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 칼럼

'경계'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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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인격장애 시리즈 - ‘경계를 세우다’

 

자기 내면의 상처를 인정하기 두려워하는 경계선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특히 인간관계에서 ‘과잉보상’을 받으려고 합니다. 위태로운 자화상을 갖고 있으면서도 엄마를 이상화시켜서 얼마나 애정을 베풀어주었는지, 가여운지를 상상하면서 과잉보상을 하려고 해요. 즉, 엄마와의 관계에서 경계를 세우지 못한 경험을 연결지어 자신과 관련 없는 사람에게 과한 관심과 애정도 쏟아 부어요. 하지만 자신을 보호해주는 심리적 경계가 약하면 다른 사람의 기분을 정확히 맞추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하면서도 적절한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기와의 연결은 없습니다. 경계가 얇은 경계선자는 관계하는 대상에 대해 감정적으로 고압적인데요. 자신의 엄마처럼 원하는 만큼 응답이 없으면, 그 대상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죄책감을 심어줍니다. 결국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스트레스와 문제들 배설을 받아주는 배설통이 되는 것입니다. 애정을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과 정서적 자원을 계속 내어주는데요. 자신을 보호해주는 경계가 없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면서‘자기 정체성’을 찾습니다. 


하지만 접촉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때론 ‘아니야’라고 거절하고 순응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은 자신을 되찾고 회복하는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기대라는 것은 한 사람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거든요. 상대방이 잘못된 기대를 한다면 거기엔 자신이 기여한 부분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만능 해결사, 구원자 노릇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자신의 생각, 믿음, 욕구, 감정, 신체적, 정서적 공간)과 다른 사람을 분리하는 명확한 한계, 즉 경계는 온전한 관계를 발전시키며 정신 건강에 있어 필수요소입니다.  '경계'는 개인적 한계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좌절을 겪어본 사람은, 어린 아이조차 본능적-경험적으로 경계의 의미를 이해합니다.  다른 사람의 반응에 상관없이 주어진 경계에 반응을 하고 유지해나가요.(자신이 싫어하거나 불안하게 느껴지는 건 좀처럼 안 합니다.) 


명확한 한계를 정해서 실천하고 그러한 행동을 유지하는 능력은 wellness(신체,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꼭 필요한 기능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경계들을 내면화해야 할 아동기에 경계 의식이 부족한 경우 그와 유사하게 성인기에도 경계를 세우기 어려워하는 양상으로 이어집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주관적 감정과 의견을 타인들과 공존하는 현실과 분리해 지각할 정신적 공간이 형성되지 못했다면, 부모의 융합적 사고에 동조하면서 계속 지내왔다면,  고유의 개성을 지닌 자신의 참 자기(true self)를 표현할 기회를 사용하지도 발현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는 살아온 경험에 얽힌 상처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자식을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만 봅니다. 이런 (특히 경계선 성향)부모는 자녀에게 온갖 시름과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아이를 친구처럼 대하지요.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문젯거리나 부부사이의 부조리를 폭로합니다. 이러한 역학에서는 자식의 고유한 정서적 경계가 침범 당해 무너지고 맙니다.

 

엄마의 감정조절이나 감정 확인은 자녀의 심리적 경계를 세우는데 일조합니다. 감정조절이나 감정 확인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넘쳐나는 감정에 휩쓸려버리지요. 대처란 스트레스 상황에서 생기는 불안감을 처리하는 전략인데, 아이가 엄마를 모델로 삼아 배우지 못했다면 절대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부모와의 유대 관계를 의식적으로 주목해 관찰하는 이유는, 아이가 부모의 믿음과 습관, 대응 행동까지 본받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휴일을 보내는 방식에 조차 부모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최초 대상(엄마)와의 과도한 밀착 상태 경험은, 나와 타자가 분리된 존재라는 자각의 부족으로 인해, 잘못된 정서적 활성화가 모든 대상관계로 퍼져나갑니다. 밀착 부모는 아이를 평생 통제할 수 없을까봐 두려워하고, 아이는 부모에게 외면당할까봐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진정한 자신'으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현실을 검증하고 적응하는 자아와 '참 자기' 사이의 진정한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현실감 결여) 그래서 밀착 패턴에 빠진 사람은 외부대상들에게 거짓 친근함을 느낍니다. 


진정한 친근감이란 명확한 경계와 분리된 현실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인이 다름을 인정하면서 감정을 공유하면, 현실을 공유한 친밀한 유대감이 형성됩니다.  어린시절의 과도한 밀착 관계 패턴은 성인기에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밀착 관계자는 자신의 고유 욕구를 적극 부인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은 커녕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자신의 한계를 결정하는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나/대상 사이 경계를 세우지 못한 사람은, 부모에게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자신의 정서적 심리적 웰빙을 희생시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일단 이런 인격 구조가 형성되면, 세월이 흘러가도 밀착관계 기쁨외엔 매사 무가치하고 아무 즐거움이 없어요. 


인격의 핵심 욕구가 드러나지 않으면 자신의 고유 인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분노와 억울함이 마음속에 커져 갑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부모를 원망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부모로부터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에 얽히면서, 원인모르게 반복되는 특정 감정 중독 상태의 악순환이 일어납니다.(여러 양태의 중독으로 '전치'되곤 합니다.) 진정한 친밀감이란 나와 타인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세우면서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경계를 세우는 법을 알거나 배우자마자 서로가 자신의 고유 모습 그대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납니다.

 

‘경계 세우기’는 경계선 치유 작업의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안정된 경계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하도록 돕는데요. 경계는 매사 적절하지 못하고, 받아 들여지지 않아서 진짜가 뭔지 모르겠고, 훌륭한 게 없고 무가치하다고 여겨지는 느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축대 기능을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경계가 세워지면 안전해서 자신의 진정한 요구와 욕구를 표현하고 지킬 수가 있어요. (트라우마는 좋지 못한 대처와 함께 신체에 생리적 영양을 미치는데) 경계가 견실하면 자율신경계의 반응도 잘 조절되고, 필수적인 욕구를 부인하는 것에서 생겨나는 억울함을 제거할 수가 있게 됩니다. 자아 경계(ego boundary)는 정신건강에 필수인데, 경계가 존재하지 않거나 꾸준히 침범 당하는 밀착상태에서 성장한 사람은 경계를 무서워하게 됩니다.(경계선자의 혼자 남는, 버림받는 공포도 경계 상실로 생겨난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실에 근거한 두려움이기보다 잘못 형성된 정체감 혼미에서 비롯된 공포입니다. 


경계를 세우는 데 여러 방해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자신이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면, 상대가 자신을 좋아해주고 인정해줄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을 퍼부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에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알고 그것을 전달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아니요’라고 거절하고 항상 순응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은 자신을 되찾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하는 친절한 행동이에요. 


둘째, 경계를 너무 엄격하게 세우는 거예요. 이런 사람은 경계를 넘는 사람에게 매우 엄격한 행동 규칙을 적용하면서 상호 연결을 하지 않아요. 정서적으로 침잠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고 자발적인 연결이 어려워집니다. 경계가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세계관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자신의 믿음이나 감정을 너무 단호하게 고집하면 주변 사람과 분리되어 연결될 수가 없어요. 하나의 고립된 섬이 됩니다.

 

어린시절 주요 애착대상에게 경계를 침범당하면 다른 관계에서도 불안감을 과하게 느끼게 되고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경계가 없거나 느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분에 맞추고, 다른 사람의 기준이 자기 것이 되고, '싫어요'(no)를 못하죠. 반면에 경계가 높은 사람은 아주 소수와 관계하고 거부 당하는 것에 두려움이 커서 도움을 청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요구도 못하지만 다른 사람의 거절도 잘 수용하질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최후통첩이에요. 이렇게 불공평하게 주고받는 소모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후통첩은 누군가의 행동을 억지로 바꾸려는 것이지만, 자아 경계의 주기능은 무엇보다 자신의 고유 욕구를 온전히 지키고 충족하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거나 침범당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달라지라고 비난하는 대신 “내 욕구를 잘 충족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자문해야 합니다.

 

경계의 유형에는 첫째로, 신체적 경계가 있어요. 느슨한 신체 경계를 가졌을 경우 자신의 외모, 신체 능력, 다른 사람의 성적인 취향에 따라 자신의 가치감이 정해집니다. 또는 정신이 몸과 온전히 연결되지 않아 신체적인 욕구와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중독이나 많이 자거나 먹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반면에 너무 과한 신체적 경계를 세우면 자신의 신체에 압도당할 수 있고 감각을 과도 억제할 수 있어요.(먹는 것, 자는 것, 쉬는 것을 죄로 여기는 경우)  몸의 욕구를 존중하는 것은 개인적 공간의 경계를 정하고, 선호하는 신체 접촉 정도를 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필수 수면과 적절한 음식 섭취, 몸을 적절히 움직이는 방식 같은 자기 돌봄의 욕구를 의식하고 실천하는 것도 '경계' 강도의 적절성과 연관됩니다.

 

자신의 에너지 자원을 타인에게 헤프게 퍼줄 경우,  통제력이 없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관계가 짐처럼 느껴집니다. 경계가 낮은 사람은 타인에게 끝없이 베풀고 실수에 너그럽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가족에게 불공평하게 주고받는 소모적 관계를 합니다. 시간은 값진 자원인데 공짜로 내어줍니다. 자신이 관심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내는 것에 거절을 못합니다.  반면에 경계가 너무 엄격한 사람은 사전에 정해진 데로만 행동하지요. 자신이 지닌 자원을 소비하는 방법에 융통성이 부족하면 자기의 다양한 욕구들이 특정 틀에 제한되어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정신적 경계'가 있는데요. 느슨한 정신적 경계를 가진 사람은 주변인의 정서 상태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필요성을 자신에게 내재화 해요.(이 경우 상대방의 요구가 과도하게 들리게 되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욕구를 항상 충족시켜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경계 없음은 자신이 소유한 자원에 큰 해가 됩니다. 


정서를 과잉으로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요? 세상에는 혼자만 간직할 수 있는 것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배우고 허락 받지 못한 사람은 정서를 과잉으로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밀착적인 부모가 모델이 되었고,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밝히라는 요구를 받았거나 발달 단계에서 적절하지 못한 불필요한 과도한 양의 정보에 노출되어 그렇습니다. 이런 양육을 받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늘 과잉 공유가 일어나기 때문이죠. 또한 마치 공기 주입기처럼 자기도 모르게 들은 모든 얘기가 세어나갑니다. 경계 없이 나중에 후회할 말까지 하고 말아요. 자신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이나 느낌은 자신의 소유이니까 다른 사람과 공유할지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을 지는 선택사항이에요. 

 

특히 정서가 무경계이면 반드시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떠넘기게 되는데요. 가령,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는 것은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위가 될 수 있어요. 만나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람과 함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사실 상대방의 정서를 공감하지 못하니까 자신의 정서적 문제를 상대방에게 쏟아내는 거죠. 사실 이러한 감정 분출은 자신의 부정적인 강박적 생각을 배출(배설)하는 것인데요.  이미 자신이 소화 못한 감정에 중독된 인격부분이 있는 거예요.  그런 분은 사실 늘 같은 생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에요.  이런 배설적 분출로는 고조된 정서 상태가 더욱 더 강화되고 반복될 뿐입니다. 


불안해서 화가 날 때는 상담에서처럼 대화가 가능한 사람에게 도움과 지도를 청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크게 도움이 됩니다. 사람은 어떤 도움의 필요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경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납니다. 무경계 상태로 감정을 떠넘기는 사람은 우울하고 부정적인 얘기를 할 때만 편해집니다.(항상성) 이런 경계선자는 익숙하지 않은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불편함을 느끼고, 보다 고통스러운 쪽으로 대화의 방향을 돌려놓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경계가 미약한 두 사람이 부정적인 얘기로 돈독함을 다지면 자율신경계 활성화의 악순환에 갇히게 되지요.(소화장애부터 우울증)

 

경계를 사용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요? 자주 침범 당하는 경계가 무엇인가요? 생각해보세요. 경계는 연습하면 할수록 더 잘 세울 수 있어요. 그리고 경계를 세우면 쌓였던 분노와 억울함이 사라져 마음이 확장되어 영양을 공급 받는 것과 같아집니다. 또한 경계를 세우면 자신을 돕는 내면의 평화로운 직관적 목소리와 연결이 됩니다. 직관이란 무의식적 지혜를 일컫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개념이에요. 자신을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사람에게 나타나지요. 부모가 자식의 현실을 부정할 때는 무의식적인 직감, 육감을 부인하라고 가르치는 셈입니다. 자신을 불신하면 할수록 직관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내적 갈등만 생겨납니다. 


자신과 외부 현실에 대한 점진적 검증이 중요한 정신 발달 시기에, 엄마로부터 아이의 고유 경계를 부정 당하면 정말 심각한 일이 벌어집니다. 경계 없는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아이에게 배설해 전염시키기만 할 뿐, 아이의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봐주거나 아이의 말을 온전히 들어주지 않는 경험은, 정신이 미성숙한 아이에게 부모와 정서적으로 단절된 소외감을 일으킵니다. 이 경우 생존을 위해 부모 눈치를 보게 되어,  나중에 성인이 되서도 우유부단하고 주체적 선택과 결정을 미루는 버릇이 생겨납니다.


경계를 세우면 어김없이 지켜나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한 예로 누군가로 인해 경계를 세웠다가 무너트리게 된다면 내 경계를 짓밟는 그 사람의 행동을 강화하는 꼴이 됩니다.  무엇에 대한 기대는 일방적인 것이 아닌데요. 경계를 지켜나간다면 자신의 기대를 위해 노력을 하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없는지를 인정하게 됩니다. 어릴적 부모가 아이의 일기를 봤다면 이런 사적 영역의 침입은 아이에게 수치심을 안겨줍니다. 때론 일기 내용을 읽고 아이에게 좋다 나쁘다 판단하게 되면 아이는 사람들이 대체로 경계를 침범한다고 착각하여 경계선이 사라지게 됩니다. 경계를 침범하는 행동이 친밀감이나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경계가 느슨한 사람은 반드시 절대적 한계를 정해 놓고 타협을 하지말아야 해요. 타협이 없는 영역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진빠지게 하는 사람의 연락을 중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의 경계를 설명할 때는 가능한 객관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로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을 때 경계를 전달해야겠지요. '경계를 표현'하고 나서는 다른 사람의 기분이 어떨지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반응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에 정신을 집중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어려운 상대에게 경계를 세웠다면, 상대의 반응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차분하게 나의 현실에 충실하면서 자신을 방어하며 과잉 설명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야 합니다.

 

물론 경계를 세우고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내면에서 외부에서 혼돈과 반발, 비난에 부딪힐 수 있어요. 이와 동시에 의혹에 사로잡히거나 자신의 익숙한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밀착된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정입니다. 어떤 게 있을까요? 밀착 대상과 일치하지 않으면 혼자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나겠죠. 많이 외롭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현실적인 결과라기보다 어릴적부터 그리 경험한 패턴과 조건화 때문에(핵심 정체성) 다시 경계를 허물고 싶은 불안이에요. 그러니 경계를 세우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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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