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 칼럼

엄마라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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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야, 너는 엄마 삶의 전부란다.  네가 원하는 건 다 해줄 수 있으니 엄마만 믿으면 돼." "야 이 멍청한 것아.  너를 위해 엄마가 모든 걸 다 바쳤는데, 고작 고것 밖에 못하"니. 차라리 없어져 버려!"

 

반복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일수록 엄마와의 불안정한 관계가 존재합니다. 엄마와 자녀 사이가 부정적 관계 모습이 명백한 경우도 있지만 표면적으로 원만해 보여도 사실은 자녀가 엄마에게 조종-지배당하면서 여러 형태로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와의 알력이나 거부감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나마 문제와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마에 대한 반발은 자기를 회복하는 과정의 시작일 수 있으며, 건강하지 못한 거대 엄마의 압력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엄마와 자신이 사이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일방적으로 순종하거나 엄마-자식 역할이 바뀌어 엄마를 헌신적으로 돌보기도 합니다.  싸우지 않는 사이, 친구 같은 사이, 효심이 깊은 자식과 부모 사이를 이상적으로 생각하지만 부모 상황에 휘둘려 자신의 인생을 희생당하고 사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엄마를 만날 때마다 기분이 우울해지거나 상처 받아서 불쾌한 기분이 반복해서 드는 경우는 그 심리적 배후에 유아기에 내면화된 엄마관계 불안정 애착 흔적이 숨겨져 있곤 합니다. 


엄마와 분리 못한 채 사는 '엄마라는 병'은 단순히 정서적 문제만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와의 관계가 온전하지 않으면 인생 전체가 평생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인관계, 부부관계, 이성에 대한 애정, 공부나 일, 사회적 스트레스, 수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어린시절 엄마와 함께 지낸 친밀한 관계 흔적은 뇌와 몸에 각인되고 저장되어 평생 영향을 미칩니다. 엄마를 향한 유아의 욕구는 본능적이고 본질적입니다. 엄마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중-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과 생각이 정신에 자리잡으면 매사 위축되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애정 결핍은 물론이고, 곤란한 상황이나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편안히 의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일이든 관계이든 실망으로 끝나게 됩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거짓 애정과 잘못된 만남임에도, 무턱대고 기대하며 끌려 다니거나 세상과 아무 관계없이 홀로 지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소중한 것을 잃거나 힘겨운 일에 부딪혀 견디기 어려울 때 정신 균형이 깨지면서 자기를 부정하는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곤 합니다.


위니컷에 의하면 인간 정신의 기본적 안정감과 대상 신뢰감은 이미 한두 살에 그 근본 틀이 형성 됩니다. 기질적으로 남을 믿지 못하고 지나치게 경계하고 의심하는 성향이 있다면, 또는 사람에게 아무 기대가 없이 귀찮아하며 접촉 없이 지낸다면, 유아기 엄마에게 온전히 마음 놓고 자신을 맡겼던 경험을 못한 채 불쾌하고 상처 받은 경험이 우세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엄마의 존재감이 너무 과도하게 크면 아이는 주체성을 위협 받습니다. 상황에 맞지 않는 엄마의 과도한 돌봄 자극이 '아이의 자율성 형성'에 부담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그 경우 자신의 의지보다 엄마의 욕망-의향에 따라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되지요. 엄마의 간섭이 버겁지만 비난이 두려워 버거워 그냥 자신의 뜻과 상관없는 것들을 수동적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단 한번 뿐인 자기 인생을 제대로 못살아요. "저는 엄마가 원하는 걸 원해요.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나'가 없어요 !"


서로 융합되어있는 엄마와 딸은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결과로 원치 않는 정신적 부작용에 처하게 됩니다.  가령 새로운 인간관계에 진입을 못하거나, 엄마의 연장선에서 '경계 없이 융합된' 외부 대상 관계를 맺고 나서 자신을 지키기 어려워하는 모습이 상담 사례에서 많이 관찰됩니다.  엄마와 융합된 정신을 지닌 딸은 엄마가 슬퍼하지 않도록 좋은 말만하고, 엄마와 대립하다가도 엄마의 결핍과 요구를 수용하고 엄마를 위로하는 역할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그러한 노력으로 엄마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대신 엄마라는 무거운 짊을 짊어진 딸이 병을 앓게 됩니다. 

 

자식과 융합된 엄마는 자신의 괴로운 속내를 아이에게 적나라하게 배설하듯 말하거나 자신이 판단해야 할 문제를 아이에게 허락을 받는 언행을 보입니다. 딸 역시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이미 아이 때부터 엄마에게 배워 내면화한 행동이죠. 엄마와 과도하게 융합된 딸은 감정의 과잉상태와 자기부정이 두드러진데, 그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엄마의 성격문제가 딸에게 내면화되어 반영된 것입니다. 


딸도 엄마를 닮아 여과 없이 모든 이야기와 감정을  쏟아내고 다니며, 자신의 것과 다른 생각이나 자극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해서 여러 사람의 감정과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지요.  불안정한 엄마에게 부합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융합된 딸은 현실적인 근거나 이유 없이 자신의 현실과 무관하게 엄마가 비난한 존재나 일을 진심으로 혐오하거나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기도 합니다.  


보통의 경우 청소년기에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엄마 아닌 다양한 대상들과 관계하면서 현실에 대처하는 자아 능력을 발달시켜 나갑니다. 사춘기 청소년은 현실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자기식으로 해결하고 싶어하며, 부모가 모르는 사적 세계(비밀)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로부터 정신적 분리 독립에 실패한 사람에겐 고유의 사적 세계가 없습니다.


엄마와 분리가 되지 않으면 타인과 자기 사이조차 경계선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주관적인 불쾌한 기분과 외부의 객관적 사실이 자주 혼동됩니다. 엄마와 융합되어 있는 아이는 엄마의 고달픈 사정이나 기분을 헤아리며 평생 엄마의 버팀목이 되어주려고 합니다. 정신 구조가 유년기에 그렇게 형성되었기에, 어린 시절 형성된 관계를 성인시기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갈등에 처하면 엄마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하지요.  매사에 책임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부모에게 결정을 미루면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에서 멀어져서 의욕이나 열정도 사라지는 게 문제입니다.


자식을 소유하는 엄마는 정신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현실의 작은 일에도 압도 당해서 통제력을 잃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 자녀가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릅니다.  '엄마라 병'을 앓는 사람도 엄마에게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됩니다. 한 순간 폭발하듯 속마음을 드러내도 온전히 이해 공감하지 못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엄마가 화내거나 슬퍼하지 않게 하려고 안절부절 못합니다.


엄마가 불행한 모습을 보이거나 건강하지 않을 때 믿고 의지할 대상이 엄마 밖에 없는 아이는 그런 엄마에게라도 어떻게든 안심할 수 있는 구석을 찾으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하지만 의지하고 싶은 모습과 달리 엄마가 불안전하다는 모순된 상황을 경험할 때 그 부분을 정신 기억에서 지워버려(해리), 자아의 온전한 발달에 구멍이 생기게 되고, 성인이 되도 그 해리된 무의식 요소들 때문에 명민한 지성을 지녔음에도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위축되어 자신 있는 행동 선택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아이의 현재 상태를 온전히 반영하는 엄마의 정확한 반응은 '현실 인식도 담고 있기 때문에' 아이의 정서 발달 뿐만 아니라, 사회성 발달을 돕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일차적 사고로 인해 비합리적 사고가 두드러지면(주관적 감정과 외부 사실을 온전히 구별 못하면) 그런 엄마를 내면화한 자녀는 자기표현이나 자기주장을 사회적 타인에게 객관적(상징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이 부족해져 그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납니다. 


엄마의 정신이 취약하면 자녀는 엄마의 마음을 읽거나 엄마가 원하는 것을 재빨리 파악하여 거기에 맞추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요. 그 결과 대인관계에서 불필요한 감정을 읽어내고 거기에 집중하느라 사회적 상황에 담긴 복잡한 소통 코드들과 객관적인 사실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거나 받아 들이질 못하게 됩니다.  눈 앞의 특정 대상이 드러내는 사소한 신호에도 지나치게 마음을 써서 상처 입기도 하고, 부모 눈치 보는 아이처럼 상대방을 과하게 중시하기도 합니다. 


성인이 되면 유년기에 형성된 애착 유형이 변하기도 합니다.  변화를 주는 가장 큰 변수는 긴 시간을 보내는 배우자의 영향입니다. 안정적인 파트너나 배우자를 만나면 불안정한 사람도 안정형으로 변합니다.  반대로 안정적인 사람이 불안정한 배우자의 영향을 받아 불안정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둘 다 불안정한 경우 결과가 반드시 나쁜 건 아닙니다. 서로 배려하고 보완하면 서로 안정형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정신의 안전기지(base camp)가 없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그 개인과 커플은 심리적 위험과 불안에 종종 처하게 됩니다. 


자기 부모에게 안정적인 애정을 받지 못하고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애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누군가가 안전기지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두 살 때 부모가 이혼을 해서 새엄마가 생겼다 합니다. 새엄마가 이 아이를 아껴준 것은 잠시뿐이었어요. 밑으로 동생들이 태어나자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던 거예요. 하지만  그는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해서 동생들의 학비를 마련하는 등 집안에 보탬이 되었어요. 아버지가 사망 후에는 새엄마를 극진하게 모셨는데 동생들은 친자식이면서도 홀로 된 엄마를 보살필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늦은 나이에 어렵게 결혼을 하고, 집을 지어 함께 살게 되었는데, 이 사람은 정말 효성이 지극한 사람일까요? 


이 사람은 어릴 적 엄마를 잃고 많은 애정과 관심을 받았어야 했을 텐데 그가 얻은 것은 정반대의 것이었어요. 동생들이 공부를 잘해 대학을 갔다는 것은 부모가 동생들을 알뜰하게 살피고 사랑해주었다는 것이에요. 대조적으로 그가 어린 나이에 온갖 고생을 해왔다는 것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죠. 다행히 이 사람은 고등학교때 만난 여자친구가 평생 동안 안전기지가 되어주어 꾸준한 직업 활동이 가능했고, 재산도 축적했어요. 아내 덕에 야간대학도 나와서 승진도 했지요. 이 사람이 성격이 밝고 공부도 잘했는데 부모가 대학을 보내지 않았다면 친자식이 아니라서 차별한다는 비난을 받았을 거예요. 다행히 이 사람은 공부를 못해 부모가 그런 욕은 먹지 않았어요. 아니 어쩌면 그런 부모의 속마음을 눈치 채고 그 기대에 부흥했을 수 있겠지요. 부모에게 사랑 받고 싶은 아이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제일 순수해요. 하지만 부모들은 그렇지 않아요. 


애착유형이 회피형과, 양가형이 섞여 있으면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능한 반응을 보이는 게 특징입니다.  혼란형은 엄마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서 엄마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두렵고, 응석을 부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모순된 감정에 시달리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래서 어릴 적 혼란형을 보인 아이가 자라면서 통제형이 되기도 하는데, 부모를 징벌하기보다 부모를 돌보는 상담 상대가 됩니다. 부모님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봉사해요. 평생 부모님의 안전기지 역할로 눈물겨운 노력을 하면서 어떻게든 안정을 얻으려고 합니다. 


애정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은 상대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않고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사람에게서 일시적 만족을 찾아요. 빈말이라도 달콤한 칭찬이나 따뜻한 말을 들으면 그 말을 진실로 믿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어요. 안전기지가 약해서 손쉽게 얻은 위안에 의존하다 보니 고단한 노력 없이 편안한 관계를 늘 갈망하는 것입니다.  인간 관계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지속성이 있어야 안정된 애착의 모습이 생겨납니다. 


유아기부터 몸에 벤 애착 타입을 교정하는 일은 긴 세월이 필요합니다. 끈기를 가지고 노력해야 해요. 자신의 주체성, 정체성을 확립하려면 엄마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해요. 너무 가까우면 거대한 대상에게 의존하면서 '나'가 옅어져 지배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의존과 지배는 동전의 양면인데 갑자기 떨어지려고 하면 엄마와 자녀가 모두 내면에서 '저항'을 느끼게 됩니다.  "변하는 게 낯설고 두려워! 그냥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돼. "


융합된 자녀는 엄마 곁에서 엄마를 통제하며 원망이나 비난을 들으면 마음에 적대감이 생기고, 엄마와 거리를 두면 자신이 나쁜 사람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엄마와 적절한 거리를 두는 사람은 오히려 상처가 깊지 않았거나 상처가 회복된 것입니다.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각오가 이미 서있는 겁니다. 하지만 엄마는 갖가지 방법으로 아이를 심리적으로 지배해서 자유로워지지 못하게 합니다.  엄마 자신의 정서적 박탈이나 결핍이 심할수록 자식의 분리를 좀처럼 허락하기 힘들게 됩니다. 


건강한 엄마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자녀를 떠나보냅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둘 사이의 유대감은 확고하니까요. 쓸쓸해도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그런 낌새를 내비치지 않고 괜찮다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요. 그래야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향해 용기 있게 되돌아오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늘 아이의 발목을 잡는 엄마와 아이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애쓰는 엄마의 차이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불안정한 엄마, 자식을 지배 통제하는 부정적인 엄마가 가까이 있으면 아이는 계속 해를 입게 됩니다. 자신의 자립이나 가능성보다 엄마의 불안을 없애는 게 먼저라서 미래를 계획할 수가 없으니까요. 엄마가 걱정되어 남겨두고 떠나질 못해요. 하지만 엄마의 말을 따르는 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현실 인식과 적응기능을 하는 자아가 훼손됩니다. 그로인해 현실에 대처하는 능력이 망가집니다. 실제로 자신의 엄마와 거리를 두고(기대를 접고) 살면서 자신의 삶을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엄마와 거리를 두면서 파괴적인 행동, 우울, 무력감을 상쇄하고 정체감과 마음의 평온을 찾은 사람은 유명한 사람부터 모르는 사람들까지 엄청많습니다. 


엄마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진정으로 소중한 세상의 가치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부모와 적당한 거리를 두기 위해서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고 극복하기 위해, 아이를 엄마로부터 분리시키는 힘을 제공하는 정신적 아버지 기능을 하는 제 삼의 인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난관도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엄마라는 병을 앓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데, 평생 엄마의 뜻이 자신의 뜻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합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나 걱정하는 것도 자신이 원하고 도움이 된다고 착각합니다. 상대방과 친해질수록 자신과 경계가 모호해지며 상대에게 지배 당하곤 합니다. 


정신건강을 회복하려면 자신의 내면 진실과의 온전한 대면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인 엄마는 한 때 '나'의 결핍을 채워주는 절대적 대상이었지요. 그래서 부재가 느껴질 때 내적 긴장이 발생해요. 프로이드는 기억도 나지 않는 6세까지 개개인의 인격구조 상당부분이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보통의 경우 아이는 자라면서 학습과 경험 훈습을 통해 자신의 욕망에 대한 기호와 혐오를 잘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결핍을 타협하거나 참을 줄도 알게 되지요. 그러나 유년기에 엄마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과정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내적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투사나 증상으로 내적 긴장을 분출하게 됩니다. 


투사와 부정을 과도 사용하게 되면 '현실'에 대한 온전한 인식이 왜곡되어 현실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 불가능해져  자아의 발달이 정지됩니다. 자아가 발달하지 못하게 되면 자신의 충동과 긴장을 참지 못하고 바로 배설하거나 행동화하게 됩니다. 친밀한 사이 (친구, 동료, 선후배, 선생님, 애인, 부부 등) 라면 서로의 안전기지가 되어 곤란한 일이 있을 때 무엇이든 서로 소통하며 보충해주는 관계를 해야 하는데, '엄마라는 병'에 갇힌 사람은 이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대인 관계의 반복되는 악순환을 방지하고 '진정한 나'를 회복하려면 옳고 그름을 엄격히 분별하기 전에 먼저 엄마 애착 문제와 연관된 근본 원인을 세심히 살펴보는 과정이 보다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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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