정도 나의 어린아이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오는 것인가 기대한다. 요즘 나의 어머니를 안아주고 있다. 등을 도닥거려준다. 깜짝 놀랐다. 낯설었다. 내가 어머니를 안아주지 않고 있었구나라는 것이다. 이제 이만큼 이해하고 다가감을 이룬 것인가. 건강한 관계란 이 영화의 대사대로 ‘결국은 사람 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대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본다. 두 영화를 통해 앞으로 진정한 유대와 사랑, 내면의 어린아이를 돌아보고 사색과 여유,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도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노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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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