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슈퍼비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상호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해...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해...’ (메론님)

 

경계선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자신의 의존욕구를 성공적으로 충족시켜 본 경험이 거의 없기에 분리불안, 즉 애착대상을 상실하는 불안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단순하게 인정과 애정을 이끌어내는 것보다는 더 이상의 상실을 겪지 않고자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며, 그것이 주된 관심사이다. 경계선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스스로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순교자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크지만 사실은 자신을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주변 사람에게 의존하는것이라서 사소한 일로 신뢰관계가 쉽게 깨져버리곤 한다. 경계선자의 자기희생적 행동은 그들이 두려워 마지않는 분리를 당하지 않기 위해 취하는 일종의 절박한 자기보호 행동일뿐이다. 자신을 낮추는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다 배려하도록 만들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의 책임감과 관대함을 이용하려는 수단인 셈이자 다른 사람들과의 애착을 강화하기 위한 복종적인 행동이다.

 

그러한 자기희생과 자기비하를 보였음에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과 애착을 강화하는 데 실패한다면, 이들은 분리불안에 대처하기위해 유지해왔던 대처행동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인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더 애정과 관심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주장하며, 공격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행동도 이전의 행동과 목적은 같다. 즉, 분리에 따른 불안을 통제하고 그것에 대처하기 위함이다. 안정적인 의존관계 형성의 실패와 분리에 대한 지속적인 공포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불안과 갈등, 그리고 적대감을 내면 깊숙이 쌓아가도록 만든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감은(증오는) 일정 수위를 넘으면 방출될 수밖에 없다.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자신이 의존하는 대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러한 내면적 긴장감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자기연민의 탄식, 고통, 절망, 체념등의 표현은 그들이 내면 깊숙이 경험하는 긴장감을 덜고 내면에서 경험되는 공포와 고통을 외면화하며 결국 그것을 방출하게 하는 방편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고통을 과장하고, 무기력하고 소진된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효과적으로 피하면서 그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한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죄책감으로 자신을 더욱더 돌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와같이 내면적 긴장을 방출하기위해 사용하는 간접적인 행동 방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든다. 결국에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이 더욱더 큰 분리불안과 갈등, 적대감을 경험하게된다. 이들은 서서히 통제력을 잃고 간혹 기이한 생각과 정신증적 행동이 돌발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의 표출이 나타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러한 분노폭발은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투사적 정신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결함이 많아서 벌 받고 조롱받아야 할 대상은 다른 사람들이 아닌 자기 자신임에도, 그것이 마치 다른 사람들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그러한 분노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적대감과 거부, 유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때문에 사실 경계선자에겐 위험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을 향한 분노와 적대감이 내면화되어 그 결과로 자기를 격하시키고 비난하면서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을 반복한다. 경계선자의 분노폭발은 내부에 쌓여 있던 것을 방출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의 관심이나 걱정이 자신을 향해서 일시적으로 애정의 욕구가 충족되기도한다.

  

십여년 전 일하던 병원에서 만난 한 아버지와 아이의 첫 인상이 낯설었었다. 주위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와 떨어져 자연스레 의자에 앉고 바닥에 엎드려서 티비를 보거나 책을 읽고 있었는데, 단정한 차림새의 남자가 눈이 동그란 예쁜 여자아이(5세)를 무릎 위에 꼭안은 채 앉아있었다. 처음 놀이실에 들어갈 때에도 아이 아버지는 아이가 불안해하고 떨어지지 않을까봐 걱정을 했지만, 의외로 아이는 분리가 잘 되어서 아버지는 놀이실 옆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아버지의 말투와 태도는 점잖고 부드러우며 신사적이었다.

 

경계선 인격을 지닌 사람은 첫인상이 강렬하다. 첫눈에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주목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분위기를 발산하기도 하고, 보호본능을 자극하여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풍긴다. 순식간에 다가와 신뢰로운 사이처럼 친밀한 말을 던지며 응석을 부려 막상 대화 상대가 되어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밝은 표정을 짓다가도 어느순간 어둡게 변해서 ‘많이 힘든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결국 나또한 그의 여러 이야기에 압도되고 동요되어 그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상담자가 배려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의논상대가 되어줌으로써 휘말려든다. 또한 상담자가 비슷한 상처나 문제를 안고 있으면 일종의 공진현상이 생겨 냉정하게 조언할 수 없어 함께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갈수 있다. 경계선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둠속으로 솓을 뻗어 어떻게든 해보려다가 상담자라도 정서불안정상태가 되고만다. 친구나 심리전문가 조차도 자칫 잘못하면(“상대를 기쁘게 해주자. 힘들어하니 도와주자.”) 관계를 정리 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아이 아버지에 의하면 아내는 결벽증에 신경이 예민하여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며 키우지 못하고 거칠게 대하거나 방임하였고, 이에 아이를 돌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 아버지는 아내를 달래고 참아내었으나 아내는 계속 이혼을 요구하였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서로 양육권을 갖기 위해 갈등을 겪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이 엄마 측에서 아이를 빼앗으려 해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 따로 사는데,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회사에도 못가고 아이를 양육하느라 전전긍긍하였다.

 

아이를 만난 지 두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갑자기 아이와 아버지는 놀이치료에 오지 않았고, 며칠 뒤 아이가 납치를 당할 뻔했다고 연락이 왔다. 아버지에 의하면 아이 엄마 측에서 아버지와 아이가 있는 곳을 알아서 아이를 빼돌리려고해서 자기가 아이랑 피신해 있는 상황이라 놀이치료에 못왔다며, 혹시 아이 엄마가 병원으로 연락이 와도 모른 척해달라고 부탁하며, 추후에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오기로 하였다. 얼마 후에 처음 만났던 모습으로 아버지와 아이는 대기실에 앉아있었고, 다시 아이와의 놀이치료가 시작되었다. 아이 아버지는 엄마를 피해 있고, 회사 근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며 회사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역시 나는 혼자서 아이 양육에 애를 쓰는 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지해주며, 양육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도움을 구할 때 근무 외 시간에 따로 전화통화를 하며 양육상담을 해주기도 했었다. 아이 아버지는 그런 내게 항상 감사함을 표시하였다. 그는 때론 자존심이나 체면을 과도하게 의식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억누르며 강한 척하기도 했다.


다시 놀이치료를 시작한 지 2-3개월 만에 아이 아버지는 이혼소송을 진행하면서 법원에서 아이를 엄마쪽으로 보내는 결론이 날 수 있을 거 같다며, 자신의 변호사가 여자 변호사라서 그런 것 같다며 변호사를 바꾼다고 하였다. 그리고나서 나와 병원 원장님께 소견서를 부탁하였으나 소견서가 아버지에게 충분히 유리하게 작성되지 않았다며 따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냉담한 목소리로 내가 작성한 문구를 바꾸어 작성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어 거절하였는데, 그 이후 아이와 아버지는 병원에 오지 않았다. 그러고 얼마 뒤 내게 법원에서 편지가 왔는데, 아이 아버지가 나와 병원 원장님을 ‘살인미수’로 고소했다는 통지였다. 나는 법원에 사실관계를 알아보았는데, 그 아버지는 아이가 죽을 수 있는 상황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었다며 나와 병원 원장님 이외에도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 원장님과 선생님, 자신의 변호사를 비롯해 여러 명을 ‘살인미수’로 고소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참 뒤 아이 이름도 거의 잊을 무렵 갑작스레 아버지가 병원으로 연락을 하여 남은 치료비를 환불받았다고 한다.


아이 아버지는 매우 불안정하여 아이에게 애착대상이 되어주기 보다는 오히려 아이를 의존대상으로 삼아 아이와 분리불안을 겪고 있었던 상태였던 것이다. 나는 아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의 호소에 객관성을 잃었고, 기꺼이 아버지의 의존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 아버지는 아내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늘어놓고 자신은 희생양으로 이야기했는데, 내가 아버지의 의존대상으로서 역할을 했을때는 내게 감사와 존중을 하다가, 내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어 나를 ‘살인미수’로 고소해버렸는데, 동일한 경계선 성격자의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아이를 끔찍이 사랑하고 아이를 지키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을 했는데, 실제는 아이의 정신적 충격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깥에 나가지 않는 은둔생활, 어머니 가족과의 추격전 등 아이가 중심이 아닌 아버지 자신을 위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놀이치료자인 나조차도 아이를 위한 놀이치료를 실시한 것이 아니라 아이 아버지를 위로하고, 맞춰주었던 아버지 중심의 상담을(상담이 아닌 서비스) 해왔던 것 같아 지금도 반성하는 마음이다. 물론 그에겐 과거의 심리적 외상과(상처받은 체험), 방치, 불인증 체험(자신이 인정받지 못한 체험)이 재현되었을 것이다. 결혼관계가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이면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게 할 수있는데, 부부관계가 대립되고 아내의 이혼선언이 병증 악화의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모른다. 또한 경계선자는 타인의 마음에 둔감하여 상대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해 스스로 외로움을 처리하지못하면서 버림받은 기분을 강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

 

경계선 인격은 단일한 장애가아니고 원인도 단일하지 않지만 보더라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기애’에(자기중심적이다.) 문제가 있다. 경계선 인격이 발병할 때는 보통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다. 그것이 하나인 경우도 있고, 여러개가 중복되는 경우도 있다. 외부요인이 물론 아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계기와 원인을 별개이다. 원인은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진 것이다. 한편 계기는 우연에 불과하다. 발병과정을 살펴보면 과거의 심리적 외상 경험이 재현된 경우이다. 이런 사건은(사람까지) 과거의 상처나 고통을 되살리는 성질이 있다. 그러면 심리적으로 동요할 뿐 아니라 현재까지 쌓아온 것이 모조리 붕괴되는 느낌이 일어난다. 주변인뿐만아니라 상담자도 열심히 도우려고 하면 할수록 관계가 최악이 된다. 처음에는 양호한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아도 사소한 일로 엇갈리면 손바닥 뒤집듯 태도라 변화되거나 끝도없는 대립으로 도우려는 사람들 모두 낙담을 하게된다. 문제양상이 악화되어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원하는 도움을 받지 못하면 공격적이고 충동적이되어 경계선자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경계성 인격을 지닌 사람은 근본적인 문제는 애정과 관심 결핍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친밀하거나 신뢰로운 관계가 형성되면 격렬한 문제가 나타난다.

관계에서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없지만 거리가 좁혀지만 상대가 자신을 잘 받아주다가 의존할 수없다고 느끼면 그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조절능력을 상실한다.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와 슬픔을 극복하지못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마치 의지할 데 없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좌절과 혼란에 빠져드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또는 신뢰하기 때문에 그 믿음을 거부당했다고 여겨지면 그것이 미움으로 변하는 심리 메커니즘이다.

 

자신의 기대가 어긋나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걸 참을 수 없게될뿐더러 더 나아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알게 해주려고 곤란한 행위를 반복한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자신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온갖 욕구를 퍼부으며 상대를 평가 절하하고 전면 부정하는 말투로 돌변한다. “최악이야. 지금까지 내가 쓴 시간, 돈을 돌려줘!” 경계선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부모의 이상형을 투사하다가 배신당할 지도 모른다고 좌절을 하면 먼저 선수를 쳐서 배신해버리는데,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완전무결한 부모를, 정말 믿을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사랑을 주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배려심도 관심도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누구든 불신과 자기부정과 분노를 마음속에 품게된다.

 

사람을 믿지 못하여 배신할 거라느니 악의를 품고 있다느니 안 좋은 부정적 방향으로 추축하는 유형을 망상성 인격이라고 부른다. 이 유형은 경계성 인격을 지닌 사람과 병합되기도 한다. 상대방 행동의 이면의 이면까지 따지고 들다가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거부나 배신의 징후로 착각하거나 공격과 비난으로 받아들여 반격 행동을 한다. 망상형 경계선자는 배우자를 감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언제나 그 사람의 행동을 파악하려고 한다. 상대가 곤혹스러워하거나 관계를 끝내려고 하면 강한 질투심이 생겨난다. 배우자가 틀림없이 배신할 것이라고 굳게 믿어서 현실에서 벌어지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고는 부당하게 의심해 힐문하거나 그 증거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다. 물론 이것이 가정폭력의 원이 된다. 망상적 경계선자는 일단 마음을 연 대상은 특별하기에 마음속에 숨어 있던 유치한 과대자기가 활성화되어 상대방이 자기를 위해서만 완벽하게 존재해야한다고 굳게 믿는다.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다가 자기 기대에서 벗어난 반응을 보이면 원망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본성을 모른 채 섣불리 사귀었다가는 나중에 큰 봉면을 당하고 만다.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터무니없는 앙갚음을 당하게 된다. 상담자라할지라도 지나친 감정이입은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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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