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후기

위니컷 클래스공격성

 1. 위니캇의 공격성을 공부하며...,(메리골드님)



이번 위니컷 수업 중간쯤부터 귀와 마음이 닫히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마 내 마음의 화를 끄집어내려는 의도에 대한 무의식적 방어 반응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의 목소리가 그렇게도 차갑고 짜증스럽고 날카로운지 알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나의 분노를 숨기고 상냥한 체하며 살았기에, 남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력과는 달리, 이유를 알지못하는 깊은 우울에 빠져 힘들었다. 죽고싶다라는 생각으로 항시 시달리곤 했다. 


나에게만 나쁘고 힘든 일이 생겨 인생은 비참하다 생각했고, 늘 누군가가 나를 의도해서 괴롭히고 있다고 느꼈다. ‘세상은 왜 이리 잔인한가, 내가 도대체 무얼 그리 잘못했다고...’ 이런 비관적인 생각은 나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이 세상을 무대삼아 마치 엄마, 딸, 며느리, 아내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배우로 살고 있다고 느끼며 빈껍데기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나의 엄마는 어둡고 우울했으며 늘 자기가 남에게 공격받고 있다고 느꼈기에, 자신을 보호하려 남들을 악한으로 몰았다. 끊임없이 공격해야만 하는 현실과 뚝 떨어진 혼자만의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삶을 사셨던 것같다. 


그런 엄마는 나를 무기력하게, 순종하게 만들었으며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자기만의 세상에서 본인과 똑같은 복제형 인간 나를 창조했던 것이다.


나는 곧 엄마이고, 엄마는 또 나인 그렇게 서로 분리되지 못한 융합된 상태로 살아왔다 . 그런 나는 이유를 모른 채 언제나 억울했으며,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일탈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으면 언제나 시작도 못해보고 꺾여야했다 .



엄마는 어떤 좌절과 박탈을 경험했기에 그토록 처절하게 세상과 싸워야했을까.. 


어릴 적 할머니는 7남매 중 셋째인 엄마를 생활고로 큰집으로 보내야만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일어났던 일, 감정들이 엄마를 지탱하기에 너무나 큰 고통이었을까, 아니면 동생들과 가족을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공부, 자신을 스스로 포기해야하는 희생이 감수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너무나 살기 힘들었던 엄마는 세상과 타협하고 관계 할 줄 모른 채로 나에게 비현실감을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나는 세상을 살지만 너무나 힘들고 동시에 마비 된 것 같은 상태에서 존재감을 모르고 살았다. 다른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나 스스로 먼저 남에게 맞추고 나서, 상대방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해하고, 상대방을 향해 어김없이 증오와 격노로 공격해서 관계를 파괴시키고만다. 


결국 상대방은 이유 없이 당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생각하면 정말 기가 막힌다.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나의 반복적인 패턴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끔찍한 재앙적인 일을 대비하여 먼저 스스로 파괴하고,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이유 없이 공격하고 다시 불안해하는 피해망상에 시달려야했다. 


그 결과 처리 할 수 없는 심한 불안으로 떨고.. 내가 없어지고 깨지는 우울모드로 다시 빠져들었다. 사실 정신분석을 공부하기 전에는 그런 사실도 알지 못했으므로 끔찍한 이 세상에서 나를 방어하기 위한 모든 방법과 수단으로 무장한 다음 공격하고 그런 나를 망각해 버렸다. 


이런 나를 인정하고 끌어내 보려는 시도는 정말 너무나 처참하고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세상은 사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비현실적 망상이라는 것을 인식하기까지란 끔찍한 경험이어서 너무나 좌절스러웠다. 또한 나의 숨겨진 무의식적 분노의 수위를 알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으며, 내가 현실과 소통하지 못하는 비현실감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중, 무의식적으로 내뱉어지는 나의 차가운 말투와 사람들을 향해 증오와 비난이 쏟아지는 나를 보는 일이 있었다.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다며 자부하던 가족들에게,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제대로 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들이 귀에 담기지 않았고 내식대로 해석하여 그 사람의 의도를 전혀 전달 받지 못 한 나는 단 한번도 남과 소통해 본 경험이 없었고,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비현실속에 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의도를 가지고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

요즘 내가 되 세기는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주룩 나는 간절한 말이기도 하다. 맘이 많이 아프다. 나는 얼마나 사람들과 싸우며 힘든 삶을 살았던 것인가... 


하지만 더 이상 잃어버리지 말아야하는 나의 관계를 위해 힘을 내야겠다는 희망으로 진정 나를 안아 위로를 해 본다..........................................................., 





2. '나의 공격성'(글라디올라스님)


나는 공격성을 생각하면 거짓말이 생각난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에게 관심을 끌고 싶어 앞에서 보지 말라고 하시는데도 늘 TV를 브라운관에 눈을 붙이고 보곤 했다. 그러다 진짜 눈에 근시가 생기기도 했지만, 엄마에게 잘 보이지 않아서 가까이 보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결국 안과를 가서 의사 앞에 앉았다. 안과 진료실은 어두웠다. 그리고 시력을 측정하기위한 사각 판이 눈에 들어왔다. 의사가 내 오른쪽 눈을 숟가락 같은 것으로 가리고 맨위에 있는 숫자 4를 가르키며 내게 물었다. 


“이게 뭐야?” “..............안보여요...........”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물었다. “00야 그럼 이건 보이니?” 

하며 맨 위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숫자 4와 다른 기호들을 연신 물어댔다. 난 계속 침묵이나 안보인다는 말을 기가 죽어 대답했다. 진료실에서 나오고 엄마가 병원 앞에서 내게 진지하게 다시물었다. “00야 진짜 안보이니?” “......응......” 


그런데 그 때 난 기뻤다. 왜냐면 엄마를 독차지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진짜 걱정되는 듯한 표정을 짓고 내게 관심을 표하는 게 싫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나의 거짓말 행진은 계속 되었고 난 아주 어려서부터 두꺼운 난시교정용안경을 써야만 했다. '공격성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나 상대에게 피해를 입힌다고' 하셨는데 나의 시력을 잃어가며 엄마에게 풀지 못한 공격성을 나 자신에게 풀었던 것 같다. 




3주전인가 난 꿈을 꾸었다. 강 건너에 있던 공룡이 강을 건너 왔는데 아주 작은 익룡이 되어있었다. 난 그 작은 익룡을 보고 “에게~....”하고 좌절감을 꿈속에서 느꼈다. 


과대자기가 채워지지 않아 내가 느끼는 좌절감이었던 같다. 그 작은 익룡은 나의 현실감이었을까?



최근에 난 비슷한 꿈을 또 꾸었다. 무엇인가를 만들량으로 천 한야드를 잘랐는데 자르고 보니 손바닥만한 크기였다. 그리고 천 끝이 올이 나가 있었다. 그것으로 옷을 만들 수 없다고 그 천의 주인에게 다시 천을 끊도록 천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꿈속에 권위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연예인이 '안된다'고 한다. 난 왜 안되냐고 그 남자 연예인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마구 흔들어댔다. 


난 이 두 개의 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 꿈은 취직 후에, 생각했던 것보다 취약한 처우가 한야드의 천을 자르고 그 천이 생각보다 작고 올이 나간 것으로 이해되었고, 취직으로 인해 상담시간을 옮길 수밖에 없었던 나는 직장에서는 올바로 자기주장을 하는 공격성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 


미리 상담시간을 조정하지 못하고선 선생님께 그 조정하지 못한 상담시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이메일을 보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필요하지만 자기표현을 제대로 하지못한 것을 다 배려해줄 수 없는 상담실사정과 타협책으로 시간을 옮겨주셨는데, 그 시간이 어려우면 상담을 종결할 수밖에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표현에 난 적개심이 올라왔었다. 미리 나에게 도움이 되는 옳지 않은 선택을 함으로써 고통스러운 결과를 얻은 다음 불운한 상황탓을 한 것이다. 공격성이 올라왔음에도 그 것이 공격성인지 뭔지 모르고 지내다가 상담시간 꿈분석을 통해 선생님 그리고 새로운 직장상사의 머리채를 쥐어 흔들어 놓았음을 알게되었다. 



출근 이틀 째인 오늘 아침, 그 추웠던 월요일에는 얇게 입어서 추위에 떨고 오늘은 따뜻해졌는데도 모직코트를 입고 거기에다 부츠까지 신고 나와 발에서 쥐가 났다. 


전철의 많은 인파속에 땀이 나면서 난 또 내속에서 울렁거리며 올라오는 적개심을 느꼈다. 새로운 직장에 대한 저항일까? 난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와 서둘러 전철에서 내려 숨을 돌려야 했다. 그러면서 서글픔이 살짝 올라왔다. 어쩌면 내게 있어 정신분석치료는 '정서적 생존'을 위한 그 무엇이겠구나 싶었다. 


출근 전 날, 남편을 별일 아닌 일로 트집을 잡아 그 사람의 마음을 쥐어 흔들어 놓았고, 꿈속에서는 책임을 전가시켜 직장상사와 선생님의 머리채를 쥐어 흔들어 놓았고, 오늘 아침엔 식은 땀을 흘리며 구역질로 내 온 정신을 쥐어 흔들어 놓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울컥하고 뭔가가 올라온다. 시............발..........


그냥 잘살고 싶어서 상담받는 것이 아니고 

난 생존하고 싶다. 그것이 욕심일까?


엄마의 진정한 관심을 간절히, 너무나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그 5살 때의 꼬마가 그 작은 고사리 손으로 나를 쥐어 흔들어 놓는 것 같다. 

내가 널 만나줄게..........

내가 널 관심가져줄게..........

내가 널 안아줄게..............





3. 죄책감과 박해불안(크로버님)


나는 공격성 수업을 하면서 떠오른 예전의 어떤 일로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다. 성장과정의 문제들에서 비롯된 이 일은 소화되지 않은 죄책감과 박해불안으로 의식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찌할 수 없는 불안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어떤 일이라도 ‘아니다!’ 라고 이제는 말할 수 없다-_-;). 


이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도저히 과제수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서두에 이런 말을 하고야 만다. 이런 문제들이 양육환경 때문이었다고는 하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삶의 터전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면 더이상 변명이나 합리화할 수 있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위선자 같다. 정말 슬프고 눈물 난다. 내가 이들과의 관계를 책임지고 돌이켜 다시 살아가기 위해선 '착한 척'하고 사는 내가 깨져야 한다. 하지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죽을만큼 두려운 마음을 표현하고 울고 나니 불안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선순환’의 효과인 듯하다.



무한한 생명충동과 본능이 용솟음치는 어린 시절, 삶을 짐으로 느끼던 아빠에게 자주 모욕을 당했던 것 같다.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길가의 꽃들과 돌 하늘을 보며 감탄하고 쓸데없는 농담과 시시덕거리는 행동을 하는 나를 그냥 봐주기만 해줘도 좋았을 텐데...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고 없어져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었는데 그때부터 어떤 습관이 생겼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부끄럽게 생각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머리에 꽂고 있던 핀을 빼어 머리로 얼굴을 가렸다. 내가 드러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공격성은 필요할 때 필요한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대신 약하고 그래도 될 것 같은 대상에게 가혹하게 드러났다. 내 여동생이 바로 그 대상이었다. 



사춘기를 겪어야 되는 그런 시절, 나는 늘 생기 없고 맨날 지각하고 시키는대로만 하고 시켜도 잘 못해내는 그냥 그냥 살아가는 나와 달리, 쌈꾼도 아닌데 자기보다 덩치 큰애랑 싸워서 코피 터트리고 오는 깡이 있는 동생은 공부도 잘하고 자기 할 일 잘 해내어 아빠에게 신임받는 아이였다. 


이 아이는 심성이 착하면서도 차가운 면이 있었는데 어느날 나를 자극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겁만 주려했지만.. 주먹만한 돌멩이를... 있는 힘껏 이 아이 뒤통수에 던져버렸다. 


나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동생에게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이다. 내 삶 전반에서 드러나게, 드러나지 않게 이런 공격성을 쓰고 산다(건강하지 않은). 나를 알면 아무도 나와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자신이 혐오스러우면서도 애처롭다. 


그래도 내 모습을 알지만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그들에게만은 더 깊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고, 부족하고 건조하나마 조금씩 비를 뿌려 삶에서 오는 기쁨을 수확하고 싶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4. 생명의 본능 '공격성'(아네모네님)


프로이트가 ‘공격성’을 여러가지 인간본성 중 죽음의 본능이라고 본 반면, 위니캇은 그것을 창의력으로 해석했다는 데에 경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정신분석, 부모교육에 관심을 갖기 전에는 ‘공격’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강압적, 부정적으로 들렸고 가급적이면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피하고 싶은 단어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공격성이라는 원초적인 인간본능이 어떻게 현실에서의 삶의 본능으로 변화되어 가는가를 공부한 다음부터는, ‘공격성’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새롭게 생동감, 생명력, 그리고 아울러 노력할 수 있는 힘! , 어려운 난관을 이길 수 있는 인내력, 그리고 현실적 성공의 원동력을 본다.



지나치게 무섭고 융통성 없었던 외할아버지에게, 그리고 자식들에게 무언가 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은 컸지만 매사에 표현이 서툴렀던 외할머니에게 공격성을 완전히 억압당한 아들 셋, 딸 하나의 맏딸이 우리 엄마다. 


역시 그러한 엄마로부터 공격성을 억압받고 자란 나는 현실적인 성공을 이루기는커녕, 서럽고 억울한 상황에서 내 주장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억울감이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관심있는 분야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을 설득할 자신은 있지만 그조차도 나를 지지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에 한한다. 



엄마는 나의 공격성을 도저히 봐내지를 못한다. 그야말로 도저히 봐 줄수가 없음이 느껴진다. 내 주장, 내 생명력의 발현은 엄마에게 곧 반항이자 도발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런 엄마는 나에게 화내면서도 또 맏딸인 나에게 다 맞추어 준다. 


수업을 들으면서 그러한 엄마의 행동들이 너무나 불편하고 힘들다고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느낀다’는 것은 나에게 무척이나 새로운 그 무엇이지만 역시 힘이 드는 일이다.


나는 엄마가 나에게만 맞추기를 원하지 않는다. 엄마가 나에게 어떤 것은 싫고 어떤 것은 좋다고 말해주기를 원하지만, 엄마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엄마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도 전에 이미 “까다로운 딸에게 맞추어주기” 자동모드로 들어가있다.


그렇게 엄마는 나에게 맞추고 화가 나서 나에게 무언의 보복을 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무언의 보복이기에, 나는 엄마가 너무 두렵고 힘들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고, 그로 인해 엄마가 더 어색하고 불편하고 대화하기 싫고 대면하기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고, 나 또한 그 긴장감을 견디지 못해 엄마에게 그대로 쏘면서 보복한다. 


내가 친정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엄마가 다른 일로 바빠서 나와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엄마는 무리해서 그 스케줄을 바꾸어 나에게 맞춘다. 그런 후 나와 만난 엄마는 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고 화가 나 있다. 역시 나는 무뚝뚝하고 화가 나있는 표정의 엄마를 보고 불안을 느낀다. 


곧이어 나도 모르게 엄마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런 내가 기분이 좋을리 만무하다. 곧 엄마에게 맞추는 행동이 역시 자동모드로 실행된다. 그렇게 서로 눈치만 보다가 엄마와 나와의 짧은 관계는 끝이 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결혼후에는 친정엄마와 접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 솔직히 해방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반복강박의 힘은 강하고 무서운 법,, 역시 나는 남편에게 그런 끔찍하고 긴장되고 불편한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재현하고 반복하려 든다. 


하지만 나를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 누구도 나의 비정상적인 긴장감을, 나의 엄청난 까탈을, 나의 지나친 예민함을 견디어내기는 쉽지 않다. 이런 나 자신이 정말이지 온몸이 저리도록 싫지만 행동의 수정은 좀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공격성을 억압당한 상태에서는, 현실에서의 직업적인 성공은커녕, 현실에서 만나는 타인과의 의사소통마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원초적 공격성의 억압이란 곧, 성인이 되어서 나를 둘러싼 세계, 내가 접한 현실, 내가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린 상태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상실한 것이다. 그야말로 ‘구조’가 깨져버린 것이다. 대신에 ‘죽고 싶음’이 그 자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차지하고 있다.



내 인생의 역사를 조금씩 봐가고 깨달아가는 과정은 힘들고 아프고 날 처지게 만들지만, 그 힘들고 지루한 터널을 지나가면 다음 터널이 나오기 전까지는 반짝 햇빛을 보게 된다. 나에게는 그 햇빛이 “친구들의 아기들에 대한 부모교육 내용의 실험” 이었다. ^^ 해보면서, 무척 재미있다. 


돌 전후의 어린 아기들을 보면 부모교육을 받기 전과는 달리 아기들의 행동과 반응이 나의 웃음을 자아내고,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 아이와 엄마의 내밀한 관계까지 알 수는 없지만 부모교육에서 배운 내용이 상당히 많이 적용되는 면을 보게 된다. 



친구의 아들인데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었다. 이 아이는 이제 엄마와 자기가 분리됨을 서서히 인지하고 자기의 사지감각을 느껴보느라 누운 상태에서 아무런 방향이 없는 발버둥을 친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던 나는 아기와 눈을 맞추고 아기의 몸부림을 격려하고, 그저 예쁘게 예쁘게만 봐준다. 


그러면 아기는 신이 나서 내 쪽으로 무리해서 목을 돌려 시선을 맞추고, 땀을 뻘뻘 흘리고 헥헥대며 그 어떤 아기모델보다도 예쁜 얼굴로 힘차게 귀여운 팔다리를, 작은 손발을 쭉쭉 빼고 힘을 주어 마음껏 버둥댄다. 


아기에게 관심을 갖고 조용히 관찰해보면 그 아기에게는 너무나 신나고 기쁜 순간임을 알 수가 있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행동이지만 그 원초적이면서도 강렬하고 생생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던 나는,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의 엄마인 내 친구는, 아기에게 앞으로 금전적으로 잘해줄 수 있냐 아니냐보다는 자신의 무지로 인해 아기가 커가는 과정들 중에서 본인이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놓칠까봐 걱정하며 공부한다.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완벽한 엄마일 수 없기에 아기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애정이 듬뿍 깃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고, 때로는 엄마의 몸이 너무 힘들어 아이를 방치해두기도 하지만, 아기가 외로워하면 곧 눈치채고 미안해하며 따뜻한 품으로 보상해준다. 


이 아이는 이미 충분히 사랑스럽고, 앞으로 사랑스럽게 자랄 것을 나는 믿는다. 더불어 앞으로 태어날 나의 아기에게도 나도 대물림되는 상처를 끊어내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그리고 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5. 박해환상(쟈스민님)


부모교육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불안이 극으로 치솟을 때였다. 아들과의 관계도, 대화도 끊어지고.. 같이 앉아 있기도 불편하고, 눈도 마주치기도 힘들고.. 최선을 다해서 온힘을 다해서 키운 아들인데 낮선 이방인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의 이유는 몰랐다. 나는 ‘아들이 엄마를 원수처럼 쳐다본다’ 라는 망상에 빠져 온몸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워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듯한 멍한 표정, 살아도 죽어있는 육신.



프로이드 입문부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었는데 살아있는 생명력을 김은옥선생님이 주셨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나는 부모로부터 죽음과도 같은 억압을 당했고, 나의 아들에게 똑같이 되돌려주었다는 것을 알고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대성통곡을 하였다.


사춘기 때의 무표정,무감각한, 핏기없는 창백한 나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내가 그대로 복사된 아들이 내 앞에 있었다. 엄마의 거울반응 수업을 들을때는 너무나 괴로웠다. 마땅히 부모가 자식에게 줘야 하는 애정어린 접촉을 주지못한 미안함이 컸다. 


"'안아주기'는 만들어서라도 줄수있지만 '거울반응'은 받지 않으면 줄 수없다" 라는 말씀에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거울반응을 받아서 줄수만 있다면...’ 좋은 엄마, 평범한 엄마가 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었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꿈을 꾸었다. 집에서 키웠던 하얀 진도견들이었는데 어미와 새끼가 무리지어 독을 먹고 죽어있는 끔찍한 꿈이었다. “죽어있는 강아지를 한 마리씩 살려야죠.” 선생님의 말씀이다. 하지만 ‘강아지를 어떻게 살릴까?’ 나는 알수 없었다.



엄마를 떠 올리면 무표정하고, 탐욕스러움과, 화가 가득한 얼굴만 그려진다. 셋 딸중에서 맏딸인 나는 어릴때부터 폭력적이고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고생하는 엄마를 돕기 위해 집안일이며 동생 돌보기등 착하고 심부름도 잘하는 아이였다. 20대에는 어려운 집안을 돕기위해 쉬지 않고 일해야만 했다. 삶의 목적이, 살아가는 이유가 그랬다. 너무나 현실이 고달퍼서 살아있는 감각들은 모두 억압해야만 살 수있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이고, 채울 수 없는 그리움으로 오로지 엄마만을 쳐다보고 생각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엄마 생각을 하는 이런 나의 마음을 선생님은 정말 이해할 수 있냐는 질문에, 사랑인지 증오인지 알수 없어 답답해 하는 마음에,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도 미워해하는 마음에도 선생님은 늘 그럴수 있다고 답을 주신다. 



“너 같은 것은 아무것도 못해. 바보라서.. 니가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아무 쓸모도 없는 바보인줄 알았다. 엄마의 매몰찬 말들로 조금씩 분노가 쌓이면서 나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나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으로 몸부림쳤다.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어서 가까히 다가갈 수 없었고 곁에 오게 두지도 않았다. 스쳐가는 사람들이라도 나를 쳐다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유없이 미웠다. 


나 자신의 살아있음과 우리 아들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나는 상담에 임했다. 살아보는 것처럼 살기위한 절박함을 갖고 말이다. 피해환상과 박해환상에 길들여진 정신에 존재감을 일깨우고 공감하는 언어, 사랑의 언어가 하나씩 들어 오기 시작했다. 죽어있는 감각들이 세포들이 하나씩 살아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내가 조금의 여유가 생겼을 때 군대간 아들에게 편지쓰기를 해보라 했다. 처음에는 쑥스럽고 어색했지만,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편지쓰기를 시작했다. 


엄마의 우울과 분노로 이유없는 격노에 시달리게 하고, 외롭게 방치되었던 세월들에 대해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참회의 편지였다. 1년이 지나고 2년째부터는 반응이 보이기 시작했다. 


휴가를 온 아들은 밥을 혼자서도 잘 차려 먹고, 자기방을 정리도하고,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한다. "지금은 우리 아들이 나를 원수로 보지않아. 나를 이해하려고 하고 있고, 이해 해. 역시 지옥같았던 모든 염려와 불만이 나의 박해환상이었어!"


빗나가기만 했던 아들과의 감정의 소통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세상과의 소통도 열리고 있다. 


공격성 수업을 들으면서 억눌려있던 내가 자유을 얻었다는 희열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 우리 아들을 되찾고 관계할 수 있게 됐음에 말이다. 지금의 새로운 또 다른 소망은 나의 공격성을 멋지게 그리고 절도있게 쓸수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6. 공격성 수업 후기(루피너스님)


나에게 공격성이란 항상 남에게 보여서는 안되는 비록 속에서는 불같이 화가 나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나 혼자서 참고 해결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무의식에 억압된 한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나의 공격성이란 것도 모른체,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이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억압된 분노를 쏟아내면서 상처를 주고 있는 줄도 모른체.. 


나는 태어나서 바로 외할아버지 손에서 키워졌다. 갓난 아기가 하루종일 울면서도 우유를 먹지 않아서 나를 데리고 시간 맞춰 엄마가 일하는 병원으로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어렸을 때 기억이 지금도 난다. 항상 밥을 먹으면 온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안 보이는 곳에 음식을 다 뱉어놓았다. 


그런 짓으로 할머니에게 혼도 많이 났는데 나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유년기에도 밥을 잘 안먹는다고 할아버지가 한의원도 많이 데리고 다니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한테 거부 당한 것에 대한 받지못한 사랑에 대한 욕구였을 것 같다. 


엄마는 내가 3학년까지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박사학위를 받고 나자, 몸이 아파 매년 병원에 입원하면서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나는 그렇게 방치되었고, 항상 아파하는 엄마에게 내가 원하는 걸 재대로 표현해 본 기억이 없다. 늘 참고 말썽 안 피우것이 아픈 엄마에게 해줄 수있는 최상이라고 생각했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내가 감당 못 할일이 생기면 음식을 먹지 못한다. 먹은 것도 다 토해버리고 만다. 그러면서 은근히 주위 사람들이 나를 측은하게 보고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을 다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물론 내가 그들에게 뭘 바라는지 말로는 표현하지 않고 말이다. 


어떻게 부탁하는 것인지도 사실 난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없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그들이 내맘을 다 알아서 해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한 일이 아님을 이제 알아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그들이 내 맘을 헤아려 주지 못하면 섭섭해 어쩔줄 모르고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고 처량한 사람으로 느껴져 날 그 상태로 몰아넣은 상대방을 경멸하게 된다. 


나의 이 끝없는 욕구는 대상이나 물질로 채워질수 없다. 나는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족스러운 나의 욕구는 보상을 받을 수 없기때문이다. 이것이 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반복된 상황이니까...



이 숙제를 하고 있는 지금도 어떻게라도 무슨 구실을 찾아서 안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시작은 하지만 내가 과연 할수있을까 의심이 들면 자신이 없어져서 뭐든 포기해버린다.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서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하는 나의 이런 태도로 학교 다닐 때 참 많이 손해를 보아야했다. 


리포트를 제때 내지못하고, 맡은 일을 성실히 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그럴때마다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주의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것이 두려워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지금도 나는 항상 그런 불안에 떨고 있다. 그들에게 들키는게 두려워서 관계조차 맺지 못하면서.. 억압된 나의 공격성으로 인해 오히려 상대방이 날 공격하고 있다는 환상으로 너무 힘들고 지쳐해한다. 


부모교육과 상담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 그동안 왜 그렇게 외로웠는지 사람들과 관계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점점 알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중도에 포기 하지 않기를 희망해본다.




7. 분노와 공격성(마란타님)


분노와 공격성에 대해 배우고 나의 그것들에 관한 글을 쓰려고 생각하니 착잡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위니컷은 공격성을 생명에너지로 보았다. 그런데 의존하고 싶은 대상에게서 거절당한 아이는 어떤 분노를 느끼고 어떻게 공격성을 억압할까?


과거로 돌아가 내가 분노했던 불특정다수에 대한 얘기보다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내 분노를 만나려고 한다. 현재 나의 아기가 20개월에 접어들어 자아가 커지면서 공격성이 활성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아이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시기이고 내게는 도전이 되는 시기인 것같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앞에서 나의 분노도 하루가 다르게 인내하기 힘들 만큼 커지고 있다고 고백해야겠다. 거의 2년의 세월 동안 가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끝없이 참을 수 있을 것 같았고, 한 없이 애정을 퍼 줄 수 있었고, 따뜻하고 다정한 엄마일 거라는 장담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아기에게 인내심을 보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나 네 엄마 안하고 싶다."라고 까지 생각했었다. 왜 말도 못하는 이 어린 아기에게 화가 나는 것일까? 


아기는 세상이 다 신기하고 흥미로울 것이다. 그래서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탐색하고 만져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들을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만지다가 부수고 결국 고장이 난다. 아깝다. "저건 네 장난감이 아니라구~" 부글부글 끊어 오른다. 아기는 엄마의 화난 목소리에 금새 울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내 자기가 목표로 하는 물건에 가 닿아 원하는 만큼 만져보고 만다.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기가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죄다 만지고 싶어해서 내 입에서는 안된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기에 더 절망적이다. 비싼 화장품을 열어 다쏟으려고 하고, 시디 플레이어에 시디를 넣었다 뺐다해서 결국 고장이 났다. 사기그릇도 여러 개 깼다. 


나는 갈등한다. 하지 못하게 하면 아기가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없는 것 같고 못하게 하는 것들로 인해 아기가 좌절할까봐도 겁난다. 그렇다고 하게 하자니 감당이 안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일관되지 못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안된다고 했다가 아기가 울고 짜증내면 하게 해준다. 끝까지 하지 못하게도 못하는 내 자신이 못나 보여서 또 화가 난다. 지금은 그래서 엄마 안하고 싶다. 지금은 내 아이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



이전의 나의 분노를 생각해보니 불특정다수를 향해 있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인지 모르면서 그냥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래서 조금 자유롭다고 느낀 대학시절에는 운동권에 가담했었다. 그러나 누구에게인지 모를 화를 내고 있었기에 시원하지도 않았고 힘들기만 했다. 그땐 화를 풀 대상이 필요해서 운동을 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상담에 입문했던 20대 후반에 사이코 드라마 워크샾에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만났다. 분노의 대상이 구체화되자 '너 잘 걸렸다'는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집단 상담 훈련을 받으면서 동료들의 힘을 받고 생전 꿈도 못꿔본 무서운 아버지에게 대들 생각이 났다. 그를 미워한다는 마음이 느껴졌고 쉽지 않았지만 덜덜 떨면서 실제로 대들어도 보았다. 


원망하는 마음도 전했다. "왜 그렇게 무섭게 때리면서 키웠냐고" 고 하니까 "너 잘 되리고 그랬다"고 하셨다. 그렇게 소통 아닌 소통을 하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 다음엔 어머니를 상대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해결하지 못하고 쌓아두었던 그 옛날 깨깨 묵은 얘기며 유치해서 할 수도 없는 그런 얘기들까지 하고 또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귀가 잘 안들리신다. 어머니가 잘 들리지 않으니까 꼬약꼬약 소리질러가면서, 얼굴이 울구락 불그락해가면서 화를 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잘 안들리니까 대수롭지 않게 듣기도 하고 귀찮아 하면서 안들으려고 하신다. 가끔은 다 키워놨더니 한다는 소리 보라면서 한심하게 생각하고 자식 키워봐야 헛수고라는 등 타는 불에 휘발유 붓는 소리만 해댔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일까? 화를 내 봐야 소용도 없고 해결도 안되는 줄 알면서 부모님에게 화가 난다. 그리고 지금은 내 아이에게 화가 난다. 내 안에 화가 얼마나 많은지 스스로 감당이 안되어 또 화가 난다. 나는 부모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어쩔 것인가? 이제와서 어쩌란 말인가? 그냥 감당하고 짊어지고 가는 수밖에...


이제는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에게 화 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화를 많이 내 보았는데 시원하지도 않았다. 화를 내고 나서는 더 힘들었다. 결국 더 상처받는 것은 내 자신이었다. 부모를 공격하면서 사실 내가 더 아팠다. 


나의 아기에게는 내 부모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데 쉽지 않다. 내가 경험한 상처와 결핍들 때문에 정말 아이 키우기가 만만치 않다............................................





8. 나는 엄마에게 공격성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플라타너스님)


엄마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래서 엄마한테는 오로지 순종과 위로를 해야지 반항하거나 공격하는 건 천하에 몹쓸 일이라고 어릴 때부터 생각해왔다. 엄마에게 생존을 위한 보살핌 이외의 정서적 보살핌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없었다. 


엄마한테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어색하고 싫었다. 중학교 때 선생님들이 나를 드러내고 좋아했는데 일부러 그 선생님 시간에 숙제를 안 하고 노트필기를 안했다. 이상하게 그렇게 되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완전히 실망할 때까지, 선생님의 표정에서 체념을 보았을 때 마음이 편해졌다. 친구들한테도 떳떳한 느낌이 들었다. 


중학 3학년 때 ‘날라리’들과 어울려 반항하고 공부를 안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 하고 다니는 애들이 멋져 보였다. 한동안 내가 어른과 맞서고 있다는 느낌에 의기양양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나는 엄마 가슴에 수치심과 상처를 준 열등생일 뿐이라는 열패감과 죄책감이 남았다. 고등학교 때는 손톱을 심하게 물어뜯었다. 친구들은 제발 좀 그만 물어뜯으라며 손톱깎기를 사주었다. 


대학과 사회에서 나는 남에게 맞춰 살았다. 그런 게 편했다. 남이 부탁을 하면 성심성의껏 들어줬다. 일을 해도 열성을 다했다. 그런 결과에 인정받고 칭찬받았지만 난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뿐, 만족하지도 기뻐하지도 못했다. 칭찬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일 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일을 끝낼 때마다 지치고 소진되는 느낌이었지만 나는 건강을 해쳐가며 일했다. 그래야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혹독하게 나를 다그치지 않으면 버림받을까봐, 버림받으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될까봐, 주말에도 쉴 수가 없었다. 친구관계도 연애관계도 취미도 여가도 없었다. 한편에서 나는 쓸모 있는 인재였겠지만, 다른 한편에서 차갑고 매마른 일중독자였다.


그런 안간힘을 써서 짜내는 거짓된 에너지는 금세 고갈되기 마련이었다. 어느 순간이 되면 관계를 정리해야 했다. 점점 팽창하는 회사의 요구에 더는 부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미리부터 패배자가 되어 도망갈 곳을 찾아야 했다. 회사를 그만두거나 내가 먼저 연락을 끊을 때마다 상대는 무척 황당해했다. 황당해하는 회사와 상대방이 오히려 나는 더 황당했다.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4개월 동안 같이 살기도 한 오랜 친구는 나를 “따뜻하고 인정 많지만, 어떤 때는 한없이 차갑고 독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너는 뭐든 다 해줄 것 같아서, 너한테 거절당하면 오히려 배신감이 들고 상처 받어.” 늘 나만 상처받고 나만 부당한 일을 겪는다고 억울해했는데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극적인 사람과 삶에 마음이 끌렸다. 내가 좀 덜 가지더라도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올바르고 선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동전을 세며 생활비를 걱정하던 유학시절에도 장학금을 받게 되자 다른 친구에게 선뜻 큰돈을 내어주며 ‘놀러다니라’고 했고, 직장 다닐 때 월급의 20%를 기부하면서 더 많이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질책했다.


이제 생각하니 그것은 도덕적 우월감이라도 가져야 겨우 지탱할 수 있었던 내 허약한 자존감 때문이었다. 그런 ‘자선’은 사실 허위의식이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취약한지는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유학을 마치며 여행을 계획할 때 친구들에게 줬던 돈이 사무치게 아쉬웠다. 그 돈이 있으면 더 멋진 여행 플랜을 짤 수 있는데... 하며 후회했다. 


좋은 옷과 물건을 사고 싶을 때마다 매달 기부하는 돈이 아까웠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난 나의 욕망을 죽이며 자꾸만 억울해하면서 불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충만함보다는 피해의식이 남았다. 그리고 ‘나처럼 착하게’ 살지 않는 사람들을 욕하고 비난했다. 사실은 부러웠으면서.... 


위니캇 부모교육을 들으며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특히 <분열>과 <경계선인격장애>를 할 때는 도둑질하다 들킨 기분이었고, 선생님한테 공격받는 것 같아서 수업이 끝나면 수치심과 분노로 흥분했다. 마침 한 달의 휴식을 가진 건 개인적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공격성>을 배울 때 내가 가진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친절하고 자신만만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자학하고 불안해하며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사실은 외부(엄마)가 받아주지 못한 공격성이 방향을 틀어 나를 향해 공격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씁쓸함... 억울함... 그리고 부끄러웠다. 세상은 이미 다 알고 있던 걸 그동안 나만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움의 기쁨보다는 앎의 괴로움을 주는 이 불편한 수업을 여전히 듣고 있는 것은 내 아이에게 내가 어릴 적 느꼈던 ‘적막감’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어서 다른 식구들이 와주기를 기다릴 때의 적막감.... 고민이 있어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의 적막감.... 그 적막감은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를 갉아먹고 있다. 


세상을 향해 두 발로 우뚝 서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는 걸 방해한다. 이 질긴 고립과 적막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이에게 “네가 쓰러진 곳이 어디든 그곳에는 항상 너를 일으켜세워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진심을 다해 말해주고 싶다......................... 





9. 분노(시프러스님)


나의 분노는 늘 곳곳에서 나타났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하는 것인지를 깨닫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 했던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이유를 잘 모르는 듯 행동하며,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의아해했었다. 그래서 늘 복잡하다는 느낌으로 살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의 분노는 아이에게 늘 표출되었던 것 같다. 너무나 아픈 아이.. 그때는 나도 정신적으로 많이 아팠다. 지금 생각 해보면 보통의 건강한 엄마라면 하지 않았을 치료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늘 고통스러웠고 아이가 조금 나아졌을 때부터는 아이가 너무 미웠다. 내가 낳은 아이를 미워하는 고통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가 없다. 모든 일들을 아이 탓으로 돌렸다. 그런 아이는 퇴행행동과 무기력함으로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수업을 들으면서 나의 모든 분노를 아이에게 표출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또다시 고통이 밀려왔다. 참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못 할 때는 죄책감에 아이와 함께 있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건강한 엄마이고 싶은 욕구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나 사이에서 나는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유난히 아이에게 화를 낼 때면 잠시 멈추고 생각하는 것이다.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분노가 오래 지속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웃음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죽을힘을 다해 참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주변에 보통의 건강한 엄마들은 아이와 위트 있는 장난을 하며 행복해 한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육아를 힘들게만 한다고 느꼈었는데 행복한 엄마들이 보인다. 


그런데 행복한 엄마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그 엄마의 아이도 너무 잘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또 고통스럽게 짓누른다. 내 아이가 잘못하는 행동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내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는 내 잘못된 행동을 임프린팅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 놀다가 잘못했을 때에는 건강하게 아이가 잘못하기 전에 또는 아이가 잘못했을 때 조절해 주면 되는 것을 집에 와서 아이에게 분노를 폭발한다. 가끔이지만 아이와 나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최근에는 분노 대폭발과 반대로 예전에는 잘 못했던 아이 마음 읽어주기를 한다. 일상적으로 아이들이 짜증내거나 화를 내거나 싸우면 아이를 달래 줄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줄 때 이를 악물고 하거나 화가 나는 데 참으면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조금씩 편안하게 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편안함이 아이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한 웃음이 되기를 바란다. 요즘은 아이를 안고 기원한다.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10. 나의 불안과 소망 (아이비님)


친한 언니가 한 명 있다. 그 언니의 아들도 비슷한 치료를 다니고 있는지라 내가 큰애 치료실마다 따라 다니기도 벅찬 상황에서 부모교육에 꾸역꾸역 빠짐 없이 참석하는 모습이 내심 의아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 수업이 뭐길래 그렇게 열심히 다니니? 도움이 많이 돼...?”



언니는 별 생각 없이 불쑥 뱉은 말이었겠지만 그 말을 듣자 내 마음 속에선 벌컥 울음이 나올 뻔했다. 그 동안 내가 왜 결국에는 후회할 행동들을 수없이 반복했고, 고쳐야겠다고 다짐은 하면서도 여전히 고치지 않은 채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힘들게 했었는지... 그런 온갖 상념들이 갑자기 쏟아진 탓일 것이다.


이제는 고칠 수 있을까 하는 강렬한 소망이 나를 그렇게도 열심히 강의실로 향하게 하는 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로 그런 가 보다. 강의를 들으면서 내내 받은 심장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 그리고 깨달을 때마다 내쉬어지는 한숨…


내가 만약 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로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 그리고 죽는다면… 어떨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나는 인간성이 좋고, 사람들과 친화력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다 거짓이다.

그것은 상대의 마음을 끌어두기 위해 뭔가 특별히 좋은 일, 혹은 특별히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 불안 때문인 거 같다. 나는 남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면 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채 성장했던 거 같다.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의미가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다.


알맹이 없이 그야말로 겉보기에만 훌륭하게 적응한 꼴이다. 속은 텅 비었는데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과의 그럴싸한 어울림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부모님은 무엇이든지 부모의 생각대로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부모였던 거 같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난 한없이 부족했었고 실수투성이였으며, 내가 벌린 수많은 실수들을 감당해 주는 방패막이를 자처한 당신들은 너무나 힘듦을 호소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굳이 의무감이라 생각하고 당신들 스스로 감내해 내려고만 하셨던 그런 부모님이셨다.


부모님에게 똑 같은 취급을 당했던 친정 오빠는 결국 집밖에서는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이 되었다. 자신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아이처럼... 결혼도 안 하고 마흔 살 다 되도록 부모님과 같이 사는 친정 오빠를 내 마음속으로 경멸하면서, 친정집에 갈 때마다 친정 오빠 때문에 한숨 쉬는 부모님을 당연한 듯 위로해 드리고, 한편으론 결혼도 못하고 성격까지 괴팍한 친정 오빠를 보며 기생충 같다는 느낌까지 가졌다.


그러고 보니 유년 시절 나의 분노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던 공격성은 친정 오빠와의 관계에서 더 증폭되었던 거 같다. 거의 매일 다툼으로 인해 오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오빠가 싫고 미웠다.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의 오빠와 나의 오빠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친구들이 부러우면서도 나는 너무나 불행해 보였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그날도 오빠와 심하게 싸우고 나서 오빠를 어떻게 하면 괴롭힐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고등학생인 오빠의 교과서를 없애 버려서 학교에서 선생님께 크게 혼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에 몰래 들어가 교과서를 훔쳤고, 마음 같아서는 불태워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내 방 침대 밑에 숨겨 놓았고, 시간이 흘렀다. 

근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치가 않고 불안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불현듯 스친 건 “이건 오히려 오빠를 괴롭히는 게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어이없지만 분명 오빠는 늘 그래왔듯이 엄마한테 분노를 쏟아 낼 거고 죄 없는 엄마는 그 교과서를 구하러 사방팔방 돌아다니시느라 얼마나 힘드실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그리곤 결국 다시 교과서를 오빠 가방 속에 쑤셔 넣어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내 어린 시절은 오빠와의 갈등 속에 부대끼며 커왔던 거 같다.. 이상하게 친정 아버지는 외아들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마치 부하 직원에게 대하듯 오빠를 대했다. 유년 시절에 어리광을 부리지 않던 아이... 공격성 없이 아버지 말에 수긍만 했던 아이...


그런 오빠와 친정 아빠 사이에 따스한 대화라고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오빠도 많은 상처를 받고 스스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 짐작은 간다. 그런 상처들이 무의식 중에 동생인 나에게 표출됐던 거 같다. 그로 인해 나도 서서히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고, 무기력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난 어릴 때부터 빨리 결혼해서 집을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친정 부모님을 내가 모셔서 부모님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어찌 보면 난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거 같다. 상대에게 항상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항상 내가 의심을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늘 증명하려고 했다. 나의 불안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는 남편 사업이 실패했을 때였다. 그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감에 사로잡히다 보니 남의 행복을 시기했고,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리곤 점차 무기력해져 갔다. 당시의 나는 내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렸었던 거 같다.


그래서 난 내 아이가 몸짓과 울음으로 무엇을 호소하려는지 따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던 엄마가 되고 말았고, 말로는 자기의 본능적인 불안을 표현할 수가 없었던 어린 내 아이는 그런 엄마로부터 엄마를 느끼지 못하고는 스스로를 가두어 버렸다.


강의를 듣다 보니 내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걸 느낀다. 그 시절 내가 내 아이에게 했던 짓과 내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할수록 무겁게 짓눌리는 내 마음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다. 아직은 복합적인 감정의 미로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혼란스럽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 아이에게 나의 심리적인 불안으로 인한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내 아이가 살아 있는 표정과 말을 가질 수 있도록 내 모든 맘을 다해 그리 해 주고 싶다. 나의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고, 내 아이가 마음을 열고 엄마를 느끼고 다른 아이들과 서로를 느끼는 그런 보통 아이들만큼만 되어 주기를, 내가 그런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기를 너무도 소망하고 또 소망해 본다......................................................





11. 공격성1(사프란님).


고등학교시절로 기억된다.


상습적이진 않았으나 몇 번 컨닝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아주 교묘하게. 얼마나 교묘했던지 당시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 대체 들키는 애들은 모야? 요령껏 좀 하지..미련한 것들...."



공격성2.



대학생시기에 내가 아주 존경하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딱 한번 그 교수님의 과제를 못해 간 적이 있다.


늘 우리과에서 제일 공부 잘하고 이쁘고 모범생이란 평을 받았던 나는 그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 과목은 입체조형이었고 과제내용은 바스킷을 만드는데 실로 와이어를 코일링하는 손의 엄청난 수고를 요구하는 작업이었고


3~4주에 걸쳐 진행되는 과제였었다.


그 교수님도 나를 이뻐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그 분께 실망을 시켜드린다는 게 너무 괴로웠다.


그 전날 그 문제로 고민하던 나는 "만약에 손을 쓸 수가 없다면 아주 정당하게 그 과제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급기야는 손가락을 다친것으로하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가서 교수님께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얘기를 하면 그 교수님은 기꺼이 허락을 해주실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결정을 하고 나자 다른 불안이 엄습해 왔다.


누가 보자할 리가 없는데도 만약에 붕대를 풀어보라한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도 나는 결국 손을 칼로 살짝 그어서 피를 조금 보았고 그로 인하여 나의 완전범죄는 완성되었다.




다음날 모든것은 나의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그 교수님은 아주 측은한 눈빛으로(에구구..얘가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쯧쯧..)


다음 시간까지 채점을 미뤄주셨고 그 결과 나는 여전히 좋은 점수를 받았고 나의 모범생 생활은 계속되었다. 



공격성3.


중년이 된 지금, 남편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나의 생활습관은 무척 다르다.


남편이 있을때는 퇴근 시간이 되면 온 집안을 정리하는데 -남편은 집안정리를 심하게(?) 잘해주는 어머님밑에서 자란 외아들이다-


남편이 출장을가게 되어 며칠 혼자 있게 되면 나의 생활태도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이부자리 정리하지 않는건 기본이고 옷가지도 여기저기 흐트려 놓고 (현관부터 침실까지) 설겆이도 쌓아놓고 ....


지난 주 출장 갔을 때 너무나 신이 나서 와인도 새걸로 과감하게 따고 (매번 남편이 마시고 남은 시큼하게 변해버린 와인맛 홀짝였는데..)


거실 테이블에 앉아 마시다가 양말이 답답하게 느껴져 벗어서 테이블 밑에 던져 보았다.


남편이 늘 하는 행동이었고 내가 질색하는 행동이었는데 테이블 밑에 돌돌 말린채 나뒹그러져 있는 양말을 보며 키득 키득...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