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 칼럼

엄마의 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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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삶이 재미가 없고 지루해요. 무엇이든 뻔하고 시시해요. 어떤 것이든 의미가 없어 허망한 마음이 들고 슬퍼요. 저는 남이 부러워하는 연예인이 왜 자살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요. 저 또한 때론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서 죽음의 평화를 맛보고 싶거든요. 어떤 티비 프로에서 귀신은 자신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모르면서 존재하는 영이라는데 정말 그 말이 끔찍하게 느껴졌어요. 지금 제 상태가 그러한데 죽어서도 똑같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담자의 이런 먹먹한 마음에 답변 대신 나는, 마음속으로 무망씨가 원하는 삶에 대한 기대를 상상해본다. 무망씨를 이리 힘들게 만든 게 무엇일까 보다 그녀가 진정 무엇을 바라고 좋아할까 생각해본다. 아기에게 있어서 최초 대상은 엄마다.  그런데 갓 출생한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지기 전에 먼저 자신을 둘러싼 '무한한 세계' 와  먼저 접촉을 한다. 현대정신분석가 비온(Bion)은 아기의 첫 경험을 한계지울 수 없는 실재(물자체)인 'O' 와의 만남으로 칭한다. 그때 아기가 매개자 없이 O를 직접 경험하면 아기의 정신이 감당하지 못해 충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아기와 날것의 실재인 O 사이에서 매개와 완충 역할을 해주며, 아기의 충격을 담아주고 정서적 지지를 해주는 존재인 엄마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마라는 대상이 있어야 아기는 편안한 상태로 존재하고 낯선 세상(O)을 감당할 수 있다. 그래야만 아기는 자신이 경험한 실재(O)의 내용을 조금씩 처리해내어 정서와 인지 기능을 발달시킬 수 있게 된다. 만약 엄마가 불연듯 없어지면  아기는 낯선 자극들, 쏘아대는 세상(O)에 대해 두려움에 빠져서  편안히 관계할  대상 일반이 사라졌다고 생각된다. "엄마가 없어졌구나. 으악, 나도 곧 죽게 될거야."  그러다가 사라졌던 엄마가 돌아오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아기에겐 차츰 대상없음을 견디는 능력이 생긴다.  이것이 훗날 '대상(구원자)' 의 항상된 실존에 대한 믿음인 F(faith)의 토대가 된다. F는 엄마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된 불멸의 신성과 우주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정신증자란 O(실재, 세상)에게서 버려져 접촉이 끊어진 일종의 고아다. 그 사람은 인생의 최초 순간부터 O에 의해서 담겨지지 못한 아기이다. 생명의 원천인 O에게서 버림받음은 곧 엄마에게서 버림 받았음을 뜻한다. 비온에 의하면  O에 대해 적절한 관계 리듬을 형성한 유아는 왠만한 상처를 받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병리는 자신이 O와 엄마와 연관해 받은 충격들에 대해, 온전히 느끼고 사고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다. 정신증자는 탄생 초기의 O의 충격을 소화해내지 못해(엄마가 그 충격을 담아주지 못해),  현실에 대해 온전히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을 형성시키지 못한 자다. 


무망씨는 늘 삶에 대해 극단적으로 예측하며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친밀한 대상이 자신에게 대체로 무심하고 상처주고 있으며, 좋아하는 대상은 언제나 나쁘게 헤어지고, 좋은 배우자나 공부 잘하고 말잘 듣는 자녀는 자신과 상관없는 부러운 이웃의 일이다. 한번 나쁜 사람은 어떤 좋은 가능성도 없으며, 자신은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고 딱히 배우고 싶고 하고 싶도 없다. 긍정적이고 행복해하는 사람과 접촉하면 보통의 경우 그 좋은 감정이 흡수되어 기분이 좋아지지만 무망씨랑 함께 하는 사람은 그녀의 혼란과 무망감이 고스란히 느껴질 것이다. 상담자가 무망씨에게 "오늘 옷이 참 예뻐요."라고 말하면 "왜요?"라고 응답해서 무안했던 순간이 많다. 무망씨에게 "오늘 기분이 매우 나빠 보여요. 어떤 게 불만이고 누구에게 상처를 받았나요?" 라는 질문을 하면 상담시간 전부 불행에 관한 응답을 받게 된다. 


엄마의 몽상은 아기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이게 뭘까?" 상상하며 분류하는 능력이다. 엄마가 "우리 아기가 졸려서 짜증이 났구나. 그래서 속상하구나." 라는 말을 하면 아기는 그 말 자체를 알아듣는다는 것보다 자신의 불편감을 소화시켜주는 엄마의 (알파)정신상태가 아이에게 느껴지게 된다. 엄마의 담아주는 기능을 경험해야 유아에게 고통자극을 견디고 소화해내는 자아기능(알파기능)이 활성화되어 생각하는 능력이 발달된다. 아기를 바라보며 자부심과 사랑 감정을 느끼며 아기에게 화답하는 엄마를 상상해보자. 아기의 마음을 생각할 수 있는 엄마의 능력이 곧 세상의 낯선 자극들을 소화해내는 정신활동(알파기능)이다. 


   나는 무망씨의 불행한 일상의 보고를 듣고 무의식을 분석하는 대신 오늘도 이러 저러한 현실적 이야기로 상담을 시작한다. "선생님 지난 주 프렌치 레스토랑에 갔었는데요. 기대한데로 맛있어서 친구들과 한 번 더 갔죠. 헌데 메뉴가 같아서인지 맛도 그냥 그렇고 별로 친절하지 않더라구요." (종업원이 무망씨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상담자는 무망씨에게 다양한 메뉴를 선택해서 경험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쿠킹 클래스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여러 정보에 만족해하면서 안심했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의 경험처럼 상담이나 상담자에 대해 실망했을 때 그냥 회피하지말고 상처를 받았다고 꼭 표현해줘요." 라고 부탁을 하였다. 내담자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상담자와도 관련이 있기때문이다. 무망씨는 실망한 표면적인 이유외에 자신의 깊은 상처와 연관된 원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충격 받은 고통자극에 대해 기억하고 생각해내는 기능이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자 또한 그녀가 겪은 상처에 대한 깊은 해석은 마음에만 담아 둘때가 많았다. 


환상에 의지해 살고 있는데 그것의 실체가 드러나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무망씨는 정곡을 찌를 때 자존심 상해하고 수치스러워 어쩔줄을 몰라하는 취약한 사람이다. 그녀는 사소한 좌절조차도 정신에 담아낼 수가 없어 오랜시간 박해불안에 시달렸다. 그래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누군가에게 쏟아 내야한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어제와 다른 태도로 자신을 소홀하게 대하면 거부를 당하는 것으로 여겨져 온통 욕을 하고 다닌다. 자신의 부정적인 느낌이 사실과 분간이 되질 않아서 그렇다. 얼마 전 친 언니가 라섹 수술을 해서 자유로워졌는데 부럽지만 자신은 수술을 하게되면 의사의 실수로 망막박리가 일어나 실명하게 될 수 있으니 수술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한다. 정신에는 사고작용의 신진대사를 거치지 못해 정서적 내용으로 자각되지 못한 요소들이 있다. 비온은 이를 베타요소라 칭했다.  베타요소가 과대 축적되면 고통이 처리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원시적 정서덩어리들이 정신에 꽉 차서 공포와 불안을 일으킨다. 


그것에는 인생의 최초 순간들에 겪은 충격이(재앙) 담겨 있어  현실에서 부정적 자극이라도 들어오면 극도로 민감해져서 그 어떤 의존도 못한 채 철수한다. "다 필요없어. 믿을 수 없어. 소용없어." 라는 원망과 무망감이 그녀의 정신을 꽉 메운다. 그녀에겐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자극에 대해 현실상황에 맞게 생각해내는 능력이 없기때문이다. 무망씨의 꿈은 늘 전쟁터이고 재난상황이다. 좌절을 견뎌내는 능력이 있어야 베타요소가 알파요소로 바뀌는데, 그 능력이 없다. 꿈에서 정서를 폭발하며 싸우거나 죽이는 상황은 해결해야할 정서적 고통을 소화하지못한 채 단숨에 없애버리는(비워내는)징표이다. 그녀에겐 낯설고 충젹적인 세상(O)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줄, 견뎌낼 힘을 주는 믿음의 대상과 믿음(F)이 없다. 그 결과 현실에서 어떠한 욕망도 추구할 수 없게 되고 타자들과 신뢰로운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을 수 없게 되었다. 


    비온은 유아가 엄마로부터 담겨지는(containing) 경험을 못할 때 파괴성을 갖게 된다고 보았다. 그 파괴성은 애정어린 매개자에 의해 담겨져야 비로소 통제되고 현실의 목표를 향해 사용될 수 있다. 담아주기는 존재를 (신체와 정신을 함께) 수용해주는 것이다. 엄마의 기능은 생각할 수 없는 아기의 생각이전의 생각, 원 정서, 최초의 경험(경험으로 소화되지 않은 경험)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치료자는 내면에서 활발한 사고와 몽상 활동으로 내담자가 소화하지 못한 상처를(베타요소) 떠올려 대신 소화해내어 내담자가 감당할 수 있는 요소로 전환시켜 되돌려 준다. 이런 상담 관계 율동이  내담자의 사고 능력을 활성화시킨다.  


무망씨는 상담시간에 꿈을 꾸는 대신 성서에 자신을 투사해서 무의식을 바라보곤 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예수님의 부활 사화들, 나인성 과부의 아들, 달란트의 비유, 향유를 부은 여인, 부자와 나자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등을 가지고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상처받지 않고 해나갔다. 상담자가 덧붙여 새로운 의미를 생각해 낼 수 있는 역량을 촉진시켜주는 것만으로 상담자를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대접을 해주었다.  분석은 건강한 대상관계를 촉진시키는 역할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자아가 스스로 고통을 겪는 것을 통해서 진실된 삶을 살수있게 해준다.  자아가 현실의 고통을 감당해낼 수 없어서 도망간 것이 병의 근원이기때문이다. 고통을 겪어낼 수 있는 것이 건강함의 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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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