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후기

하인즈 코헛 클래스코헛수업을 마치고...

 

코헛 강의를 듣고나서…(코헛반 INFP엄마)


처음 수업을 들을 때만해도 난 참 억울한 게 많았다. 어릴 적 어느 부모에게서도 격려와 지지를 받은 기억이 없다. 전형적인 자기애적 나르시즘인 아버지와 자폐로 발전한 막내 동생만의 엄마였던 엄마. 나의 엄마는 고약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와 애정 없는 남편사이에서 항상 피해자로만 사셨던 것 같다.


난 조숙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고 엄마의 딸이 아닌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였다. 유일하게 내게 애정을 주셨던 할머니는 나의 자율성을 허락하지 않고 수치심과 죄책감을 심어주었으며 할머니만의 아이로 만들었다. 마지막엔 치매인 상태에서도 날 분리하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어른들이 심어놓은 짐을 당연히 내 몫으로 여기고 살았다. 만족없이 기계적으로 말이다. 이제야 코헛 수업을 통해 희생을 강요당해 순응하고 참자기가 꺾인 병리적인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 병리를 가진 나는 집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말리는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후 나도모르게 남편의 아내가 아닌 남편의 엄마를 자처하고 남편에게는 나의 엄마를 끊임없이 기대하며 사는 결혼생활을 해온 것이다. 당연히 남편과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아이에게도 난 일방적인 관계를 하며 내 병리적 불안을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아이가 “엄마?” 하고 몇 번을 불러도 난 들리지 않았다. 아이가 진짜 날 필요로할 때 나는 거기에 없었다.


자기애적 문제가 큰 나는 타인과의 관계가 제일 힘들었었다. 다른 사람에게서 엄마를 기대하며 일방적인 애정을 쏟다 작은 일에 상처받고 분노했다.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을 구걸하며 날 마음껏 이용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쇼핑을 가서 친절히 대해주는 점원에게도 나는 물건을 팔려는 그 사람의 의도는 외면한 채 '다른 것'을 기대하며 권하는 물건을 잔뜩 사곤했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은 쓸모없어 어김없이 구석에 쳐 박혔다. 상대방을 공감하거나 지지해주는 의사소통이 너무 힘들고 상대가 나를 착취하는 것 같은 투사가 계속 일어났다. 이런 반복강박속에서 난 의심 많고 진실하지 못한 거짓자기로 살게 되었고 결국엔 관계를 끊고 일에만 매달려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초기에 김은옥 선생님께서 이런 문자를 내게 보내주신 적이 있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고통인 동시에 희열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쉬울 수도 있는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끊임없이 우울했다. 이제 희열의 과정이 내게 남아있다. 수업을 통해 꽁꽁 묶여 있던 불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는 나를 느낀다.


내가 할 수 없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리하여 나의 참자기를 찾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현재의 숙제이다. 여기까지 이끌어 준 선생님과 수업을 같이 들으며 많이 공감해준 동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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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희생한다는 생각 없이 잘 해주고 있는가?.” (ISFJ엄마)


지난 시간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육아를 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 것은 아이와 남편에게 ‘희생한다’는 생각과 그 때문에 끝없이 착취당하는 것만 같고 고갈되는 나 자신이었다.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특히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줄 수 없는 나 자신과 사랑받지 못하는 나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우울하다.


나의 37년 삶에서 이런 나의 문제로 인해 나는 정말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특히나 깊은 고립감과 단절감은 항상 나에게 불안과 우울을 주었고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나에 대해 한탄만을 할 뿐이었다.


나의 친청부모님은 여행을 굉장히 많이 다니신다. 친청 아버지에게 있어 여행은 당신의 지금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것 같다. 아버지에게 현실은 그저 답답할 뿐이다. 나는 부모님들이 여행을 가실 때마다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아니면 사고로 돌아가시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나는 너무나 담담하게 유산을 정리하고 있다.


꿈과 현실이 모호한 그 상태에서 나는 이것이 현실일까 하는 의심을 하면서 한편으로 부끄럽다. 부모와 거리두기를 하고 싶지만 경제적 도움을 포기할 수 없어 절대 멀리 할 수 없는 부모이다. 내가 어렸을 때 어느날 아버지께서 예쁜 필통과 연필을 사오셨다. 나와 내동생들은 그것을 서로 가지겠다고 싸웠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화를 내시며 그 연필들을 우리앞에서 다 부러뜨리셨다. 그리곤 다음날 더 좋은 것들로 사다주셨던 것 같다. 여태까지의 삶에 있어 부모님은 진정한 공감을 못해주신 것을 항상 돈으로 채워주셨던 것 같다. 격노 후에 미안함을 돈과 물질로 보상해주시고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았다.


엄마는 항상 내가 어렸을 때 과자나 돈을 무척 아꼈다고 그래서 너무 알뜰하다고 자랑하셨다. 나는 그것들을 오랫동안 지니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그러면 왠지 나의 허전함이 채워지는 것 같고 풍족한 듯이 느껴졌었다. 어린 나에게 과자와 돈은 중간대상이었나보다.



나는 단 한번도 내가 이기적이고 자기애적인 사람일거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얼마나 자기애적이고 과대자기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가 보인다. 


항상 불편하고 겉으로만 맴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나를 항상 심한 고립감에 빠지게 했고 그것이 육아를 더욱 힘들게 하는 원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베푸는 것에 너무 인색하고 때로는 아이들에 대한 특히 큰아이에 대한 나의 노력이 아깝게 느껴졌고 그 노력에 대한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고 나를 실망시킬 때 엄청난 분노로 아이를 심하게 몰아치고 아이를 실패자처럼 다루었다.


아이를 진정으로 따뜻하게 대한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너무 막연하다. 사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할머니와 고부 갈등이 심했던 엄마는 집에 잘 계시지 않으셨던 같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기억에는 항상 엄마가 집에 안계셔서 집에 들어가기위해 담을 넘던 기억과 담을 넘지 못했던 날에는 집앞에서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는 그동안 소홀했던 것을 만회라도 하시려는 듯 나에게 무척 헌신적이셨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순간에 엄마는 없었다. 대학 원서를 쓰러가기로 한 날 엄마가 집에 안계셔서 너무 화가 난일이 기억난다. 


어떻게 그 약속을 잊을 수가 있을까! 나의 엄마도 지극히 자기애적인 분이라 자신의 관점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해주고 그에 대해 생색을 내셨다.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었던지라 그것이 설사 자식의 일일지라도 기억하지 못하셨던 분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똑똑하고 귀티나는 사촌형제들과 비교해 떨어지는 존재로 항상 비교당했던 것 같다. 엄마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발언으로 아버지를 격노케했고 아버지의 격노 앞에서 엄마는 한없이 나약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자식인 나는 당연히 엄마에게 열등한 자식이었을 것이고 엄마의 무의식적인 이런 생각들이 나의 무의식에 박혀 고통받고 엄마를 향해서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거부감이 들때가 있다.


이런 이중적인 엄마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 나의 아이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뼈속까지 엄마와 닮아있다. 남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슴 자꾸 생각나는 일이 있다. 나의 아버지는 강박이 심하고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시다. 어릴 때 한 번은 아버지께서 회사사람들과 가는 야유회에 엄마없이 우리 세자매를 데려가신적이 있다.


아버지와의 함께 했을 지도 모르는 다른일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유독 이 일이 기억이나는 건 왜일까? 한 여름이었고 아버지 회사의 남자직원들과 함께가는 야유회에 왜 우리를 데려가셨을까?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우리를 데려가셔서는 밤새 우리를 지키셨던 아버지가 기억난다. 생각해보니 우리가족이 함께 한 여행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릴 적 사진에는 남아있지만 나의 기억에 엄마, 아빠와 함께한 여행기억이 없다. 이상하게도 대학교때 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간 제주도 여행도 어머니는 함께 가지 않으셨다.


내기억에 아버지는 한번도 성적이나 나의 문제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항상 금전적으로 나에게 베풀어주시는 분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주신것에 대한 생색이나 바람이 없으시다. 이런 아버지가 요즘들어 애처로울 때가 있다. 엄마는 항상주고 생색내고 그에 상응하는 관심을 바라는데 그것조차 바라지 못하고 체념해 버리는 아버지가 가슴이 아프다.



지극히 자기애적인 나의 어머니는 우리 세 자매에게 채워지지않는 공허감과 엄청난 시기심을 선물로 주었고 우리 또한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흉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번도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키워내고 있다.


나 자신에대해 알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예전보다는 분명히 나은 오늘의 나일 것이다. 하지만 나를 알아감이 결코 썩 유쾌하지 많은 않은 일이다. 아이에게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볼때마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생각이 드는 것은 죽이고 싶도록 미운 그 대상이 바로 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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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코헛강의!." (INFP엄마)


'우리 아이가 참 키우기 힘든 아이'라고... 그래서 난 참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그걸 알아달라고 그렇게 아이를 탓하고 생색을 내면서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나 큰 아픔으로 되살아나는 강의였다. 


자기의 이미지가 부풀려진 상태,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고 주변사람들에게 상처주는 것도 모르고 무조건적인 찬사를 원하는 것은 비단 우리아이만은 아니란걸 알았을 때 인정하고 받아들이긴 쉬운일이 아니었다.


핑크팬더의 클루조 형사의 모습을 보고 실컷 웃고난 후에 "그도 결국은 가엾은 사람임을 알고나서는 슬픈 코믹드라마도 있을 수 있구나." 새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유아적인 발상과 행동들, 부주의한 실수의 반복들 그리고 뒷감당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 그의 단순 무식한 발뺌까지...나도 우리아이도 그 어느면이 닮아 있다.


과대자기가 잘 영글어 가치를 형성해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되지 못하여 늘 뭔가 부족한 채로 살아가야하다니...


그동안의 나는, 엄마로서의 나는, '나에게 좋은게 아이에게도 좋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온 듯하다. 아이에게 실망을 주는 것이 스스로 괴로워 견디지 못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제대로 경계를 주지 못하고 권위를 세우지 못했다.


제대로 크지못한 아이같은 엄마는 결국 똑같이 제대로 클 수 없는 아이를 길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러 그런것이 아니라 그 엄마 역시 그렇게 자라왔기때문이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이 모든 것들이 참 놀랍다.


마음에 병이 든 채로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번 강의를 통해 아이에게 한발짝 물러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치유하고 아이도 치유하려면 말이다. 


나를 나대로 보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기 그리고 버텨주기, 엄마의 불안으로 인하여 아이를 상처주고 모욕주지 않기, 적당히 무관심하고 적절하게 보살피기, 아이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구별하기, 내 문제로 아이에게 화내지 않기등. 이런것들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이리라. 두고 두고 성찰해야할 숙제...