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슈퍼비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상호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4. 상담스터디 -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 정원

1.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 정원(가브리엘라)


폴은 아주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쌍둥이 이모에 의해서 키워진다.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폴의 모습은 마치 로봇 같아 보였다. 어린 아이처럼 과잉보호를 받는 것과 달리 무표정한 얼굴과 생명력 없는 눈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아무런 의지가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면서 웃음을 되찾고 스스로조차 기억하지 못했던 과거를 기억 낚시를 통해서 다시 만나며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그에 얽힌 오해를 풀어 간다. 또한 이모들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과정이 꼭 나와 같아 너무 놀랐다. 영화를 보면서 폴이 잘 공감이 되었던 것은 나도 부모교육 수업과 상담을 통해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증오와 혐오를 가지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지게 싫은 마음이 컸었다. 엄마는 늘 아버지에 대해서 느끼는 좋지 않은 감정이나 생각을 어린 자식들 앞에서 거르지 않고 표현하셨다. 외갓집 식구들도 어쩌다 우리 집에 오면 엄마니까 참고 살아간다고 그래서 불쌍하다고 하셨다. 부부싸움이 있을 때 아버지는 종종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맞고 있는 엄마를 볼 때 마다 아버지가 나쁘고 몹쓸 사람임을 확신했었다. 성인이 되자 엄마는 아버지하고 무슨 일이 생기기만하면 나에게 달려와 하소연을 했고 난 엄마보다 더 분노하면서 아버지를 몹쓸 사람으로 치부 했다. 


나한테 아빠에 대한 미움을 한껏 쏟아놓은 엄마는 마음이 가라앉아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서 ‘어쩜 인간이 그 모양일까?” 하며 내내 곱씹곤 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들에 대한 기사를 보면 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많이 느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날까봐 두려웠고 아버지가 죽으면 장례식도 안 갈 거라고 했을 정도로 미워하고 싫어했다. 코헛 수업을 듣던 중에 나에게 아버지 자리가 없음을 발견하고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본 적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 때문에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고 엄마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그게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담과 수업을 통해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버지와 나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이년 정도 잘 지냈는데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많은 상처를 받았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내가 아버지와 새롭게 관계를 맺고 아버지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큰 위로가 되고 감사 했다. 아버지도 너무 많은 결핍을 가지신 분이라 감정조절이 어려웠고 외부세계와 접촉하지 못해 평생을 쳇바퀴 돌 듯 가게와 집을 오가며 일만 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를 버리지 않고 가정을 지키셨던 것, 오랫동안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하셨던 것, 어려운 사람들의 딱한 처지를 생각해 도움을 주셨던 따뜻한 면도 있었다는 걸 추억하게 된다. 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는 슬픔이 크지만 사랑받았던 경험으로 어렵고 힘들 때나 일하기 싫어질 때 아버지를 불러 얘기하는 게 나름 힘이 될 때가 있어 행복하다.


수퍼비전-가브리엘라씨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과 안정감을 배우자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을 때 부모와의 관계가 없었던 경험으로 외로웠을 수 있었겠어요. 실제로 배우자는 제2의 부모이기도 해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씻어줄 수가 있거든요. 배우자의 애뜻한 사랑으로 평생 따라다니던 외로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있어요. 아마 가브리엘라씨도 남편의 신뢰로운 사랑으로 평생 따라다니던 불안정감과 외로움이 경감된 부분도 있겠고 오랜 시간동안 아버지 관계의 부재로 남편이 잘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도 있을 겁니다. 친밀해지기 위해 먼저 다가가거나, 사랑 표현을 하거나 원하는 것을 말하고 싶을 때, 갈등이나 고통을 위로하거나 받고 싶을 때 외로울 수 있죠. 현재 남편과의 거리감이 크다면 연애할 때 느꼈던 기분 좋은 감정과 배려는 건강한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발달된 눈치에서 나왔던 것일 수 있어요. 각자의 히스토리에서 생긴 바람이 만들어 낸 허상이 크면 그 위에 지어진 집이 견고하지 않죠. 그 결과는 지속적으로 소통이 되지 않고 외롭고 불안해요. 외로움을 직면하지 않으려고 화를 내는 거구요. 부모에게서 채워지지 않은 자기애적 욕구는 늘 관계를 어렵게 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성경에 ‘룻기’서를 좋아해서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나요. 거기에 나오는 보아스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정말 열심히 기도했던 때가 있었어요. 부모로부터 심리 정서적 지원 뿐 아니라 물질적인 지원도 제대로 받아 본 경험이 없어 제 자신의 모든 것을 책임져 줄 상대를 간절하게 찾았던 것 같아요. 기도의 응답인지 운이 좋아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연애를 하던 6개월 동안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고 좋았어요. 문제는 결혼을 하고나서였는데 부모와의 관계에서 처리해보지 못했었던 여러 감정과 욕구들로 좌절을 경험하면서 불행한 제 진면목을 보게 되었지요. 


결혼 후 신기하게도 연애할 때 느꼈던 좋은 느낌들은 어디론가 갑자기 다 사라져 버리고 남편의 존재가 너무나 낯설고 어렵고 불편한 느낌만 남았어요.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감정과 슬프고 불행한 마음 때문에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남편의 말 한마디, 작은 행동과 눈빛에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나 그렇지 않은가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어떤 것이든 제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맘 상해서 며칠 씩 말을 하지 않거나 화가 나면 서재 방 책상 위 물건들을 남편이 보는 앞에서 다 쓸어버리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행동을 주기적으로 반복 했죠. 어떤 날들은 새벽 한 두시에 차를 미친 듯이 몰고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느꼈던 강렬한 감정은 외로움이었고 제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감정이었어요.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행동들은 아무리 좋은 성경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때라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신도 저를 버렸다고 생각을 했어요.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백혈병에 걸릴 만큼 컸었는데 죽음을 가까이 두고도 바뀌지 않았지요. 투병 중에 저의 인간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제가 선생님을 만나 수업을 듣고 상담을 시작했었죠. 비로소 제가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고 그제야 저의 파괴적인 행동들은 조금씩 멈추게 되었어요. 남편에게 진짜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도 못했고, 먼저 다가가거나 사랑을 표현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고 엄청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져 할 수가 없었는데 저는 남편이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길 원해서 그랬던 거예요. 


기대했던 것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분노 대 폭발하여 파괴적인 행동으로 결말을 지었어요. 부모에게 정서적 채움을 받지 못했던 욕구들은 제가 어른으로서 동등한 관계를 하지 못하도록 했고 건강한 방식으로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어요. 남편이 아무리 잘해주어도 이상하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늘 남아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예전처럼 파괴적으로 관계하지 않아요. 오랜 세월 저의 성격의 문제를 정리하고 나니 이젠 남편을 잘 못 느끼는 문제가 남겨져 있네요. 제가 아마도 정신분석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남편을 사랑 없는 무정한 인간 취급을 하며 엄마가 아버지를 몹쓸 사람으로 느끼고 살았던 것처럼 저도 똑같이 그렇게 살고 있을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관계만 회복 된 게 아니고 제 결혼생활이 완전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 주인공은 폴이기도 하지만 저 이기도 해서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부모의 부재로 인한 상처가 삶을 살아가는데 삶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제 삶을 돌아보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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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