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슈퍼비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상호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7. 상담스터디 -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1.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루나)


나는 분노가 많은 사람이다. 정당한 분노도 있지만 내 안에 ‘욱’하는 억압된 분노가 많음을 이번 과제를 통해서 발견했다. 치료하는 아동의 엄마들과 상담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엄마의 태도에 대해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 직장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하다보면 아이에게 적절한 언어자극을 주지 못하고 방치했거나 정서적으로 억압시켜 부모 눈치를 보고 위축되어 표현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의 부모에 대해 흥분하며 말과 온몸으로 화를 내곤했다. 반면 다른 치료사들은 그저 안타깝다 정도의 반응이어서 늘 그들을 정 없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 속의 토모가 돌아온 엄마에게 “린코는 밥해줬어. 인형도시락도 싸줬어. 머리도 예쁘게 따줬어. 뜨개질도 가르쳐줬어. 함께 자기도 했어. 왜 엄마는 해주지 않는데?” 라며 자신의 분노를 말로 표현하는 그 부분에서 순간 깨달았다. 아이는 정서적 방치와 폭력적인 일을 당해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엄마 손을 꼭 붙들고 “저는 엄마가 좋아요”라며 일상의 모든 것을 의지하는 그 아이들에게 내 어린 시절을 투사하고, 부모 모습을 투사하여 그토록 화가 났음을 알게 되었다. 토모가 빈번한 엄마의 가출로 외삼촌 집에서 살게 되었다면, 나는 초등학교 때 방학 때마다 친가에 보내졌다. “엄마 방학인데 어디 안가? 반찬이 이게 뭐야? 이거 해줘 저거 해줘.” 방학이면 이렇게 충족하고 싶은 것에 대해 늘 불평불만을 하며 집요하게 요구했고 그러다가 엄마한테 혼나면 늘 동생들을 괴롭혔기에 엄마는 쫓아내는 심정으로 나를 할머니 댁에 보냈었다. 할머니 댁에서는 혼내지 않는 작은 엄마와 첫 증손녀라 예뻐하시는 증조할머니, 고모들 사이에서 욕먹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편하고 좋았다.


또한 엄마가 고모들과 사이가 안 좋았기에 엄마가 얼마나 나쁜지 욕을 하면 그 때마다 고모들이 ‘니네 엄마 못됐다고 어쩜 그러냐고’ 내 편이 되어주었기에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그러다 한 번씩 죄책감에 엄마 보고 싶어 조용히 울기도 했었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셨다. “작은 엄마가 너한테 뭐라고 안 해? 먹을 건 자기 애들하고 똑같이 줘? 엄마 욕은 안 해? 냉장고에 먹을 거 많지? 욕심만 많아서 너 집에 오는데 가서 먹으라고 뭐 안 싸줘? 엄마 아빠 얘기는 안 물어봐? 물으면 안 싸운다고 해.” 하지만 엄마가 궁금해 하는 것 안에는 나는 없었기에 속상한 마음에 묻는 질문에 다 반대로 답하다가 버릇없다고 혼나던 시절이 있었다. 토모는 “엄마도 아니면서”라며 엄마에 대한 분노를 린코에게 옮기며 벽장 안에 들어가 거리를 둘 때도 린코는 컵으로 전화기를 만들어 소통하면서 토모의 마음속 상처를 담아 주려했고, 속상할 때나 화가 날 때 뜨개질을 하면서 분노를 다른 방법으로 성숙하게 처리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토모의 분노를 담은 뜨개까지 합쳐 108개의 남근 모형 뜨개에 자신의 상처와 분노를 실어 태우는 리츄얼에서 토모의 외할머니가 분노를 담아 뜨개질 옷들에 원한을 실어 남편의 관에 넣어 태운 것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그 성숙한 애도의 태도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어린 시절 감정의 그릇이 차서 넘치기 전에 조금씩 버리거나 덜 담도록 분노를 다루고 조절하는 방법을 엄마에게 배웠다면 좋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부모교육에서 감정발달이 후천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부모가 아이게 직접 감정조절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가족 간에 감정조절을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운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감정발달이 적절하게 발달되지 않아 감정조절에 미숙하다면 아이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다. 화가 나는 감정은 사실 에너지다. 그 정도를 들여다보면 화도 있고, 부끄러움도 있고, 걱정도 있고, 관심 받고 싶음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당황스러움도 있고, 불쾌감도, 배고픔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감정 상태를 있는 그대로 느끼거나 표현하지 않고 한데 똘똘 뭉쳐져 분노로만 상대방에게 던져버리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화가 나면 어떻게 성숙하게 처리해야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토모 같은 엄마가 없었다. 대신 물리적인 힘으로 누르는 엄마가 있었다. 그럼 나는 또 당한대로 내 동생들에게 똑같이 되돌려주었고 동생들에게 함부로 하는 내 태도가 정당하다고 여겨졌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거의 스무 살까지 10년 넘게 써온 일기가 있는데, 일기장에 엄마 욕을 썼다.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나, 왜 이런 집에서 나는 태어났을까?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엄마가 늙으면 절대 엄마가 죽든지 말든지 안 간다는 말도 썼다. 그렇게 불안과 분노를 다 쏟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 또한 감정분출의 통로이긴 했으나 맹목적인 ‘욱’상태가 재현된 거라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해소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공격적인 감정은 강렬하게 느껴지기에 어떤 다른 감정보다 강하고, 항시 먼저라서 내 입장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그래서 나는 말하는 것에는 능숙하나 듣는 것엔 미숙하다. 늘 내 감정표현을 하는 게 우선시되기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 치료아동과 그 부모의 관계 양상이 마치 그것만 있는 거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란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갖고 있는 분노가 삶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어떻게 드러나는지, 나와 내 유년기부터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억압된 분노가 어떻게 표출되어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친밀한 관계를 망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면의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내 삶의 질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2.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스탤라)

정리되지 않은 엉망인 집, 쌓여있는 삼각 김밥 포장지들과 라면 용기들, 사랑을 찾아다니며 술에 취해 밤늦은 시간에야 들어오는 토모의 엄마는 토모를 낳았지만 전혀 돌보지 않는다. 이와 달리 성 정체성의 어려움으로 아픔이 있지만 묵묵히 견디면서 살아가는 린코는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토모에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좋은 돌봄을 아낌없이 베풀어준다. 린코의 엄마 나오미도 인상적이었는데 린코를 부끄럽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키오가 린코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모습도 소중해 보였고, 린코가 토모의 결핍을 채워주며 아픔과 상처를 이해해 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진심과 따뜻함이 무엇인지 알았다. 토모엄마는 토모를 데리러 마키오 집에 갔다가 린코가 토모를 입양하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인간으로서 어른으로서 아이를 지켜야한다는 말에 토모 엄마는 자신은 엄마이기 전에 여자이고 혼자서 애를 키우다보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는 거라면서 자기의 입장을 당당하게 얘기하고, 린코를 외적으로 보이는 데로만 평가절하하며‘평생 엄마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매도한다. 나는 사랑을 찾아 방황하며, 아이를 책임지는 것이 버겁고 힘이 드는지 또 자신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토모엄마가 저절로 이해가 된다. 린코가 토모를 위해 정성들여 싸준 도시락이나 가족을 위해 준비한 정성스럽고 정갈한 음식을 보면서 예전의 꿈이 떠올랐다.


학교를 가려고 도시락을 찾았는데 엄마는 도시락이 없다고 한다. 무표정하고 무관심하게 우두커니 서 있는 엄마에게 도시락을 안 싸주면 어떻게 하냐고 원통해하는 꿈이다. ‘도시락’은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을 내게 주기 거부하는 엄마의 상태는 어떤 것이었을까? 돌봄의 결핍이 큰 나는 여러 가지 인격의 문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크게 사람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지 않기도 하고, 관계에 대한 피곤함이 커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꿈속의 엄마와 같은 모습이 나에게도 있는 것이다. 간혹 힘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베푸는 좋은 것을 그/녀가 나에게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능력이 되잖아 ~ 그러니까 당연히 참아주고 계속해서 채워줘야지.....끝까지 하라구!) 누군가 좋은 것을 베풀면 함께 나누는 것이 맞는데 난 노력이 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열등감, 시기심에 시달리면서도 급격히 우월감이 일어나 그들을 존중하고 이해하거나 사랑하는 게 하찮게 느껴진다. 이러한 이중성에 압도적으로 빠져 결국 관계 결실을 맺지 못한다. 자아 전능감 상태에서(초기 유아상태) 현실을 만나야 내려올 수 있는데, 사실 현실과 대면하면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그 수치심 때문에 방어가 일어나(ego inflation) 관계를 망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엄마에게 제대로 진심이 느껴지는 사랑을 받지 못 해서 그러하다.


나는 대인관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 도시락 꿈처럼 나는 사람들과 무관심을 주고받을 뿐더러 거기에 엄마의 왜곡된 인식과 비정상적인 행동,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나 자신과 관계된다는 의심과 피해망상, 이상한 믿음이 강하고(마술적 일차적 사고, 종교적 맹신 등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 또한 편협하다. 평생 엄마도 나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피하는 이유를 살피기보다(반성하는 능력이 없다.) 회피를 일삼으니 소외감과 고립은 엄청날 수밖에 없겠다. 정서가 잘 발달된 사람은 자신의 감정도 잘 포착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잘 이해하고 수용한다고 배웠다. 어린 아이기 때문에 미숙할 수밖에 없는 여러 모습을 엄마에게 제대로 수용 받아 본적이 없어 의존의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채 자라왔던 것 같다. 나는 엄마에게 객관적으로 그 어떤 감정적 위로와 배려를 받아본 적이 없다. 선생님과 분석을 오랫동안하면서도 이 무의식적 역동 때문에 의존을 하고 싶어도 뭔지 느낄 수 없었고, 오히려 미성숙함을 수용 받는 게 수치스러웠다. 의존의 욕구가 해결되지 않아 갖게 된 가장 큰 피해는 분노조절의 어려움이다. 나는 서운한 것도 분노로, 슬픈 것도 분노로, 소외감도 분노로, 외로움도 분노로 온통 모든 것을 분노로 느낀다.


나의 유년기의 성장과정, 부모와의 관계는 아직 안개처럼 그 정리가 희미하다. 내가 엄마에게서 배운 대로 하고 있든, 엄마가 싫어 반대로 하고 있든 한이 맺혀 매사 과잉 반응하는 나에게서 빨리 자유롭고 싶다. 선생님은 행동이나 미숙한 감정이 바로 고쳐지지 않아도 후회하는 마음과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그 과정 자체가 차츰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후회하고 돌아보는 사람은 반드시 바뀐다는 믿음! 이번에 과제로 하게 된 두 편의 영화와 지난 번 과제로 했던 바닷 마을 다이어리는 ‘관계’에 대한 것을 깊이 생각하게 해준 영화인거 같다.‘안경’이란 영화는 융합적인 강렬한 만남만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는 나에게‘저런 것도 관계라고 말 할 수 있나?’하는 생각도 하게 했지만 거기엔 진심, 신뢰, 친밀함이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왠지 우리‘함께라면’모임이 비슷한 거 같다고 느꼈다. 또한 토모와 린코가 서로를 이해해 가며 점차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따사롭게 느껴지고 나에게도 저런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간절하게 해본다. 영화를 보면서 혈연으로 묶여야 가족이라고 할 수 있던 생각에서 벗어나‘얼마든지 새로운 가족들을 만들 수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도 드니 참 좋다. 나한테 이것만큼 의미가 있는 일도 없는 것 같아 스터디 모임을 통해‘관계’에 대한 나의 부족함을 일깨우고 새로운 나의 가족들을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도 세워본다.



3. 진심으로 그들이 엮을 때(레오)

극중 ‘히로미’는 자신의 딸‘토모'를 방치한 채, 남자와 동거를 하기 위해 말도 없이 나가버린다. 이러한‘히로미'의 행동은 계속 반복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외삼촌‘마키오'는 자신이 일하는 서점에 갑자기 찾아온‘토모'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만화를 보면서 기다리던 ‘토모'는 일을 끝낸 ‘마키오'와 그의 집에 같이 돌아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삼촌에게 이상한 동거녀가 생긴 것이다. 그녀는 트랜스젠더인 ‘린코'이다.‘토모'는 다행히 여성성이 충만한 ‘린코'로 부터 엄마에게서 받아야할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리고‘마키오'와‘린코'와 함께‘뜨개질’이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감 또는 연대감을 엮어낸다. 아동은 자신의 정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양육자의 표정을 통해 사랑, 공포 등의 감정을 배운다고 한다. 아동의 욕구에 대한 양육자의 반응이 충분할 때, 아동의 민감한 정서 발달이 가능하며, 양육자가 아동의 욕구를 거부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동은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접촉할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된다. 인간적 접촉을 위한 아동의 노력이 반복적으로 좌절되면 아동은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해 외부세상을 황폐하고 가혹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양육자와 아동의 상호이해와 감정의 공유는 안정된‘자기 개념’형성에 반드시 필요하다.


자기개념이란 개인 ‘자신’이나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한 개인적 특성에 대한 지각이나 느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토모, 마키오, 린코가 단단히 엮어놓은 신뢰감을 상상도 못하는 엄마‘히로미'가 돌아와 이번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토모'를 데려가려 한다. 토모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그녀는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자기 개념이 형성되지 못하면 타인과의 관계까지 발전하지 못한다. 영화‘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를 통해(특히 엄마 ‘히로미') 나의 관계 패턴에 대해 몇 가지 발견한 점이 있다. 일단 나는 내가 먼저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것도 모를 정도로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이런 나의 태도에 누구든 그/그녀는 나에게 상처를 받는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그/그녀는 나에게 상처를 준다. 이러한 순간 나는 마치 생뚱맞게 심리적 테러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연히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하는 사람(수동 의존적)인데, 가만히 있다가 모욕을 받은 격이 되는 것이다. 


이 때 누군가는 나에게 공격성을 쓸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러지 못하고 실망하고 상당히 의존적으로 변한다. 다시 또 수동의존적인 모습으로 그/그녀에게 사랑 또는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열등감으로 내가 왜 그들에게 맞추지 못하였는지 고민하다가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모든 일들이 어그러진 다음에 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상태는 너무나 끔찍하다. 요새 특히 곤란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일신상의 여러 어려움을 감수하질 못하는 문제행동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나는 실패하거나 비난받을까봐 매사 미리 상황에서 일어나는 반대, 거절을(확실한 표명) 전혀 표현하지 못하고 피한다. 그 결과 부정적 자기개념이 강화되어 더욱 고립감으로 무력하다. 수동-의존적인 문제가 나에게 매우 커서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타인에게 순응적인 행동을 하다가 낭패를 보는 이 패턴에서 언제, 얼마만큼 벗어날 수 있을 지 고민이다. 다른 사람의 조언과 확인 없이 결정을 내리기 어렵고,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대부분 다른 사람이 책임져주길 기대한다. 지지나 승인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하기가 어렵다(단지 보복이 아닌).


분석을 통해 동기나 능력이 부족하다기보다 현실적 판단력과 자신감부족으로 많은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지만 조절이 어렵다. 얼마 전엔 아무런 숙고 없이 교수님이 어떤 장애단체를 후원하는 모임에 가입하라는 말에 바로 가입해 후원하고 나서 그 단체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인식하고, 생각지도 못한 책임감을 떠맡아 불쾌했었다. 수동-의존적이라는 것은 아이가 비난받을 지 관심 받을 지는 엄마의 기분이 달려있는 상태를 뜻한다- 한 순간 교수님에게 관심을 받기위해 내 의견에 솔직하지 못했는데, 늘 누군가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결정해버리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수퍼비전-레오씨 실패나 거절이 두려워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고민을 표현 했네요. 여기에서 벗어나는 확실한 방법이 있지요. 좌절(실수나 시행착오)없이 자아는(자기) 성장되지 않아요. 당장 누군가에게 어떻게 할까 도움을 청하기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한 다음에 도움을 청하는 것은 자아의 또 다른 높은 수준이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할 줄 알아야 발전적인 성찰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근거로 현실적 판단을 제대로 하게 되면 공망(空亡)사라져요. 자신감은 뭐든 스스로 해내서 느껴지는 감정이랍니다.



4.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엘리사벳)

아동기 발달 단계를 보면 각 시기마다 성취해야 할 목표들이 있다. 각 단계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생애 고비마다 직면하는 많은 상처와 문제들로 고통스럽고, 때로는 회복할 수조차 없는 좌절들을 경험하게 된다.‘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등장인물들이 성장과정에 생겨난 결핍과 상처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인물 및 관계 구도를 살펴보면 바람 핀 남편에게 받은 상처와 원한을 딸에게 쏟아낸 토모의 할머니, 그런 엄마에게 사랑 받지 못하고 자라 자신의 딸에게 적절한 양육과 사랑을 줄 수 없는 토모의 엄마 이야기와 아들의 성 정체성의 혼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지지해 주었던 린코 엄마, 정체감 혼란과 사람들의 편견에 상처받았지만 엄마의 사랑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간직하고 있는 린코 그리고 아버지 대신 자신에게 집착했던 엄마 관계를 극복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린코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토모의 외삼촌 이야기이다. 


나는 어떤 면에서 토모엄마 같은 엄마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 제공한 그녀 나름의 모성은 대부분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우리 엄마는 성취와 재능을 과장하고 무엇이든 뛰어나게 여기지기를 기대하시는 분이다. 성공, 능력, 탁월함 등의 이상적인 사람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시다. 가족은 물론이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말이다. 자신이 매우 특별하다고 느끼시는 분이라 그런 기대가 반드시 채워져야 하며 자식을 비롯해서 특별히 지위가 높은 사람들로부터 충족되거나 인정을 받으셔야 보람을 느끼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모습이 지나치실 때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 그리고 필요를 알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타인의 입장에서 그를 위해 공감하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엄마는 오롯이 나를 위해 옆에 있어주거나 나만을 위해 헌신을 해주지 않았다. 어렸을 때도 나는 뭐가 갖고 싶다거나 먹고 싶다고 조르거나 투정을 부린 적이 없다. 그녀가 주는 것에 감지덕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갑상선 암으로 수술을 하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일이다. 엄마는 중요한 자리에 초대를 받은 사람처럼 옷을 갖춰 입고 손님처럼 병실에 앉아 계셨다. 마냥 위로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지만 엄마의 차가운 모습이나 행동 때문에 이 모든 마음을 숨겨야만 했었다. 그 아픈 와중에 위로는커녕 어찌나 거리감이 느껴지고 불편하던지 남이나 다름없었던 것 같다. 문병 오는 시댁 식구와 친구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만 그 자리에 계신 엄마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지만 지나고 보니 씁쓸하다. 내가 안쓰럽고 힘들까봐 부축해 준다거나 밥을 챙겨주겠다는 생각은 없으셨고 나 또한 엄마에게 뭘 부탁하지도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나는 괜찮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수술 다음 날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닫으면서 엄마의 온도를 맞춰주면서 내가 더워서 연다고, 혹은 추워서 닫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엄마는 평생 나에게 중요한 인격적인 실체가 아닌 늘 좋은 엄마, 좋은 지식인, 좋은 아내로 보여 지기 위한 쇼를 하는 사람으로만 느껴졌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분이셨지만 나에게 너무나도 센 엄마였기에 나는 엄마가 너무 무서워 평생 그 어떤 대립도 피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주체성 발달의 기회를 박탈당한 나는 엄마의 욕구가 곧 나의 욕구가 되고, 엄마의 감정이 나의 감정이 되어 대인관계와 정서가 불안정한 채로 살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역시, 진정한 감정이나 나 자신의 필요에 둔감하고 명확한 자기표현이 너무 힘들다. 대신 부모, 형제 그리고 시댁어른들과 남편 그리고 자식과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들의 중요한 무엇이 되고 싶어 애를 썼으며 그것으로만 나를 규정하려고 하였다. 혼자서는 제대로 진정한 자신이 되질 못 했다. 나는 채워지지 못한 애정을 평생 숨기며 살아왔는데, 그것은 매사 거절당했다고 생각되는 상황의 오해를 만들어, 사랑하고 사랑해 주어야할 대상들에게 상처를 주고, 분노를 쏟아낸 후 불안이 진정이 되면 그들을 숨 막히게 하는 헌신을 쏟아 부었다. 버림받는 공포 때문에 내가 쏟아 낸 증오를 보상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며 매달리고 집착하는 관계를 반복했던 것이다.

 

나는 이제 엄마나 그 누구를 대신해서 살고 싶지 않은 각오로 노력중이다. 내가 겪어온 이 피해의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거절에 대한 두려움에서 불안한 나를 전혀 보호하지도 못하고 불안과 분노로 살아가고 있겠지. 진실을 알아가는 만큼 조금씩 힘들었던 마음이 진정이 되고, 정리가 되고, 힘이 되고, 성취가(성공이) 일어난다. 영화로 돌아가 보면, 토모는 자신에게 사랑과 헌신을 진심으로 보여주는 린코를 통해서 엄마에 대한 미움 대신에 엄마를 받아들이는 선택을 통하여 성장해 나가고 있었고, 린코는 엄마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사회적인 편견을 극복하고(털실로 짠 남근을 불태우는 애도를 통하여)혈연 대신에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 헌신으로 새로운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나의 관심은 성숙한 어른의 사랑을 보여주는 마키오다. 같은 엄마를 경험했지만 누나인 토모엄마와는 달리 성장-발달을 지속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엄마를 돌보아주는 헌신적인 린코의 모습에서 인간의 성숙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의 린코를 사랑하고 그녀의 애도에 동참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의 성장에 어떤 사람이 있었을까, 어떤 방법이 있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가 보여주는 성취는 좋은 본보기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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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