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 칼럼

'존재의 목적'- paralyz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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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lyze2  '존재의 목적'

삶의 의미와 현실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인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주인공 영군이를 동일시하여 웃고 울었던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그 아픔을 공감해본다. 어렸을 때 영군(임수정)을 양육해준 외할머니는 쥐를 키우고 돌보면서 자신이 쥐의 엄마라는 망상(Paranoia)을 가진 정신분열(Schizophrenia) 환자이다. 쥐처럼 무를 갉아먹는 할머니는 ‘비현실감’속에 삶의 의미와 현실을 잃어버린 분이시다. “할머니가 라디오를 듣는 걸 좋아해요. 시간가는 걸 알려고요. 종일 집에만 있으니까요. 할머니한테는 나 밖에 없어요! 신통방통한 영군이가 만들어준 라디오를 듣는 것을 할머니는 제일 좋아해요!” 


영군이 엄마는 모성이 부족해서 영군이를 보호하고 일관성있게 보살피지 못할뿐더러 안정적인 것을 기대하기 힘든 불안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감정적으로 드라이하고, 매우 단조롭고, 자신의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에 무관심하고  따뜻한 관심을 주지 못하는 냉정한 엄마는 영군이에게 ‘벽’ 같은 존재였다.  영군이는 엄마랑 접촉되고 연결되는 ‘섬세한 돌봄’ 을 받지 못했지만 대신 할머니가 영군이를 돌봐주었다. 그래서 유일한 애착대상인 할머니가 사라진 순간 영군이는 존재의 목적을 상실했던 것이다. 정서교환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걸 다른 사람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표현하기 어려운 영군이 또한 유사 정신자이다. 그래서 할머니가 사라졌을 때 튼튼하지 못했던 ‘자기(Self)’ 의 기초가 상실감(박탈감)으로 무너져 엄청난 불안과 공포를 경험했다. 애착대상이었던 할머니를 잃는 경험은 영군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무를 먹는 것을 싫어해요. 그래서 틀니를 못주게 막아요. 죽여야 해요. 육실할 놈들!  엄마랑 이모, 이모부는 동정심이 없어요. 할머니는 무를 좋아해요... 동정심을 훔쳐가 주세요!” 


영군(임수정)은 존재의 목적,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어한다. 엄마가 딸에게 하는 말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면서 딸에게 각인이 된다. 그래서 할머니의 틀니를 끼고 할머니의 어투를 쓰고 할머니의 존재를 느끼기위해서 기계랑(자판기, 라디오, 형광등) 이야기를 나눈다. “존재의 목적이 한 개만 있었으면...” 그것을 찾는 방법은 할머니를 끌고간 하얀맨(의사를 포함한 병원직원들)들을 죽이고 할머니를 만나서 틀니를 전해주고 다시 할머니와 융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정심(죄책감인 슬퍼하는 감정)때문에 그 일을 실행하기 힘들어 한다. 영군이의 망상은 슬픔에 잠기는 것, 설레임, 망설임, 쓸데없는 공상, 죄책감, 감사함에 대해서 절대 금지를 명령한다. 하지만 실행에 옮겨야 할 때 하얀맨에게도 할머니가 있으면 어쩌나? 그래서 하얀맨의 할머니가 슬퍼하면 어쩌나? 해서 죽이는 것을 실행할 수 없다. 


이러한 왜곡된 영군이의 말과 생각들은 사실 인간적이고 대인관계적인 의미를 지닌다. 아이는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할 수 있는 모순을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수 있는 기회와 가족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기여’ 하고 참여하길 바란다. 아이는 발달하면서 부분적 감각지각들을 하나로 ‘연결’시켜 통합 사고를 형성해가는데, 이런 연결 고리가 손상-마비된 경우가 ‘정신병’ 상태이다. 보통사람들은 상징적 언어세계가 안정되게 내면화되어 부분적 지각들이 통합된 사고로 부드럽게 연결된다. 그러나 안전한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영군이 같은 사람은 이 연결고리가 손상-마비-왜곡되어 자신에 관한 진실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이것은 극심한 불안에서부터 온 심리적 상처에 대한 방어적 증상이다. 현실감이나 자기긍정감도 엄마가 보강해주지 않으면 정착되지 않기 때문에 엄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딸의 인격은 곧 엄마의 인격이 된다. 


인격 성장은 그의 타고난 경향성을 자연스레 배려해주고 개인적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아주는 누군가의 예민성에 의존하게 된다. 영군이에게 그 역할을 해주는 운명적 존재가 바로 일순이다. 영군이를 돕는 일순(정지훈/비)은 뭐든 훔쳐야만 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를 지녔다. 반사회적 경향성은 정서박탈로 인한 어려움과 관련된다. 일순은 사춘기때 엄마에게 버림을 받았다. 대상관계의 연속성이 깨져 정서 발달이 보류된 상태이기에 그 간격을 거슬러 올라가고자 할 때 훔치기 행동을 하는데, 일순이의 훔치는 행동은 엄마의 사랑을 도둑 맞았다는 무의식적-유아적 느낌의 표현이다. 그래서 어떤 물건을 훔칠 때 “내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야 겠다.” 고 생각한다. 엄마만큼 소중한 것이 없기에 자신이 실패한 무엇인가를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다. 


사랑받고 싶지만 그렇게 될 희망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그순간에는 사랑(도둑질 해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해주는…)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옆에 있는데도 부모는 나를 없는 것 처럼 여겼어요! 그래서 도둑이 되었어요.” 재판중에 판사가 “넌 존재가치가 없다고(점으로 소멸되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사라질까봐 일순이는 존재하기위해 더 많이 훔치고 또 훔쳐야만 했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동정심을 느낄 수 없는 질병이다. 일순이가 반사회적 행동을 통해 엄마와의 사회와의 연결을 회복하려한다는 것을 알고 판사를 비롯해서 누군가가 일순이의 반사회적인 행동에 철수나 보복하지 않고 인격적인 힘으로 버텨주는 역할을 해주었다면 일순이는 타인을 상처입힌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회복시키는 능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일순은 영군이의 동정심을 훔치고 나자 비로소 슬픔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일순은 수면비행 방법을 훔쳐 영군이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고, 요들송을 훔쳐 우울한 영군이를 위로해주고, 사이보그의 밥먹는 장치가 고장나면 평생A/S수리를 해준다고 말함으로써 안전한 애착대상이 되어준다. 현실에서 심하게 정서적으로 철수된 상태에 있는 사람의 상상속엔 사실 생명력을 촉진 시켜주는 대상(내적/외적)이 아무도 없다. 인격의 형태가 없는 것이 ‘사이보그’ 이다. 영군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정신 안에는 대인관계적 의미가 없다. 그들의 축처진 멍한 표정, 차갑고 공허한 표정, 겁에 질린 표정은 ‘발달의 죽음상태’ 그자체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신을 방어할 능력조차 사용할 수 없는 외부지원이 절실한 사람들이다. 공허감에 시달리며 아무런 희망을 느끼 못해 말을 꾸며대는 작화증 여자, 너무 겸손해서 앞으로 걷지 못하고 자기탓만 하는 남자,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기위해 뽐내는 자기도취적인 요들송아가씨, 신생아때 쓰던 기저귀 고무줄을 찾는 남자. 이들의 정신은 분리의 관점이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자신과 타인을 혼동(CON-FUSION)한다. 이들은 자신이 되었다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가 한다. 영군을 포함한 그의 동료들은 누군가와 완전히 하나가 되고 싶고 얽히고 싶은 소망이 크다. 영군이가 할머니와 자신을 분리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과의 정신적 연결을 유지하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인해 이별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무데도 아닌 곳에 홀로 남겨진 상태’ 를 두려워하는데 현실의 어떤 것을 상실하는 것이 아닌 자기의 정신세계를(내적세계와  내적대상) 잃는 공포를 지녔다. 클라인이 말하는 나쁜 경험을 투사로 내버리는 능력이 없어 공포나 고통과 거리룰 둘 수도 없었고, 싸울 수 없어 공허하고 무기력할 뿐이었다. 영군이는 일순이 자기분노를 ‘투사’할 수 안전한 대상이 되어주자 마음껏 할머니를 빼앗긴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영군이는 터미네이터가 되어 총으로 무참히 하얀맨들을 쏴 죽일 수있게 되었다. 나쁜 경험을(분노) 바깥으로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심각하게도 그 경험을 받아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영군이는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마다 할머니의 틀니에 집요하게 매달렸는데 틀니를 상실하면 자기전부를 상실당하는 것 같아서 그렇다. 영군이가 할머니를 잃고 절망에 빠져 따스한 사랑의 힘인 슬픔에 잠기는 것, 설레임, 망설임, 쓸데없는 공상, 죄책감, 감사함을 파괴하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영군이가 할머니를 애도하기 전에 할머니가 나타났다가 고무줄의 ‘탄성’으로 튕겨 사라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고무줄(끈)은 접촉의 상징이다. 


이것이 결핍되었을 때 정신은 해체된다. 차갑고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엄마를 유아는 구별할 능력이 없다. 버림받았다고 얼마나 힘들었지를 이해한다고 보여주는 의사의 공감반응이 영군이에게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일순은 영군에게 엄마나 할머니가 주었던 희미한 연결보다 더 유연하면서도 강한 유대를 해주었다. 그래서 영군이는 할머니와의 연결점을 그리워하면서도 친숙했던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애도’ 에 성공하고 새로운 관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성취하게 된다.  ‘성격은 타고난다’ 고 생각하는데 심리학적으로 보면 ‘성격은 형성된다’ 는 말이 맞다. 성격이 형성되는 발달시기마다 결정적 열할을 하는 부모에게 받는 것이다. 정신병은 인간의 성격요소와 존재요소에 관련되어 있는데, 우리가 단지 정신병이 없는 의미에서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면 우리는 참 빈곤한 것이라고 했던 위니캇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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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