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후기

위니컷 클래스내니 맥피

 

영화 <내니 맥피>를 보고... 


【위니캇 강의 2부의 주제는 아동의 인격발달 즉 엄마의 거울반응, 참자기와 거짓자기, 침범과 상처 그리고 공격성, 반사회성과 관심의 능력인 도덕성 발달이다. 


그것은 부모의 살아있는 참자기의 기능인 인간미 있는 엄격함과, 부모를 기쁘게 하고 좌절된 공격성을 회복시키려는 아이의 욕구로, 아이는 자신의 습관으로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리고 전체적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치들을 자연스레 수용하게 되는 발달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 '내니맥피'를 보고···. (위니캇 목요반) 

7명의 짓궂은 아이들과 함께 홀아비 브라운씨는 살아있되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은 장의사다. 죽은 사람과 일하는 것 뿐 아니라 죽은 사람인 아내를 잊지 못해서 서재에 죽은 아내의 의자를 치우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던 부인을 향해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거짓자기로 살아가는 그는 경계 없이 침범하는 대고모님과 융합된 상태에서 자기역할을 포기하고, 그에게 처한 환경의 변화나 상실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줄 능력도 없고, 유모가 계속 바뀌는 상황속에서 아무것도 감당하지 못하며 경제적 능력도 미미한 아빠, 딸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니 편지를 써야 한다며 그 상황에서 홀로 도망쳐 버리고, 화가 치미는 어떤 상황에서 짜증조차 내지 못하는 무력한 아빠이다. 


또한 유모가 16명 바뀔 정도로 공격성이 강한 아이들이 새로 올 유모를 화나게 하는 일이 절대 없을거라 확신한다. 이런 아빠는 '무능하고 힘없는 아빠'이다. 부모는 아이의 공격성을 인정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에게 좋은 기대를 많이 할수록 아이는 사랑받는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공격성에 대한 부모의 끊임없는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어느 날 닭다리로 위장한 아기를 먹는 척 하는 아이들의 장난에 놀란 17번째 유모마저 집을 나가자 아빠는 새로운 유모를 구하러 간다. 그러나 소개소에서는 더 이상 유모를 소개시켜 줄 수 없다고 쫓아낸다. 화가 난 아빠는 아이들에게 저녁식사 금지 벌을 내린다. 아이들의 행동에 한계를 세워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방을 엉망으로 만든다. 



자발성이 큰 아이들로 성장한 사이먼과 에릭. 릴리는 장난감을 스스로 만들어 노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자아경계'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파괴적 행동'을 일삼는다. 또한 아이들은 엄마의 죽음으로 불안하며 아빠가 재혼하여 나쁜 새엄마가 들어올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그런 마음을 달래주는 어른이 없어 분노를 조절하거나 내재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의 공격성이 다듬어지지 못하고 밖으로만 분출되는 것이다. 


아빠의 처벌로 배가 고파진 아이들은 부엌을 점령한다. 온갖 것을 넣고 끓인 수프를 만들고, 소스가 넘치도록 지저분하고 더럽게 식탁을 엉망으로 만든 것하며, 요리사를 꼼짝 못하게 묶고 요리사의 영역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아버지는 아이들의 공격성에 맞서주고, 힘들지만 버텨주고 싸워서 아버지의 권위로 다스려주어야 하건만 그저 피하려고만 한다. 아버지 자신의 공격성이 억압되어 아이들의 공격성에 겁을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녀와 아버지가 7명의 아이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일 때 유모 맥피가 등장한다. 얼굴엔 사마귀가 나있고 앞니는 덧니로 나이 들고 못생기고 뚱뚱한 형상을 한 유모 맥피!


내니 맥피는 덤비고 반항하고 속이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꺾이지 않는 강하고 권위 있는 엄마상을 보여준다. 딱부러지는 성격에 신비의 마법 지팡이까지 있으니... 아이를 억울하고 부당하게 침범하지 않고 아이들을 좋은 행동으로 유도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정신이 강한 사람이다. 


안아주기보다는 훈육하는 사람이지만 자기 정신의 '경계'가 분명하고 또 그 경계를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여자이기에 천방지축의 일곱 아이들을 잘 교정시킨다. 그녀는 아이들이 자신의 권위를 받아들이면서도 관계에 대한 신뢰로운 마음을 스스로 열게끔 해주고 잠재능력을(특히 큰아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유모 맥피가 규칙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이 하루 종일 침대에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알리자 아버지는 만약 감기가 걸린 거라면 아이스크림이나 젤리를 주라고 한다. 


이는 바로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부모가 쉽게 아이를 달래는 방법으로 유혹 즉 대리물을 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침대에서 일어나게 하려면 부모가 적절한 좌절을 주어야 하고 아이들이 그 좌절을 감당하며 겪어내야 규칙이 내면화될 수 있다(뭐든 스스로 하는 자기통제감).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진 않으면서 아울러 좌절을 달래주는 것이다. 그러나 브라운씨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좌절도 견디기 힘겹기 때문에 (부인의 죽음, 새장가를 가라는 고모의 압력, 양육비 지원문제등) 아이들의 좌절에 대응을 못한다. 이렇게 보면 현실을 대면하려는 강력한 의지는 상당부분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내고 그로인해 힘든 일을 겪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어떤 능력에 기인한다.



난장판이 된 부엌에서 유모 맥피는 장난을 멈추고 부엌을 정리하라고 간결하게 말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펼쳐놓은 공격적인 모습에 놀라지 않고 경멸하지 않으면서 지켜야 할 일을 제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장난을 그칠 줄 모르자 지팡이로 바닥을 쿵 친다. 그러자 아이들은 장난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본능적 충동을(놀이든, 공격성이든) 무한대로 사용하는 것이 현실에 적응하는데 헤로울 뿐 아니라, 계속 가능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려주기 위함일 것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공격성을 마음껏 발산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유모 맥피의 맞대면하는 에너지(공격성)의 힘은 아이들을 항복하게 하지만 이 때 대면되는 건 아이들과 유모맥피가 만나게 된 '공유된 현실'이다. 아이들은 현실적 한계('경계')를 '제대로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그걸 인정하고 배우게 된다.



또다시 다음 날 홍역에 걸린 척 분장을 하고 유모 맥피를 속이려 하자 맥피는 아이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마술을 건다. 갑자기 기침을 하거나 아프게 된 아이들은 침대에서 꼼짝없이 유모가 주는 꿈틀거리는 약을 삼켜야 할 처지에 놓인다. 약을 보고 안 먹으려는 사이먼에게 “지금 안 먹으면 다시 먹어야 한다.”라며 아이들의 공격성( 꾀병부린 것과 맥피를 속인 것)에 맞서 맥피 자신의 공격성을 표현한다. 


결국 사이먼은 약을 삼키는데 이렇게 자기 고집을 꺾어야 아이들은 '공유된 현실'을 만나게 된다. 이 때 '이 능력은 아이 자신의 것임'을 잊지 않고 맥피는 사이먼에게 눈을 맞춘다. 


그렇다면 유모 맥피의 마술은 무얼 상징하는 것일까? 아이들의 공격충동을 제어해주는 강력한 울타리를 상징하는 건 아닐까? 유모 맥피의 확고한 매니지먼트로 아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파괴적 행동을 하지 못하고, 고집 피우지 못하고 대신 5가지 규칙을 배우게 된다. 


여기서 유모 맥피는 욕하고 때리는 것이 아니라 모욕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규칙을 내면화 할 때까지 권위를 갖고 버텨준다. 


처음으로 자신의 고집이 꺽인 사이먼에게 맥피는 “너희가 나를 원해도 너희에게 내가 필요 없으면 그때는 내가 떠난다. 하지만 날 필요로 하나 날 원하지 않으면 머무른다”고 말하자 사이먼이 하는 말 “절대 원하지 않을 거예요.” 이에 지지 않고 자신의 공격성을 표출하여 한계를 제시하는 맥피는 “난 절대 떠나지 않아.”에서 알 수 있듯이 맥피는 아이들 공격의 목표가 되지만 공격의 버팀목이 되어 절대 아이에게 눌려 지지 않는다.



이렇듯 유모 맥피의 돌봄은 아이들에게 버텨주는 환경이며 통제 경험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시간들이다. 공격성을 사용할 능력이 있는 맥피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 한계를 알려주고 경계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아버지는 공격성이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어서 한계를 세워주지 못하고, 무조건 허용하려 하거나 피한다. 엄마의 죽음으로 삶의 에너지인 공격성이 숨어 있는 아빠는 무조건 허용적인 엄마의 사랑을 주기 위해(보상심리)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세우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한계나 울타리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다행히 유모 맥피의 일관성이 있는 돌봄으로 구조적 경험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유모 맥피의 5가지 규칙을 가르치는 일련의 과정은 환상에 빠진 아이들에게 현실을 만나게 해주는 과정이요, 공격성이 순화되는 과정이요, 아이 자신의 능력이 살아있을 수 있는 과정이다. 유모 맥피가 말했듯이 5가지 규칙을 배우는 것은 아이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유모 맥피의 확고한 관리를 받기 전의 아이들이 17명의 유모가 떠날 정도로 파괴적 행동을 일삼았던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도움이 되는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분노로 대상을 의미 없이 만들기 때문이다. 


상대를 자극해서 상대가 떠나가도록 하고 “그럼 그렇지.”하며 16번째 유모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여겨서 17번째의 유모도 내쫓은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유모 맥피의 보살핌으로 현실을 만나 달라진 현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유모 맥피에게 “부탁해요.”라고 말한 것

② 사이먼이 꾀병을 부리자 꿈틀거리는 홍역치료약을 먹은 것

③ 아이들 스스로 옷을 잘 차려 입은 것

④ 자신의 생각을 파괴적인 방법이 아니라 생산적인 방법으로 말한 것

예를 들면 사이먼이 아빠에게 셀마 아줌마가 새엄마가 되는 것이 싫다고 이야기한 것이나 셀마 아줌마에게 찾아가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한 것 

⑤ 어른이 말하면 그대로 따르기. 유모의 도움으로 셀마 아줌마에게 청혼하는 아빠를 방해하였지만 양육비 지원이 끊기게 된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유모 맥피가 아이들에게 해 준 것은 심리적이며 상징적인 아빠의 부재로 필요한 울타리 경험 다시 말하자면 한계와 경계 세워주기이다. 



대숙모님의 모자를 당나귀에 씌운 사건에서도 엄청나게 곤란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내니 맥피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자 원래 일요일 오후에 쉬기로 했던 내니 맥피가 나타나 소중한 마법의 도움을 준다. 


양육비를 지급하는 고모가 7명의 아이들을 혼자 키우기엔 버겁다며 1명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자 결국 아이대신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은 하녀 에반젤린이 수양딸로 따라가고 아버지는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 처해서야 아이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더불어 고모의 방문으로 이달 말까지 재혼하지 않으면 집을 내놔야 하는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가족은 같이 살게 되었지만 사이먼은 아빠의 직장인 장례식장까지 찾아가 셀마 아줌마가 새엄마가 되는 것은 싫다는 자기 생각을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아빠는 사이먼에게 대드는 것이냐며 화를 내며 내쫓는다. 공격성이 억압된 아빠이기에 아이의 좌절을 견뎌서 변형시켜 주는 능력을 쓸 수 없었기에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를 이기려고만 한다. 


사실, 사이먼이 이렇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엄마로부터 분리가 되었고 아빠에게 거부되는 것으로부터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원도 유모 맥피의 지지였다. 아빠와 대화가 틀어지자 사이먼은 유모에게 찾아가 셀마 아줌마를 괴롭히는 것에 대해 도움을 청한다. 이 때 맥피는 공격성을 사용하는 것은 좋으나 그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는 된 것인지 묻는다. 


영화의 부제가 ‘우리 유모는 마법사’이지만,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니 맥피가 마법(전능?)을 쓰는 일들은 영화 초기에 잠깐 일어나는 것 같다. 아이들의 분노가 잠잠해지고 장남 사이몬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자, 내니 맥피는 직접적인 도움보다는 유도하는 역할을 하며 아이들이 한 일에 스스로 책임지게 한다. 



사이먼은 이를 약속하고 청혼을 받으러 온 셀마 아줌마 머리에 거미 얹기, 벌레가 들어간 샌드위치 만들기, 개구이 알로 만든 차, 문고리에 전기 통하게 하여 감전시키기 같은 행동을 하려 한다. 이 때 아버지는 셀마 아줌마를 보호하려고 아이들이 마련한 모든 장난(공격성의 표출)을 온 몸으로 맞아준다. 


비록 영화에서는 아이들 장난에 휘말린 것처럼 보였지만 그 또한 달라진 아버지의 적극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무능하고 힘없고 나약하고 무한정 허용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아니라 청혼에 성공해야만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는 현실인식을 하였기에 짓궂은 아이들의 말썽을 견디고 버텨준 것 같다. 


청혼에 실패한 아버지는 한 달 안에 재혼하지 않으면 양육비가 끊겨 집을 나가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현실을 아이들에게 알린다. 7명의 아이들은 되돌릴 방법을 맥피에게 묻지만 “생각해 봐.” 한 마디만 던진다. 


아이들이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화가 난 셀마 아줌마에게 찾아가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며 아버지의 무례한 행동의 원인은 자기들의 장난을 막고 아줌마를 보호하려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며 잘못을 인정하는 방법!


사랑하는 대상인 아빠를 기쁘게 하려고 셀마 아줌마에게 잘못을 실토하고 청혼하도록 도와주는 아이들의 충동은 다분히 건설적이다. 회복의 제스처인 것이다. 7명의 아이들의 공격 충동이 유모 맥피의 보살핌으로 통제될 수 있어진 것을 보면서 자기 충동을 통제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반드시 통제 대상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드디어 결혼식 날. 셀마 아줌마와 결혼을 하는 아빠의 얼굴은 밝지 못하다. 게다가 멋진 숙녀가 되어 돌아온 에반젤린을 보고 혼란에 빠진 아빠를 보며 사이먼은 식장에 벌이 있는 척 가장을 하고 케잌을 던지며 결혼식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케잌에 맞은 셀마와 고모의 반응과 에반젤린과 아빠의 반응을 비교해보면 이들이 공격성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볼 수 있다. 셀마와 고모는 서로 화를 내며 더 큰 케잌을 던지려 하는데 반해 에반젤린과 아빠는 하나의 놀이처럼 즐기며 활기가 느껴진다. 


맥피의 돌봄으로 울타리 경험을 하게 된 아이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사랑함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고 케잌을 서로의 얼굴에 맞출 정도로 서로의 공격성이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셀마는 결혼식을 떠나고 에반젤린과 아빠의 마음을 눈치 챈 아이들은 더 이상 거부를 두려워 않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질문을 한다. 눈 내리는 결혼식을 맞으며 맥피는 길을 떠난다. 


유모 맥피의 얼굴과 몸매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이들의 공격성에도 굴하지 않고 맥피의 능력으로 살아남은 것을 상징한다. 맥피의 얼굴이 생기 있어지고, 사마귀나 덧니가 없어진 것은 상징적의미로 아이들이 현실없이 좌절된 공격적 환상으로 어떤 대상을 무자비하게 밉게 봤던 것에서 자아에 힘이 생겨 현실그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않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내니 맥피의 추한 외모가 점점 예뻐지는 것으로 표현되었지만 가뜩이나 섬세하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이 엉뚱하고 무심한 별로 상관없는 케어를 해주던 다른 유모들에게 화가 나고 실망해서 분노에 꽉 차있던 아이들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면서 그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어른 다운 맥피의 모습을 인정해가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더 이상 대상에게 마술을 기대하지 않고 그 필요도 없어진 가족들에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진실만이 존재한다. 


아빠는 모든 걸 허용함으로서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믿었던 환상을 접었고 아이들은 유모 맥피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다. 7명의 아이들은 유모 맥피의 보살핌으로 자신들의 공격성을 버텨주는 경계(울타리)를 체험하고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깨달으며 구조화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