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컴플렉스 후기

난요
202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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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세 시기의 기억을 찾기. 사실 정말 어떤 기억도 짙게 남아있지 않고, 있는 기억들도 남아있는 사진들에 기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의심도 된다. 일단 현재 내 상태와 감정, 관계를 바탕으로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려고 한다. 우선 나는 20대 중후반 즈음까지도 아빠를 좋아하기보다는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늘 지니고 있는 감사함과는 별개로 인간대 인간으로써 썩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는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가정을 돌보는데는 여유가 없어 거의 방관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구성원들과 시간을 쓰기보단 혼자 TV를 보기에 바빴고, 내가 아빠의 관심을 얻거나 관계를 증진시키려고 질문을 던져도 그것들은 묵살되기 마련이었다. 나는 그래서 항상 '다정한 아빠'를 가진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지금도 내가 부러워했던 몇몇 아이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들이 아버지와 어떤 끈끈한 시간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나는 아빠같은 남자 안만날거야.' 라는 말도 내가 늘 달고 다니던 말 습관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는 꽤 오이디푸스기를 정상적으로 통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요구를 받아들여 청소년기, 지금에 이르기까지 꽤 안정적인 시간을 보냈다. 사회적으로 사람들과 잘 융화되는 편이었고, 도덕적으로 바른 사람이 되는 것에 엄격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감으로써 학생으로서의 성취도 이뤘다. 나름대로 아빠와의 동일시가 되었는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고싶었다. 가족이나 가정보다는 일로써 내 인생에 승부를 보고싶었다. 조금 궁금한 점은 집 바깥에선 그렇게 칼같다가도 집안에선 마냥 늘어져있는 아빠의 모습까지 내게로 내면화 된 것인지, 나 역시 집 바깥에서와 안에서 에너지를 쓰는 모습이 상이했다는 점이다. 내 스스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대단했던 것에 비해, 그리고 밖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이 나를 외향적인 사람으로 아는 것에 비해 난 집 안에선 아빠마냥 축 늘어져있었다. (단편적으로 아빠 영향이라고 할수 없지만 이런 모습도 동일시의 영향을 받는지 좀 궁금하다) 20대 중후반에 아빠의 자리, 대타자의 자리를 어떤 다른 선생님이 점하며 나는 그분과의 동일시, 내면화를 한차례 더 겪은 것 같다. 생활습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아내는 내 태도가 180도 바뀌었고, 우리 엄마 역시 그 부분에 깊게 공감해 나를 그 선생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많이 구분지어 이야기하고는 한다. 


오이디푸스기를 나름대로 통과했다고 생각하는 두번째 이유는 이성에 관한 관심이 사춘기 이후에 항상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늘 결실을 맺지 못하는 형태였고, 말하자면 '짝사랑'의 형태를 띄었다. 늘 내 마음을 꺼내고 드러내는 것에 자신이 없었고 두려웠다. 이런 상태는 초중고를 거쳐 대학생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 이후엔 어쩌다보니 장기연애를 시작하게되었는데, 지나치게 내가 받는 사랑이었어서 관계가 안정적이었떤 것에 비해 나로서 큰 즐거움은 없었다. 또한 그 즈음 '페미니즘'이라는 물결을 만났는데, 그것이 내 무의식 속에 무언가를 건드렸던 것 같다. 그때 이전에도 난 매우 독립적인 성향이 짙었는데, 그런 성향이 더욱 강화되며 남성에 대한 혐오와 환상이 공존하는 상태로 진입했다. 남성을 깎아내리는 발언들 (나의 아버지 경험에서 비롯된- 그는 가부장제 아래서 성공했지만 나와의 관계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나의 이 불만은 일반 남성,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공격으로 강하게 표출되었다.)을 쏟아내는 동시에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이상적인 남성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도 했다. 찌질하지만 '혐오와 환상'은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가 이성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시간이 흘러 성숙해지며 분노가 좀 수그러 들었고 혐오와 환상이 내안에서 일정부분 통합되며 내 스스로가 변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즈음에 현재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남자친구는 성실하고 헌신적인 사람이고, 나 스스로 이런게 사랑한다는 감정이구나!를 느낄 정도로 뜨겁게 연애하고있다. 말하자면 처음으로 내 리비도가 카텍시스된 대상과 쌍방의 연애를 하게 된 최초의 사건인 것이다. 내가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에 스스로도 놀라웠다. 


나는 아버지와 유년기에 도대체 어떤 관계를 맺었던걸까? 몇몇 그 시절의 사진들로 미루어보건대, 일에만 정신을 쏟던 아빠도 내가 어릴 적엔 내 손을 잡고 근처로 둘이서만 놀러다니기도 했던 것 같다. 집 앞 놀이터에서 아빠와 단 둘이 놀았던 사진이 존재한다. (엄마가 베란다에서 몰래 찍어놓았다.) 지하철을 타고 둘이서 어딘가로 놀러간 기억도 있다. 개찰구를 들어선 뒤 선로에 내가 한손에 쥐고 나왔던 애착인형을 놓쳐버려 어린나이에 매우 상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아빠의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차 안에서 잠든 나를 업어서 집으로 데려가는 아빠의 등도 얼핏 스쳐간다. 나와 관련된 기억은 아닌데, 나이가 좀 먹은 중, 고등학교 시절 작은아빠가 득남을 했다. 완전 갓난 아기를 보고, 아빠가 엄청 좋아하며 전에 없던 소리와 몸짓을 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 하고 혼자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우리아빠는 거짓말을 못하는, 그러면서 엄마가 최고인줄 아는 사람이다. 다 큰 뒤 엄마가 예쁘냐, 내가 예쁘냐는 질문에 아빠가 당연히 엄마가 예쁘다고 칼같이 답하기도 했다. 


추측해보건대, 내 최초의 성대상선택은 우리아빠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좋았던 시절이 지나치게 짧았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기엔 아빠가 어느순간부터 너무 바빴던 것 같고, 그 때 이미 나로선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컸기에 큰 좌절이 있었겠다 싶다. 말하자면 짝사랑인 것이다. 시간이 없어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지나치게 공고해 비집고 들어갈 틈 없는... 그러나 어렸을 적의 나는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자상한 아빠'를 분명 만났겠거니 싶다. 어린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좋아했던 아빠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분명 유아 시절의 내게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을거란 의심이 든다. 어느정도 큰 내게 어렸을 때 내가 굉장히 사랑스러웠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었고... 오이디푸스기에 잠시 자상했던 아빠를 만났고, 그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곧 짝사랑으로 변한 것 아닐까? 내 사춘기 이후의 사랑패턴이 그런 방식으로 설명 가능해진다. 또한 자상한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무심하고 무뚝뚝한 모습만 보여주는 아빠에게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런 아빠의 극심한 변화 덕분에 아빠에 대한 미움이 혐오와 비슷한 감정으로 발전해나가고, 더 나아가 일반 남성,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로 확장된 것이 아니었으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굉장히 좋은 매개자였다. 나에게 항상 아빠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해줬고 아빠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열심히 하고있는지를 납득시키려고 굉장히 노력해주셨다. 아빠와의 연결이 깊지 않지만 엄마의 보충이 있었기에 아빠의 요구, 내면화와 동일시가 자연스럽게 일어났을 것이다. 


내 부모님들은 좋은 분들이지만, 나는 종종 내 마음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부모님끼리의 관계가 지나치게 좋아, 아빠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내 안의 어린이가 그 시절부터 간직해온 마음이었던게 아닐까? 나는 유난히 엄마와 말싸움이 잦고, 우린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해오고는 했는데, 그것 역시 동성의 부모에게 어린이가 느끼는 질투심에서 기인한 걸 수도 있겠다 싶다. 


정말 재밌는 것은 나와 부모님의 관계가, 내 스스로 내 짝이라고 느끼는 대상을 만난 이후 급격하게 좋아지기 시작했단 점이다. 사랑을 통해 성숙해졌기 때문인지 엄마와 아빠의 마음과 상황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더 재밌는 점은 지금의 남자친구가 아빠와도 꽤 닮은 점이 많은 사람이란 것이다. 지나치게 프로이트 클리쉐적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삶을 살아태는 태도와 좋은 목소리, 영리해보이는 눈이 꽤 닮았다. 직접적인 기억에서 비롯된 분석은 아닐지라도 이번 분석을 통해서, 조금은 내가 왜 아빠에게 그토록 적대적이었는지 실마리가 풀린 기분이다. 더 좋은 점은 아빠의 자상함이 내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간직되어있음을 느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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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다 듣고 오이디푸스 시기의 자기분석을 하는 것이 강의를 마무리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멜라니 클라인에 관심이 있는데 그들을 공부하는데 프로이드 라는 기본기를 다지는게 좋겠다 싶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강의를 수강하였습니다. 뜻밖에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통찰을 얻게된 것 같아 유의미합니다.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덕분에 어려운 내용을 어렵지않게 잘 공부했습니다. 다음강의에서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