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사랑', '프레셔스'(아우구스티노)
지하철을 타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틈새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 중에서 가끔씩 보기만으로도 혐오스럽고, 적대감이 올라오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한 5~6살 된 아이와 어머니가 나란히 지하철 좌석에 앉아있다. 어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스마트 폰에만 집중하고 있고, 아이는 안절부절 하며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온몸을 움직여가며 어머니의 관심을 끌려고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아이는 벌을 받고 있는 중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나의 주관적 느낌은 슬픔과 외로움이었다. 아이가 얼마나 어머니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까? 눈길을 맞춰주며 따뜻한 미소와 포옹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이번 과제는 영화 '내 사랑'(2017), '프레셔스'(2009), 도서 '아동기 감정양식과 성숙' 2장 독립심과 의존심, 3장 애정의 욕구이다. 이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무엇일까? 나는 분리개별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 사랑'의 모드는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만나기 위해 에버렛의 가정부가 되기를 결심하고, 영화 '프레셔스'의 클라레스는 학대하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된다. 또한 도서 '아동기의 감정양식과 성숙'의 2, 3장은 독립과 의존, 애정의 욕구를 다루고 있다. 분리는 사춘기에 달성된다고 한다. 성장의 힘을 통해 성숙을 달성하고 삶의 문제와 고난에도 혼자 직면하며 세상에 대한 현실감을 갖고 가족으로 부터 분리된다.(34p)
그렇다면 나에게는 사춘기가 있었는가? 단지 부모님의 편안한 날개 폭 안에 머무르고자 했지 고난에 직면해 세상의 현실감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직장에 다니게 되며 분리의 과정을 겪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아버지의 사업 밑에서 나의 경력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여동생과 나를 부르시곤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동생이 앞으로 사무실에 나오고 너는 알아서 갈 길을 잘 정해라." 그 말씀을 듣고는 나는 버려진 기분이 들었고 너무나 두려웠다. 나는 필사적으로 내가 하겠다고 매달렸고 동생은 오히려 자신의 갈 길을 가겠다며 아버지의 권유를 거절했다. 결국 이처럼 성숙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린 시절의 부모님을 의지하는 양식을 고집하려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이 퇴행이 아닐까? 퇴행은 모든 종류의 유아기적 반응을 지속하려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나의 신체는 30대 초반이었지만 마음은 너무나 나약한 어린이였다.
이 퇴행의 원류를 찾아가다 보면 내가 아동기부터 지속되던 감정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불안과 분노이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 종교문제로 많이 다투셨다. 부모님이 같이 계시면 불안했고, 간혹 집안에 온기가 흐를 때면, 두 분의 정작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언제라도 시한폭탄이 터질 수 있는 불안한 평화로 느꼈다. 그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 사태의 책임을 내가 맡아야한다는 압박감을 가졌다. “나한테는 다정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는 왜 저렇게 싫은 표정을 하실까?, 이 차가운 무드를 내가 바꿔야만 해.” 두 분의 다툼을 어린 내가 중재하려고 했었다. 이 과거의 이러한 감정양식이 반복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평상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 모든 것이 겉으로 봤을 때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서 느껴지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불안이 있다. 늘 불안감에 주의가 쏠려 현실을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대응해서 타인과의 소통이나 업무, 학업에 집중하는 일, 즉 컨텍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분노는 부모님과 소통이 안 될 때 특히 더 올라온다. 아동기적인 욕구가 더 강해 부모님으로 부터 관심과 인정 등 정서적 지지를 어린아이처럼 바라고 그에 맞는 반응이 오지 않으면 화가 난다. 글 첫머리의 지하철 에피소드는 이것과 연결이 된다. 반응 없고, 잘 맞춰주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아동기적 분노를 내가 투사해서 본 것이다. 분노는 퇴행하고 싶은 욕구에 저항적인 반응으로서 적응적인 일상생활과 성격 조직을 위협한다. 그동안 어른답게 사는 것을 포기하고 수동적-수용적-의존적인 아동으로 살아왔고 그 모습으로 인간관계에서 많은 손해를 봤다. 손해를 보면 나의 모습에 실망해서 분노가 일어난다.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 내가 결혼하게 된다면 참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 그랬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해 아동기적인 욕구로 인하여 내가 독립된 책임감 있는 성인이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책임과 의무를 져야하는데 자기 확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서 해결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불안과 분노를 느꼈다. 이번 과제를 통해서 이러한 나의 모습을 객관화하고 나의 분노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야 상담, 강의, 과제를 통해 내가 조금은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고 지난날 퇴행으로 살아왔던 내 삶과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책임지고 노력하는 것이 유쾌한 활동의 근원이라고 생각될 때까지 나의 무의식적 패러다임이 더 많이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하인스 코헛 강의는 나에게 어린 시절을 유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인스 코헛은 관계가 자기의 정신구조가 된다고 했다. 아동은 자신이 경험하는 생애 첫 관계인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신적 표상’을 발달시킨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정신적 표상’이 자기 구조의 발달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은 타인을 통해 만족되어야 하는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때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중요한 타인을 ‘자기 대상(self object)’이라고 명명했다. 다시 말하자면, 아동기 때 자기대상인 양육자, 즉 보편적으로 어머니와의 관계가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되어 진다는 사실이다. 아동기 때, 부모님(특히, 어머니)으로 부터 마땅히 받아야할 자기대상관계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 '너는 나에게 참으로 소중하고 귀해’, 두 번째 '넌 안전해. 엄마는 널 보호해줄거야’, 세 번째 '우리는 뭐든 함께 할 수 있단다'라고 말해주는 경험이다.
각각의 관계 중에서 두 개 또는 모두 실패하게 되면 평생 자신을 사랑하고 찬사해주고 인정해주는 대상을 찾아다니고(중독적인 것들), 또는 안정감을 느끼고 기댈 수 있는 힘 있는 대상을 기대하고 찾아다니고, 너는 외롭지 않아 우린 하나야 하는 융합대상을 평생 갈망하고 쫓아다니게 된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그 부정적인 자기대상의 경험은 건강한 관계가 아닌 강렬한 중독 또는 잘못된 관계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이 3가지 자기대상관계 중에서 특히 무엇이 결핍되었을까? 나는 세 번째 '우리는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단다'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나에게 차가운 존재였다. 어머니는 내가 일찍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길 원하셨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무서웠고 버거웠다. 너무나 일찍 시작된 분리과정은 오히려 불안정 애착이 형성된 듯하다. 그 결과 항상 어머니로 부터 떨어지기 싫어했고 작은 좌절에도 크게 상처를 받는 정서적으로 나약한 아이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머니는 불안한 존재셨는데, 결혼 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셔서 어느 날 어머니는 공황장애가 발병했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계셨다. 밖에서 친구 분들을 만나거나 나를 데리고 친정과 집을 자주 오가고, 종교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시는데 더 정성을 쏟으셨다. 밖에서 돌아오면 항상 집에서 나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존재가 아닌 '오늘은 집에 계실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존재였다. 지금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어머니는 청소, 요리를 하시는 뒷모습만 보인다. 나 또한 사랑받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 청소, 요리와 같이 해야 할 일의 대상이었다. 결국 나에게는 옆에 계셔도 없는 것과 다름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나 또한 고스란히 어머니의 불안을 안게 되어 생각이 조직화 되지 못하고 파편화되어 불안과 혼돈이 가득했다.
이는 곧 나 스스로 욕구를 조절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이러한 대상관계 패턴은 정서가 최고조로 살아있어야 할 연인관계에서도 반복된다. 그것은 자기애적, 경계선적 경향으로 나타난다. 우선 자기애적 태도로는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고 단지 사랑을 받기만을 바랬다. 예전의 어머니와 비슷하게도 최근의 여자 친구는 심각한 공황장애를 오랫동안 앓아왔다. 하지만 여자 친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느끼는 공감하는 것이 부족해 일방적인 방식으로 대했다. 나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여자 친구를 공감하지 못하고 단지 사소한 것에 민감한 약한 아이로 치부해버렸다. 또한 경계선적 경향으로는 약속시간을 맞춰오지 않는 여자 친구에게 혼자 남겨진 분노가 심하게 올라와 그것을 투사해서 차갑게 대하기도 했다. 강렬한 애정과 분노가 교차하는 불안정한 대인관계를 반복한 것이다.
영화 '내 사랑'에서 가장 와 닿은 주인공이 있다면, 바로 에버렛(에단 호크)이다. 그는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차갑고 외로운 사람이다. 가정부로 온 모드에게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한다. 모드를 외적으로만 판단할 뿐 그녀의 요구나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분노하기 일쑤인데, 오히려 건강한 정신의 모드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스트레스를 견뎌내며 안정된 관계로 자신의 요구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간혹 나는 그러한 모드의 모습에 불안해하기도 했다. 분노와 냉담함으로 일관하는 에버렛의 모습이 마치 나의 대인관계, 특히 연인관계와 비슷한 패턴이어서 특히 공감이 되었다. 대상관계 이론에 따르면 독립심, 개성, 자존심, 성취에 대한 자부심, 자기 욕구 등을 충족시키면서 다른 사람의 욕구까지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때 건전한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이 발달한다.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해 다른 사람 역시 각자의 욕구를 가진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이것을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기인한 문제로 설명한다.
즉, 양육자가 아동의 요구나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여 일관된 반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 이렇게 이번과제는 분리개별화에서 대상관계이론까지 살펴보고 나의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비록 한 번에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나의 반복강박의 원인을 대상관계이론을 통해 알게 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좀 더 분리되고, 타인과의 온전하고 건강한 관계를 통해서 책임지고, 노력하고, 요구하는 것의 즐거움을 누리며, 이것을 유쾌한 활동의 근원이자 도전이라고 때까지 나의 무의식적 패러다임이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2. 의존(글라라)
나는 13명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종가 집 종손에게 기대했던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서 할아버지 눈 밖에 난 나는 울거나 보채거나 떼를 쓸 때도 할아버지 안 계신 곳에서만 가능했고, 17개월 차이나는 작은아빠의 아들이 태어나자 관심에서 밀렸으며 얼마 뒤 여동생이 태어나자 연달아 딸만 낳은 엄마의 분풀이와 넋두리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시댁생활이 힘든 엄마의 분노와 냉담함에 늘 눈치를 봐야했고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한 불안함에 자주 울었다. 때론 환상의 세계로 숨으며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야, 내 엄마는 따로 있어. 도대체 언제 나를 데리러 올까? 부처님 제 엄마가 빨리 절 데리러 오게 해 주세요.” 하고 빌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 고통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딸이어도 괜찮다는 것을 시댁에 증명해보이기 위해 엄마가 바라는 이미지에 맞춰야했다. 왼손잡이를 강제로 오른손잡이로 바꾸게 했고, 호기심 많은 나는 얌전하고 조신한 아이여야 했으며, 사촌 남동생에게는 친절하고 양보하는 배려 깊은 누이어야했었고, 고모들과 삼촌에게도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했다. 엄마의 이러한 과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 뿐 만아니라 “너는 양보하랬다고 그걸 홀랑 주면 어떻게 하니? 그럴 때는 그냥 먹어야지. 그건 왜 뺏겨, 악착같이 쥐고 있어야지.”처럼 혼란스러운 코치까지 받아야했다.
매번 알아차릴 수 없는 엄마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내가 너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어. 쟤는 말 잘 듣고 울기를 하니? 생전가야 뭐를 사달라고 하니? 넌 동생보다 못해.”같은 폭언을 지속적으로 들어야만 했다. 반면에 엄마의 기대를 채워주었을 때는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었으며 완벽한 본딩이 일어났다. 대가족에서 분가한 엄마는 부녀회일과 여러 개의 친목회를 통해 늘 저녁이나 주말마다 바빴다. 밖에서 본 엄마는 즐거워 보였고 남들을 잘 웃겼고 대장 노릇을 했다. 하지만 집에 오면 화를 자주 내셨다. 나는 학령기에 접어들면서 지적인 그리고 딸 바보였던 아버지를 이상화하면서 엄마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한자와 영어를 가르쳐주시고 신문칼럼을 읽고 다정히 설명해주면서도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 되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하지만 “난 수학을 못하고 난 연애잡지 기자될 건데.”라고 했을 때 “나 닮았으면 지능도 높고 똑똑할 텐데, 수학처럼 쉬운 게 어딨니? 나를 안 닮았나보다. 그것도 못하면 어떻게 해?” 하며 부족한 아이 취급을 하셨다.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고 본인의 뜻대로 안되면 폭언으로 나를 통제하는 엄마는 아빠와 내 사이를 시기하며 부부싸움의 원인을 늘 내 탓으로 돌렸다. 그런 엄마가 미웠고 짜증이 났지만 엄마와 거리를 두지 못했는데 엄마가 제공하는 많은 것들로 인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안일을 해보거나 내 속옷을 빨아본 적이 없었다. 집이 주는 정서적 분위기가 싫어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쓰고 덤빌 수 있으면서도 이렇게 편하게 살 곳은 없다는 걸 알았기에 중학생 이후부터는 아예 엄마를 마음속에서 식모 취급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엄마와 아빠 사이를 오가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살았기에 여러 상황에서 귀신같이 내가 어떻게 살아야 에너지를 덜 쓰고 남을 이용하면서 편히 살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잘 찾아낸다. 예전에 내가 부모교육 공부를 안 했을 때는 내가 복이 많은 좋고 괜찮은 사람이라 내 주변에는 늘 헌신하고 베푸는 삶의 조력자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 주변에 누가 내 무의식의 짝꿍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와의 좋은 애착을 갖지 못한 나는 결혼을 해서도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남편은 늘 내게 “외롭다. 따뜻하게 대해 달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늘 내 방어에만 급급해서 남편에게 거짓으로 안심을 주고 나를 믿어보라는 말로 속였다가 돈이나 남편의 물리적 힘이 필요할 때 부분적으로만 관계를 했다. 늘 다 줄 것처럼 행동하다가 내 몫을 채우면 그 다음날은 부부싸움을 해서 내 곁에서 쫓아버렸다. 나의 필요함과 다르게 사랑과 관심을 바라면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내 행동에 속은 배신감에 보여준 남편의 분노와 화를 이해하기보다 “애정을 못 받아서 그래. 무식해서 그래.” 이런 여러 이유를 붙여서 평가 절하하며 “그러니까 내가 널 싫어할 수밖에 없는 거야.”하며 엄마가 내게 했던 온갖 부정적인 거부적 표현을 하며 남편과의 관계를 단절 했었다. 영화 내 사랑에 나오는 모드가 함부로 대하며 모멸감까지 주는 에버렛의 말과 행동에 분노로 되갚거나 도망가지 않고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한 점이 부러웠다. 왜냐하면 나의 결혼은 늘 분노와 거부, 잠깐의 부분적 관계 그리고 철수하는 패턴의 반복이었으니까. 나와 달리 무조건 맞춰주면서 병리적 의존을 맺은 것도 아니고, 서서히 자신이 갖고 있는 매력과 지혜로 결국 에버렛을 바꾸며 결혼을 통해 진짜 독립을 이룬 모드는 외적으로는 못난이였으나 정말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두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점은 “사랑의 힘”이다. 이전에 내게 사랑이란 주로 받는 사람의 수동적 입장이었다면 신앙을 갖고 점차로 사랑하면 “주고받음, 나눔, 함께, 고통, 따뜻함, 감사, 아픔”의 이미지로 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표현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의식에서 성장하고 싶다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하지만 내 무의식은 실수나 실패에 대한 구체적인 진실에 직면하는 것을 너무나 부담스러워 한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게 두려운 아이가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의 피드백이 유독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잘했다.” 이외의 피드백을 들으면 존재를 위협받는 느낌이 일어난다. “역시 나는 안 되나봐. 그럼 그렇지. 나 같은 사람이 그렇지 뭐. 이러다 버림받는 거 아니야? 그럴 바에야 내가 먼저 버려야겠다. 나 안해. 그만둔다고 해야지.”라는 생각에 시달린다. 나를 위한 애정이 담긴 피드백에도 그 상징을 읽지 못하고(사실 지적당하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사건이나 사람사이의 연결을 위해 이용해야하는 상식적인 개념이나 기술이 그 순간 찾아지지 않는다. 귀에, 정신에 담아지지 않는다.), 부정어로 인식되면서 아주 불안이 커질 뿐이다. 그러고는 그럼 어떻게 그 사람에게 맞출지 마음만 급해져서 엉뚱하게 맞추고 또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한다.
늘 엄마에게 나쁜 애 착한 애로만 평가 받았기에 친절한 어른이 늘 의심스러웠다. 내 것을 소모시키고 하찮게 여길까봐 불안했으며,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인지 내게 상처 주는 사람인지의 구분이 모호했다. 그래서 근거 없이 나를 미워한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복수심이 생기곤 했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는 선생님의 피드백에서 오는 수치감이 점차 사라지면서 성찰의 기회를 주시고 그 기회 안에서 내가 얻고 배워야 할 것들 알려주시고자 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읽혀져서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주관적 환상에 사로잡혀 타자가 잘 인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순을 빨리 수정할 수가 없다. 선생님의 구체적 피드백이 온전히 들리지 않고 오히려 이해가 안 되는 모순으로 느껴지곤 한다. 특히 선생님께서 나 외에 다른 대상을 염두에 두고(다른 사람입장에서) 생각하고 표현하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 어떤 절차가 생략된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 인해 즉 상호작용의 결과의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항상 난 혼자만의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결정짓는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자족하며 살아온 것 같다. 물론 엄마와의 관계 다이나믹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말이다. 힘들겠지만 시간을 두고 스터디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진지한 고민과 노력을 해보고 싶다.
독립심과 의존심, 애정의 욕구(요한) 이번 주제는 독립심과 의존심, 애정의 욕구이다. 언제부터인지 마음 한구석에 따라다니던 생각들은 성숙, 조화로운 삶, (건강한) 독립, 자립과 같은 단어였다. 이미 꽤 들은 나이임에도 어떠한 삶이 성숙하고 성장한 삶일지에 대한 내적 궁금증과 결핍이 꿈틀 거리는 듯하다. 나의 생활에서 어떤 부분 마침표를 만들고, 자르고, 보내야하는 과정에 대한 미완과 머뭇거림에 대한 생각도 나를 힘들게 하는 점이다. 이런 몇몇 생각들과 책에서 설명한 부분을 참고하여 생각을 정리해보자 했다. 어려서의 (초등학교시절) 나의 별명은 영감, 곰, 의젓한 아이 등이었다. ‘아이 때는 아이다워야 한다’는 경구를 빌어오자면 당시의 나의 그런 모습이 어쩌면 퇴행적 욕구의 과도한 억제를 하였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욕구가 내면 깊이 숨어버리고, 상황에 따라 불안, 인정욕구 같은 상황으로 연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39p).
무언가 낯선 환경이나 일에서 내면의 두려움이나 회피가 있었다. 학교를 떠나거나 아니면 기존의 직장에서 새롭고 낯선 곳으로, 낯선 업무를,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언가 리더로써 나서거나 결과를 보여야 하거나 조율해야 하는 경우 두렵기도 했다.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환경에서 떠나는 것에 대한 퇴행적인, 책임회피적인 자세였던 것 같다 (46p). 내가 성장기와 사춘기에 겪게 되었던 깊은‘정서적 의존심’도 해결해야 할 상처인 것 같다. 어릴 적 아버지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바깥 (놀이)에 더 치중하였었다. 아버지의 성품은 온화한 편이고 가족들에 대한 정도 깊은 편이긴 하다. 헌데 갈등이 생기는 집안 문제에서는 자기 형제들의 입장을 어머니 의견보다 늘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는 남편이 충족시켜주지 못한 ‘정서적 욕구’를 자녀, 특히 장남인 나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집착 같은 면을 볼 수 있었고, 자신의 가치를 집안을 건사하는 것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 같았다(47p). 사춘기에 고부간의 문제가 일어났을 때 하소연할 수 없었고,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자녀교육을 통해 자신을 입증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어머님 입장을 대변하는 대리인 같기도 했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통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대학 진학 등 사회적으로 잘 꾸려나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이와 비슷한 이야기(어머니의 증명으로써의 역할을 하는 나)를 하였을 때 놀랐었던, 정서적으로 충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의 순수한 동기에 대한 의심이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왠지 갑작스럽게 내가 나에 대한 결정과 책임을 짊어지어야 했던 순간에는 당혹과 곤란함을 크게 느꼈던 기억이다. 현재 혼자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서 아버지에게는 일부 경제적 의존, 어머니에게는 아이들 육아 의존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고착되는 것 같으면서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상황이 건강하고 성숙한 삶을 사는데 해결해야할 과제로 느껴진다. 책에서 언급한‘수동적 성격’에 대한 특성도 생각해보고 싶다. 부모의 통제로부터 독립으로서의‘성장’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픈 부분이다. ‘반항’해야 하는 시기에 ‘반항’하지 못한 역할도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고등학교 시절 성당 미사에서의 말씀이었다.‘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자만이 천국에 갈수 있다.’이 이야기가 왠지 마음에 남고 따라야 할 덕목으로 와 닿았다. 물론 당시 여러 교리가 하나의 준칙으로 느껴지던 시절이었긴 하다. 애 어른 같은 내가 어린이의 마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였고 성장이 왠지 그쳐야 (그래야 만하는) 느낌도 있었다. 나의 퇴행적 욕구와 잘 맞아떨어진 것이었을까? 사랑받으며 자란 아동에서 이들이 애정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이러한 욕구를 전달하는 방법 등에 익숙해지게 되며, 이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단락이 있다(51p). 이와 관련된 자기 확신 결여와 홀로 독립적인 삶에 대한 불안의 대목도 주목할 만 했다. 나는 집안의 사랑과 기대를 많이 받은 환경에서 자랐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불안 등을 만들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과 한살 차이인데 어려서 동생을 한 번도 시기하거나 때리는 등 나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순하고 착한 아기였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천성적인 순한 기질 탓 이었는지, 상황을 빨리 인식해서 적응하는 그러면서 퇴행적 욕구가 기저로 숨어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받는데 잘 하지 못하며 어색해 하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강력히 요구하는 경우의 예가 있다. 나도 당연히 내가 누릴 수 있는 권한에 뭔가 불편해하고, 반면 오히려 타인의 부당이나 이익에 대한 과한 인정, 호응을 보내는 면이 있음을 본다. 책에서는 이런 경우 어릴 때 불행한 외적 현실의 좌절을 경험했다고 하며, 어른이 되어 신경증의 좌절감을 지닌다고 한다.
중학교시절 학교 앞 문구점 아저씨와 언쟁을 하다 폭행을 당했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타인에 대한 강한 요구나 주장이 어려워진 (물론 그 전에도 쉽지 않았지만) 원인의 하나일 거 같기도 하다. 자주 수동적 태도를 보이게 되는데, 나 또한 경쟁적이거나 개인적인 상황에서 어려움을 경험한다.(56p) 의존적인 아동기 욕구와 관련된 것일까. 최근 마음에 남는 말의 하나는 ‘규칙의 내면화’이다. 내가 이런 부분에 대한 것을 잘 이끌어가는 것인가? 이런 부분들 또한 성장 (독립, 의존)과 관련될 것으로 생각된다. 무언가 아직도 성장이나 성숙이라는 말에 끌림과 목마름이 있다. 삶을 사는 동안 내내 성장, 성숙해야겠지만 무언가 문턱을 넘고 싶은 마음이 든다.
3. 내사랑(바오로)
닉슨 전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재직하던 때인 1960 년대로 추정되는 미국의 한적한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정신은 건강하지만 관절염으로 자기 몸조차 가누기 힘든 주인공 모드와 고아원에서 자라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생선장사, 장작판매 등 닥치는 대로 생계를 유지하며 홀로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 에버렛 루이스의 이야기이다. 모드는 결혼은 고사하고 가정부 일조차도 꿈 꿀 수 없는 외적인 여건과 신체적인 조건을 지녔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 나가면서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에버렛에게 접근하여 자신만의 방법으로 결혼에 성공하고 사랑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평범한 일상처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여곡절의 결혼 후 모드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던 일인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집안을 그림으로 가꾸던 중 우연히 뉴욕에 사는 산드라의 눈에 띄게 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신문 방송 등에 출연을 하게 되고, 유명인사가 되어 닉슨 부통령으로 부터의 그림 구매를 주문 받는 상황까지 되었다. 유명세로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남편이 생선장수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고, 작가 서명란에 에버렛의 이름까지 써넣는 배려심과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준다.
모드는 자신을 집안의 수치로 모질게 대한 죽어가는 숙모로부터“끝내 행복을 찾은 것은 우리집안에 너뿐이었다”는 말에 “그런 것 같다.”는 답변을 하여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기도 한다. 에버렛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설거지나 집안청소 등을 자신이 모두 하고, 부인은 그저 그림만 그리고 있다고 툴툴 대면서도 모드의 사소한 일상의 부탁까지도 모두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속 깊은 남자로 변신한다. 아마 자신의 부족한 부분인 요리나 생선 거래장부의 작성, 집안 꾸미기 등을 자신의 아내인 모드가 사랑으로 채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다툼으로 일시적으로 떨어져 있던 때 모드를 찾아간 에버렛에게 모드가 뭐가 보이냐고 묻자 “내 아내가 보인다며” 처음부터 그랬다고 답한다. 그리고는 나를 떠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한다. 모드는 “내가 왜 떠나” 라고 답하면서 당신과 있으면 바랄 것이 없다는 말로 둘의 사랑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러면서 왜 내가 떠날 것 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모드에게 에버렛은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니까”라고 답한다. 폐렴으로 고생을 하다가 모드가 죽자 에버렛은 “내가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라는 독백이 모드의 상실이 커다란 짐이 되어 다가 왔음을 가슴 아프게 보여주고 있다. 홀로 집으로 돌아온 에버렛은 그림을 판다는 광고를 치워 집안으로 가져간다. 모드가 남겨놓은 흔적인 집안 곳곳에 그려놓은 꽃과 그림들이 또 다른 황량함이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의 첫 느낌은 이영화가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적인 이야기 같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화 주인공 모드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는 정말로 판이하게 달라서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모드가 매사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나도 생소하고 경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 저런 상황에서에서 저렇게도 반응하며 살아갈 수가 있구나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것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여주인공 모드가 자신의 여러 가지 외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시끄럽거나 큰 다툼 없이도 적절히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결국에는 “나는 사랑 받았소.” 라는 독백을 하고, 에버렛도 자신의 아내가 자신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사람이라는 고백과 함께 자신을 떠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함으로써 사랑의 쟁취자로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끝부분에 실존 인물들로 보이는 노부부의 생활상을 잠깐 보여 줌으로서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음을 알게 해주었다.
류마티즘 관절염은 지금도 치료시간이 길고 면역력 결핍과 다중적인 질환이 동반되어 여러 신체 심리적인 증상으로 인해(우울, 무력함) 삶의 질이 떨어져 고통이 따르는 어려운 질환중의 하나일 것이다. 영화 속의 1960 년대에는 더 어려운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 할 수조차 없을 만큼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돌봐주는 부모님까지 돌아가신 뒤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모드는 부모님과의 좋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가면서 좌절하거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매사에 긍정적인 반응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박탈이 심한 남편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적대적이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상대방이 보여주는 데로, 말하는 데로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드 역시 처음엔 남편의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 거친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고 모욕 받은 자신에 대해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요구도 했지만 부정적인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모욕과 분노를 받았을 때 똑같은 강도로 잔인하게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똑같이 상처를 받지만 모드처럼 부모님과의 좋았던 경험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동으로 작동한 사람은 자신이 겪은 어린 시절의 좋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환경과 상대방을 참아내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에버렛은 어렸을 때 부모에게 버려졌고 고아원에서 정서적으로 춥게 자란 사람이다. 좌절된 분노가 엄청나 아내가 자신을 존중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비칠 동거에 대해 유머로써 대처하는 모습에 오히려 에버렛은 사랑받지 못한 수치감이 자극되어 따귀를 때리는 미숙한 행동을 했다.
나는 에버렛처럼 내면 깊은 곳에 분노가 많다. 분노가 높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보게 되어 다른 사람의 무드나 입장에 대한 상황판단이 단조롭고, 불편한 한 가지 사실에만 집중해서 부정적 판단을 하고, 다양한 원인이나 과정을 파악하고 느끼지 못해 여러 관계 안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복잡한 것들을 놓치고, 신뢰로운 친밀한 관계를 못한다. 중요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대상을 잃은 다음에야 외로움을 처절하게 느낄 때 비로소 후회와 함께 잘할 걸이라는 아쉬움이 일어난다. 모드처럼 일관되게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대상이 있다면(상징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에버렛이 되겠지.
나는 상당부분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인식하고 처리) 특히 잘못되고 부정적 상황에서 다시 배우고, 익히고(실천하고 회복하는) 알게 되는(창의성) 능력이 지속적으로 손상된 것같다. 그 결과 문제의 원인이 늘 상대 때문인 것 같고, 불행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풍요로운 정서로 따뜻한 친밀한 관계를 못하고, 늘 적대적이거나 우울하고 공허한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모드였다면 모드가 처한 상황들에서 어떻게 반응 하며 살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나 자신을 스스로 철저히 고립시키고 비하하면서 아무하고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한 채 온통 세상을 지옥으로만 느끼며 살다가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항상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모든 일에 남 탓만을 해대며 부정적이고 미숙한 삶을 살아왔던 내 정신의 역동의 원인을 알 것 같다.
영화 : precious
1981년도 뉴욕의 할렘가에서 16살의 클라레스는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면서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딸에게 모든 것을 시키기만 하는 엄마와 살고 있다. 클라레스는 어릴 적부터 아빠에게 성폭행으로 이미 한 아이를 낳고 둘째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데, 둘째 아이의 임신 사실로 학교에서 퇴학까지 당했다. 다행히 대안학교로 전학을 가서 만난 선생님 레인의 도움으로 문맹상태에서 개화를 하듯 글을 깨우치게 되었다.
둘째 아이도 출산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안아든 엄마는 태어난 지 3일밖에 안된 아이를 내 팽개쳤다. 클라레스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집을 나오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음에도 아이만은 끝까지 다치지 않게 보호를 한 후 엄마의 집으로부터 나와 레인 선생님의 집과 사회복귀 훈련시설에서 재활을 시작한다. 사회복귀시설로 찾아 온 엄마와의 면담에서 아빠가 에이즈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클라레스는 에이즈 반응검사에서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게 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엄마는 다시 클라레스를 의존하기위해 상담사를 찾아가 함께 살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거절을 당한다. 클라레스는 자신이 3살 때부터 아빠의 성 대상이 되었고, 아빠의 성폭행 사실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엄마에게“지금까지는 그런 엄마를 몰랐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나를 볼 생각을 하지 말라”며 자신의 큰아이 멍고를 안고 자리를 뜬다. 상담사에게 매달리며 오열하면서 사정을 하는 엄마, 그러나 이를 냉정히 뿌리치며 가버리는 상담사 그리고 큰 아이 멍고의 손을 잡고 둘째 아이 압둘을 안고 웃으며 복지센터를 나서는 클라레스 드디어 엄마로 부터의 독립을 성취 했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 6남매 중 장남으로 1952년도 6월 6. 25 전쟁이 한창 중에 태어났다 시기적으로 전후 세대인 나의 어린 시절은 어려운 사회상과 맞물려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 전 해인 7살 무렵에 나의 어머니는 셋째 남동생과 다섯째 여동생만을 데리고 서울로 돈을 벌기 위해 가출을 하셨다. 졸지에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은 우리.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무엇인지, 가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던 아버지는 남은 어린 자식들은 이웃에 사는 고모에게 팽개쳐놓고 매일 밖으로 나가 우리가 잠들 때쯤 술에 만취하여 돌아왔다.
7살 어린 나이의 나에게 의지하여 매일 밤 눈물로 하소연해 대는 통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는 슬픔과 고통에 더하여 남은 동생인 둘째와 넷째까지 챙겨야 했다. 약 1년 이상을 소식 없이 지내던 엄마가 동생들을 데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렇게 그리웠던 엄마를 마주한 순간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쭈뼛거리다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 동생 둘 그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남았던 우리 삼남매를 당당하게 무시했다. 어머니는 마치 자신이 데리고 들어온 두 자식만이 친자식인 것처럼 편애하며 매사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어린 나를 쩔쩔매게 했던 무능하고 철없던 20대 후반의 어머니와 30대 초반의 젊은 날의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 이 영화를 보며 분노를 느꼈다.
이 같은 나의 어린 시절은 정말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나의 부모님들 역시 그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택한 최선의 선택이셨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나의 부모님들은 어떤 이유로(환경적 요인과 부모 개인의 성격적 문제로) 내가 겪었을 혼란이나 두려움을 이해해주고 받아주질 못했다. 당시의 어린나이의 나에게 일 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고모의 보살핌이나 주변사람들의 불쌍히 바라보는 눈초리 등 에서도 너무나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또 엄마가 돌아와서도 어른으로서 따뜻한 엄마 역할을 잘 못하고 오히려 편파적이었으며 당신의 힘든 삶에 대한 분풀이의 대상으로만 여겨서 더 많이 외롭고 화가 났던 것 같다.
프레셔스에 나오는 엄마는 보통 엄마가 아니다. 유아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심각한 엄마다. 남편이 자신의 아이에게 성적 학대를 하는데 자신의 딸을 자신의 경쟁자로 여겨 보호해주지 못하고 엄마입장에서 딸이 받았을 신체, 심리적 상처를 전혀 돌봐 줄 수 없는 그냥 어린아이다. 그래서 어린 딸에게 계속 부모처럼 의존해야 살 수 있기에 분리를 못시켰던 것이다. 강제로 요리를 해서 주는 행동도 딸을 아기로 보는(자신에게 강렬하게 의존하게 하려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이고 말이다. 물론 죄책감도 있겠지만. 사랑표현이 미성숙한 것이다. 성숙하지 못하면 엄마역할에 대해 힘에 겨워서 적대적으로 지속적인 거부를 하는 것 같다. 무심함, 적대적 말과 행동, 거리두기 등.
두 편의 영화와 교재를 보고 느낀 나의 소감은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어릴 적 부모. 특히 엄마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개인의 운명은 부모 특히 엄마가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어떤 인간일까?. MBTI 검사 결과 나의 기본 성향은 INFP라고 한다. 이 기본 성향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개발한 것이 ISTJ 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쩐지 나의 삶은 그동안 뭔가 나에게 맞지 않은 옷과 같았고, 마치 첫 단추가 잘못 꿰진 것 같은 느낌의 삶을 살아왔는데 그래서 그렇게 억지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는가 싶다. 나는 나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행동 양식을 설명 할 재간이 없다. 왜 그런지 도저히 내 스스로는 말로 표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신 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의미 있는 인간관계 즉 성공한 인간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것은 부모, 형제, 처자식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나는 처음에 어느 잡단이나 개인을 접하면 먼저 그 상황에서 나를 받아들이는 가 거부하는가 하는 것을 귀신 같이 잘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그곳에서 나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크지 않을 경우 화려하게 대중을 압도하여 일시적으로 조명을 받을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나 스스로 피곤해저서 대중들과 또는 개인 간의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전혀 맺지 못하는 무능함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남녀공학의 전 학년이 모인 소풍이나 운동회 등에서는 사회를 잘 봐서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친한 친구하나 만들지 못하고 그 흔한 여자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하였다. 한마디로 혼자 잘난 독불 장군이었다.
또한 집단 내 특정 개인이나(특히 기존 여론 주도층의 개인이나 상사) 분위기가 나에게 약간 거부 반응으로 대한다면 즉시 철수하여 담을 쌓고, 스스로 무모한 도발을 하는 성향에 결국에는 그곳의 모두를 적으로 돌려놓고야 마는 이상한 저주의 역동이 나에게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든 인간관계가 파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데 스스로는 이를 바로 잡을 수 가 없다.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바로 잡기위해 노력을 하면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되고, 비굴해져 항상 매달리면서 손해만 보는 인간관계를 맺다가 결국에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한마디로 고비용 저효율의 인간관계다 아니 경제적으로 마이너스 형 인간관계의 연속이다. 하여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또한 나는 모든 것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의식에 걸리는 특정한 상황에 대해서는 특별한 해결책도 없으면서 매사를 너무나도 깊고 심오하게 파고드는 성격이어서 같은 상황에서도 훨씬 더 깊게 오랫동안 아니 평생을 되씹고 곱씹는 형으로 이것 또한 나를 기진맥진하게 하는 역동이다.
거기에다 쓸데없이 동정심, 배려심(또는 잘못된 판단)은 많아서 나 자신에게 큰 피해가 예상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모두가 찬성하는 의견이나 상황 또는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상사의 의견에 대하여 특정의 집단을 위해서 또는 한 개인을 위해서 무리하게 자기를 주장하여 손해를 본적도 많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토록 비장하게 옹호했던 집단이나 특정인으로 부터는 언제 그런 것을 부탁 했었나? 하는 멀뚱한 반응을 받게 됨으로써 억울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나의 도움으로 특정잡단이나 개인이 이득을 본 후에도 그 특정집단이나 개인들에게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다수로 부터는 공통의 적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런 나를 타인들은 평가 할 때 의리, 정의, 시원시원한, 남자다운, 배려심이 깊은, 지나친 착실함, 모범적인, 정이 많은 등의 수식어를 붙여서 설명들을 하지만 여전히 아무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아니 나 스스로 만들어낸 한빙지옥 속에서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또한 지금은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불같은 성질에 한번 말을 쏟아 내면 속사포처럼 공격적인 말을 구사하였으며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면이 너무나도 커서 매사에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이다. 불같이 욱하는 성격에 화를 많이 내서 많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선천적으로 여리고 악하거나 잔인하지를 못해 금방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후회를 하게 되어, 폭력이 오가는 진짜 싸움으로 까지는 번지지 않으나 한번 틀어진 관계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야만 이런 저주의 운명에서 벗어 날수 있을까?.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것은 인간관계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이나 살면서 덕쳐오는 역경쯤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겠으나 살아가면서 보람을 느끼거나 자긍심이 없을 때 너무나 괴롭다. 이런 인간관계의 개선을 위해 스스로 찾은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이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저주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저주니까.
과제를 마치고 선생님에게 수퍼비전을 받으면서 조금 자각이 된 측면이 있다. 교재의 애정의 욕구에서 보면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렬한 만큼 동시에 사랑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느낌만으로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나의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판단 그리고 결말은 과거의 애착대상과의 경험을 재현하는 것이다. 어릴 적 엄마의 갑작스런 부재로(거부, 버림) 느꼈을 혼란과 불안 그리고 분노를 억압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속에서 풍요로운 감정을 쓸 수 없게 되었고 과다하게 누르다가 폭발이 되어 나오면(엉뚱한 대상이지만 엄마에 대한 감정이 투사된 이상화 된 대상에게 기대했다 실망하는) 그리고 돌아와서 더 실망되었던 것이(더 좋지 않았던) 나에게 평생 반복되는 파국의 오리진 감정이다. 나는 사랑관계를 지속적으로 못하기에 외롭고 화가 나는데 이제 보니 어렸을 적 너무나 감당할 수 없었던 상황이 언어화 되지 못해 버림받은 불쾌한 감정 속에 살아가는 것 같다. 이제야 분석을 통해 상처받은 나의 진실한 모습에 공감이나 지지를 받고 있다. 시간과 더불어 천천히 무의식이 변해야 현재 관계패턴이 달라지겠지. 화를 폭발하면 엄청난 수치심과 무기력을 감당해내야 하고 그런 증오의 에너지를 처리하느라 현실적인 자아능력을 기를 수 없게 되어 인간관계 기술이나 방법이 습득되지 않음도 알게 되었다.
1. '내사랑', '프레셔스'(아우구스티노)
지하철을 타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틈새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 중에서 가끔씩 보기만으로도 혐오스럽고, 적대감이 올라오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한 5~6살 된 아이와 어머니가 나란히 지하철 좌석에 앉아있다. 어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스마트 폰에만 집중하고 있고, 아이는 안절부절 하며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온몸을 움직여가며 어머니의 관심을 끌려고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아이는 벌을 받고 있는 중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나의 주관적 느낌은 슬픔과 외로움이었다. 아이가 얼마나 어머니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까? 눈길을 맞춰주며 따뜻한 미소와 포옹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이번 과제는 영화 '내 사랑'(2017), '프레셔스'(2009), 도서 '아동기 감정양식과 성숙' 2장 독립심과 의존심, 3장 애정의 욕구이다. 이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무엇일까? 나는 분리개별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 사랑'의 모드는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만나기 위해 에버렛의 가정부가 되기를 결심하고, 영화 '프레셔스'의 클라레스는 학대하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된다. 또한 도서 '아동기의 감정양식과 성숙'의 2, 3장은 독립과 의존, 애정의 욕구를 다루고 있다. 분리는 사춘기에 달성된다고 한다. 성장의 힘을 통해 성숙을 달성하고 삶의 문제와 고난에도 혼자 직면하며 세상에 대한 현실감을 갖고 가족으로 부터 분리된다.(34p)
그렇다면 나에게는 사춘기가 있었는가? 단지 부모님의 편안한 날개 폭 안에 머무르고자 했지 고난에 직면해 세상의 현실감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직장에 다니게 되며 분리의 과정을 겪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아버지의 사업 밑에서 나의 경력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여동생과 나를 부르시곤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동생이 앞으로 사무실에 나오고 너는 알아서 갈 길을 잘 정해라." 그 말씀을 듣고는 나는 버려진 기분이 들었고 너무나 두려웠다. 나는 필사적으로 내가 하겠다고 매달렸고 동생은 오히려 자신의 갈 길을 가겠다며 아버지의 권유를 거절했다. 결국 이처럼 성숙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린 시절의 부모님을 의지하는 양식을 고집하려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이 퇴행이 아닐까? 퇴행은 모든 종류의 유아기적 반응을 지속하려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나의 신체는 30대 초반이었지만 마음은 너무나 나약한 어린이였다.
이 퇴행의 원류를 찾아가다 보면 내가 아동기부터 지속되던 감정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불안과 분노이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 종교문제로 많이 다투셨다. 부모님이 같이 계시면 불안했고, 간혹 집안에 온기가 흐를 때면, 두 분의 정작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언제라도 시한폭탄이 터질 수 있는 불안한 평화로 느꼈다. 그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 사태의 책임을 내가 맡아야한다는 압박감을 가졌다. “나한테는 다정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는 왜 저렇게 싫은 표정을 하실까?, 이 차가운 무드를 내가 바꿔야만 해.” 두 분의 다툼을 어린 내가 중재하려고 했었다. 이 과거의 이러한 감정양식이 반복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평상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 모든 것이 겉으로 봤을 때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서 느껴지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불안이 있다. 늘 불안감에 주의가 쏠려 현실을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대응해서 타인과의 소통이나 업무, 학업에 집중하는 일, 즉 컨텍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분노는 부모님과 소통이 안 될 때 특히 더 올라온다. 아동기적인 욕구가 더 강해 부모님으로 부터 관심과 인정 등 정서적 지지를 어린아이처럼 바라고 그에 맞는 반응이 오지 않으면 화가 난다. 글 첫머리의 지하철 에피소드는 이것과 연결이 된다. 반응 없고, 잘 맞춰주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아동기적 분노를 내가 투사해서 본 것이다. 분노는 퇴행하고 싶은 욕구에 저항적인 반응으로서 적응적인 일상생활과 성격 조직을 위협한다. 그동안 어른답게 사는 것을 포기하고 수동적-수용적-의존적인 아동으로 살아왔고 그 모습으로 인간관계에서 많은 손해를 봤다. 손해를 보면 나의 모습에 실망해서 분노가 일어난다.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 내가 결혼하게 된다면 참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 그랬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해 아동기적인 욕구로 인하여 내가 독립된 책임감 있는 성인이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책임과 의무를 져야하는데 자기 확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서 해결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불안과 분노를 느꼈다. 이번 과제를 통해서 이러한 나의 모습을 객관화하고 나의 분노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야 상담, 강의, 과제를 통해 내가 조금은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고 지난날 퇴행으로 살아왔던 내 삶과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책임지고 노력하는 것이 유쾌한 활동의 근원이라고 생각될 때까지 나의 무의식적 패러다임이 더 많이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하인스 코헛 강의는 나에게 어린 시절을 유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인스 코헛은 관계가 자기의 정신구조가 된다고 했다. 아동은 자신이 경험하는 생애 첫 관계인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신적 표상’을 발달시킨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정신적 표상’이 자기 구조의 발달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은 타인을 통해 만족되어야 하는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때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중요한 타인을 ‘자기 대상(self object)’이라고 명명했다. 다시 말하자면, 아동기 때 자기대상인 양육자, 즉 보편적으로 어머니와의 관계가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되어 진다는 사실이다. 아동기 때, 부모님(특히, 어머니)으로 부터 마땅히 받아야할 자기대상관계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 '너는 나에게 참으로 소중하고 귀해’, 두 번째 '넌 안전해. 엄마는 널 보호해줄거야’, 세 번째 '우리는 뭐든 함께 할 수 있단다'라고 말해주는 경험이다.
각각의 관계 중에서 두 개 또는 모두 실패하게 되면 평생 자신을 사랑하고 찬사해주고 인정해주는 대상을 찾아다니고(중독적인 것들), 또는 안정감을 느끼고 기댈 수 있는 힘 있는 대상을 기대하고 찾아다니고, 너는 외롭지 않아 우린 하나야 하는 융합대상을 평생 갈망하고 쫓아다니게 된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그 부정적인 자기대상의 경험은 건강한 관계가 아닌 강렬한 중독 또는 잘못된 관계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이 3가지 자기대상관계 중에서 특히 무엇이 결핍되었을까? 나는 세 번째 '우리는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단다'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나에게 차가운 존재였다. 어머니는 내가 일찍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길 원하셨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무서웠고 버거웠다. 너무나 일찍 시작된 분리과정은 오히려 불안정 애착이 형성된 듯하다. 그 결과 항상 어머니로 부터 떨어지기 싫어했고 작은 좌절에도 크게 상처를 받는 정서적으로 나약한 아이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머니는 불안한 존재셨는데, 결혼 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셔서 어느 날 어머니는 공황장애가 발병했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계셨다. 밖에서 친구 분들을 만나거나 나를 데리고 친정과 집을 자주 오가고, 종교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시는데 더 정성을 쏟으셨다. 밖에서 돌아오면 항상 집에서 나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존재가 아닌 '오늘은 집에 계실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존재였다. 지금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어머니는 청소, 요리를 하시는 뒷모습만 보인다. 나 또한 사랑받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 청소, 요리와 같이 해야 할 일의 대상이었다. 결국 나에게는 옆에 계셔도 없는 것과 다름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나 또한 고스란히 어머니의 불안을 안게 되어 생각이 조직화 되지 못하고 파편화되어 불안과 혼돈이 가득했다.
이는 곧 나 스스로 욕구를 조절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이러한 대상관계 패턴은 정서가 최고조로 살아있어야 할 연인관계에서도 반복된다. 그것은 자기애적, 경계선적 경향으로 나타난다. 우선 자기애적 태도로는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고 단지 사랑을 받기만을 바랬다. 예전의 어머니와 비슷하게도 최근의 여자 친구는 심각한 공황장애를 오랫동안 앓아왔다. 하지만 여자 친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느끼는 공감하는 것이 부족해 일방적인 방식으로 대했다. 나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여자 친구를 공감하지 못하고 단지 사소한 것에 민감한 약한 아이로 치부해버렸다. 또한 경계선적 경향으로는 약속시간을 맞춰오지 않는 여자 친구에게 혼자 남겨진 분노가 심하게 올라와 그것을 투사해서 차갑게 대하기도 했다. 강렬한 애정과 분노가 교차하는 불안정한 대인관계를 반복한 것이다.
영화 '내 사랑'에서 가장 와 닿은 주인공이 있다면, 바로 에버렛(에단 호크)이다. 그는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차갑고 외로운 사람이다. 가정부로 온 모드에게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한다. 모드를 외적으로만 판단할 뿐 그녀의 요구나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분노하기 일쑤인데, 오히려 건강한 정신의 모드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스트레스를 견뎌내며 안정된 관계로 자신의 요구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간혹 나는 그러한 모드의 모습에 불안해하기도 했다. 분노와 냉담함으로 일관하는 에버렛의 모습이 마치 나의 대인관계, 특히 연인관계와 비슷한 패턴이어서 특히 공감이 되었다. 대상관계 이론에 따르면 독립심, 개성, 자존심, 성취에 대한 자부심, 자기 욕구 등을 충족시키면서 다른 사람의 욕구까지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때 건전한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이 발달한다.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해 다른 사람 역시 각자의 욕구를 가진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이것을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기인한 문제로 설명한다.
즉, 양육자가 아동의 요구나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여 일관된 반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 이렇게 이번과제는 분리개별화에서 대상관계이론까지 살펴보고 나의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비록 한 번에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나의 반복강박의 원인을 대상관계이론을 통해 알게 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좀 더 분리되고, 타인과의 온전하고 건강한 관계를 통해서 책임지고, 노력하고, 요구하는 것의 즐거움을 누리며, 이것을 유쾌한 활동의 근원이자 도전이라고 때까지 나의 무의식적 패러다임이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2. 의존(글라라)
나는 13명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종가 집 종손에게 기대했던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서 할아버지 눈 밖에 난 나는 울거나 보채거나 떼를 쓸 때도 할아버지 안 계신 곳에서만 가능했고, 17개월 차이나는 작은아빠의 아들이 태어나자 관심에서 밀렸으며 얼마 뒤 여동생이 태어나자 연달아 딸만 낳은 엄마의 분풀이와 넋두리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시댁생활이 힘든 엄마의 분노와 냉담함에 늘 눈치를 봐야했고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한 불안함에 자주 울었다. 때론 환상의 세계로 숨으며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야, 내 엄마는 따로 있어. 도대체 언제 나를 데리러 올까? 부처님 제 엄마가 빨리 절 데리러 오게 해 주세요.” 하고 빌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 고통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딸이어도 괜찮다는 것을 시댁에 증명해보이기 위해 엄마가 바라는 이미지에 맞춰야했다. 왼손잡이를 강제로 오른손잡이로 바꾸게 했고, 호기심 많은 나는 얌전하고 조신한 아이여야 했으며, 사촌 남동생에게는 친절하고 양보하는 배려 깊은 누이어야했었고, 고모들과 삼촌에게도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했다. 엄마의 이러한 과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 뿐 만아니라 “너는 양보하랬다고 그걸 홀랑 주면 어떻게 하니? 그럴 때는 그냥 먹어야지. 그건 왜 뺏겨, 악착같이 쥐고 있어야지.”처럼 혼란스러운 코치까지 받아야했다.
매번 알아차릴 수 없는 엄마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내가 너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어. 쟤는 말 잘 듣고 울기를 하니? 생전가야 뭐를 사달라고 하니? 넌 동생보다 못해.”같은 폭언을 지속적으로 들어야만 했다. 반면에 엄마의 기대를 채워주었을 때는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었으며 완벽한 본딩이 일어났다. 대가족에서 분가한 엄마는 부녀회일과 여러 개의 친목회를 통해 늘 저녁이나 주말마다 바빴다. 밖에서 본 엄마는 즐거워 보였고 남들을 잘 웃겼고 대장 노릇을 했다. 하지만 집에 오면 화를 자주 내셨다. 나는 학령기에 접어들면서 지적인 그리고 딸 바보였던 아버지를 이상화하면서 엄마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한자와 영어를 가르쳐주시고 신문칼럼을 읽고 다정히 설명해주면서도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 되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하지만 “난 수학을 못하고 난 연애잡지 기자될 건데.”라고 했을 때 “나 닮았으면 지능도 높고 똑똑할 텐데, 수학처럼 쉬운 게 어딨니? 나를 안 닮았나보다. 그것도 못하면 어떻게 해?” 하며 부족한 아이 취급을 하셨다.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고 본인의 뜻대로 안되면 폭언으로 나를 통제하는 엄마는 아빠와 내 사이를 시기하며 부부싸움의 원인을 늘 내 탓으로 돌렸다. 그런 엄마가 미웠고 짜증이 났지만 엄마와 거리를 두지 못했는데 엄마가 제공하는 많은 것들로 인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안일을 해보거나 내 속옷을 빨아본 적이 없었다. 집이 주는 정서적 분위기가 싫어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쓰고 덤빌 수 있으면서도 이렇게 편하게 살 곳은 없다는 걸 알았기에 중학생 이후부터는 아예 엄마를 마음속에서 식모 취급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엄마와 아빠 사이를 오가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살았기에 여러 상황에서 귀신같이 내가 어떻게 살아야 에너지를 덜 쓰고 남을 이용하면서 편히 살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잘 찾아낸다. 예전에 내가 부모교육 공부를 안 했을 때는 내가 복이 많은 좋고 괜찮은 사람이라 내 주변에는 늘 헌신하고 베푸는 삶의 조력자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 주변에 누가 내 무의식의 짝꿍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와의 좋은 애착을 갖지 못한 나는 결혼을 해서도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남편은 늘 내게 “외롭다. 따뜻하게 대해 달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늘 내 방어에만 급급해서 남편에게 거짓으로 안심을 주고 나를 믿어보라는 말로 속였다가 돈이나 남편의 물리적 힘이 필요할 때 부분적으로만 관계를 했다. 늘 다 줄 것처럼 행동하다가 내 몫을 채우면 그 다음날은 부부싸움을 해서 내 곁에서 쫓아버렸다. 나의 필요함과 다르게 사랑과 관심을 바라면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내 행동에 속은 배신감에 보여준 남편의 분노와 화를 이해하기보다 “애정을 못 받아서 그래. 무식해서 그래.” 이런 여러 이유를 붙여서 평가 절하하며 “그러니까 내가 널 싫어할 수밖에 없는 거야.”하며 엄마가 내게 했던 온갖 부정적인 거부적 표현을 하며 남편과의 관계를 단절 했었다. 영화 내 사랑에 나오는 모드가 함부로 대하며 모멸감까지 주는 에버렛의 말과 행동에 분노로 되갚거나 도망가지 않고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한 점이 부러웠다. 왜냐하면 나의 결혼은 늘 분노와 거부, 잠깐의 부분적 관계 그리고 철수하는 패턴의 반복이었으니까. 나와 달리 무조건 맞춰주면서 병리적 의존을 맺은 것도 아니고, 서서히 자신이 갖고 있는 매력과 지혜로 결국 에버렛을 바꾸며 결혼을 통해 진짜 독립을 이룬 모드는 외적으로는 못난이였으나 정말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두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점은 “사랑의 힘”이다. 이전에 내게 사랑이란 주로 받는 사람의 수동적 입장이었다면 신앙을 갖고 점차로 사랑하면 “주고받음, 나눔, 함께, 고통, 따뜻함, 감사, 아픔”의 이미지로 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표현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의식에서 성장하고 싶다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하지만 내 무의식은 실수나 실패에 대한 구체적인 진실에 직면하는 것을 너무나 부담스러워 한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게 두려운 아이가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의 피드백이 유독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잘했다.” 이외의 피드백을 들으면 존재를 위협받는 느낌이 일어난다. “역시 나는 안 되나봐. 그럼 그렇지. 나 같은 사람이 그렇지 뭐. 이러다 버림받는 거 아니야? 그럴 바에야 내가 먼저 버려야겠다. 나 안해. 그만둔다고 해야지.”라는 생각에 시달린다. 나를 위한 애정이 담긴 피드백에도 그 상징을 읽지 못하고(사실 지적당하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사건이나 사람사이의 연결을 위해 이용해야하는 상식적인 개념이나 기술이 그 순간 찾아지지 않는다. 귀에, 정신에 담아지지 않는다.), 부정어로 인식되면서 아주 불안이 커질 뿐이다. 그러고는 그럼 어떻게 그 사람에게 맞출지 마음만 급해져서 엉뚱하게 맞추고 또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한다.
늘 엄마에게 나쁜 애 착한 애로만 평가 받았기에 친절한 어른이 늘 의심스러웠다. 내 것을 소모시키고 하찮게 여길까봐 불안했으며,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인지 내게 상처 주는 사람인지의 구분이 모호했다. 그래서 근거 없이 나를 미워한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복수심이 생기곤 했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는 선생님의 피드백에서 오는 수치감이 점차 사라지면서 성찰의 기회를 주시고 그 기회 안에서 내가 얻고 배워야 할 것들 알려주시고자 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읽혀져서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주관적 환상에 사로잡혀 타자가 잘 인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순을 빨리 수정할 수가 없다. 선생님의 구체적 피드백이 온전히 들리지 않고 오히려 이해가 안 되는 모순으로 느껴지곤 한다. 특히 선생님께서 나 외에 다른 대상을 염두에 두고(다른 사람입장에서) 생각하고 표현하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 어떤 절차가 생략된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 인해 즉 상호작용의 결과의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항상 난 혼자만의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결정짓는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자족하며 살아온 것 같다. 물론 엄마와의 관계 다이나믹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말이다. 힘들겠지만 시간을 두고 스터디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진지한 고민과 노력을 해보고 싶다.
독립심과 의존심, 애정의 욕구(요한) 이번 주제는 독립심과 의존심, 애정의 욕구이다. 언제부터인지 마음 한구석에 따라다니던 생각들은 성숙, 조화로운 삶, (건강한) 독립, 자립과 같은 단어였다. 이미 꽤 들은 나이임에도 어떠한 삶이 성숙하고 성장한 삶일지에 대한 내적 궁금증과 결핍이 꿈틀 거리는 듯하다. 나의 생활에서 어떤 부분 마침표를 만들고, 자르고, 보내야하는 과정에 대한 미완과 머뭇거림에 대한 생각도 나를 힘들게 하는 점이다. 이런 몇몇 생각들과 책에서 설명한 부분을 참고하여 생각을 정리해보자 했다. 어려서의 (초등학교시절) 나의 별명은 영감, 곰, 의젓한 아이 등이었다. ‘아이 때는 아이다워야 한다’는 경구를 빌어오자면 당시의 나의 그런 모습이 어쩌면 퇴행적 욕구의 과도한 억제를 하였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욕구가 내면 깊이 숨어버리고, 상황에 따라 불안, 인정욕구 같은 상황으로 연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39p).
무언가 낯선 환경이나 일에서 내면의 두려움이나 회피가 있었다. 학교를 떠나거나 아니면 기존의 직장에서 새롭고 낯선 곳으로, 낯선 업무를,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언가 리더로써 나서거나 결과를 보여야 하거나 조율해야 하는 경우 두렵기도 했다.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환경에서 떠나는 것에 대한 퇴행적인, 책임회피적인 자세였던 것 같다 (46p). 내가 성장기와 사춘기에 겪게 되었던 깊은‘정서적 의존심’도 해결해야 할 상처인 것 같다. 어릴 적 아버지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바깥 (놀이)에 더 치중하였었다. 아버지의 성품은 온화한 편이고 가족들에 대한 정도 깊은 편이긴 하다. 헌데 갈등이 생기는 집안 문제에서는 자기 형제들의 입장을 어머니 의견보다 늘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는 남편이 충족시켜주지 못한 ‘정서적 욕구’를 자녀, 특히 장남인 나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집착 같은 면을 볼 수 있었고, 자신의 가치를 집안을 건사하는 것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 같았다(47p). 사춘기에 고부간의 문제가 일어났을 때 하소연할 수 없었고,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자녀교육을 통해 자신을 입증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어머님 입장을 대변하는 대리인 같기도 했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통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대학 진학 등 사회적으로 잘 꾸려나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이와 비슷한 이야기(어머니의 증명으로써의 역할을 하는 나)를 하였을 때 놀랐었던, 정서적으로 충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의 순수한 동기에 대한 의심이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왠지 갑작스럽게 내가 나에 대한 결정과 책임을 짊어지어야 했던 순간에는 당혹과 곤란함을 크게 느꼈던 기억이다. 현재 혼자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서 아버지에게는 일부 경제적 의존, 어머니에게는 아이들 육아 의존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고착되는 것 같으면서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상황이 건강하고 성숙한 삶을 사는데 해결해야할 과제로 느껴진다. 책에서 언급한‘수동적 성격’에 대한 특성도 생각해보고 싶다. 부모의 통제로부터 독립으로서의‘성장’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픈 부분이다. ‘반항’해야 하는 시기에 ‘반항’하지 못한 역할도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고등학교 시절 성당 미사에서의 말씀이었다.‘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자만이 천국에 갈수 있다.’이 이야기가 왠지 마음에 남고 따라야 할 덕목으로 와 닿았다. 물론 당시 여러 교리가 하나의 준칙으로 느껴지던 시절이었긴 하다. 애 어른 같은 내가 어린이의 마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였고 성장이 왠지 그쳐야 (그래야 만하는) 느낌도 있었다. 나의 퇴행적 욕구와 잘 맞아떨어진 것이었을까? 사랑받으며 자란 아동에서 이들이 애정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이러한 욕구를 전달하는 방법 등에 익숙해지게 되며, 이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단락이 있다(51p). 이와 관련된 자기 확신 결여와 홀로 독립적인 삶에 대한 불안의 대목도 주목할 만 했다. 나는 집안의 사랑과 기대를 많이 받은 환경에서 자랐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불안 등을 만들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과 한살 차이인데 어려서 동생을 한 번도 시기하거나 때리는 등 나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순하고 착한 아기였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천성적인 순한 기질 탓 이었는지, 상황을 빨리 인식해서 적응하는 그러면서 퇴행적 욕구가 기저로 숨어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받는데 잘 하지 못하며 어색해 하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강력히 요구하는 경우의 예가 있다. 나도 당연히 내가 누릴 수 있는 권한에 뭔가 불편해하고, 반면 오히려 타인의 부당이나 이익에 대한 과한 인정, 호응을 보내는 면이 있음을 본다. 책에서는 이런 경우 어릴 때 불행한 외적 현실의 좌절을 경험했다고 하며, 어른이 되어 신경증의 좌절감을 지닌다고 한다.
중학교시절 학교 앞 문구점 아저씨와 언쟁을 하다 폭행을 당했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타인에 대한 강한 요구나 주장이 어려워진 (물론 그 전에도 쉽지 않았지만) 원인의 하나일 거 같기도 하다. 자주 수동적 태도를 보이게 되는데, 나 또한 경쟁적이거나 개인적인 상황에서 어려움을 경험한다.(56p) 의존적인 아동기 욕구와 관련된 것일까. 최근 마음에 남는 말의 하나는 ‘규칙의 내면화’이다. 내가 이런 부분에 대한 것을 잘 이끌어가는 것인가? 이런 부분들 또한 성장 (독립, 의존)과 관련될 것으로 생각된다. 무언가 아직도 성장이나 성숙이라는 말에 끌림과 목마름이 있다. 삶을 사는 동안 내내 성장, 성숙해야겠지만 무언가 문턱을 넘고 싶은 마음이 든다.
3. 내사랑(바오로)
닉슨 전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재직하던 때인 1960 년대로 추정되는 미국의 한적한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정신은 건강하지만 관절염으로 자기 몸조차 가누기 힘든 주인공 모드와 고아원에서 자라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생선장사, 장작판매 등 닥치는 대로 생계를 유지하며 홀로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 에버렛 루이스의 이야기이다. 모드는 결혼은 고사하고 가정부 일조차도 꿈 꿀 수 없는 외적인 여건과 신체적인 조건을 지녔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 나가면서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에버렛에게 접근하여 자신만의 방법으로 결혼에 성공하고 사랑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평범한 일상처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여곡절의 결혼 후 모드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던 일인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집안을 그림으로 가꾸던 중 우연히 뉴욕에 사는 산드라의 눈에 띄게 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신문 방송 등에 출연을 하게 되고, 유명인사가 되어 닉슨 부통령으로 부터의 그림 구매를 주문 받는 상황까지 되었다. 유명세로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남편이 생선장수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고, 작가 서명란에 에버렛의 이름까지 써넣는 배려심과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준다.
모드는 자신을 집안의 수치로 모질게 대한 죽어가는 숙모로부터“끝내 행복을 찾은 것은 우리집안에 너뿐이었다”는 말에 “그런 것 같다.”는 답변을 하여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기도 한다. 에버렛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설거지나 집안청소 등을 자신이 모두 하고, 부인은 그저 그림만 그리고 있다고 툴툴 대면서도 모드의 사소한 일상의 부탁까지도 모두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속 깊은 남자로 변신한다. 아마 자신의 부족한 부분인 요리나 생선 거래장부의 작성, 집안 꾸미기 등을 자신의 아내인 모드가 사랑으로 채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다툼으로 일시적으로 떨어져 있던 때 모드를 찾아간 에버렛에게 모드가 뭐가 보이냐고 묻자 “내 아내가 보인다며” 처음부터 그랬다고 답한다. 그리고는 나를 떠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한다. 모드는 “내가 왜 떠나” 라고 답하면서 당신과 있으면 바랄 것이 없다는 말로 둘의 사랑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러면서 왜 내가 떠날 것 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모드에게 에버렛은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니까”라고 답한다. 폐렴으로 고생을 하다가 모드가 죽자 에버렛은 “내가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라는 독백이 모드의 상실이 커다란 짐이 되어 다가 왔음을 가슴 아프게 보여주고 있다. 홀로 집으로 돌아온 에버렛은 그림을 판다는 광고를 치워 집안으로 가져간다. 모드가 남겨놓은 흔적인 집안 곳곳에 그려놓은 꽃과 그림들이 또 다른 황량함이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의 첫 느낌은 이영화가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적인 이야기 같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화 주인공 모드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는 정말로 판이하게 달라서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모드가 매사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나도 생소하고 경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 저런 상황에서에서 저렇게도 반응하며 살아갈 수가 있구나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것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여주인공 모드가 자신의 여러 가지 외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시끄럽거나 큰 다툼 없이도 적절히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결국에는 “나는 사랑 받았소.” 라는 독백을 하고, 에버렛도 자신의 아내가 자신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사람이라는 고백과 함께 자신을 떠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함으로써 사랑의 쟁취자로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끝부분에 실존 인물들로 보이는 노부부의 생활상을 잠깐 보여 줌으로서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음을 알게 해주었다.
류마티즘 관절염은 지금도 치료시간이 길고 면역력 결핍과 다중적인 질환이 동반되어 여러 신체 심리적인 증상으로 인해(우울, 무력함) 삶의 질이 떨어져 고통이 따르는 어려운 질환중의 하나일 것이다. 영화 속의 1960 년대에는 더 어려운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 할 수조차 없을 만큼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돌봐주는 부모님까지 돌아가신 뒤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모드는 부모님과의 좋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가면서 좌절하거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매사에 긍정적인 반응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박탈이 심한 남편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적대적이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상대방이 보여주는 데로, 말하는 데로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드 역시 처음엔 남편의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 거친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고 모욕 받은 자신에 대해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요구도 했지만 부정적인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모욕과 분노를 받았을 때 똑같은 강도로 잔인하게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똑같이 상처를 받지만 모드처럼 부모님과의 좋았던 경험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동으로 작동한 사람은 자신이 겪은 어린 시절의 좋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환경과 상대방을 참아내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에버렛은 어렸을 때 부모에게 버려졌고 고아원에서 정서적으로 춥게 자란 사람이다. 좌절된 분노가 엄청나 아내가 자신을 존중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비칠 동거에 대해 유머로써 대처하는 모습에 오히려 에버렛은 사랑받지 못한 수치감이 자극되어 따귀를 때리는 미숙한 행동을 했다.
나는 에버렛처럼 내면 깊은 곳에 분노가 많다. 분노가 높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보게 되어 다른 사람의 무드나 입장에 대한 상황판단이 단조롭고, 불편한 한 가지 사실에만 집중해서 부정적 판단을 하고, 다양한 원인이나 과정을 파악하고 느끼지 못해 여러 관계 안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복잡한 것들을 놓치고, 신뢰로운 친밀한 관계를 못한다. 중요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대상을 잃은 다음에야 외로움을 처절하게 느낄 때 비로소 후회와 함께 잘할 걸이라는 아쉬움이 일어난다. 모드처럼 일관되게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대상이 있다면(상징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에버렛이 되겠지.
나는 상당부분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인식하고 처리) 특히 잘못되고 부정적 상황에서 다시 배우고, 익히고(실천하고 회복하는) 알게 되는(창의성) 능력이 지속적으로 손상된 것같다. 그 결과 문제의 원인이 늘 상대 때문인 것 같고, 불행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풍요로운 정서로 따뜻한 친밀한 관계를 못하고, 늘 적대적이거나 우울하고 공허한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모드였다면 모드가 처한 상황들에서 어떻게 반응 하며 살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나 자신을 스스로 철저히 고립시키고 비하하면서 아무하고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한 채 온통 세상을 지옥으로만 느끼며 살다가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항상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모든 일에 남 탓만을 해대며 부정적이고 미숙한 삶을 살아왔던 내 정신의 역동의 원인을 알 것 같다.
영화 : precious
1981년도 뉴욕의 할렘가에서 16살의 클라레스는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면서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딸에게 모든 것을 시키기만 하는 엄마와 살고 있다. 클라레스는 어릴 적부터 아빠에게 성폭행으로 이미 한 아이를 낳고 둘째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데, 둘째 아이의 임신 사실로 학교에서 퇴학까지 당했다. 다행히 대안학교로 전학을 가서 만난 선생님 레인의 도움으로 문맹상태에서 개화를 하듯 글을 깨우치게 되었다.
둘째 아이도 출산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안아든 엄마는 태어난 지 3일밖에 안된 아이를 내 팽개쳤다. 클라레스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집을 나오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음에도 아이만은 끝까지 다치지 않게 보호를 한 후 엄마의 집으로부터 나와 레인 선생님의 집과 사회복귀 훈련시설에서 재활을 시작한다. 사회복귀시설로 찾아 온 엄마와의 면담에서 아빠가 에이즈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클라레스는 에이즈 반응검사에서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게 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엄마는 다시 클라레스를 의존하기위해 상담사를 찾아가 함께 살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거절을 당한다. 클라레스는 자신이 3살 때부터 아빠의 성 대상이 되었고, 아빠의 성폭행 사실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엄마에게“지금까지는 그런 엄마를 몰랐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나를 볼 생각을 하지 말라”며 자신의 큰아이 멍고를 안고 자리를 뜬다. 상담사에게 매달리며 오열하면서 사정을 하는 엄마, 그러나 이를 냉정히 뿌리치며 가버리는 상담사 그리고 큰 아이 멍고의 손을 잡고 둘째 아이 압둘을 안고 웃으며 복지센터를 나서는 클라레스 드디어 엄마로 부터의 독립을 성취 했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 6남매 중 장남으로 1952년도 6월 6. 25 전쟁이 한창 중에 태어났다 시기적으로 전후 세대인 나의 어린 시절은 어려운 사회상과 맞물려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 전 해인 7살 무렵에 나의 어머니는 셋째 남동생과 다섯째 여동생만을 데리고 서울로 돈을 벌기 위해 가출을 하셨다. 졸지에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은 우리.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무엇인지, 가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던 아버지는 남은 어린 자식들은 이웃에 사는 고모에게 팽개쳐놓고 매일 밖으로 나가 우리가 잠들 때쯤 술에 만취하여 돌아왔다.
7살 어린 나이의 나에게 의지하여 매일 밤 눈물로 하소연해 대는 통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는 슬픔과 고통에 더하여 남은 동생인 둘째와 넷째까지 챙겨야 했다. 약 1년 이상을 소식 없이 지내던 엄마가 동생들을 데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렇게 그리웠던 엄마를 마주한 순간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쭈뼛거리다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 동생 둘 그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남았던 우리 삼남매를 당당하게 무시했다. 어머니는 마치 자신이 데리고 들어온 두 자식만이 친자식인 것처럼 편애하며 매사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어린 나를 쩔쩔매게 했던 무능하고 철없던 20대 후반의 어머니와 30대 초반의 젊은 날의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 이 영화를 보며 분노를 느꼈다.
이 같은 나의 어린 시절은 정말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나의 부모님들 역시 그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택한 최선의 선택이셨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나의 부모님들은 어떤 이유로(환경적 요인과 부모 개인의 성격적 문제로) 내가 겪었을 혼란이나 두려움을 이해해주고 받아주질 못했다. 당시의 어린나이의 나에게 일 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고모의 보살핌이나 주변사람들의 불쌍히 바라보는 눈초리 등 에서도 너무나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또 엄마가 돌아와서도 어른으로서 따뜻한 엄마 역할을 잘 못하고 오히려 편파적이었으며 당신의 힘든 삶에 대한 분풀이의 대상으로만 여겨서 더 많이 외롭고 화가 났던 것 같다.
프레셔스에 나오는 엄마는 보통 엄마가 아니다. 유아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심각한 엄마다. 남편이 자신의 아이에게 성적 학대를 하는데 자신의 딸을 자신의 경쟁자로 여겨 보호해주지 못하고 엄마입장에서 딸이 받았을 신체, 심리적 상처를 전혀 돌봐 줄 수 없는 그냥 어린아이다. 그래서 어린 딸에게 계속 부모처럼 의존해야 살 수 있기에 분리를 못시켰던 것이다. 강제로 요리를 해서 주는 행동도 딸을 아기로 보는(자신에게 강렬하게 의존하게 하려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이고 말이다. 물론 죄책감도 있겠지만. 사랑표현이 미성숙한 것이다. 성숙하지 못하면 엄마역할에 대해 힘에 겨워서 적대적으로 지속적인 거부를 하는 것 같다. 무심함, 적대적 말과 행동, 거리두기 등.
두 편의 영화와 교재를 보고 느낀 나의 소감은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어릴 적 부모. 특히 엄마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개인의 운명은 부모 특히 엄마가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어떤 인간일까?. MBTI 검사 결과 나의 기본 성향은 INFP라고 한다. 이 기본 성향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개발한 것이 ISTJ 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쩐지 나의 삶은 그동안 뭔가 나에게 맞지 않은 옷과 같았고, 마치 첫 단추가 잘못 꿰진 것 같은 느낌의 삶을 살아왔는데 그래서 그렇게 억지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는가 싶다. 나는 나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행동 양식을 설명 할 재간이 없다. 왜 그런지 도저히 내 스스로는 말로 표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신 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의미 있는 인간관계 즉 성공한 인간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것은 부모, 형제, 처자식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나는 처음에 어느 잡단이나 개인을 접하면 먼저 그 상황에서 나를 받아들이는 가 거부하는가 하는 것을 귀신 같이 잘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그곳에서 나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크지 않을 경우 화려하게 대중을 압도하여 일시적으로 조명을 받을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나 스스로 피곤해저서 대중들과 또는 개인 간의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전혀 맺지 못하는 무능함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남녀공학의 전 학년이 모인 소풍이나 운동회 등에서는 사회를 잘 봐서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친한 친구하나 만들지 못하고 그 흔한 여자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하였다. 한마디로 혼자 잘난 독불 장군이었다.
또한 집단 내 특정 개인이나(특히 기존 여론 주도층의 개인이나 상사) 분위기가 나에게 약간 거부 반응으로 대한다면 즉시 철수하여 담을 쌓고, 스스로 무모한 도발을 하는 성향에 결국에는 그곳의 모두를 적으로 돌려놓고야 마는 이상한 저주의 역동이 나에게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든 인간관계가 파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데 스스로는 이를 바로 잡을 수 가 없다.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바로 잡기위해 노력을 하면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되고, 비굴해져 항상 매달리면서 손해만 보는 인간관계를 맺다가 결국에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한마디로 고비용 저효율의 인간관계다 아니 경제적으로 마이너스 형 인간관계의 연속이다. 하여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또한 나는 모든 것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의식에 걸리는 특정한 상황에 대해서는 특별한 해결책도 없으면서 매사를 너무나도 깊고 심오하게 파고드는 성격이어서 같은 상황에서도 훨씬 더 깊게 오랫동안 아니 평생을 되씹고 곱씹는 형으로 이것 또한 나를 기진맥진하게 하는 역동이다.
거기에다 쓸데없이 동정심, 배려심(또는 잘못된 판단)은 많아서 나 자신에게 큰 피해가 예상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모두가 찬성하는 의견이나 상황 또는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상사의 의견에 대하여 특정의 집단을 위해서 또는 한 개인을 위해서 무리하게 자기를 주장하여 손해를 본적도 많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토록 비장하게 옹호했던 집단이나 특정인으로 부터는 언제 그런 것을 부탁 했었나? 하는 멀뚱한 반응을 받게 됨으로써 억울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나의 도움으로 특정잡단이나 개인이 이득을 본 후에도 그 특정집단이나 개인들에게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다수로 부터는 공통의 적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런 나를 타인들은 평가 할 때 의리, 정의, 시원시원한, 남자다운, 배려심이 깊은, 지나친 착실함, 모범적인, 정이 많은 등의 수식어를 붙여서 설명들을 하지만 여전히 아무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아니 나 스스로 만들어낸 한빙지옥 속에서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또한 지금은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불같은 성질에 한번 말을 쏟아 내면 속사포처럼 공격적인 말을 구사하였으며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면이 너무나도 커서 매사에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이다. 불같이 욱하는 성격에 화를 많이 내서 많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선천적으로 여리고 악하거나 잔인하지를 못해 금방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후회를 하게 되어, 폭력이 오가는 진짜 싸움으로 까지는 번지지 않으나 한번 틀어진 관계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야만 이런 저주의 운명에서 벗어 날수 있을까?.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것은 인간관계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이나 살면서 덕쳐오는 역경쯤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겠으나 살아가면서 보람을 느끼거나 자긍심이 없을 때 너무나 괴롭다. 이런 인간관계의 개선을 위해 스스로 찾은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이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저주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저주니까.
과제를 마치고 선생님에게 수퍼비전을 받으면서 조금 자각이 된 측면이 있다. 교재의 애정의 욕구에서 보면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렬한 만큼 동시에 사랑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느낌만으로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나의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판단 그리고 결말은 과거의 애착대상과의 경험을 재현하는 것이다. 어릴 적 엄마의 갑작스런 부재로(거부, 버림) 느꼈을 혼란과 불안 그리고 분노를 억압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속에서 풍요로운 감정을 쓸 수 없게 되었고 과다하게 누르다가 폭발이 되어 나오면(엉뚱한 대상이지만 엄마에 대한 감정이 투사된 이상화 된 대상에게 기대했다 실망하는) 그리고 돌아와서 더 실망되었던 것이(더 좋지 않았던) 나에게 평생 반복되는 파국의 오리진 감정이다. 나는 사랑관계를 지속적으로 못하기에 외롭고 화가 나는데 이제 보니 어렸을 적 너무나 감당할 수 없었던 상황이 언어화 되지 못해 버림받은 불쾌한 감정 속에 살아가는 것 같다. 이제야 분석을 통해 상처받은 나의 진실한 모습에 공감이나 지지를 받고 있다. 시간과 더불어 천천히 무의식이 변해야 현재 관계패턴이 달라지겠지. 화를 폭발하면 엄청난 수치심과 무기력을 감당해내야 하고 그런 증오의 에너지를 처리하느라 현실적인 자아능력을 기를 수 없게 되어 인간관계 기술이나 방법이 습득되지 않음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