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슈퍼비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상호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말괄량이 삐삐님의 분석

🌿말괄량이 삐삐님의 분석(김은옥)


영유아시기에 엄마경험이 취약하면(좌절과 절망이 크면) 아이는 자기불안을(정신 신체적인 걱정을) 즉시 외부로 배설해서 처리하는데요. 자아가 성숙하질않으니 원시적인 방어기제로(분열이나 투사, 투사동일시로) 처리하게 됩니다. 그 결과 불안정한 내적상태가 외부대상에게 그대로 옮겨가서, 내부세계와 외부세계의 경계 구분이 모호해져서 구분 안되는 상태와(엄마와 자신의 차이를 모르는) 자아전능적 상태가 오랜시간 유지됩니다. 근거없이 또는 노력없이 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울러 자신과 엄마가 분리된 존재임을 구분 못한 채, 엄마의 거대한 몸짓이나 말, ‘감각으로 보여지는 것’을 존재의 전부로 간주하는 ‘콘크리트한 사고’속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자기중심적인 영유아적 사고) 이 콘크리트한 사고는 엄마라는 절대 환경에 절대적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영유아가 외부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입니다. 


건강한 엄마가 유아의 긴장과 불안에 대해서  ‘관계’ 속에서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려서 해소해주게 되면, 공감해주고 담아주는  엄마의 그런 모습을 ‘내사’-동일시하여 아이는 비로소, 불안과 긴장을 즉각 처리하는 방식의 방어 및 콘크리트 사고를 덜 하게 되고,  ‘상징적 사고’가 형성되고 활성화 됩니다. 


클라인 학파에서는 인간이 자립적 생존이 보장되지 못하는 위태로운 열악한 환경에 처하면 정신이 ‘편집분열 자리’에 고정되어, 자신의 불안과 긴장을 참아내며 합리적 사고와 상징적 현실 이해를 해내기보다, 불안과 긴장을 즉시 해소시키는 ‘무의식적 환상’(과대망상, 박해망상..)에 휘둘리는 콘크리트 사고 속에 갇히게 된다고 봤어요.  

인격의 핵으로 자리 잡은  ‘유아의 핵’에 담긴 콘크리트 사고는 일단 형성되면 열악한 환경이나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반복해서 작동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도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또한 영유아 시기에 환경엄마-대상엄마와의 관계에서 심한 결핍감을 느낄 때 나쁜대상에게 박해(공격)당하는 환상이 일어나고, 좋음을 혼자만 소유하고 어린 나에게 주지 않는 엄마를 향해  시기심이 작동해 환상을 통해 마구 공격해 댑니다. 그것으로 내면의 불안과 긴장과 불편감정들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유아가 겪는 상처는 크게 보아 유아기에 엄마가 (어떤 사정으로) 곁에 없거나, 있어도 의미 있는 질적인 상호작용이 없어 친밀한 관계를 못한 있으나마나한 엄마 때문에 발생합니다.


가령, 삐삐씨에게 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조언해주고, 챙겨줘도 그것을 전혀 이용하거나 사용을 안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질적, 심리적 material에 손도 데지 않아 그것들이 방치되고 관심을 주지 않아 의미가 없어 무가치하게 버려진 것들의 모습은, 삐삐씨의 영유아 시절의 엄마 관계 박탈 상처로 콘크리트 사고에 갇혀 있는 상태를, 대상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삐삐씨는 유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엄마 뿐 아이나 그 누구한테도 온전한 대상관계-대상사용 경험을 하지 못했고, 훈습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 나이가 되었어도 본능 충동이 유아처럼 조절되지 않는 것입니다. 


감각적이고 단순한 콘크리트 사고를 하는 사람도 ‘대상 결핍’이 심하게 느껴질 때 좋아하는 물건을 구입하고, 저장하고, 축적해서 사용 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품들은 삐삐씨의 무의식에서 영유아 시절 엄마와의 관계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엄마의 음식, 엄마와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신체적 관계를 느끼게 해주는 대체물 성격을 지니니까요.


강박이 심하면 강박적으로 상품을 사 놓고 축적만 해 놓고, (엄마와 친밀 관계 못 했듯이 상품들을) 온전히 사용도 안하고, (낡고 부패해) 버리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쟁여두고 나눠주지 않는 인색함도 그러하고요. 곁에 있어주고 따스히 관계해 주던 엄마가 그리워서 상품을 사서 쟁여 두지만 전혀 또는 제대로 사용을 못하는 겁니다. 이것은 대상관계 능력-대상사용 능력이 없는 것인 동시에, 엄마와 분리되어, 엄마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상징적 사고가 발달하지 못한 징표입니다.


자신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안정성 있게 곁에 있었으면 하는 (엄마와 온전히 ‘분리’되지 못한 내면 유아의) 바람만 지속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상태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고, 이 세상과 상징적 관계 접촉을 전혀 못하는 상태이지요. 성인인격의 중심에 자리잡은 ‘아기의 핵’이 여전히 콘크리트 사고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상징화 능력이 형성-발달되지 못해 엄마가 없으면 불안하고 위축되어 아무것도 못하는 유아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 넓고 다양한 세상이 낯설게만 느껴져서, 어떻게 관계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유아적 사고-콘크리트 사고에 갇힌 채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엄마가-엄마 같은 분이 자신을 구원해줄 그 순간을 갈망하며, 무의식적 환상에 의지하며, 다양한 상징적 관계로 엮어진 이 세상을 이해하지도 접속하지도 못한 채, 이 세상에서 구입한 상품들조차 어떻게 누리는 것인지 파악 못한 채, 누리지 못하는 성인유아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콘크리트한 사고’는 엄마와 정신신체적으로 분리되기 이전 상태에서, 아직 상징화 능력을 형성-발달 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엄마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엄마가 자신에게 온전한 관계를 베풀어주지 못할 때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원초적 사고 상태입니다. 아기가 고통자극을 받거나 엄마 관계 좌절을 겪고 불안해 할 때  (분신인)어머니가 영유아의 불안과 고통과 걱정을 진심을 담아 정서로 신체로 담아주고 안아줘야 아이가 자기 고통을 엄마처럼 상징화해 처리하는 정신능력이 생겨납니다.


그 상징화 능력이 형성되고 발달되야 비로소 위로, 이해, 수용, 정신화, 용서, 변형적 내재화, 학습, 창조성등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영유아기 때 신체와 정신 사이이 경계 구분이 모호한 상태에 고착되어, 심리적 불안 걱정이 심하면 몸이 아프게 됩니다.(신체화장애)    삐삐씨가 하기 싫고 부담스럽고 불안하고 기분 나쁘면 잠을 자버리는 것도, 심리적 불안을 실재 불안으로 느껴 압도되는 것이기 보다, 그것을 상징화해 처리하는 상징화 능력이 결여되서 그런 겁니다. 신체와 정신 사이 경계가 모호한 사람은 뭔가 세상환경이 골치 아프게 느껴지면, 끝도없이 자기도 하고, 마음의 스트레스가 곧장 신체의 병이 됩니다. 


사실 부모교육이나 정신분석 스타디는 콘크리트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 영유아기 놓친 상호작용을 통해 상징화능력을 만들어 주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분석경험이 있는 분들과 혹은 심리전공자들과 상담스터디를 5년째 유지하고있는데요. 서로가 자기대상관계, 이상화대상관계, 안전기지의 역할을 해나가고 지키면서  많은 것을 공유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사고는 상징화능력과 대비되는데요. 상징화 능력은 문명적사고, 정신화 과정, 논리적 사고입니다. 환경이 열악해서 불안이 매우 심한 아이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내부에 생긴 부정적인 경험기억들과 불편한 감정들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원시 방어기제를 사용하면(자동적으로 반복해서 분열, 투사, 투사동일시가 작동되면)  콘크리트 사고 안에 갇히게 됩니다.

특히 타인에게 들은 말이 곧 사물 대상과 같은 것으로 지각되는  ‘상징적 동등시’ 현상이 일어나는데요.  성서의 언어를 상징으로 이해 못한 채, 문자적 의미로만 단순 인식하는 것과 같아요.  정신증적 사고를 하는 아이가 "네가 없으면 좋겠어" 라는 엄마의 화내는 말을 글자 그대로만 믿어서 공포와 증오로 보복하는 상태와 같아요. 엄마 뿐인가요? 타인들의 말이나 행동을 상징적으로 이해 못한 채 주관적 지각과 환상으로 왜곡해서 경험하죠.



현실에서 직면하는 크고작은 문제를 ‘영유아의 콘크리트 사고와 원초 행동’이 아닌 정신적으로 소화해 해결하는 상징화 능력이 없으면, 눈 앞의 불행을 피해도 결코 현실에서 안정된 행복을 얻을 수 없고 (사회가 제공하는 다양한 상징 의미들을 향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의미한 허무 상태에 고착되고 맙니다. 


상징화 능력이 살아있으면  상실을 겪어도 그것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서 놓여나게 되지요. 반면에 콘크리트한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만족을 얻는데 잠시 성공해도 이내 우울해집니다. 잠시 좋을 뿐 곧 불행해집니다. 사회적 관계가 없으면 외로운게 정상인데요. 상징화 능력이 없어 콘크리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사람 속에 있어도 늘 할 말이 없고 외롭습니다. 그리고 부담스럽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를 편안하게 신뢰하는 게 어려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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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