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소임을 마치고 2021년 명예롭게 은퇴한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지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매월 1회 상호 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1. 상담스터디 '마리 이야기 손끝의 기적', '문라이트'

1. ‘마리 이야기 손끝의 기적’ ‘문라이트’ - 이런 말이 떠오른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내 팔자가 그렇지 뭐’ (카타리나)


이 영화는 실제 19세기 말 프랑스의 푸아티에 지방에 있는 라네이 수도원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마리이야기-손끝의 기적’의 주인공 마리는 시청각 장애가 있어 부모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교육을 받기위해 수녀원에 맡겨진다. 헝클어진 머리와 더러운 옷이며 처음에는 부모님 외에는 아무도 만지지 못했었다. 그녀는 인격을 갖춘 인간이라기보다는 야생 동물과 같았다. 마가렛 수녀는 마리가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올 수 있도록 헌신하는데, 마침내 이 둘은 전쟁과도 같은 성장의 고통 과정을 겪으며 조금씩 변해간다. 마가렛 수녀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는데 마리는 죽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마가렛 수녀의 따뜻한 말을 듣고 수녀님을 편안히 보낼 줄 수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공포에 휩싸인 수녀님의 손을 잡으며 아름답게 웃어주는 마리의 모습이다. 기괴스러웠던 마리가 그토록 온화하게 미소 짓는 모습은 따뜻한 햇살과 같았다. 나는 인간을 통해 신의 사랑을 느끼는 게 구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을학기에 코헛은 우리 모두 죽는 날까지 자기대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마리에게 수녀님이 튼튼한 자기대상역할을 해주었듯이 마리 역시 병으로 고통 받는 수녀님에게 자기대상이 되어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헌신하며 지켜주었다.


영화 Moonlight를 본 후에는 알 수 없는 공포와 혐오가 밀려왔다. 그건 아마도 영화내용처럼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에 대한 절망감이 일어나서이다. 협소한 환경에서 불행을 반복해서 살아가야하는 주인공 상태가 얼마나 외롭고 답답한지가 느껴져 속상했다. 샤이론은 아버지 없이 집에서 매춘 일을 하는 마약중독자인 엄마에게 길러졌다. 흑인 사회에서도 왕따였고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방치되어 자란다. 또한 인간적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야 하는 친밀감이나 우정이 성자극과 겹쳐서 사랑과 성이 뒤엉켜진 고착된 모습도 안타까웠다. 사람이 이미 경험한 환경에서 나와 세상 밖의 새로운 현실에 접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양육환경이 열악하다면 잠재능력이 있다 해도 그 굴레를 벗어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과거의 상처가 무한 반복되는 진실이 바로 내가 느낀 공포의 정체다. 나는 편집증 엄마에게 양육되었는데 현실이라는 것을 모르는 채 모호한 상태에 갇혀 살았다. 


눈이 있어 볼 수 있고, 귀가 있어 들을 수 있어도 세상과 타인에게 접촉 할 수 없었으니 장애인 마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었고, 타인을 모르는 채 자기 중심성에 빠져서 사는 게 너무나 외로웠다. 그 결과 나이가 들어서도 성숙하지 못한 채 어릴 적 충분히(마땅히) 받아야 할 무조건적 사랑을 아무에게나 바라고 기대하고 살아간다. Leon J. Saul의 저서 아동기: 감정 양식과 성숙의 서론과 1장을 살펴보면 모든 인간의 목표는 적정 발달에 따른 성숙이라고 한다. 성숙은 나이 들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아발달이 튼튼한 정체성과 자존감의 바탕위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충족되었어야 하는 엄마라는 인격으로부터 진정한 사랑 받은 경험이 없다. 따라서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적절한 의존을 할 수 없어 늘 불안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당연히 발달해야 하는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에 현실감 없는 불안정한 일상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예전에 입에 달고 살던 말 ‘아이고 내 팔자야……’ ‘내 팔자가 그렇지 뭐……’ 절대로 벗어 낼 수 없었던 팔자는 바로 엄마라는 굴레이다. 나에겐 진실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거대한 파괴 역동이 작동해 시작도 전에 끊어 버리는 것이 쉽고 편하다.



2. 성숙을 향하여 (모니카)

추천해주신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너무나 교과서적이네’라는 생각을 했지만 반복해서 읽다보니 그동안 부모교육 수업을 받으며 배웠던 내용들과 느낌들이 연결되어 교과서의 내용을 의미 있게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나에게 이런 배움의 시간이 없었다면 책의 중요한 내용들이 피상적으로 읽어지고 무슨 소린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 했을 것 같다. [아동은 사랑받은 경험으로부터 동기를 얻어 성숙을 지향하며 발달한다. 아동이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을 계속 갖게 되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사회화와 완만한 정서적 성장에 장애가 발생한다. 사랑받는 경험은 아동에게 안정감을 주고 의존욕구를 충족시키며 무력한 아동을 생존하게 하는 힘이다.] (page 9) 나의 유년기를 다시 되돌아보고 생각하려하면 금세 우울해지고 큰 슬픔이 밀려온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집과 부모로부터 줄곧 나는“빨리 이곳을 탈출해야 되는데...” 라는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마음속에서 올라 왔던 것이 기억난다. 나 자신도 모르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땐 알 수 없었다. 안델센의 동화‘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읽을 때마다 추위와 배고픔, 갈 곳 없는 가난한 소녀의 모습에 큰 공감이 갔다. 너무나 불안하고 혼란스런 엄마, 외부세계와 전혀 접촉하지 않고 사셨던 부모님으로 인해서 부모님의 불안과 혼란은 그대로 내 것이 되었고 사회화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체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고 있다. 


엄마는 증오, 분노, 짜증, 화가 나는 감정들을 거르지 않고 말과 행동으로 마구 쏟아내고 지나치게 내 손과 발이 돼서 뭐든 대신 해주면서 세상은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하고 사람들을 절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강요하셨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폭언과 방치, 과잉보호가 반복되는 환경에서 나는 배워야 하는 것들을 부모로부터 배울 수 없었다. 한 평생 내 존재에 대한 커다란 수치감, 열등감, 타인을 향한 적대감과 의심, 조절되지 않는 감정과 충동들, 무기력, 무망감이 내 마음 자리를 차지해버렸고 계속된 발달의 실패에 고도의 자기중심성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발달하지 못한 체 살아가는 것은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 초등학교부터 중 고등학교 대학시절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는 나에게 너무나 낯설고 불편한 공간이었다.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학습이 어려웠고 또래 아이들이 성취해야하는 것들을 나는 해 낼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고 다른 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일어났다. 나만 혼자 동떨어져 있고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 같은 느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떨쳐지지 않았다. 외부세계와 접촉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몰려오는 불안함과 공포는 내가 이뤄 나가야 하는 많은 것들에서 회피하게 했고 결국 무엇이든 제대로 배울 수도 성취할 수도 없게 했다.


나는 결혼 생활도 어려움을 피해갈 수 없었는데 나의 융합하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 내가 기대했던 것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남편에게 격노하고 화를 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그로인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남편이 나 이외에 다른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남편이 그것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결혼 생활은 알지 못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하면서 내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남편과의 관계를 파괴적으로 끝내고야마는 그 알 수 없는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종교로도 해결되지 않자 신이 나를 버렸다고까지 생각을 했다. 해결되지 못한 융합욕구와 의존성이 문제였는데 그것은 내가 중한 병에 걸릴 만큼 결혼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발달하지 못한 인격을 가지고 사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40년의 내 삶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5년 동안의 수업과 상담을 통하여 나를 이해해보고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발달하지 못한 많은 것을 연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동국대 사찰음식 1년 과정, 새로운 악기인 오르간을 배우면서 1년 동안 성당에서 반주자로 봉사해 보기, 사이버 대학 2학년으로 편입해서 지금은 벌써 졸업반이다. 


매번 꾸준히 시간에 맞춰 들어야하는 수업과 제 때 제출해야하는 과제들과 시험, 이것들을 빼먹지 않고 3년째 성실히 해 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작년엔 새로운 일이 하고 싶어 레슨 하는 일을 그만두고 토즈를 오픈하여 1년 째 운영하고 있다. 작지만 내 사업체를 꾸리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영화 ‘마리 이야기’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소녀 마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애를 바쳐 돕는 수녀님과의 관계를 보면서 내가 부모교육 수업과 상담을 통해 나의 유년기 상처들을 치유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닮아 있어서였다. 마리가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어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아무하고도 소통할 수 없는 상태는 불안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외부세계와 접촉능력이 전혀 없는 엄마의 정신세계에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이 마비되어 느끼지도 못하고 표현하지도 못하는 내 모습과 같다. 거절당함의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커서 나의 real want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는 내 자신이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갑자기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고 에너지가 전부다 고갈되어 힘을 쓸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건 막상 그 일을 시작하거나 끝내놓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해진다. 이런 순간을 경험 할 때마다 성경에 나오는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광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거라사 지방의 광인은 무덤사이에 거처하였고 쇠사슬과 고랑을 끊어버릴 만큼 힘이 세 아무도 제어할 수 없었고 밤낮 무덤사이에서나 산에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치유함을 받고 온전하여진 내용의 이야기다. 자기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원하지 않는데 자기를 파괴하며 짐승처럼 살고 있는 모습, 치유함을 받고 정신이 온전하여진 이 모습이 내가 겪는 이런 경험과 유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와 상담을 하기 전엔 알 수 없이 작동하는 힘에 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순간을 맞서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밀어내지 않고 해내고 있다. 거라사 광인의 기적을 지금 현실에서도 체험하며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의 독서 센터를 오픈 한 초기는 좀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리를 잡아 안정적이 되었고 적절한 수입도 들어와서 걱정할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변하지 않고 아직도 여전히 초기에 오픈 할 때 마음처럼 위태로움이 느껴지고 불안하다. 


무엇이든 잘 안될 거 같고 곧 망해버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고 내 통장에 돈이 조금씩 쌓이고 있지만 남편에게 나 돈이 하나도 없으니까 생활비 내 통장으로 넣어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고 있고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온전히 내 것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슬플 때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무엇이든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경험들이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리가 변화되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처럼 나의 성장을 위한 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다. 마리에게 헌신적인 마가렛수녀님이 계셨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내 삶에도 중요한 대상이 있었기 때문에 내 경험의 한계를 뛰어 넘어 삶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희망 없는 삶을 반복하면서 고통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내 앞으로의 삶에 좋은 일이 자꾸 생길 것 같은 기대와 설렘이 있다. 새롭게 발견해 가는 내 모습을 만나는 것도 기쁜 일이다. 성숙을 향해가는 길에 좋은 가족들이 생겨 기쁘고 맘이 든든하다. 귀한 모임에 초대되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해보고 싶다.



3. 마리와 샤이론의 성숙에 관한 이야기(헬레나)

마리는 신체적 장애로 인해 자신 만의 세상에 갇혀 있어 발달이 멈춘 아이이고, 샤이론은 그가 가진 결핍된 환경에서 비롯된 정서적 문제로 인해 발달-성숙이 멈춘 주인공이다. 마리는 눈과 귀의 장애, 그에 대한 부모의 몰이해로 인하여 인간이라기보다 야생의 짐승과 같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마리가 마가렛 수녀님을 만나고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하여 마침내 현실을 살아가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병에 걸려 누워있는 마가렛 수녀님을 위하여 스프와 물이 있는 쟁반을 들고 들어와 수녀님이 드시게 하는 장면과 수녀님의 묘소를 찾아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수녀님과 대화하는 장면은 마리의 성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엄마와는 할 수 없었던 자기대상 경험을 통하여 수녀님을 믿을만한 내적 대상으로 내면화하면서 자기가 형성되고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홀로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수녀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수녀님의 자기대상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었고, 좋은 관계 경험을 통하여 돌아가셔도 계속 관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문라이트’의 샤이론은 미혼모인 엄마 밑에서 자라는 외로운 아이다. 더구나 엄마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마약까지 투여하는 등 그에게 제대로 된 양육과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결핍과 왜소한 신체조건 등으로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하는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햇빛처럼 다가와 아버지처럼 돌봐준 후안은 샤이론에게 힘들 때 찾아올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고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언을 나누어 준다. 달빛이 비추는 바다에서 후안으로부터 수영을 배우고 그를 믿고 스스로 물에 뜨는 모습은 샤이론이 이 세상에서 다시 성장을 시작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매우 감동적이었다. 또한 결국 무엇이 될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후안의 조언 역시 샤이론이 이 현실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용기 있게 드러낼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샤이론은 결국 마약상으로 나름 입지를 갖고 사는 후안을 결국 동일시하게 된다. 특별히 ““나””의 문제에서 마리와 샤이론을 바라볼 때, 처음 가지는 느낌은 우습게도 부러움이다. 내 인생에도 마가렛 수녀님이나 후안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말이다.

 

나의 엄마는 그 시대에는 흔하지 않은 전문직 여성으로 매우 성취 지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실제로 그녀는 외적으로 크게 성공하였고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나와 나의 형제들은 그럴듯한 외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러 내적 결핍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고 현실을 살아가는 데 문제들을 일으키면서 성숙한 인간이 누리는 행복을 가지지 못한다. 나의 세상은 엄마에게 온통 저당 잡혀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게 묶여 있었다. 나의 인생에 내가 없고 엄마가 나대신 내 자아가 되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내가 가진 고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얼굴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돌이 막 지났을 때 마당에서 넘어져서 생긴, 꽤 큰 흉터가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 사건은 전적으로 엄마의 이야기로 나에게 기억되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이 흉터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흉터를 지우기 위한 그 어떤 시술에도 관심 갖지 않았다. 엄마는 이 일을 이야기할 때 ‘다친 아기’-나는 어땠는지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라든지 ‘얼마나 놀랐을까’라든지 하는 공감의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엄마 자신’만이 존재하는 이야기들로 주로 자기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는 이야기, 병원을 어떻게 데리고 갔는지 성형외과가 아닌 일반외과에 데리고 간 아빠를 얼마나 비난했는지 등의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엄마였던 것이다. 그 이후 엄마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잊어버렸고, 나도 그녀의 시선으로 나의 흉터를 바라보고 아무 느낌도 없이 지워버리게 되었다. 상담하는 가운데, 거의 50년이 지나서야 이 사건을 떠올리며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의 생각, 감정까지 결정지었던 것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상관없이 장애의 세계에 갇힌 마리처럼, 엄마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자신 만의 세상에 갇혀있던 샤이론처럼 나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갇혀 사는 것 만 허용 받고 그 안에서 만 생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감각, 특히나 심리적인 현실성은 오랜 기간의 발달과 경험을 거쳐 개발되며, 발달상의 장애는 현실감각을 손상하고 왜곡시킨다고 하는데 나는 엄마의 세상에서 이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발달시킬 수도 없었던 것 같다. 때문에 많은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왜곡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말도 안 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너무나 오랜 세월 미성숙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엄마와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던 나를 인정하는 것은 죽기보다 힘들었고, 나 때문에 상처받고 내 세상에 갇혀있는 나의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예전에 가끔 나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곤 했었다. 그 대화 상대는 대부분 엄마였다. 때로는 화를 내며 항의하기도 하고, 변명을 하기도 하고, 억울하니 알아달라고 하소연 하고 있기도 했다. 그 내용이나 형식을 모두 떠나서 이제 깨닫는 것은 강력한 힘으로 나를 짓누르던 엄마가 얼마나 내 무의식에 깊이 박혀있나 하는 점이다. 현실에서의 엄마는 이미 80이 넘으셔서 나이 든 노인네의 안쓰러움과 연약함을 보여주지만 내 무의식에 살아있는 엄마는 여전히 어린 나를 마음 아프게 하고 억울하게 했던 괴물 같은 이미지이다. 아직도 분리개별화의 문제를 껴안고 있는 나는 나와 엄마의 문제를 들여다보느라 지쳐서 아이들 문제를 들여다 볼 엄두도 못 내고 있기도 하다. 이 스터디를 통하여 멈추었던 성장을 다시 시작하고 성숙한 성인이 되도록 노력하며 다른 멤버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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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