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의 운명, 아픈 강의 그리고 무의식의 진실

변상규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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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재 박사님의 권유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다. 이미 프로이트와의 대화나 박사님의 여러 강연을 통해

모르는 주제가 아니었지만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세계적으로 프로이트 강좌가 있다면 이처럼 (지독할 정도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불편한 무의식을 추적해 가는 강의가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자세하고 깊이 들어간 강의였다.

무척 새로왔던 내용은 성차이 인식에 대한 놀라움이다. 정신분석 공부를 하면서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였다.

성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더 이상 유아기가 아니라는 말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개인적으로 아버지 학교 라는 단체에서

십년이상 강의를 해 왔는데 이번 강좌를 수강하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없이 그저 구호 외치고 피상적인

결심만 하는 아버지 학교 강의를 정말 심도깊게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6년 전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낸 후 성인이 된 딸아이와의 불편한 관계가 떠 올라 그 부분이 나를 몹시 지치게 하기도 했고

깊은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게 한 강의였다. 그래서 강의 도중에 수강을 그만둘까 하는 마음도 품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었다고

했지만 너무 바빴던 일상, 그리고 소원한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아이가 박탈감과 모델링으로서의 아빠 역할을 충분히 해 주지 못한

미안함이 수업 시간 내내 내 마음의 멍을 다시 자극하는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엉뚱하게 철학자 들뢰즈의 앙띠 오이디푸스 생각이 그치지 않았다. 만약 들뢰즈가  이 강의를 좋은 통역이나

번역으로 듣게 되었다면 그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어쩌면 프로이트에 대한 피상적 이해가 그렇게 많은 정신분석에 대한 부정성을

강화시킨 건 아닐까 싶었다. 

학문적으로 나는 대상관계이론과 융심리학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가르쳐오기도 하여 프로이트가 자신의 정신분석을 스스로

심리결정론이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이 박사님의 강의 속에 어느 정도 심리결정론적 이야기들이 나올 때 죄송하지만 살짝

반감이 가기도 했다. 물론 강의 뒷부분에 클라인과 칼 융 코헛의 반박을 간략하게 나마 설명해주셔서 역시 전체적인 구도를 바로

보셨구나 라는 안심이 들기도 했다. 사실 오랫동안 2자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나로서는 이 강좌를 통해 3자 관계의 갈등과

소외감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돌아보는 시간이 가장 귀한 깨우침이 아니었나 싶다. 정말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은 라캉이

언급하였듯 인간 정신의 발달에서 상상계와 상징계를 구분짓는 원초적인 사건이라 생각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나는 이박사님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강의가 모든 교육학 이론에 자세히 첨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이론에 대한 분명한 이해만 있어도 모든 청소년 문제나 왕따 가출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함께 강의를 듣는 분들의 진지함과 솔직함도 강의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했지만 영상으로나마

그 자리의 열정을 공유할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은 여러 주제로 변주되지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통해 나는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화두를 잡게 되었고 또한 오이디푸스 이야기 속에서 소외된 스핑크스의 이야기와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

가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자신의 눈을 닫게 했을 적에 비로서 보이지 않던 진실이 그 앞에 보인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을 찌를 적에 고요히 진실의 빛을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프로이트가 젊은 시절 보았던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신화는 서양인의 심성을 구성하는 원초적 죄의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계시하고 있다. 이제 동양인의 심성 속에 오이디푸스 신화는 어떤 버전으로 해석될까? 이 부분은 마음의 숙제로 남기고 싶다.

온 몸으로 열강해주신 이창재 박사님의 귀한 강의를 고통스럽게 음미하는 시간이었다. 아파서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