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소임을 마치고 2021년 명예롭게 은퇴한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지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매월 1회 상호 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5. 상담스터디 - 태풍이 지나가고와 바닷마을 다이어리

1. 태풍이 지나가고와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고(한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등장인물 료타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의 허황된 꿈이라던가, 바보스러운 행동, 지저분함은 주위를 답답하게 만든다. 삶의 중요한 영역을 대부분 다른 사람이 책임지게 만드는 무능한 그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 내 모습 같아 긴 한숨이 나왔다. 동기나 능력부족이라기 보다는 판단력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나 현실감이 부족해서 남들의 보살핌과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그가 나는 너무 얄밉고 혐오스러웠다. 그것은 나 자신을 잘 돌볼 수 없다는 과장된 두려움이 크고, 내일을 스스로 잘 해나가는 것에 대한 비현실적인 두려움이 큰 나가 투영되어서 일 것이다. 요새 부정적인 말 한마디조차 감당해내기가 힘들 때가 많다. 거슬리는 누구의 한마디에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리며 그 생각과 씨름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화 안 된 나는, 아이 같은 어른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료타처럼 좋은 것만 받고 싶은 어린아이 세계에 고착되어 책임지고 불편함을 견뎌내지 못한다. 의존적 성격의 사람은(료타처럼) 어떤 일을 시작하고 완수하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집이든 직장이든 어떤 곳에서도 책임지는 일이 없다. 그 결과 자신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 강화된다. 때론 현실을 살아가는 어려움에 무기력해지고 의도와 달리 관계가 파국으로 끝나는데 회복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료타를 보면서 나의 의존적인 부분이 객관화되면서 (스스로 많은 것을 처리하며 살지 않은)의존적인 성격으로 인해 실패나 거절이 두려워 사소한 일도 처리(소화)를 못해 무슨 나쁜 일이 생길까 염려되어 부정적 피드백이나 자극에 노심초사해왔던 것을 알아 차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큰딸 사치는 우여곡절 끝에 비록 철없는 엄마에게 버려졌지만, 어린 시절 아빠의 따뜻함을 받아 주위의 여러 관계 속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성공하며 살아가는 여인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유부남과 관계를 맺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를 보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배다른 막내 동생을 거둘 수 있는 여유로움을 지니고 있다. 그녀에게서 특별한 힘이라기보다는 편안하고 무난함이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극적인 삶에서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나에게는 무난한 보통의 삶이 참 부럽다. 아마 사치에게 막내 동생은 아빠의 외도로 인한 원수 같은 내적대상이아니라, 아빠의 죽음 후에 홀로 남겨진 외로운 또 하나의 동생이었고, 특별함을 가지고 보살피기보다는 함께 있어주는 그냥 보통의 큰 언니의 자리를 가지는 듯하다. 사실 건강한 현실은 특별하고 극적인 삶이기보다 보통의 무난한 삶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오십 가까이 살아오면서도 여러 복잡한 감정에 대해 성숙된 억압이 되지 않고 생겨나는 무수한 관계마다 분리 할 수 없는 미성숙한 의존적 관계를 되풀이 하고 있다. 의존이 안 되는 경우는 퇴행으로 인해 이불속에서 숨만 쉬며 갇혀 지낸다. 독립적이지 못한 아버지를 보고자라 저절로 그의 삶을 따라 사는 료타와 특별한 가르침이 없어도 아빠의 따뜻함을 그대로 받아 무난한 삶을 사는 사치를 보는 두 영화 속에서 대물려가는 사랑의 성숙한 경험을 되새겨보았다. 나는 부모에게서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외톨이가 되는 것을 기겁하고 모든 관계에서 의존을 강요하고 한없이 좋은 사람이 되어 그들과 분리를 거부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에서는 발달하고 싶고 성숙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태풍 속에서도 잃어버린 복권을 찾는 아들과 료타의 모습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원하지 않아도 반복되는 현실은 태풍이 지나가고 그들은 또 다른 하루를 그렇게 맞는다.



2.  ‘뭔가 이유가 없으면 안 되는 건가요?’ (이사벨라)

무엇이든 꼭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바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정신없는 삶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무의식 욕망을 건드리는 영화가 바로 ‘안경’인 것 같다. 영화는 그냥 한없이 단순하고, 더 이상 보탤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소망을 자아낸다. 이유 있는 일을 찾아 강박적으로 행동하고, 가치를 판단해 평가하고야 마는 쉼 없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꾸미지 않는 단순한 맛의 작은 행복을 느끼는 팥빙수가 참 귀하게 느껴졌다.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조용한 바닷가에 캐리어를 끌고 이렇다 할 간판 없는 숙소를 알아볼 수 없는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온 타에코, 맘씨와 음식 솜씨 좋은 민박집 주인 유지와 매년 찾아오는 수수께끼 빙수 아줌마 사쿠라, 시도 때도 없이 민박집에 들르는 생물 선생님 하루나, 이들은 모여 기이한 체조를 하는가 하면 특별한 일이 없이 하루를 보내는데 그들에게서 비춰지는 (나에게 없는)여유로움과 편안한 자유가 끝없이 펼쳐지는 평화로운 바다와 같았다. 끊임없이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허망이나 절망으로 쫓기는 고달픈 삶이 아닌 진정으로 사색할 수 있는 여유로움과 자유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작은 일거리를 찾아 하고 그리고 사색하는 모습은 참으로 단순하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나에게 있는 타에코의 모습은(강박적으로 오전에 일을 하고 낮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는) 어떤 걸까 생각해본다.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선생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는 그러한 역할 속에 자부심이나 기쁨, 감사함이 있나? 여유가 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허기진 마음과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가지고 싶은 물건을 마냥 채우고, 다시 가치 없이 버려버리고, 또 채우기식의 무의미한 쫓고 쫓기는 삶이 바로 내 인생이다. 삶을 견뎌내고, 욕심을 비우고, 가치를 간직하는 여유로운 자유를 원하고는 있지만 그저 소망으로만 기대할 뿐이다. 나는 대인관계와 정서가 불안정하다.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상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충동적으로 행동하다 보니 때론 자존감이 훼손될 때도 있는 것 같다. 누구든 이상화를 했다가 작은 거부 행동이나 실망으로 평가절하 해버리는 불안정하고 극단적인 인간관계를 해왔다. 오랫동안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알아낸 것은 이 모든 게 나의 약한 자아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거다. 감정 기복이 심해 불쾌함을 경험하면 그 염려가 몇 시간 드물게는 며칠씩 계속된다. 


그다음에는 만성적인 공허감이...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선입견 없이 느끼고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힘 있게 주체로 서 있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한결같게 대해줄 때 나는 감정기복에 덜 휘둘리고 편하게 기능한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경험되는 민박집과 여러 인물의 상징적인 의미가 상담스터디 관계로 연결된다. 내가 모르는 사이 주체 없는 삶에 휘둘리고 있다면, 봄마다 돌아와 간결한 맛의 여유와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함께해주는 사쿠라와 사색을 돕는 유지, 하루나를 만나는 타에코처럼 우리 스터디에서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만나고 싶다. 항시 시달리고 있는 애착과 분리의 혼돈을 벗어나 작은 자극에도 불안정해져 지옥을 경험하는 마음대신 이 스터디라는 휴양지에서 내 본연의 아름다운 인간성을 마주하기 기대해본다. 


약한 자아가 주관적 무드에만 빠져있지 않게 하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알아가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나의 주체도 바로 서겠지. 나 혼자 고립된 세상은 늘 버겁게 느껴지고 불안정한 카오스의 세상이지만, 사실 현실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대면하면 언제나 해결할 방법이 있는 논리적인 세상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의지와 관계없이 올바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숨어버리거나 쫒기는 환상 속에 빠져드는 파괴욕동으로 모든 걸 쏟아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자동적 정신 메커니즘이 나를 안타깝게 한다. 서두르는 조급함 없이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대면할 수 있도록 교정 받는 기회를 감사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힘을 기를 수 있다면 하는 바람과 타당한 이유 없이도 무난하게 살아가는 현실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되었다.



3.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나의 다이어리(카밀라)

나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다가 주인공 스즈를 통해 어린 시절 잊고 있었던 상처가 건드려졌다. 초등학교 때 “엄마는 결혼기념일이 1월인데 나는 왜 생일이 7월이야?” 라고 물었다가 “약혼하고 결혼 사이에 네가 생겼는데,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 지긋지긋한 결혼을 안 했을 텐데. 너 때문이야. 갑자기 생각해보니 화나네.” 라는 얘기를 듣고 심한 충격을 받았었다. 나는 결혼 전에 생긴 도덕적이지 않은 아이, 엄마가 원치 않는 아이였다고 고백 받은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방에서 펑펑 울 때 아빠가 들어오셨고 나는 자초지정을 말했는데 아빠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한 일은 너희 3남매를 낳은 일이야”라고는 말하셨지만 그 말끝에 바로 엄마와 싸우셨다. 그 당시에 엄마는 “내가 저걸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자주 하셨고 나는 말대꾸가 목 밑까지 올라오다가도 갑자기 위축되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스즈에게 식당 아주머니가 “아버지가 너 같은 보석을 남겼다”거나 아주머니 남편은 “어버지에 대해 궁금하면 언제든 오라고” 말하는 장면 사치가 “나 때문에 미안하다.”고 했을 때 꼭 안아주는 장면에서 내게도 저런 어른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라는 궁금증과 함께 부러움이 느껴졌다. 이 영화에는 먹는 장면이 참 많이 나온다. 술을 먹고 진심을 얘기하기도 하고, 맛있는 카레도 만들어 먹으면서 추억을 만들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며 위로와 충고도 하는 가족의 밥상이다. 반면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봤더니 우리 집은 가족 5명이 밥을 도란도란 먹은 적이 거의 없다. 엄마는 우리에게 밥을 차려 주고는 꼭 음식 만든 그릇을 설거지 하고 혼자 드시거나 아니면 음식을 준비하다가 먼저 드셨다. 엄마를 뺀 우리 네 명의 식사 시간은 언제나 고요했다. 같이 밥을 먹다가도 얘기를 하면 음식이 입에서 나오기 때문에 예의가 아니라는 아빠 말씀 때문에 밥만 먹었다. 물론 말이 오갈 때도 있었다. 반주를 하신 아빠가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윤리 책에 나오는 말들만 골라서 일방적인 말씀만하시고 우리는 대답만 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그저 서로 필요에 의해 동거하는식구였기에 집은 안전한 베이스캠프가 아닌 언제나 늘 떠나고 싶은 곳이었던 것 같다.


사치는 스즈처럼 잃어버린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스즈에게 만은 사랑받는 어린 시절을 찾아주고 싶어 했다. 아빠와 바람난 여자의 아이인 스즈에게 분노와 원망대신 가족의 유카타를 입혀주고, 대들보에 키를 재서 표시해주고, 매실주를 담그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함께 산에 올라 “아버지 바보, 엄마 바보”라고 외치고 서로를 안아주었을 때 상처 받은 사람의 이심전심이 느껴져 언니로서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나도 어릴 적 내 엄마를 불쌍히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참 신기하게도 잊혀 진 기억이 과제를 하는 동안 생각이 불현듯 났다. 한 번은 함께 누워서 자다가 “엄마 어릴 때 어땠어?”라고 물었더니 “엄마가 너무 공부하고 싶었는데 가난한 집 맏딸이라 동생 돌보고 밥하고 할머니가 몽둥이를 들면 산으로 들로 도망 다니면서 외할머니가 너무 무섭고 싫어서 강원도서 경기도로 시집 온 거야.”고 했다. 


그래서 “너네한테는 잘해주고 싶었는데 엄마가 성격이 못됐다.”고 말하는 엄마의 입술에 초록색 점을 만지면서 “엄마 불쌍하다. 근데 왜 엄마 점은 초록색이야?” 라고 푸근한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생각났다. 마지막 장면에서 식당 아주머니의 장례식에 다녀온 자매 네 명이 바닷가에서 나누는 대와 중에 “나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이 날까?”라는 질문에 스즈가 “많아, 엄청 많아 졌어”라고 말하는 것에서 스즈의 상처가 회복되고 있으며 사치 역시 스즈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원망스럽지만 다정하신 분으로 지각하는 모습이 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사치가 나중에 좋은 사람 만나서 사랑받길 응원하는 마음도 참 고귀하게 느껴졌다. 나는 5년 동안 걸어서 오분 거리인 친정에 일 년에 5-6번 정도 방문했었다. 


그런 내가 작년 겨울부터 한 달에 두 세 번 씩 친정에서 밥을 먹는다.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 해놨다고 하면 매정하게 거절했는데 지금은 함께 밥을 먹고 이제 대화라는 것을 한다. 입원과 검사를 여러 번 받는 부모를 모시고 다니는 사람이 내가 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왜 여러 자식 중에 그걸 나만 해야 되는지? 나만 자식인가? 하면서 동생들한테 전화해서 화도 많이 냈는데 점점 측은지심이라는 감정이 생겨났다. 두 분이 좋은 부모를 만났으면 서로에게 내 부모가 되어 달라고 요구하고 살지 않았을 텐데 너무나 아쉽다. 하지만 요새 부모님은 서로 의지하시면서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아프지 말라며 서로 좋은 의존을 하고 계신다. 이 가족영화로 한 가족 안에서도 각자 다른 상처로 고민하며 살아가고 때론 부모의 모습을 답습해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실수를 바로 잡으며 자신의 개성이나 인간관계를 완성해가는 인생의 의미가 느껴져 마음이 숙연해졌다. 서로를 껴안으면서도 서로 분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 가족을 통해 부모님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4. 태풍이 지나가고 (베드로)

요새 나는 상담에서 (내가 느끼는)주관적 현실과 (있는 그대로의)객관적 현실의 차이로 인한 왜곡된 면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마침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주인공 료타를 마주하면서 의존과 분리개별화의 관점에서 현실을 이해해보게 되었다. 나는 지능이 있어 좋은 학교를 졸업했어도 현실생활이나 이익이 되는 필요한 관계를 힘차게 해나갈 수 없는 미비한 나의 자아의 발달 상태를 고통스럽게 대면해가고 있다. 험난한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다! 라고 배웠지만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건 쉽지가 않다. 초기 유년기 경험(유아적 행동양식)이 무한 반복되면서 제 자리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기운이 빠지곤 한다. 인생의 경험은 엄마관계나 가족 경험과 다르다고 배우고 있다. 하지만 난 다르게 살지 못했던 것 같다. 지속적으로 독립된 개인이 되는 것을 거부해왔던 것 같다. 늘 감정이 부모님에게 국한되어 세상과 접촉하지 못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것에 대한 탐색을 못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똑같은 것을 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다양하게 해보라고 용기를 주고 등을 세게 떠밀었다면 어땠을까?. 의존에서 못 벗어나면 자기중심성에서 못 벗어난다고 선생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셨다. 나는 사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관심이 적다. 현실도 너무나 피상적으로 대충보기 때문에 무엇이든 야물딱지게 일처리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료타처럼 허황된 현실을 꿈꾸고 철이 없다. 료타는 한때 촉망받는 소설가였지만 차기작을 구상한다는 이유로 삶을 회피하며 도박으로 월급을 탕진하기도 하고, 한 남자나 아버지로써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이혼한 부인과 재결합하는 허황된 꿈을 꾸고 산다. 어찌 저리 무책임하고 현실을 보지 않고 불편한 것들을 이래저래 잘 빠져 나갈까 싶어 짜증이 나고 료타가 유치하게 느껴졌다. 불편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모든 사람은 그로 인해 고통스러운데 왜 료타에겐 좌절이 아닌지 정말 열불이 났었다. 역시 외부현실, 외부대상에 대한 인식은(현실감, 현실적응 능력) 지능이 아닌 성숙한 정서적 능력으로 되는 것이었다. 그의 엉뚱함이나 기발함이 왜 그리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이제 확실하게 알 것 같다. 극도로 자기중심적이라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지 못해서 후회나 감사를 모르고, 충동조절이 되지 않고, 인간관계에서 피상적이고, 정서적 교류가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스트레스나 갈등을 감지하지 못하고, 남을 공감할 줄 모르는 료타는 아이다. 의존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과한 것도 탈이다. 나는 의존적 성향으로 인해 발달해오지 못한 빈약하고 단순한 자아에게 반드시 새로운 채널과 힘을 실어줄 것이다.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일이든 공부든 관계이든 꼼꼼하게 접촉하고 의무, 책임감, 인내심를 바탕으로 성실한 노력을 유지하는 연습을 해나가야겠다. 그리고 여지껏 안 해본 새로운 것들에 대한 도전도 말이다.



5. 바닷마을 다이어리(안토니아)

바닷마을 다이어리 영화를 본 후 잔잔한 감동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특히 사치의 모습에 크게 집중이 되었고 사치를 부러워하는 마음까지 생겨났다. 아버지에 이어 엄마까지 떠나간 후에 동생들과 살다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복동생 스즈를 데려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부모의 부재가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이복동생과 함께 산다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서로 간의 갈등을 잘 감당하며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참 따뜻했다. 유독 사치가 부러웠던 것은 아마도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강한 현실감 때문에 그렇다. 삶에서 일어나는 어려움과 갈등에 대해서 어른답게 처리하고, 자신의 삶(소소한 일상들을 잘 처리하는 것에서 막중한 일들을 성취하는)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 말이다. 나는 낮은 자존감과 이타적인 관계를 하지 못하는 문제로 삶에서 일어나는 작은 좌절에 쉽게 번 아웃이 되어버린다.


겉으론 매사 친절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책임감을 갖고 진정한 관계를 맺기 힘들어 한다. 박탈경험으로 아직도 나는 엄마-아이관계에 고착되어 있다. 타자관계(이타주의)까지 발달을 하지 못해 작은 피해로 죽도록 힘들어하지만 나는 정작 남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공부도 그렇고 일이든 이 스터디조차도 매번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대처해나가야 하는 것이 버겁고, 거부감이 들고, 위축되고, 집중이 안 되고 감당이 안된다. 부모님으로부터 이해와 사랑을 받지 못한 좌절경험을 액팅아웃으로(망쳐버리고 싶다.) 재현하는 것 같다. 요새 센터운영에 대한 스트레스와 학교 졸업시험까지 치루면서 엄청난 불안이 몰려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험은 끝났지만 여전히 센터 때문에 불안하고 뭔가에 쫒기는 것 같은 조급함이 생긴다. 


회원이 나갈 때마다 내 존재가 흔들려서 불안이 일어나고, 매시간 매출을 걱정하고 있다. 또한 소소하게 생기는 일들을 해결하는 가운데 기운이 빠져서 일상적인 것을 두루 못하게 되는 나를 보면서 망연자실 상태이다. 새로운 일이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센터를 계속 운영해 나가야 한다는 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고 이 현실이 공포스럽게 느껴져서 빨리 떨쳐버리고 없던 걸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 속에 자라지 못하고 발달을 멈춘 아이는 책임지는 것에서 자유롭고 싶어 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 그래서 삶을 더욱 갈등과 고통에 빠지게 한다. 갈등을 이겨내 보려고 하지만 혼자서 참 어렵다는 것을 매번 느끼면서 ‘나’에 대해서 ‘희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이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수퍼비전 - 우리가 일상적으로 성공하는 현실의 성과물은(공부든 일이든 관계이든) 외적재산으로 메이크업되는 것 같지만 내면의 재산이 뒷받침해줘야 가능해요. 온전한 대상지각(이타주의)이 가능한 발달이 이루어져야 삶에 대해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되지요. 엄마로부터 잘 의존하고 적절하게 떨어져 나와야(분리) 자기 성장을 안정되게 하게 됩니다. 엄마의 과도한 융합과 간섭으로 때론 무관심으로 정서적 문제가 생기면 홀로설수 있는 능력에 문제가 생겨요. 평생 엄마에게 지나친 의존을 하게 되면서 혼자 있는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지요. 무엇보다도 현실감각을 발달하지 못하게 되요. 다시 강조하지만 험난한 세상에서 가장 믿을 건, 가장 중요한 건 자아입니다. 늘 감정이 엄마에게만 국한되어 자랐다면 타인과 정서적 유대를 발달시키지도 못하고, 극단적인 자기중심성에 갇혀 세상과도 교류하지 못해요. 자신 외에 대상에 대한 진정한 관심도 없고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박해기대와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소망은 현실이 아니에요.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누군가 항상 나타나 도와주지 않아요. 자아가 발달하려면 시행착오를 거쳐 좌절이 되더라도 배우며 도약해야 해요.(연습, 노력) 끝맺음을 못했던 정신발달은 늘 다시 시작되기에 발달하려고 할 때 마다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아요. 당연히 두렵고 불안해요. 융통성 없는 경직된 사고, 대상에 대한 의심, 비인격적인(비인간적인 환경에 노출), 대인관계 지각이 부정적이고, 갈등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회적 활동이 불만족스러운 문제 뒤엔 네거티브 심텀이 있어요. 안토니아씨는 사소한 좌절에 네거티브 심텀으로 들어가죠. 네거티브심텀이란 보통사람들이 가진 성격의 안정감이 없는 상태를 일컫죠. 현실에서 나쁜 일이 일어난 게 아니고요. 자신의 분열이나 투사가 대상에게(공부든 일이든) 옮겨져 나쁘게 느껴지는 겁니다. 안토니아씨 아직 아무런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조금씩 소화해나가면 되는 일입니다. 오히려 발달을 멈출 때 손실이 생기는 거예요. 여지껏 자각하지 못한 삶의 모습을 배워야 해요. 우리는 함께 배우고 싸울 준비가 되어있어요!



6.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고(빅토리아)

이 영화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계기로 함께 살게 된 이복동생 스즈와, 바람이 난 아버지와 그 상처로부터 도피하는 엄마 모두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려져 살아가고 있었던 3자매가 상처를 극복하고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나간다. 스즈는 아버지의 불륜의 상징으로 자매들에게 상처를 상기시키는 존재일 수도 있었지만 자매들에게 엄마 대신이었던 큰언니 사치의 배려로 이들과 같이 살아가면서 모두 성장해간다. 처음에는 어른들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철없는 새엄마 대신에 아픈 아버지를 간호하고 어린 이복동생을 돌보는 스즈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녀가 보여주는 어른스러움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동시에 영화가 진행될수록 엄마 대신이 되어 살아가는 사치의 모습에서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다른 사람의 필요나 결핍을 본능적으로 알아채 맞춰주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는 나의 모습이 다시 한 번 상기되었다.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무엇인가 필요하다 말하면 내 것을 사러 갔던 백화점에서도 엄마 것만 계속 눈에 띠어 결국에는 엄마 것만 사 들고 돌아와서는 다음 날 얼른 엄마에게 주고 칭찬 받고 싶어 조바심을 치다가 너무 바빠 다음 날 갈 수 없다는 자각에 알람을 맞추고 새벽같이 일어나 엄마가 깰까봐 친정 집 현관문에 그것을 걸어놓고 돌아오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받지 못한 사랑과 보살핌에 대한 결핍은 계속해서 엄마나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줌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찾아가는 병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남편, 시어머니, 아이들에게까지도 언제나 완벽하게 맞춰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일어나는 동시에 그렇게 하고 난 후 감당할 수 없이 밀려오는 억울함과 나처럼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챙김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시기심과 적개심으로 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치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스즈를 데려오던 엄마 같은 마음, 할머니의 장례식 후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와 화해를 하며 가족 안의 좋은 가치를 상징하는 매실주를 나눠주는 현실 인식의 모습, 유부남 남자친구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신의 직장과 가족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발견했던 성장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져보았다. 다른 사람을 돌보고 맞춰줌으로써 나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했던 모습은 엄마와의 부정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어 평생을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것조차 나의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사치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상황을 다른 면으로 이해하고 엄마와의 진정한 화해(직접적인 대면을 통한 화해가 아니라 내 내면의 자각이면 충분한 것 같은)를 통해 내가 고통스럽게 얻은 것을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도 있고 좀 더 나은 나의 삶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퍼비전 - 현재 느끼는 좌절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절망은 현실 그자체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에서 일어난 갈등이라면 소통이나 여러 대처 방식으로 또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되어가니까요. 문제는 과거의 강한 부정적 경험이 해결되지 못해서 강렬하게 개인에게 반복될 때 매사 기가 막히고 안절부절 못하는 심리적 중압감으로 영원할 것 같은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이지요. 현실이 도무지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비현실감으로 매사에 고마움이나 즐거움 때론 현실에 근거한 활력을 줄 수 있는 분노를 다루지 못하게 되고, 어린 시절 강하게 거부당했던 경험으로 마치 자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결격사유가 있어 인간관계가 파국이 일어나는 것 같고, 어린 아이 같은 수동의존적인 모습으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모든 일이 잘 되길 기대하지만 좌절이 반복되고, 탐욕으로 다른 사람의 좋은 것을 빼앗고 시기하느라 긴장하면서 살아가기도 하지요. 우리는 저마다 내면에 자신의 주관적 환상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가 있습니다.(자신만의 인생패턴) 각본, 주인공은 물론 자신이지요. 


그 영화를 옴니버스로 만들어 조금씩 각색해나가야 합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성격을 하나씩 섬세하게 다루 듯 현실에서 감정을 잘 조절하고 살려면 내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왜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되었는지 알아가야 합니다. 남도 그러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잘 모를 때 두렵고 무서우니까요. 또 정체를 모르면 답답하고 짜증이 나지요. 부정적인 감정은 다루기 힘들기에(피하기 위해) 우리는 현실에서 많은 것을 회피하고 살아갑니다. 강박적인 행동으로, 무력하게 비생산적인 행동들을 하면서 말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인식하고 다루게 되면 삶에서 많은 통제력이 생겨나고 자신감을 회복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료타나 기타인물 등의 부정적인 대상 경험을 동일시해서 자신의 과거를 성찰해보기도 하고(자신의 진짜 감정인 부정적인 경험을 언어화), 긍정적인 대상의 경험을 동일시에서(안전하고 긍정적인 감정) 희망을 느끼고 성장해보려는 동기를 느껴보는 일은 인격발달에 있어서 매우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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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