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후기

기타 클래스분열성 성격구조

1.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외톨이에 대하여(자신의 욕구를 외부에 표현하지 않으며 사랑대상을 상실하는 두려움에 둘러싸인 사람)                 해바라기님 


분열성 성격을 지닌 사람은 정신 분열증의 사람부터(단순형, 편집증적인 파괴형, 유아형, 강박증세가 심한 긴장형, 분열 정동형) 창조적인 천재까지 넒은 영역에 존재하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한다(자기애적 상태의 자기 몰두형). 대체로 분열적인 사람들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비 관습적이고(친밀한 대인관계의 결핍, 사회적 위축), 성격의 취약성으로 쉽게 자극을 받고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크다. 아마도 어릴 적 아기와 주 양육자가 서로 잘 맞지 않을 때 그렇게 형성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이 시기의 엄마의 침범은 취약하고 미숙한 아이가 원하지 않는 시점에 원치 않는 방식으로 힘을 행사한 것이다(아이의 철수원인). 이들은 특히 초기 구강기의 문제들과 씨름하는데 휘말리고 삼켜지는 위험을 피하는 일에 고착되어 있다. 초기 구강기 정신 태도는 받기다(구강 함입요소-빨기, 삼키기). 또는 뱉기 형태의 거절하기와 구강기에도 배설의 태도가 있다. 그래서 인격적 요소에서 받기가 두드러지면 대상에게 뭐든 주는 것에 어려움이 생겨나서 매우 자기중심이고, 주는 것에 대한 고갈과 자신이 창조하는 것을 가치 없게 여기는 마음이 절로 일어나서 바깥세상이 자신의 안전과 개별성을 소모시키는 위협들로 가득 차게 느껴진다. 친밀관계 불안은 함입공포(삼켜지는), 침범이나 통제 불안, 해체나 자아상실 불안이(대상이 없으면 자아발달이 불가능) 주 내용이고, 유기불안은 자신의 밀폐공간에 갇히는 공포이다(대상상실 불안).


페어베언에 의하면 분열적 상태는 결국 사랑 굶주림으로 인하여 철수와 환상 속에서 만족을 구하고 현실을 거부하는 경향으로 드러나는데, 분열성 심리로 대상관계를 보면 가까워지기와 멀어지기 즉 사랑과 두려움 사이의 갈등 양상에 시달리는 데, 안전하고 분리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위해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어 소외감이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는 대상과 자기 자신을 모두 상실할 수도 있는 발달의 여러 위험을 무릎 쓰지 않는 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도 맺지 않을 수도 없게 만든다. 다시 설명해보면 페어베언은 초기 발달과정에서 겪는 극심한 좌절 경험이 분열적 상태를 만들어낸다고 하였다. 사랑하는 대상을 강렬하게 동경하지만 내적 세계는 증오대상들의 공격에 의해 지배를 받고, 실제 삶에서의 대상관계 경험도 빈약하게 만들어 수정과 발달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 좌절의 경험은 거부적이고 아이의 기질에 대해 민감하지 못하며 욕구를 경멸하는 부모의 양육에서 비롯된다. 아이에게 고립과 방치를 경험하게 하면서 아이의 방어적인 자기충족을 조장하여 불가피하게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피하고 대신 자신의 내적 세계에 의지하게 만든 것이다. 나 또한 유혹적이고 침범하고 비판하는 어머니 경험과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분이셨던 아버지와 거리감 있는 경험이 있다. 엄마의 정서적으로는 정직하지 않고 겉만 번지르르한 이중속박의 메시지는 교과서 내용처럼 참을 수 없는 혼란과 분노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철수에 의지하게 되었다. 즉 침해와 박탈이 함께 사용됨으로써 분열적 패턴을 가져온 것이다. 결국 관습적인 사회적 기대에 무관심하고, 인간세상과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초연하면서도 은근히 세상과 사람을 경멸하는 태도가 내 인격 안에도 있었다. 이런 고립적인 우월감을 보이는 이유는 지나치게 통제하는 엄마를 비롯해서 상상의 침입 대상을 막기 위함이었다. 나는 휘말리는 것보다는 버림받는 것을 덜 해롭게 여기며, 힘들 때도 고독 속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이다. 기꺼이 가족 및 친구, 이웃의 일부가 되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고, 항시 간헐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과 활동을(공상을 포함) 추구하는 분열성 성격에 대한(나는 혼자 있는 게 제일 편하고 좋아. 날 그냥 내버려 뒀으면 해) 이해는 나에겐 신선하고 충격적인 일이다. 여지껏 왜 그리 즐거워하는 활동이 드물었고, 가족과 친척 외에는 친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대와 칭찬이 왜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었고(의심은 방어였을 뿐), 감정적으로 활력이 없고 매사 무미건조했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한 쾌에 일어나고 있다. 나는 평생 동안 친밀한 관계를 시작하고 진전시키고 유지하는데 큰 열정과 관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모임마다 특별한 호기심을 갖고 참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단지 수줍어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을 곁에 두고 외로움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혼자 있는 것에 고민하지 않고 만족스럽다. 정신분석을 통해 오랜 시간 나를 조용히 깊이 바라보면서 힘이 생겨 이제서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나의 아들 또한 이런 성격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그 원인으로 지적 받는 인생, 초기 극심한 좌절을 주었던 욕구 충족에 적절히 반응해 주지 못한 엄마는 역시 나다. 또한 침해와 박탈을 함께 사용하여 아이에게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성숙한 엄마였던 것 같다. 우리아들은 양가에서 첫 손자라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나에게는 마냥 사랑스러운 아이는 아니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시댁 식구들이 모여 저녁을 먹었는데, 나는 그 새로운 관계들이 버겁고 힘들어서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고 적절한 대화도 힘들었다. 그때 아들은 내가 그 무드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좋은 엄마 역할을 바쁘게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훌륭한 도구였다. 나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서 아들에게 밥을 먹이며, 아이가 배가 불러서 그만 먹고 싶은지 아니면 어떤 건 먹기 싫은지 등 아이 욕구에는 반응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마비된 마음이 풀리면 지쳐서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도 너무 힘들어 했다. 아침 늦은 시간이 돼서야 집 앞 패스트푸드점에서 치킨 너겟을 사주고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죄책감에 휩싸여 그 다음 며칠간은 또 미친 듯이 음식을 만들어 떡 벌어지게 한 상 차려 아이에게 먹이기도 했다. 이렇게 혼란 속에 자란 나의 아들은 자신 만의 방어적인 충족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정서적으로는 무관심하면서도 경계 없이 아이의 모든 일에 관여하는 침범하는 엄마에 대한 분노를 감추기 위해 책 속에 갇혀 책을 읽고 현실의 경험에는 무관심하다. 


여행도 가지 않았으면서 다녀 온 가족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 경험이 아닌 아이의 말은 참으로 공허하다. 또한 사회적 관계의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관심도 없어 보이는 아들은 극소수의 친구들을 어쩌다 한 번 만나러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방학이면 매일 방에 틀어박혀 있다. 넓은 집 어디에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자신 만의 성인 방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즐거움이 그 안에 만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혼자 있는 데서 기쁨을 찾는 아들은 모두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너무 이른 시기에 강렬한 두려움과 불안을 경험하면 그리고 심리적인 자양분을 제공받지 못하면 유아는 외부 현실로부터 도피처를 마련하고 철수나 소극성을 지향하게 되는데 자아가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아 성장과 무관한 정신적으로만 도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환상이나 공상속에서 안전지대를 만들어 그 안에서만 안전하게 존재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분리된 내면세계이다. 욕구와 두려움에 좌우되는(in and out)관계로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고, 세상에 대한 다양한 흥미가 없고, 독립을 고수하고,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좋은 감정에 두려움이 엄습에 통제감을 잃을까봐 철수하거나 흥미를 잃고, 매사 우유부단하고, 무덤덤하고 지루하게 살아가다가 때론 강박적인 일처리로 빡빡하게 자신을 몰아세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격이 깊게 철수 되어 터치되지 않는 부분(cut off)과 외부세계에서 피상적이고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되는 부분이 분열되어 오가는 것이다. 


분열적 상태는 곧 사랑의 굶주림을 의미한다는 페어베언의 말이 너무나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좋은 학교들을 졸업하고 로스쿨도 다니며 혼자 자신의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아들의 마음속에 있는 외로움과 굶주림이 느껴질 때면 엄마로써 서럽고 억울한 눈물이 터져 나와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다만 분열적 성격의 사람들의 가장 적응적인 능력이라는 창조성을 자신의 삶에 잘 적용하여 자신의 삶에서 지나치게 철수하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창조적인 활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 올해 일 년 내내 도널드 위니캇 수업을 들으면서 엄마 환경 실패로 인해 야기되는 즉 아이의 인격을 지지하고 양육하는 엄마의 수많은 실패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결국 삶에 대한 에너지는 긍정적이고(선함) 역동적으로 살려는 고결한 의지임을 알게 되었다. 대상과의 관계를 지향하는 이러한 다이나믹은 결국 자기개발 자기 성취를 지향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미 있는 대상관계가 없다면 자아는 없는 것이다. 리비도의 대상추구는 사랑하는 능력이고, 창조하는 성공을 성취하는 것은 참자기의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고 대상을 사랑하려는 욕구가 좌절되면 투쟁과 철수의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나게 되는데 투쟁은 증오와 죄책감(우울)로 이어지고, 철수는 분열성 퇴행으로 유아기 수준에서 외부세계의 철수로 이어짐을 알게 되었다. 




2. ‘지하생활자의 수기’ 속의 분열성 성격  -맨드라미님


분열성 성격구조를 가진 사람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환상으로의 철수”이다.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화자(話者)도 24세의 나이에 아무하고도 교제하지 않고 말을 주고받는 것조차 피하면서 혼자만의 공상세계에 빠져 살고 있다. 그는 우연히 만난 장교에게 모욕적인 처우(길을 가로막았다는 이유로 장교에게 어깨를 붙잡혀 밀쳐짐)를 당한 뒤에 지독한 모멸감(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주는 자신을 파리새끼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다 돈을 빌려서까지 코트를 사 입고 그 장교와 마주치는 길거리에서 길을 비켜주지 않고 서로 어깨를 부딪쳐 지나간 것으로 그는 자신이 승리했다고 만족해했다. 이렇듯 그는 자신의 주관적인 세계에 빠져 현실과 접촉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자신의 공상속에서 머물러 자족해 했다. 이러한 자기만의 세계속에서 “나는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백마에라도 올라앉은 듯이 늠름한 기세로 느닷없이 세상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나는 이류의 역할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었으므로, 바로 그 때문에 현실에서는 태연하게 말단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영웅 아니면 당나귀, 중간이란 있을 수 없다”라며 자신은 영웅이므로 현실에서 진창에 구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며 자위하고 자신의 가혹한 현실을 속인다. 이렇듯 분열성 성격구조를 가진 사람들은 선vs악, 고결함vs음탕함, 우월감vs열등감 등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본다. 


이들의 일차적 관계 갈등은 가까워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휘말리고 삼켜진다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것이다. 이는 초기대상관계에서 엄마가 냉담하고 자기애적인 경우 아기의 욕구가 무시되어 아기는 자신의 사랑이 응답을 받지 못해 자신의 사랑이 대상을 파괴시켰다고 생각해 스스로의 욕망을 철수시키고 내적세계에 의지하게 된 것에서 비롯된다. 또한 엄마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아기에게 과도하게 개입하고 침해하는 양육태도로 인해 아기는 자신이 사랑을 갈구했지만 대상에게 함입되고 삼켜지는 것에 대한 불안을 갖게 된다. 이런 박탈과 침해라는 모순 속에서 가까워졌다가 다시 물러나는 in and out이 발생되어 일생을 반복한다. 수기 속의 화자도 “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리다가도, 만약에 누구든 나한테 장난감 인형 같은 것이라도 내밀든가, 차에 설탕이라도 곁들여 갖다 주든가 한다면, 나는 금세 얌전해질 수 있는 인간이란 말이다”라며 따뜻한 인간관계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가도 그는 그러한 갈망을 부끄러워하며 자신에게 화를 내며 괴로워했다. 그는 하룻밤을 보낸 몸을 파는 여성에게 그녀의 영혼을 파는 행위를 하지 말도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도록 설득하여 그녀가 그를 어린아이처럼 신뢰하도록 만들었으나 이내 그 다음날에는 그녀가 자신을 찾아올 것을 두려워하여 자기의 처지를 비하했다가 그녀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품었다하며 괴로워하였다. 그녀가 3-4일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자 다시 자기만의 환상속에서 그녀와의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결국을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고, 그는 자신의 실상을 들켜버렸다 생각하여 그녀에게 자신은 더럽고 비겁하고 추악하며 벌레 같은 인간이라고, 그녀에게 했던 이야기들은 그녀를 놀리고 조롱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며 그녀를 모욕하여 그녀가 떠나버리도록 하였다. 이렇듯 그는 그녀의 인생에 가까이 다가갔다가도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이려는가 싶으니 금새 겁을 먹고 그녀에게 모욕감을 주고 자신을 거칠게 비하하면서 그녀로부터 물러났다. 그 외에도 그의 많은 이야기들은 수없이 in and out을 반복하고 있다. “너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다고 호언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우리의 환심을 사려하고 있다. 너는 이를 갈고 있다고 큰소리치면서도 한편으론 우리를 웃기려고 돼먹지 않은 농담을 늘어놓고 있다. 너라는 인간에겐 진실성을 있지만 순결성이 없다...” 분열성 성격구조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양가적인 것들을 통합하지 못하고 수도 없이 많은 양극단의 모순을 겪으며 괴로워한다. 나는 책속의 화자가 떠나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뛰어나가는 장면에서 그녀가 그를 위해 남아주기를 바랬다. 치료자적인 입장에서 그는 거칠지만 자신의 내면속에서 생각하고 있던 것들, 자신의 연약함, 모순들을 꺼내놓았고 그러한 것을 그녀가 담아줄 수 있다면, 엄마처럼 아이를 mirroring하고 아이가 소화시킬 수 있게 돌려주는 것처럼 해줄 수 있다면 아마 그는 그처럼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퍼비전 -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이 친한 친구를 사귀어 본적 없는 완전한 외톨이로, 만약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사안에 대하여 타인과 논리적 소통이 불가능 하다면, 아마도 정신병의 상태로 진단 될 수 있습니다(현실 검증의 손상). 자신이 불가사의 한 힘을 지녀, 모르 사람과 특별한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믿거나(일반적 사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경향), 모호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깊은 관계가 되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면 그리고 그 상상 속 관계가 그의 정신적 삶과 자존감을 좌지우지 한다면 심각한 관계사고(망상)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에 대해 타인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감지하는 단순 정신 분열증자일 수 있겠고(분열형 성격장애에서 정신증으로 발병), 자신의 병을 인지하거나 감출 수 없는 정신분열증의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단순 정신분열증자의 일부는 스토커나 범죄자가 되기도 합니다. 현실 검증의 문제와 자기 몰두성은 대상이 자신을 속이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낙담을 초래하고(사소한 위협도 진지하게 반응), 분노를 안으로 삭히다가 폭력의 주체가 되요. 


이들의 특성으로는 인지 및 지각의 왜곡, 기이한 행동을 보일 뿐만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극도로 불편해하고(사회적, 대인 관계적 결핍패턴), 상식에 맞지 않는 괴이한 믿음이나(이상한 신념), 마술적 사고(천리안, 텔레파시, 육감)에 집착하고, 애매하고 우회적이고 은유적인 표현 또는 지나치게 자세한 묘사와(빈약한 통찰) 의심이나 편집적인 사고, 부적절하거나 제한된 정동(감정 마비), 엉뚱하거나 특이한 행동이나 외모가 크게 드러납니다(버릇, 의복, 위생 상태를 신경을 쓰지 않아 괴짜소리를 들어요).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이 희망적으로 분열형 성격장애로 진단이 된다면 약물치료와 함께 지지적인 성찰치료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도록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우선 가족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 과정이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가를 밝혀가며, 용기를 주고 왜곡된 현실을 수정해 가는데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합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지만(일생동안) 교정이 가능합니다. 




3. 분열성 인격장애와 다른 회피성 인격장애의 차이(장미님)


회피성 성격장애는 대인관계에서 타인이 자신을 거절하거나 거부할까봐 불안하고 두려워 사회적 관계를 피하는 성격을 말한다. 분열성 성격장애 역시 대인관계 철수를 하지만 그 모습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분열성 성격장애와 달리 회피성 성격은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잘 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다. 그에 비해 분열성 성격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적고, 타인에 대해 냉담하고 무관심한 게 특징이다. 하지만 삶의 경험의 폭이 제한되어 있거나 집에서만 생활하는 은둔형 외톨이, 따돌림과 같은 대인관계문제로 인한 부적응, 경쟁에 대한 회피, 공격적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고립과 도피로 인한 강한 외로움, 여러 가지 중독 등의 문제양상은 회피성 장애나 분열성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인 듯하다. 


우선 회피성 인격 장애를 살펴보면(사실 분열성 성격구조를 베이스로 가지고 있다) 이들의 핵심 병리의 모습은 인간관계에서 타인의 거부에 대한 예민함(모욕), 부정적 평가에 대한 과민경향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타인의 비판이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인접촉이 필요한 다양한 관계와 활동을 피하고, 자신이 싫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어울리기를 포기하고, 적대감을 투사하여 불목 하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자신이 무능하고, 매력이 없으며, 열등하다는 생각으로 대인관계에서 위축된 모습으로 자신의 기량이나 책임감(성실함)을 실행하고 유지하지 못한다. 회피성 성격장애는 모든 상황을 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두려운 상황을 피한다는 제한적 의미가 크다. 이들은 자신감이 없는 사회적 상황이나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통제할 때는 자신의 약점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타인과 상호작용이 적고(관심 없어 보이는 이유),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보여 진다.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의하여 불안에 대한 통제가 깨질 때 매우 불안정해지는데(긴장과 경직), 이들은 누군가와 친밀해지지 않거나 자신을 좋아해주고 받아줄 거라는 확신이 없는 경우 또는 지적(비판)을 받을 경우 어떻게든 그 대인관계를 벗어나려고 한다(피한다). 그러나 자신을 좋아하고(찬사)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반응이 긍정적이기를 바라는 과도한 기대감으로 인해 회피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가지는 가장 큰 두려움은 타인의 부정적 평가이다(타인의 반응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으로 생각만으로도 불쾌해지기에 곤란해 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꺼리는 일이 많다). 회피성 성격은 부정적 자기상으로 만들어진 열등함(반대는 근거 없는 우월감)이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취약한 부정적인 자기상은(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상태) 대상표상이 질적으로 부정적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는데 문제가 있었던 부모관계에 대한 기억이 내재화된 것이다. 부모로부터 삶의 초기에 경험했던 멸시와 비하의 독소적 태도를 내재화하여 수치심과 자기비하, 매사 모욕감정이 쉽게 활성화되는 것이다(부모의 염려와 두려움을 학습). 즉 부모의 거부적인 태도로 인해 회피성 인격장애가 형성된 것이다(강박적이고 자기애적인 부모의 감정적 학대-쓸모없다는 나쁘다는 메시지).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비현실적인) 강한 비난 자극을 통해 양육자뿐만 아니라 현재 주요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욕구가 높아 쉽게 불안정해진다(자의식이 매우 강하다. 자기를 나타낼 때 발생하는 수치심이나 모욕감으로 정서가 억제된다). 이들은 자아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지닌 적대적이고 엄한 부모의 영향으로 촉진되는 수치심때문에 회피성향이 만들어 졌다고 보면 된다(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은 없다-그가 잘못해서 내가 그를, 내가 잘못해서 그가 나를 거절 했다). 그래서 타인의 거절이나 무시와 같은 불쾌한 감정을 차단하기위해 타인의 은밀한 감정이나 의도, 어조, 표정에 민감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인상황에서 과도한 정보와 자극을 처리해야 하는 부담이 일어나 일상적 과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인지적 능력이 부족하다. 타인이 자신의 실수를 찾으려 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몸이 굳고 억제된 생각으로 불안정해진다(불안을 직면하기보다 탈출하려는 태도가 우세). 그래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하고만 어울린다. 왜냐하면 편안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덜 비판할 것 같아서이다. 어쩌다 상대방이 거절하거나 떠나면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강렬해지고 거부에 대한 불안이(자신이 부적절하다는 감정이) 활성화되어 고통을 받게 된다. 누구이든 이들에 대한 부정적 표현이나 태도는 이들을 움츠리고 마비시키는 것이기에 대할 때 최대한의 긍정적 표현과 태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변화가 느린 이유라서 움직일 때까지 장점을 칭찬하고 격려해야 한다). 


분열성성격은 외부 세상과 단절되고(정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내부 세계에 집중하는 사람을 지칭한다(내향성이 강한). 이들은 무딘 정서, 과한 분리(일정한 거리두기), 과한 자기만족(유별난 상상-직업상의 기능에서 유능), 일상생활에 무관심한, 내면의 가치추구를 두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위니캇은 분열성 성격도 거짓자기의 한 변형으로 보았다. 단절감, 차단감, 고립감등이 바깥으로 드러나지만 이들의 내면엔 강한 불안이 존재하고, 우울증과 비슷한 감정을 갖고 살아가면서 내적대상관계와 관련된 공상으로 퇴행하는 모습이 주이다. 이들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안전한 보호막의 역할을 하지 못하여 관계적 박탈상태를 만들어 냈는데, 그러면서도 아이와 밀접한 접촉을 추구하면서 공생적 전지전능 상태를 유지하고, 아이는 엄마와 관계적 박탈상태와 융합관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고민으로 거짓 순응, 자기 만족감, 주지화, 철수, 마술적 사고, 은밀한 낙관주의, 과민 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컨버그는 분열성 성격을 자아 취약성과 원초적 방에 기초한 낮은 수준의 성격구조하고 했는데 더욱이 자기감에 대한 분열을 초래하여 자기와 타인의 표상을 통합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하였다. 즉 분열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겉으로는 현실과 초연하게 동떨어져 있고, 자기애적이며, 무미건조하고, 자의적인 도덕의식을 지니지만, 내면의 상당히 예민하고 정서적으로 결핍되어있다. 사회적 관계로부터 유리되어 있고 대인관계에서 정서 표현이 제한되어 있어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나 친밀한 관계를 기대하지 않고, 거의 혼자 하는 활동을 선택한다(정신 내부에 대인관계를 수행하는 모델이 없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수행하는 대인관계의 기본적인 방법들을 지나치게 복잡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해 어려워한다(대인관계 세계관이 빈약). 분열성 성격은 대인관계에서 주고받은 신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블랙홀 같으며 타인과 나누는 대화는 관심어린 주제가 될 수 없고 자신 안에 자리 잡은 호기심만 나타내며 살아간다. 


   나는 엄마를 비롯한 원 가족과 남편에게서 조차 큰 외로움을 느낀다. 내 맘대로 내가 좌지우지하면서 거리를 조정할 수 있는 아이들 외에는 모든 관계가 다 그렇다. 사실 늘 좋은 관계를 희망하는데 현실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긍정적인 관계가 충족되지 못하자 나는 그것을 신앙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다.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신부님 때문이다. 늘 현실에서 입만 열면 돈 얘기와 음담패설을 비롯한 원초적인 주제를 얘기하고, 성찰 없이 남 탓 만하는 남편이 유치하게 여겨져 현실에서 남편에게 느끼는 결핍을 채워줄 대상으로 신부님을 이상화시켜놓고 일방적인 나만의 내적 관계를 통해 결핍을 채우려고 했다. 그러나 여러 봉사가 내게 주어지고 신부님을 가까이에서 뵈면서 그분이 내게 여러 요구를 하시기 시작하자, 사람들 가운데 주목 받는 것도 견딜 수 없어졌고, 신부님이 원하시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덜컥 겁이 났다. 그러자 다시 거리를 두고 봉사자가 아니었던 관계로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맘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고통스러웠는데 마침 남편이 아이들 교육 문제로 이사를 가지고 하는 제안하여 요즘 이사할 곳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엄마로부터 발생된 부정적인 정서에 억눌려 자신감 부족으로(때론 근거 없는 거만함으로 우월감이 지나치고) 부정적인 평가에 매우 민감해 한다. 분열성 성격은 모든 성격장애의 기저이면서 기억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상처이기에 텍스트를 읽으면서 어려워 기껏 외로움에 대한 생각만 떠올랐다. 하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회피성 성격을 들여다보니 내 상처가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나는 엄마의 분노를 두려워하며 자라왔다. 엄마가 늘 여러 가지 관계 스트레스로 넌더리를 내며, 그 화를 조롱과 적대적 언사로 나에게 쏟아냈기에 나는 그 폭언 앞에 위축이 되었던 것 같다. 이로 인해 부정적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격 양식이 생겨나서 비난이나 반대, 거절이 두려워 여러 관계에서 후퇴하고 도망친다. 갑자기 회피성 인격이 형성될 일은 만무하고, 너무나 오랜 세월 내 몸과 정신에 각인된 부정적인 자극을 어떻게 성찰해서 성장할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하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문제적 행동이 사라지지 않는데 회피성 인격인 경우는 더 심해진다고 한다. 엄마의 분노로 인해 어릴 적부터 느꼈던 수줍음, 수치감, 두려움, 외로움은 정말 끝이 없다. 나의 문제 양상은 엄마의 말, 부정적 염려대로 살아가고 창피당하는 결론을 예상하는 것이다. 내가 늘 비난 받을 일을 아예 피하려고만 한다면 나는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될까 싶다. 관계의 폭을 넓히고 비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자초한 고립) 나는 어떤 노력을 해볼 수 있을까 고심하게 되었다.


 


4.분열성 성격(국화님)


분열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인간관계와 세상일에 참여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는 사람이다. 이들은‘사회속의 외딴 섬’과도 같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관계 속에서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을 경험하며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고 유지해 나갈 것인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분열성 성격의 사람들은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관심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 이성 관계에도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결혼을 한다하더라도 배우자나 자녀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거나 배려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은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절에 대한 불안 때문에 관계 맺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즐거움이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관계를 맺으려하지 않는다.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크게 기뻐하거나 기분 나빠할 일에도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흥분하는 일도 드물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나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분열성 성격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또는 부정적 자극에 반응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 대처를 하지 못한다).   


분열성 성격의 주요 특징 

(1) 수동성과 비자발성 - 무엇인가를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행동은 수동적-의존적이며 에너지와 활력은 저하되어 있다. 이들이 주로 하는 활동이란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컴퓨터를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 등 별다른 활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다.    

(2) 유리된 인간관계-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거나 정서적으로 의미 있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반응하는 능력에서 심각한 결함을 보인다. 이들은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고 내성적이며 은둔하는 성향을 보인다. 

(3) 단조로운 사고 패턴- 사고의 내용이 빈약하여 특정 화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반영하는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감정마비). 이들은 상대방이 한 말의 표면적인 의미는 이해하지만 그 밀 속에 담긴 표현되지 않은 잠재적 의도나 숨은 뜻 혹은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여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비언어, 상대방의 무드나 성격, 상황을 간파하지 못한다).  

(4) 자족적인 자기상-다른 사람들의 개인적 삶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개인적 삶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삶에서 어떤 의미를 추구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살면서 어떤 가치와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 깊은 고민과 사색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지 않고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현재 자신의 삶에 별다른 불만 없이 살아간다. 이런 맥락에서 자기상은 자족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5) 무감동적인 정서 상태-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을 나타내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이런 감정을 느끼거나 경험하는 것 자체를 잘하지 못한다. 정서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정서적 흥분과 반응 수준이 낮다. 지각력 또한 부족하고 무감각하며, 내적 정서 경험은 획일적이거나 불명확하다. 언어 역시 정서와 관련된 단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단조롭게 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인

유전적 요인 - 정신 분열증이나 분열형 성격장애를 지닌 가족이나 친척에서 유병률이 높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생물학적 취약성과 부모와의 관계양상이 학습되었다.

심리적 요인 - 어릴 때의 대인 관계 양상, 특히 가족과의 상호작용 방식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쓸쓸하고 냉담하며 감정교류가 없는 양육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분열성 성격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이들 가족은 인간관계가 냉담하고, 가혹하며, 피상적이고, 형식적이다(기계적). 가족 구성원은 서로 상관없는 타인들이고 애정표현 공감능력의 결여 되어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동은 사회적인 부적절감, 무감각, 무감동, 대인 친화감 결여상태가 된다.

인지적요인 -부정적 자기 개념과 대인 관계회피에 관한 사고가 주요 특징으로 작용한다(나는 혼자 있는 것이 낫다. 아무도 나를 간섭하지 않는다). 사회 속에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문제가 일어난다.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무엇인가를 도모하는 일에도 전혀 관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문화, 스포츠, 드라마, 나라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재미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무엇인가를 함께 할 때 어떤 거리감, 고립감으로 인해 대부분이 지루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종교심이 남달랐는데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내가 마치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우월감조차 분열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20대의 나이에 연애 경험도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다가오면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형편없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냉정하게 대한다든지 피해 다니든지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혼자서만 열렬히 누군가를 좋아하며 행복해 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동으로 작동되는 분열기제를 알고 나니 그 시절 나의 모습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정신 분석 공부를 통해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들이 아주 조금씩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남편 또한 친한 친구들도 없고 혼자서 하는 요가와 명상을 즐기고 철학적인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것을 즐긴다. 서로 비슷해서일까 굳이 서로 불편한 줄 모르고 지내는 것 같다. 


지난 번 다룬 꿈에서 나는 엄마에게 비명을 질러도 엄마가 비명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상태라는 것을 대면하게 되었다(짜증을 많이 내는 아기는 짜증을 먹고 자란 것처럼 나 또한 그러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평생 들리는 말을 전달할 수는 있지만 엄마처럼 실제적인 의사소통은 못한다. 감정을 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과 없이 밖으로 토해내기만 한다. 선생님은 비명이(샤우팅이든 소리 없는 아우성이든) 정신과 육체를 연결하는 고리라고 하셨다. 그러니 비명을 잃어버리면 그 연결점을 잃어버리는 격이다. 상호관계성의 결여, 낮은 자존감, 허약한 의존능력, 비현실감, 활동적인 생기가 없는 상태로 늘 좋은 것이 있다가 나쁜 것이 나와서 망쳐버린다. 그 어떤 좋은 것으로도 이 상태를 이길 수가 없었다(자아가 모욕을 당하면 회복이 되지 않는다). 분열의 결과로 나는 늘 완전하지 않으면 없는 것만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엄마의 무응답으로 인해 나에게 계속되는 저주(무시와 비아냥거림)는 나에게 늘 재난이다. 하지만 수년 동안 내가 느끼지 못하는 임팩트를 선생님은 늘 느끼고 받아들여 표현해주신다(나의 보조재앙 처리사시다). 물론 나는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게 불가능하지만 조금씩 소화해 나가고 있다. 


수퍼비전 - 아기는 소리를 지르거나 엄마를 발로 차요. 엄마는 아프니까 싫어할 것입니다(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발로 차이면서 사랑과 기쁨을 느낍니다. 이것이 아이와 엄마의 생기이고, 생명력이기 때문입니다. 자발성이기에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런 메시지가 정서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위니캇은 이야기 합니다. 살아있는 엄마는 때론 아이에게 매번 거절을 하면서도 아이를 한 번도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답니다. 아기 또한 살아가면서 사랑을 주고받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노우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고요. 엄마의 반응해주는 영혼의 톤은 좋게 또는 나쁘게(자신에게 안 좋은 쪽으로 축적이 되면 자신이 축소되겠죠) 평생 우리의 인격에 축적이 됩니다. 


클라인은 멸절불안과 공포에(정신을 잃는다) 대한 방어로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을 설명했어요. 편집분열적 자리, 우울적 자리는 인간의 복잡한 정신과정을 설명하는 매카니즘인데 편집분열적 자리에서는 자신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밖으로, 타인에게 투사해 전가해버리고(무서운 것-지옥), 분열은 지옥에 비해 천국이지만 감정이 없는 상태, 죽어 있는 상태로 지내는 것입니다. 한 번 분열이 일어나면 인격의 전 영역에 퍼져나갑니다. 이것은 결국 자아를 돕는 게 아니고 자아를 조각내는 것이에요. 또한 인격이 여러 조각으로 떨어져 나가면 연결고리를 잃게 되기도 해요. 원래 그 고리는 스스로 살아 있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인데 그것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감각이 없는 상태). 우울증은 일종의 작기 박해, 자기 공격상태입니다. 삶에서 애매모한 부분이 있으면 인과관계를 지어서 “나 때문에”라고 정형화시켜요(수치감의 원인). 엄마가 아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하면 자동으로 아기는 엄마가 기분이 나쁘면 “나 때문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요. 멸절불안을 해결하기 위함인데 편집 분열적 자리에서는 투사로, 우울적 자리에서는 내사로 문제해결을 하는 것이에요. 


문제는 사랑과 미움이 분열되면 원래의 나가 아니라 축소된 나로 살아가게 됩니다. 의식에선 살아있지만 정신의 일부가 정지되어 있는 것이지요. 정신은 멸절불안은 자아내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견뎌낼 수가 없는데 지속적으로 남을 탓하고 증오하는 삶은 너무 강렬해서 분열은 스스로를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때론 편집 분열적 자리와 우울적 자리를 오가지만요). 물론 사람사이에 시이키를 전체 다 경험하는 것을 불가능해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하는 데요. 한 예로 분열된 사람은 사실 어린 아이 같은 사람이죠. 어린아이가 어른 같은 (누구든) 사람을 만나면 힘이 들어요(배우자일 수도 있고, 선생님일 수도 있어요). 자신은 어린 아이인데 어른의 모양으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본질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분열로 때론 본질은 영원하다!). 사람에겐 평생 치유되지 않는 상처도 있고, 평생 계속되는 회복과정이 있어요. 완전한 나가 아니라 어떤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반드시 소화될 수 있는 정신 능력을 조절하면서 함께 살아나가는 길을 배워야 해요. 

   



5. 분열성 인격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공포(모란님)


분열성 성격의 가장 큰 특징은 외적 대상관계에 대해 지속적인 어려움을 갖는 것이다. 실제 사람들과 관계를 성취하려는 욕구는 항상 강한 공포와 맞부딪치고, 몹시도 불안하게 ‘안’과 ‘바깥’ 상황사이를 왔다갔다가 한 후에 리비도를 철수시키고 고립에로 후퇴를 하게 된다(이러한 이유로 진정한 관계를 달성하지 못한다). 그렇게 대상관계가 포기되면 바깥 현실세계에서 철수하여 과거를 간직한 내적세계로 퇴행한다(보호받는 수동적 상태로 돌아가려는). 지나치게 철수된 분열성 상태는 정신증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퇴행은 내적 세계에서 안전을 찾는 것으로 나쁜 외적대상으로부터의 철수이다(정신병리의 가장 깊은 요소). 가장 무서운 일은 관계에 대한 공포가 결국 모든 대상들을 다 상실하게 하고, 더 나아가 자아상실의 고립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깥세계가 자신과 접촉하기위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더욱 더 현실관계는 사라질 것이다. 편집적과 분열적이라는 것은 각각 위험과 도피를 나타낸다. 편집적이고 분열적인 자리는 결코 타자들에 대한 관심을 허용하지 않는다(“모든 관계가 불편하고 싫어요”). 


분열성 인격은 공포 때문에 자신의 느낌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것에 온전히 또는 영구적으로 자신을 제공할 수가 없다(“저는 이것저것 할 뿐 끝까지 하지는 못해요. 아무런 결실이 없어요. 저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지만 갖게 되면 관심이 없어져요”). 너무나 많은 공포가 일어나면 사랑이 미움으로 변해버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분열성 성격을 가진 사람은 친밀한 관계가 두렵다. 그래서 한 사람 안에 있기 위해 다른 사람을 멀리하는 것은 필수다. 결코 자신의 전체를 한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다. 정신으로는 사랑해하며 ‘안’에 있다면 육체는 멀리한다. 또한 아이들에게 헌신하면 남편에게 나눠줄 사랑이 없다(또는 “나는 당신 없이도 살어”). 한 아이에게 관심이 가면 또 다른 아이는 잊는다. 또는 무언가에 갑자기 열중하다가 흥미를 잃어버린다(“저는 어떤 책을 열중해서 끝까지 읽지를 못해요. 한 책을 읽으면 또 다른 책을 보고 싶어요). 분열성 공포는 친밀한 관계로 위태로워지면 질식되고, 숨 막히고, 소유당하며, 구속되고, 갇혀있고, 삼켜지며, 지배당하고, 빨려든다는 두려움이다. 엄마가(세계가) 반응해주지 않고, 아이의 욕구와 만나주지 않을 때 그것은 공허이다. 그리고 엄마가 적극적이면서 고통스럽게 침범할 때 박해자이다. 아이는 진공상태에서나, 견딜 수 없는 압력에서 안전하고 강한 자아감을 발달시키지 못한다. 결국 엄마의 정서적 철수는 아이의 철수가 되어 버린다. 


나는 스키조이드한 사람이라서 고통스럽고 복잡한 상태인 의존과 철수를 오가는 경향이 매우 크다. 작은 정서적 무게에 쓰나미 같은 정서반응을 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결과이다. 엄마는 나를 때론 거절하고 방치했으며,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말과 행동을 전달할 수가 없는 쇠약하고 공허한 분이셨다. 어릴 적부터 내가 보내는 감정의 신호를 엄마는 읽지 못하셨다. 내가 원하지 않을 때는 많은 보상을 받았으며, 정작 필요해서 의존을 요구하면 무시를 당했다. 그래서 나는 좋은 행동의(사랑) 이미지가 많이 왜곡이 된다. 사랑받고 싶어서 성가시게 하거나 사랑을 갈망하는 모습에 엄마는 오히려 더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나는 외롭고, 공허했었고 사랑이 파괴적인 힘을 지녔다고 느끼게 되었다(늘 사랑받고자하는 정상적 욕구를 억누르게 된다). 때론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뻗어 주는 친절한 손길을 위협으로 느끼며 뒷걸음쳐 숨어버리기도 한다. 사실 현실에서는 특별히 위협을 주며 헤치려는 목적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오랜 상담과 공부를 하며 알게 되었지만 내가 가지는 현실은 아직도 쫓겨 다니는 지친 괴로움의 연속이며, 이런 굴레를 빠져나오기란 어렵고, 나의 약한 자아가 지속적이고 한결같은 신뢰 관계를 여러 차례 경험해야 비로소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외향적인 나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배우고 싶은 것이 많지만 쉽게 도전하고 대상에게 다가가기가 힘들다. 가까스로 시작하게 되어도 긴 시간이 지나야만 몸과 마음이 조금씩 열리게 되지만 실제로 생동감이나 재미를 느끼기란 쉽지가 않다. 혼자 잘해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팀 운동인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다. 연습시간 내내 공격하고 방어하는 연습이  힘들고 지겨웠다. 훈련의 강도보다는 아이스 위에 서 있는 내내 같이하는 선수들 하나하나가, 함께 서있는 공간과 시간 그 자체가 버거웠던 것이다. 매번 시계를 보며 도대체 언제 끝나나 조바심을 내며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반복되었다. 물론  팀원들이 지속적으로 나를 지지해주며 2년이란 시간을 함께해주어 고맙고 좋았지만 여전히 얼음판 위에는 나 혼자 있는 것 같다. 


수퍼비전 - 사람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서로 사랑한다 해도 모든 사람사이에는 간격(gap)이 있어요. 살다보니 노력을 해도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도 있더라고요. 우리 스터디 구성원이 럭키한 점은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이 지나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 돕고 있잖아요. 우리는 함께 공부하면서 “왜 그것을” 바로 잡으려 하는지 자신에게 깊게 묻는 성찰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평화와 조화, 균형의 이면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어요.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진실한 관계를 토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외로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요(우정도 가능하고요). 힘이 든다고 여기질 때마다 몸에서 힘을 빼고, 한 걸음 물러서 최대한 대상과 삶을 수용해나간다면 그러므로써 긴장이 풀어진다면 잘 하고 계신 겁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입니다(부모도 나도 말입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싶은 분열성 성격을 지닌 대상이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빌 게이츠와는 다르게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부모에게 버려져 입양되었다. 다행히도 스티브 잡스를 위해 정성껏 많은 것을 주는 양부모 덕택에 그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PC라는 창조적 혁신을 하였지만,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뛰어난 창조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 고집스럽게 그만의 세상에 갇혀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2003년 10월 췌장암 판정을 받았으나, 이듬해 3월까지 수술을 거부하고 정신수행, 식이요법과 침술로 암을 고치려 하고 몸에 칼을 대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으며, 자신의 병에 대해 치밀하게 공부한 뒤 의사들에게 치료법까지 지시하는 등 전문가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처음 발견 당시 췌장의 5%만 퍼져있던 암은 9개월 뒤에는 췌장 전체로 퍼졌고 수술을 한 뒤에도 전이가 계속되어 결국 목숨을 잃게 되었다. 


잡스 역시 혼외 딸이 있었는데, 친딸임을 거부하였고 법원 판결이 나온 후에도 판결이 잘못되었다며 부인하였다. 당시 애플 상장으로 잡스는 2억 달러 이상의 갑부가 되었음에도 양육비를 지불하지 않았고 모녀의 월세 방에 한 달에 한 번 검은색 포르쉐를 몰고 찾아 왔지만, 별다른 물질적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극단적 성향이 강하며, 타인과 교류 할 수 없고, 외톨이로 살아가며 평생 아무도 신뢰하지 못하는 냉정한 일생을 불행히 살아가는 분열성 성격이 강한 스티브 잡스는 나를 안타깝게 한다. 무엇보다도 비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발하게 만드는 능력을 부러워하는 나는 스티브 잡스를 매우 높이 평가한다. 만일 그가 낳아준 부모로부터 버림받지 않았고 박탈감 없이 평범하고 온화한 부모가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외롭고 고독한 삶을 불행하게 빨리 마쳐야 하는 대신 많은 성공 물로 세상을 놀라게 하며 본인의 삶을 사랑하는 이들과 더욱 찬란하게 빛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6. 분열성 성격(수국님)                                                       


먼저 (주변에 있었던 분열성성격으로 생각되는 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 직장에서2003년부터 근무하고 있는데, 당시의 직장상사인 과장님 (C교수)이다. 이분은 이전부터 학회 내에 기인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그분을 특성 짓는 몇 개의단어로는““천재적인 학문적 역량””, ““은둔자””, ““기인”” 등 이었다. 내가 처음 뵈었을 때 우리는 작은 진료실에서 둘이 서로 인사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나의 눈을 맞추어 이야기 하지 않았다. 몇 마디 형식적인 이야기를 나누자 서로 약 3분가량 아무 말도 없이 멀뚱멀뚱 엉뚱한 곳만 바라보았다. 그때의 어색했던 기억이 지금도 서늘(?)하게 남아 있다. 선생님과의 소통이 쉽지 않았는데 출근 첫날부터 미리 사전고지도 없이 외래 진료를 해야 한다고 통보 받았다. 내가 이전에 근무하던 병원에서는 교수들과 더불어 함께 점심 식사를 하였던 반면, C과장님과는 식사는 물론 따로 각자의 스케줄대로만 움직이는 것이었다. 워낙 임상적인 역량과 열정, 총기가 뛰어난 분이었는데 자신의 전문분야의 이야기에는 열성을 다해 이야기했지만 그 외에는 무관심한 듯 보였다. 각자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으려 하거나 하지 않았고, 그런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느냐라는 반응이었다. 학회에 좀처럼 참석하지 않으니, 타병원 교수들이 C교수의 근황을 나에게 묻는다(동기 친구조차 직접 연락하지 않음). 원내에서 타과 전임의와 사귀었는데 (교수님은 아직도 미혼) 상대 여선생은 C교수가 청혼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C교수는 일방적으로 단교를 하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공부할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이었다.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더 이상의 친밀감은 피하는 듯 보였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전공의에게““너의 어머니라면 그렇게 했겠냐””라고 힐책 했고, 전공의는 어머니를 빗대어 한 그 말에 좌절하고 울고 분노하였다. 

C 선생님은““저 아이가 왜 우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했다. 나는 C선생님에게서 순기능과 역기능적인 영향을 모두 받았다. 선생님에게는 뚜렷한 제자가 없었는데 나는 직장동료이자 선생님의 제자의 역할이었다. 선생님의 뛰어난 의학적 안목과 학문적 소양덕분에 나는 의사로써, 학자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나는 그것을 전이하여 공부하는 스타일, 말하는 억양도 C 교수와 비슷해졌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C교수님과의 관계가 매우 어려웠다. 어떨 때는 선생님을 멀리서 보게 되면 마음이 덜컹하는 느낌마저 들었었다. 왠지 선생님에 대한 열등의식도 들었고, 무언가 내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 매우 싫었으며, 어떤 것이라도 최고로 잘해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C교수는 다른 곳으로 이직하였는데, 이후 나의 직장생활에서의 큰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간혹 업무 등으로 연락하고 보고 있는데 이전보다 점차 편해지는 마음이다. 


나에 대해 눈을 돌려본다. 나 자신 최근까지 분열성 성격의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지난번 모임에서 잠시 이야기 되었었는데,우리 모두 분열성 성격의 특성을 정도의 차이지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아차’하는 느낌이 들었었다. 어느 정도 나도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소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즐기고 필요하다. 어떨 때는 내적 삶을 완전히 공개하는 것이 싫거나 힘들었다(R1, 283). 그런데, 분열성 성격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라고 책에 언급된‘관습적인 사회적 기대를 등안시한다’는 부분은 나와는 매우 다른 점이다. 난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여태껏 민감하게 지내왔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볼까, 저 전공의는 나를 싫어할까, 내 친구는 나를 어떻게 여기는 것이지 등의 바깥세상의 평가에 민감하며, 지레 좌절하게 된다. 나의 실수를 받아들이기 어렵고, 실수가 아닌 것도 실수로 생각한다. 10가지 생각에 10개의 행동이 아니라 100개의 생각에 1개의 행동을 하게 된다. 많은 경우 혼자 있을 때 편하고, 나서기 싫으며, 상대가 접근해주었으면 하며, 소수의관계가 편하다. 특히, 정당한 것도 요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할 때 자꾸 회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런 부분은 업무를 진행하고 나를 발전시키는데 걸림돌로 작동하는 것 같다. 특히, 큰 일(업무)일수록 그러한 것 같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책상을 정리한다거나 이메일을 보거나 하게 되는데, 이런 행동에 대한 설명의 하나로 불안이 숨어서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R2. 379p). 내 스스로부지불식 중에 불안이라고 할까 스트레스라고 할지 어떤 것이 내재하고 있었다고 평가한 적이 있었다. 원인 모를 심박동수의 증가, 근육 뭉침, 안구 건조, 체중 감소 등 이런 신체화적 증상요소가 불안 또는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증상이 구체화 된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런 성향은 이혼이라는 삶의 트라우마/역경 후에 두드러지게 된 것 같다. 취약한 나의 심리상태에서 지난 시간 이혼의 과정에 따른 깊은 고통, 좌절, 상실감 그리고 삶의 오점이라는 자기 학대적 사고, 육아에 따른 심신 쇄약, 마음 한구석 자리 잡은 재정적 압박감 등이라 생각이 든다. 당시 이혼이라는 단어는 죽을 것 같은 스트레스와 압박이었으며, 그렇다고 아이들 엄마를 받아들이는 것은 화약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 같은 처지라는 생각에 두 개의대립적인 상황은 고통이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의 의지가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 상황에서 나 자신은 위축되고 갈 길을 찾기 힘들었다. 벌판에서 혼자 넘어질 것 같은 바람을 맞아야한다. 이전에는 친구들과(물론 소수의)의 모임도 잘 만들고 만나는 것을 즐겼었던 나였다는 기억이다. 하지만 혼자 지내게 된 이후부터는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고 두려웠다. 무언가 위축되고 내가 잘못된 삶을 사는 것, 나는 실패한 삶을 사는 것, 나의 삶에 큰 오류를 남기는 것 같았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싫고 피하고 싶었다. 사람들 모임에 나가는 것도 위축되었다.


언어 표현에서 나(me, I)라는 주어를 잘 표현하지 않는 것, 수동태의 말투 등은 자신의 힘이나 책임을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R2 382p). 내가, 나는 이라는 표현이 적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말에 힘이 덜 실리고, 나를 앞세우지 못하는, 물러서는 모습이 느껴진다. 분열성 성격원인으로 어머니와의 애착관계가 설명되었다. 나는 요즘 어머니와의 관계가 미스터리하다. 초등학교시절 내가 집에 돌아오기를 집밖 길에서 기다리시던 어머니 모습은 나에게 사랑, 희생, 감사의 모습이다. 여기에 부정적인 측면의 자기애적이고, 과잉보호적, 침범적이며 진정한 공감의 결핍(결여?)를 추가/첨가하려는(해야 하는) 생각은 혼란스럽고, 이것이 맞는 것인가라는 상념과 고민, 모호함 그리고 힘듦, 어려움, 일부 고뇌까지 일게 한다. (관련 페이지 275) 

이러한 판단의 예시 최근 어머니와의 대화

나 ““어머니, 이 이끼들을 보세요. 이것 제가 오늘 출장에서 오면서 채집해왔어요. 잘 보살필 겁니다.””– 진정 이끼들을 신기해하고 아끼는 마음

어머니 ““이게 살겠니? 그거 담은 통이 아깝다. 난 통이 없어 정리를 못하는데..””

나 ““이건 기껏 5,000원짜리 통입니다.””

어머니 ““하지만 난 그래””

내가 분열성 성격의 모습을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그 뿌리에 대해이번 시간을 통해 접근하고 경험하고 싶다. 앞으로 나 자신을 더 지지하고 나를 위한 요구를 할 수 있고 싶다. 나의 원하는 바, 나의 욕구를 직면하고 따르고 행동하여야겠다. 나의 에너지를 찾고 현실에 접근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①    R1. 정신분석적 진단. 성격구조의 이해. 2판. 학지사

②    R2. TA 이론에 의한 성격적응론, 학지사

③    R3. 석사학위 논문. 정진복, 사회적 행동의 구조 분석모형을 적용한 회피성 성격과 분열성 성격 간의 대인관계패턴


수퍼비전 - 인간은 지속적으로 성장을 하려면 변화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발달해야만 성장하고 인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은 인생의 큰 변화인데요. 서로 인격의 격이 달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서로 격이 맞지 않으면 조화,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소통이 되지 않아요(어떤 노력을 해도 깨져 버려요). 처음에 자기와 닮아 있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지만 성장배경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서로의 격과 기운이 달라 충돌이 일어나고 대화가 종국엔 관계가 안 되는 것이지요. 이혼은 엄청난 고통과 시련이 따르는 정체감 위기인 것 같습니다. 회복하려면 십년이상을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고통이 왔다는 것은 삶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라는 신호가 온 것이죠(발달하라는 메시지요).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이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 서로 (발달하기위한 획기적인)노력하면서 새 출발을 하던지 헤어져서 각자 새 출발을 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입니다(더 잘되라는 신호). 두 사람 모두 고통과 시련을 당하고 있으시겠지만 그 뜻은 인생에서 자기발달을 하라는, 새 출발하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관계를 맺을 때 한 사람은 격이 높고 또 한사람은 격이 낮을 수 있는데 상대방으로 인해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득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상대 배우자로 인해 인격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아 손해를 볼 때 더 이상의 실을 보지 말라고 또 지나친 이익을 보는 배우자도 자신의 노력을 통해 이익을 보라는 우주 자연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이혼 후에 변화하는 사람은 발달해서 예전보다 더 큰 성공을 이루고,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더 많은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 해요(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으니까요). 




7.숨은 자기-세상의 국외자, 방관자, 관찰자(국화님)           

                                         

분열성 성격을 지닌 사람은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조건을 심리적으로 점령당하고 말살당하는 상황으로 보고 이를 악착스레 피하려고 한다. 때론 관습적인 사회적 기대를 등한시하고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타자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관심이 없다. 그렇게 의미 있고 친밀한 접촉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의 태도는 항상적이다. 물론 이들에게 분열성 자리는 삶에서 오는 긴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아늑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간혹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사람에게 자신을 충분히 알리고 투자하길 원하지만 리비도를 투자해서 자신을 개방할 경우 간섭이나 통제를 당할까봐 매우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분열성자는 타인의 요구를 따르기는 하지만 압박감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이 수용되길 간절하게 바라며 살아간다.


부교재로 선택한「이상심리학 26, 분열성 성격장애와 분열형 성격장애」의 내용들을 공부하다보니 나의 분열적인 모습이 정리되며 느껴지고 있다. 분열성 성격을 규정짓는 여러 말 중 ‘의사소통의 단절과 냉랭한 가족 분위기’라는 표현이 가슴에 크게 와 닿는다. 어떤 사람과 효과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상대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여 적절한 반응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타내는 말 또는 감정, 행동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거나 포착해내지 못하고 설령 그것이 되었다 하더라도 합리적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반응하지 못한다고 한다. 부모의 의사소통 방식이 무질서하거나 피상적이고, 의례적이거나 냉담하다면 이런 분위기는 아동의 의사소통 능력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족구성원 간에 피상적이거나 형식적인 교류가 지속되면 그로인해 서로 친밀한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아 냉랭한 가족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분열성 성격장애가 발달하게 되는 토양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이상심리학 26, 분열성 성격장애와 분열형 성격장애」


 우리 가족 분위기는 정서적으로 냉랭하다(적대적인 게 아니라 외로운 냉냉함). 기억이 되는 유년기부터 부모님과 상호 정서적 교감을 느낄 수 없었고 거기에 부모님이 종교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 갈등이 컸었다. 일요일 종교문제로 부모님간의 긴장감이 몰아치면 방안에서 혼자 좋아하는 역사, 철학과 같은 다소 현실과 유리된 이상적인 주제를 다룬 책에 몰두했었다(내면세계로 철수-지금도 철학, 정신분석이나 역사, 이데올로기의 책은 나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두 분간의 따뜻한 감정이 실린 대화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거의 말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마누라 패싱’이라 할 정도로 어머니와 정적인 대화를 하지 않으시면서 나와 동생과는 조금씩 소통을 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셨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어색하고 적적한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나 또한 감정을 표현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고 불쾌하다. 기분 좋은 흥분이든 욕구불만이든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시원하게 표현하고 수용 받고 싶었으나 쉽지가 않았다. 때론 아버지가 집밖으로 나가셔야 비로소 표현의 억압에서 풀려났었고, 눈치를 보며 어렵게 감정표현이 되어도 어머니는 그것을 수용해주실 질 못했다. 그러한 이유로 의사소통이나 정서적 교감이 되지 않는 것에 억울해 하며 극단적 형태로 분노를 표출했었던 것 같다. 기껏해야 짜증이었지만 말이다. 


나와 소통되는 부모 경험의 부재로 평범한 의존이나 필요를 만끽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상에게 다가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반드시 상호작용을 통해야 이루어질 수가 있다. 부모의 감정표현 형태를 내면화하며 성격이 형성되는데, 나는 부모와 막힌 의사소통 경험으로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규명할 수없는 절망과 불안정감이 크다. 버려짐이란 반영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나 자신에 대한 경멸은 외부세계로 투사되기 마련인데 그 결과 항상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일어난다. 한 예로 분열성 자리의 냉담함이 일어나면 나는 도움을 주려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며 받아들이지 않아 낭패를 볼 때가 받다. 또한 어떤 대상이(사람이든 물건이든) 마음에 들 때 나 자신처럼 느껴져 한 순간 반해서 수용과 기대를 하다가 나 자신이 투사한 것에 들어맞지 않으면 대상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역할만 요구하게 되니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다가 결국 대가를 지불하고 착각임을 알게 된다). 


오랜 시간 정신분석에서 부모가 건강해야하는 이유를 공부했다. 그 이유는 아이는 부모를 동일시 하하고 닮아가면서 자아의 경계가 형성이 되고 그 경계에서 비로소 정서적 힘이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약한 부모님 때문에 지나친 애를 쓰면서(덩그러니 남겨진) 살아온 나는 자기애를 키울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지금도 아버지가 안쓰러워 떠나가는 게 두렵다). 특히 대화는 어떠한 문제를 서로 풀어나가는 방법뿐만 아니라 친밀함을 강화시켜주는 도구임에도 나는 그것을 사용할 줄을 모른다. 친밀해지려 사람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면 정서적 접촉이 일어나지 않기에 이내 대화는 쓸데없는 것이 되고, 내가 내 뱉은 말에서 벗어나기 위한 걱정을 하며 초조해진다. 듣고 말하는 리듬이 망가져 의견이 조율되지 않을 때 적절한 의견을 표현을 하지 못해 앞에서는 맞춰주다가 상대의 말만 남아 낭패를 보기 일쑤다. 그리고 뒤에서는 혼자서 속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는 식으로 내 의견을 혼자서 고수하지만 밖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검증받지 못한 의견은 나만의 생각으로 끝나게 되어, 나는 계속해서 현실에서 유리되어 간다. 


 분열성 성격도 스펙트럼 안에서 여러 형태가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나의 분열성 성격 특징을 정리하자면, ‘철수형 분열성 성격장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감정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는 지니고 있지만 그러한 욕구를 발현하면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 초래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관계 맺기 보다는 피하는 것이 더 이롭다는 생각이 크다. 당연히 수용을 받을만한 상황임에도 욕구를 발현(표현)하면 죄책감 내지 부적절한 느낌이 들기에 남에게 무조건 맞춰야만 할 것 같다. 그러니 다른 사람 눈엔 난 개성 없는 사람, 용케 표현을 해도 이해가 잘 되는 않는 사람,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그리고 현실감 있는 자기표현을 잘 하지 못해 늘 짜증과 적대감으로 진노가 일어나는데 항상 내 입장에만 초점이 맞춰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모든 면에서 과도하게 회피될 경우 인격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해진다고 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행동이 수반되는 반성과 개방적인 여러 시도와 도전 그리고 실수를 만회하는 회복의 행동을 용기 있게 해나가는 노력을 하는 중이다. 




8.분열성 성격(자아 상실)-후리지아님 


리비도의 욕구는 성 발달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필요한 전부를 포괄한다고 배웠다. 유아는 좋은 대상에 대한(엄마, 양육자) 애정이 좌절되면 공격성이 일어나 자신의 사랑 욕구가 대상을 파괴한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클라인의 우울적 자리에서는 이런 박탈은 죄책감으로 연결되지만(애도가 되지만) 스키조이드한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외부에 표현하지 않으며, 사랑대상을 상실하는 두려움으로 삶을 일관하게 된다. 좋은 대상관계로 인해 자아발달이 이루어지는데, 자아의 발달이 약화되는지 강화되는지에 따 철수 정도가 결정된다. 침범과 적대적인 환경의 압박은(돌봄의 좌절) 박해불안, 멸절의 두려움의 근원이 되며, 정서적 상처로 인해 유아의 자아는 외부로부터 숨는다. 분열성 성격에 관한 주제를 공부하면서 나와 연결된 개념은 “패쇄성”이라는 단어다. 패쇄성이라는 단어의 느낌은 “많은 것들을 숨겨 놨다”라는 의미다. 박탈과 충격적인 침범에 의한 철수인데, 아무튼 나는 안전하고 강한 자아능력을 키울 수가 없어서 진공상태 때론 견딜 수 없는 압박을 벗어나 모호하게 안전한 장소로 숨어 버리곤 한다(정신적 의미의 도주). DSM-5 진단기준에 따르면 아래 7가지 중 4가지가 포함되면 분열성성격으로 판단한다고 하는데, 나는 거의 모두를 포함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혼자 있는 것이 편안하고 좋다. 


1) 가족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친밀한 관계를 바라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음.2) 항상 혼자서 하는 행위를 선택함.3) 다른 사람과의 성적 경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음.4) 거의 모든 분야에서 즐거움을 취하려 하지 않음.5) 일차가족 이외의 친한 친구가 없음.6)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에 무관심함.7) 감정적 냉담, 유리 혹은 단조로운 정동의 표현을 보임. 


너무 이른 시기의 엄마가 없는 강렬한 불안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그리고 자양분을 제공받는다고 느껴지지 않는 환경에 놓인 나는 외부현실과 외부대상에게 소극성을 지향하게 되었다(우리 엄마는 아주 많은 시간 동안 나를 홀로 두었다). 물론 이 안전지대는 일상생활의 현실로부터 분리된 내면세계이다. 평생 동안 나에게 있어 철수와 회피는 접촉만큼 강렬한 상호작용 방식이었던 것 같다. 누구이든 의미 있는 접촉이 위협으로 경험될 때 통제당하는 것 같고, 침범당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고, 그냥 밉고, 나쁘게 느껴진다. 회피, 차가운 거리감, 사람들과의 상황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어려움, 거부, 불신, 뚱한 무관심한 분위기, 대상을 사물화 하는 강박성은 다양한 내 모습들이다. 좋은 듯 신뢰를 주다가도(과도하게 한다) 뭔가 결함을 찾아 실망하면 썰렁해지고 냉담해진다(엄마와의 관계가 재현-내가 원할 때 엄마가 다가오지 않아서). 좋은 관계를 하고 싶지만 강한 공포가 있어서 누군가에게 다가가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원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을 때 종종 느끼던 일인데, 혼자 있다가 가족 중 누군가가 집에 들어오면 침범당한 느낌이 들어 불쾌했었다. 결혼을 하고서도 집에 들어가면 나를 기다렸을 가족들을 떼어놓기 위해 반갑게 인사를 하기보다는 집안을 지저분하게 만든 것에 잔소리를 하면서 아이들과 남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거리두기), 화를 폭발하곤 고립감을 만들어 혼자만의 섬에 들어가 버렸다. 이런 나를 보고 실망하고 상처 입었을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과 남편은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따뜻한 친밀감을 기대했을 텐데 너무 미안하다. 아마도 기쁘거나 행복한 감정 역시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하는 작업에 열성이었고 만족스러웠다. 늘 최소한의 인간관계로 깊이 있는 만남을 하는 것처럼 편집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보통의 경우 관심이나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협소한 지적인 관계에서만 소통을 해왔던 것이다(주지화 방어). 나는 미술대학에 들어가서 섬유공예 전공에서 실을 가지고 직기로 조직을 짜는 작업을 하였고, 흙을 뭉치고 다듬는 조소라는 작업을 만나 홀로 재료들을 대상으로 삼아 작품 활동을 하였다. 뭔가 연결하려는 시도로 실을 사용하여 합치고, 조직을 만들어가면서 대상을 사용하였던 것 같다. 또한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수영, 스쿼쉬, 스키로 혼자서 시간을 보냈고, 도서관에서 12시까지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더 큰 사랑에 대한 갈급함과 허기는 신을 만나 의지하고, 나의 리얼 원트를 기도로 소망하고 찬송가를 중간대상으로 삼아 불안을 극복하며 이제까지 살아왔다.


위니캇이 말하는 환경의 실패란 아이의 인격을 지지하고 양육하는 일의 실패를 말한다. 유아의 최초의 욕구는 엄마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자신을 반겨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나는 환영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여자아이로 태어나 엄마가 친할머니에게 수모를 당하셨다고 한다. 친 할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셨는데 내가 딸이어서 3일 동안 나를 보지 않는 등 엄마를 구박해 엄마가 직접 내 기저귀를 빨고 혼자서 집안일을 다했다는 이야길 전해 들었다. 그래서일까 애기 때 엄마와 찍은 사진을 보면 엄마는 표정이 없고, 애기인 나도 신나는 표정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엄마를 생 후 일 년 동안 잃어버린 경험이 있었고, 그것은 트라우마로 삶 속에서 지속적인 고통경험이 되고 있다. 엄마가 다시 돌아왔어도 연결되지 못하는 불능 상태로 정서가 마비되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놓치고, 연결시키지 못하는 맥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사랑이 나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남에게 보여주는 게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부분이 대상에 투사되어 그 사람도 자신과 비슷할 거라 생각되어 좋은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그게 무관심의 원인이다. 나는 무관심으로 인해 많은 것을 연결 짓지 못하고 잊는 특성이 있다. 사람은 버려지면 홀로 남게 된다. 엄마가 나의 감정을 지지해주었어야 내가 뭔가를 느낄 수 있게 되는데, 나 자신을 검증하기위해 행위로만 인정받으려 하니 늘 고아 같은 느낌이 일어나 우울했던 것 같다. 성취보다 나의 참 모습을 알아가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 성장이 일어날 텐데 쉽지가 않다. 또한 나의 유아기 실패로 인해 엄마를 충분히 점유하지 못한 상실 경험 때문에 그런지 분석경험을 여러 번 시도를 했었지만 완성하지 못했었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 모성 박탈을 재 경험할 때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 일 것이다. 나는 거리를 두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늘 최소한의 관계만 해왔는데 지금 다시 도전한 상담에서는 친밀감을 외부세계에 일반화시키는 작업과 나의 분열의 조각들을 이어나가기 위해 용기를 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