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슈퍼비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상호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엄마가 죽어야 내가 산다!”

엄마가 죽어야 내가 산다!”(말괄량이 삐삐님)


딸은 자신보다도 절대적 대상인 엄마의 감정과 욕구를 항상 먼저 알아차립니다. 어느 집이나 엄마와 딸 사이에 연결된 심리적 고리가 있습니다만(모녀 관계의 특수성) 엄마 자신의 결핍이 심할수록 딸을 통해 그 결핍을 해소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식을 통해 돋보이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억압하는 엄마밑에서는 고통받는 딸만 있어요. 엄마와 신뢰로운 울타리를 쌓아왔다면 성인이 되어서 타인과의 관계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엄마와의 유대는 깨집니다. 저는 엄마가 정한 강한 규칙에 얽매여 살아와서 친구관계나 이성관계로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또한 엄마에게 조건 달린 애정밖에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어요?


저는 현재 청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면서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 낙오된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잠재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니까요. 바깥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성이 풍부한 시기를 보내고 나니 정작 외부세계에 나와서도 목적 없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인생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도 개척하지도 못합니다. 엄마관계처럼 저의 필요를 타인에게 맡겨버리는 경향때문에 방향감각없이 지내는 것입니다.


엄마가 어떤 분일까? 생각해보면 경계선 지능의 사례처럼 자기애가 강한것에 비해서  현실적인 공감능력이 결여된 분으로 느껴집니다. 엄마를 자기대상으로 내재화 못한 사람이 자기애자가 된다고합니다. 애착관계를 잘 구축하지 못해 마음 둘 곳이 없으면 센 불안이 생겨나는데 자식을 가까이 두면서 나르시시즘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자식이 멀어지거나 독립적인 모습을 보이면 의존도가 높은 사람은 죽을 것같은 불안에 빠집니다. 자식이 멀어지거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상태가 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엄마는 건강 염려증도 높은데요. 건강 염려증과 질투어린 독점욕은 같은 맥락이라고 합니다. 건강 염려증은 자기 몸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빠져 있다면,(자신의 몸과 관계를 하는) 독점욕이 강하고 의존성이 심한 사람은 자식에게 집착하고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역시 자식을 자신의 몸의 일부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엄마의 인생의 목표는 자식을 당신 가까이에 두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해주면 제가 떠나갈까봐 제 욕구를 꺽고, 정작 필요할때는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지가 박약하고, 순종적이지만 불안정하고 무력한 심리적 유아입니다.


유아기의 충동 성향은 시간과 공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폭넓게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약해진다고 합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쭉 이어질 날들까지 구분되며, 공간도 자신이 머무는 장소에만 의식을 기울이다가 사는 지역, 도시, 나라, 세계로 의식이 넓어집니다. 또한 처음에는 내 생각만 중요하다가 점점 공감 능력이 향상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도 고려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 범위가 좁고, 저의 활동을 계획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미리 계산하여 필요에 따라 욕구 충족을 하지 못합니다. 시간과 공간, 관계 이 세가지 차원에서 거의 발달이 이루어지지않았습니다. 저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인생의 목표를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매사 의욕이 없고 금방 싫증을 냅니다.


저는 어떤 일을 자발적으로 하거나 새로운 일에 뛰어들지 못하는 피곤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무슨 일이든 실제로 하려고 하면 고통스러워서 제가 원하는 건 오직 자는 겁니다.(과소행동장애) 자는 것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가능케 하니 편안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의 처음 혹은 일부만 건드리는 것으로 끝날 때 많습니다. 모든 일을 보류해 놓고 가능성만 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거의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이 없습니다. 어느 것이나 손에 대어보기는 하지만 깊이 알아보려고 하지않습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나 일을 접하면 불편하고 짜증이 납니다. 늘 제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잠재워 제가 해야하는 최소한의 역할도 거부하고 포기하니까말입니다.


엄마에게 거부당한 저 또한 상처를 잊기 위해 나르시시즘에 빠져살았습니다. 저는 엄마를 지배하는 비뚤어진 만족감이 있습니다. 철들지 않고, 결혼을 해서도 엄마의 계속 사랑스러운 딸로 살았으니까요. 금전적으로 심리적으로 도움을 받는 부유한 사랑스러운 딸이요. 엄마가 저의 책임을 면제해주고 대신 결정해주길 원했습니다. 헌데 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도 사생활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에게 엄마는 타인이 아닌 ‘공동의 나’입니다. 저 또한 엄마가 겪는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립심을 키울 마음도 없이 그렇게 의존관계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는 역할과 도움을 받는 역할을 번갈아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왕따를 당하거나 폭력인 사람에게 지배당하고 아무상관 없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매달렸던 모습을 통해 엄마 관계를 유추할 수 있었어요.(친구관계부터 연인, 배우자 심지어 도움을 청하려 찾아다녔던 의사선생님들까지요.) 또한 밀착과 달리 대체로 엄마가 양육에 무관심하여 신경을 쓰지 않고 소홀했기때문에 사실 저는 엄마에게(세상에) 그 어떤 기대도 하지않습니다. 

엄마가 딸의 심리적 분리나 이탈을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밀착을 강요할 때, 엄마는 위협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때때로 의존과 불안이 해결되지 않은 엄마가 감정적인 앙갚음을 하기도 하는데, 그때야 말로 자신을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자의식이 발달하지 않은 것 자체가 실제 엄마가 아니라 내사된 엄마의 상과 더불어 살기때문입니다.(은밀하게 장악하고 집어 삼켜진) 내사는(내적투사) 엄마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엄마의 태도나 가치 혹은 행동을 제것처럼 동일시한 것입니다. 물론 엄마의 부조리까지(불성실, 거짓말, 무관심, 무기력, 무망감, 짜증, 흥미를 잃은 감정, 낮은 자존감, 수면과다, 죄책감, 사고력둔화, 하기싫은 일은 안하는 고집, 계획한 일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우유부단, 비정상적인 기분, 공허감, 극도의 권태감, 정서적 미숙, 고립감, 외로움등) 내재화되었습니다.


내사를 통해 평생 엄마의 거울 역할을 도맡았는데요. 살림의 여왕, 음식 솜씨는 최고, 척척박사 등 제가 엄마를 찬사하는 수식어는 실로 다양합니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원망은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가 어떤 말로 자식을 반영하고 자신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초기 불안이 진화하고, 안정적인 정신 구조가 결정되지요. 그러나 엄마의 감정에 융합되어 일관성 없는 엄마의 언어로만 아이의 자아가 채워질 때, 여러 병리적인 정신적인 현상이 생겨납니다. 엄마가 자신의 욕구와 욕망만을 표현할 때 딸은 안전하게 엄마를 장단점이 있는 객관적대상으로 인식하고 수용할 수 없으며, 저항하거나 적절한 거리두기가 불가능합니다. 엄마가 저에게 했던 말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하는 말로 엄마가 본인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말이라는 것을 긴 분석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엄마 인생을 다시 살아주기는 바랬던 말이지요.


엄마는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순간, 완전한 합체감, 일치감 같은 쾌감과 충족감을 느낍니다. 저는 4살때까지 젖을 먹었습니다. 제가 태어나자마자 엄마는 산후 우울증으로 저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지만 그 기간이 지나서 저와 엄마는 바늘과 실처럼 융합이 되어버렸어요. 아이에게는 엄마의 젖과 밀착해 있는 그 순간이 놀이터이고 낙원입니다. 그 낙원은 아이만 누리는 것이 아니지요. 엄마도 행복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엄마가 그 품속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강력한 엄마와의 연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엄마 주변을 끊임없이 회귀하는 딸은 이런 엄마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이긴 하지만 그 돌아갈 곳이 엄마와 맺는 강력한 실재적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에 만들어진 엄마의 자리는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관계속으로 나가는 마음의 문입니다. 엄마가 상실을 감수하지 않으려하고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결코 엄마의 감옥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엄마는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곤했는데, 제가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할 때는 제 욕구와 성향을 나무랐어요. 제가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에는 일절 응해주지 않으면서 외부에서 나쁜 영향을 받아서, 친할머니의 괴팍한 성정을 닮아서 날뛴다고 했어요. 저는 착각을 넘어서 정신적 세뇌를(심리적 조작) 당했던 것 같아요. 사실 엄마는 단 한번도 저를 제대로 바라봐 준 적이 없어요. 엄마는 제가 외부에서 탐색을 하려고 하면 “그냥 편안하게 살아.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하지. 허왕되게 외국이나 서울 갈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만족해. 거기 가봤자 다를 것 하나도 없어.” 이 때문에 제 마음 안에 어마어마 하게 큰 통제의 선이 그어졌어요. 그 결과 몸과 영혼이 따로인 독립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끊임없는 금지와 통제에 저항을 제대로 못하고, 자연스럽게 벗어날 기회가 생기면 근거 없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요번엔 계절마다 하는 가족 여행에 불참하겠다고 거절을 했지만 엄마와 잠시 통화하면서 엄마를 챙겨주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엄마의 말을 거역하는 것인데(자기의 자리를 찾는) 정말로 쉽지가 않습니다. 


죄책감이란 거짓말이나 폭력등 어떤 규칙을 어겼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때에는 사죄 또는 징벌로 죄책감을 해소합니다만 객관적인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죄책감을 느낀다면 자신의 받아들일 수 없는 욕구를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거부할 때 일어납니다.


엄마는 평생 제 삶을 확장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봉쇄를 해왔습니다. 엄마는 8남매 중 다섯째였고 학창 시절에 단거리 선수로 전국 체전에 나갈 만큼 재능이 있었고, 대기업에도 다니시고 결혼 후에 성당 활동이나 합창단 활동 외부활동을 하셨는데, 왜 저에겐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의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대부분 엄마를 두고 멀리 떨어나가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강력하게 일어났어요. 


지금은 서울로 독립을 했고 엄마와 자주 만나지도 않았지만, 이미 제 안에 있는 엄마의 모습, 목소리는 저를 옴싹달싹하지 못하게 할 만큼 지배적입니다. 더욱이 제 안에 움직이는 엄마의 목소리와 내면에서 올라오는 제 목소리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심한 혼란을 경험하고 있어요. 엄마의 지배적인 행동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저를 챙겨주는 엄마의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해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전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내지 못하고 불안한 정서를 모두 주변 사람이나 현상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안에 저를 향한 질투와 시기심, 경쟁심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아차리게 되었는데요. 성취를 경험한 적이 없거나 혹은 스스로 만족할 만큼 성취하지 못한 경우는 자식을 끌어내린다고 합니다. 자신의 엄마에게 더 의지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면 자식에게 그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엄마는 저를 위해 뒷바라지를 해왔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양한 이유로 저를 평가절하하면서 엄마곁에 머무르게 했어요. 아무것도 못하는 제가 엄마를 의존하면 엄마는 삶에서 힘이 나시는 것 같아요. 엄마는 아빠와 결혼을 할 때도 불쌍하다는 이유로 선택을 했고, 평생 외가를 뒷바라지 했어요. 엄마는 자기의 도움을 필요하는 존재가 있어야지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사람같습니다. 


제가 고3 시기 발병을 했을 때, 저를 보호하고 오직 저를 위해 살아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엄마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 의존이 숨어있었던 것이지요. 제가 엄마를 떠나갈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엄마는 심지어 제가 남자친구를 사귈 때 마다 과도하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 대리 만족을 얻었는데요. 헤어지는 사람을 몰래 데리고 나가 비싼 옷을 사주고, 자취하는 그 애한테 음식을 택배로 보내주는 비상식적인 행동도 하셨는데요. 저의 일부로 그들을 보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엄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인데요. 상징적으로 엄마를 죽이지 않으면 ‘온전한 나’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분리를 뜻하는 것이지요. 저는 평생 심리적 탯줄을 끊지 못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외톨이랄까요. 역시 엄마와 겪은 악순환을 다른 인간관계에서 반복하면서 단절과 거리를 두고 있어요. 유년기부터 엄마에게 배운 패턴이니까요. 


하지만 엄마가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 경험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생긴 마음의 공허는 엄청납니다. 이런 상처가 너무 커서 그 수치감에  현실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엄마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면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살아오면서 삶의 모델이 될만한 사람이 없어서 저 자신을 도무지 객관화 할 수가 없었어요. 현재도 엄마 자체를 문제삼는 게 죄를 짓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모성성을 엄마가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똑바로 보지 않는데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욕구를 직시하지 못하니까 딸의 인생을 빌려서 욕망을 채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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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