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스터디 분석 후기

상담 스터디는 소임을 마치고 2021년 명예롭게 은퇴한 김은옥 정신분석상담사의 지도 아래 개인분석 경험 있는 일반인과 상담 전공자가 매월 1회 상호 작용하며 자기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소모임입니다. 본 교육원에서는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드리고자 스타디에서 나온 깊이 있는 자기분석 글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3. 경계선 인격장애

남동생에 대한 이해 (파랑님)

 

경계선 성격장애의 진단과 증상(DSM-5, section Ⅱ, 2013)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거절이나 무시를 당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넘어 공포를 지니고 있어서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버리지는 않는지? 사소한 일에서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2. 불안정한 인간관계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관계를 맺는 상대에 대한 태도이다. 이상적 가치 평가를 하다가 평가절하하여 상대방을 비난하며 거부한다. 이러한 태도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지각과 평가를 바탕에 둔 것이 아니라 분열된 그들의 마음때문에 일어난다. 통합되지 못한 분리된 마음 중 하나가 어떤 상황에서 활성화되느냐에 따라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은 이상적인 존재가 되기도 하고, 형편없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3. 불안정한 정체성

자기 정체성이란“나 자신은 어떠한 존재인가?”하는 물음에 대해 스스로 내리는 답이다. 자기 정체성에도 여러 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측면은 자기 가치감일 것이다. 자기가치감은 타인의 마음에 반영된 자기를 통해 발달한다. 어릴 때부터 꾸준한 칭찬, 수용, 사랑, 인정대신 부정적 평가와 비일관적 양육 태도를 부모로부터 경험하면 자기 가치감에 손상을 입게 되고 혼란스러운 자기 가치감이 형성된다. 자기정체성과 자기가치감이 불안정할 경우 자신에게 한때는 의미 있게 여겨진 것들이라도 작은 좌절에 의미를 상실하여 쉽게 포기한다. 왜냐하면 자신을 보다 자신답게 느끼도록 해줄 수 있는 삶의 목표나 방법을 진지하게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충동적 행동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충동이 일어날 때, 그것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직장 생활이나 사회생활 또는 인간관계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

 

5. 되풀이되는 자해 행동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아무런 예고 없이 충동적으로 자해를 하곤 한다. 자해를 하는 이유는 불안정한 자기 정체성과 자기가치감과 관련이 있다. 스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함과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에 대한 혐오를 일순간에 끝내려는 시도이고 자기 파괴감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절박함이다.

 

6. 정서적 불안정성

경계선 성격장애를 나타내는 사람은 관계를 맺는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오가기 때문에 정서상태가 매우 불안정하다. 조그만 스트레스에 극심한 우울감을 느끼거나 자신과 관련 없는 불길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불안하고 초조하다.

 

7. 만성적인 공허감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텅 빈 느낌, 허전한 마음, 빈 껍데기”라는 말로 공허감을 표현한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비어있는 마음 때문이다. 보통사람도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보면 공허해진다. 이 공허함은 상대방에게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들에게 분리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되고, 이런 상대방의 행동은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8. 빈번한 분노표출과 공격 행동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자주 분노를 표출하여 비난하며 공격하는 말을 자주한다. 이들의 분노는 외적인 상황에서 유발된 것이라기 보다는 내면적으로 가득 쌓여있던 분노의 화산이 사소한 자극에도 폭발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경계선 성격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표출하는 분노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따지는 일은 그들의 분노를 한층 격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일시적인 분노 폭발 뒤에는 수치심과 죄책감, 자기비난이 따라온다.

 

9. 일시적인 정신증적 증상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그 정도에 따라서 편집증적 증상,(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해치려고 한다.) 혹은 해리 증상을(나 자신이 아닌 것 같다.) 나타낼 때가 있다. 이런 증상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일때도 있는데, 이들의 스트레스는 실제적이거나 상상적인 분리, 상대에게 거부나 버림받는 것과 애착 관계를 맺어온 중요 대상과의 이별등이다.

 

경계선 성격장애와 기타 성격장애의 관계

 

1.경계선 성격장애와 기분 장애

경계선 성격장애와 기분장애를 가진 사람이 나타내는 공허감, 무력감, 자기비하, 무가치감, 상실감, 절망감 등은 유사하다. 그러나, 차이는 그러한 기분의 변조가 개인의 기본적인 성격결함을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환경에 따른 스트레스의 결과인지에 따라 다르다. 특정한 시기에 국한해서 나타나는 특정한 환경적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서가 아닌 장기간의 기분장애가 나타나고 그러한 장애가 개인의 성격적 결함을 반영한다고 판단될 때는 경계선 장애의 진단이 더 유력하다.

 

2. 경계선 성격장애와 분열형 성격장애

두 성격장애 모두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이 결여되어있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망상이나 마술적 사고를 보이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분열형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철수되어 있고, 주로 사고와 지각에서 병리를 보이는 반면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주로 인간 관계 영역에서 불안정한 정서와 양가적 감정이 두드러진다.

 

3. 경계선 성격장애와 연극성 성격장애

두 성격장애 모두 다른 사람의 칭찬과 관심 및 인정에 의존하고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나 관심이 없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안정해진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연극성 성격 장애는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 자체에 관심을 두는 반면, 경계선 성격장애는 관계에서 다른 사람의 관심과 애정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하거나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훨씬 더 우세하게 느낀다. 이로 인해 공허감과 외로움을 경험하고 폭발적인 분노를 표출하며, 상대방에 대한 이상화와 격하등 훨씬 두드러진 관계의 불안정성을 보인다.

 

4. 경계선 성격장애와 의존성 성격장애

두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둘 다 거부당하고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존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타인에게 복종하고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그들의 관심과 애정을 계속 유지하려는 반면, 경계선 성격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내면적으로는 의존의 욕구가 강하지만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의존하고자 하는 바로 그 대상에게 분노를 폭발하거나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5. 경계선 성격장애와 자기애성 성격장애

두 성격장애 모두 인간관계에서 조그마한 자극에도 분노로 반응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나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 두드러지거나 충동적이지 않고, 타인에게서 버림받는 것을 크게 불안해하거나 공포감을 갖지않는다는 점에서는 경계선 성격장애와 차이가 있다.

 

경계선 성격장애에 대한 공부를 할 때마다 남동생이 생각났다. 사실, 집안의 유일한 남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뒷순위로 밀려져 있던 동생이라 과제를 하기전까지 특별히 남동생의 성격과 삶의 태도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4세 아래의 남동생은 분명히 같이 나고 자랐는데 함께 지낸 의미있는 기억이 거의 없다. 종가집 종손이라 엄마가 어릴적 아들아들하며 예뻐했고, 그렇게 귀하게 태어났지만 아빠는 정작 아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입이 찢어져 바늘로 꿰매도 안 울던 순한 모습, 부모님에게 특별한 요구가 없었던 모습이나, 나와 여동생은 싸우기라도 했는데 늘 혼자서 조용히 놀았고 친구가 많이 없었던 것이 남동생에 대한 이미지다.

 

엄마는 남동생이 대학 때 농수산물 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날, 몸이 아프다고 하자 “니가 왜 그런일을 하니? 그만 둬. 당장. 그러다 허리 다치면 어쩌려구. 가만히 있으면 아빠가 나중에 어련히 뭐라도 차려줄텐데.”라고 화를 내셨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너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그냥 건강하게 크기만하면 돼.”라는 말로 동생의 욕구와 배움을 막아섰다. 그렇게 자란 남동생은 회사에 들어가서도 아프면 엄마에게 회사에 전화 걸어서 대신 말해줄 것을 요구하거나, 회사행사에 운전을 해야하면 집에 일이 있다는 거짓말의 전화를 하게했다. 남동생은 다행이 좋은 학교를 나와 직장을 들어갔지만 적성에 안맞는다며 사업을 수차례하면서 사기를 당하고, 부도를 맞고, 무책임하게 잠수를 타며 책임과 의무를 멀리하였다. 회사 생활에서 배워야 하는 업무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기도 하고, 사회생활 스트레스로 직장도 5년 동안 여섯번이나 옮긴적도 있다. 결국 지금은 작은 회사에 들어가 마지못해 일를 하지만 인간관계뿐만아니라 연애도 못한다. 방 안에는 언제나 술, 담배, 커피, 탄산음료, 초코렛과 과자로 가득하며 그것들로 끼니를 대신하니 고도 비만으로 인한 건강 문제도 심각하다.

 

10년 전 새벽에 엄마에게 다급하게 전화가 와서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다는 말에 놀라서 남편과 함께 달려간 적이 있다. 남동생이 혼나고는 소리를 지르면서 아버지를 넘어뜨렸다고 했다. 그 일 이후 남동생은 몇 달 동안 엄마에게 세상천지에 불효막심한 아들이 되었다. 3년전에는 엄마와 남동생이 대화를 하다가 조카들 앞에서 갑자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식탁 의자를 집어 든 적이 있었다. 조카가 “삼촌 지금 뭐 하는거야?” 하고 따져 묻자 의자를 내려 놓고 집을 나간 뒤로부터 남동생을 본 적이 없다. 부적절한 분노 표출뒤의 후회와 자기 비난으로 집안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식구들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작년에 엄마 입원문제로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자기를 그만 괴롭히라면서 집에 찾아와 죽여버리겠다는 문자를 끝으로 더는 연락마저도 안 하고 있다.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남동생과 시시비비를 가리다가 남동생의 자기 파괴적 행동이 표출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자율성대신 엄마가 시키는대로 하고 살았던 남동생은 내면은 공허하고, 자아는 빈약하여 현실세계를 탐색하고 배울 수 없게 되었다. 동생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던 과대 자기를 버리고, 자신의 힘이 그렇게 크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제한적이며, 사람들과의 관계는 불완전하기에 노력해야하고, 달콤하지만은 않은 현실속에서 의미를 찾으며 살아야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남동생은 언제나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못한 것은 부모가 집을 사주지 않아서이고, 작은 회사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외국계 회사에 최종 면접까지갔는데 나쁜 간부가 자신을 훼방놔서 그렇고,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은 문제있는 사람때문이라면서 자신은 지금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다고 억울해한다.

 

엄마는 남동생이 어릴 적부터 그 누구도 스트레스를 주지말라고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숨겼다. 어릴 적 아버지가 남동생을 혼내려 하면 엄마는 언제나 나서서 동생을 방으로 들여보내고는 대신 아버지랑 싸웠다. 애가 뭘 아냐고 안가르쳐도 나이들면 다 철이 든다면서 화를 내셨다. 그래서 엄마는 언제나 아버지 몰래 돈을 대주고, 부도가 나도 아버지한테는 알리지도 않았고 아들이 잘못되서 죽을까봐 혼자서 불안해하신다. 70대 중반인 엄마는 평생 안보고 살았던 삶에서의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된 지금, 아들을 보면서 기대했던 꿈은 실현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바랬던 관계가 다 어그러져 암담해하신다.

 

남동생은 상처받는 걸 극도로 두려워한다. 자신이 없기 때문에 실패할 바에 차라리 처음부터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시도조차 하지 않는게 큰 문제이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도전할때마다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무턱대고 아무것도 하지않는다. 어릴적 엄마와의 관계가 외부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회피나 부적응의 행동패턴이 형성된데는 직접적인 원인이 반드시 있다고 배웠다. 엄마는 남동생의 주체성을 소중하게 여긴적이 없다. 남동생은 자기 선택이나 기분을 존중받아본적이 없다. 당사자의 의지와 무관한 일을 시키거나 욕구를 억압시키다가 그것도 못하냐는 식의 질책으로 엄마에게 이중부정을 당하고 살았다. 엄마는 제대로 남동생의 말을 귀담아 들은 적이 없으시다. 주체성이 살아 있어야 자기 인생의 결정권과 책임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남동생이 아주 작은 일에 죽고 사는 문제로 발작을 하는 것은 주체성을 부인당하는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사실 부모가 책임감이 강하면 아이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해야할 일과 자기생각을 굳건히 유지한다. 현실세계에서 제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능력도 약화되고 저항력도 잃을텐데 동생이 안쓰럽다. 나 역시 한 번도 남동생마음을 읽어주고 존중해준적이 없다. 지치고 힘들 때 분발하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힘들 때 잘 쉬어야 한다고 격려를 해준적도 없다. 우리식구 모두 그랬다. 쉬어야할 지점에 강제적으로 무언가를 강요해서 상처가 점점 커지고, 전반적이고 만성적인 회피상태로 악화된 것이다. 살다보면 무엇에, 누군가와 맞지 않을 때 다른 것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여져 피난처를 발견하고, 실패를 했었도 다른 것은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어야 하는데 남동생은 그러지 못했고 늘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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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