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후기

위니컷 클래스두번의 위니캇 강의를 마치고

두번의 도널드 위니캇 강의를 마치고...


1. 통합님.

며칠 전 엄마의 생신 때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내 여동생과 아이들을 보면서 들었던 어떤 느낌들이 떠올라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여동생에게는 아이가 셋이 있다.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만 거의 왕래 하지 않고 지낸다.  그러고 보니 8년 동안이나 그 조카들을 보면서 예쁘다든지 귀엽다든지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가져 보거나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기억이 없다.  동생의 집엔 아이들만 셋이라 외동딸인 우리 아이는 그 집에 가는 걸 너무 좋아했다.  자주  이모 집에 놀러 가자고 조르기도 했지만 나는 그 집에 가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아이가 조를 때마다 매번 핑계거리를 만들어 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내 여동생이긴 하지만  별로 애정도  잘 못 느끼겠고  왕래하지 않고 지내는 이런 내 모습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을 떠 올리면 ~  무엇을 해도 못하는, 매력 없음, 어디를 가나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무식, 쓰레기, 천박함,  가치 없음..........  이러한 매우  부정적인 표상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비슷한 느낌들이 조카들을 보면  그대로 느껴진다.  그 아이들과 내가 함께 있으면 내가 너무 창피해져서 내 여동생과 아이들이 나와 상관이 없었으면 좋겠고 그들을 떨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올라온다.   너무나 귀찮고 하찮게 여겨지고 .........  나는 그 아이들을 쳐다보고 싶지도 마주하고 싶지도 않다. 내 여동생 집에 가면 뭐라고 말로 표현 할 수 없지만 너무나 익숙한 그 느낌들이 있는데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몸서리 쳐지는 그 무엇이 있다.   아무것도 정리되어지지 않아서 발 디딜 틈 없이  지저분한 공간들  '구질구질' 함 이란 단어가 떠올려지는 집안 풍경과 제 멋대로 날뛰는 아이들 사이에서 있는 무질서, 혼란, 방치.........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이 이 아이들을 통해 다시 재방송 되고 있는 것 같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복잡하고 괴로워진다. 


또한  그 날 조카들을 대하는 내 모습 속에서  우리 큰 이모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큰 이모를  싫어한다.   엄마에게서 느껴지는 그 힘든 감정들( 혐오스러움, 분노, 증오, 혼란, 자랑스럽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큰 이모에게서도 똑같이 느낀다.   그동안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되돌아보니  어렸을 때 큰 이모로부터 선물 하나를  받아본 기억이 없고 우리를 안아 준다든지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든지 정이 담긴 말 한마디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집에 자주 오셨는데 먹을 걸 사들고 오거나 밥을 한번 산다든가 하는 걸 거의 못 본거 같다.  우리 집에 오셔도 우리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늘 자기 신세한탄 뿐 . 그리고 나만 보면 늘 하시던 말씀 중에 하나 “징그럽게 울어 댔어. 징그럽게........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 울어대서 엄마가 너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도 못하고 ”  미움 가득한 마음을 담아서 아주 지겹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나 뿐 만이  아니라 우리 삼남매를 귀찮고 하찮게 그리고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대했던  이모의 모습.


조금만 화가 나면 “내가 정말 미치겠어. 니들 땜에”  “너 같은 건  필요 없다”  “너 같은걸 낳아놓고 내가 미역국을 먹었다니.........”  “너 같은 건 나가서........”  내 팔을 잡아 끌어내서 밖으로 내 쫒으셨던 부모님 모습. 화가 나고 분노에 찬 얼굴로 매를 들고 다가오던 그 순간들, 부모님 손에 붙잡혀 질질 끌려 나가면서 떨었던 그 무섭고 두려웠던  순간들............ 

극도로 불안함과 공포를 느꼈던 감정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 마치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듯 나에게  쏟아졌던  미움 분노 화를 대하고 있으니 너무 힘들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어른들이 쏟아내는 그 미움과 증오 분노 속에서 살아남느라고 너무 애썼다” 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나도 내 맘 속에 상처받았던 아이에게 똑같이 말해본다.  위로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다시는 그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이 되는 마음도 있다.  나와 내 여동생 그리고 아이들.......... 나와 너무 닮아서 내가 그들을 볼 수 없었다.  그게 내 모습이여서........... 


나를 좀 더 이해하고 나니 여동생과 아이들을 대하는데 있어 좀 편해졌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적어도  나와 같은 기억을 갖도록 하고 싶지 않다.  상담을 통해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복된 기회를 선물 받았다.  사람들은 사랑하다가도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회복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산다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 하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 청소년기 때를 돌이켜 보면 부모의 쏟아지는 분노만 있었을 뿐 뭔가 잘못된 것이 수정이 된다든지 회복되는 과정은 없었다. 내 존재가 “정말 나쁨” 으로만 경험되어졌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다가 잘 안 될 때마다 “너는 좀 맞아야 돼.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하고 내가 내 자신에게 했던 혼잣말들도 그러고보니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나 존재감 없이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묻혀 있었고 나는 없었다.  나를 표현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말이 나오지도 않는다. 


나 자신을 좋게 하기 위한 건설적이고 적절한 변화를 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노력도 안하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싸움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보복 당하고 괴롭힘을 당할까봐 그렇다.  그게 너무 무섭다.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든 나는 좋은 사람이다.  순하고 착한 ..........  하지만 내 속은 마구 뿜어져 나올 것 같은 분노와 화가 있다.  이런 나를 대하면서 회칠한 무덤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 한 척” 하는 나.  환상과 현실이 구별되지 않아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못 듣는 것을 듣는 나. 


공격성 수업을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원시적 가학을 많이 당해 생겨버린 나의 인간관계 패턴이다.    나는 늘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이 되고 다른 이들은 나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는 나쁜 사람이 되고  .......  나에겐 이렇게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만 있었고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런 형태의 관계가 계속 반복되고 있었단 말이다.  내 문제 때문에 남편을 들들 볶아대고 한바탕 싸우고 나면 결국  늘 남편이 내게  “내가 부족 했어 ”  “내가  잘 못했어 ”  “미안해”  - (내가 나빴어)하게 만들고 우리 아이에게는 내가 부모님께 받았던 것처럼   분노의 잔을 쏟아 붇고 찍어 누르고.  나 자신도 파괴하고 남도 기어코 파괴해 버리는 파괴자! 


아이들은 배우기 위해  acting out을 하기도 하고 limit 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를 치고 파괴하고 다니고 잃어버린 경험을 찾고 회복하기 위해 반 사회성 행동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부모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 보복하지 않고 이해와 대면으로 버텨주기 경계 세워 주기.........)  배우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말썽을 부리는 것이~ 나빠서가 아니라는 사실이 왜 이렇게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안심이 된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많은 결핍이 있고 부족함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가 된다.  




2. 의존님.

척척척. 이것은 무엇이든 잘하는 행동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아닌 척, 모르는 척, 아는 척, 착한 척, 괜찮은 척, 즐거운 척 등등 나를 숨기고 순응하며 남에게 의존하기 위한 거짓된 나를 나타내는 말이다.  '척'하고 나서 억울함에 분을 삭히지 못해 울고,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합리화를 하며 나를 보호했지만 이러한 같은 일상의 반복으로  항상 피곤했다.


어릴적 우리집 싸움은 항상 두 가지로 나뉘었다. 부부간의 싸움, 아빠와 언니의 연합 대 엄마의 싸움,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부모님은 거의 매일같이 싸웠다. 엄마의 행동에 불만이 많았던 아빠는  엄마의 분풀이 대상이 되었던 언니와 함께 무식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며 엄마를 무시했다. 나는 엄마를 무시하고 욕하는 아빠가 싫었지만 엄마의 편을 들 수 가 없었다.  엄마보다 학력좋고 더 자상한 아빠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아빠가 밉지만 엄마 아닌 누군가에게라도 사랑받고 싶었기에 아빠 말이 다 옳다고 믿고 싶어 그렇게 따랐다.  


사랑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었던 나는 언제나 타인의 말, 표정,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내 생각이 아닌 그들의 생각을 지레짐작하여 미리 행동해 버리고 그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까봐 노심초사하며 불안해했다. 그리고 처분을 기다리듯 답을 빨리 들어야만 덜 불안했으며 겉으론 언제나 괜찮은 듯 행동했다. 또한 긍정적 칭찬을 받아야만 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고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보다 상대방이 들은 칭찬이 큰 경우 심한 배신감을 겪어야했고, 다시 나를 더 사랑해줄 누군가를 찾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때론 버림받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을 거두었다. 항상 척척척,  순응하고 맞추는 거짓된 삶을 살았왔다.  가족때문에 힘들어도 헌신하는 가장의 모습처럼 부모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항상 아빠에 대한 불평이 많은 엄마를 위해 매일 술을 드시고 오는 아빠가 언제나 오실지 동네 입구에서 늦은 시간까지 아빠를 기다렸고,  또 술 드시면 우리 삼형제를 괴롭히는 끝도 없는 훈계를 멈추게 하는 역할도 내가 했다. 지긋지긋 했지만 내가 아니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중고등학생 때 나도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비 오는 날 우산도 쓰지 않고 몇 시간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갔고, 교실 창밖을 보며 하염없이 뭐가 그리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나이에 무슨 걱정이 또 그리 많았는지....  부모교육수업을 들을 때 마다 소리 지르고 싶은 말이 있다. “엄마, 아빠 왜 날 이렇게 길렀나요?”


대학시절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 있다. 나는 어린시절 말고 고등학생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그래서 말썽 한번 제대로 피워보고 싶다고 .... 공격성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 사춘기를 겪지 않은 것이 계속 생각난다. 어른들은 말썽 한번 안 피운 나를 착한 딸이라고 생각했지만 커서도 그 때 하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되는 것은 어쩌면 내 무의식은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그 때 바뀔 수 있었던.... 그런 좋은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너무 아쉽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말, 이쁜말을 하고, 욕은 절대로 안되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불편한 것은 억압하고 웃고, 내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모든 나쁜 것들은 절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행동하는 고상하고, 우아한 나! 엄마처럼 우리를 함부로 대하고 욕하는 상스럽게 보이는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현모양처를 꿈꾸었던 나! 내가 나의 공격성을 제대로 한번이라도 써 본적이 있다면 이런 현실적이지 못한 이미지를 만들고 꿈 꿨을까? 누군가를 좋게 보면 결코 다른 이면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그 사람의 말, 행동을 맹신하며 살아왔기에 그 사람을 이겨보려는 경쟁심도 경계심도 갖을 수 없었다. 어릴적 점쟁이가 이 아이는 점점 공부를 잘 할거라는 말을 듣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대한 꿈 없이 그저 엄마의 말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했다. 나의 삶은 내 의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남의 말, 표정, 행동으로만들어진 것 같다.


얼마전까지의  나의 삶은 무의미했다. 그리고  일방적인 관심과 의존으로  누구든 상대를 힘들게 했고, 진정으로 하고싶은 말을 제대로 입 밖으로 끄집어 내지 못해 오랜 시간 나를 괴롭히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주는 관심과 사랑만큼 나도 받아도 된다는 것,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할지 싫어할지를 생각하고 참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해 말해도 된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과 관계하는 것, 내가 문제 삼고 싫어하는 모습을 타인은 때론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등등 나를 들들달달 볶았던 것들에 대해 이제는 다른 각도로 보려한다.  

 

 


3. 분리님.

나는 엄청난 에너지와 부지런함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직업적인 일에 있어서의 평판도 좋으며 주변에 많은 좋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내 스스로 만족스러운 자기애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생전 우울이란 감정을 잘 못 느꼈던 내가 올 해 큰 아이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많이 우울하다. 아침에 자고 일어날 때 저 밑의 어디 수렁에서 누가 나를 계속 잡아당기는 듯한 혹은 내가 지금 무슨 약을 먹고 취해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멍하고 자고 싶고, 만사가 다 귀찮고 무기력하다.  작년에 우리 큰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만해도 나는 스스로 괜찮은 엄마라고 여겼다. 당시는 아이도 별 문제가 없는 듯했고 나 역시 아이를 잘 키우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그런데 아이가 입학 후 2달 동안 엄마가 보고 싶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학교에서 울고, 밤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울고, 학교에서 우는 걸 보고 다른 아이들이 놀려서 아이가 또 상처를 받고, 그런 일들로 인해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을 하면서 나는 정말 제대로 무너졌다. 


그런데 “내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보다 “내가 너무 잘 못 키웠나보다. 다 아이의 문제는 엄마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유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아이가 문제가 있는 걸 사람들이 알아버리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에 나는 계속 전전긍긍이었다.  ‘나는 왜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를 헤아리기보다 내 아이의 문제로 인해 내가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봐 이렇게 두려운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나는 내 아이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남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크다. 큰 아이를 아주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지도 말고 친정부모에게 맡기지도 말고 대신 집에서 애를 키우라고 계속 주장했는데 나는 친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돈을 벌어서 대줘야하는 상황이라서 남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둘째가 생겼을 때도 남편이 다시 직장을 그만둘 것을 권유했으나 나는 경력 단절과 내 엄마가 우리 집에 함께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거부하고 계속 일을 했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문제가 생기면 나는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항상 안절부절 못한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을 무서워하는 것은 육아뿐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에서 내가 잘못을 하면 항상 남편에게 말할 때는 축소하거나 빼거나 마치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던 것처럼 편집해서 전달한다. 나는 왜 ‘내가 잘못을 했으면 당연히 내가 책임을 져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왜 항상 혼나면 어쩌나? 욕먹으면 어쩌나? 하는 일에 이리 더 신경이 쓰이는 걸까? 나는 남편이 이렇게 무서울까? 난 내 잘못에 대해 남편으로부터 어떤 말을 들을 때마다, 남편을 늘 어릴 적 내 엄마의 자리에 두고 예전에 엄마에게 느꼈던 지나친 두려움과 불안을 나도 모르게 다시 재현시킨다. 남편이 현실적 조언을 해주면 그 말들은 내게 수용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내 변명만 늘어놓게 되다가 결국 남편이 예측할 수 없는 갑작스런 분노폭발을 보이면 그 분노한 얼굴에서 엄마가 내게 했던 눈빛이 보이고, 남편이 분노한 상태에서 하는 말들은 엄마가 여과 없이 마구 어린 내게 내뱉었던 말로 들리면서 난 남편과 동등한 입장이기 보다는 어릴 때 엄마 앞의 아이였던 때처럼 남편을 그렇게 인식하게 된다. 


나는 어릴 때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 나는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나를 의심하면서 “니가 안그러면 누가 우리집에서 그랬겠어?”라고 무슨 일만 생기면 나를 의심하고 믿어주지 않았기에 늘 억울하다고 나의 부당함을 울면서 계속 얘기하다가 더 맞았던 일,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엄마 실은 제가 이런 잘못을 했어요>라고 지난 일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서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용서를 해주실거니까 그런 일을 엄마에게 말하고 오라는 학교 숙제를 하기위해, 내가 잘못한 일을 말했을 때 엄마의 용서하는 목소리와는 다른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떻게?” 너는 진짜 구제불능이다.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라는 말에 우리 엄마가 선생님이 말한 책에 나오는 엄마랑 다른 엄마라는 사실에 속상해서 울었던 일, 그런데 그런 속상한 마음에 우는 내 마음도 모르고 “니가 그렇게 울어서 우리집에 아주 망조가 들겠다”라고 이불 밖으로 들리던 엄마의 매서운 말. 그뿐만 아니라 아주 어릴 적부터 언제나 동생과 비교당하면서 “니가 태어나는 게 아니었어, 내가 너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니, 너는 니 동생의 발뒤꿈치의 때만큼도 안되는 년이야” 등의 존재까지도 부정하는 모욕을 나는 수도 없이 듣고 자라서인지.. 나는 어릴 적부터 내가 무엇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인정하는 순간 내가 엄마가 내게 모질게 내뱉었던 그 말들을 다 인정하는 게 될 까봐 난 어릴 때부터 죽어도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더 맞는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화가 나면 아무 말이나 내뱉는 남편을 보면서 상징이 읽히는 대신 항상 어릴 적 상황이 재현이 되는 환상에 나는 아직도 갇혀있다. 나도 나름 이제는 성인이고 힘이 있으니 이제는 그만 이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떤 실수를 할 때마다 나는 슬프게도 남편 앞에서 여전히 어린 아이와 다를 바 없다. 엄마는 내가 잘되라고 말씀하셨다지만 지금도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싫은 엄마의 말과 행동이 내 삶에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몇 달 전에 한 번은 아이 공부를 가르치다가 “바보야, 이렇게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들으면 어쩌니?”하면서 한숨을 많이 쉬고 애 앞에서 그렇게 할거면 하지 말라고 책을 집에 던지고, 애가 문제집의 답을 보는 걸 안 순간 “내가 얼마나 무섭게 했으면 애가 저럴까?” 대신 ‘재가 나에게 맞추려고 저렇게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드니까 너무 화가 나서 아이를 손으로 막 때린 일도 있다. 너무 순식간에 아이를 때리고는 “나는 역시 내 엄마의 딸이다, 그렇게 싫어했던 그 모습을 내가 다시 자식에게 되물려서 하고 있다니, 난 역시 정말 별 볼일 없는 구제 불능이구나”라는 엄마에게 들었던 욕들을 내가 나에게 그대로 하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 아이들을 지지해주지 못하고 아이를 그 자체로 인정해주지 않는 ‘to do'엄마라서 아이가 보이는 여러 행동에서 내 기대와 달랐을 때는 분노와 우울을 드러낸다. 예전엔 아이가 내 지시에 잘 따라주었고 학령전기라 학습적인 부분에서의 기대가 없었기에 내가 내 안에 숨겨진 엄청난 분노를 포장하며 숨기고 살았는데, 아이가 커지고 엄마가 내게 그랬듯이 내 아이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나를 그동안 잘 감춰두었던 포장지 사이로 스물스물 나오는 내 분노와 우울의 양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으며 내 남편에게, 내 아이들에게, 내 이웃에게까지 들킬까봐 두렵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서 홀딩받지 못하고 미러링 받지 못했기에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으로,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 손상된 사람이기에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내 문제를 해결해줄 적합한 사람을 찾아 남편과 결혼 했는데 결국은 남편도 나처럼 미성숙한 부분이 많은 사람으로 그런 남편을 통해서 나는 엄마와의 관계를 재현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거짓으로 보여줬던 부풀려진 자기애적 모습으로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기애적인 모습과는 달리 한없이 위축되고 별 볼일 없으며 실은 겁내고 두렵고 회피하며 내가 그렇게 부인하고 방어하려 했던 것들과의 계속된 직면에 죽을 것 같이 힘들다. 게다가 내가 우리 아이들과 바랐던 관계는 결국 시작도 못하거나, 엉망이 되고 있는데 만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고 있고, 나는 그대로 인 것 같은 이 조급함에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고 힘이 빠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내 안에 있는 어린 나에게 말해본다. “너는 이제 성인이고 너는 이제 힘이 있고 예전의 그 힘없던 어린아이가 아닌데 왜 마치 어린아이인 것 같은 환상에서 살고 있니? 네 주위를 둘러봐. 지금 너의 엄마가 예전의 엄마가 맞니? 아니잖아. 지금의 네 남편이랑 예전의 네 엄마랑은 다른데 왜 너는 그런 관계를 남편을 통해서 유지하려고 하니? 그리고 거짓으로 부풀려진 니 모습에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뭐가 그리 중요하니? 결국은 그게 니가 아닌걸. 나는 부풀려진 네가 사실과 다름을 너도 알기에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불안하게 사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우울하고 위축되고 회피하고 사는 게 너라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한 후에 해결할 좋은 방법을 찾길 바란다. 또, 나는 네가 좀 더 네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길 바란다. 지금은 많이 답답하고 힘들지? 지금 네가 얼마나 힘들지 이해해. 그렇지만 어서 기운내고 더 성장해서 현실의 세계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 날들이 빨리 오길 바란다. 사랑해!”라고.




4. 희망님.

나는 저녁시간 Twilight 푸른 빛이 항상 슬펐다. 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시간이 되면 난 그냥 마음이 비고 슬프고 우울하였었다. 그 시간에 창 밖을 보거나 밖에서 지내야만 했을 땐 나는 저녁시간 내내 뭔가 채울 수 없는 슬픔과 우울과 무력감이 나의 깊은 마음을 깔고 있었다. 이 무거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그저 그 시간을 느껴야 할 때면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그저 꿀꺽해야만 했다. 나의 삶의 가장 밑면엔 항상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거운 슬픔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이런 슬픔은 어디서 왔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해질녘 저녁시간을 싫어하게 된 경험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귀하게 태어난 남동생을 엄마가 온전히 키우라고 나를 데리고 부산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 나를 몇 달씩 데리고 가셨었다. 큰아버지 집엔 이미 다 큰 고등학생 사촌오빠 언니들이 있었지만 나와 같이 놀아줄 내 또래 친구는 없었다. 난 항상 혼자였고 오히려 나이 드신 할머니의 화투놀이 대상이었다. 난 하루 종일 심심하고 놀 친구 없이 시간을 그저 보내고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난 그저 나의 힘든 시간들을 꿀꺽하고 삼키면서 지내야만 했다. 


내가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순간은 큰아버지 집에서의 해질녘 저녁시간이다. 하루 종일 심심하게 하루를 보낸 나는 저녁시간이 되면 “내일은 엄마에게 갈 수 있을까? 정말 엄마가 보고 싶은데…” 라는 그리움과 슬픔과 힘듦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혼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난 할머니에게 엄마에게 가고 싶다는 말 조차 할 수 없는 아이였다. 할머니는 내게 너무나 잘 해 주셨고 난 그런 할머니를 실망시킬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개의 일이건만 그땐 할머니에게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이 할머니를 슬프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난 때를 쓸 수 없는 아이였다.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부산으로 갈 때도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었고 부산에서 지내는 시간이 아무리 지겹고 슬펐어도 서울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해질녘 저녁시간 부산의 푸른빛 Twilight 느낌은 나에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 싶은 슬픈 마음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연결되어 그 후 커서도 난 해질녘 푸른빛의 느낌이 나를 힘들게 하였던 것 같다.


 50이 넘은 지금도 난 해질녘 저녁시간은 슬픈 느낌이 든다. 어렸을 때만큼 힘이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에게 상쾌한 기분을 주는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그 강도가 엷어지는 나를 보면 조금씩 내가 나의 슬픔을 이해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셋째 딸로 태어나 여자라는 것 자체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나는 존재의 연속성을 엄마에게서 충분히 받지 못한 것 같다. 덕분에 난 내 스스로 여자임을 많은 부분에서 부인하려 하였고, 나의 삶에서 부인은 가장 큰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고통을 받을 때마다 난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느끼면서 Suffering 하기 보다는 꿀꺽 없는 척 부인하고 그저 Enduring 하면서 남에겐 쿨한 척 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성취하면서 "착한 사람,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이란 인정을 받기 위해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역할만 수행하면서 살아오느라 나의 정서에 대해선 무시하고 부인하고 느끼는 것 자체를 안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정서를 분열시긴 난 내가 무엇을 원하고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를 역할수행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에겐 "I AM" 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I AM"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 같다. 이제야 내 안에 내가 없음을 느끼고 있다.


정신분석 공부와 상담을 통해 난 이제 조금씩 내 안의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 내가 부인해버린 지난 경험들을 조금씩 꺼내어 나를 다시 보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체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려고 한다. 이미 많이 살아버린 인생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남은 삶은 온전히 느끼고 온전히 내 것으로 살아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