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미지 

감상-나눔  

이곳은 회원들 각자 꿈이미지를 올려 무의식 감수성과 꿈해석력을 서로 고양시켜주는 공간입니다.  올려진 꿈그림에 대한 느낌. 생각을 각 감상자마다 '댓글 한마디' 남기면  작품의 심연 의미들이 하나씩 발현되며 작가와 해석가의 정신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 정신분석 비법입니다.  

* 각 이미지 작가의 저작권 보호 위해 교육원 동의없이 외부유출 안됩니다. 

“Lullaby of Uncle Magritte” (2016), Michael Cheval

“Lullaby of Uncle Magritte” (2016), Michael Cheval


<달의 에니그마>

러시아 초현실주의 화가 마이클 슈발의 ‘마그리트 삼촌의 자장가’ 작품은 내가 꿈수업 3 (꿈묘사수단, 꿈문법)에서 느꼈던 꿈의 여정과 닮아있다. 


수수께기인 꿈 안에서 인도자가 안내하는 길로 가다 보니 내가 그토록 접근, 접촉, 접속하고 싶던 남근(육체적, 정신적 남근)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꿈 선생님은 격식과 형식을 갖춘 옷을(학벌, 전문가, 경력) 입고 있으시다. 나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벌거숭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혜안과 격식까지 갖춘 그분을 흠모하고 동경하며 더 가까이 가서 물들려고 했다. 그분의 에너지를 삼키려고 오랫동안 이 여정을 보내왔다. 정장(전문성, 연륜, 비범함, 영웅의 망토)을 입고 남근 모자(혜안), 남근의 우산(뜨거운 불안으로부터 보호해주는)을 들고 계신 꿈 선생님에게 찾아가 안긴다. 그분은 새들이 넘나드는 하늘(무의식)을 자유로이 날아오르기에 하늘의 에너지가 그의 몸에 가득 차 올라와 있다. 그리고 그는 하늘(무의식)을 의자 삼아 앉아있다.


르네 마그리트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그를 꿈의 세계로 인도하듯 나 또한 꿈 선생님의 자장가를 들으며 꿈속의 세계로 건너간다. 달리가 르네의 품에 안겨있듯 나는 꿈 선생님 품에 아기처럼 안겨서 내 안의 구멍과 결핍을 채워나갔다. 


달리(Salvador Dali)의 몸은 그의 작품인 ‘The Enigma of Desire: My Mother, My Mother. My Mother(1929)이다. 작품 ‘욕망의 수수께끼: 나의 어머니’가 말해주듯 언어시기 이전 유아기에 소화되지 못한 덩어리들의 흔적이 달의 분화구/충돌구처럼 새겨져 있다. 남자인 르네 마그리트가 살바도르 달리의 어머니와 유년기 콤플렉스를 채우는 중이다. 원초적 대상인 어머니의 결핍을 이상화 대상 아버지에서 찾으려는 달리의 시도가 보인다. 대타자, 이상화 대상의 힘과 접촉하니 해체된 언어가 응집하며 X의 형상과 원형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언어시기 이전에 어머니와의 융합/박탈/결핍을 언어로 표현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 언어의 응집과 해체를 반복하며 욕망의 수수께끼인 그 순간을 찾아가야 한다. 

  

화가 마이클 슈발인 듯한 남자가 기댄 하늘 담긴 서랍장은 열려 있으며 서랍 속에서 나온 수저가 걸쳐있다. 그것은 마치 하늘 세계에서 선사하는 희미한 기억의 한 스푼. 


와인을 먹으며 달리와 마그네트를 바라보는 화가 자신 마이클 슈발. 그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서 달리와 마그리트 꿈에 취한다. 꿈에 취해, 예술에 취해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작품을 통해 감춰진 의미를 읽어내려는 시도.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라트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부조리가 가득한 꿈을 지닌 몽자(마이클 슈발)는 동시에 자신의 꿈에도 취해있다. 제정신으로는 읽히지 않는 꿈에 알코올의 힘을 빌려본다. 꿈에 취해, 예술에 취해 그리고 선배들의 작품을 통해 서랍장 속 감춰진 X를 찾아내려 한다. 아 나도 기억의 한 스푼을 가지고 서랍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면 좋겠다!  


빨간 와인이 담긴 와인잔과는 다르게 마그리트가 들고 있는 우산 위에는 물이 담긴 와인잔이 올려져 있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담은 듯하다. 빗물은 물의 순환을 상징한다. 구름 속에 있던 물이 땅 아래로 빗방울들이 되어 내려오고 그것은 땅과 바다 강을 채운다. 그리고 또다시 증발하여 하늘 위로 올라간다. 물의 순환처럼 인간의 삶도 순환의 연속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영원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무의식의 영원성을 다시금 확인한다. 


코끼리의 가느다란 다리는 큰 몸을 지탱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늘을 향해 공중에 떠 있는 몸은 덩치가 크지만, 의식계 땅에 버티고 서있을 다리가 너무나도 빈약하다. 이것은 마치 무의식 속에서 팽창된 풍선이 있는데 이것을 아직 소화하지 못해 현실 속에서 연결점을 찾지 못한 느낌이다. 내 마음 안에 있는 형용할 수 없는 괴물과 신은 거대하지만, 이것을 현실 세계에 연결해주는 연결다리를 찾고자 하는 여러 시도 중에 예술로써 승화하며 연결다리를 놓는 느낌이다. 무의식과 의식 세계를 연결해주는 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힘 있는 조력자여 나타나 주소서, 


아주 작게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 보인다. 그것은 아주 작게 표현 되었지만 원래는 크게 더 크게 표현하고 싶은걸 반대로 전환하였다. 기타와 연주자는 한 몸이 되었다.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로 뒤섞인 공이 덩그러니 작품에 놓여있다. ‘이미지의 배반’의 파이프처럼 눈에 보이는 외현몽이 꿈의 진실과 의미기 아님을 보여준다. 즉 ‘외현몽의 배반’. 흘러버리는 시계는 시간이 멈춘 듯 시공간에 한계에 갇혀 나뭇가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걸쳐져 버린 시계. 먼지가 뽀얗게 쌓인 시계는 관점 변화의 바람이 불어와 먼지를 쓸어버리고 제자리에 놓여진다. 멈춘 무의식의 시곗바늘이 째깍째깍 다시 돌아간다. 


비너스의 조개에는 비너스가 없다. 그들이 눈으로 확인하려는 비너스의 탄생 장소에는 여인은 없고 덩그러니 빈 조개만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 빈 조개에서 무엇이 탄생했고 무엇이 존재했으며 그들을 황홀경에 빠뜨린 장면을 그들은 기억속에 간직하고 있다. 오 나의 비너스! 오 나의 어머니!


하늘과 땅은 평면이 아닌 여러 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 위 에 서 있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 존재한다. 차원이 만들어내는 깊이감과 입체감은 마치 언덕의 경계와 같다. 평면을 지나 깊은 구덩이에 빠지면 우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간다. 깊은 구덩이 안에는 무엇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다른 세계, 다른 차원으로 건너간 상태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