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후기

기타 클래스편집증 성격

편집증적 성격구조(함께라면 스터디)


1. 고통 받는 피해자와 무관심한 가해자(에밀리 생크스)


편집증은 본인의 부정적인 습성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에게 적대감을 투사하여 왜곡하는 과대망상증현상이다. 그 결과 가족을 비롯해서 주변사람의 충실성과 신뢰성을 부당하게 의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호의적인 말이나 행동에 경멸이나 위협의 의미가 숨어 있다는 식이다. 그러니 아주 작은 모욕이나 불편한 행동에 대해 비난하며 용서를 하지 않는다. 사고방식이 유연하지 못해 농담도 잘 통하지 않고, 정당한 지적을 받을 수조차 없다. 이들에겐 보통의 경우 잘 느끼지 못하는 사소한 말과 행동을 자신의 성격이나 평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져 분노하며 반격한다. 또한 친밀한 대상이 배신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부당하게 증거를 찾아 힐책하며 매도한다(세상에는 믿을 사람 없다고). 물론 편집성 성격장애와 편집형 정신증은(환청과 망상이 수반)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모로 부터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아픔으로 인해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제대로 보거나 느낄 수 없어 외부세계로 투사하고 왜곡된 인지를 사실처럼 둔갑시켜 주위를 공포에 떨게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 ‘오늘의 탐정’의 선우혜는 몸은 어른이지만 자라지 않은 아이였다. 사랑받지 못한 상처로 비롯된 분노를 세상 사람에게 멋대로 투사해서 공포로 떨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도록 복수하는 그녀에게서 무서운 편집증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약한 점이나 죄책감을 끄집어내어 마음껏 괴롭히고 파괴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집증을 지닌 선우혜를 통해 남편이 자동 떠올려졌다. 형제 없이 홀로 자기애적인 부모 밑에서 외롭게 자란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예를 들면 남편은 지방색이나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아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온 친구나 지인의 인연을 단숨에 끊어버리고 유치한 복수로 대응한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사소한 부정적 단서에 SNS를 끊어버리고, 그들이 망하는 생각이나 저주를 퍼붓고 분기탱천하여 소란을 피운다.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입양되었을 거라는 피해의식으로 오십이 다 되도록 부모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죄책감이나 미안함 없이 오히려 억울한 본인의 마음을 알아 달라 소리치며 어른, 남편, 부모로써의 책임을 회피하고 산다. 


본인으로 인해 피해 받는 부모, 아내, 자식에게 거친 말이나 행동을 거르지 않고 쏟아내면서 본인은 무조건 피해자라고 어린아이처럼 억울해한다. 장기간 지속되어온 남편의 이러한 분노는 우리에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상처였다. 설사 입양이 되었다 해도 그가 평생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온 것들을 생각하면 남편의 모습은 터무니없는 실망이다. 보통의 사람은 매우 고마워 할 일이 남편에게는 모두 나쁘고 분한 일인 것이다. 6.25 전쟁 중 오직 징병을 피하는 방법은 의대생이었기에 역사상 가장 힘든 경쟁률을 뚫고 당시 최고 명문 고등학교와 서울 의대를 나오신 시아버님은 모든 에너지가 자기에게만 쏠려있는 자기 자랑만 있는 분이시다. 지방 출신이지만, 초등부터 대학까지 일등으로 앞에만 있었다는 시어머니도 현실에 본인뿐이시다. 어쩌다 손자 손녀가 상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자랑 드리면, 자화자찬으로 아이들을 칭찬 한마디 없이 기죽이신다. 그러니 형제도 없고 홀로 아무도 편들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자랐을 남편의 유년시절은 무척 외로웠을 것이다.  


남편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받는 모든 지원에 고마움 하나 없이, 오히려 억울해하고 어떡하면 부모를 더 괴롭힐까 어린아이처럼 고민하며 살아간다. 정신분석에서는 고통 받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의미가 일반적 의미와 다르다(페어베언은 신이 있는 곳에서는 구원이 있지만 신이 없으면 구원이 없으니 신이 없는 것보다 악신이라고 있는 게 낫다고 했었다 병리적인 부모를 내면화하는 이유를 이러한 비유로 설명한다). 사랑을 주지 않은 가해자가(상처를 준 부모가) 반성 없이 편히 잘 살면 피해자는(자녀는) 고통의 날을 보낸다. 피해자는 당한 것도 모자라 가해자가 느껴야할 죄책감마저 떠안는다. 자기 탓을 하지 않는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향해야 할 미움을 자기 자신에게 돌렸다는 것을 보통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 미움으로 자신과 남을 괴롭히고 살아간다고 한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엄마의 개입은 아이의 나약함을 메워주고 파괴적인 공격을 무력화시킨다. 남편에겐 엄마나 엄마가 갖는 능력이 부재했던 것이다. 엄마의 애정이나 관심이 턱없이 부족했고 남편이 겪는 사소한 것부터 큰 상처를 시부모님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무관심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부모에게 받는 상처는 희석되지 못해 계속해서 피해를 입힌다. 평생 병과 사고를 다 당하는 것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이 지금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 어린 아이는 어른이 잘못을 하면 책임을 어른에게 돌릴 수가 없다. 당연히 자신에게 돌린다.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가 부모를 탓할 수 없음을 배우지 않았던가. 아이는 자신이 완벽하지 못해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믿는다.“날 사랑하지 않고 거부하고 버린 것은 내가 나빠서 그래. 난 바보이고, 못생겼고, 똑똑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어. 그러니까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 아이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에 죄의식을 느끼면서 스스로 또는 타인을 엄벌하려는 논리로 살아가게 된다. 미움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신뢰하는 외부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적대감은 어찌될까. 고문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그 힘은 사라지지 않으니 어떻게 벗어날 수 가 있을까? 


남편은 나와 아이들에게 악을 투사하며 무서운 공포로 상처를 준다.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을 끊임없이 받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시기심을 담은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다. 거기에 알콜 의존으로 인지 왜곡까지 생겨 지금은 그 누구와도 소통이 어려운 상태다. 특히, 명문 학교에 들어가 미래를 꿈꾸고 노력하는 아들에게 투사하는 질시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정상적인 세대교체를 할 수 있는 관계모습이-애정, 질서가 없다. 진실한 사랑은 주는 것이지 빼앗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자아에 힘이 생기니 아빠의 폭언과 폭력에 대항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가정폭력의 범인으로 아빠를 신고하였고, 현재 가정 법원으로 송치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원하고 희망하는 바는 그를 벌주기가 아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보호조치라는 법의 힘을 빌려 그에게 치료를 권하고, 새 삶을 찾아 주고 싶은 지극히 올바른 목적이다. 


나는 편집증적 엄마에게 자랐기에 그 분노가 갖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안다(엄청난 힘을 지닌 망령, 좀비와 같다). 무고한 사람에게 원망이라는 비정상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것을 강요할 때 피해자의 고통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난 평생 남편을 돕는 게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엄마로부터 끔찍한 고통을 겪었고 기억조차 견딜 수가 없는데 현실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니 나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남편이나 나는 마땅히 누려야할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한 번도 제대로 자기 자신이 되어본적이 없다). 사랑을 주어야 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크게 받았고 고통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우리는(남편과 나는) 늘 무고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할 때는 이미 사단이 난 뒤였다. 상담을 받고 정신분석을 공부하기 전에는 고통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 피해는 더 엄청났던 것 같다. 나 또한 힘든 만큼 남편을 비롯해서 누구에게든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도 남편처럼 피해자의 모습으로 엄마에게서 그리고 남편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저주를 믿으며 그것이 진실 같아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거나 이해받고 싶지 않았었다(당연한 팔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남 탓을 하며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사랑과 자애가 넘치는 엄마라는 존재가 없으면 아이는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나 이미지를 가지 못해 호소할 수가 없다고 한다. 불안한 이유나 고통스러운 실패를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한다. 남편은 아마도 신체적인 아픔이나 불편함 정서적인 고통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나또한 그랬으니까. 남편은 사실 나름 똑똑하고, 외모도 잘생기고 , 에너지도 많고, 체구도 좋고,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도 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얼마 만큼인지 모르겠으나 무질서와 억압 수많은 좌절로 점철된 삶속에 갇혀있다(안정된 환경의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과거이지만 현재 진행 중이다. 남편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가정환경, 진로적성, 인간관계의 성공과 단절되어(분열로) 여전히 연속된 실패 속에 살아간다. 안정된 미래에 대한 설계가 아예 불가능한 사람처럼 잠재능력은 숨겨두고 최소한의 적응만 하고 살아간다. 


스스로 행복한 삶을 막아 자신과 남을 벌하는 남편이 구원되었으면 좋겠다. 남편은 현재 가족 모두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데 악의를 갖고 자신을 거부한다는 불신 속에 있다. 우리의 사랑과 관심은 속셈이 있는 나쁜 의도로 오해받고 있다. 사실 진짜 피해자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고를 감내해야 하는 가족과 주변인들이다. 나 또한 부모로부터 만들어진 죄책감이 조금이라 경감되었으면 좋겠다. 우선 그 방법은 여러 사람의 도움과 이해를 받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날 계속 설득했다(가정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용기가 있는 일이고 잘한 행동이라고). 나는 평생 또 다른 피해자로써 나에게는 권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지 못했다(나또한 자기 처벌적이라 내 삶을 개선해 본적이 없다). 처음으로 죄책감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로 법에 호소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새로운 변화가 남편과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진다. 남편은 사람에 대한 만성적인 불신으로 그 어떤 문제행동도(파괴적인 행동) 교정되거나 멈춘 적이 없었는데 현재 처음으로 그는 경찰의 압력에 굴복하고 처벌받을 까봐 무서워하고 있다. 남편도 무의식에서 느낀 무거운 죄책감을 현실에서 대면하면서(처치하면서) 예전과는 조금은 달라 질 거란 생각을 한다. 


나는 내 문제를 제대로 다루면서 복수만이 내 억울함을 풀어주는 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가고 있다. 드라마 ‘오늘의 탐정’에서 보듯이 모든 사람은 피해망상이나 죄책감을 일으키는 크고 작은 일을 겪지만, 모두 다 선우혜처럼 악한 부정적 적대감을 표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다일이나 정여울처럼 아픈 상처로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선한 사람이 더 많다.  선우혜의 악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도 그녀본인은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 시키며 되풀이 할뿐이다(끝이 있기나 한 걸까). 그녀의 악행을 막으려 이다일과 정여울이 서로를 위해가며 싸울 때 주위에 조건 없이 그들을 도우려는 한상섭 소장, 백다혜 변호사, 길채원 부검의, 박정대형사, 그리고 김결까지 자신의 상처에 비추어 그들의 상처를 공감하며 돕는다. 상처가 있다하더라도, 올바른 사랑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며 소중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된다. 남편이 선우혜처럼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느낄 수 없겠지만 의심이나 억측을 하는 대신에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베풀어주는 가족의 말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드라마 결말, 이다일은 선우혜에게 말한다.  “너도 그만 미워해 너네 아빠도 너 자신도” “이제 그만 쉬어”....



   

2. 나는 민감한 사람(베르트 모리조)


편집증의 핵심 특징은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이며 사람의 동기를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적대감을 갖는 것이다. 남을 지나치게 경계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속이거나 이용하거나 배반하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화를 잘 낸다. 즉 다른 사람의 나쁜 동기나 속임수를 확신하여 늘 그것을 찾아내는 데 몰두해서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의심하는 행동으로 고통을 준다. 그리고 상대방이 불신이나 적대감에 상처를 받아 화를 내면 미안함 대신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생각에 의심과 경계는 더욱 강화된다. 


편집증의 원인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설명되어지고 있다. Freud(1896)는 편집증을 방어에 의한 정신병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에 대한 억압 방어의 효율성이 무너지면 이로 인해 부인, 반동형성, 투사 등의 방어기제를 대안적으로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조작은 정신 내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만 망상을 통해서 의식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Cameron(1963)은 편집증은 기본적인 신뢰감의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보았고, 이들은 어릴 때 학대를 받은 경험으로 인해 자신과 타인을 학대하는 태도를 내면화한 것으로 보았다. 이와 유사하게 Fenigstein(1994)은 편집증의 원인과 관련한 발달적 원인으로 성격적 소인과 함께 권위주의적이고 지배적인 가족배경, 부적절한 사회화 등의 요인과의 관련성을 설명하였다. Brockington(1991)은 망상형성의 원인요인으로 뇌의 기능적 이상, 기질 또는 성격 변인, 자존감 유지-애정망상의 경우, 정서-과대망상과 죄업망상의 경우, 환각 등의 비정상적인 지각 경험, 인지적 과부하-지나친 극도의 각성, 지나친 집중 및 반추 등을 든다. 


유지요인으로는 사고의 경직성, 망상을 강화하는 환경요인, 망상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망상 확증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악순환 등을 들고 있다. 또한 편집성 성격이 자기 및 타인에 대한 부정적 신념을 지니며, 자존감에 대한 위협감을 쉽게 느끼고 그 방어를 위해 위협적이거나 부정적인 사건을 타인에게 귀인 한다고 보는 심리적 측면과 인지적 측면 모두에 초점을 두는 최근의 설명모형도 있고, 보다 최근에는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려는 시도에 따라 편집성향과 피해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개인이 역기능적인 삶의 경험을 자주 겪어 자기와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표상을 갖게 되는 것 그리고 불안으로 대표되는 위협 시스템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것이 편집성향과 피해망상의 취약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오늘의 탐정’드라마에 등장하는 선우혜를 보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공포와 혐오가 일어나서,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포기하기를 몇 주간 반복했다. 선우혜의 경직된 표정, 태도, 사고방식이 너무나 원시적이라 공포 그 자체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처 난 자존심 때문에 살인까지 거침없이 저지르는 그녀의 원한과 사나운 모습이‘편집증자의 날 것 그대로’의 상태인 것 같아 두려움과 무서움이 느껴졌다. 


과거에 경험된 왜곡된 인식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겠지만 어린아이인데 타인이란 믿을 수 없는 혐오스럽고 두려운 존재라고 각인된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선우혜를 보면서 마음이 마음 불편했던 내 모습을 정리해보려 한다. 나는 편집증 성격처럼 아주 당연한 챙김이나 질문, 프라이버시 등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다(침해, 침범에 대한 의혹과 적대감이 있다). 편집증에 관한 과제를 해나가면서 혹시 내가 편집증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 동안 심란했었다. 분석을 통해 나는 자극을 잘 걸러내지 못하는 민감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시끄러운 소리나 북적대는 사람도 나에겐 자극적이고 부담이 크다. 이상한 냄새, 과한 소리자극, 강한 불빛, 어수선한 주변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것들로도 충분히 불안해진다. 장을 보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미술관에 다녀오면 저녁 모임은 나갈 수가 없다. 큰일이든 소소한 일이든 치루고 나면 민감한 나는 혼자 있어야 한다(기진맥진). 이런 때 가족 누군가 요구나 재촉을 하면 귀찮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나는 어떤 장소에 가면 그곳의 분위가 화목한지 험악한지, 공기가 맑은지 탁한지 초대한 이의 기분이, 성격이 어떠한 지부터 파악한다. 때론 다른 사람 정도의 에너지를 사용해서(나에겐 오버) 적극적인 행동이나 말을 하면 더 긴장이 일어나 감정조절이 어렵게 된다. 


그래서 살아오면서 인간관계서 경험한 많은 부정적 자극 하나 하나에 속수무책이 되고 그것이 나의 결함으로 느껴져 위기를 겪을 때가 많았다(관계 거부, 단절). 신경계가 지나치게 긴장하면 뭐든 쉽게 지치고 서툴러지는 멘붕 상태가 된다(몸과 마음이 말을 듣지 않고, 생각도 마비된다). 나는 이러한 모습이 편집증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민감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이 듣거나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을 쉽게, 빨리 알아차린다. 그래서인지 많은 것을 흡수하고 구분한다(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그냥 안다). 나는 또한 매우 양심적이고 신중하다(매너, 상식 없는 그리고 옳고 그름에 둔감한 사람이 불편하다). 반면에 자아가 매우 약해서 강한 자극에 단점을 마구 드러낸다(감정폭발). 다른 사람에게 사소한 게 나에게 강력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힘이 든다(무엇인가를 하지 말라고 제제 하는 모습이 심술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견딜 수가 없어서 그렇다). 평소와 다른 이러한 민감함을 한 번도 제대로 존중이나 이해를 받아보질 못해서 충돌, 대립되면 나의 인간성에 의심이 일어나 서 괴로웠다(어떤 모습이 참 나인지). 난 긴장을 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더구나 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자극은 극도로 견디기 힘들다. 특히 누군가에게 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 그 고통은 엄청나다. 


과제를 하면서 기억 깊은 곳에 묻혀있던 몇 가지 장면들을 소환해냈다. 장면 하나. 바빴던 엄마가 왜 그 시간에 집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들리는 엄마의 악에 받힌 큰소리에 감히 현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마당에 서 있다. 옆에 있던 친구를 돌려보낼 생각도 못하고 얼음이 된, 친구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들킨 수치심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나. 외할머니랑 다투는 앙칼진 엄마의 소리가 기억에 선명하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얼마나 자기를 안도와주고 힘들게 만드는지 푸념을 했고 이렇게 큰소리가 난 다음에는 할머니의 몸에서 꼬집힌 자국이나 멍 자국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었다. 할머니는 학교에서 모르는 선생님들이 없을 정도로 우리 곁에서 엄마를 대신해 주셨던 분이시다. 장면 둘. 엄마는 평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외숙모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화를 내고 있다. 옆에 서 있는 어린 사촌동생들과 나는 겁에 질려서 꼼짝도 못하고 급기야 사촌동생이 울음을 터트린 후에야 엄마의 화가 가라앉는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뚱뚱하고, 못생기고, 인간성까지 음흉한 외숙모는 자신의 남동생의 인생을 갉아먹는 존재이고 시댁 알기를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에 혼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 


장면 셋. 엄마가 소리 지르며 나를 혼내주다가 나를 끌고 뛰쳐나간다. 왜 그러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엄마는 갑자기 마당에 있던 낫을 들고 내 목에 갖다 대며 죽여 버리겠다고 한다. 감히 바쁜 엄마의 심부름을 싫다고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었지만 겁에 질린 나는 아이처럼 자지러지게 울며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결국 엄마가 시킨 일을 마친 후에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 날은 모의고사 시험 날이었고, 주번이어서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했는데도 엄마는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너무 서러워서 계속 울었는데 위로하는 친구들에게도 차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우리 집 강아지가 죽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장면 넷. 우리 집 차고에 살고 있던 일하는 언니한테 화를 내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 소리를 지르던 엄마는 급기야 언니를 때리고 발로 차며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언니는 감히 엄마한테 맞대응을 할 수 없어 최소한의 방어 만 하며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는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엄마를 말릴 수도 있는 나이였지만 그때도 나는 얼음이 되어 엄마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화가 나에게 튀어 그녀의 폭력을 견뎌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만 바라면서 말이다. 


    선우혜가 보여주는 분노의 폭발과 폭력은 엄마의 그것과 꼭 닮아있다. 부모에게 철저하게 버림받은 선우혜는 자기 내부의 증오를 외부에 투사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감춰져있는 상처를 악의적으로 만들어 버려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죄책감을 이용하여 공격의 도구로 쓰거나 자살하게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는 살인도 서슴없이 한다. 엄마 역시 세상 사람들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잘 믿지 않고 심지어는 자식들도 믿지 않는다. 오빠의 결혼을 앞두고 엄마가 취한 첫 번째 행동은 오빠이름으로 되어있는 모든 부동산과 거기서 나오는 수입은 자기 것이라는 서류를 작성하고 공증 받으려는 계획을 세우셨다. 결혼하고 나면 오빠의 태도가 달라져서 자기 것을 모두 뺏기고 버림받을 것이라는 엄마의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현실 오판이었다. 항상 숨겨진 의도를 찾고 다른 사람의 의도를 악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엄마와 대화하다 보면 강요로 내가 진짜 저런 나쁜 생각을 했나 보다하는 착각이 강하게 일어난다. 엄마가 사용하는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로 인해 나는 평생 근원을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수치감에 고통을 받았다. 


낫으로 목숨을 위협 받았던 기억도 사실은 모의고사였다고 해도 엄마한테 중요한 심부름을 싫다고 한 건 내 잘못이었다고 판단되었다. 이제 서야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억측과 죄책감으로 나를 묶어놓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 어떤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흉기로 위협하며 자식을 죽여 버린다는 엄마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엄마로 인해 나는 이해심이 너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따뜻한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내 민감한 기질이 부각되었을 테지만(사상가나 사회에 필요한 영적이고 도덕적인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폭력적인 환경으로 인해 나의 좋은 기질은 발현도 못하고, 평생 남들에게 감춰야할 게 많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선우혜 엄마는 환경이 열악해서 무지했다고 치지만 우리엄마는 교양미 넘치는 인텔리중의 인텔리다.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받은 아주 사소한 모욕이나 무례한 행동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회를 소란스럽게 만든 이명희, 조양호, 조현민, 조현아도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아주 작은 것에 상처를 입는 민감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엄마를 포함해서 선우혜, 이들 모두 이해받지 못한 좌절된 어린아이다. 전쟁, 질병, 개인의 과거사와 경력, 인간관계 등 세대를 거쳐 내려온 깊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오늘의 탐정의 모든 등장인물들은‘왜 하나같이 다 짠하냐’는 소장의 말처럼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선우혜와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선우혜의 분노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사랑으로 대항하고 희생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엄마의 편집성 성격으로 상처를 받았으면서 그녀의 삶의 태도를 학습한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분노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너무나 불행하다. 왜냐하면 남을 믿지 못하는 상태는 너무나 외롭고 마음이 황폐해지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인풋도 중요하지만(무엇인가를 배워 얻고, 관심이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웃풋도 중요한 것이라는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배우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 즐기며 고민을 털어버리는 환기통처럼 비워내기를 할 때 시선한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이다. 이미 버려버린 것은 다시 돌아보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3. 편집성 성격 장애(리라 게보트 페리) 


편집성 성격조직의 본질은 자기 내부의 부정적 속성들을 부인하고 그것을 투사에 의해 다루는 습관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부인하는 속성들은 이제 외부의 위협으로 느껴진다. 사람을 감시하고 파악하며 의심하는 행동으로 인해 상대가 곤혹스러워 거리를 두거나 관계를 끝내려고 하면 배신이나 음모라 믿어 현실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부정적인 일들을 상상하고 부당하게 힐문하거나 그 증거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다. 이러한 편집성 성격조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편집-분열자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동일한 대상에게 사랑과 증오를 함께 느끼면, 증오가 사랑을 압도하고 파괴시킬 것이라는 공포로부터 발생한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생기고 이 때문에 분열(split-off)이 일어나게 된다. 편집성 자의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악한 것”을 분리시켜서 이를 외부의 인물들에게 투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편집성 자는 지속적으로 외부적인 공격자나 박해자들에 대한 희생자의 역할을 유지하여 내적 위협을 외적 위협으로 대치한다.  


편집적인 사람들은 성장 과정에서 자기효능감이 심하게 모욕당했던 것으로 보이며(과거에 반드시 왜곡된 인식을 하게 된 계기-학대나 방치가 있다), 제압당하고 굴욕당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그래서 그들은 의존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이는 그러한 행동이 약하고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보다 자신의 통제권과 자율성을 지키는 것이 그들에겐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편집성 성격조직에 이르게 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일차 양육자가 불안이 심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일차 양육자가 원시적 방어를 사용하는 혼란이 심한 양육자라면, 또는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조종하기 위해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아동은 심리화, 정신화(mentalization)에 실패하여 자신이 경험한 것이 사실이 되어버린다(feeling = fact). 따라서 위협적인 외부세계의 희생자인 편집적인 사람은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방어적 경계태세를 갖추고, 그 진의를 의심하며, 다른 사람과 자신의 생각과 관념을 나누려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념이 맞아 들어감을 밝히기 위한 자기 충족적 예언을 만들어 낸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방어가 흔들리고 통제가 풀어지면 기저의 두려움과 격노가 드러나 공격성을 보이고 욕설을 마구 퍼부으면서 엄청난 적대적 힘을 폭발시킨다. 치정에 얽힌 폭력과(죽여 버리겠다고 협박, 터무니없는 앙갚음) 살인,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고소, 고발하고(활력소-사사로운 이해관계 때문에 소송을 반복), 연애 망상을 부풀려 구애를 하다가 집착인 강한 스토커가 되기도 한다. 편집적인 사람들의 핵심에는 깊은 정서적 고립이 있으며, 열등감과 부정적 자기개념에 휩싸여 있으며, 그런 자신이 취약하고 나약하다고 여겨 자격지심이 강하고 자신의 이러한 면이 드러나는 것에 강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런 텅 빈 껍질을 감추기 위해 이들은 아무도 자신을 정복할 수 없다는 태도와 자만심을 갖는다. 또한 이들은 자신이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함으로써 자신의 운명도 혼자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양극 중 약한 쪽은 편집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만성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사는가 하는데서 잘 나타난다. 이들은 결코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며, 주변 환경의 위험을 탐지하는 일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과대한 쪽은 이들의“관계사고”에서 잘 드러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망상적 성격특성중의 하나가 과도한 비밀주의 이다. 이들은 평범한 질문이나 출신, 조금 사적인 질문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며 절대 대답하지 않는다. 망상성 성격장애는 독재자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네로, 크롬웰같은 공포 정치가, 신흥종교의 교주, 히틀러에서 스탈린은 공통적인 성격을 지녔다. 비밀경찰의 암약, 반대자의 숙청, 유대인 학살, 집단자살 등(이들과 투쟁할 수 있는 것은 국가 권력뿐이다).


관찰자아가 있는 투사

사람은 누구나 편집적인 성향이 나타날 때가 있다(왕창 사나워질 때). 살다보면 스트레스가 과도할 때 자아가 위축되면서 축소된 채로 문제해결을 하려고 할 때 말이다. 더 쉽게 말하면 나만의 논리에 빠져 무덤을 파고 있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부적절감을 갖거나, 자존감이 떨어진 상황,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편집적 의심과 투사가 일어난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스스로 내가 치료를 잘 해내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 원장님이 나를 만나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뭘 잘못했나?”“~ 때문에 나에게 한소리 하려고 하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긴장이 일어난다. 또한 이혼한 여자라는 위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다(최근 이사한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과도한 친절에 우리 집에 누구누구가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행동인가 의심하고 경계). 사실 이러한 투사는 해결방법이 있다. 상담일이 스트레스가 넘치는 일이라서 수요과 내가 갖고 있는 자원이 미스 매치되거나 그들의 문제가(병리성) 큰 자기장에 휘말려 짜증이 일어나고(아주 건들기만 해봐) 기운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러면 프리징이 온다(멘붕). 그럴 때 투사를 이용해서 방어를 하는 것 같다(모든 게 암흑이다). 하지만 다시 컨디션이 회복되면 다른 즐거운 이슈로 부정적 생각을 분산시킬 수가 있다(관찰자아가 투사를 다양한 채널로 처리한다). 


또 하나의 투사 예를 들어보자면 나는 사회적 성취에 대한 욕구를 부정하고(힘의 욕구) 타인에게 투사하여왔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정서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나를 이용했고, 나도 그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나의 강점인 즐거움을 주는 것을 활용했다. 그에 반해 언니는 부모님과 정서적 거리를 두며 자신의 현실적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왔다. 언니의 성취는 부모님께 만족감을 주었고, 인정받는 언니에 대한 질투로 언니의 성취를 세속적인 것으로 평가절하하며 나는 이상주의적이고 사회적 성취와 무관한 사람이 되어갔다. 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팀목처럼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건강한 나르시시즘은 행복하고 충만한 결실을 맺는 삶을 도와주고 꼭 필요하다고 배웠다. 왜 나의 나르시시즘은 도약대가 되지 못했던 걸까. 좀더 알아봐야겠지만 아무튼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고 시도해보는 대담함이 내겐 없었다. 


그러다보니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마지막 시점에 포기해 버리거나(결혼 후 외국 유학 준비하여 내가 원하는 곳에 좋은 조건으로 어드미션을 받았지만) 성취를 위한 도전(박사과정)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실패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이렇듯 내게도 성취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지만 이는 내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고 또 내가 잘 수행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느껴져 그 열등감을 가까운 사람에게 투사시켜 그들을 비난했다. 공부하지 않고 핸드폰 게임에 빠진 아들에게 잔소리하며, 또 여유롭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게으른 친구를 보기 싫어하며 그들에게서 나의 무능함과 이루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했다. 


스스로 평균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사교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행동을 과감하게 하고 정신도 몸도 건강하다고 한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창의력이나 리더십, 높은 자존감, 자신감등 긍정적 자질이 높다고 한다. 또한 자신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실패나 어떤 상실도 잘 견뎌낼 것이다. 나르시시즘이 너무 부족해도 해로울 수 있는 것 같다. 부모님관계에서 나는 에코이스트가 된 걸까(자신이 가치 있고 중요한 존재임을 모르는-너무 약한 부모를 돌보느라 자기애를 포기한 걸까) 긴 시간을 두고 분석해나가고 싶어졌다. 건강하고 성취지향적인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현실에서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세상과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려면 목소리, 즉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에코처럼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다. 




4. 인지 행동이론으로 본 편집성 성격장애(프리다 칼로). 


인지적 관점에서는 잘못된 사고방식(신념)이 심리장애의 핵심 요인이며 이러한 인지와 신념을 검색하고 변화시킴으로써 감정 및 행동의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고 가정한다. 편집성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문제에 대해 상대방을 탓하는 경우가 강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정적 경험을 증거로 끌어 들인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행동이 타인과 자신의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른다. 전형적으로 경계심이 매우 높고, 신뢰관계나 애정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을 권력이나 힘으로 지배하려 든다(권모술수에 능하다). 편집적 성격장애에서의 핵심 단어는 의심과 불신이다. 편집성 성격은 모든 상황에서 경계심을 품고 어떤 일에 대해서든지 숨겨진 동기를 찾으며,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핵심 신념    나는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받기 쉽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 

             사람들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기만적이다. 

             사람들은 나를 해치거나 평가절하 한다. 


조건적 신념  내가 조심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조종하고 학대하며 이용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정하게 구는 것은 나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와 거리를 둔다면 그것은 그들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 지시적 신념

             경계하라. 아무도 믿지 마라. 숨겨진 동기를 찾아라.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정신 역동 이론으로 본 편집 분열 성격 - 내적 갈등과 투사(편집증을 유발하는 심리 역동적 기제)

1. 분열 - 같은 대상에 대해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느낄 경우, 둘을 통합하지 않고 완전히 분리시킨 후 모든 악한 것을 외부에 투사함으로써 자신은 희생자 역할을 하며 내적 긴장을 완화시킨다. 대상에 대한 분리된 감정을 통합하려고하면 증오가 사랑을 억누르고 파괴시킨다는 공포를 느끼면서 참을 수 없는 불안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살아가려면 자신의 모든 ‘나쁜 부분’을 분리해서 그것을 외부 인물에 투사해야한다.


2. 의심- 외부세계가 신뢰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끊임없는 불안 상태에서 살고 있다. 타인에 대한 경험이 안정적이거나 지속적이지 못하여 항상 사람을 의심하고, 상대방에게서 실수가 발견되면 이를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하는 증거로 삼는다. 


3. 대상항상성 발달의 실패

4. 불완전한 자아 - 편집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현실 경험에 대한 지각과 감정, 사고 사이를 

중재해주는 자아의 기능이 불완전하여 잘못된 지각과 느낌 그 자체를 마치 실제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세상에 대해 부정확한 해석을 한다. 이들의 2가지 주요 방어기제로는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가 있는데 투사를 통해 자기 내면에 있는 위협을 다른 사람이 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서 위협을 외재화 하고 타인이 특정방향으로 행동하고 정서를 체험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그들을 병리적인 방법으로 속박하고 통제한다. 


5. 자율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 - 권위적인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하고 복종을 강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자율성이 위협당할 수 있다고 지각하고 지나치게 자기 결정권 자율성, 독립성이라는 주제에 집착하게 된다. 


발달적 요인 

1) 아동기 요인 - 편집성 성격은 적대감, 피해, 복종, 나약함, 수치심등에 관한 내면적 갈등을 겪은 아동에게 생긴다. 이런 초기의 경향은 이후 발달 과정에서 자부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거만한 성격으로 이어지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 타인을 탓하거나 자기 자신에게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음으로써 비현실적인 자기상과 통제감을 유지하게 만든다. 자신의 관점 이외에는 어떤 다른 입장도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과 과민성을 바로잡지 못하고 그로 인한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아동기 발달에 어떤 요인이 편집성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지 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몇몇 영역이 있는데 이들은 생후 첫 2년 동안 지나친 긴장과 불안으로부터 적절하게 보호받지 못했다. 기본적인 신뢰감을 발달시킬 수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긴장과 분노를 개방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허용 받아왔고, 많은 경우 자신에게 좀 더 적대적인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 해온 것으로 간주된다. 가학적인 어머니는 고의적으로 아이를 성나게 해서 그 아이가 사나워지게 만들고는 아이가 보이는 격노와 무기력한 폭력을 즐기기도 하는데 이 같은 상황에서 유아나 아이는 지나친 자극을 받고 분노하며 공격적이게 된다. 결국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허용 받지만 사랑과 증오의 양가감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험하거나 조절, 표현하지는 못하게 된다. 지배와 통제를 통해서 아이의 자유를 계속적으로 방해하기도 하는데 감시하고 의심하고 항상 허락해 주지 않는 집안 분위기도 마찬가지이다. 


2) 편집성 성격의 발달과정 - 일반인조차 극심하게 불안하고 두렵거나 충격을 받았을 때는 자신이 느끼는 의심 및 공포의 이유를 잘 대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큰 과제는 자신이 경험한 것의 타당성을 살펴보고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과 자신의 결론에 의문을 갖는 것인데, 또 이때 필요한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안과 긴장감 등의 정서적 흐름에 압도되어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막는 능력, 스트레스 상황에서 잠시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거나 심지어는 두려움과 의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입장을 취하는 능력이다. 이렇게 불확실성과 모호함에 따른 불안 긴장을 참고 관점을 옮기는 능력은 성숙한 성격 발달의 산물이다. 


때론 성숙하고 잘 조직화된 성인도 정서적 위기를 만나면 이 능력을 잃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의 두려움과 의심을 정서적으로 그 일에 덜 관여되고 믿을 수 있는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자신을 염려해주는 사람과 자신의 불안을 나눔으로써 커다란 안정을 얻고 이를 통해 상황을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타인에 대한 신뢰, 모호함을 잘 견디는 것, 스트레스 상황에서 입장을 바꿔볼 수 있는 능력 등은 편집자들 성격에서 결여된 요소다. 그들은 유아기의 신뢰나 자신감을 발달시키지 못해 그 결과로 원초적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어떤 경우는 부모의 지속적인 사랑을 경험하지 못해서 안정적이고 다정하며 의존할 만한 세계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지 못하기도 했다. 안전하고 가까운 대인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행동적 기반이 결여되어 온 것이다. 이들은 자신을 심하게 대하고 속일 것이라는 뿌리 깊은 의심을 지니며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속고 있다고 느낄 때 마다 공격적으로 반응할 태세로 무장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유아기, 아동기 동안 학대를 당했으며 그 결과로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가학적 태도를 내면화 해왔다(공격자와의 동일시). 신뢰를 배울 수 없는 환경에서 양육되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는 것이다.


자기 및 타인표상

편집적인 사람은 자신은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문제가 되는 것은 타인들의 적대감과 학대, 불공평, 시기심, 이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확신에 차서 자율성과 통제감을 주장하고 항상 다른 사람만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강력한 자기는 실제로 매우 취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자기이다. 실제 많은 경험적 연구에서 이들은 자기개념이 부정적이고 자존감이 낮으며 상당 수준의 내면적 우울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피해의식과 타인에 대한 과민성은 상당부분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기인한 것이다. 편집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부정적 자기상을 부인, 투사하고 모든 부정적인 상황을 타인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존감을 보호 유지 또는 증진하려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를 비롯해 많은 인간관계에서 좌절과 학대를 받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표상도 매우 부정적인데, 이런 부정적 인식이 깊게 뿌리 잡고 있고 그것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확대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쉽게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주변 사람의 행동과 태도에 예민하기 때문에 모든 주의가 그곳으로 쏠리고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나 심리 과정, 객관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 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남학생 A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했는데 새어나오는 소리가 크게 들려서 주변 사람들이 불편했었나보다(평소에도 이 학생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들 자기가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닐까하여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B 학생이 A에게 이어폰 소리를 줄여 달라고 얘기 했는데 A의 반응이“뭐~~ 어쩌라고!”였다. 학생 B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 모두들 공부하고 있으니 피해가 갈까봐“잠깐 나가서 얘기하자”고 했는데 학생A가“왜~ 날 패 버릴려고?”라고 대응했다. 그래서 열람실 안에서 소란이 일어나게 된 거다. 학생 A가 집에 연락을 했는지 그 학생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 아들이 변호사를 부를 수 있고, 신고해서 경찰 데리고 센터로 오겠다고 했다. 


센터에 와서는 자기 아들을 위협했던 학생을 오라고 소리 지르고 그 피해가 어떠한지 CCTV를 확인하자고 했다. 그 상황을 지켜봤던 사람들을 불러와 얘기를 듣겠다고 했으나 A학생의 엄마는 막무가내로 이야기를 자르며, 자기 아들은 남에게 불편함을 줄 사람이 아니고, 음악도 클래식 피아노곡만 듣고, 태권도와 유도 유단자여서 주먹을 함부로 쓰지 않는 신중한 아이라며 자신이 아들을 어떻게 잘 키웠는지에 대해서 장황하게 얘기 했다. 다행이도 그날 A학생의 친 할아버지도 함께 오셨는데 할아버지께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시고는 손자가 문제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하시고, 엄마와 손자를 타일러서 데리고 간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할아버지는 손자 얘기만 듣고 억울하게 폭행당할 줄 알고 놀라서 오셨다고 했다. 학생A는 그동안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행동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B학생에게 잘잘못을 따지지 못한 것과 사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하면서 핫 팩을 집어 던지고 떠나갔다. 오랫동안 A학생의 언행과 눈빛이 혐오스럽게 느껴져 불쾌했었다. 대화가 전혀 되지 않는 상태가‘아...저런 거구나!’싶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도 전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며 그것을 불편하다고 알려주는 사람을 자신을 위협했다고 느끼는 왜곡된 상태가 참 끔찍했다.   


나 또한 증거가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나를 기만하고 불이익주고 해를 끼치려한다고 발끈할 때가 있다. 이와 같은 망상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부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방해해왔다. 아주 오랜 시간 시댁식구를 비롯해서 남편이나 주변인들에게 끊임없이 충실성과 신뢰를 강요하며 나의 의심을 해결하고자 했던 때가 있었다. 나에게 한 결 같이 충실해도(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고 우겨댔다. 그러다가 의존하고 싶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더 잘 지내거나 나를 빠트리고 식사를 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확대 해석해서 나 자신이 심각하게 해를 당했다고 생각했다(나에게 반하는 악의).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거나 관심이나 인정을 받고 싶다고 원하는 것에 대해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의지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피해망상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관계가 멀어지는 이유). 얼마나 오랫동안 관심을 주는 노력을 속셈과 착취하려는 행동으로 오해했는지 모른다. 상대의 실수나 잘못을 곱씹으며 친구나 주변인 그리고 가족을 신뢰하지 못했었다. 


최근에 아이가 학교 기숙사를 이용하고 있다가 최근에 홈스테이로 옮겨가게 되었다. 생활비만 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등록비와 보증금도 내야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환불에 대한 규정이나 집 안의 물건을 사용하다가 망가지면 발생하는 수리비까지 세세히 적혀있는 계약서를 메일로 받았는데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원장님이 엄청 돈만 밝히는 늙은 여우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를 진정성 있게 잘 돌봐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주고받는 카톡 문자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살폈다(부모들 앞에서만 잘하는 척 하고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사람은 항시 자신 밖에 모르고, 절대 손해 보지 않으며, 거짓되고 가증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믿을 수 없는 존재라서 내가 손해보지 않으려면 잘 살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사러 가도 장사하는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제대로 된 물건인가? 아닌가?, 나한테 더 받고 파는 거 아닌가?). 융합된 찐한 관계가 아니면‘그럼 그렇지. 인간한테 뭘 기대해.’하고 바로 뒤돌아선다. 


특별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적대시하는 마음이 내 안에 많이 있다. 어릴 적 부모의 계속된 증오에 갇혀 좌절을 수도 없이 경험한 게 투사되어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아버지, 사람을 불신하며 남 탓을 하는 엄마, 짜증과 증오를 약한 우리들에게 쏟아 붓는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두려우면서도 그 억울함에 저주하는 마음이 생겨났다(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 가만두지 않겠어). 아버지는 구두를 만들어 파는 제화점을 하셨다. 손님이 가게에 들어와 신발을 구경하고 안 살수도 있는 건데 그런 손님들을 향하여 비난과 저주, 욕을 퍼 부으셨던 모습들이 생각이 난다.“엄마, 왜 욕하는 거야? 저 사람들이 뭘 잘못 한 거야?”하고 물었던 기억도 있다. 아버지에게 합세해서 큰 눈을 부라리며 심할 때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가게와 살림집이 붙어 있어서 가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었는데 내가 보고 싶지 않아도 많은 걸 지켜봐야했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정말 뛰어나셔서 다행히 손님이 많았다. 하지만 손님들과의 약속을 제 때 지키지 못해서 사람들을 몇 번이고 번거롭게 오도록 만드셨다.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아빠는 왜 맨 날 저럴까?”생각했던 것 같다.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다. 센터에 손님들이 온다. 정성껏 설명하고 안내를 해준다. 등록을 하지 않고 가는 사람들에게 방금 전까지 친절한 모습은 온대간대 없고 갑자기 딴 사람이 된 것 마냥  나도 모르게 미운 마음이 올라온다. 그들이 나한테 잘못한 것도 없고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저주를 퍼 붓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나도 모르게 부모님의 증오를 관찰하면서 학습된 것이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에게 협조하지 못하는 외로움, 서로 괴롭히는 원만치 않은 인간관계, 사회 공포증, 비정상적인 부정적 상상(과민증-피해망상), 심술, 인색함, 성마름, 모욕을 보고 자랐다. 사실 B군의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국세청에 센터를 고발한 아르바이트생, 편집증이 심한 학생을 선생님께 상담의뢰를 했던 일, 불신감이 들어 의심과 거부로 응징하고 싶었던 직원들, 박해불안에 시달려 토즈 담당자를 원망하며 그녀를 모욕 주었던 일등이 더 있었다(마치 드라마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언제 벗어날 수 있을 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던 폭력적인 지안의 주변 환경과 같다). 


내가 느끼는 사람에 대한 만성적인 불신은 당연한 결과이다. 되는 일이 없고,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고,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나의 자아상 또한 부모님의 낮은 자존감에 휘말리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절대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이 떠올려진다. 나에게 편집적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안에 편집증 성향이 없다면 사람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증오나(박해불안과 기대) 질시가 아닌 정중히 사과하고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내버려두는 게 자연스럽게 일어났을 것이다. 그들을 부정하고 이기려는(응징하고픈) 마음이 크지 않았다면 끔찍한 일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었다고 기억되었을 것이다(도움을 받아 잘 대처한 자부심이 더 컸을 것이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나는 다른 사람의 기분, 상황을 존중하기가 어렵다(있는 그대로의 객관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용기가 나는 억울해서 힘이 든다. 


타인의 기분을 민감하게 통찰하고 배려할 수 있는‘멘탈라이징 능력’을(불안정애착에서 비롯된 공감, 이해능력 그리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정신능력) 열심히 배우고 실천해보고 싶다.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부모 잘못만나 지지리도 고생하는 지안이가(학대에 노출된) 평범하게 살아가는 동훈이를 훔쳐보면서(관찰하면서) 보통의 삶과 보통의 관계가 무엇인지 배우며(모델링) 자신의 저주받은 삶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불안정애착을 경험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상에 애착을 보인다고 한다. 동훈이의 당당함,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성실한 태도가 지안이는 가슴 떨리게 신뢰롭고 감사했을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상호작용)를 통해 수용과 공감을 받는 것이 정신적 건강과 사회적응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이라는 지지체계가 심리적 불안을 감소시키거나 인생에서 일어나는 위기를 극복하게 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공부해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가족과 부모가 없었다. 가족이, 형제가, 부부가, 친구가, 함께 일하는 사람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힘이 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 믿기가 어렵다. 부모님으로부터 기대와 보살핌이 충족되지 않아 관계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배울 수 없어서일 것이다. 관계는 가까워도 노력해야하고 멀어도 노력해야한다고 배우고 있지만 그 내용을 잘 알 수가 없다. 그냥 난 표현하지 않아도 내 모든 것을 다 이해해주고 무조건 나에게 좋은 것을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 믿고 아등바등 살아왔던 것 같다. 


사람을 못 믿는 것도 부모님의 애정에 허기가 져 생겨난 자아도취 때문에 그렇다. 오만하게 누군가를 탓할 것이 아니라 내 태도를 변화시켜야하는데 쉽지가 않다. 동훈에게 어렵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주변엔 친구들이(이웃) 함께 있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문득 상담 스터디를 통해 마음공부로 서로 상처를 공감하고 수용하며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 스터디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오랜 시간 공들여 공부하면서 나에게도 이제는‘관계’에 대한 좋은 그림이 그려지고 있어서 기쁘다. 



5. 그건 사실이 아니란다(조지아 오키프)                                   


편집증의 핵심 증상은 상대방에 대한 불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잘못된 신념과 의심, 적대감 등이다. 편집증자들은 외현적으로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지각하고 평가하지만 내면에서는 일반사람들 보다 강렬하게 의존하고 싶은 갈망을 숨기고 거부 메타포가 강하고, 부정적인 자기 개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런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우울이라는 정서적 문제를 겪지 않기 위해 남 탓을 하거나, 주변인을(의존하고 싶은 대상을) 가해자로 나쁘게 지목하며 자신을 피해자로 지각하는 특성을 보인다. 부정적 자기 상태, 낮은 자존감, 수치심, 죄책감 등 이런 편집증 원인들은 부모와의 불안정애착에서 시작된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편집증자는 부모에게 과대한 자기상을 지지받고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부모에게 안정된 애착을 받지 못하고 자라면서 점차로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거리나 무관심한 것을 거부나 비난으로 받아들여, 박해받는다는 환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기를 보호하게 되었다.


결국 편집증도 부모와의 애착 결여 문제였다. 나 또한 애착 대상과 친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정서적 거리와 독립적인 행동을 유지하려는 애착 회피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난 어릴 적 빠른 눈치로 여러 상황을 살피며 ‘세상을 사는 법’을 배워나갔다. 엄마랑 있을 때는 엄마 말이 무조건 옳다고 해야 혼나지 않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는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하면서 엄마 기분을 맞추며 얻어냈었고, 부모님이 늘 다투셔서 그 전조를 살펴 일찍 자거나 친척집에 놀러가거나 TV를 크게 켜 놓고 그 곳에 집중했다. 그 외에 친척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각 상황에 맞게 알아서 때때로 위기 없이 안정을 얻었으나 커가면서 모든 상황에 맞추고 사는 게 피곤하고 귀찮았고 답답했었다. 사춘기 이후는 힘이 생기면서는 아무 말도 듣지 않고 반항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가족에게 관심 받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기대를 했다가 거부당하는 피드백을 받을 때면 불안을 달래주거나 진정시키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감정적으로 예민해져서 화를 폭발하고 또다시 거절을 당하고 또 화를 내는 악순환을 반복하였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관계에서 인기도 좋고 선생님들이 예뻐하였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대신 열등감과 무가치함, 부정적 자아상 때문에 진짜가 아닌 거짓의 느낌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한 번은 제사 때문에 동서 부부와 대화를 하려고 두 번이나 불렀는데 시동생과 둘이 웃으면서 재미나게 계속 얘기를 하는 모습에 순간 “이렇게 큰 소리로 불렀는데 못 듣지는 않았을 것이고 둘 다 나를 안 좋아하니까 일부러 못들은 척을 하나보다”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어 모욕 받은 기분에 화가 나서 집에 돌아왔던 적이 있다. 그리고는 남편을 붙들고 어떻게 수모를 당했는지를 부풀려(나도 모르게 편집하여)말해서 결국 남편이 동조하여 같이 화가 나서 시동생에게 전화를 한다고 하자 그제야 그러지 말라고 말리며 기분이 나아졌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나는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동서와 시동생의 행동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불신과 의심으로 나의 가치감을 보호했던 것이다(그리고 왜 현실과 대상이 그렇게 불편하게 지각되는지 대면을 잘 못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이 날 잠시 거부한 것인지, 못들은 것인지, 기다리라고 신호를 보냈는지 말이다. 불편한 상황은 늘 찜찜하게 마무리 되어 혼란스럽다). 나는 강한 자기애에로 인해 거절에 대한 민감함이 크다(리젝션 센서티비티). 엄마가 남이 자신을 차지 못하게 먼저 차는 모습과 일맥상통한 것 같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현실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남을 해하려는 나쁜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슬프게도 좋음에 확신이 없다. 좋은 것은 사랑을 통해 직접 몸으로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니까 말이다. 어릴 적 누가 밭에서 땄다거나 음식을 했다고 정성스레 뭔가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잘 먹겠다고 말한 뒤 돌아서자마자 “먹다 남은 거, 처치 곤란한 거 주는 거 모를까봐?” 하던 엄마가 이상했었는데 같은 상황에서 나 역시 “왜 나에게 이걸 줬을까?” 그 따뜻함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의심을 하며 결국 찜찜해하다가 그냥 버린다. 이뿐인가. 어떤 엄마가 험담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그녀에게 전화해서 “너 당장 지금 나와. 어디 알지도 못하면서 니까짓게 나한테” 라고 말하며 마구 화를 내고는 밤새 욕하는 엄마가 무서웠는데, 나 역시 편집된 사실만 부각시키고 다양한 입장을 수용하는 현실 검증 능력이 없어서 의심과 불신을 그대로 유지한다. 


엄마로부터 어릴 적 듣고 자랐던 “니가 나쁘다, 잘못했다”는 말들은 항시 이유 없는 죄책감으로 작용하여 실제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잘못한 것 같고, 나 때문인 것 같은 불안에 휩싸이게 한다. 잘못이 드러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벌써, 이미 해를 끼쳤다고 믿고 우기는 엄마로 인해 생겨난 공포인 것이다. 이러한 망상은 끊임없이 작용해서 평생 다른 사람들과 평범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성인이면서도 어릴 적 들었던 엄마의 부정적 말들이 내면화되어 죄책감을 여전히 조장하고 있으며 그 목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편집성 성격을 지닌 엄마와의 관계는 힘이 들었다. 나를 끝없이 불신하고 의심하니 친밀하게 지낼 수가 없었다. 조금 친해져 마음을 터놓고 가까이 다가가면 엄마의 요구가 컸고 그것을 거부하면 자신이 배신당한 것으로 여겨 분노하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내가 엄마보다 더 누군가를 챙길 수도 있고(엄마를 잊을 수도 있고), 전화를 빠뜨리거나 기념일을 잘 챙기지 못할 때도 있다. 엄마에게 이런 평범한 실수는 자신이 심각하게 해를 당한 일이 되었다. 


그러니 엄마에게 있어 나는 심하게 불성실하고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정직하지 않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간 그 진심이 나에게 해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직한 건 필요 없는 것이고 진실이나 진심은 늘 불리하게 작용된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배워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무엇이든 대놓고 지적하거나 맞 설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려고 하기에 말이다. 자신의 속은 보이지 않고(사랑이나 인정받고 싶은) 현상의 배후에 있는 나쁜 속셈, 의도가 있다고 의심해서 사람을 녹다운시킨다. 나는 그게 무서워 갈등이 생길 것 같으면 우선 피하고 보는 행동이 모든 관계에 일반화되었다. 일이나 사람에 몰두하다보면 기가 빨리고 에너지도 바닥을 쳐서 혼자가 낫다라는 심정이 된다. 사실 혼자를 강조하는 것은 강한 열등감 때문인데 말이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저 평가로(난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어) 끝나버린다. 엄마의 부정적 논리가 강해서 내가 망할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엄마는 평생 자신이 상처를 받을지 모르는 행동의 기미에 촉각을 곤두세우시는 분이시다. 호의를 가진 사람의 별 것 아닌 실수와 의도하지 않은 잘못도 매우 과장해서 받아들이신다. 그리고 그 실수나 잘못을 곱씹으며 주변인을 더욱 신뢰하지 못한다(원망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엄마의 행동을 관찰하고 배웠다. 그로인해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자기애적인 외로움, 원만치 않은 관계 스트레스, 나의 취약성이 탄로 나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도망가고 싶은 사회공포, 과민증을 경험한다. 또한 엄마처럼 사람이 적이냐 아군이냐를 감시하면서 그 사람의 행동을 파악하다가 상대방이 스트레스를 받고 거리를 두며 다른 이들과 잘 지내면 그리 질투가 일어날 수가 없다(시기심으로 착각했었는데 상담을 통해 자기애적 질투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질투는 왜 너만 잘났어하는 생각이다(유치한 과대자기 상태로 상대가 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나의 편집성향의 모습을 발견해보고자 노력했다. 내 문제의 본질을 모르고 상대방을 탓하며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생각하면서,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과제를 했다. 힘들지만 내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해보고 표현하는 것, 잠시 동안 그것이 창피하고 못난 모습으로 비춰질지라도 감정을 표현하는 게 진정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 인격 안에 상처를 받아 생겨난 가오나시(존재감 없는 사람)가 있다. 자존감을 높이며 나를 찾아가는 가정은 서서히 진행되겠지만 ‘존재의 받아들임’이라는 이 거룩한 행위가 삶의 근본 에너지임을 인식하며 노력할 것이다. 상담 스터디 회원들과 나누는 퍼스널 시크릿은 매우 경이롭다. 이전에 상처받아오던 관계모습과 달리 그 어떤 피해의식도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의 마음은 항상 동등하다. 상처를 공유하면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지지라는 사랑을 통해서 미숙한 삶의 생존법에서 우리들 모두가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함께라면’ 구성원과 김은옥 선생님이 소중하고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