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후기

위니컷 클래스위니컷 수업을 마치고

강의 후기)


(INFP엄마)

나는 아이들을 돈 받고 양육하는 유모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이들의 살아있는 공격성을 한 번도 제대로 보려하지 않고 억압시키거나 회피하며 힘들면 도망쳐왔다. 영화에서 내니맥피는 아이들의 공격성 앞에 강인하게 맞섰고 결국 아이들은 그를 믿어주고 소통하는 모습에서 신선함을 느꼈다. 


내니맥피는 강인한 자아의 소유자요 마법사처럼 그려졌지만 그것은 그녀가 갖고 있는 살아있는 공격성의 결정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일관성과 신뢰감 그리고 눈빛으로 주고받는 소통의 힘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변화시켜 나갔다.


식탐이 많은 아이, 책을 읽어 달라 아니면 스킨십으로 사랑을 애원하는 아이, 끊임없는 소란을 일으켜 유모를 계속 갈아치우게 하는 그 모든 것이 아이들이 자기자신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공격성의 표현이었다니! 


이런 것도 모르고 아이를 키우며 '착하게 예의바르게 살라'만 강요 했으니 내 아이들의 공격성이 얼마나 억압되었을까? 관계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야단만 치고 결과만 보고 잘못만을 따지고···. 작은 아이의 틱 때문에 상담실 문을 두드렸고 일 년 반정도 지나고 보니 처음에 완강하게 거부하던 "왜 나한테 이런 일이?" 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아이한테 '틱'이 발생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말로 표현 못하고 신체로 드러냈을까? 아이의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살필 수 있게 되었고 힘들면 뒷걸음치다가 가끔씩 두어 걸음 앞으로 나아갈 힘을 내 안에서 찾으니 감사할 때도 있다. 


나의 잘못된 태도가 고스란히 두 아이한테 스며들어 몸과 마음을 다치게 했다니 무엇으로도 이 죄값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45년이라는 세월동안 누구나 지니고 있는 그 공격성을 왜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살아왔지? 울컥울컥 올라오는 그 무엇이 있을 때조차 나는 그것을 눌러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나를 받아 줄 그 누구도 없었고 난 외로웠다. 


지금도 가끔씩 외딴 섬에 고립된 느낌이 든다. 부모님과 떨어져 어린 나이에 조부모 손에 맡겨질 수밖에 없게 만든 언니가 요즘엔 너무 밉다. "아픈 언니가 무슨 죄야?"하며 동정심에 잘해주곤 했었는데 이젠 목소리도 듣기 싫고 만나는 것도 피한다. 어린 시절 기억뿐아니라 내인생 모두를 빼앗아버린듯한 느낌, 허깨비로 살아온 느낌, 내 소중한 아이들한테까지 제대로 된 관계조차 못하도록 나를 황폐하게 만들어버린 사람에게 화가 나는 거다.


이것이 공격성의 시작이 아닐까? 이제 시작이다. 나한테도 있었을 그 공격성을 끄집어내고 싶고 도망가기보다 상처받을지라도 도전해보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 공격성의 정점을 읽었고 "아, 저거였구나!"하며 탄성을 올렸다. 케익을 서로 얼굴에 던지며 화내고 웃고 하는 모습에서 공격성은 주고받는 이에게 소통의 힘까지 실어주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못 보는 사람은 화를 내며 돌아섰지만 말이다. 작은아이, 큰 아이 함께 영화를 보며 웃고 손뼉 치며 즐거웠고 카타르시스도 맛보았다.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이었다. 






위니캇 수업···. (INFP엄마)


과제로 받은 영화를 빌리고는 그것을 이미 본적이 있음을 알았다. 그저 재밌게만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면서 엄마 없이 남겨진 아이들의 엄청난 공격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절대로 어찌 손써 볼 틈이 없어보이던 아이들이 한 유모의 등장으로 치유되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면서도 무겁지 않게 잘 나타나 있었다. 단호하지만 큰 소리 없이, 보복 없이 보여주는 경계에 아이들은 안정감을 찾으며 엄청나던 공격성을 멈추고 예쁜 아이의 모습을 찾아간다. 


어린 시절 공격성을 거의 써보지 못하고 자란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의 공격성을 대면할 때마다 어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엄청난 불안'을 경험했던 것 같다. 스스로 써보지 못한 것들을 수용할 수가 없어 도망치려하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한 공격성으로 아이를 짓누르려 했었던 것 같다. 


그 조그만 아이와 똑같은 아이가 되어 서로 엄청난 공격을 주고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나 끔찍하고 후회가 된다. 아이에게는 너무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한창 공격성을 써가며 자기발달을 해나가야 하는 시기에 끊임없는 침범으로 아이를 발달하지 못하게 해놓은 엄마 때문에 아이의 많은 부분이 마치 일시정지를 해 놓은 듯한 미숙함을 보면서 이제라도 더 많이 노력해보리라 다짐한다. 비록 시기를 놓쳐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테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버텨주리라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유모는 처음 아이들과 대면하고서 "너희가 원하지 않지만 내가 필요할 때는 있을 것이고 너희가 원하지만 필요하지 않을 때 떠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대사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만을 주는 엄마가 좋은 엄마는 아니며 아이에게 적절한 때에 적절한 것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가 원하지 않더라도 꼭 필요한 규율이나 경계는 심어주는 엄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차츰 자리를 찾아가고 한 가지씩 교육이 끝날 때 마다 유모의 얼굴에 있던 흉한 사마귀들이 사라지는 모습은 아이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모습이면서 동시에 아이눈에 비친 유모의 모습, 엄마 아빠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다른 영화 '페넬로피'에서도 그녀를 사랑해줄 사람은 진정 그녀 자신이었음을 알고 스스로 치유되는 모습이 나온다. 그 치유의 시기가 늦어진 것은 아이를 보는 그 엄마의 관점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과보호해서 가두고 기른 엄마는 사실 아이의 모습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고 아이를 부끄러워했으며 스스로가 그런 모습의 아이를 진정으로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엄마의 눈은 그대로 그 아이의 눈이 되어 스스로 세상으로 나갈 생각도 못하다가 이를 깨치고 나서기 시작한다. 이때 보인 가출과 일탈행동은 엄마에게 처음 보인 공격성이라 할 수도 있을 듯하다.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에게 벗어나 성장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내니맥피'로 돌아가보면 아버지의 영향력이 너무 약하지 않나 생각되었다. 부인을 잃은 슬픔에 젖어 아이들을 유모들의 손에만 맡겨놓은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죽으면 아빠는 아이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게 아닌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돈을 위해 원치 않는 재혼을 하려하는 모습에서도 나약한 아버지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다행히 나중에는 모두가 원하는 결혼을 하고 한 여름에 내리는 눈으로 모든 것이 깨끗하게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듯 보이지만 말이다. 



결국 엄마라는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아이와 한 몸이었다가 세상에 분리되어 나오면서 가장 먼저 함께 하는 사람이며 아이의 일생을 뒤바꿀 수 있는 엄마의 자리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중요하고 소중한 역할일 것이다. 


사실 처음 부모교육이란 걸 접할 때만 해도 난 또 하나의 흥미로운 강좌를 듣는다고 생각했고 큰 변화를 예상했던 것도 아니다. 얼마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동안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고 조금씩, 조금씩 나는 변해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엔 미흡하지만 분명 뭔가 달라져 가고 있으며 놀랍게도 나의 아이도 달라져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서로 끝나지 않을 듯 힘들고 피곤하던 '맞서 싸우기'가 많이 줄어들었고 난 분명 그만큼 더 행복해져있다. 엄마가 행복해진 만큼 아이도 느낄 수 있으리라. 아이의 눈빛도 조금씩 순해져가고 아이에게 엄청난 공격성을 퍼붓다가도 아이의 눈치를 살피면서 아이의 심부름을 해주던 나는 이젠 좀 중심을 잡아가는 중이다. 아직도 종종 버텨주기가 힘겹게 느껴지기도 하고 간혹 버티기에 실패해서 폭발해 버리기도 하지만 분명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직은 먼 길이지만 그곳이 어디쯤이든 가기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젠간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수업을 마치며···. (EINFP엄마)


위니캇수업을 듣기 전 나의 가족 특히 나의 아이들은 문제가 많다 생각했었고 상대방의 문제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며 그들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수업을 들으며 그것은 남이 아닌 나의 문제 즉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을 알았다.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깊은 우울과 상실감을 반복하며 좌절하고 도망가려 해보았지만 끝까지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 때문이라 생각하며 처음 강의를 들을 땐 나를 보기 보다는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춰가며 들었지만 자연스레 나를 돌아보는 시선으로 옮겨져 갔다.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건강하지 못하고 병리적인 엄마'를 만나게 되었는데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끊임없이 침범하는 우리 엄마로부터 크게 고통 받았으며 나 자신을 계속 파괴시키고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것에 억울해하며 많이 울었다.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퍼붓고 싸우고 싶었고 나를 알아 달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보상도 받고 싶었다. 



현실에서 살지 못하고 거대한 나만의 상상속에서 혼자인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남들은 다 쉽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일들이 나에겐 얼마나 힘들었고 고통스러운 대가를 지불했는지···. 그건 나 스스로를 옭아매는 일이었다는 것을, 난 아무에게도 도와 달라 말하지 못했고 또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나의 참자기는 꺾였고 난 너무나 우울했고 텅 비어 있었다.


수업을 마칠 때 즈음해서 봤던 영화 '내니맥피'는 또 한 번 나의 마음과 눈시울을 적셨다. 말썽만 피우며 사고뭉치였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유모에게 도움을 청했고 필요를 느끼게 되었는데 나또한 나를 알고 필요를 느끼며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나의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와 건강한 힘을 갖기를 바란다. 


오랜 시간을 걸쳐 마치게 된 이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충격적 경험을 체험하게 하였다. 앞으로 풀어야 할 많은 것을 뒤로 한 채 수업을 마치면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 공유하고 공감한 모든 분들에 응원을 보낸다. 






Dear Winnicott (ENFP엄마)


당신과 만난 처음, 별로 당신이 매혹적이지 않았습니다. 아저씨면서 여자 같은 느낌의 논리들이 부드러운 남자에게 저항을 갖는 나에게 호소력이 없었습니다. 그저 알면 좋은 이야기들로 치부하고 한 주, 한 주가 흘렀습니다. 당신의 책도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인가 갑자기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저를 안아주고 지지해주고 당신의 눈에 저를 담아주었습니다. 내가 최고라고 자랑스러워하는 당신의 입가에 웃음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콘서트에서 브라보를 가장 크게 외치는 당신의 생기에 저는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왜 15년간 같이 살면서 나의 남편 안에 당신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지난 15년간 당신은 나의 치료자로 곁에 있었습니다. 이제 남편 안에 있는 당신의 자질을 믿기에 나의 아이들을-엄마 때문에 얼룩지고 절룩거리는 아이들을 아버지 앞으로 보내렵니다. 


오늘 나는 나의 공격성에 질려버렸습니다. 근래 사용했던 나의 공격성이 모두 떠올라 박해망상속에 나를 집어넣고 마구 휘저어버리네요. 누군가에게는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내고 누군가에게는 또 다시 화를 내고 있네요. 내가 공격성을 사용해서 얻어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공격적으로 타인의 상처를 헤집어 놓고는 수습도 못하고 오히려 내가 아파합니다.


내가 정말 공격하고자 하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요. 공격과 욕망이 뒤엉킨 에너지 안에는 천사가 들어있는 걸까요. 악마가 들어있는 걸까요. 강렬한 융합욕구와 통제하고픈 욕구는 치료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요. 융합하고 지배한 후에 성장과 상실을 선물할 만큼의 역량이 없답니다. 그래서 나의 공격성은 나쁜 공격성입니다. 


당신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할 필요성을 이제사 느낍니다. 긴 휴식기 동안 당신을 다시 정리하고 체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듯합니다. 당신의 책을 찾아보렵니다. 전이와 투사를 그만두고 주체와의 만남을 꿈꿉니다. 너무너무 피곤하네요. 당신 품에 안겨 깊은 잠을 자야겠어요...........................................................1년동안 선생님의 강의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해요!

제가 공격성 강의를 하다가 주책스럽게 울었던 날을 기억하셔요 어머님들? 엣셀사례를 하다가 그랬죠? 그 사람안에 숨겨진 '사랑받지 못한 엄청난 파괴성'에 대해 그리고 그 '죄책감'으로 타인을 다치게 하고, 자신을 다치게만 해야 했던 이야기 말입니다. 우리 모두 충격이었죠. "선생님이 우셔서 너무 슬펐어요. 그래서 저도 따라 울었어요." 아마 엣셀의 상담자가 가학적인 엣셀의 공격성에서 '도와달라는 아이의 서러운 외침'을 듣고 눈물을 흘렸듯이 어머님들도 자신의 외침을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프로이드입문부터 42주 동안 정말 많이 애쓰셨어요. 하지만 쉬시는 동안 더 많이 자유롭고 생생한 행복해짐을 느끼실 거예요. 내년에 다시 코헛과 클라인 때 뵙겠습니다. 힘내서 강의할 수 있도록 진실한 마음과 성실함을 보여주신 어머님들 정말 감사해요. 잘 지내세요. 김은옥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